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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5.08
리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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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한국을 방문해 연설을 하고 있는 리콴유 전 총리. /이명원 기자
오는 15일 싱가포르 총리가 바뀝니다. 리셴룽(72) 총리가 물러나고 로런스 웡(52) 부총리가 새로 취임해요. 리셴룽 총리는 리콴유(1923~2015) 싱가포르 초대 총리의 장남으로, 고촉통 전 총리에 이어 2004년 3대 총리로 취임해 20년간 싱가포르를 이끌어 왔어요. 의원내각제인 싱가포르에선 대통령이 있지만 내각을 이끄는 총리가 정치적인 실권을 갖고 있습니다. 리콴유가 31년간(1959~1990) 재임한 것을 합치면 부자가 무려 51년간 싱가포르를 통치했어요. 리콴유는 어떤 사람이길래 한 가문이 이렇게 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요?
영국과 일본의 지배 받았던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말레이반도 남단에 있어요. 동남아시아 무역의 요충지로 일찍이 많은 상인이 오갔던 곳이죠. 영국은 1810년대 후반부터 싱가포르 지역을 중국과 인도 사이 중간 무역 기지로 삼고 개발했어요. 그렇게 싱가포르는 아시아 주요 무역항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때쯤 싱가포르가 한 국가로서 공식 역사가 시작된 걸로 봐요. 영국이 싱가포르를 무역항으로 개발하면서 싱가포르가 동남아시아에서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여러 민족과 문화가 싱가포르에 자리 잡게 됐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싱가포르 사람들은 영국의 식민 통치에 비교적 큰 저항이 없었다고 해요.
1869년 수에즈운하가 개통되고 증기선이 등장하면서 싱가포르는 무역으로 더욱 번성했어요.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해요. 일본이 패망한 후에는 다시 영국의 통치를 받았죠. 하지만 일본의 지배를 받는 동안 싱가포르인 사이에서 민족의식이 점점 높아졌고, 다시 영국 지배를 받게 됐을 때 영국과 협상해 조금씩 자치권을 가져오기 시작했답니다.
1958년 영국 의회에서 싱가포르 국가 법이 통과되고, 1959년 싱가포르에서 새로운 입법의회 구성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가 열렸어요. 여기서 인민행동당(People's Action Party)이 51석 중 43석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인민행동당은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정당이었어요. 리콴유는 당시 반공주의 입장이었지만 정치적 기반이 필요해 인민행동당에서 활동했다고 해요. 그리고 싱가포르 초대 총리가 됐습니다.
서른여섯 살의 젊은 지도자, 리콴유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부유한 중국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1950년 싱가포르에 돌아와 노동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명성을 얻었어요. 그는 1954년 인민행동당 창당을 이끌며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5년 뒤 싱가포르 초대 총리가 됐을 때 그의 나이는 서른여섯 살이었어요. 아주 젊은 지도자였던 거죠.
총리가 된 리콴유는 싱가포르 발전을 무엇보다 우선시했어요. 국민투표를 통해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 가입을 결정해요. 싱가포르는 작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였기 때문에 정치적, 경제적 생존을 위해 말레이시아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는 선택을 한 거예요. 그러나 말레이계와 중국계의 충돌, 경제 정책 입장 차이 등으로 싱가포르는 2년 만에 연방에서 쫓겨나듯 탈퇴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싱가포르 개발에 더욱 힘을 쏟아요. 수준 높은 교육 확대, 빈민가 철거, 새로운 공공 주택 건설, 여성 해방 등에 주력합니다. 기업 친화적인 정책으로 외국 기업과 세계 유수 은행 등을 적극적으로 유치했습니다.
경제 정책에서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과 반대로 엄격한 법치주의를 확립하기도 했어요. 싱가포르는 마약과 총기를 강하게 규제하는 법률을 갖고 있어요. 싱가포르에서 헤로인 15g 이상, 대마초 500g 이상을 밀매할 경우 최고 사형을 선고받을 수 있어요. 또 태형이 아직도 이뤄지고 있죠.
리콴유는 반대 의견을 좋아하지 않는 면모도 갖고 있었어요. 식민지 시절부터 있었던 보안법을 더욱 강화해 야당 인물과 비판적 언론인들을 괴롭혔다고 해요. 이처럼 리콴유의 리더십에는 명암이 있어요. 하지만 196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00달러 수준이었던 작은 나라가 2022년 8만달러를 돌파하는 등 부유한 국가가 되기까지 리콴유의 역할은 매우 컸습니다.
총리 임기 제한 없어
싱가포르는 '잘사는 북한'이라는 별명이 있어요. 총리 임기가 별도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여당이 선거에서 계속 승리하면 여당 대표인 총리가 계속 직무를 수행할 수 있죠. 또 여당 대표는 투표로 뽑는 게 아니라, 재임 중인 총리와 지도부가 논의해서 뽑아요. 리콴유가 창당한 인민행동당은 싱가포르 독립 초기부터 빠른 경제 발전 등을 이룩하며 유권자들에게 강한 지지를 받았고, 지금까지 집권 여당의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민행동당 소속 의원이자 대표였던 리콴유가 31년, 그의 장남 리셴룽이 20년간 총리로 일할 수 있었던 거예요.
또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선거 제도도 인민행동당의 장기 집권에 영향을 줬어요. 싱가포르 국회의원은 지역구 의원, 무선거구 의원, 지명직 의원으로 나뉩니다. 지역구 의원은 의원 1명을 뽑는 단일선거구와 의원 4~6명을 뽑는 집단선거구를 통해 구성돼요. 유권자들은 집단선거구 선거에서 정당에 투표를 하는데요, 이때 최다 득표한 정당이 해당 집단선거구 의석을 독식합니다. 인재풀이 빈약하고 지지 기반이 약한 군소 정당에 불리하고 큰 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구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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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고 있는 리셴룽 총리.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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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 국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어요. /리셴룽 총리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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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원 서울 단대부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오주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