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옥 현대시 카버스토리
시간의 두루마리에 그려진 기억과 시들
1. 어린 시절의 추억
파스칼의 잠언에 '마음은 이성이 전혀 모르는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라는 말이 있다. 안정옥 시인의 경우에도 마음은
'이성이 전혀 모르는 자신만의 이유로' 시인이 된 경우가 아닐까. 이 글을 쓰기 위해 안정옥 시인의 시집을 4권을 읽어보면서
느낀 소감이다. 안정옥 시인은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성.대전에서 성장하고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0년 『세계의 문학』겨울호에 「쎄울 쎄울」을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세계사에서만 시집 4권을 상재했는데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1993),『나는 독을 가졌네』(1995),『웃는 산』(1999),『나는 걸어다니는
그림자인가』(2003년)이다. 시인들이 지천으로 넘쳐 나서 등록된 시인만 만 명에 육박하고 미등록 시인까지 합치면 이만 명이
된다는 통계가 있다. 시인 인플레시대이지만 한 개인이 시인이 되는 이유는 나 같은 운명론자는 그 필연의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안정옥 시인과의 개인사를 돌아보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안정옥 시인이 유년을 보낸 대전 대흥동에서 안 시인과 나는 바로 백 미터 거리의 한동네에서 살았다. 동네 대흥초등학교는
중학교 진학률로 대전의 명문이었고 나와 안시인의 친구인 송계헌시인(심상,1989년등단)이 이 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의사를 하고
있는 안시인의 동생 안호원이 대흥초등학교 시절 내 친구였다. 지극히 내성적인 감수성이 있는 친구였는데 약간 말을 더듬고 친구를
가리는 성격이었다. 비슷한 성격의 나와는 의기투합해서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보문산을 올라가곤 했다. 산에 올라가서도 바위에 같이
누워 하늘의 구름과 나무를 보거나 침묵한 채 햇빛과 바람을 보며 노는 일이었다. 번잡한 성격의 아이들이 싫었던 나는 안호원을
찾아서 일요일마다 안정옥시인의 집을 찾아가서 대문을 두드렸다. 당시 여중에 다녔던 안시인의 회고에 의하면 일요일에 낮잠을 잘만하면
동생을 부르는 내가 귀찮고 성가신 아이라는 생각으로 대문을 따 주었다고 한다.
대흥동에서의 추억을 하나 더 이야기하자. 우리집과 안정옥시인의 집은 일제시대부터 내려온 도지사관사를 바로 이웃하고
있었다. 한 면이 백 미터가 넘는 담장이니 집과 정원의 규모가 상당했다. 정원은 가시철망이 있는 높은 담장이 있어서 들여다볼 수가
없었고 나무로 된 쪽문의 틈으로 관사의 정원을 간신히 들여다 볼수 있었다. 나에게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고 나도 커서 저런
집에서 살리라 생각했다. 도지사관사와 사택들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가난한 집도 많았던 우리 동네에서는 안 시인 집은 부자 집으로
통했다(우리 집은 가난한 집에 속했다). 안 시인의 부친은 도립병원에서 근무한 약사이었고 내 기준으로는 안정옥시인은 문화혜택을
받고서 자란 공주님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동네의 노란 뽀족 지붕의 서양식 집은 외할아버지 집이었으며 친할아버지는 서울의
변호사였고 아버지와 삼촌들은 다 서울대출신들의 수재집안이었다 한다. 자유분방의 피가 흘렀던 안 시인은 이런 경직된 집안분위기가
싫었고 마음 고생이 심했다 한다.
안시인의 가족이 서울로 이사가면서 안호원과의 추억이 마음속에서 깊이 묻힐 무렵 그 당시 대학생이 된 안정옥시인이 우리
집을 찾아온 기억이 난다. 동생인 안호원의 부탁으로 나의 안부를 묻고자 온 경우였는데 나는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고 안정옥 시인은
성장한 모습의 미인처녀였다. 두 사람이 모두 나중에 시인이 되리라고는 까마득히 모른 채 세월이 흘러갔다. 이 당시 안시인은 시인이
되기 위한 문청수업의 시절을 보내고 있었음이 다음 시로 확인된다.
2.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
대전을 떠나면서 부드럽던 땅이여 잘 있거라
돌아보던 역의 모퉁이
거대한 도시 나는 혼란스러웠네
도시에서 살면서 촌놈이 된 내가 남는 시간
깊이깊이 빠졌네
세상은 무엇이었던가
대학에 두해 미끄럼 태우고
거리에 나를 쑤셔 박아놓고 나는 사라졌어
부유하던 시간들이 오래일수록 나는
내 자신에게 돌아올 수가 없었지
돌아가지 못하던 겨울
몇 십 년만의 폭설이 와주던 밤
나는 그에게 갔네
난롯불 지글거리던 여왕봉 다방 순간들은 정지되었고
함몰되어갈 내 첫사랑 회임 했네
눈물의 울타리에 그를 가두고 아직 보내지 못했지
음울한 날들도 꽃은 올 줄 알았던가
사월
시를 쓰면서 수업이 끝나면 우리들은 길음동의 허름한 술집
무거운 이야기 안주 삼아 폭주를 했지
그런 밤이면 더럽던 개천을 끌어안았어
다리 끝에 서면 떠돌이별이 그득
젊음은 유기 되어가고 세상엔
거져 알게 되는 것
쉽게 오는 것 아무것도 없었어
(「시내림 2 」전문,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
청춘만큼 화려한 시절이 있을까. 나도 대학시절에 지독한 첫사랑의 열병이 앓은 기억이 있었기에 안 시인의 첫 시집에서
보이는 열정과 사랑의 방황들이 내 몸의 병으로 다가왔다. 몸이 약해서 안시인처럼 폭주는 못했으나 이상이라는 술에 취해서 현실을 눈
아래 보는 시절이었으니 사랑과 결혼이 현실이라는 수족관 안의 금붕어였음이 보일 리가 없었다. 내 경우에는 수족관의 현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직장을 잡고 첫사랑의 열병이 끝난 시기였으나 안 시인의 경우는 중년이 되어서도 사랑의 불길이나 환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가 보다. 하긴 누가 이 문제로부터 정말로 자유롭겠는가. 더군다나 가슴의 심장이 남다른 에너지로 가득한 시인들이.
많은 남자 중에 당신은 내게 반사되고
나는 당신에게 반사되어
달척지근한 상상 버려두고 우리는 끝났다고 했지
끝남이 살아서 오늘 그대는 젊은 그대는 검은 코트를 입고
나를 보내거나 명동의 주점에서 인생은 어쩌고 저쩌고
인생은 이십 년 지난 지금도 어쩌고 저쩌고가 아닌데
명동 길을 쫓기듯 걷다 젊은 남자와 부딪치면 나는
나의 두근거림은 발자국이 되어
젊은 그대가 되어서 가까이 오고
나는 천천히 걸으며
그가 가까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더욱 천천히 가면서
더욱 천천히 가면서 돌아본다
내게 안겨드는 건 차가운 바람 차가운 겨울 바람
그러면 나는 돌아서서
이십 년 뒤에 선 나를 흔들어 깨우며
내가 언제 참 인생을 알 것인지
다시 한 번 지금도 인생은 어쩌고 저쩌고일 거야 하며
이십 년 앞서가고 있다
그러면 젊은 그대는 검은 코트를 입고 이십 년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젊은그대」 전문, 『붉은 구두를 신고 어디로 갈까요』)
교통법규를 무시하거나 가속도와 운동의 법칙을 모르면 교통사고로 뼈가 부러지고 피가 흐른다. 사랑의 법칙을 알지 못하면
인생을 허비하고 마음을 다친다고 한다. 오죽하면 생노병사의 4苦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지 못하는 고통이 5苦라는 말이
생겨났겠는가. 사랑의 법칙이라. 에릭.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미리 공부했더라면 인생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에릭.프롬은 '사랑은 자연이 준 천부적인 능력이므로 우리가 느끼는 대로 행동하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반사람들을
비판한다. 그는 사랑의 어려움이 앎과 실천의 문제가 아니고 '사랑할-또는 사랑받을-올바른 대상의 발견이 어려울 뿐'이라고
생각하는데 함정이 있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건축가와 의사들이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듯이 사랑도 앎과 실천이 필요하다고 한다.
시인에게도 해당하는 말일까? 시인들은 선천적으로 사랑의 전문가가 아닐까. '시적 본질은 사랑의 본질과 잘 어울린다'라는 견해가
있듯이 대상에의 동경과 가슴의 두근거림은 사랑을 낳기도 하고 시를 낳기도 한다. 안 시인의 사랑은 패배에 가 있으나 이는 시인들의
숙명이다. 단테가 베아트리체의 사랑을 얻었다면 『신곡』이 쓰여지지 않았을 이유처럼 안 시인이 사랑에 성공했다면 이 시들은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 시인이 사랑을 몰랐다고는 하기 어렵다. 현실에서는 패배했으나 현실의 굴곡을 모두 거쳐서
자기반성과 승화로 시적인 고통과 기쁨을 만들어 냈다. 시적 사랑이 일상인들의 권태와 실망 적대감으로 끝나는 현실사랑보다 생명이
길지 않을까.
3.나는 독을 가졌네
사랑에 대한 집착은 사람에서 대상을 얻지 못하면 사물에 대한 Fetish로 발전한다. 나같은 경우는 오디오에 빠져 오디오
공부로 한 시절을 보냈으나 안정옥 시인은 그 시기에 낚시에 빠져 물고기에 관한 공부를 했다. 낚시와 물고기 이야기로만 엮은
시집이 제 2시집 『나는 독을 가졌네』이다. 물고기로만 주제를 엮은 시집은 이 시집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내가 보기에도 이
시집은 독특한 시집이다. 시집 서문에는 물고기 시들을 쓰기 위해 최기철의 『한국의 물고기』『민물고기를 찾아서』,이일섭의 『바다
낚시 교실, 김홍동의 『루어낚시의 매력』송소석의 『붕어 낚시』들을 참고했다고 쓰고 있다. 나로서는 생소한 분야이며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들이 있었지만 내 생각에 가장 안 시인의 자아가 가장 잘 투영된 다음 시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독을 가졌네
복숭아꽃 피면 독이 퍼져 내 가까이 아무도 오지 않네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단 한번 강으로 가서 사랑을 하고
바다로 돌아왔네 따스한 봄날 사랑은 그것으로 끝나 나는
다시 강에 나가지 못했네 다시는 사랑을 보지 못했네
복사꽃 바람 따스한 강물 그런 것만 남아있네
그 후 나는 변했네 낯선 이를 보면 비명을 지르며
배가 부풀어지고 날마다 화를 키우며 자라네
사람을 죽이는 마음 내 몸 속에서 커가네
그 사람 그것을 알게되면 봄을 외면하고
변변히 사랑을 모르던 그 사람 죽여서 풀섶에 뻣뻣해지면
모래로 사랑 덮어버리고 아무로 모르게
눈물 한 자루 뽑고는 시치미 떼며 바다로 돌아갈 것이네
내 몸에 그런 黃 있었네 이제 서서히 전멸되어 가는
강의 하구를 막아 길마저 없어진 나는 저 두터운 둑을 넘지 못하네
(「황복어」전문, 『나는 독을 가졌네』
물고기 시들을 보면서 다음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애착을 가진 동물들은
대개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 포유동물들이다. 뱀, 도마뱀 거북이의 파충류는 아니지만 물고기는 다소 독특한 취향의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다. 인간의 설화에서 물고기들은 인간과 좋은 관계를 맺는 人魚나 자라로 등장한다. 독을 가진 황복에 자아를
투영한 것은 안시인의 독특한 세계관이다. 사랑이 증오로 변한 상징으로서의 황복의 독은 좋은 비유장치이다. 독은 세계와 사랑을
거부하는 힘이자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제공하지만 독은 화자의 자아를 폐쇄시켜 다시 세계라는 바다로 돌아가는 둑이 막힌 상황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fesish란 대상에 자아를 투영하지만 그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공물이요 대체물이다. 시도 주술이며 자의적인
약호(faictice)에 머무는 한 fetish의 일종으로 타락한다. 시가 실재하고 관계할 때 시의 정신은 힘과 생명을 얻는다.
실재가 아닌 대상물서의 안시인의 물고기에 대한 집착과 그 회한이 드러난 시가 다음의 시다
둑방 위로 낚시꾼들이 지나가는 걸 맞은편에서 바라보니 해는 곧 가버려 양쪽의 산들은 그림자만 만들고
물 속에도 산 그림자 떠올라 커다란 입술 같은데
가로등과 가게의 불빛이 치아처럼 반짝이고 가을바람에 오싹해지는 저수지의 밤은 몇 시간 입질조차 없는
그래도 부지런히 떡밥을 갈아주지만 물이 차가워 떡밥은 잘 녹지 않고 어디서 왔는지 꼬리 흔드는 둑방 위로
초생달 날아와 누런 몸체를 살랑대며 물위에서 놀고
다시없는 월어를 떡밥 떼어버리고 훠 던지니 잡히지 않고 도망갈 생각도 않는 그런 월어에게 계속 투척하는데 초생달이 저렇게
아름다운지 밤은 저 혼자 머쓱해져 투덜거리며 무슨 새인지 청승맞게 울어대는 멀리서 개가 컹컹거리니 이 마을의 개도 따라 컹컹거리는
그래도 월어는 잡히지 않고 월어를 잡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까닭도 없이 헛손질로 새벽은 오는데
덜덜 떨면서 어서 월어가 날 잡아주길 쓸쓸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월어」전문,『나는 독을 가졌네』)
월어가 어떤 물고기인지 문외한인 나는 감이 안 잡힌다. 월어는 화자가 기다리는 대상물이자 기표이다. 시에서는 여러 기의가
가능하지만 시인의 사랑으로 이야기를 끌어왔으니 통일성을 위해 마음의 아니무스를 드러낸 것으로 이해하자. 아니무스는 현실에서 잡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아니무스란 모든 여성이 체험한 이상적 남성성의 원형이지만 영웅이나 현자등 사회적 이상의 이미지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서양의 우화처럼 '개구리 왕자'나 '야
수'의 이미지로 나타나기도 한다. 안정옥 시인의 경우는 '월어'이나 그 월어는 현실의 월어가 아니기에 잡을 수
없다(잡았다면 이 시는 월어를 잡은 승리와 기쁨의 시가 되어 시의 아름다움은 반감되었을 거다). 그 슬픔을 안 시인은 "새벽은
오는데 덜덜 떨면서 어서 월어가 날 잡아주길 쓸쓸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로 표현한다.
4. 웃는 산
활화산같은 인생의 정열도 중년이 되고 나이가 들면 마음의 수면아래 고요히 타오르는 불이 된다. 1999년에 발간된 『웃는
산』은 안정옥시인이 사십대 후반에 쓴 시들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이 자연으로 향한 시들이 내게는 눈에 띄웠다.
안정옥시인과 이십 여 년 만에 시인으로 재회한 것은 대충 이 시점인 것 같다. 나는 시를 접고 다른 세계에 빠져 있을 때여서
「시힘」동인 모임을 제외한 일체의 시 행사나 문인들을 사양하고 있을 때이다. 한국시인협회 행사가 보령대천에서 있었다. 지방에서
열리는 행사이니 충청도의 좌장인 나태주시인이 참석률이 신경이 쓰였는지 간곡히 청하여서 지방시인의 주인 자격으로 참석을 했다. 이 때
원구식주간도 얼굴을 처음보고 지면으로 보던 유안진,신달자 시인들도 처음 보았다. 돌아가신 이문구 선생님이 유안진 선생님을 얼굴을
붉히면서 좋게 말씀하시던 이야기도 현장에서 들었다(이런 얘기 해도 되나? 유안진 선생님도 알고 계신 내용이니까...). 여자
방면은 취향이 다소 담백한 나에게도 안정옥 시인은 사십대 후반의 미인시인이었다. 가슴에 묻었던 안호원과의 우정이 상기되었고 동생의
친구이자 시인으로서 안시인은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버스이동시간에 사회자가 억지춘향으로 시켜서 노래도 한 곡 부른 것 같은데
안시인은 고개를 돌려 웃고 있었다. 시인으로서는 흥겨운 자리일 수도 있었으나 '음악은 비탄이요 춤은 난심亂心이다'라는 석가의
가르침에 매혹되어 있어서 나는 어색하기만 했다. 안시인의 시를 다시 살펴보기로 하자.
진지한 사랑으로 몸을 떠는 푸른 식물이 있었네
그 사람 발소리 들리면 줄기를 들어올리며
팔을 뻗는다네 그 사람 잠깐 멈추었다 곧 간다네
그때마다 푸른 식물은 방향을 바꾸며 줄기를 굽히며
그에게 반응을 전하고 싶었네
푸른 식물이 사랑이 점점 진지해질 때 그는 고개 숙여
꽃을 들여다보네 그 경의는 남보다 오, 오래 피었네
푸른 식물이 시들어 흔적만 남아 적막해도
그는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어 주었네
보여줄 것이 없어 푸른 식물은 거칠어지네 하지만
다른 식물보다 더 많은 열망을 간직한 푸른 식물은
남보다 일찍 봄을 깨우네 왠일인지 그는 가까이 오질 않네
다른 사람들이 발소리뿐이네
그러나 오랫동안 오지 않아도 푸른 식물은 그를
더욱
진지하게 사랑하네 다른 도시에 가 있거나
혹은 세상에 없다 하여도
푸른 식물은 그와 유대를 계속하고 있다네
(「푸른 식물」전문, 『웃는 산』)
안시인의 자아는 잡아야 하는 물고기가 아닌 "진지한 사랑으로 몸을 떠는 푸른 식물"에 가 있다. 화자의 사랑은 손으로
붙잡아야 하는 획득이 아닌 식물의 조용한 기다림으로 변화된다. 그러나 마음의 열정은 여전해서 "다른 식물보다 더 많은 열망을
간직한 푸른 식물은/남보다 일찍 봄을 깨우네"라는 인식을 드러낸다. 그러나 안시인의 아니무스는 여전히 멀리 있는 상대이며 "다른
도시에 가 있거나/혹은 세상에 없다 하여도/푸른 식물은 그와 유대를 계속하고 있다네"로 드러나는 환상의 존재이다. 보통 시인들의
시가 다 그렇지마는
안시인의 시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랑의 결핍이다. 성장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왜 좋은 가정의 안시인이 결핍을 가지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안시인의 단편적인 이야기로 추측컨대 집안은 오빠나 남동생들의 교육위주였고 여자들은 차별을 받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자존심과 자아가 강한 안시인이 상처를 받았을 것도 같다. 내 추측이지만 그러한 사랑의 결핍을 안 시인은 가족이 아닌
타자(아니무스)에 의존하였고 시를 관통하고 있는 모든 정서의 상처와 위험은 아니무스와의 소통부재로 나타난 것 같다. 그러나 조금 더
넓게 해석해보자. 시인으로서 현실의 배우자나 연인에게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현실에 만족한 사람은 시인이 될 수
없다. 시인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이상중독자들이며 사랑과 경외의 대상은 언제나 초월시간에 가 있다. 시가 종교와 같은 속성을
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꽃이 뛰어났다 주위에서 그 꽃밖에 없었기에
꽃이라 부르는, 오랫동안 그 꽃은 누구에게나 매료되었다
그 꽃 시들어 근처 빛깔이 좋은 꽃이 피었다
꽃이 되려는 무리들은 아래쪽에서 조용히 모여 있다
다시 시들어 또 다른 무리 꽃들이 그곳을 넓게
차지한다 거듭 그렇게 다른 식물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렇게 변한다 꽃들이 소멸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들의 생식기관인 꽃을 두려움 가득
내려다봐라 가루받이를 하며 다음 세상에 조심스럽게
내려오려는 그래서 더욱 크고 향기 뛰어난 꽃이 끊임없이
핀다 지금도 피어나고 있다 나는 활짝 피어 있다
그런데 좀 오래 전에 핀 것 같다 시시각각으로 그렇게
변하고 있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가득 채울 수 없는 희망을
가지고 머문다 내 바로 아래 풀숲에서는 또 다른 꽃이 되려는
무리들이 조용히, 전혀 모르게 꼼지락 꼼지락 거린다
(「좀 오래 전에 피어난」전문, 『웃는 산』)
여자로서의 안시인은 꽃을 빌려서 자신의 자아가 피어나고 시들고 있는 상황을 드러낸다. 화자는 다른 꽃들이 피어나 자신을
대체하려는 자연의 질서를 담담한 시선으로 본다. 옛날의 시선이라면 격렬한 저항과 투쟁으로 운명의 사랑을 쟁취하려는 분노를 드러냈을
법도 하다. 자연의 질서를 수용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가득 채울 수 없는 희망을/가지고 머문다"는 시인의 소망은
여전하다. '좀 오래 전에 피어난' 꽃이지만 화자는 아직 꽃이기 때문이다. 꽃이라는 비유를 들었지만 안 시인의 무의식에는
여자로서의 자아에 대한 자부심이 겸손한 시선으로 들어가 있는 시다. 꽃들이 계속 피어나고 '가루받이를 하며 다음 세상에
조심스럽게/내려오려는 그래서 더욱 크고 향기 뛰어난 꽃이 끊임없이/핀다'라는 인식의 표현이 그렇게 보인다.
5.나는 걸어다니는 그림자인가
안정옥시인의 4번째 시집 『나는 걸어다니는 그림자인가』의 시집 출판기념회가 세계사에서 나온 다른 시집2권과 합동으로
서울에서 열렸다. 시의 공백기를 딛고 이 때는 나도 다시 시를 잡고 쓸 때였다. 10년 문단출입을 하지 않았으니 기념식에는 아는
문인들이 거의 없었다. 대전출신인 이재무 시인만이 얼굴을 아는 정도였다. 옛날의 엄숙한 출판기념회의 격식은 많이 없어지고 술
마시는 일이 본 행사였다. 주인공인 안정옥 시인이 술에 상당한 실력이 있는 줄을 그 때 알았다. 가계가 술 좋아하는 집안인데
여자로서는 유일하게 대물림을 받았다고 했다. 학교시절에는 술로 남자들을 뻗게 했으며 요즘 최근에도 안상학 시인을 뻗게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다고 안시인은 말했다. 술을 잘 못하는 나는 부러운 일로 생각된다. 인생의 쾌락은 몸이 건강해야 누릴 수 있다.
리비도도 몸의 건강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는 문인으로서의 삶도 혹은 일생생활인으로서의
삶도 안 시인을 만족하게는 하지 못한다. 시집 『나는 걸어다니는 그림자인가』의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안 시인은 자신의 삶이
실제가 아닌 그림자로 여기고 있다.
안 시인이 현실의 삶에 비중을 두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인이기 때문일까. 시인들은 현실보다 이루지 못한 꿈에
갈증과 욕망의 비중이 높은 사람들이다. 인간의 의식은 무의식과 의식의 2개의 촛불을 켜서 사물을 보고 있다. 대낮에는 의식과
무의식의 촛불이 켜지고 밤에는 의식이 꺼지면서 무의식의 촛불이 켜진다. 인간은 꿈이라는 영화를 밤새 상영하면서 잠을 잔다.
시인들은 대낮에도 백일몽의 촛불을 켜고 사는 사람들이다. 백일몽이 중심인 삶은 현실과 의식의 풍경이 오히려 환한 촛불의 그림자처럼
보인다. 일상의 삶은 긴 시간의 고역일 뿐 시인의 내면은 어서 밤이 오고 원하는 꿈을 밤새 꾸고자 하는 무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푸른 차, 공장에서 뒷좌석 걷어 낸
자동차를 보며 어서 밤이었으면 했다
몇 년 전 방바닥을 뜯었을 때도 밤이었으면 했다
내 아픈 胃를 상상하며 빠른 밤이었으면
수천 가지 감정들이 뒤엉킨 것처럼
내가 부품인지도 모르고
조심스럽게 회로들이 뒤엉킨 차를 보며 혀를 찼다.
악, 악, 악, 부품이 소리지른다 나는 자동차 속에서
언덕을 내려오는 자동차를 보며 무덤임을 알았네
더운 날, 문을 꼭꼭 못질한 채 홀로
끌고 가는 제 관
(「자동차」전문,『나는 걸어다니는 그림자인가』)
화자의 자아를 자동차에게 비유한 이시는 굴러가는 자동차가 관이니 결국 내 인생이 관이라는 얘기이다. "수천 가지 감정"과
욕망이 뒤엉킨 몸은 유지보수와 진행으로 피곤하다. "어서 밤이었으면 했다"라는 반복되면서 강조되는 문장은 리듬을 만들어내면서
호소한다. 안시인은 종착역으로서의 밤과 무덤을 얘기했으나 나에게는 죽음의 긴 휴식이 아닌 꿈의 시간을 살고 싶다는 얘기로 들린다.
왜냐하면 안 시인의 리비도는 죽음을 인식하나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시는 이러한 무의식을 더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서 있었네 전철은 날렵하게 다음 정류장으로 달려가네 광고속의 젊은 여자도 달려가네 어린아이가 앉으라며 벌떡 일어났네 순간,
지하철은 이십년을 쌩, 가네 허허 들판에 모든 곡식들은 거둬 간, 서리는 내리지 않았지만 서리 같은 늙은이의 뒷모습이네 무어라
중얼거렸지 내가 젊어서 이룬 일은 무엇인가 글을 겨우 깨친 아이의 일기처럼 해가 떴습니다 밥을 먹었습니다 친구와 놀았습니다
잤습니다 처지 같네 뒷모습, 추워 보이고 초라해 보이네 오래 서 있어 지하철이 떠날지도 모른다 재촉하네 늙은이는 더 갈 정류장이
없는 사람, 아이는 손잡이 두 개를 잡고 곡예 하듯 장난치네 내게 자리를 내어 준 것은 다른 목적이었네 대낮에 나는 이십 년을
갔다 왔네 나는 지하철을 타지 않으리 그렇게 빨리 데려가는 황혼이라는 역을.
(「황혼을 가다」전문,『나는 걸어다니는 그림자인가』)
안정옥시인도 내년이면 甲子에 이른다. 공식등단으로는 20년을, 서라벌예대 문창과 시절부터라면 30년을 문학과 삶을 같이한
시간이다. 지금 다섯 번 째 시집을 준비중이라고 하니 등단이후로는 평균 4년마다 시집을 낸 셈이 된다. 시집 출간속도가 빨라졌다고
하나 시인으로서 이름만 걸치고 나태하게 산 삶은 아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운명론자이므로 안 정옥 시인이 시인의 삶을 산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시간이라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첩첩산중의 무한공간속에 숨겨져 있다. 별들은 무한공간이라는 어두운
하늘의 기표이다.
天文이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질서'의 무늬란 뜻이고 인간은 이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숙명을 이해한다. 내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동경이 묻어있는 안호원과의 시간, 인생의 후반에서 되어서 그 누님인 안정옥 시인과의 교류와 만남 모두 시간의 변화이다.
기쁨과 슬픔도 긴 시간의 두루마리에 그려진 그림이며 우리들 시인의 시도 또한 그러하다. 우리가 죽어도 그림들이 시라는 형태로 혹시
남겨지는 행운이 있다면 가여운 들꽃 같은 그림들이 타인의 눈에 아름답기만을 바랄 수 밖에.
김백겸,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로 등단.
.시집으로 『비를 주제로한 서정별곡』『가슴에 앉힌 산 하나』『북소리』『비밀 방』『비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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