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26편> 꿈꾸는 것 같은 포로귀환, 웃음과 찬양이 가득한 구원의 기쁨, 큰 일을 행하신 여호와, 눈물로 울며 씨를 뿌려라. 기쁨으로 거두리라
1. 말씀배경
시편 126편의 배경은 바벨론으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포로생활에서 귀환하는 내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 (렘 25:11-12, 29:14, 슥 1:12), 아모스 선지자 (암 9:14), 스바냐 선지자 (습 2:7)들을 통하여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것을 예언의 말씀으로 주셨지만 현실적으로는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독립운동해서 해방될 것도 아니고 힘을 길러 독립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자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로 포로 귀환이 이루어지자 그들은 꿈을 꾸는 것과 같았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웃음이 넘쳤고 찬양이 넘쳤고 큰 일을 행하신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정치적 여건은 마련되어 있었으나 70년 동안 이루어 놓은 포로지에서의 모든 것을 버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여건은 돌아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인거죠.
마치 하나님께서 누구나 구원의 길은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으로 엻어 놓았지만 개인적으로 세상이 좋아 이런저런 이유로 주님께 돌아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포로지에서 귀환한다는 것은 이스라엘 땅에 모든 것이 준비가 된 것이 아니라 마치 척박한 땅에 씨를 뿌려야 하는 상황과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씨가 날지도 안날지도 모르는 땅에 씨를 뿌려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일부는 포로지에 그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저자는 그들도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기를 간구하고 있고, 이미 잡족들이 살고 있는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서 마치 울며 씨를 뿌리는 농부와 같이 씨를 뿌리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영적으로는 죄의 포로에서 해방되어 구원받는 백성들과 세상에 삶이 좋아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시 126편이 기록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올라가면서 이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2. 시편 126편
1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바사의 고레스왕의 칙령 (BC 538, 에스라 1:1-3)으로 포로지에서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됩니다. 3차에 걸쳐 포로로 잡혀갔는데 귀환도 3차에 걸쳐 일어납니다.
1차는 BC 537년, 2차는 BC 458년, 3차는 BC 444년입니다.
강대국 바벨론이 메사-바사 연합군에게 그렇게 쉽게 무너질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니 고레스왕을 등장시켜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즉위 원년에 그의 마음을 감동시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할 뿐만 아니라 성전까지 건축하게 했습니다 (대하 36:22-23, 스 1:1-3)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꿈만 같았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이런 꿈만 같은 일을 하신 분이 바로 여호와임을 노래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레스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44:28]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이사야 45:1]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 오늘 말씀에서 실제적으로 바벨론에서의 포로 귀환이지만 영적으로 본다면 믿는 자들을 붙잡고 있는 사탄과 귀신에서의 해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사탄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포로가 된 줄도 모르고 그들속에서 함께 정착하고 살고 있습니다. 마치 바벨론 포로 생활에 익숙해져서 본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곳에 정착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말입니다.
더러운 영들에게서 우리들은 해방되어야 합니다.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해방입니다. 곡식단을 안고 기쁨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그러면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사탄과 귀신들에게 붙잡혀 있는 모습에 익숙해지면 안됩니다. 다시 횝복되어져야 합니다.
2절, 포로에서 돌아올 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감정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혀에는 찬양이 찼다는 것입니다.
※가득하다 (말레,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 가운데 충만하다 할 때에 사용된 단어)
찬양이 찾었도다가 ”린나“인데 ”울리는 외침“입니다. 그러므로 큰 소리로 함성을 지르며 외치는 모습인 것입니다. 당연히 큰 소리로의 찬양도 포함될 것입니다.
웃음과 외침 소리가 그 입에 혀에 가득찼다는 것입니다. 미완료형이므로 계속 그랬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으면 그러했겠습니까?
그리고 뭇 나라들도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아도 이런 해방은 불가능한데 하나님께서 큰 일을 행하셔서 이루어졌다는 고백입니다.
※ 큰일 (가달, 위대한 일, 대사)
죄에서의 해방, 사탄의 묶임에서의 해방은 바로 이런 기쁨인 것입니다.
웃음, 기쁨은 구원 받은 자들의 외형적인 모습인 것입니다. 항상 심각한 사람은 뭔가 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
3절, 다른 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와께서 이루신 큰 일에 대하여 기쁘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행하셨다“는 원어가 ”아사“입니다. 이 단어는 창 5:1절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에서 사용된 단어입니다. 인간을 하나님 형상대로 지으실 때 사용된 단어인 것입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히, 바라) 그리고 형상대로 다듬은 작업 (히,아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 포로에서의 해방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원래의 모습대로의 회복인 것입니다. ”이루셨도다“로 번역되면 더 정확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영적으로는 사탄에게 잡혀 형상을 잃은 그들을 사탄의 포로에서 해방시켜 하나님의 형상대로 복구하는 작업인 것입니다.
”아사“의 회복이 있을 때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4절, 4절부터는 명령형으로 간구를 하고 있습니다.
”돌려 보내소서”는 돌아오게 하소서, 회복시켜 주소서의 뜻이 있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않는 포로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배경에서 말씀을 드렸듯이 70년 동안 정착해 살던 곳을 떠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마 1세대에서 1.5~2세대들이 함께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언어도 바벨론 언어를 많이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생활입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간다고 해도 당장 집이나 땅이 보장된 것도 아닙니다. 다시 짓고 일구어야 하는 환경일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는 많은 유대인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순례자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돌아 올지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포로들이 마치 남방 시내들 같이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남방 시내들은 남방지역인 네게브 지역 시내, 수로, 통로를 말합니다.
평소에는 계곡에 물이 흐르지 않다가 비만 오면 급속이 불어나 계곡을 가득 메워 흐르는 와디를 말하고 있습니다.
고토로 돌아오는 포로의 행렬이 마치 계곡에 물이 불어 흐르듯이 흘러 돌아오라는 간구인 것입니다. 오늘날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언젠가는 와디가 가물은 땅에 흐르듯이 믿지 않는 자들이 물밀 듯 밀려오는 대추수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5절, 5-6절은 같은 내용의 반복입니다. 그만큼 간곡한 것입니다.
4절에서 그들이 돌아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돌아오도록 촉구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는 것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오래동안 경작되지 않는 땅을 다시 기경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땅은 온갖 잡초와 초목이 무성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반드시 기쁨으로 곡식을 거두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안주하며 편하게 바벨론 땅에서 지낼 수 있지만 바벨론은 멸망의 땅입니다. 언젠가는 불타 없어지는 땅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 앖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땅으로 돌아가면 당장은 힘이 드는 상황이지만 기쁨으로 거두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눈물을 머금고 씨를 뿌리면 뿌리라고 하시는 이가 여호와이시니 싹이 나고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경작하시고 보호하시는 영적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6절, 5절과 동일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쁨으로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현실적인 환경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판단을 가지고 행동을 합니다. 불확실하면 하지를 않습니다.
포로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을 버리고 가기가 아깝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해 돌아가라고 말씀하셨으니 말씀대로 가야합니다. 가서 그곳에서 다시 일구는 것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매 반드시 곡식단을 거둘 날이 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본다면 현실적인 것들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가라 하는 곳으로 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땅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곳이 있어야 할 곳입니다. 기업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영적 예루살렘이 있는 곳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함께 묵상하는 모든이에게 묶임에서의 해방의 기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큰 일를 행하심으로 해방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구원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기쁨으로 곡식단을 거두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