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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달고사
민간에서 상달에 신령께 제사 지내니
재앙을 녹이고 집이 편안하기를 모두 원하네
북소리 둥둥둥 깊은 밤중에
온 집에는 가득한 옥추경 외는 소리
유만공(1793~1869)의 『세시풍요』에 나오는 상달고사에 관한 시이다.
상달고사는 집안의 안녕을 위해 가신家神들에게 올리는 의례로 주로 음력 10월 상달에 지낸다. 한자로 ‘告祀(고사)’라고 표기하나 한자어에서 유래한 말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에서 ‘고시레·고사·굿’을 같은 어원으로 보아 작은 의례를 ‘고시레’라고 하고, 고사는 중간 크기의 굿에 해당하는 의례라고 하였다. 즉, 장구를 울리고 무악巫樂을 갖추어 춤을 추는 것이 굿이라면, 고사는 그보다 작은 규모인 것이다.
고사는 일반적으로 집안 단위의 의례지만, 마을에서 제물을 차려 놓고 비손과 소지燒紙로 정성을 들일 때도 동고사·당고사 또는 서낭고사라는 말을 쓴다. 고사를 지낼 때는 좋은 날을 가려서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서 집 안으로 부정이 들지 않도록 금기를 지킨다. 제물로는 주로 시루떡과 술을 준비한다. 떡은 켜를 넣은 팥 시루떡과 켜가 없는 백설기를 만든다. 백설기는 산신産神인 안방의 제석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의례는 주부가 제물을 차린 뒤 배례를 하고 손을 모아서 빌거나 축원을 하면서 기원한다. 중요한 가신인 터주신·성주신·제석신·조왕신 등에게 배례와 축원을 하고, 이 밖에 칠성신·측신·마당신·문신 등에는 제물만 놓아둔다.
시제
우리나라에서는 4대조까지는 그 망일에 기제忌祭를 지내고, 설과 추석 같은 명절에 차례와 성묘를 하지만 5대조 이상의 선조에게는 1년에 한 번 10월 보름을 전후하여 제사를 지낸다. 이를 ‘시제時祭’라고 하며, ‘시사時祀’, ‘시향時享’이라고도 한다. 이 시제는 기제와 차례처럼 집안에서 제사하지 아니하고 반드시 그 묘소에서 지낸다. 이때는 멀고 가까운 후손이 묘소 앞에 모여 성대하게 제물을 차리고 제를 지내는데, 이것은 조상을 높여 소중히 여기는 정신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후손이 많이 모이는 것이 종중宗中의 자랑이다.
시제를 위한 비용은 문중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으로는 신위마다 제위토를 마련하여 그 수익으로 비용에 충당하며, 자손이 묘소에 가서 벌초를 하고 묘의 주위를 청소한 다음 절차에 따라 분향하고 제사를 받들며, 아울러 산신山神 또는 토신土神에게도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손돌이 추위
10월 20일에는 매년 큰 바람이 불고 추운데 이를 손돌바람이라 한다. 고려 때 어느 임금이 강화도로 파천播遷 가던 길에 손돌목(통진과 강화 사이)에 이르니 바람이 불었다. 이에 뱃사공 손돌孫乭은 뱃길이 위험하니 안전한 곳에서 쉬었다 가자고 임금에게 여러 번 아뢰었으나 임금은 오히려 손돌을 의심하고 목을 베어 버렸다. 그러자 광풍이 불어 어선御船이 매우 위태롭게 되었으므로 임금은 손돌을 죽인 것을 뉘우치고 그 넋을 제사하니, 그때야 잔잔해져 무사히 강화도에 닿게 되었다 한다. 이때부터 해마다 그날인 음력 10월 20일이 되면 큰 바람이 불기 때문에 이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하고, 또 이 날의 추위를 손돌추위라 한다.
속신
10월 1일의 날씨로 겨울날씨를 점치기도 한다. 이 날 추우면 다가오는 겨울이 춥고 이 날이 따뜻하면 겨울이 따뜻하다고 한다. 그래서 경상도 지방에서는 “10월 1일이 따뜻하면 휘양장수[揮項장사] 울고 간다.”라는 속언이 있다. 또 입동의 날씨로도 겨울날씨를 점치는데, 입동이 추우면 겨울에 큰 추위가 있고 입동이 따뜻하면 겨울에 큰 추위가 없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이 추우면 그해 겨울에 바람이 독하다고 한다.
전라도 지방에서는 10월 보름달 지는 것을 보고 다음해의 운세를 점친다. 이 날 보름달이 지고 바로 해가 뜨면 이듬해 시절時節이 좋으나, 보름달이 지기도 전에 해가 뜨면 시절이 불길하다고 한다. 이런 달치기 점을 지방에 따라서는 10월 20일에 하는 곳도 있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10월에 부엉이가 울면 풍년이 들고 10월이 지나서 부엉이가 울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농촌에서는 음력 10월부터 지붕에 이엉을 엮어 인다. 그런데 자子·오午·묘卯·유酉일은 천화일天火日이라고 하여 멸망일이기 때문에 손보지 아니한다. 만일 이 날에 지붕을 이거나 고치면 그 집에 화재가 나든지 아니면 집안이 망하게 된다고 여긴다.
시절음식
상달에는 집집마다 시루떡을 쪄서 고사를 지냈는데, 특히 말날 중에서도 무오일을 상마일上馬日이라 해서 고사를 성하게 지냈다. 이는 무戊와 ‘무성하다[茂]’는 한자가 음이 같아, 말의 무성을 기원하는 마음에서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시루 없는 집이 없었으니 몽시루, 중시루, 큰시루가 고루 갖추어 있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무럭무럭 김이 나는 시루떡이 곳곳에서 제상과 고사상에 올라가고, 찰떡·메떡·수수떡에 콩·호박·오가리·무·곶감·대추 등 여러 가지를 넣어서 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시루떡과 호박고지떡이었다고 전해진다.
전골은 오래전부터 전해오는 시식으로, 화로에 숯불을 피운 후 전철(전골 냄비)을 놓고 쇠고기·생선·송이 등을 얇게 썰어서 간장·후춧가루·깨소금·참기름·설탕·파·마늘 등의 양념에 재워 둔다. 그리고 미나리·숙주·무채 등을 썰어서 살짝 데쳐 물기를 없애 전철에 지지다가 계란을 풀어 만드는 것이다. 이 전골냄비에 몇몇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먹는 것이니 이를 난로회暖爐會라 하고, 예부터 10월 어한禦寒의 시절식으로 유명하였다. 이밖에 만두, 강정 등의 시식時食이 있다.
자료제공 _ 국립문화재연구소 예능민속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