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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Attention)과 지향(Intention)
예배당에서 모여 예수님을 바라보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막상 세상에 나와서 예수님의 뜻대로 일상생활을 한다는 것은 쉽지않음을 경험합니다. 예배당에서 열심히 예수님을 주목했던 것처럼 이 세상에서도 늘 예수님의 뜻을 지향해서 살아갔더라면 나도 세상도 많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가장 강조하는 말이 예배에 성공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면 인생에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에 성공하는 하는 일은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는 일이고 열심히 참석하면서도 그냥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을 열심히 주목했던 사람들이 즉 예배에 성공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뜻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예수님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는 일에는 너무나 많은 분들이 실패합니다.
예수님을 잘 주목하면 예수님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지향의 삶입니다. 이 삶은 일상도에서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6.25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때에 20대 후반의 젊은 아내가 전염병에 걸려서 백방으로 노렸했지만 치유되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어렵게 구한 녹두로 녹두죽을 끓여서 아내에게 권했지만 아내는 주님이 자신을 데려갈 것을 알고서 남편이 준비한 저녁상을 거절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겨 놓고 떠나는 두 아들을 믿음으로 키워달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젊은 아내를 먼저 천국에 보낸 남편은 예배당에 나가면서 예수님을 주목했고 일상에서 예수님의 뜻을 지향하면서 혼자 몸으로 열심히 농사를 지으면서 두 아들을 믿음으로 훌륭하게 키웠습니다. 두 아들 중에 큰 아들은 장로로 교회를 섬기면서 영어교사와 영문학교수로 활동하다가 은퇴했고 둘째 아들은 현재 미국에서 한국이민교회를 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두 아들은 혼자서 오랫동안 살았던 늙은 아버지를 믿음이 좋은 여인과 결혼을 시켜서 늦깎이 신랑이 되는 행운을 아버지에게 선물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목하면서 동시에 예수님을 지향하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이 이 땅에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김 영 근 목사<예수사랑, 가족사랑 발행인>
2012년 6월 가족치유회복중보기도
이름이 알려진 야당 정치인이 자신의 부모님에 관해서 한 마디 했습니다. 부모님은 초등학교 부부교사였는데 자녀가 많아지니까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서 어머니는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초등학교 교장으로 취임한 아버지는 교육청에 가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짓게 된 어머니는 인분을 모아 거름을 만들어 채소를 재배해 시장터에 팔아 자녀를 양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네분들은 인분작업을 하는 교장선생님의 사모님을 보기가 죄송해서 빙 돌아서 집으로 가곤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는 학부모들뿐만 아니라 마을 분들도 선생님을 존경하고 그 부인까지도 존경했는데 지금의 교육현장에는 참된 존경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한창 일할 수 있는 교사들이 교사들을 함부로 대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상대하는 일에 지쳐서 명예퇴직 신청비율이 많아진다는 서글픈 소식을 접합니다. 여전히 교사직은 상종가이지만 막상 교육의 현장은 막장현장이 되어갑니다. 세상은 성공, 출세, 돈, 인기, 명예 등을 지향하고 교육은 여기에 장단을 맞추었습니다. 그 결과로 교육의 현장은 참된 인간이 아닌 성공하는 기계를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첫 번째 학교는 가정이고 교사들은 부모입니다. 남한 땅의 248개로 나눠진 시·군·구에 있는 모든 가정과 학교들과 교사들을 위해서 중보기도의 손을 간절히 모읍시다.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가 황폐화된 교육현장인 학교들을 바로 세울 것입니다.
1. 기도시간: 가족중보기도는 개인이나 교회별로 정해진 시간에 하루 1회 이상씩 합시다.
2. 중보기도참여자: 가정의 치유와 회복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3. 기도의 대상: 내가 살고 있는 <시ㆍ군ㆍ구>에 있는 가정들이 기도의 대상입니다.
<일반기도제목>
첫째, 가족식구들의 상한 마음을 건강한 마음으로 변화시켜주옵소서!
둘째, 내가 먼저 주님의 용서를 체험하고 가족 안에 용서를 실천하게 하소서!
셋째,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건강한 자아상을 갖게 하소서!
넷째, 가족식구들의 생각이 합리적인 생각과 성경적인 생각으로 바꿔지게 하소서!
<특별기도제목>
첫째, 복지에 관계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봉사와 섬김의 삶을 살게 하소서!
둘째, 가정마다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참된 섬김과 사랑을 허락하소서!
셋째, 이해집단들이 폐쇄적인 사고를 벗어버리고 열린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하소서!
넷째, 시리아에 인권탄압과 민간인 학살이 종식되고 참된 평화를 허락하소서!
김영근의 가정행복교실 6
부부간의 성생활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성생활은 내밀한 영역이어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녀가 만나서 교제하고 결혼해서 부부생활을 하는 데에 성생활은 필수적이고 소중합니다. 결혼의 위기를 겪고 있는 부인이 남편으로부터 성적인 거절을 당하면서 겪었던 고통을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는 것을 아픈 마음으로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혼의 위기를 겪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성생활의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 장로님은 매번 자신의 아내와 성관계를 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껴 앞으로 다시 안하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답니다. 이 분은 장로가 될 때까지 한 번도 성에 대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고 성은 자녀생산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즐겨서는 안되는 더러운 것으로 오해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성의 소중함을 깨닫고 부부간의 성생활에 자유함을 얻었고 부부간의 건강한 성생활을 통하여 부부간의 친밀감을 회복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성이 성추행, 성폭력, 성적비하, 성적수치심, 성적음란물 등의 용어로 회자되면서 천박한 성으로 인식될 때도 많이 있습니다. 일부 교회는 여전히 성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고수하면서 성을 멀리하는 것이 신실한 교인의 삶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 일부 교인들은 성생활없이도 얼마든지 부부생활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부부사이에 성이란 주제는 다루기 어려운 주제이지만 피할 수 없는 주제이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할 주제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초대교회의 남편들에게 한 권면에서 지식에 따라 동거하라(벧전3:7)고 했는데 성생활이야말로 지식이 꼭 필요한 영역입니다.
스탠리 그렌츠(1990)「성윤리학」에 근거해서 교회의 성에 대한 역사적 변천과정을 세 가지 관점에서 정리했습니다. 첫째, 성과 결혼은 모든 사람을 위한 좋은 것이다; 둘째, 결혼은 좋은 것이지만 모든 사람을 위해 좋은 것은 아니다; 셋째는 종교개혁 이후에 나타난 것으로 결혼은 성직자를 위해서도 좋다.
이 세 가지 관점 중에 첫 번째 관점이 구약성경시대와 초대교회 당시의 신앙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던 성에 대한 관점입니다. 두 번째 관점은 이원론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던 영지주의와 그 이후의 가톨릭교회의 지도자들이 가졌던 성에 대한 관점입니다. 세 번째 관점은 종교개혁이후에 성에 대한 교회지도자들의 관점입니다.
종교개혁시대 이후에 교회는 독신과 처녀성을 이상화하는 것을 배격하기 시작하였고 성과 결혼을 하나님의 본래적인 고안으로 선한 창조질서의 일부로 간주하였습니다. 교회는 인간을 성적인 존재로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보다 전인격적인 인간관으로 복귀하여 몸과 영혼을 모두 은혜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청교도들은 부부간의 친밀한 관계를 위한 성을 강조하면서 결혼에 대해 가장 성서적이고 긍정적인 견해를 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17세기가 시작되면서 개신교는 출산이 결혼과 성교의 일차적인 목적이라는 관념을 배격하였고 결혼의 근본적인 목적을 신실한 사랑의 표현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다수의 설교자 중에는 성을 여전히 ‘더러운 것이고 마귀의 도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교회들은 성에 대한 부정적 접근에서 긍정적 접근으로 변화를 시작했고 성적표현의 가치에 대해서 육체지향적인 초점에서 보다 관계지향적인 초점에서 가치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성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금욕주의, 쾌락주의, 성경적 복음주의의 세 가지 신학적 입장이 있습니다. 금욕주의는 성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여 혐오스러운 것으로 치부하는 입장입니다. 쾌락주의자들은 성의 가치를 과대평가하여 성을 신격화하기도 합니다. 성경적 복음주의입장은 하나님이 우리를 성적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을 수용하면서 성을 비하하지도 않고 신적으로 우상시하지도 않고 창조된 본래의 성은 허용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선용되고 축복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성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으로 잭 볼스윅 교수(1999)의 세 가지 원리를 제시합니다. 첫째, 인간의 성은 남자와 여자를 차별화한 것과 그 사이의 연합 속에 확정되었다; 둘째, 성은 우리를 더 깊은 수준의 앎으로 인도할 목적으로 주어진 선물이다; 셋째, 이러한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적용은 교회에서 꾸준히 실천되어야 한다.
성은 창조주 하나님의 선물로서 결혼 안에서 누리는 성적 친밀감은 언제나 좋은 것이며 성적관계에서 영과 몸이 연합합니다. 성에는 사람들의 인격과 삶, 명예와 자존감이 들어있어 소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부부간의 성은 친밀감이며 사랑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배우자의 성적요구는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치유목회칼럼 10 나의 치유목회 한영수목사
나의 목회를 돌아본다.
목회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생명에 관한 것이다.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풍성케 하고 하나님의 평안을 맛보게 하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 목회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고백하는 성령은 생명의 영이고, 평안을 주는 영이기 때문이다(롬 8:2,6). “생명의 성령의 법”(롬 8:2),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롬 8:6). 그래서 성경을 보면 성령이 역사하는 곳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의 현장에 실제로 생명을 살리는 치유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자유함(요한 8:32), 안식(마태 11:28), 소통(행전 2:4절 이하)의 역사가 있었다. 이런 일들은 한 마디로 생명의 역사이다.
여기서 보는 대로 생명의 역사는 단순히 영혼구원의 차원이 아니고, 총체적인 구원의 역사이다. 그런 점에서 성령의 활동을 칭의나 성화와 같은 신앙적 차원에만 제한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성령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살리고, 평안을 주고, 안식케 하고, 소외가 아니라 소통케 하는 영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죽음의 세력을 완전히 깨뜨리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시는 영이시다.
한편 사단은 죽임의 영이다. 따라서 사단이 임하는 곳마다 죽임(요한 8:44), 거짓(요한 8:44), 불신(베전 5:8). 분열(디아볼로스의 뜻은 중상자, 분리시키는 자), 그 밖의 억압, 절망의 역사가 나타났다. 분명한 것은 성령의 역사와 사단의 역사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우리는 생명목회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된다.
정리하면 목회는 살림과 관계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목회현실은 살림의 모습도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죽임의 모습, 죽임의 현상도 있다. 심지어는 죽임의 역사를 따라가는 일도 있다. 영혼구원 하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생명을 파괴하는 전쟁이 자행되고, 인권이 유린되고, 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일들이 많은데 이런 문제에 대해 가슴 아파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 침묵하거나 심지어는 찬동하는 일까지 있다.
교회의 전통과 관습이 생명의 역사를 방해하고 있기도 하다. 성경을 보면 생명 살리는 것을 방해하는 한복판에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있었다. 이것은 충격적인 모습이다. 이들은 전통과 관습이라는 미명 아래 사람을 옭아매고,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사람을 절망케 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고 회복시키는 일, 율법에서 자유케 하는 일에 대해 시비했던 사람들이 종교지도자들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릴 때 손가락질 했던 사람들이 또 종교지도자들이다. 그런데 오늘 목회 현실에서는 종교지도자들의 자리에 교회의 목사들이 한 몫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목회자 자신이 행복하지가 않은 것이 목회의 현실이다. 많은 목회자들이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사역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교인들이 상처를 입는다. 교회 오는 것이 기쁘지 않다. 오히려 교회에서 목사로 인해 더 많은 상처를 입는다. 이로 인해 실제적인 생명목회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자동차 앞 유리에 얼룩이 있으면 운전하는 데 방해가 된다. 그러면 물을 나오게 해서 와이퍼로 닦는다. 그런데 얼룩이 지워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바가지로 물을 붓고 닦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룩이 지워지지 않았다면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얼룩이 유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고 유리 안쪽에 있기 때문이다.
목회가 행복하지 않은 근본적인 문제는 목회자의 내면에 있는 얼룩인 상처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치유되지 않으면 아무리 목회를 열심히 해도 행복한 목회는 기대할 수 없고, 또 생명목회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목회현실은 교인들이 너무나 지쳐있다. 이유는 많은 목회자들이 교인들을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교회 안에 묶어두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많은 교인들이 지쳐있고,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어느 덧 담임목회를 한지가 19년째를 맞이하고 있는데 나는 과연 생명목회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행여나 죽임의 목회는 하지 않는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되돌아본다.
김희라의 서로 다른 점을 존중하자(28)
부모와 자녀의 대화
“아니, 중간고사를 그렇게 망치고 또 컴퓨터게임이냐? 그래서 대학이나 갈 수 있겠니?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 컴퓨터를 부서 버려야지 원” 아버지 말에 옆에 계신 어머니가 한마디 거든다.
“그래, 제발 정신 좀 차려라. 고1은 중요한 시기야. 중학교 때는 열심히 노력해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잖니? 지금 뒤떨어지면 평생 후회할거야!”
듣고 있던 영수(가명)는 어머니를 매우 화난 표정으로 노려보며 고함을 지른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걸 해라. 저걸 해라 하지 마세요. 나는 엄마의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에요. 제발 내 맘대로 하게 내버려두세요!”
“이자식이 어디 엄마에게 대드니?” 아버지의 손찌검이 이어지고 아들은 문을 꽝 닫고 집을 나가버린다.
영수의 성적이 떨어져서 마음이 가장 상한 사람은 누구일까? 영수 자신이다. 그런데 부모는 착각을 한다. ‘엄마인 내가 더 속이 상한다. 쟤는 TV보고, 컴퓨터게임하고 친구들 만나고 할 것 다한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해 공부했던지, 아예 공부를 안 하고 놀았어도 성적이 떨어지면 제일 속이 상하고 자존심을 구기는 것은 영수 자신이다. 사례 상황에서 부모의 말이 모두 옳은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모의 말은 대화라기보다는 분노를 품은 일방적인 훈계이다.
자녀와의 대화에 성공하려면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한 개인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기본 바탕에 두어야 한다.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 중의 하나는 아이의 말과 감정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아버지의 말을 살펴보면 먼저 아들을 비난하고 아들의 미래를 비관하고 있다. ‘넌 중간고사를 망쳤어. 미래가 암울해(대학 못가)’ 더하여 엄마의 말은 ‘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성적이 뒤떨어진 것은 인생에 실패하는 거야! 넌 뒤처져 있어!’이다.
물론 영수의 말대꾸에서 그동안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의 의견에 따라 자신이 휘둘렸음을 알 수 있다. 부모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함부로 부모의 의도대로 이끌면 자녀가 힘겨울 수 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나는 아들을, 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염려하고 있으니 조심해서 말하지 않아도 자녀가 다 알아 듣고 따를 것이다’라고 착각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부모의 일방적이고 지시적인 대화 자세보다는 자녀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려는 자세이다. 자녀가 말 하는 것을 건성으로 듣지 않고, 말의 억양, 동작, 표정, 눈빛 등을 살피며 그 의미, 감정, 느낌을 공감한다면, 자녀들은 부모와의 대화를 즐거워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언제나 충고할 준비가 되어있다.
영수가 밤늦게까지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한 아버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 게다가 중간고사 성적도 엉망이었다. 그러나 잠시 멈추라. 영수는 성적 하락으로 인한 금간 자존심을 지금 게임 점수를 올림으로 회복하고 있는 중이거나 게임에서 계속 져 자존심 회복이 불가능해 보여 비참한 상황이다. 꼭 한마디 하고 싶다면 화난 감정을 내려놓고 영수의 태도변화를 가져 올 한마디는 무엇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가슴 속 아들을 향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아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말!
만약 지금 끓어오르는 분노의 공을 아들에게 던지면, 그 분노의 공을 받은 아들은 감히 아버지에게 덤비지 못하고 엄마에게 던지고, 그걸 받은 엄마는 다시 당신에게 더 활활 타는 분노의 공을 던질 것이다, 아들을 향한 비난과 비관적인 판단, 그리고 비아냥을 내려놓고 “게임이 정말 재미있나 보구나! 이 게임이 요즈음 인기 있는 게임이니?”라고 조용히 대화의 문을 연다면 어떨까?
아들이 어색해 하며 컴퓨터를 끈다면 진지하게 아들의 게임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 부모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낸다. 아들이 부모의 말을 수용하여 노력한다면 더 없이 감사할 따름이지만 그 자리에서 그러겠다고 약속하지만 게임중독이 이미 되었다면 시간이 걸리고,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터넷 중독 상담을 받게 하거나 심하면 정신과치료도 권하여야 한다.
자녀가 진심으로 달라지기를 원하는 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부모인 우리가 달라지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그러나 가끔은 돌연변이(mutation, 유전물질인 DNA가 갑자기 변화하고 자손에게까지 전달되는 일) 콩이 나기도 하는 데, 돌연변이 콩은 새로운 다양한 세상을 여는 힘이다. 내 자식 같지 않은 자녀를 수용할 마음의 준비를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 부모는 늘 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문형욱의 젊은 청춘을 향하여 5
잘못된 데이트의 노하우 ( know how )
잘못된 데이트의 노하우 ( know how )는 데이트의 노하우( no how )를 불러온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know how는 어떤 일을 오래 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법이나 요령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노하우를 알아내려고 노력을 한다.
특히 데이트에서 이성을 사로잡을 만한 노하우를 얻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인터넷, 지인들에게 노하우를 전수 받으려고 애를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옷 잘입는 방법, 유머를 잘 하는 방법, 맛있는 음식점을 알아내는 것, 이성이 좋아하는 대화기술, 등의 노하우를 전수 받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특히 우리 크리스천들은 적절한 신앙적 용어 사용과 성경의 예화 등을 사용하려고 무지 노력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러한 노하우가 나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때로는 이러한 노하우를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며 이러한 것을 너무 노력하지 않는 청년들도 너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하우만이 이성에게 선택을 받고 이성을 유혹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에 집중을 할 때에 이 know how는 no how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먼저 자신의 내면의 진실함을 성장 시켜야 할 것이다. 데이트 할 때 가장 먼저 준비가 되어야 하며 반드시 준비가 되어야 할 것은 보다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존중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상대방을 신뢰하는 마음, 뜨거운 열정, 기쁜 마음, 긍정적 태도, 헌신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이러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내면의 성장이 아름다운 데이트를 하는데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결혼은 데이트의 연장이 아니다. 결혼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혼 전 데이트의 노하우가 무엇인지 분명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김영근의 마음치유여행 7 -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 -
믿음의 여인, 나의 어머니
사람들은 항상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갖기도 하고 우월감을 갖기도 합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아버지의 경우에는 무학이거나 초등졸업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경우에는 대개가 무학이었고요. 그래서 학교에서 실시하는 가정조사설문지에 아버지는 국졸(정확하게 말하면 초등학교 4학년 중퇴) 어머니는 무학이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충북 청주에 있는 청주중학교를 다닐 때 사정은 좀 달라졌습니다. 친구들의 어머니 중에는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래도 아버지 학력난에 국졸 그리고 어머니 학력난에 무학을 적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서울에 있는 신일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이때는 많지는 않았지만 친구들 어머니 중에는 대학을 나온 분도 계셨습니다. 몇 번인가 어머니의 무학 학력을 속이고 국졸이라고 적었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자녀들처럼 저도 어머니를 존경합니다. 예수님을 빼놓고 가장 존경하는 한 분을 적으라고 하면 저는 서슴치 않고 저희 어머니를 적습니다. 지금 가정조사란에 어머니 학력을 적으라고 하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무학이라고 적을 것 같습니다. 학력이 인간의 인격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제가 장로회신학대학원에 입학했을 때(1983년) 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믿지 않는 가정에서 혼자 신학을 공부하는 아들이 안타까워 아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교회를 나가준 것입니다. 어머니의 아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예수님의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되었고 주님의 자녀로서 예수믿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평생을 미신을 섬겨왔던 어머니에게 은총이 임했습니다.
어머니는 예배당에 나가면서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으면서 한글도 깨우쳤습니다. 어머니가 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는데 신앙생활을 하면서 얻은 한글 깨우침은 어머니가 얻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어느 가을날에 다래끼(어깨에 매는 싸리나무로 만든 물건운반도구)에 밤을 가득담고 냇가를 건너다 물에 빠졌는데 그 때 입에서 나온 것은 불평이 아니라 <주님, 감사합니다> 라는 고백이었답니다. 어머니는 목사인 아들보다 감사가 많은 분입니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되었지요.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
고3때였습니다. 전세를 얻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주인집에서 방을 빼달라는 것입니다. 주인에게 고삼이니까 대학입학시험을 볼 때까지만 있게 해주시면 그 때에 방을 옮기겠다고 했지만 주인은 벌써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을 했습니다. 일요일에 함께 자취하던 동생과 함께 리어카에 짐을 싣고 앞에서 끌고 동생은 뒤에서 밀면서 삼양동 산동네로 향했습니다. 새로얻은 방은 재래식 부엌 옆에 화장실이 있었고 부엌 바닥은 흙바닥이었습니다. 물은 이틀에 한 번씩 나오는데 공교롭게도 이사하는 날 물이 나오지를 않아 무척이나 짜증이 났습니다.
물이 나오지 않아 뒷정리도 못하고 도서관에 공부나 하러 가겠다고 하면서 나즈막한 산 중턱에 자리잡은 학교로 올라갔습니다. 10월 초였는데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이사하느라고 피곤했고 이삿짐의 뒷정리도 못한 상태였기에 짜증이 나 있었는데 불어오는 바람은 나의 마음을 너무나 상쾌하게 만들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학교교정으로 올라와서 뒤를 돌아보니까 멀리 북한산의 백운대와 인수봉과 도봉산이 보입니다. 시야가 탁 터이면서 마음이 넓어졌습니다.
순간 저 아름다운 산도 시원한 바람도 만드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정리하지 못한 이삿짐에 매어있지 않고 산과 바람과 멀리 보이는 저 동네에 사는 사람들, 이 모두가 주님의 소유이고 그 분의 다스림 가운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동안 삼양동 산동네에 전셋집을 얻으려고 동분서주했던 일들, 이사하는 모든 짜증스러운 상황들, 입시준비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모든 사건 등 이 모든 것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이 씻겨졌습니다.
돌아서서 옆을 보니까 대형거울에 적힌 학교의 교훈인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이라는 구호가 나의 마음속에 들어왔고 마음으로 외쳤습니다. “나는 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이다.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꿈을 꾸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시원한 바람과 저 높은 산야가 낙심한 마음을 시원케 했고 학교의 교훈이 주는 상상력과 깨달음이 나의 영혼에 치유를 가져왔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믿음은 치유하고 우리 영혼을 자유롭게 합니다. 시편23편이 생각이 났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어머니가 믿는 예수님이 어머니의 상처를 치유하셨던 것처럼 내가 만난 예수님도 나의 모든 상한 마음을 회복시켜주고 치유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은 놀라운 치유력을 갖고 있고 그 치유의 주관자가 우리가 믿는 예수님입니다.
목자의 품에 안긴 어린 양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하나님을 목자로, 인간을 양으로 표현했어요. 목자는 양들 하나하나를 알고 있으며 그 각각의 특성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같은 범인들의 눈에는 다 똑같은 양으로 보이지만 목자의 눈에는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구별되어 보입니다. 목자는 어느 양이 아파서 비실대는지, 어느 양이 거센지, 어느 양이 항시 딴 길로 빠져 나가 애를 먹이는지 그 습성을 다 파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지요.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도 나를 안다.”(요한10:14). 여기서 ‘안다’란 히브리어 동사 야다(yada)는 통상 이해하고 있는 ‘안다’와는 다릅니다. 여기에서 ‘안다’는 것은 ‘더불어 정을 통해 안다’라는 뜻입니다. 정신적인 일치와 더불어 성적인 일치를 의미할 때 야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에 처음 나간 교회는 작은 시골방을 두 칸을 붙여서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어린이들에게 과자와 학용품을 주기도 했고 가끔 쪽복음서라 불리는 소책자를 나눠주었습니다. 한 번 받은 쪽복음서의 표지그림이 예수님께서 양을 안고 있는 흑백 그림이었는데 이 그림을 보는 순간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예수님의 품안에 안겨있는 어린양은 바로 저였습니다. 예수님은 저를 보시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저를 사랑해주신다고 고백하셨고 저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후에 쪽복음서의 그림은 저의 심비에 새겨진 그림이 되었고 나의 신앙생활은 그 이후에 우여곡절도 참 많았지만 그 쪽복음서의 예수님은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목사가 되었지만 저의 인생과 목양은 항상 밝지만은 않았습니다. 때로는 불순종의 삶을 살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의 골짜기를 지나갈 때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하나님 앞에 드러난 나의 모습이 너무나 부족해서 나의 목양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때에 어린 양으로 나를 안아주었던 예수님께서 나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9:11절 말씀입니다. “내가 분명히 말한다. 너희들을 향한 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며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를 막연히 아는 것이 아니라 참된 목자가 양을 아는 것처럼 나의 특성들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나의 밝음도 어둠도 모두 알고 계셨지요. 제가 당신의 마음에 합하지도 못한데도 저에게 오셨고 재앙이 아닌 평안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목사가 되고 싶어 열심히 살았지만 결국 탈진되었고 열등감으로 짓뭉개진 망가진 인격이었지만 예수님 당신은 저를 찾아오셔서 사랑을 고백하셨고 저의 치유자가 되셨고 저 또한 치유자의 인생을 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 땅콩 박사 조지 카버
땅콩 박사 조지 카버는 역사상 가장 훌륭한 미국인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목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식물 안에 간직되어있는 신비한 화학작용의 비밀을 이 사람만큼 알지 못했으며 아무도 그 비밀을 인간의 실생활에 잘 적용하는 방법을 이 사람만큼 알지 못했습니다. 변변한 피아노교육도 받지 못했지만 그는 피아노연주자로 콘서트를 열었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작고 초라한 대학의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전국으로 연주여행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가 과학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때에 연봉 10만 달러에 에디슨과 함께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캘빈 쿨리지 대통령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도 그를 찾아왔으며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러 외국 정부도 그의 자문을 받고자 했습니다. 헨리 포드, 간디도 그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만큼 불행하게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알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자기가 어느 해에 태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검둥이 노예로 태어났지요. 노예들은 매일 자신들이 개, 돼지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주입당하였기에 많은 사람들은 노예였던 그도 자라면서 한을 품고 정신적으로 뒤틀리고 병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렇게 자라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가 바라보는 바깥 세계가 항상 밝지는 않았지만 세상에서 언제나 그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는 전에 남부연방에 속해 있던 지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빛을 밝혀주었고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비록 백인들이 세상에서 흑인들에게 가해진 모욕과 냉대에 대하여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지만 그가 백인과 흑인이 평화롭게 살며 또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날을 앞당기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카버박사의 삶에서 하나님은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모든 공로를 하나님께 돌렸으며 하나님이야말로 그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라고 여겼습니다. 카버박사는 한 젊은이에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나는 그저 하나님을 돕는 그 분의 종에 지나지 않네. 하나님께서는 어떤 한 종족, 한 인종만을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지. 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란 걸 확신한다네.”
1943년 1월 5일에 세상을 떠난 그의 비문에는 이렇게 새겨졌습니다. “그는 명성에 재물까지 얻을 수 있었으나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세상 사람들을 위해 봉사에서 행복을 찾았기에 그는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치유자였고 그가 만난 믿음의 사람들도 그를 위한 치유자였고 이제 그 안에 계신 예수님은 그를 상처입은 흑인들을 위한 치유자로 사용하셨습니다.
사르밧 여인의 참 믿음과 이세벨왕후의 거짓 믿음
시돈 지역에 두 소녀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은 서로 달랐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한 소녀는 시돈 땅 안의 사르밧지역의 평범하게 사는 남자에게 시집을 갑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결혼한 후에 얼마 안되어 남편을 잃고 외아들을 데리고 사는 과부가 됩니다. 다른 소녀는 시돈왕의 딸인 이세벨공주였는데 모든 사람이 가난하게 살던 때도 이세벨은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도 밥투정을 했습니다. 그녀는 외모도 아름다워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아 여러 남성들의 주시의 대상이 되었고 마침내 그 당시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었던 아합왕의 왕비가 됩니다.
두 소녀 모두가 어린 시절에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성한 후에 사르밧 지역에 시집가서 과부가 된 소녀는 사르밧여인으로 불려졌는데 그녀는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지만 늘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실한 믿음을 가졌고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았지요. 이세벨 공주도 어린 시절에는 사르밧여인처럼 믿음도 가지고 있었는데 궁궐에서 호화롭게 성장하면서 늘 남의 도움과 시중만을 받다 보니까 소위 공주병에 걸려서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갔고 넉넉한 환경 속에서 기도를 소홀히 했고 형식적인 믿음은 있었지만 주님과 교제하는 참 믿음은 아니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에 사르밧여인 집에는 아껴 두었던 양식도 바닥이 났고 이제 한끼 정도 분량밖에 안되는 양식을 남겨둔 채로 며칠 동안 굶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 남은 양식과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먹고 죽기로 작정했습니다. 마침내 그 날이 왔고 사르밧여인은 아들과 함께 마지막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중년남자가 나타나서 겨우 일인분밖에 안되는 양식으로 먼저 자신을 공궤하고 난 다음에 음식을 먹으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선택의 시간에 사르밧여인은 막가파식의 남자의 말이었지만 경청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은 나그네된 자를 섬기라는 음성이었습니다. 주님께 순중하는 마음으로 그 남자에게 마지막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가정의 양식통에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가정에 포기와 함께 주님의 놀라운 은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르밧여인의 아름다운 믿음의 이야기는 오고 오는 세대에 치유와 회복과 생명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공주 이세벨은 왕후가 되었지만 남편인 아합왕과 함께 의로운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탐욕으로 빼앗습니다. 그녀는 가진 것이 넉넉한데도 자신의 것을 나누지 못하고 욕심을 부려 성공했지만 결국 비참한 죽임을 당하고 그의 시체는 개가 먹어치웠습니다. 참된 믿음의 소유자인 사르밧여인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나누며 치유자가 되었지만 거짓 믿음의 사람 이세벨은 남의 소중한 것을 빼앗는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
믿음은 치유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치유하십니다. 때로는 육체의 병도 치유하시고 마음의 병도 치유하십니다. 우리들의 전인(全人)인 우리들의 육체와 정신과 영혼 모두를 치유하십니다.
마가복음 1장의 한 나병환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치유의 손길을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에서 몸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도 상처로 멍들었고 병 때문에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버림을 당했지만 비참한 인생살이에서 마지막 끈으로 예수님을 붙잡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고쳐주심의 능력을 믿었고 예수님은 그를 온전히 치유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중풍병에 걸린 환자를 네 명의 친구가 들것에 들고서 예수님을 만나러왔지만 군중들 때문에 만날 수가 없어서 지붕을 뜯어서 구멍을 내어서 환자를 내려보내 예수님을 만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네 명의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 병을 고쳐줍니다. 마가복음 5장의 열두 해 혈루병 여인은 예수님의 옷가라도 만지면 병이 치유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서 예수님에게 접근해서 자신의 혈루병을 치료받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바울사도는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무응답에 바울사도는 실망했지만 그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가 받은 은혜가 넉넉하다. 너의 몸의 가시가 치유되지는 않아 연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너는 오히려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경험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이 음성을 듣고서 바울사도는 자신의 모든 상처를 치유받고 겸손하게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승리하는 전도자로 살았습니다. 바울사도의 경우는 육체는 치유되지 않았지만 마음은 온전히 치유와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본질을 살아갑니다. 병든 육체 때문에 한 때는 걱정을 하기도 했고 또 한 편으로는 병의 치유를 받지 못하면 믿음이 부족한 사람으로 인정받을까봐 염려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치유되든 치유받지 못했던 예수님을 신뢰하는 마음은 더욱 깊어집니다. 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내가 얼마나 강한 인간인가?”가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 얼마나 강한 분인가?”입니다.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분이 생의 굽이굽이에서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믿는다면 한결 안심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은 어두운 시간에 나를 안아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보배로운 영성은 주님께서 나와함께 하신다는 것을 끊임없이 확신하는 것입니다.
정광일의 영성이야기 9
가락재 골짜기에 담겨진 영성
2. 새 집 짓기
비록 냄새 나는 외양간 옆에서 답답하게 살았으나 저 위 골짜기에는 ‘새 땅’이 있었다. 새 땅은 꿈이었고 희망이었다. 그 꿈과 희망을 먹으러 틈만 나면 그 곳에 올랐다. 겨울이 가고 봄이 되었고 그 곳을 오르내리는 횟수는 조금씩 늘어났다. 꽁꽁 언 개울물과 함께 겨울이 찾아왔고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과 함께 그 겨울이 흘러갔다. 봄이 시작 되었다. 산골의 봄이었다. 보이는 물은 아래로 흘렀지만 보이지 않는 물은 위로 흘렀다. 위로 흐른 물은 버들강아지로 눈 뜨게 하며 작은 가지들의 겨울잠을 깨웠다. 수액(樹液)은 그 자체가 경이로운 생명의 신비였다. 계절의 순환을 가까이 대하며 맛본다는 것은 크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의 바뀜이 그랬다. 우리가 자연 안에 살면서 자연을 가까이 느끼며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은 큰 불행이다. 도시의 편리함, 문명의 이기(利器)는 사람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킨다. ‘더불어 함께’가 아닌 사용하거나 이용할 대상이면 그만이다. 대상 즉 남을 나 아닌 존재로 인식하는 데서부터 ‘이기성’은 합리화된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자연과학이, 사회를 대상으로 하여 사회과학이 그리고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인문과학이 발달했다. 신학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누구를 대상화 한다는 것은 나와 대상 사이의 일정한 거리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나 사이에 이런 ‘일정한 거리’가 존재할 수 있는가? 대단한 신앙체험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은 우리 안에 계시지 않은가? 신앙의 차원에서 ‘일정한 거리’란 도대체 무슨 말인가?
철학도로서 대학생활을 시작하여 신학을 주업으로 삼아온 지 스무 해, 그때까지도 하나님은 그저 인식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신앙생활하면서 감정적 체험이 없었던 것 아니고, 의지적 결단도 때때로 가지곤 하였으나, 그때까지 줄곧 나를 지배한 신앙과 신학은 대부분 이성적 방법에 의거한 것이었다. 그때까지란 장락산 기슭의 산골 마을에 나와 가정의 삶을 내어 맡기기 시작한 그때를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1990년 4월 이전까지였다. 좀 다르게 살고 싶었다.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좀 다르게’ 정도였다. 그러나 주류가 아니면 목숨 부지하기조차 어려웠던 이 땅에서 이 ‘다르게’가 어떻게 가능할까? ‘다르게’는 ‘틀리게’이고 ‘좀 다르게’는 ‘거꾸로’로 해석 되었다. 그렇다면 좋다! 다르게면 어떻고 틀리게면 어떻고 거꾸로면 또 어떠한가? 어찌되었건 내식으로 살고 싶었고 살기 위해서는 땅이 또 집이 필요했다. 집은 이런 생각과 뜻을 담고 살릴 수 있는 살림의 터전이었다.
당시 농촌은 귀농이나 전원주택의 붐이 일기 이전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땅을 투기목적으로 사기 위해 위장전입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이를 막으려는 법적 규제가 엄격했다. 외지인은 땅을 살 수도, 집을 지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마을에 일 년 이상 살면서 농사를 지은 경력이 인정되면 농민의 자격으로 30평까지의 농가 주택은 사전 허가 없이 신고만으로도 지을 수 있는 혜택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자타가 공인하는(?) 농민이었다. 비록 중고품이었으나 경운기도 가지고 있었고 누가 봐도 한 해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었다. 신고 양식에 약식으로 설계도면을 그려 제출해놓고 며칠을 기다렸다. 그런데 얼마 후 불가 통지가 전달된 것이다. 이유는 우리를 농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재차 필요한 서류를 보완하여 제출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다. 면사무소에 가면 군청으로 가라하고 군청에 가면 다시 면사무소로 가라했다.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기를 십 여 차례.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담당 계원에게 얼마의 촌지를 전달해야하는 관행이 있었다. 소위 ‘급행료’였다. 대략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격이 있으면 당당히 나설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이에 상응하는 자격을 갖출 것이다. 아무리 공무원이 잘못되었다 해도 뿌리까지 썩었겠는가. 집에서 15분 걸리는 면사무소와 4-50분을 가야하는 군청을 몇 번 더 드나든 다음 여전히 골치를 썩이는 산업계를 쳐들어가서 그동안 참고 참았던 화를 일순간에 터트렸다. 어찌나 큰 소리로 야단을 쳤는지 군직원이 여러 사람 내 주위를 둘러싸고 제발 좀 조용히 해달라며 사정했고 갑자기 저 자세로 나오는 그들 앞에 기세등등하게 더욱 큰 소리를 쳤다. “내가 농가주택 30평 지으려고 여기를 열 번도 넘게 왔는데 어쩌면 사람을 이렇게 골탕 먹일 수가 있느냐. 불법이란 허가 되는 않는 것을 허가해 주는 것이지만 마땅히 허가해 주어야 할 것을 질질 끄는 것도 역시 불법이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면 도청이나 총리실 산하 국민 고충처리실로 찾아 갈 터이니 알아서 하라.” 담당 계원은 겨우 나를 자리에 앉히고는 면사무소를 통해서 연락이 갈 것이니 하루만 더 기다려 달라는 부탁이었다. 다음날 면장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걸려왔다. 오라는 전달이었다. 당장 달려갔다. 면장은 미안하게 됐다며 집 지을 대지는 몇 평이면 되겠냐고 물었고 나는 화가 덜 풀린 얼굴로 300평을 요구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농가주택을 위해 대지로 전용 받는 땅은 150평 정도였으니 그동안의 고생은 이렇게 두 배로 보상 받은 셈이었다.
1992년 8월 3일 어렵사리 받은 ‘농지전용신고’를 땅 입구에 걸어 놓았다. 집 지을 대지가 널찍하게 마련되었으니 이제 집만 지으면 될 일이었다. 당시 주머니 사정으로 보아 한 20평 정도의 크기에 창고형 판넬 집이면 우리 형편에 맞는 수준이었다. 며칠을 고심하던 가운데 평소 알고 지내던 건축업자의 방문을 받고 얘기를 나누었다. 돈 걱정은 말라는 것이다. 자재는 쓰고 남은 게 꽤 되고 작업은 월급 주는 팀이 있으니 내가 옆에서 좀 거들어주면 된다는 말이었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 우선 계약을 하고 나머지는 형편 되는대로 갚는다는 좀 애매한 조건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양반이 어찌나 말을 시원스럽게 하던지 "사람이 아주 화끈해서 좋네!"라고 아내는 말했다. 공사를 함께 하면서 그가 내내 하는 말이 있었다. 집은 처음 지을 때 잘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 못 지으면 나중에 수리비가 더 들며 결국 두고두고 후회한다는 것이었다.
포크레인으로 터 닦기가 시작되었다. 계곡 한 쪽 기슭에 한 때는 논으로 사용하다가 그만 두어 잡초 무성한 두 개의 다랑이 논을 합치며 평탄 작업을 하였다. 계곡이었고 논이었던 땅이라 끊임없이 물이 나왔다. 마침 장마철이기도 했던 터라 골짜기는 진흙과 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이 골치덩이를 어떻게 해결하나? 골치가 썩을 만큼 썩은 다음에는 묘안이 나오게 마련. 이 물을 한 쪽으로 돌리면 연못이 될 것 아닌가. 연못 하나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이거야말로 일거양득 이지. 구덩이를 넓고 깊게 파고 물길을 돌리니 물이 한쪽으로 고이기 시작했고 질퍽한 터는 점차 꾸들꾸들 말라갔다. 창세 때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들어나는 광경이 이러했을까? 과장이긴 해도 그때 그 시절의 물은 정말이지 대단했다고 기억된다. 설계도는 전문 설계사에 맡기지 않아도 되었기에 나와 아내 그리고 가끔씩 놀러 온 친구 부부의 의견이 모여 그려졌다. 방 3개, 서재와 거실 그리고 주방은 기본이었다. 안방에는 욕실을 하나 더 넣기로 하고 북쪽의 방도 큰 창문을 통해 뜨는 햇살과 지는 햇살이 잘 들어오도록 신경을 썼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한옥이나 초가집은 남향을 지나치게 선호한 나머지 북향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편이다. 남향으로 집을 앉히면 그저 남쪽에서 들어오는 햇살에 의존한다. 그래서 집 뒤는 좁고 답답한 뒤안길로 만족한다. 그러니 그 쪽으로는 창문도 크게 낼 이유가 없다. 변소의 창 정도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향 선호는 정원을 꾸밀 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네 집엔 후원 개념이 없다. 평소에 나는 그게 좀 불만이었다. 해가 뜨고 지는 각도는 사계절이 모두 다르다. 겨울의 햇살은 낮게 떠서 낮게 지기 때문에 집 안 깊숙이 들어오지만 여름의 햇살은 동북쪽에서 높이 떠오르기 때문에 동창은 물론 북창에도 그 기운을 뻗친다. 또한 집 앞 남쪽이 훤하게 트여 있다면 집 뒤는 큼직한 산이 자라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의 풍치 누림은 저 멀리에 있는 앞쪽 남산 보다 가까운 뒤쪽 북산의 덕이라고 할 만하다. 뒷산과 집 사이에 적당한 간격으로 후원을 꾸며 놓을 경우 북창은 필수적이다. 눈에 보이는 게 모두 한 폭 한 폭의 그림이다! 지금도 영성수련이나 잠시 머무르는 사람들이 와서 다른 방 놔두고 이 방에 먼저 눈이 가는 걸 보면 단지 내 독특한 취향만은 아닌 것 같다. 가락재엔 정말 아늑하고 예쁜 방이 하나 생겼다.
봄에 허가를 받고 초여름에 시작한 공사는 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 앞에서 끝이 났다. 마을을 벗어나 산골짜기의 한쪽 기슭 중턱에 각목으로 벽을 세우고 널빤지로 겹쳐 마감 (2X4 공법이라함), 아스팔트싱글로 지붕을 덮은 목조건축물은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충분했다. 나쁜 의미는 아닌 듯했다. 여기에 이런 식으로 집을 지을 수도 있구나. 생각 보다 공사비가 싸구나. 집 외관 보다 안의 구조가 실용적이구나. 창들이 커서 밖의 경치를 잘 볼 수는 있겠는데 겨울엔 좀 춥겠구나 등등. 마침 아내의 생일이 가까워 오던 차에 그 날에 맞춰 이삿날을 정하고 동네 경운기의 힘을 빌어 짐을 옮기고 돼지 한 마리 잡으며 집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집 하나 짓고 마을 잔치까지 곁 들이고 나니 그렇게 가슴 부듯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 5명 한식구가 그야말로 ‘우리 집’에서 감사 예배를 드리고 큰 대자(大字)로 발 뻗고 함께 누우니 절로 이런 말이 튀어 나왔다. “이제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구나!” 태어나서 제 살집을 제식대로 한번 지어본다는 것 얼마나 큰 복인가. 우리야말로 복된 가정이로다. 그동안 못 다한 가장 노릇일랑 다 날려버리고 이제 당당하게 살아보자꾸나!
이런 집에서 살고 싶었다. 이런 마음으로 짓고 싶었다. 우선 주위 자연 환경과 어울려야 한다. 따라서 색이나 모양에 있어서 절대로 튀지 않도록 하고, 창을 사방으로 골고루 크게 내서 밖의 경치를 안으로 끌어들이되, 내실은 실용적으로 꾸며 편리하게 하고, 화려함이나 욕심이 절제된 단순미 소박미를 살리되 가능한 튼튼하게 짓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집은 사람이다. 집은 집 주인을 닮기 마련이다. 그가 살고 있는 집이 그 사람의 모습이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여기저기 터를 닦고 지어지는 집들을 보면서 이것이 우리의 모습, 우리들의 진면목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님이 주신 이 땅의 산과 강과 들판과 함께 더불어 누리며 살기에는 아직도 역부족인듯 싶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했는데...
김은섭의 포대에서 보내는 글 5
시간을 통해
“뚝뚝뚝” 눈물 콧물을 다 흘리면서 기도를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깊은 고민과 문제가 기적같은 일들로 해결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예배를 도망다니던 친구가 당장이라도 달려올 것 같고, 갈등을 가지고 있는 형제와 극적인 해결이 기대된다. 여러 간증집에서 나오는 것 같은 일들이 내게도 일어날 것 같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대부분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나의 친구는 예배가 지겹다고 하며, 그 형제와의 불편함은 계속되었다. 나는 분명히 나의 기도제목에 대한 응답과 확신을 받았는데, 현실은 너무나 더디고 답답하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내 상처와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마치 홍해가 갈라지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 같은 획기적인 기적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작 가장 치열한 순간은 그 기적의 시간 뒤에 왔었다. 홍해를 가른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아야했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이후에 깊고 어두운 고난의 시간을 헤쳐나가야 했다. 별천지가 펼쳐질 것 같았던 기적 뒤에는 오랜 시간을 두고 이루어져야할 내적인 변화들이 있었다.
내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서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알았다. 그리고 갈등의 시간 속에서 용서가 얼마나 귀한지, 형제사랑이 내 힘으로 안되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내 영혼에 가장 절실했던 것은 시간을 통해 이루어져 있었다.
이전에는 '믿음'이 기적같은 큰 일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게 믿음이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를 기다릴 수 있는 능력이다. 내 삶에 수많은 기적보다는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이 있기를 소망한다.
“주님,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시는데, 나는 성급하기만 합니다. 내게 믿음을 주세요.”
삶의 현장에서 김하기칼럼 7
동양의 과학
일반적으로 동양은 서양에 비해 관념철학과 신비주의가 발전한 반면, 과학은 매우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양에 뉴턴과 파스퇴르와 아인슈타인이 있었던가? 우리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오늘날의 과학문명은 서구의 산물임을 믿고 있다. 하지만 소수점 여섯 자리까지 정확하게 파이(π)값을 구한 사람은 중국 남북조 시대 수학자인 조충지(429~500)라는 걸 알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조충지는 <철경>과 <구장술의>에서 원주율이 355/113라는 정확한 분수값을 제시했다. 의심나면 당장 계산기를 두드려보라. 3.141592가 뜰 것이다. 서양은 1천 년이 지난 1573년에 가서야 겨우 독일의 오토에 의해 이 값을 찾아냈다.
좀 황당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영국의 과학사가 존 버날(John Bernal)에 따르면 최초의 원동기를 발명한 사람은 영국인 제임스 와트가 아니라 중국의 고대인이었다. 이들은 이미 기원전에 석유의 연소로 작동하는 가스터빈 차를 만들어 운행했으며, 조충지는 이를 개량해 절로 가는 지남차(指南車)와 천리선(千里船)을 만들어 운행했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설계했다는 저절로 가는 ‘목우유마’의 전통을 잇는 발명이기도 했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때 서양과 전 세계에 보란 듯이 세계 4대 발명품 활자·나침반·화약·종이를 장엄한 매스게임으로 펼쳐보였다. 4대 발명품들이 미개한 서양을 문명화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과학으로 넘어오면 우리가 어릴 때부터 자랑스레 암기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과 측우기·한글 등을 내세울 것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창의적인 조상의 활동이 있었다. 그게 바로 기원전 500년 경 우리 동이민족이 만주에서 세계 최초로 만든 밭이랑과 고랑이다. 이 새로운 골뿌림 농사법으로 인해 밭작물 수확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해 고대 고조선과 황하문명을 건설하는 물질적 토대가 됐다. 서양이 밭에 고랑을 파고 이랑을 만든 것은 무려 1천 년 뒤 중세 장원에서나 가능했다.
서양인들은 1천 단위로 끊어 수를 센다. thousand(천), million(백만), billion(십억), trillion(조)로 올라가, 가장 큰 수가 10의 63승인 vigintillion이다. 그러나 우리는 1만 단위로, 만, 억, 조, 경, 해, 자로 올라가 10의 88승인 무량대수(無量大數)에서 끝이 난다. 할, 푼, 리, 모, 사로 내려가도 서양 수로는 가늠이 안 되는 10의 -22승인 청정(淸淨)이 가장 작은 수다.
그리고 서양은 십진수가 발달한 반면, 동양은 12진법이 발달했다. 중요한 것은 12진법의 원형이 2진법이고 이것이 오늘날 컴퓨터의 핵심인 디지털 논리회로가 됐다는 점이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2진법이고 컴퓨터고 다 서양의 산물이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 근본을 알고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서양에서 2진법을 처음으로 고안한 사람은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1646~1716)가 맞긴 하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중국에 선교사로 가 있던 친구에게서 신기한 책을 한 권 받는다. 그 책이 바로 ‘주역’으로서 여기에는 2진법의 원리에 따른 64개의 괘가 원과 정사각형으로 배열돼 있었다. 이것에서 힌트를 얻은 라이프니츠는 음과 양, 즉 0과 1로 구성되는 2진법의 이론을 처음으로 고안하게 되고, 이것이 부울, 배비지 등을 거쳐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이 등장한다. 그러나 근원을 따지면 오늘날 디지털 문명의 핵심 소프트웨어인 2진법은 동양의 주역이 마련한 셈이 된다.
나는 여기서 동양의 과학이 서양의 과학보다 더 우수하고 발달됐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도 뛰어난 창조적 과학인자가 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디지털 문명처럼 동서양의 과학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동서양이 만나 시너지를 낸 바람직한 예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이 바로 시계다. 서양의 10진법과 동양의 12진법이 융·복합돼 편리하고도 창조적인 60진법의 시간 단위가 탄생한 것이다. 우스갯말로 세 가지 금이 있단다. 소금·황금·지금. 그런데 그중 가장 값있고 소중한 것은 소금과 황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창조적 시간인, 지금임을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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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 그룹영성치유모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일시 : 6월 22일(금)저녁 7시-23일(토) 저녁 6시, 장소;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주제 : <내적치유오솔길> 인도자: 김영근 원장
회비 : 12만원 등록: 농협121015-52-049140 김영근
참가대상 : 모든 크리스천, 소그룹인도자, 집단상담 실습생 및 상담전공자
가족치유상담연구원 상담 ․ 교육프로그램 안내
<개인상담>
지역교회의 위탁상담을 환영합니다. 전화상담도 가능합니다.
개인상담예약 02-3675-7368, 010-3290-1007.
<치유상담 아카데미 여름 집중강좌(2일간)>
치유상담전문가 훈련과정으로 이론학습과 그룹임상훈련을 실시합니다.
주제 : 쓴뿌리치유지도자과정 6월18-19일(월,화) 오전10시-오후6시
주제 : 감수성훈련(정서치유) 7월 9-10일(월,화) 오전10시-오후6시
주제 : 하나님의 다림줄 7월16-17일(월,화) 오전10시-오후6시
주제 : 전인치유(내적,인격,관계) 7월23-24일(월,화) 오전10시-오후6시
<그룹영성치유모임>
매월 1회씩 마지막 주 금, 토요일에 1박 2일 동안 속마음을 나누며 치유와 회복을 찾아 떠나는 그룹영성모임입니다. 1회기 70분 모임을 10회 가집니다.
6월 모임 주제: 내적치유오솔길 일시: 6. 22(금)저녁7시- 23(토)저녁7시
7월 모임 주제: 성서인물과 떠나는 여행 일시: 7. 27(금)저녁7시- 28(토)
<목민독서교실>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에 읽은 책을 함께 나누는 식사를 겸한 독서치유모임
6월 모임: 6월 21일 저녁7시-9시 도서: 김병오 ․『상처와 슬픔의 치유』.대서
7월 모임: 7월 26일 저녁7-9시 도서: 성혜옥 ․『친밀감이 벽을허문다』. 예영
<김영근원장의 교회집회세미나인도>
총회훈련원: 6월 7, 21일. 대구목사횃불회: 6월 11일.
한일장신대대학원: 6월11-14일 대구정동교회(권오진목사): 6월 17일.
중국교회지도자세미나: 6월24-30일
<교회초청세미나집회인도를 실시합니다.>
교회학교교사 구역장(목장) 세미나 : 상담기술훈련, 대화법훈련, 감수성훈련
교회집회 : 예배설교, 쓴뿌리치유, 전인치유, 가정사역부흥회, 부부행복학교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가족치유상담연구원
5월 가정의 달이 지나가고 6월 호국보훈의 달이 시작되었습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거룩한 희생을 했던 앞서 가신님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저희 가족치유상담연구원이 한국복음주의 기독교상담학회 기관회원으로 지난 5월 26일 자로 가입을 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개인상담을 하면서 종종 얻는 깨달음은 관계가 더 악화되기 전에 상담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데 관계는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이러한 때에 다시 한 번 겸손하게 주님의 긍휼하심을 기대하게 됩니다.
전철을 타서 보면 전에는 독서하는 승객들이 제법 눈에 띄었는데 지금은 다수가 스마트폰을 통해서 정보검색이나 게임이나 TV나 영화시청을 합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서점의 영업이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에서 소중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저희 연구원의 치유상담아카데미는 4과목의 여름집중강좌를 실시합니다;
쓴뿌리치유지도자과정: 6월18-19일, 감수성훈련: 7월 9-10일, 하나님의 다림줄: 16-17일, 전인치유: 23-24일.
매주 월-화에 실시하며 시간은 오전10-오후6시까지입니다.
6월 셋째 주 6월 22일(금) 저녁부터 23일(토)까지 1박 2일로 한국교회백주년 기념관에서 제 4회 마라톤치유영성모임을 갖는데 주제는 <내적치유오솔길>입니다. 저희 연구원을 위해 후원하는 교회와 개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원하시는 분들은 형편에 따라 후원할 수 있습니다(1구좌: 만원).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김영근>
4월 후원 교회 : 동숭교회, 참빛교회, 한마음교회, 유성장로교회, 안동서부교회,
예향교회, 예성교회, 산정현교회, 일산은혜교회, 충신교회.
개인 : 주재철, 김태형, 김은섭, 류해룡, 이은혜, 이지은, 이정산.
I 가족치유상담 연구원의 사역 I
►가정회복중보기도(기도사역) ►엘림상담실(개인상담ㆍ집단상담)
►지역교회위탁상담(협력사역) ►치유상담아카데미(상담교육)
►다문화가정상담(긍휼사역) ►중국교회지도자상담교육(교육선교)
►목민독서교실(독서치료) ►월간쪽지<예수사랑ㆍ가족사랑>발행(문서사역)
►구역장ㆍ교사상담기술훈련(훈련사역) ►교회설교ㆍ세미나(쓴뿌리치유, 전인치유)
주소 : 종로구 연지동 136-46 기독교회관 504호 / 02-3675-7368, (fax)7369
원장 : 김영근목사(010-3290-1007) 상담실장(010-3219-1097)
Cafe.Daum.net/familytherapy0191(daum 다음 카페→가족치유상담연구원)
메일 noksanlove@hanmail.net/ 후원계좌 : 농협351-0355-2650-43 김영근
찾아오는 길 : 종로5가역 2번 출구 대학로 방향 200m ⟶ 한국기독교회관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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