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밀어
임해진(臨海津). 경남 창녕군 부곡면 청암리에 있는 이 나루는 내륙 깊숙이 새겨진 바다 자국이다. 지명 그대로, 바닷물이 낙동강을 거슬러 40여㎞ 떨어진 이곳까지 쳐들어왔음을 증언한다. 내륙 깊숙이 쳐들어온 바다는 적이기는커녕 임이자 물고기였고 살림이었다.
바다와의 먼 교섭 자취는 임해진 바로 아래 학포(창녕군 부곡면)에서도 확인된다. 이곳에서 신석기시대 쪽배와 조개무지가 발굴됐다. 바닷물은 장구한 세월을 거슬러 내륙을 넘나들었다.
1987년 하구둑이 막히면서 많은 것이 뒤틀려 버렸다. 바다는 차단되었고 강은 갇힌 꼴이 되었다. 분단된 조국의 강과 바다. 내륙의 강은 바다를 기억에서 지워야 했다. 웅어 역시 수천 수만 년 오르내리던 강길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고도 삶은 계속 되었다.
"대단했지. 잉어 붕어 뱀장어 메기 같은 고기가 막 잡혔어. 낚시는 물론이고 연승 그물로도 잡았는데 무지 올라왔어. 고기 잡아 밥 먹고 집도 지었지."
임해진에서 '물망초 횟집'을 운영하는 김천만(67) 씨는 20여년 전의 일을 어제 일처럼 들려줬다. 그는 펄떡거리는 고기 시늉을 하다가 나룻배의 노 젓는 흉내를 냈다. 강바람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임해진의 마지막 사공이었다.
"여기 나룻배는 강 건너 명촌(창원시 북면)을 왔다갔다 했는데, 바람이 불면 얼마나 고생을 했노. 그 때는 바로 건너지 못하고 위쪽으로 한참 올라가 돌아서 다녔어. 바람에 떠내려갈 걸 미리 감안한거지. 그 나룻배가 1990년 초에 사라졌지 아마."
김 씨는 나루선이 끊긴 계기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임해진 아래 학포에서 발생한 대형 뱃사고 때문이었다. 학포에서 부녀자 8명을 태운 나룻배가 전복, 몰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직후 당국에서 보험 가입 등 나룻배 운행 규정을 강화하자 나룻배 경기는 급속히 시들해졌다. 임해진과 학포, 본포의 나룻배들이 이때 줄줄이 사라졌다.
나룻배가 있던 시절, 임해진과 강 건너 명촌은 한동네 같았다. 함께 모여 수산장을 다녔고 경조사를 서로 나눴다. 김 씨의 부인 김외선(64) 씨도 한동안 나룻배를 봤다고 한다. 그는 강이 변했다고 말했다. "요샌 겨울에도 강이 안 얼어요. 그게 20년이 넘었으니 세상이 변했지. 언 강에는 숨구멍이 있는데 보통 사람은 그걸 잘 몰라. 강이 얼었다고 함부로 가다간 빠져 죽어. 죽는 걸 우리 눈으로 봤응게. 사공은 숨구멍이 어디 있는지를 알지. 얼음길을 안내하고도 배삯을 받았어."
창녕군 길곡면 사등 태생인 김 씨는 열아홉살에 밀양 무안으로 시집 가서 잠시 창원 명촌에서 지낸 것을 빼고는 줄곧 임해진에서 살았다. 횟집을 연 지도 40년을 헤아린다.
창녕 임해진 나루 옆 청학로 벼랑에 있는 상사바우. 죽어서도 못잊어한 남녀의 전설이 서려 있다. | |
임해진은 남지에서 남강을 끌어안은 낙동강이 힘을 키워 크게 굽이치는 지점이다. 그래서 중·상류에서 떠내려온 온갖 것들이 모인다. 박쪼가리부터 세간 살림, 심지어 시체까지 떠내려와 걸린다. 모이는 곳이라 그런지, 임해진엔 부자도 많다고 한다.
임해진에서 강길을 끼고 노리, 학포로 이어지는 1022호 지방도는 운치 있는 강변로다. 이름하여 청학로. 지난 1987년 6월 보병 제39사단 공병단이 2㎞ 산판길을 뚫었다. 길 아래가 벼랑의 연속이어서 경관이 탁 트였다. 동행한 김천만 씨가 설을 푼다.
"저 아래가 용왕이 산다는 곳인데, 깊이가 어른 키로 열 질이 넘고 명주꾸리 하나가 다 들어갔어. 강이 굽이친다고 구멍바우라 캤어. 큰 물이 들면 굴에서 둥둥 북소리가 났지. 그 위의 것이 알바위, 옆의 것이 자라바위, 그 아래 삐죽한 것이 상사바우지."
상사바우엔 이런 전설이 있었다. 옛날 약혼한 남녀가 있었는데 갑자기 남자가 죽었다. 처녀를 못잊어 한 남자가 뱀으로 변해 처녀의 목을 감자, 그의 부모가 낙동강가 바위에 데려와 원혼을 달래주었다. 이 상사바우에선 요즘도 가끔씩 푸닥거리가 열린다고 한다.
임해진에는 '배 띄운 꼼생원' 이야기도 있다. 김 씨의 딸 김숙이(45) 씨가 그 이야길 해줬다.
"임해진 위에 부곡면 굴말이라고 있어요. 옛날부터 부자동네 였어요. 그곳에 자린고비 꼼생원이 있었는데 주민들이 꼬셨대요. '1년간 나룻배만 띄워 주면 비석을 세워준다'고요. 그 말을 듣고 꼼생원이 배를 사서 진짜로 배를 띄웠대요. 실화예요. 그때 세운 비석이 임해진 제방에 있었는데, 몇 년전에 누가 치웠어요."
듣고 보니 미담이었다. 이웃 등쌀에 밀렸든, 비석에 혹했든, 주민들이 소망한 나룻배가 띄워졌으니 말이다. 강마을엔 간혹 예기치 않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웅어의 길
임해진은 옛날부터 웅어가 많이 잡혔고 지금도 그 명성이 남아 있다. 웅어철인 요즘 임해진의 횟집들은 저마다 '봄철 특미'란 문구를 내걸고 손님을 유혹한다. 이 웅어는 부산 하단에서 가져오는데 김숙이 씨가 큰 도매상이다. 김 씨는 마산 양산 삼랑진 남지 창녕 심지어 현풍 대구까지 웅어를 공급하고 있다. 하루 공급량이 많을 땐 400~500㎏에 이른다.
"웅어는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고긴데, 그 성질 때문에 보나 둑에 부딪쳐 많이 죽는다고 해요. 동네 어른들 얘기로는, 임해진에서 웅어가 엄청 잡혔답니다. 하구둑이 들어서고는 얼씬도 안하죠. 그 전통을 도매로 잇고 있으니 임해진에서 웅어축제라도 벌일만하지 않은가요."
'웅어축제'란 말이 귓전을 맴돈다. 저 호기로운 고기의 종생을 기억하기 위해 축제를 연다? 그런데 웅어는 수족관에서 바둥거리고 냉동 창고에서 저홀로 은빛 광채를 뿜을 뿐인데…. 김 씨가 기대하는 웅어축제는 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