|
+ 제 목 :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라!”
+ 본 문 : 요한일서 4장 7절 - 12절 (신약성경 391쪽)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아멘!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 “잘 되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린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우린 너무나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겐 모자란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라기 짝이 없는, 그런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기에! 부족한 우리에게 풍성하게, 채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기에! 연약한 우리를 하나님 자신의 전능하심으로, 채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기에 모자란 우리를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며, 돌보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없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
그렇다면 내가 나를 볼 때에도 한 없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라기 짝이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나를 복 있는 사람! 한 없이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지난 주일에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다섯 가지로 그 대답을 드렸습니다.
나는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라 영원한 존재이며, 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은 죄인이었으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하늘의 천군천사가 동원되어 섬기는 축복, 날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며 돌보시는 축복,
날마다 기적을 일으키는 성령임재의 능력 충만으로, 날마다 잘 되고 날마다 행복한 삶이 열리는,
신수성가와 신승가화성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원합니다. 아멘!
사도 바울은 우리가 받고 있는 하나님의 참 사랑을 노래합니다. / 함께 읽습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사랑’ 입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 받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사랑은 삶에 생동감을 주는 활력소입니다. 가정, 직장, 이웃, 친구와의 만남에 꼭 필요한 것이 사랑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노래하면서 그 주제를 ‘사랑’ 으로 표현했지만, 사랑을 노래하는 것과,
사랑을 누리는 것은 다릅니다. 사랑은 표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은 누릴 때, 진정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다음으로, 가장 고귀한 사랑의 모델은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님은 어떤 조건도 따지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자기 목숨같이 사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모의 사랑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해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습니다. 자식이 아파할 때 부모는 그 아픔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남녀의 사랑도, 친구의 우정도, 영원한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참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참 사랑은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무한하고도 영원한 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사랑의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를 살리려 하심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이처럼 무한한고도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바울은 이처럼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꾼 너무나 소중한, 하나님의 참 사랑의 결론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아멘!
참 사랑은 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요.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이기에,
참 사랑은 믿음 소망과 함께 항상 있어야 하고, 항상 있어야 할 세 가지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꾼 참 사랑을 받고 있기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처럼 우리에게 참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참 사랑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믿음생활에는 대상이 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음의 기초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이를 통해 믿음이 완성 되어집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더 깊은 믿음의 영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모르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만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우리의 믿음생활이 온전한 믿음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종교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형상을 섬기게 함으로, 우리 인간들에게 복을 줄 수 있다고 속이고 있습니다.
사탄은 오늘도 사람의 죄악 된 마음에 역사하여, 진리 되신 하나님을 떠나 어둠의 삶을 살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모든 불행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찾아온 결과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우리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창조된 온 우주만물에는, 하나님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온 우주만물은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따라서 디자인되었고, 보시기에 심히 아름답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람들에게 다스리도록 주셨는데,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들은 바로 이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살아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사람을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람이 모든 피조물보다 위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우리의 모든 불행은 치료되고 행복한 삶이 시작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아멘! (로마서 8장 15절)
저와 여러분이 지금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아버지’라 부름으로, 우리의 모든 불행은 치료되고,
행복은 더욱 풍성해짐으로 우리의 삶은 행복한 삶으로 바꾸어집니다. 그래서 예배성공은 인생성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때,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로 저와 여러분을 모른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라도,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 의지하십시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자에게, 언제나 만나 주시고 축복을 더하여 주십니다.
둘째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영원한 참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참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호흡이 있는 모든 곳에 사랑은 가장 위대한 언어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랑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요 3:16)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삶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새 힘을 얻고 반드시 일어서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으로 충만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를 날마다 만남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날마다 체험하고,
충만하게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이 능력이 되어, 저와 여러분의 삶에 사랑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성경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의 사랑이 마감되었다고 한 사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지금도 건재하기에, 능력도 건재합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에게 따르는 표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믿는 사람에게 당연히 따르는 표적입니다.
믿음이 여러분 안에서 진리에 대해 자유를 선포할 때, 믿음은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보여 줍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로 보여 지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은 영육 간에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사랑의 역사를 우리의 귀로 듣게 하시고, 눈으로 보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질병을 치료하여 주시고,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친히 다 해결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녀인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 가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자녀인 우리가 체험하므로, 아무도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들이, 평생에 이 사랑을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의 치유와 문제해결과 모든 도우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겠다는 약속의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영원한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가 되십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아멘!
셋째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는 말씀이 되고, 그 말씀이 우리에게 기적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우리가 듣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음성은 성경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 말씀으로 기록된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성경을 신뢰하는 믿음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고대 언어학의 권위자였던 윌슨 박사에게, 어느 날 두 명의 대학생이 찾아왔습니다.
그 두 대학생은 윌슨 박사에게 여러 가지 말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학생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윌슨박사가 물었습니다. “자네들은 성경을 몇 번이나 읽어보았는가?”
두 대학생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습니다. 아무 말을 하지 못하자, 윌슨 박사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한 번은 읽었겠지?” 그래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여기저기 단편적으로 성경을 비판하는 비판서적들만을 잔뜩 읽고서, 그렇게 흥분한 것입니다.
윌슨 박사는 그 두 대학생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는 40년간 매일 몇 시간씩 성경을 읽고 연구를 했네.
그리고 나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조금도 의심이 없네, 그러나 성경을 세 번 이상 읽고 오게나.”
그 두 대학생들은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조용히 돌아갔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17절 말씀입니다.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곧 말씀생활입니다. 말씀의 인도를 받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면, 우리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풍성한 복된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대적하는 악한 영인 사탄은, 부정적인 생각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말씀을 신뢰하면, 말씀이 기적으로 역사하는 경험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말씀이 되고, 그 말씀이 자녀인 우리에게 기적을 일으킵니다.
넷째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인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 사람에게 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믿음의 세계로 부르신 것도,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을 받게 되면 그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나님은 복의 근원입니다. 오고가는 모든 세대들의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의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목말라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아오면 모두 다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 죽음 이후에 심판받게 됩니다.
여러분!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천국의 복을 놓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바로 이 복의 길을 힘 있게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가면, 날마다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에 기름진 복이 임함을 믿습니다.
인적이 드문 한 골짜기 비탈의 많은 잡초들 사이에 찔레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골짜기에 들려옵니다. 그는 어깨에 삽을 하나 메고 있었습니다.
그는 정원사였습니다. 그 정원사는 한참을 골짜기 이곳저곳을 살핀 후, 찔레나무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여기 쓸 만한 것이 있었군.’ 그러면서 찔레 주위를 삽으로 파기 시작합니다.
가시가 많은 찔레가 생각하기를 ‘어 이 사람은 내가 쓸모없는 찔레나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원사는 온 몸에 땀을 흘리면서 정성을 다하여, 찔레의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루었습니다.
정원사는 그렇게 골짜기에서 가져온 찔레나무를, 자신의 장미정원에 정성을 다해 심었습니다.
찔레나무는 생각했습니다. “이 정원사가 대단한 실수를 하고 있군! 나는 아무 쓸모없는 찔레인데,
이렇게 아름답고 값진 장미나무 사이에 심다니, 이제 곧 내가 찔레인 것을 알면 뽑아서 불에 던지겠지.”
그런데 정원사가 다가옵니다. “어이쿠, 이제 끝장났군! 이 멍청한 정원사가 내가 찔레란 것을 알았구나.”
정원사는 그 가시나무를 뿌리만 남겨두고 이리저리 다 베어버렸습니다. “어! 지금 무엇 하는 거지?”
그 사이 정원사는 베어진 찔레나무 줄기에, 다시 장미나무의 싹을 접붙여 놓는 것이었습니다.
‘야, 나같이 쓸모없는 나무가 장미나무가 되다니! 불 속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내가 장미나무가 되다니!
이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야. 저 정원사는 정말 고마운 분이야!’ 그리고 여름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장미꽃이 그 찔레나무에도 피었습니다. 그 장미꽃을 보면서 정원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래 너는 찔레였지만 장미에 접붙여 장미나무가 되었으니, 이제 모두가 너를 장미라 부를 것이다.”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 사랑을 받고 살아가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지금까지 바로 이 하나님 아버지의 참 사랑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하셨다면, 이젠 괜찮습니다. 지금 깨달았잖아요.
하나님께서 끝까지 자녀인 저와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크신 사랑으로 붙잡아 주십니다.
우리는 다만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기도와 말씀으로 살아갑시다.
이제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보답할 수 있는 믿음의 길을, 성령님의 도움으로 힘차게 걸어갑시다.
나의 영과 마음과 육체까지도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우린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우린 너무나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겐 모자란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하고, 모자라기 짝이 없는, 그런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기에! 부족한 우리에게 풍성하게, 채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기에! 연약한 우리를 하나님 자신의 전능하심으로, 채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기에 모자란 우리를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며, 돌보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없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 행복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