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춘천의 새로운 명소
심 영 희
올해는 춘천에 새로운 명소 두 곳이 시민들과 만나게 되었다.
약사천을 복원해 바닥에는 큰 바위와 조그만 돌멩이를 깔고 10cm정도의 물이 흐르게 하고 몇 군데 징검다리도 놓여 있어 옛 시골의 정취를 맛볼 수 있다.
더욱 춘천시민들을 즐겁게 하는 곳은 반세기를 넘어 문을 활짝 열어 시민들을 반기는 옛 켐프페이지가 있던 자리다. 어느 날 승용차를 운전하고 예전 미군부대 담을 따라 다니던 길로 들어섰는데 뿌옇게 먼지를 날리며 담을 헐어내고 있었다. 아! 신문기사에서 보았던 생각이 난다. 미군부대 담벽을 헐어버린다는 기사였다.
며칠 후 궁금증이 유발해 새벽 다섯 시에 집을 나섰다. 아침운동 겸 걸어서 미군부대 옆 플라타너스 터널 입구에 도착했다. 이 길은 내가 평소에도 즐겨 다니는 길이다. 그 길을 통해서 다녀야 할 목적지도 많았지만 더욱 그 길을 택하여 다니는 이유는 양쪽에 심어진 플라타너스가 서로 손잡고 터널을 만들어주어 아주 시원하고 운치가 있는 길이기도 하고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이곳에 요즈음 플라타너스 나무그늘 사이사이에 같은 나무로 통나무 벤치까지 만들어 놓아 가로수라기보다는 공원이 된 느낌이다. 나무 생긴 모양대로 눕혀놓고 받침대를 받쳐 만들어 놓은 통나무 의자도 새로운 멋을 자랑하고 있다.
한쪽에 심어진 플라타너스 나무를 세어보니 서른세 그루다. 원래는 한 그루 더 있었는데 병이 들었는지 밑동이 잘려있다. 스물일곱 번째 나무도 속으로 병이 들어 나무 속 썩은 부분에서 버섯이 돋아나고 있다. 우리네 인생처럼 병들고 늙어 저렇게 생을 마감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씁쓸하기도 하다. 큰 나무들이 우산처럼 잎을 펼쳐 뜨거운 여름 햇볕을 가리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니 그 도로를 지나다닐 때는 정말 시원해서 좋다.
실은 춘천에 그런 거리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여우고개에서 소양댐가는 길에도 그런 플라타너스 터널이 있어서 그 길을 다닐 때 환성을 지르며 지나가기도 하고 뒤에 따라오는 자동차가 없을 때는 서행을 하며 터널분위기를 감상하기도 했었는데 도로에 응달이 진다는 이유로 무성하던 나뭇가지를 싹둑 잘라버려 닭 발 가로수로 만들어 놓았다고 춘천시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나도 그 나무그늘터널이 없어지자 더욱 미군부대 쪽 나무터널 도로를 즐겨 다녔다. 그 길을 지나다 보면 가끔씩 택시기사들이 시원한 그늘에 택시를 세워놓고 밖에 나와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연인들은 줄지어 서있는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며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아직 제대로 정돈이 안된 캠프페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청보리가 어서 오라고 인사를 한다. 청보리밭을 마주보고 심어진 유채꽃은 꽃잎은 모두 떨어지고 줄기만 추억처럼 남아있다. 또 밭 옆에는 비행기 주차장인 격납고를 보수하던 장비와 자재들이 어수선하게 널려있다. 오늘도 조금 뒤면 인부들이 나와 구슬땀을 흘리는 작업에 열중할 것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봄내 동물농장’이라고 쓴 나무 간판이 보인다. 그 안에는 말도 보이고 맨 앞쪽에 토끼 여러 마리가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어린아이들이 보면 아주 좋아할 것 같다.
맞은 편에는 열 개의 원두막이 있는데 모두 주인이 있는 모양이다. 개인이 아닌 단체의 이름으로 쓰여진 문패가 붙어있다. ‘책 나들이’를 시작으로 ‘고운가락회’ 사이에는 ‘이통장나눔터’도 있고 ‘시청마루’ ‘호랑이쉼터’도 있다.
큰길 건너에는 ‘추억의 윈두막’ 참외랑 수박이랑이라고 쓴 원두막과 농산물쉼터가 보인다. 아직 심어 놓은 참외와 수박은 노란꽃을 피우고 있는데 언제 시민들 입으로 들어갈 것인지. ‘농산물쉼터’원두막 밑에는 통나무를 비슷비슷한 크기로 잘라 만든 열여섯 개의 통나무 의자가 있어 마치 땅속에서 올라온 버섯을 연상케 한다. 한번 통나무 의자에 앉아보고도 싶었지만 요즈음 화재거리인 ‘살인진드기’생각이 나서 아무데나 앉을 수가 없다.
쉼터 옆에는 가지, 호박, 고추, 옥수수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조금 전 메밀 밭을 보고 안쓰러웠는데 이 농작물은 잘 자라고 있다. 메밀꽃으로 유명한 내 고향 평창에 가면 메밀꽃이 싱그럽다. 특히 봉평에서 열리는 이효석문학제 때 들판을 하얗게 물들이는 메밀꽃은 키가 보통 1m이상씩 쭉쭉 뻗어 구경꾼들을 불러모으는데 거름기 없는 땅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이곳 메밀꽃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더욱 10cm도 채 자라지 못하고 꽃을 피운 메밀꽃은 애처롭다 못해 웃음이 나온다.
화단의 경계나 위험한 곳의 방지 턱을 낙엽송을 통째로 줄을 맞춰 놓았는데 뿌리도 나뭇가지도 없는 몸통에서 낙엽송 잎들이 파랗게 돋아나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잘린 몸통에서 온 힘을 다해 새싹을 틔웠을까.
이곳 저곳을 두루 구경하고 가던 길로 되돌아 올까 하다가 춘천역 쪽을 향해 걸었다. 큰 길에 거의 다다르자 ‘행복이 영그는 봄내뜨락’이란 이름이 붙은 원두막이 양쪽에 버티고 있는데 그 사이에는 온갖 농작물이 심어져 있어 야채시장을 연상케 했다.
이곳이 춘천시민들에게 분양했다는 미니농장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열 평 정도씩 나누어진 땅에는 분양 받은 주인의 개성에 따라 그 좁은 땅에다 대여섯 가지 채소를 심은 주인이 있는가 하면, 고구마나 감자, 고추 등 한가지만 통일성 있게 심은 밭도 여러 곳 있다. 유월이라 역시 감자 밭에 하얗게 핀 감자꽃이 눈에 확 들어온다.
밭 경계를 따라 다니며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 재미있고 신기했다. 땅 자체가 기름진 땅은 아니다. 하지만 주인의 노력에 따라 자라는 정도는 너무도 달랐다. 부지런한 주인을 만난 식물들은 물과 영양분을 충분히 얻어 먹고 잘 자라고 있는데 바쁜 주인을 만났거나 게으른 주인을 만난 식물들은 제대로 물과 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체중미달 상태다.
담을 헐어내고 나니 춘천시내에 이렇게 넓은 땅이 있었는데 그동안 담벼락에 싸여 그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몇 십 년을 살아왔다는 사실도 춘천의 역사를 만들어 주고 있다.
빙 둘러 쌓은 담벽과 육중한 철문 앞에는 항상 총을 메고 완전무장 한 미군이 보초를 서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드나들던 미군 병이 사라진 후 춘천역과 중앙로터리를 이어주던 새 도로로 다니면서 그 안쪽 풍경이 많이 궁금했는데 오늘 아침 그 땅을 밟으며 감회가 새롭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드나들던 미군병사들 대신 오늘은 야광조끼를 입은 노인들이 비닐봉투와 집게를 들고 휴지와 쓰레기를 줍고 있고, 부지런한 젊은 부부가 아이를 데리고 나와 원두막과 꽃밭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더니 승용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간다. 정말 부지런한 부부란 생각이 든다.
미군부대가 춘천을 떠난 지도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제 막 시민들에게 개방된 그 넓은 땅은 무엇이 되어 어떻게 시민들과 만날지 예상이 안 된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곳에 공원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춘천시내 절반이 아파트로 변해가는 시점에서 아파트나 상가가 생긴다는 것은 환영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꽃을 심고, 잎이 무성한 나무를 심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그 밑에는 멋스러운 벤치가 놓여 있어 춘천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이 구경하고 편히 쉴 수 있는 명소로 태어나기를 바란다. 춘천 시민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모르겠다. 생각하는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으니 어떤 생각을 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이니까.
경춘선 종점인 춘천역을 통해서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많은데 역에서 길 하나 건너면 되는 이곳은 반드시 관광지로 각광받을 새로운 땅이다. 이 땅을 명소로 만드는 것은 춘천시와 시의원들의 몫이 크다. 또 춘천시민들의 여론도 한몫 할 것이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춘천의 새로운 명소가 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