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한 부위를 어루만지며 그 상처도 내 몸의 일부려니 하고 받아들여요”
김광연 씨가 서울 강남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을 하지 않은 지 3개월째다. 전화를 하니 “분당에 있는 아내 작업실로 오십시오”라고 한다. 안정숙 씨의 암투병 이후 처음 갖는 인터뷰라 김씨가 조금 걱정하는 눈치다. 다행히 분당에서 부부를 만났을 때 아내의 컨디션은 좋은 편이었다. 아니, 솔직히 ‘안정숙 씨가 암투병 중인 것이 맞나?’싶을 정도로 쾌활하고 건강해 보였다.
“즐겁게 암투병 중이에요. 항암치료 받으면 힘들다고들 하던데 그런 말들을 많이 들어서인지 여간한 고통은 고통으로 여겨지지 않아요. 그래서 잘 견뎌내고 있어요.”
안씨의 안색이 밝다. 프랑스에 있는 친구가 보내주었다는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은 암환자 같지 않다. 봄이 되면 쓰려고 분홍색 모자도 준비해 놓았다며 안씨가 웃는다.
“원래 항암치료 받으면 병원에서 머리를 다 밀어버리잖아요. 저는 싫다고 했어요. 직접 머리가 빠지는 과정을 경험해보고 싶었거든요. 지금은 머리카락이 몇 가닥 남지 않았어요. 머리카락 빠지니까 남편이 ‘골룸’이라고 놀려요.”
아내가 남편을 살짝 째려본다. 남편 김광연 씨 얼굴에도 웃음이 번진다. “골룸 맞지 뭘.” 김씨는 아내의 암 제거 수술 이후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 곁을 지키고 있다. 그러면서 “암 덕분에 오랜만에 아내랑 붙어 있을 수 있게 되어 좋다”고 말한다. 또 통원치료 중인 삼성의료원이 그들이 살고 있는 수지와 가까워 잘됐다고 하고, 머리를 안 밀었더니 모자 밑으로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흘러 내려와 자연스런 헤어스타일이 연출되어 그것도 잘됐다고 한다. 안씨는 가슴이 원래 작은 편이라 수술로 한쪽 가슴을 절제해도 별로 티가 나지 않아 그것도 괜찮단다. 부부는 무엇이든 잘됐다, 다행이라며 밝은 표정이다. 이것이 그들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고 암을 대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 부부의 사랑은 그동안 방송과 언론에서 꾸준히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은 스무 살, 열아홉에 만났다. 경북대 본고사 시험장에서 처음 만나 10년 가까이 연애를 했고, 결혼 후 남편은 매달 월급을 탈탈 털어 아내를 유학 보냈다. 가난했지만 아내의 미술적 재능을 키워주는 것이 돈 모으는 일보다 더 좋았던 남편이다. 영국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돌아온 뒤 두 사람 수중에 남은 돈은 단돈 500만원뿐이었다.
공부시켜준 남편을 도와 부부는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남편이 시작한 화랑닷컴은 방문 미술교육과 미술교재를 개발하는 곳이다. 아이디어와 교재 개발은 전적으로 아내의 힘이 크다. 부부의 이름이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1990년대 후반 ‘땡이의 그림일기’라는 책 때문이었다. 아내가 그림을 그리고 남편이 글을 썼는데, 아들 정윤이가 나고 자란 이야기다. ‘땡이의 그림일기’가 제법 잘 팔려 밑천을 장만해 사업을 키워나갔고, 지금은 한해 매출 20억원이 넘을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부부는 처음 만난 날 이후 죽 그렇게 한결같은 사랑으로 서로를 대했다. 도대체 부부싸움이라곤 모르고 서로 눈만 마주치면 사랑한다는 말이 툭툭 튀어나오는 부부. 오죽하면 아들 정윤이가 자신만 소외되는 것 같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아내의 마흔다섯 생일 전날이었던 지난해 12월 26일도 마찬가지였다. 다음날 출장을 가야 하기 때문에 미리 생일 축하를 하자며 남편은 와인과 케이크를 사들고 들어왔고, 가족은 즐겁게 저녁시간을 보냈다. 늦은 밤 정윤이가 잡지책에 실린 유방암 기사를 보여주며 엄마도 가슴에 잡히는 멍울 검사를 한번 받아보라고 했다. 그간 안씨는 오른쪽 유방 위쪽으로 커다란 멍울이 잡혀 왔었다. 다음날 안씨는 동네 병원을 찾아갔다. “당장 큰 병원으로 가십시오”라며 의사는 눈으로만 확인하고도 진단서를 끊어주었다. 영락없는 암이었다.
5년 넘기기 힘들다더니
유방암 전문병원에서 조직검사를 실시하자 손으로 만져지는 멍울이 거의 달걀 하나 크기를 넘을 정도였다. 검사를 한 의사는 “암세포가 이 정도까지 크게 자랐으면 몸에 전이가 되었을 것입니다”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통계상의 수치로 볼 때 5년을 넘기기 힘든 지경이라고도 했다.
“검사 받고 나와 병원의 9층 창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데 수많은 생각이 제 머리를 스쳐 지나갔어요. 이제까지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해했는데 내가 정말 그런 지경에 처했구나 싶었죠.”
안씨는 당황하거나 무섭기보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당장은 내년 미국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을 마감해야 하고, 남편의 회사일 때문에 잡혀 있는 교재 개발과 강의 준비부터 해결해야 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더 빨리 일을 마무리하겠다는 생각 뒤에는 남편이 떠올랐다. 25년 동안 자신에게 한없는 애정을 베풀었던 남편이다. 후일담이지만 안씨의 유방암 소식을 들은 친정어머니도 “김 서방 불쌍해서 어떻게 하느냐”는 말을 제일 먼저 했다고 한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안씨는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살면서 큰 행복을 누린 것 같아 지금껏 살아온 삶도 고마웠다. 다만 혼자 남을 남편이 안쓰럽고 걱정됐다.
김씨는 아내가 암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유방암 권위자가 누구인지 찾아 입원 수속을 밟았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다.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병원, 제일 훌륭한 의사 선생님을 모셔와서라도 고쳐줄 테니까 나만 믿고 걱정하지 마.”
김씨는 최악의 상황은 상상하지 않으려고 했다. 고칠 수 있다, 살릴 수 있다는 말만 혼자 속으로 되뇌면서 아내에게 덤덤하게 대했다. 그러나 함께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아파트 현관 입구의 버튼을 누르려고 섰는데 번호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여러 번 눌러보아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떨지 않는 척, 괜찮은 척했지만 마음의 혼란스러움은 감출 수 없었다.
더 사랑하며 살리라
“유방암이 위험한 까닭은 림프와 가깝기 때문이래요. 림프로 전이가 되면 온몸으로 암세포가 번지는 게 순식간이거든요. 그런데 저는 암세포가 거의 4~5cm가량 되는데도 전이가 하나도 안 되었다더군요. 왼쪽 겨드랑이 밑에 있는 림프를 3분의 2 정도 제거했는데 너무 깨끗하다고 했어요.”
병원은 물론 김씨 부부도 놀랐다. 의사는 기적이라고 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지옥과 천국을 오간 셈이다. 부부는 그때부터 항암치료 열심히 받으면 건강해지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병을 알게 된 뒤에 그동안 너무 행복하게 살아서 이런 시련을 겪게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깨달았어요.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옆에 있는 이 사람한테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어도 모자라겠다 싶었죠. 살면서 남편한테 받은 게 너무 많아서 다 갚고 가라고 이만큼만 아프게 해주신 것 같기도 해요.”
안씨는 환하게 웃으며 남편의 손을 잡는다. 요즘 두 사람은 거의 24시간 붙어 지낸다. 남편은 사무실을 나가지 않고 아내 곁에서 손과 발이 되어준다. 병원에서도 함께 병실에 누워 잠을 자고 간호를 했다. 아내가 잠들었을 때는 유방암 관련 책자와 논문을 뒤적이며 유방암 자료를 섭렵했다.
“유방암을 앓은 환자들한테 우울증이 많이 오거든요. 여자에게 가슴은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니잖아요. 아내는 오른쪽 유방 하나를 잘라냈는데 오른쪽 겨드랑이부터 명치까지 커다란 수술 자국이 남아 있어요. 괜히 마음 흔들리고 힘들어 할까 봐 걱정이 컸죠.”
남편은 아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조금이라도 오래 있으면 무슨 일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을 졸였다. 오히려 아내가 더 씩씩하게 병을 이겨냈다. 수술 끝나고 다음날부터는 독일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병실에서 함께 사무엘 존스의 자조론이나 법정 스님의 수필집을 읽으며 인생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퇴원하고 난 다음부터 남편은 아내 작업실로 나와 아내 옆에서 전화와 인터넷으로 일을 한다. 함께 점심을 만들어 먹고 시간이 나면 배드민턴을 치거나 가까이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나간다. 항암치료를 이기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주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괜찮지만 항암치료 받고 난 뒤면 시체처럼 누워 있어요. 다행히 구토 증세가 없어 밥도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죠. 그래서인지 회복도 빠른 것 같아요.”
“당신 죽으면 새장가 가야지”라며 농담을 하던 김씨는 아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전보다 더 사랑하며 살리라”고 다짐한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 안씨는 남편이 옆에 없자 “남편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편 슬프지 않게 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놓는다. 두 사람의 밝은 모습은 자신이 아닌 서로를 위한 것이었다.
암과 대화를 나누어라
“항암치료를 받고 오면 온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요. 약 성분이 땀구멍을 통해 몸 밖으로 빠져나오기 때문이죠. 저는 제 몸과 대화를 나눠요. 항암제야, 내 몸에 들어와서 할 일 다했으니 이제 그만 나가라 하는 식이죠.”
안씨는 투병 일지를 매일 쓴다. 항암치료를 받은 뒤 상태는 어떠했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몸이 편해졌는지 등을 적으면서 몸의 변화를 관찰한다. 몸은 아프지만 마음만은 아프지 않다. 즐거운 일, 하고 싶은 일,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도 모자란 인생이란 것을 그는 시한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알았다. 걱정하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항암치료 받은 다음에는 푹 자고 나서 운동을 해요. 그 다음에는 반신욕을 하는데 그러면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르면서 항암제 냄새가 더 심해져요.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니까 멀미가 날 것처럼 메슥거리던 속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입맛이 돌아요. 남들은 못 먹겠다고 하는데 저는 매일 먹고 싶은 게 생각나서 더 잘 먹고 있어요. 어머니가 해주는 육개장도 먹고 된장도 많이 먹어요.”
유방암 수술을 받은 여자들 중에는 수술 이후 몇 년이 지나도 자신의 가슴을 한번도 보지 않았다는 이들도 있으나 안씨는 거울을 보며 수술한 부위를 어루만지고 그 상처도 내 몸의 일부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마음에 불편한 구석을 두고 살면 그것이 다 병이 되는 것 같다고 안씨는 말한다.
“이제 2차 항암치료까지 받았어요. 앞으로 네 번 남았죠. 항암치료를 다 받고 나면 함께 여행을 다니려고 해요. 이 사람 처음 만났을 때 ‘저 여자와 결혼하면 내 인생의 50%를 성공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는데 더 무엇을 바라겠어요.”
부부는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다. 서로가 함께 있을 수 있어 감사하고 병 때문에 서로의 소중함을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어 감사하다. 암투병은 힘들지만 둘이 같이 있어 고통은 절반이고 행복은 수십 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