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와 영어와 이곳의 인간인 나와의 관계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힘든 언어를 꼽자면 그거야 나라마다 다르고, 인종마다 다르며, 살아온 어족이 어디 속해있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는가? 어떤 것이 더 어려운지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사람들의 의견은 풀죽은듯이 사라지곤 한다.
세계의 어느 곳에 사는 누구에겐가는 한국어만큼 배우기 힘든 언어란 없을지도 모르며, 누군가에게는 영어만큼 배우기 힘든 언어가 없을 것이다.
동양인이 서양의 언어를 배우기란 정말로 힘들고, 서양인이 동양의 언어를 배우기란 정말로 힘들다라고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는 정도가 아마도 한자와 일본어, 영어를 오가면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아닐까 한번 생각해본다.
사람이 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그것이 필요수단이 될 일이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러시아에 온 이상 내가 러시아어를 배우지 않으면, 업무의 진전은 이미 물건너 간 것이고, 이 회사에서 버티고 앉아 있는다는 것도 이미 끝장난 일이 된다.
더 나아가자면, 영어를 그나마 지껄이고 쓰게 된 것도, 막강한 취업의 문 앞에서 영어 실력이나마 좋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든 전공인 무역학과를 졸업해서 나름대로는 필사적으로 지껄이고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기도 하고,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리고 나아가 학문이나 기술지식, 국제화 문서...... 미국의 막강한 영향력 앞에 나와 주위 사람들이 놓여있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러시아어를 배우기 위해 현지에 와서 대화 소통이 가장 용이한 수단인 영어를 배워둔 것이 아직까지 이 땅에 붙어 있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소수 직원이 다수의 현지직원을 현지말도 모르는 상태에서 통제한다는 것은 제스추어와 눈치와 수많은 심리 게임이 요청되는 상황을 야기하기 마련이다.
대화의 벽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바락바락 좀 모자르고 네이티브와는 한참 떨어진 영어를 서로 구사하면서 문대고 살고 있다. 그래도 영어는 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문자이고, 소리이며, 동시에 생활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배웠다고 해도, 러시아어는 나에게 생소하기 이를데 없는 언어이다. 다만 라틴어 계통인 영어를 배워왔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로부터 교육받고 의사소통을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이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우랄 알타이어와 키릴어
우리가 우랄 알타이어족이라면, 이들은 라틴문자를 바탕으로 한 키릴어를 사용하고 있는 민족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러시아어는 매일매일의 비즈니스와 일상 생활에 사용되며, 카작민족의 대다수는 대통령령으로 교육 지시가 내렸음에도, 카작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물다. 바로 이 카작어가 보다 한국사람이나 일본 사람이 배우기 쉽다는 바로 그 우랄 알타이어족의 언어이다.
그렇다면, 카작어는 왜 번성하지 못하고 러시아어만 번성하는가?
교육의 대부분이 러시아어로 전수되니, 이미 어릴적 교육 받은 사람들은 지금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목적어"가 전반부에 "위치하고" 동사가 후반부에 오는 구조의 우랄 알타이어 언어에 쉽게 적응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언어를 배울만도 하지만, 카작어를 배우고 나면 이곳 밖에는 활동 영역이 없는데 반해, 러시아어를 배우면 대륙이 바로 활동 영역으로 변하므로, 죽을둥 살둥 배우고 또 배우고 있다. 영어도 아직 힘들어 죽겠는데, 러시아어까지 떠안고 나니 완전히 다리 힘이 풀릴 지경이다.
빠르게 언어를 배우는 법
나이가 조금 드신 외국을 잘 드나드시는 분들은 이런 말을 곧잘 하곤 한다. "그나라 말을 배우려면 그나라 여자랑 결혼하는 것이 최고라고..." 이곳의 알마티 테크니친스키 대학의 이사예브 교수의 말을 듣고는, 일단 배움에 눈먼 사람들은 "같이 살 동거인"을 찾는 눈이 생길만도 하게 된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회사 시스템 안에 정착시킨 민족이다. 그들이 간 나라에서 직원들을 위한 현지처를 만들지 않은 일례가 별로 없다라고 하니, 여하간 독한 민족이긴 독한 민족이다.
우리 회사는 그러면 허용하는가? 아니...우리 회사는 진짜로 능력을 가지고, 결혼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 회사인 것일까?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을 논한다는 것은 이 고지식한 한국인 청년에게는 왠지 어색한 말과 표현으로 느껴진다.
나의 호기심과 다른 직원의 매력이 작용하여, 올가와 나 그리고 "그"의 삼인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던 것은 2개월 전의 이야기이다. 현지 직원이었던 올가는 "그"에게 매력을 느꼈고, 그와 결혼할 수 있기를 바랬던 러시아 처녀였다. 의례, 이곳에 오는 외국인들이 갖고 있는 경향에 대해서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삼인 동거 생활이 준 비애
이렇게 세명이 아무일이나 연애 관계도 없이 한달을 보내다가 자연스레이 헤어졌다면 웃기는 이야기가 될까? 가난한 그녀가 집도 없이, 우리 아파트에 한달간 기거하다가 다른 집을 얻어 나갔고, 그동안 우리는 얌전한 강아지처럼 그녀로부터 수업을 받아왔다고 얘기하면 어딘가 건강치 못한 남자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까?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덩치도 나못지 않은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기란 그다지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어는 우랄 알타이 어족에 속한 언어의 사용자가 정말로 배우기 힘들어 하는 언어다. 아랍어만큼이나 한국인에게 배우기 어려운 언어가 바로 이 언어였던 것이다. 소통의 가능성이 너무 멀리에 있는 것을 깨달아감과 동시에 천천히 이해가 되지 않는 벽 너머로 서로 고개만 내밀고 이야기 하고 있다는 생각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아르바이트 개인 선생을 고용했다.
한국어를 전공한 반 카작, 반 한인 아르바이트 학생을 고용한지가 이제 한 달 반여가 되어간다. 아무리 머리 싸매고 공부해도 얼음판 위를 걷듯이 앞으로 한발짝 뒤로 두발짝이다. 하나의 동사마다 21개의 변형이 있고, 부사와 명사도 이 변형마다 그 접미사를 달리한다는 것은 한국어의 복잡 다변함을 뛰어넘는 기초적인 장애물이나 그럼에도 너무 높다...
아르바이트 선생인 쌍둥이 자매의 동생인 "지나라" 는 " Я зал вас(당신을 동정합니다.)"라고 한다. "가르쳐보기 전까진 러시아어가 이렇게 힘든 언어인지 몰랐어요"라고 하는 그녀는 자신의 대학교에서 한국어과 수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원이다. 그녀에게는 보다 정확히 어떤 언어가 더 어려운가 판단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
결론은 러시아어는 배우기 힘든 언어라는 사실
이 말을 하려고 여기까지 여러분을 이끌어 온 것을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 러시아어는 연애를 하건, 책으로 공부하건, 초반 장애물부터 심각함이 그지 없는 언어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자존심이나마 유지해보겠다고, 가난한 대륙의 언어따위가 무어냐고 얘기할 처지가 나는 되지 못한다.
뭔가 배울 입장에 있을 때는 쓸데없는 자기 합리화만한 장애물이 또한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 것이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명확히 자신을 얼만큼 무너뜨리고 무지를 인정할 수 있어야만 어느정도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방벽 안에서 치열하게 이미 배웠던 언어로 끊임없이 자신을 감싸다 보면, 타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나친 자의식과 결별하면서 언어를 배우고 있는 순간, 나의 방벽이 어느정도 허물어지고, 천천히 아이같은 순수함이 나를 감싸오는 기분에 젖고 있다. 그러나 비즈니스는 이런 아이같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란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연애란 마음을 저절로 열리게 하는 아주 성능좋은 열쇠이다. 자의식의 고민 속에 잠기게도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배울 때 사랑만큼 커다란 힘을 발휘하여 매진하게 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살곤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여 그 사람을 이해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만큼 사람을 열심히 노력하게 하는 것이 또한 어디에 있을까라는 생각에 동의는 하지만, 이것이 도덕에 대한 길들여짐인지, 아니면, 숙명처럼 내 목에 메달린 멍에인지, 사랑을 도구로 언어를 배우고 싶은 생각은 솔직히 내 안에 없다.
역시, 언어를 도구로 사랑을 한다는 것
이것이 나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만약 이곳에 있는 시간 동안 내가 진정한 사랑을 한번이나마 느끼고 간다면, 아마도 나는 그만큼 이 러시아어라는 것을 배운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사실은 한국어도 사랑을 통해 우리는 더 배울 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버리게 된다. 어쩌면 나의 언어도 더 나아질 수 있었는데, 나의 고국 사랑과 사람 사랑의 나날들이 적어 이렇게 약간은 덜 자란 모습으로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출처: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rome55&folder=6&list_id=4004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