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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마구리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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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스크랩 팔영산(八影山 606.7m)/전남 고흥
왕마구리 추천 1 조회 470 10.12.01 00:15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팔 영 산(八影山)

 

 높    이  606.7m 
소 재 지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영남면 

 

 

【 개     관 】

팔영산은 고흥군의 진산일 뿐만 아니라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기암절경의 영암 월출산(812.7m), 해남 달마산(495m)과 더불어 암봉으로 연이어진 골산으로서는 호남 3대 명산이라 할 수 있는 특출한 산으로, 2002년 UN이 정한 '산의 해'를 맞아 산림청에서 선정한 '우리나라 100대 명산'의 하나이다.

여덟 개의 암봉이 한데 뭉쳐 남북으로 도열하듯이 솟아 있고, 남해의 수많은 섬들을 그림같이 내려다보면서 아기자기하고 스릴넘치는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수려한 산이며 동편에는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산은 높은 편은 아니지만 험준하고 변화무쌍하며 위험한 곳이 있으나 고흥군에서 험로에는 철계단과 쇠줄 등 안전시설을 설치하여 별 다른 장비 준비없이도 등정이 가능하다. 그리고 1봉에서 8봉까지는 각 봉의 고유 이름을 표지석에 새겨 암상에 설치하여 등산객의 편의를 도모하는 등 세심한 배려까지 해 두었다.

팔영산의 정상은 깃대봉으로 8봉 남쪽에 약 500여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이곳에서 뒤돌아보면 팔영산의 8봉 능선이 한 눈에 조망이 된다.

 

 

◎ 팔영산의 봉우리들

 

▲ 제1봉 유영봉(491m)

 

▲ 제2봉 성주봉(538m)

▲ 제3봉 생황봉(564m) 

 

 

▲ 제4봉 사자봉(578m) 

▲ 제5봉 오로봉(579m) 

▲ 제6봉 두류봉(596m) 

▲ 제7봉 칠성봉(598m)

▲ 제8봉 적취봉(591m) 

 

 

【 산행코스 】 팔영산도립공원주차장→능가사→팔영교→능가사부도전→팔영산야영장→팔영소망탑/Y자갈림길(1봉&8봉갈림길)→흔들바위/정자쉼터 갈림길(1봉&2봉갈림길)→1봉 유영봉(491m)→2봉 성주봉(538m)→3봉 생황봉(564m)→4봉 사자봉(578m)→5봉 오로봉(579m)→6봉 두류봉(596m)→7봉 칠성봉(598m)→8봉 적취봉(591m)→┤자삼거리/깃대봉갈림길→├자갈림길/'상천' 우물갈림길→헬기장→안양재 공터사거리/휴양림갈림길→ 팔영산 깃대봉(606.7m) →안양재 공터사거리→'상천' 우물/빨치산은거지 갈림길→칠성암지/나무데크쉼터→칠성봉갈림길→시멘트포장 임도→탑재/시멘트포장 임도→편백건강숲길 갈림길/비포장임도→팔영산야영장/원점회귀→팔영교→능가사→팔영산도립공원주차장

 

 

산행일자 】 2010년 11월 27일(토)

【 산행시간 】 총 4시간 12분 소요(중식 및 휴식 : 1시간 4분 포함)/실제 산행시간 : 3시간 8분 소요

【 날     씨 】 흐리고 가끔 비

【 참 석 자 】 김동수, 이창신, 천영면(9정맥동우회) 외 가고파산우회 회원들 30여명

【 교 통 편 】 전세버스 이용

<< 갈 때 >> 부천시청앞/집(04:58)-(Taxi)→부천역(05:08~05:22)→사당역(06:06~06:32)-(경유지:양재, 잠실, 가락시장, 복정역)→송파I.C.-(도시외곽순환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주암I.C.(11:29)-(27번국도)→연봉교차로-(855번지방도)→점암면-(14번군도)→팔영산도립공원주차장(12:26)

<< 올 때 >> 팔영산도립공원주차장(17:30)-(갈때의 역순)→잠실역(22:35)→교대역(22:55~23:10)→부천(00:08)→집(00:20)

【 산 행 기 】

이번 팔영산 산행은 9정맥동우회의 2010년 11월 정기산행으로 실시가 되었다.

9정맥(특히 호남, 낙남, 낙동, 한남금북, 금북정맥) 종주산행을 함께 진행하여 9정맥산우회를 탄생시킨 산파역을 한 가고파산우회를 찾아 만 3년만에 일반 산행을 실시하기로 한 이번 산행에서는 많은 회원들이 개인 사정으로 불참을 하여 9정맥동우회 회원은 단 3명만이 참석을 하게 된 산행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000년 6월 18일 산행에 이어 만 10년 5개월만에 다시 찾게 된 산행지였다.

새벽 5시가 채 되기 전에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선 후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이 날을 넘긴 밤 12시 20분경. 총 19시간 20분여가 걸린 긴 여정이었다.

팔영산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과 간단한 뒤풀이를 마치고 다시 주차장을 뒤로 하고 귀가길에 오르는데 소요된 시간은 약 5시간 정도였으니, 왕복 이동에만 산행에 소요된 시간의 약 3배에 가까운 14시간이 넘게 걸린 일정이었다.

10여년 전 무박산행으로 이곳 팔영산을 찾았었기 때문인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고 산행 코스 또한 첫 산행지처럼 생소하기만 하다. 100대 명산의 하나로 남해의 다도해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절경을 감상하며 아기자기한 암릉산행을 기대하였으나 잔뜩 흐린 날씨에 간간히 내리는 가랑비로 주변의 풍광은 제대로 조망이 되지 않고, 미끄러운 바윗길을 오르내리는데 잔뜩 신경만 곤두세우는 산행이 되었다.

14시간여의 이동시간을 5시간여의 산행에서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것으로 보상받으려던 계획 또한 날씨때문에 무산된 산행이 되어버렸다.

 

▲ 능가사 입구 편백건강숲길 갈림길

 

12:26~12:43=>팔영산도립공원주차장/능가사

     자다 깨다를 반복하여 집을 출발한지 7시간 30여분 만에 산행들머리인 팔영산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을 하였다. 주차장에 내리자마자 산행에 들어가 약 200여m를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니 능가사 천왕문 직전 Y자 갈림길에 이르게 되는데, 우측의 포장길은 '편백건강숲길'가는 길로 이 길을 따라 팔영산 8봉인 적취봉으로 오를 수도 있다.

이곳에서 편백숲까지는 약 3km이고, 편백숲을 지나 편백건강숲길인 비포장 임도를 따라서 탑재를 거쳐 적취봉으로 오르게 되는데 적취봉까지 총 거리는 5km이다.

좌측 길을 따라 50여m를 더 들어가면 능가사 천왕문에 이르게 된다.

산행에 앞서 능가사 경내를 먼저 탐방하기 위해 천왕문을 들어선다.

 

♧ ♧ 능가사(楞伽寺)

*소재지: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369번지 팔영산(八影山) 기슭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이다. 고흥은 조선시대에 흥양현(興陽縣)이라 불렸으며 팔영산은 때로 팔전산(八顚山)이라고도 하였다.

절에서 전하기로는 신라 눌지왕 원년(417)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창건했다고 하는데, 이 지역이 5세기에는 백제 땅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신라의; 승려 아도에 의한 능가사의 창건설은 다소 문제가 있다. 그리고 삼국시대나 그 이후의 통일신라시대 또는 고려시대에 고흥 지방에 능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다른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결국 현재로서는 능가사가 언제, 누구에 의하여, 어느 시대에 창건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이렇듯 창건 이후 연혁은 잘 알 수 없지만 보현사(普賢寺)라는 절을 훗날 능가사로 고쳐 불렀다고 하므로 조선 전기에 이곳에 절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왜냐하면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흥양현 불우(佛宇)>조에 보현사는 불개사(佛盖寺)와 함께 팔전산(八顚山)에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16세기에 팔영산에는 능가사의 전신인 보현사라는 절이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능가사는 적어도 조선 전기에는 팔영산에 존재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능가사에 관한 문헌으로는 1712년(숙종 38)에 쓰여진 <능가사시창전후단월록서(楞伽寺始創前後檀越錄序)>, 홍문관 부제학이었던 오수채(吳遂采,1692∼1759)가 1726년(영조 2)에 지은 것으로서 임진왜란 이후 절의 중창에 관하여 기록해 놓은 <전라남도 흥양군 팔영산 능가사사적비>, 그리고 능가사에 속한 암자의 중수 기록인 <팔영산서불암중수기(八影山西佛庵重修記)>와 <만경암중수기(萬景庵重修記)> 등이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절의 연혁에 관해 가장 자세하게 수록된 것은 오수채의 <능가사사적비>이다. 이 비는 현재 절의 경내에 전해지고 있는데, 비문에 의하면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된 절은 임진왜란 때 왜구들에 의하여 폐사가 되어 버렸다가 1644년(인조 22년)에 벽천 정현(碧川正玄) 대사가 중창하였으며, 벽천이 입멸한 후 그의 제자인 민정(敏淨)·의헌(義軒)·상기(尙機) 스님 등이 스승을 이어서 절을 더욱 크고 새롭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조선 전기에 보현사라는 절이 팔영산에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지자 17세기 중엽에 벽천 스님이 중창하고 이름을 고쳐 능가사라 했던 것이다.

 

▲ 능가사 경내에서 산행 시작 전 기념촬영


벽천에 의해 중창된 당우가 당시 모두 20여 동이 되었다고 하므로 절의 규모가 적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그 당시의 전각 이름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다른 기록을 통하여 일부 전각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즉 현변 침굉(懸辯枕肱, 1616∼1684) 스님의 《침굉집》에 실려 있는 <팔령산능가사대전모연문(八嶺山楞伽寺大殿募緣文)>을 통하여 법운전(法雲殿)이 먼저 세워지고, 이후 청심료(淸心寮)와 흘령료(屹靈寮)가 만들어진 뒤에 다시 대전을 세우기 위하여 널리 시주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총 백암(性聰栢庵, 1631∼1700) 스님의 백암집 에 실려 있는 <팔영산능가사팔상전권연소(八影山楞伽寺八相殿勸緣疏)>를 통해서도 17세기 후반에 팔상전을 세우기 위한 불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17세기에 절에는 법운전을 비롯해서 청심료·흘령료·대전 팔상전 등의 전각이 들어서 있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도안 월저(道安月渚, 1638∼1715) 스님의 《월저당대사집》에 <호남능가사염송설화수재발(湖南楞伽寺拈頌說話繡梓跋)>이 실려 있는데, 이를 통해 1700개의 공안(公案)이 실린 《염송설화》라는 책을 절에서 판각 간행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시기는 아마도 18세기 초기였으리라고 짐작되는데 실제로 1707년(숙종 33)에 선문염송집과 선문염송설화를 능가사에서 간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도안의 제자인 설암 추붕(雪巖秋鵬, 1651∼1706) 스님이 능가사의 수려한 경치를 읊은 <제팔영산능가사(題八影山楞伽寺)>라는 시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절은 한 때 호남의 승경지로 이름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17세기 중엽의 중창 이후 18세기 전반에는 불서를 판각 간행할 수 있을 만큼 절이 번성했던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천왕문 앞에서 조망된 팔영산


그러나 17세기의 중창 이후 절이 어떤 변천을 해 왔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실학자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쓴 《가람고(伽藍考)》에는 능가 이름이 보이지 않으며, 1779년(정조 3)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능가사와 중흥사(中興寺)는 팔전산(八顚山)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듯하며. 비슷한 시기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의 전라도 흥양 사찰조에 ‘능가사는 팔전산에 있으며 현의 동쪽 30리이다’라고 되어 있고, 이어서 ‘보현사·은적사(隱寂寺)·불개사(佛盖寺)는 지금은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곧 능가사가 18세기 후반에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음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또한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어디인가라는 관점에서 전국 각지의 정치 경제 풍속 인심 등을 적은 인문 지리서 《택리지(擇里志)》를 지었는데, 그 중의 <복거총론(卜居總論)> 가운데 산수(山水)조에서 특별히 능가사를 언급하고 있기도 하다. 그 내용을 보면, ‘능가사는 팔영산 아래에 있는데 옛날 유구(琉球)의 태자가 표류하여 와서 이 절 앞에서 관음보살에게 7일 밤낮을 기도하여 고국에 돌아가게해 달라고 청하였더니 대사(大士)가 나타나 태자를 옆에 끼고 파도를 넘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절의 스님이 그 형상을 벽에 그려 놓았는데 이중환 당시에도 그 그림이 그대로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18세기 후반에 능가사는 폐사된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사세를 유지하고 있었고 관음신앙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는 셈이다.

 

♧ 능가사 천왕문과 목조사천왕상(楞伽寺 天王門과 木造四天王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24호

*소재지:전라남도 고흥군 정암면 성기리 371-1

 

 

 

 

 

사천왕상은 원래 인도 재래의 방위신인데 불교에 흡수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사천왕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는 대략 6세시 후반이나 7세기 초로 보고 있다. 감은사지 사적기에 사천왕상이 조각된 것을 보면 7세기 말에 사천왕상이 많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8세기가 되면 사천왕상은 인왕상과 함께 만들어지다가 9세기 이후부터는 주로 석탑이나 부도의 기단부에 활발하게 조각된다.

1995년 천왕문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초창연대는 조선 현종7년(1666)이며, 중창은 조선 순조24년(1824), 3창은 일제강점기인 1931년으로 세 번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를 뒷받침해주는 자료로 조선 숙종16년(1690)에 세운 '능가사사적비'에 천왕문과 사천왕상에 대한 시주자 명단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천왕문의 상량문에서 밝혀주고 있듯이 초창연대가 1666년이므로 사천왕상 역시 이 때 동시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 능가사 명동종

*보물 제1557호(2008년3월12일 지정)

 

 

동종이란 절에서 시간을 알리거나 대중을 모을 때 사용되는 불교공예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식법구의 하나이다.

이 동종은 현존하는 김예립의 작품 가운데 가장 뒤늦은 시기인 조선 숙종24년(1698)에 제작된 작품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조선시대 동종으로서는 대형에 속한다.

이 종의 전체적인 외형은 상부는 좁고, 하부로 가면서 점차 넓어져 여수 흥국사 동종과 유사하며, 세부 양식을 보면 용뉴(종을 매다는 부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 또한 음관을 두지 않고 조그마한 원형의 구멍으로 대신하고 있다. 종의 윗부분에는 범자를 새겨 놓았고, 보살입상을 조각하였다.

종의 아랫부분에는 두 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덩굴풀이 뻗어나가는 모양의 당초문과 꽃을 장식하였다. 이 종의 특색은 종의 몸 중앙부분에 나타나는 팔괘의 문양으로 이는 조선시대 동종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예라 하겠다. 김예립 범종의 완숙한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17세기를 대표하는 범종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수작이다.

 

♧ 능가사 대웅전(楞伽寺 大雄殿)

*보물 제1307호(2001년2월23일 지정)

 

  

 

능가사는 팔영산 아래에 있는 평지사찰로 일명 보현사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던 것을 조선 인조22년(1644)에 벽천대사가 다시 지어 능가사라 하였다.

18세기 중엽에 중건된 이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 57.58평의 건물로 팔작지붕이다. 지붕은 약간 거칠게 다듬은 중간이 굵고 위,아래로 가면서 가늘게 된 기둥의 배흘림 형태이며,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랐지만 정면 기둥머리의 안초공 수법과 건물 내,외부에 연봉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보물로 지정된 영광의 불갑사대웅전, 부안의 개암사대웅전과 그 맥을 같이 한다.

특이한 점은 건물 방향이 입구에 맞춰 북향으로 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의 건물이지만 규모가 크고, 건축양식이 우수하며 보존상태도 양호하다.

지금의 모습은 최근에 해체,보수한 것이다.

 

♧ 능가사 사적비(楞伽寺 事跡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70호

 

 

 

사적비란 절의 내력을 적어 놓은 비를 말한다.

사적비에 따르면 신라 눌지왕 원년(417)에 아도화상이 보현사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처음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버린 것을 인조22년(1644) 정형대사(호 벽천)가 여름에 수행하다가 꿈에 산의 남쪽에 옛 절터를 발견하여 전각, 요사채, 불상, 탱화, 종각, 목여각 등 불사를 하면서 능가사로 다시 일으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적비는 방형(사각형)에 가까운 자연석 좌대 위에 귀부를 올리고 그 위로 비신과 이수(비석의 지붕)를 갖춘 완전한 형태의 비석이다.

비문에 따르면 능가사는 원래 보현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어졌으나, 지리지 등에는 별개의 사찰로 각각 기록되고 있다.

 

▲ 능가사 응진전

 

응진전 뒷편의 능가사 사적비를 끝으로 경내의 탐방을 마치고, 응진전 앞 마당 좌측의 협문을 빠져 나가 '팔영교' 다리를 건너 팔영산야영장으로 향하면 우측에 '능가사 부도전'이 보인다.

우측의 야영장 임시주차장과 좌측의 안내소와 야영장 사이의 길을 따라 올라가면 Y자 갈림길에 이르게 되는데 갈림길 중앙에 이정표(↖유영봉<1봉> 2.7km/↗적취봉<8봉> 3.2km)가 있다. 오늘 산행은 좌측의 길을 들머리, 우측의 길이 날머리로 정하여 진행되므로 이곳 갈림길이 원점회귀 지점이다.

이곳 갈림길을 기점으로 따지면 1봉~8봉을 돌아 올 경우는 약 7.4km(야영장-2.7km-제1봉-1.5km-제8봉-3.2km-야영장)이고, 팔영산 정상인 깃대봉을 다녀오게 되면 약 8km가 되는 산행거리이다. 이 중 1봉 유영봉에서 8봉 적취봉까지 약 1.5km의 암릉구간을 통과하게 된다.

좌측 길로 들어서면 산길이 시작되는 입구에 '팔영소망탑'이 자리를 하고 있다.

 

♧ 능가사 추계당 및 사영당 부도(楞伽寺 秋溪堂 및 泗影堂 浮屠)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64호

 

부도란 승려의 사리와 유골을 안치한 묘탑이다.

이 부도는 조선시대 후기 승려로 사제간인 추계당과 사영당의 부도이다. 능가사 외곽의 계곡 곁의 9기의 부도군 가운데 추계당과 사영당 부도는 원 위치로 알려져 있다.

추계당 부도는 석종형으로 기단부는 방형의 하대석 위로 8각의 복련을 새겼다. 16엽의 연화문으로 화려한 문양이 없어 오히려 소박한 편이다. 그 위에 원형의 홈을 파고 탑신부를 얹었다. 탑신부 하대에는 돌아가면서 물고기, 게 등이 조각되었다.

북쪽인 두 개의 유곽 사이에 방형의 위패모양을 새기고 그 안에 추계당이라는 당호를 새겼다.

사영당 부도는 석종형과 8각 원당형의 양식에서 벗어난 이형부도이다. 일반적인 부도와는 달리 사영당 부도는 복련과 방형의 하대석이 한돌로 되면서 그 위에 바로 중석이 이어지고 양련이 생략되어 있다. 하대석 귀퉁이에 각기 4방을 향하고 있는 용두를 조각하였고, 그 위로는 한 돌로 연결된 복련이 이어지고 있는데, 간 면이 2엽씩 모두 8엽의 연화문이 장식되었다. 북쪽에는 직사각형의 위패모양을 새기고 그 안에 사영당이라는 당호를 새겼다.

이들 부도의 조성연대는 추계당 부도는 17세기 중반, 사영당 부도는 17세기 후반 경으로 보인다.

 

 

▲ 팔영산야영장 끝의 Y자 갈림길의 이정표와 산행들머리인 팔영소망탑

 

12:49=>팔영소망탑

     소망탑 우측의 길을 따라 산길로 접어든다.

 

▲ 팔영소망탑 뒤편의 팔영산 제1봉 유영봉가는 산길 입구 

 

 

▲ 완만한 오르막의 산길을 따라서...

 

경사가 급하지는 않지만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면 이정표(←등산로아님/→흔들바위)가 있는 ┬자 갈림길(13:04).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이어가 정자 쉼터가 있는 제1봉(유영봉)과 제2봉(성주봉) 갈림길인 흔들바위에 오른다.

 

▲ 제1&2봉의 갈림길인 흔들바위/정자쉼터

 

13:10~13:14=>정자쉼터/흔들바위

     제2봉가는 길 입구에 흔들바위가 있는데 아무리 흔들어 보아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우측의 2봉으로 가는 길을 택해 올라가면 제1봉인 유영봉과 제2봉인 성주봉 사이의 안부에 오르게 된다.

이정표(↑유영봉<1봉> 0.8km/↓능가사 1.9km/→성주봉<2봉> 0.6km, 만경암터 0.1km)와 위치번호 '팔영산7-1'이 있는 좌측 길을 따라 약 3분여의 완만하고 편안한 오르막길 후 경사를 느끼게 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이어간다.

납작해진 흙무덤 2기가 나란히 있는 곳(13:20)의 이정표(↑유영봉<1봉> 0.3km/↓흔들바위 0.5km)를 대하고 가파르게 오르면 유영봉 밑 이정표(←암벽등반<절벽위험>/↓흔들바위, 능가사/→노약자,어린이 우회)와 위치번호 '팔영산7-2'가 있는 갈림길에 이르게 된다.

 

▲ 제1봉을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해

 

우측의 쉬운 우회로를 버리고 좌측의 암벽 코스를 택해 올라가 바위 틈새를 빠져 나가면 전면으로 남해바다가 펼쳐져 내려다 보이는 바위전망대가 나타나고, 이를 지나면서 암벽구간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된다.

 

 ▲ 유영봉을 오르는 암벽구간이 시작되는 지점

 

 

 

 

 

▲ 유영봉을 오르는 암벽구간

 

바위면에 박아 둔 쇠계단, 쇠고리와 철제난간 등 안전시설을 이용하여 비가 내려 미끄러운 직벽의 바위면을 타고 오르면 팔영산의 첫번째 봉우리인 유영봉에 올라서게 된다. 오늘 산행 코스 중 가장 난코스의 바위 직벽 구간이다.

 

 

 

               ▲ 유영봉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들

                   (사진 上) 남해바다

                   (사진 中) 동쪽 지능선상의 신선대

                   (사진 下) 가야 할 제2봉 성주봉, 제3봉 생황봉, 제4봉 사자봉

 

13:40~14:00=>제1봉 유영봉(491m)

儒 影 峰

유달이 아니지만 공명의 도 선비레라

유건은 썼지만 선비풍체 당당하여

선비의 그림자 닮아 유영봉 되었노라

 

     유영봉 아래 넓은 암반에 자리를 잡고 바람을 피하며, 김동수님이 준비한 막걸리 한 잔씩을 돌리며, 9정맥동우회 전 회원(3명)이 한 자리에 모여 화기애기한 분위기속에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한다.

 

▲ 제1봉과 제2봉 사이의 이정표

 

식사를 마치고 유영봉을 넘어 내려서면 흔들바위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자 갈림길.

이정표(↑성주봉(2봉>/↓유영봉<1봉>/→능사사 2.3km)와 위치번호 '팔영산7-3'이 설치된 갈림길을 뒤로 하고 바위지대에 설치된 철계단을 지나 쇠줄을 잡고 오르면 이정표(↑성주봉(2봉>/↖휴양림 0.8km/↓유영봉<1봉>)와 위치번호 '팔영산7-4'이 설치된 휴양림 갈림길이 나타난다.

 

 

 

 

▲ 성주봉을 오르는 암벽길

▲ 제2봉 성주봉 아래의 이정표

 

휴양림 방향의 산길은 제2봉인 성주봉을 우측에 두고 사면길로 진행하게 되어 있는데, 이 산길은 능선분기봉인 성주봉에서 북동쪽 신선대 방향으로 뻗은 능선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다시 나타나는 철계단을 오르고 난간이 설치된 암벽지대를 통과하면 두번째 봉우리인 성주봉이다.

 

 

 

               ▲ 유영봉에서 바라본 제2봉 성주봉(사진 上)

                   성주봉에서 뒤돌아본 유영봉과 남해바다 전경(사진 中)

                   성주봉 오름길에서 뒤돌아본 전경(사진 下)

 

               ▲ 유영봉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

                   (사진 上) 제3봉인 생황봉

                   (사진 下) 제3봉인 생황봉과 제4봉인 사자봉

 

14:14=>제2봉 성주봉(538m)

聖 主 峰

성스런 명산주인 산을 지킨 군주봉아

팔봉 지켜주는 부처같은 성인바위

팔영산 주인되신 성주봉이 여기로세

 

     지나온 유영봉을 한 차례 뒤돌아 보고, 가야할 제3봉과 4봉인 생황봉과 사자봉을 조망해 본다. 

좌측으로는 지능선상의 암봉인 신선대와 여자만과 남해 바다가 조망이 된다. 편안한 암릉길을 잠시 따르면 '생황봉' 푯말이 나타나고, 다시 바윗길 오르막이 이어진다, 좌측 산 아래로는 휴양림이 조망이 된다.

이후부터 계속 암봉을 오르고 넘어 내려가는 것을 반복하게 된다.

 

 

 

 

               ▲ 제3봉 생황봉에서 바라본 전경들

                   (사진 1) 신선대

                   (사진 2) 가야할 제4봉 사자봉, 제5봉 오로봉, 그리고 제6봉인 두류봉

                   (사진 3) 제4봉 사자봉

                   (사진 4) 뒤돌아본 성주봉과 신선대

 

14:21~14:22=>제3봉 생황봉(564m)

笙 簧 峰

열아홉 대나무통 관악기 모양새로

소리는 없지만 바위모양 생황이라

바람결 들어보세 아름다운 생황소리

 

 

               ▲ (사진 上) 사자봉 정상에서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 下) 가야할 제5봉인 오로봉과 제6봉인 두류봉

 

14:27~14:29=>제4봉 사자봉(578m)

獅 子 峰

동물의 왕자처럼 사자바위 군림하여

으르렁 소리치면 백수들이 엎드리듯

기묘한 절경속에 사자모양 갖췄구려

 

▲ 오로봉에서 바라본 제6봉 두류봉

 

14:31=>제5봉 오로봉(579m)

五 老 峰

다섯명 늙은 신선 별유천지 비인간이

도원이 어디메뇨 무릉이 여기로세

5신선 놀이터가 5로봉 아니더냐

 

     오로봉을 내려서면 '두류봉' 안내 푯말이 있는 안부(14:44~14:49). 철계단길과 철제난간이 설치된 암벽길을 극복하면 제6봉인 두류봉 정상이다.

 

 

 

               ▲ (사진 上) 두류봉을 오르는 철계단길

                  (사진 中) 두류봉을 오르며 뒤돌아 내려다본 암벽길

                  (사진 下) 두류봉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 두류봉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 전경들

                   (사진 上) 가야할 제7봉인 칠성봉

                   (사진 下) 신선대와 남해

 

14:44~14:49=>제6봉 두류봉(596m)

頭 流 峰

건곤이 맞닿은 곳 하늘문이 열렸으니

하늘길 어디메뇨 통천문이 여기로다

두류봉 오르면 천국으로 통하노라

 

     내려서면 이정표(←휴양림 0.8km/↑칠성봉(7봉>/↓두류봉<6봉>/→능사사 2.6km)와 위치번호 '팔영산7-5'가 설치된 안부사거리이다.

 

 

              ▲ (사진 上左) 제6봉 두류봉에서 내려가는 길

                 (사진 上右) 제7봉인 칠성봉을 오르는 바위길

                 (사진 下左) 제6봉과 제7봉 사이의 안부사거리 전경

                 (사진 下右) 안부사거리의 이정표 

 

 

다시 바윗길을 따라 올라 가 석문을 통과하고 제7봉인 칠성봉에 오른다.

 

 

 

               ▲ (사진 上左) 칠성봉 아래 주상절리 형태의 바위들

                   (사진 上右) 칠성봉 정상 직전의 석문

                   (사진 下) 칠성봉 정상에서 제8봉인 적취봉을 배경으로...

 

               ▲ 제7봉인 칠성봉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들

                  (사진 上) 두류봉과 신선대

                  (사진 下) 남해의 해창만 일대 전경

 

14:58~15:02=>제7봉 칠성봉(598m)

七 星 峰

북극성 축을 삼아 하루도 열두때를

북두칠성 자루돌아 천만년을 한결같이

일곱개 별자리 돌고도는 칠성바위

 

     칠성봉을 내려서면 이정표(↑적취봉(8봉>/↓칠성봉<7봉>/→탑재, 능가사)가 설치된 ├자 갈림길. 갈림길을 뒤로 하고 가파르지 않은 암릉길을 따라 무명암봉에 오르면 밑에 넓은 암반지대 전망대(15:09~15:11)가 있는데 흙무덤 1기가 자리를 하고 있다.

 

 

 

▲ 적취봉

 

전망대에서 조망되는 적취봉을 향해 무명암봉을 내려선 후(15:13) 잠시 오르면 제8봉인 적취봉 정상이다.

 

 

 

               ▲ (사진 上) 적취봉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 中) 적취봉 정상에서 칠성봉 방향으로 뒤돌아본 전경

                   (사진 下) 적취봉 정상에서 바라본 깃대봉가는 암릉길

 

15:18~15:21=>제8봉 적취봉(591m)

積 翠 峰

물총새 파란색 병풍처럼 첩첩하여

초목의 그림자 푸르름이 겹쳐쌓여

꽃나무 가지엮어 산봉우리 푸르구나

 

     적취봉 암봉 정상에 오름으로서 아기자기한 암릉길은 끝이 난다.

적취봉을 뒤로 하고 팔영산의 정상봉인 깃대봉을 향해 내려가면 ┤자 삼거리(15:24~15:25)에 이르게 되는데 이정표((↑탑재 1.2km, 승가사 3.2km/↓적취봉<8봉>/←깃대봉 0.3km, 휴양림 0.9km)와 위치번호 '팔영산7-6'이 설치된 깃대봉 갈림길이다.

 

 

▲ 깃대봉갈림길 전경과 이정표

 

이곳에서 직진의 내리막길을 따라 능가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여도 팔영산의 8개 암봉을 종주한 상태라 별 문제는 없지만 3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정상인 깃대봉을 빠트리고 산행을 마무리한다는 것은 뭔가를 빼 먹었다는 생각이 계속 남고, 하산 후에도 아쉬움이 들 것같아 깃대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 깃대봉가는 편안한 산길 

 

▲ 우물갈림길과 헬기장

 

좌측의 편안한 능선길을 따르면 흙무덤 1기(15:26)와 ├자 갈림길의 이정표(↑깃대봉, 휴양림/↓적취봉/→우물 50m, 탑재 1.2km, 능가사 3.1km)를 차례로 지나 헬기장에 이르게 되고, 잠시 후에는 팔영산 등산안내도, 이정표(↑깃대봉 0.1km/↓적취봉<8봉>/←휴양림 0.8km/→탑재, 능가사)와 위치번호 '팔영산7-7'이 설치된 공터 사거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지도상의 안양재이다.

 

 

▲ 안양재 공터사거리 전경과 이정표

 

15:30=>안양재/휴양림갈림길

     깃대봉 정상을 올랐다,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내려와 우측의 탑재, 능가사 방향의 낙엽덮인 사면길을 따라 하산을 하게 된다.

직진의 길을 따라 잠시 완만하게 오르면 '깃대봉' 표지석이 있는 정상에 도착을 하게 된다.

 

 

▲ 깃대봉 정상표지석과 팔영산 8봉능선을 배경으로... 

 

▲ 팔영산 팔봉능선을 배경으로...

 

15:32~15:41=>팔영산 깃대봉(606.7m)

     정상에는 작은 정상표지석만 눈에 들어온다. 삼각점과 봉수대의 흔적이 있을 것인데 보이지 않아 해양경찰 통신부대가 있는 직진 방향으로 더 진행하여 확인을 하려다 정상표지석을 대한 것으로 만족을 한다. 실제 정상은 직진 방향으로 약 50여m 떨어진 해양경찰 통신부대가 자리한 곳이란 생각이 든다.

정상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뒤돌아 보면 지나온 팔영산 8봉 능선이 조망이 되는데 가랑비속에 짙은 운무 현상이 심해 선명하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 안양재 공터사거리에 내려선다.

 

 

▲ 탑재가는 낙엽쌓인 사면길

 

공터 사거리에서 탑재 방향의 좌측 낙엽 덮인 사면길을 따라 편안하게 내려가면 '상천' 우물이 있는 사거리에 이르게 된다.

 

 

  

▲ 우물이 있는 곳의 사거리

 

15:44~15:46=>'상천' 우물/사거리

     이정표(↑탑재, 능가사/↓깃대봉/→적취봉<8봉> 0.1km)가 설치된 사거리로 우측의 길은 적취봉과 깃대봉 사이 능선의 헬기장 직전의 갈림길로 오르는 길이고, 좌측의 길은 입구 나무에 매달아 둔 비닐코팅지(←빨치산은거지, 서불암가는 길)가 목적지를 말해 주고 있다.

좌측 아래에 우물이 있는데 겨울철이라 그런지 물이 흐르지 않고 있다. 계속되는 편안한 사면길을 따르면 적취봉 아래 깃대봉 갈림길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자 삼거리(15:48)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도 어김없이 이정표(↑능가사 3.0km/↓깃대봉, 우물/→적취봉<8봉> 200m)가 설치되어 있다.

 

 

 

 

 

돌밭길의 완만한 내리막을 내려가면 좌측으로 나무데크 쉼터가 있고, 아래로는 돌담이 둘러쳐진 공터가 보이는데 칠성암지이다.

 

 

▲ 칠성암지 직전의 나무데크 쉼터와 '칠성암지' 표지 

 

▲ 칠성암지 공터와 칠성암지의 돌문

 

15:53~15:58=>칠성암지

     칠성암지를 가로질러 뒤편의 바위전망대에 오르니 남해바다가 시원하게 산 아래로 펼쳐지는데, 지형적으로 볼 때 이곳에서 조망되는 낙조가 절경일거란 생각이 든다.

 

 

 

                ▲ 칠성암지 뒤편의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사진 上) 남해바다

                    (사진 中,下) 뒤돌아본 팔영산 암봉의 동쪽 전경

 

뒤돌아 보면 팔영산의 암봉들 동쪽 면이 조망이 되는데 색 다른 풍경이 연출된다.

계속되는 돌밭길을 따라 내려가면 이정표(16:00, ↑능가사 2.6km/↓적취봉<8봉> 0.6km),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2곳의 나무데크 쉼터(16:02)를 차례로 지나 편안한 사면길에서 칠성봉갈림길(16:04)의 이정표(↑탑재/↓적취봉<8봉>/→칠성봉<7봉> 350m)를 대하게 된다.

나무벤치 4개가 설치된 쉼터(16:06)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는 사면길을 따르고 나무계단 데크길을 내려서면 시멘트 포장도로에 이르게 된다.

 

▲ 시멘트 포장 임도

 

16:09=>시멘트포장도로

     이정표(↑능가사 2.0km/↓적취봉<8봉> 1.2km/←영남면<만호>)가 설치된 포장도로를 건너 내려가 계곡을 건너 사면길을 잠시 따르면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에 이르게 되는데 탑재이다.

 

 

 

▲ 탑재

 

16:12~16:15=>탑재

     좌측으로 정자와 나무벤치가 일렬로 설치된 쉼터가 자리하고, 그 아래로는 화장실까지 보이고, 도로 건너에는 대형 팔영산 등산안내도와 이정표(↑능가사 1.9km/↓적취봉<8봉> 1.3km/←성기저수지/→두류봉)가 있다.

 

▲ 임도와 임도 사이의 넓은 산길

 

등산안내도와 이정표 사이의 길로 들어 2차례 시멘트 포장도로를 가로지르고 비포장 임도에 내려선다.(16:18)

 

 

▲ 비포장 임도사거리와 '편백건강숲길' 임도

 

임도를 가로질러 내려가면 다시 비포장 임도에 이르게 되는데 편백건강숲길이다.

 

▲ 임도의 이정표

 

16:19=>임도/편백건강숲길

     이정표(↑능가사 1.8km/↓적취봉<8봉>/←편백건강숲길, 편백숲 0.5km, 능가사 3.5km)가 있는 임도를 가로질러 숲길 내리막으로 진행하게 된다. 좌측의 비포장 임도는 능가사 입구 갈림길로 이어지는 편백건강숲길이다.

그러나 이 길은 이정표에 검은색 메직펜으로 적어 놓은 거리표시를 참조할 때, 일반 등산로보다 능가사까지의 거리가 약 1.7km 정도 더 길고, 시간도 약 30분 이상은 더 소요가 될 것 같다.

 

 

 

 

▲ 능가사가는 숲길

 

이정표(16:29, ↑능가사 1.2km/↓적취봉<8봉> 2.0km)

이정표(16:36, ↑능가사 0.7km/↓적취봉<8봉> 2.5km)

두 곳의 이정표를 차례로 지나 나무벤치 3개가 설치된 쉼터(16:40)를 지나면 좌측으로 돌담이 보이기 시작한다.

 

▲ 뒤돌아본 숲길이 끝나는 곳의 돌담길 

 

돌담이 끝나면 철문이 나타나고(16:42), 잠시 후 '수고하셨습니다. 출발지점에서 여기까지 약 7.4km~~~'란 문구가 적혀있는 푯말을 지나 우측에 야외수영장이 있는 민박집&식당 옆을 빠져 나가면 팔영산 야영장의 '팔영소망탑'이 있는 Y자 갈림길(16:44)에 도착을 하며 원점회귀를 하게 된다.

 

▲ 팔영산야영장에서 뒤돌아본 팔영산

 

팔영산 야영장 도로를 따라 내려가 팔영교(16:50) 다리를 건너 능가사 돌담을 따라 능가사 천왕문 앞을 지나 팔영산도립공원 주차장에 도착을 하며 산행은 끝이 난다.

 

 

 

▲ 능가사 돌담을 따라서...

 

16:55~17:30=>팔영산도립공원 주차장

     주차장 주변의 가게에서 막걸리 한 잔씩으로 하산주를 하고,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대체한 후 버스에 올라 팔영산을 뒤로 하고 긴 여정의 버스여행을 시작하며 날씨가 받쳐주지 않았지만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팔영산 산행이 전부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또 다시 버스 안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산행보다 더 지겨운 장시간의 고난이 시작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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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2.01 11:34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모임때 뵈요~~

  • 10.12.06 13:02

    즐김하고갑니데이~
    동참을 못하여 미안하구여 ^*^
    망년회합시당!!!

  • 11.01.11 12:10

    사진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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