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좀약 사건
“야, 이 상병. 너 철이 있어 없어?”
중대장의 꾸지람이었다. 통일전망대 옆에서 해안근무를 서던 시절이다. 이곳은 많은 민간인이 왔다. 수십 대의 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줄을 이어 관광을 왔다. 멀리 금강산 언저리와 낙타봉을 비롯한 북고성의 모습을 보기 위한 행렬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여러분을 안전하게 모실 이문래 상병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이곳은 민간인통제선으로 군작전을 위한 구역입니다. 북한군과 직접 대치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개별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소대는 이미 이곳 풍경에 익숙해 있었다. 통일전망대로 오기 전 명파리 입구에 있는 9검문소에서 선탑을 했기 때문이다. 9검문소에서는 선탑교육을 받은 선탑자가 관광버스에 한 명씩 탔다. 단독군장으로 관광객을 안내하고 관광해설사 역할까지 하고, 통일전망대에 도착하면 현지 해설사에게 인계를 했다.
“잘 알겠지만, 이곳은 수많은 민간인 관광객이 오는 곳입니다. 그 때문에 10시부터 17시 30분까지는 내무반 출입을 되도록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따 통일전망대 쪽으로 갈 때는 특별히 복장에 철저히 신경 써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대대장의 특별 지시입니다. ….”
소대장 송호순 중위는 어눌하지만 그나마 표준어에 가까운 말투를 구사하려고 애를 썼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전라도 사투리가 툭툭 튀어나왔다. 그러나 공적인 자리에서는 표준어를 구사하고자 애쓰는 면을 엿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듣는 사람들은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그렇게 중위를 갓 단 소대장은 어느 덧 애티를 벗어던지고 있었다.
통일전망대 옆 해안근무지에 있을 때였다. 관광객을 언제나 접하는 곳이기에 복장을 비롯해서 행동 하나하나를 많이 간섭 받았다. 내무반을 벗어나기만 하면 전투복을 갖춰 입어야 했다. 다른 곳처럼 추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끌고 밖을 나가지 못하게 했다. 그 때문에 전투화를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하루 종일 신고 있어야 했다.
“소대 차렷, 대대장님께 경례!”
그날은 대대장님이 특별 순시를 왔다. 우리 소대원은 좁은 침상에 앉은 채로 차려 자세를 하고 대대장님의 훈시를 듣고 있었다. 이곳 내무반은 40명이 생활하기에는 공간이 좁았다. 그 때문에 각목과 합판을 이용해서 이중침상을 만들었다. 내무반 침상에만 들어오면 모든 생활을 앉아서 해야만 했다.
“제군들 잘 지내지요? 좁은 내무반에서 생활하게 해서 안 됐습니다. 이곳은 특별히 민간인이 많이 오는 곳이므로 활동에 많은 통제를 요합니다. … 그러므로 잘 지켜서 나에게 피해가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대대장의 훈시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앉아 있는 소대원의 자세가 흩어 질 정도로 오랜 시간 같은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연대장과 사단장으로부터 병사들 복장과 행동을 특별히 단속하라는 지시가 내렸다는 것이다. 결국 그날의 자유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제군들 불편함이 있으면 얘기하세요?”
“없습니다.”
한참 훈시를 하고 난 대대장은 갑자기 생활 중에 불편함이 있으면 말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선임하사는 말하지 말라고 손을 입에 대어 합죽이 흉내를 내고 또 손으로 엑스(×)자를 만들면서 강열한 눈빛으로 전했다. 말하면 혼날 줄 알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군 생활에 만족합니까? 보급품도 충분하고 근무환경도 좋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대, 대대장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저희 소대는 정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고, 더, 더 이상 필요한 것도 없습니다.”
소대장 송호순 중위가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도 더듬어가며 대답을 했다. 대대장은 아주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혹시 개인적으로 필요한 물건이나 아픈 곳이 있으면 말하십시오?”
“….”
한동안 그렇게 또 침묵이 흘렀다.
“어, 없습….”
손명국 하사가 막 ‘없다고’ 말을 할 때였다. 거의 동시에 이문래 상병이 이층 침상에서 손을 들었다.
“그래 저기 병사, 뭔가?”
갑자기 내무반은 조용해졌다. 이문래 상병이 손을 들자, 순간 소대장과 선임하사의 얼굴이 확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문래 상병은 순간 망설여졌다. 그렇다고 내무반의 구타사건이나 억압 등에 관해서 말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저, 아니….”
이문래 상병은 말 꼬리를 흐리면서 뭔가 말을 하려다가 멈췄다. 역시 얼굴이 붉어졌고, 뭔가 위기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속으로 얘기를 하지 말자고 맘을 먹으려는데, 대대장의 다그침이 있었다.
“병사, 이름이 뭔가?”
“예, 상병 이문래.”
“마음 놓고 얘기를 하게? 무슨 말이든 상관없네. 사내가 칼을 빼들었으면 무라도 베어야 하지 않는가?”
“정말 얘기해도 괜찮겠습니까? 대대장님.”
“그래 무슨 말이든 상관없으니, 말을 하게.”
사실 이문래 상병은 식기세척장과 샤워장에 물이 잘 안 나와서 멀리 있는 통일전망대의 것을 사용하니 개선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몇 번 선임하사와 소대장에게 얘기를 했는데도 물품이 없다고 미뤄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급대에서는 고쳐 쓰라는 얘기만 하고 있고, 부속을 대주지 않았다. 그러고 소대에서는 시중에서 간단하게 살 수 있는 것인데도 그냥 미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식기 당번 병사들이 끼니때만 되면 식기를 안고 통일전망대 세면대까지 가서 식기를 닦았다. 식기 당번들에게는 여간 고통이 아니었다. 게다가 샤워를 할 때는 날을 잡아서 사정을 해가며 통일전망대 샤워장을 빌려 썼다. 고참들은 그나마 쉽게 가서 쓸 수 있었지만, 신참들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그 때문에 한 달 이상 샤워를 하지 못하고 손을 따뜻한 물에 씻지 못해서 손이 트고 피가 나고 하였다. 신참들은 눈치가 보이고, 그쪽에서 아까 했는데 또 하나며 못하게 막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선임하사가 계속해서 대대장이 못 보게 손으로 엑스(×)를 짓든가 주먹을 쥐어 보였다.
“예, 무좀이 아주 심합니다. 무좀약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문래 상병은 그렇게 무좀약이 필요하다고 둘러댔다. 사실 군대에서 주는 무좀약인 피엠(PM)은 아프기만 했지, 잘 낫지 않았다.
“까르르….”
병사들은 모두들 웃었다. 상황을 알면서도 너무나 의외의 말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은 모두들 할 말이 있었다. 그러나 그냥 넘어가는 것이었다. 소대장과 선임하사도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알겠네. 가장 잘 듣는 무좀약을 구해 보겠네.”
대대장은 그렇게 약속을 하면서 같이 온 전령에게 무좀약을 적도록 하였다.
“야, 이 상병. 너 상병 맞아. 그딴 걸 대대장님께 말하면 어떻게 해. 송 중위, 너 알아서 해.”
대대장이 소대 내무반을 벗어나자 같이 배웅을 나갔다가 중대장이 다시 돌아와서 한 말이다. 그렇게 소대장에게 말을 하고는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나갔다.
“이 상병. 이 새끼. 이리 와.”
소대장 대신 선임하사가 나섰다. 그날 이문래 상병은 조인트를 몇 대 맞고, 머리에 주먹 같은 혹이 날 정도로 원산폭격을 하고, ‘죽을죄를 졌다.’고 하고서야 간신히 침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야, 이 상병. 무좀약이다. 대대장님께서 거금을 투자하셨다. 알겠나? 버리려고 했는데, 혹시 대대장님이 확인할 때 어떤 대답을 할 줄 모르니, 네게 준다.”
정말 이틀 후 선임하사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무좀약을 들고 왔다. 카네스텐연고라는 것이었다. 이문래 상병은 그날 평생 잊을 수 없는 하해와 같은 대대장님의 가호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