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온 아케히 감독(도에이 애니메이션 감독, 천년여왕 등 다수의 애니메이션을 감독)과 일하면서 인상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입사초기 소위 왕 초보인 시절, 일본 도에이 애니메이션사의 아케히감독님의 작품의 제작 진행을 맡게 되었는데, 워낙 까다롭고 무섭기로 소문난 감독이어서 제작에 들어가기 전부터 초긴장 상태였다. 아케히 감독의 에피소드를 너나 할 것 없이 내게 충고하듯 얘기해 주는 것이었다. 한 컷을 가지고 열번이 넘도록 리테이크(수정)를 내다가 결국은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였는지 본인이 직접 그 컷을 들고 담당자에게 찾아가 설득해서 끝내왔다는 일화였다. 그런 감독의 작품 진행을 아직 왕초보인 애송이가 맡게 되었으니 주변에서 보기에도 안타까웠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충고 반 걱정 반 여러 조언들 듣고 아케히 감독과 대면하게 되었다. 실제로 나는 그 3일 동안 30분 정도 의자에서 겨우 졸듯이 눈을 붙이고 일을 했던 것 같다. 긴장한 탓도 있었고 젊고 건강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3일 동안 뜬눈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 머리는 슬로우 모션의 필름이 지나가는 것처럼 사고가 느려지고, 두 발을 허공에 붕 떠있는 것 같이 감각이 없는 느낌이었다. 오로지 무서운 감독님께 혼나지나 말자는 일념으로 본능에 의지해서 작업에 몰두했다. 문득 이러다 갑자기 죽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조차 들 정도였으니까…. 그러나 막상 악명 높은 감독과의 첫번째 만남은 내 일생 일대의 커다란 지표를 제시해 주었다. 당시에는 꽤 나이가 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카히 감독은 보통 사람들의 3,4배는 되는 일들을 거뜬히 동시에 처리했다.
촬영된 애니메이션의 최종 연출을 점검하는 것이 나와 했던 일이었는데 그 외에도 다음작품의 스토리보드를 짬짬이 그리면서, 이미 진행중인 또 다른 작품의 원화를 체크하는 일까지..정말로 열정적으로 작업하셨다. 그러면서도 작업 중엔 언제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열정적인 감독님을 보면서 나는 더욱더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필름을 현상소에 보내고서 나는 책상에 고꾸라져 깊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눈을 떴을 때, 이미 아카히 감독은 일본으로 들어갔고 내 책상에 명함이 한 장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명함 뒷면에는 수고했다는 짧은 인사말과 함께 감사하다는 말이 적혀있었다. 아직까지도 아카히 감독이 보여주었던 일에 대한 열정과 즐기는 모습은 내게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고, 나 자신을 추스릴 수 있게 해주는 지짓대이다.
아케히 감독은 일본으로 돌아간 뒤 후배들을 호통칠 때마다, 내 이름을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그것은 일을 잘 해서라기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었을테지만, 그 말 한마디가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 처해있던 내게 크나큰 힘이 되었다. 이 사건 아닌 사건을 계기로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몸소 체험했다.
그 후로도 대원에서 다양한 업무들을 진행했다. 1987년도에는 저작권이란 화두가 새롭게 떠오르던 시기였다. 일본에서 저작권을 가져와 법무사를 통해 일을 정리했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걸작 애니메이션, 토토로에 관한 일을 포함하여 직접 발로 뛰며 시장조사와 백화점의 구매담당을 만났다. 그러던 중, 같은 자리에서는 정체될 수 밖에 없다고 여겨져 발전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3D 애니메이션을 배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운좋게도, 대원 사장님의 배려로 일본의 ‘레인보우 조형기획’이라는 회사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그곳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가면라이더블랙’ 등 어린이용 SFX영화용 특수 이펙트 작업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소위 특수 분장을 배우게 된 것이다.
91년까지 대원에서 일하다가 게이브미디어로 옮겼는데 참여한 작품은 무엇이 있는가?
1994년 당시 국내에는 애니메이션에 디지털을 접목시키는 전문가가 국내에 전무했다. 그런데 ‘게이브미디어’란 회사에 새로운 디지털 전문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요청을 받아 그곳을 찾아갔다. 게이브미디어에서는 ‘통통이 삼총사’라는 어린이 영어학습용 비디오 시리즈의 애니메이션 제작 준비가 한창이었다. 2편 분량의 동화가 끝난 컷들이 즐비하게 앵글에 쌓여있었고 단 두 사람이 그림을 스캔 받아, 여러 색상들을 칠해보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 수많은 컷들을 스캔받아서, 어떠한 방법으로 연결과 연출이 이루어질지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황을 보고 마치 운명처럼 그것이 내 일이라고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게 ‘게이브미디어’에 입사하여 디지털 애니메이션 작업을 처음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그 작품이 아마도 국내 최초로 제작된 디지털 애니메이션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불과 2,3년만에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후반 작업에 있어서 디지털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이후, MBC방송국의 ‘귀여운 쪼꼬미’ 시리즈, KBS방송국 ‘TV유치원’의 ‘짱이와 깨모’ 시리즈, SBS방송국의 ‘가스안전’ 애니메이션 등을 필두로 많은 작품들을 작업해왔다.
그밖에 1998년 천계영씨의 HOT 뮤직비디오와 1999년 제일기획의 WOW 풍선껌 CF 등을 제작한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역시 천계영씨와 함께 작업했떤 WOW 풍선껌 CF 에서는 특히, 섬세하고 감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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