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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뒷문 쪽에 벗어 놓은 장화를 싣다 말고 깜짝 놀랐다.
웬 낮선 장화가... 아래쪽 부분이 노란 색으로 번들번들 코팅이 되어있다.
어디서 바뀌 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뒤쪽으로 돌아온 마누라, 왜 그렇게 앉아 있냐고,
신발이 바뀠 당게, 찬찬히 내 장화를 내려다보더니 아이고, 영감쟁이 어쩌면 쓸까. 잉!
아, 어제 오후에 밭에 제초제 뿌리면서 농약이 묻어서 안 그라요.
대체나 그 농약(스톱프)이 치자 물처럼 샛노랗더니만, 요렇게 코팅이 되어 부렀네.
하기사 이쪽에서 사시사철 장화 싣고 다니는 사람은 나밖에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구두는 일년에 불과 몇 번이지만 이제는 장화가 일상화가 되어 버린지 오래.....
진땅 마른땅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누벼도 부담 없는 신발, 그러다 논두렁밭두렁
아침이슬 떨고 나면, 또 새 신발처럼 말끔해지는 편안함도 있다,
어느 날 중국에 사는 친구 공항 마중, 큰 가방 찾아 대합실을 나서며 내 신발 내려다
보며 올 때 마다 장화여... 서둘러 오는 길 귀찮아 그냥 와 부렇제.
그런데 이 친구 가는 길 아파트단지에, 아는 분 물건좀 전해주고 가자고 한다.
차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다녀오소. 한참 후 친구가 멋쟁이 중년 여성을 대동하고 다가와,
이렇게 가시면 되겠느냐고 차문을 열고 같이 올라가자고 한다.
흙.먼지 작업복이라... 괜찮다며 앞서가고, 나는 이삿짐 뒤에 강아지 딸아 가듯 쫄랑거리며
뭣도 모르고 따라 갔지요. 고층아파트. 깔끔한 분위기와 정갈한 응접 의자에..
엉덩이 어디다 들이밀어야 할지, 부자연스러워 지고 또한 벗어 놓은 장화가 유난스레
버르적거리게 보여 자꾸만 움츠러든다. 나, 그냥 바닥에 앉으면 안 될까요?
까르르 웃으며 편하게 그냥 앉으시라고 거듭 권하여 마지못해 엉거주춤한 폼으로 소파 끝부
분에 살짝 걸쳐 앉았더니 참, 순진한 분 같다고 합니다.
오랜만에 들어본 소리다. 호박씨 까는 사람인데 어설픈 행동이 그렇게 보인 것 같다.
친구소개가 집사람후배이고, 골프 여행차 중국에 가끔 오시는 가까운 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 직장 나와 지금은 농사꾼이라고, 소개하자, 대뜸 멋지세요.
듣기 좋아라. 하는 소리지만 과찬도 유분수지.....철따라 골프여행하며 여유롭게 사는 눈에
흙투성이 작업복에 장화가 멋지다고요? 만약, 골프채 쥐고 있었으면 얼마나 멋져 불까?
아서라, 장화 싣고 삽을 들어야 제격이지, 폼 잰다고 골프채 쥐고 있어봐.
얼나간 사람이라고 모두들 힐끔거리며 쳐다 볼 텐데......
어느 날 엉겁결 인접도시 까지 가서 점심을 먹고 2차 노래방으로 옮겨, 장화 싣고 엉터리
부르스 추는 내 폼이 가관 이었던지 주인아주머니 씽긋한 미소를 던져 나도 환한 웃음을
토스 했지요. 몇칠 전에는 선배님 한분이 농장으로 찾아와 마을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손님들이 많아지자 벗어 논 신발에 눈길을 떼지 못하고 안절부절 결국은
비닐봉지에 담아 상 밑에 가만히 밀어 놓는다.
딸이 맘 먹고 사준 명품 구두란다. 나처럼 장화 싣어 보슈. 가운데 떠억 벗어 놓아도 주인장
이 알아서 정중히 한쪽에 잘 모셔놓은 편한 신발이요.
신발이 편해야 좋을지, 귀해야 좋은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나는 장화와 짤떡 궁합이다.
그래선지 요즈음은 외제차 타고와 손 내미는 친구도 좋지만, 손톱 밑에 까만 때 묻어있는
가까운 이웃이 한결 더 정겹고 포근하다.
옛날 직장에 있을 때 일이다. 일본인 아홉 분의 안내를 맡았다.
점심시간 식당에 들어서자 신발을 벗어 모두 멀리 한쪽에 정연하게 놓은다..
처음에는 자기들 신발이 바뀔 염려에 그런줄 알았는데 저녁에도. 이튿날 역시 한적한 식당에
서도 가운데 넓은 공간은 늘 비워놓고 한쪽에 정리한다..
나는 한참 후에 서야 알았고 무심중 내 행동이 많이 부끄러 웠다.
뒤에 오는 사람을 배려하는 습관속의 아름다운 모습, 오래토록 기억 되고 있다.
지금껏, 생각 없이 우선 내가 편한 곳에 벗어놓았고, 뒤에 오는 사람 역시 줄비한 남의 신발
질끈 밟고 넘어가지만 이런 소소한 것부터 지켜지는 생활 습관으로 바뀌 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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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설픈 글 올려놓고 염치없지만 답글이 조금 늦어질 것 같아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가을은 점점 깊어만 가고 뻔질나게 전해오는 단풍소식, 들썩거림에 바위덩이 같은
마누라 엉덩이 간신히 움직여 설레임 안고 내일 03:00 나서 볼까합니다.
어느하루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그속에 흐르는 정--훗날 다시 읽어보게 되면 한편의 그림같은 추억 이야기 입니다
선생님 다녀가신 흔적 반갑고 고맙습니다.
늘 청량제 역활을 해주는 선생님의 해학속의 귀한 글 기다려 집니다.
장화예찬이 대단하십니다.
장화 신고 삽든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장화 싣고 삽 들어야 제격 아닌가요? 그런데 그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군요. ㅎㅎㅎ
행복한 일상 탈출한답시고 1,400키로(속초, 영월, 영주) 돌아왔더니, 역시 집이 최고입니다.
시골 냄새가 짙게 묻어나는 장화이야기가 정겹습니다.
회장님 고맙습니다. 시골사람 시골냄새 밖에 더 있습니까?
멋지십니다. 제가 그래서 선배님을 좋아합니다.
장화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까지는 10 리가 넘었지요.
황토길이라 비가 오면 검정 고무신이 벗겨져
신기가 어려워 벗어서 들고 뛰었지요.
그때 옆 집 잘사는 후배 여학생과 그 오빠 나란히 장화신고
손잡고 다니던 걸 보며 비오는 날 장화 한번 신어봤으면....
그 뜻 이루지 못하고 검정 고무신도 꿰메신고 다녔던 내 어린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알뜰살뜰(?)한 제가 있지 않을까요. 감사합니다.
그랬지요. 우리어린시절 십리,이십리 길은 당연한 걸로
알았고, 땀에 흠뻑 젖어 미끌 거린 고무신에 모래 몇 알
들어가도 논두렁 밭두렁 내달리던 그 때가 아련합니다.
저도 장화 패션한번 신어보고 싶네요 얼마나 멋진지..
ㅎㅎㅎ 이연선생님은 아직은 시골냄새가 베이지 않아
패션장화 신어도 나처럼 폼 나지 않을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