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정치부 이재기 기자] 미국 사람들은 옐로우스톤을(Yellowstone) 월드 퍼스트 국립공원이라고 부른다.
누가 옐로우스톤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국립공원이라거나 제일로 뛰어난 명승지라고 공인해 준 사람도 없고 또 그런 기관도 없을 뿐더러 타국인들이 미국의 주장에 흔쾌히 동의해 줄 리도 없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천연덕스럽게 옐로우스톤을 월드 퍼스트 내셔날파크라고 부른다. 공원 비지터센터나 공원을 알리는 각종 인쇄물은 어김없이 'The world first national~'란 문구로 시작된다.
여기에는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자 주도세력이라는 일종의 자부심이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고 또한 옐로우스톤만한 곳도 없다는 경험에서 우러 나오는 자신감도 한 자락 깔려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껏 미국의 명승지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실망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저 '좋겠지'란 생각을 갖고 옐로우스톤을 찾아갔다.
처음엔 몬태나주 남쪽의 코디(Cody)를 거쳐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그쪽은 숙박사정이 좋지 않다는 미국인 친구의 조언을 따라 옐로우스톤 최북단 관문인 가디너시(Gardiner)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운전시간이 훨씬 늘어나는 바람에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미주리를 출발 사우스다코타의 베드랜드와 러시모어, 데블스타워를 거치면서 여독이 쌓인데다 와이오밍주 최동단에서 출발해 몬태나주를 거의 가로지른 뒤라 몸 상태가 완전 파김치가 된 탓이다.
6월 하고도 하순이라 대낮의 태양은 따갑고 실록이 우거져 제법 여름의 정취가 느껴졌지만 옐로우스톤은 사정이 딴판이었다. 이른 아침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가 여간 매섭지 않은데다 꼭두 새벽부터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초겨울과 흡사했다.
옐로우스톤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열흘로도 부족하다는데 4박 5일의 일정으로 방문했고 그 가운데 하루는 여독을 푸느라 보내 버렸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옐로우스톤 길을 서둘렀다. 물론 처녀지에 대한 부푼 기대도 일찌감치 관광길에 오르게한 원인이었다.
옐로우스톤이 북미 최대인 록키산맥에 자리잡고 있어 공원가는 길은 줄곧 오르막이었다. 가디너에서 자동차로 약 10킬로미터를 달리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북쪽 출입구가 나온다. 메머드 핫 스프링스의 석회석 고대(高臺)와, 록키산맥의 원시림, 거대 협곡 사이로 흘러가는 옐로우스톤강, 경치가 하나 같이 중후장대해 원시자연의 힘과 역동성이 느껴졌다.
공원 경내로 진입하자 마자 곧바로 메머드 핫 스프링스 캠핑장으로 차를 몰아갔다.
공원 비지터센터 근처에 호텔과 캐빈 같은 숙소가 많지만 옐로우스톤에 가겠다는 계획을 갖고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갔을 땐 매진이었다. 옐로우스톤에서의 둘째날은 텐트를 치고 보낼 예정이었다. 사실 옐로우스톤 행을 준비하면서 2달전부터 인터넷을 들여다봤지만 좀처럼 빈 방이 나오지 않았다.
6월말은 성수기가 시작된 시점이라 혹 자리가 없을 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 더욱 서둘렀다. 차로 캠핑장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찜한 뒤 사무실로 가서 예약을 하는 식인데 다행히 캠프 사이트에 여유가 있었다.
그 곳의 야영은 평생 잊지 못할 혹독한 체험이었다. 매서운 밤 바람이 계곡을 타고 올라 산비탈에 자리잡은 캠핑장을 휘돌아 가며 '위잉~' 스산한 소음을 만들어내는 것도 신경을 거슬리게 했지만 영하의 한기는 텐트속 침낭까지 파고들며 야영객들을 괴롭혔다.
6월 하고도 하순인데도 새벽에는 수은주가 영하로 떨어지는데 특별히 기후가 추운 것이 아니라 옐로우스톤이 해발 2~3천 미터의 험준한 산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밤새 스산한 소리를 내며 몰아치던 산바람은 새벽녘에 잦아들었지만 이윽고 멧새들의 어지러운 지저귐이 귓전을 때렸다. 한 두 마리가 텐트 주변에서 우는 수준이 아니라 수백 수천마리가 한꺼번에 울어대는 인간을 압도하는 지저귐이었다.
워낙 시끄러워 미국은 땅덩이가 크니 새도 떼로 우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메머드 핫 스프링스 골짜기에 사는 새란 새는 모두다 울어대는 것 같았다. 시간도 이르고 피곤하기도 해 잠을 청해 보지만 허사였다. 어지러운 지저귐에 잠은 설쳤지만 이국 땅 한 모퉁이에 몸을 뉜 채 산새들의 압도적인 지저귐을 듣는 것도 나름 서정적이었다.
캠핑장 옆에는 자그만 관목과 풀로 뒤덮인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가 하나 있었다. 추위에 떠느라 굳은 몸도 풀 겸 우리 가족은 새벽 어스름에 산행에 나섰다.
사방으로 탁 트인 시야에 들어오는 경치가 시원스러웠고 정상에는 엘크(elk)라는 큰 사슴 무리들이 미동도 않고 앉아 있었다. 사람이 접근해도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미군들이 옐로우스톤 관광객들을 보호하기 위해 주둔했던 막사가 오늘날에는 공원관리소와 비지터센터로 이용되고 있는데 그 곳 잔디밭도 큰 사슴들이 점령하고 있다. 캠핑장과 비지터센터는 아주 가까운 거리다.
사슴들은 그다지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워낙 철저한 야생동물 보호 정책 때문일 것 같다. 사슴은 물론이고 대평원이 주 서식지였던 바이슨(bison, 버팔로)과 무스(moose), 회색곰, 늑대 같은 야생동물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일단 공원을 한 번 둘러보면 그들이 왜 최고의 공원이라고 추켜세우는 지 조금은 수긍이 간다. 거대한 규모와 빼어난 경관, 지질학적 생물학적 다양성, 완벽하게 보존된 자연, 역동적인 생태계 등 여러 측면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할만하다.
옐로우스톤은 거대한 화산지형이다. 수십에서 수백만년전 시차를 두고 여러 차례 화산이 폭발해 약화된 지반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산 정상에 직경 48에서 72킬로미터의 칼데라(화산호수)가 만들어졌다.
칼데라 주변으로는 화산에서 뿜어져 나온 돌과 재 같은 분출물이 뒤덮여 고산지형이 형성됐다. 칼데라와 그 두 배나 되는 주변지역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라고 보면 된다. 면적은 9,307평방킬로미터 약 28억 1,500여만평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남한 면적의 약 1/10에 해당된다.
공원은 특징에 따라 대략 4개의 구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최대 지름이 32킬로미터나 되는 '옐로우스톤 호수'와 '옐로우스톤 그랜드캐년', 메머드 핫 스프링스에서 노리스(Norris)와 메디슨(Maddison)을 거쳐 올드페이스펄(Old faithful)에 이르는 '휴화산지대' 그리고 '루즈벨트 빌리지' 등이다.
칼데라에는 물이 다 차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면적 가운데 약 1/5정도에만 물이 고여 있고 나머지 부분은 초원이거나 온천과 간헐천 등이 산재한 휴화산지대이다.
공원에는 남북방향으로 아라비아 숫자 '8'자 형의 일주도로가 닦여 있고 이를 중심으로 5개의 출입구가 배치돼 있어 동서남북 다방면에서 접근성이 뛰어날 뿐아니라 공원 내부에서의 이동도 쉽다.
옐로우스톤에서의 첫 목적지는 루즈벨트 빌리지였다. 이 곳은 팔자형 도로 위쪽 써클의 오른쪽 상단에 있다. 메머드 핫 스프링스와 루즈벨트 빌리지 사이의 거리는 대략 29킬로미터 쯤되니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도로 바로 옆을 흐르는 옐로우스톤강 지류는 내려다보기가 아찔할 정도로 깊이 패인 협곡이다.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흔히 볼 수 있는 강과는 다르다. 빙하가 화산지형을 깊게 파낸 자리를 오랜 세월 강물이 깎아내 강줄기가 형성된 곳이다.
2천에서 3천 미터가 넘는 고봉준령 위로 두꺼운 만년설이 덮여 있고 본류로 흘러드는 지천과 개천들이 협곡을 때리며 내는 요란한 물소리는 새소리 바람소리 주변의 모든 소리를 흡수해 오히려 적막한 느낌을 주고 있다.
록키산맥의 고산지대는 소나무와 가문비, 전나무 같은 침엽수림이 밀림을 이루지만 봉우리 쪽으로 올라갈수록 식물의 분포는 옅어지고 그곳을 관목과 잡풀들이 대체해 고산초원이 침엽수 밀립 사이에 점 처럼 퍼져 있다.
루즈벨트 빌리지는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테오도로 루즈벨트가 가장 좋아했던 곳이라 루즈벨트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즈벨트 빌리지 주변에는 타워폭포와 라마르 계곡(Lamar valley), 숲 전체가 화석화 된 'Petrified forests' 등 볼거리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화석지대는 여러차례 계속된 화산폭발로 가문비나무와 전나무, 세콰이아 같은 냉대림들이 그대로 돌로 변한 곳이다.
라마르 계곡은 버팔로와 사슴, 늑대 등 많은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는 서식지로 유명하다. 특히 버팔로는 공원 전 지역에서 가장 자주 목격되고 가장 많은 개체수를 볼 수 있는 동물로 관광객들의 흥미를 끄는 넘버원 볼거리이다.
버팔로는 키가 2미터 몸무게 1,000킬로그램에 이를 정도로 덩치가 크고 공원 내에 천적이 없어 공원 이곳 저곳에 골고루 흩어져 산다.
라마르 외에 옐로우스톤 또는 북미의 세렝게티라고 불리는 헤이든(Hayden) 계곡 처럼 넓은 초원이 조성된 곳에는 수 십에서 1~2백 마리의 버팔로 떼가 집단 서식하고 있다. 버팔로는 파이어홀강과 올드페이스펄 열수지대, 라마르, 해이든 밸리에서 주로 볼수 있지만 차를 타고 공원을 돌다 보면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버팔로 한 두 마리와 차도에서 맞닥뜨릴 때도 있다.
타워폭포에서 그랜드캐년이 있는 캐년 빌리지를 거쳐 노리스 가이저 배신(Norris Geyser Basin)까지 약 50킬로미터를 이동하면서 주위의 몇몇 등산로를 따라 가봤다.
냉대림이 빽빽히 우거진 길을 따라 걷는 것 자체가 산림욕이다.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보존된 자연과 맑고 신선한 공기가 주는 청량감이 좋고 인적이 드물어서 그곳 자연과 교감할 수 있다.
독수리만한 까마귀가 이따금 정적을 깨며 까~악 까~악 울어대고 무심히 머리를 들어 바라본 하늘은 콕 찌르면 금방이라도 파란 물줄기가 주르르 흘러내릴 것 처럼 시리도록 파랗다. 옐로우스톤에는 인간의 손떼가 묻지 않은 호젓한 오솔길이 무려 1천 600킬로미터나 된다고 한다.
북쪽의 매머드 핫 스프링스와 남쪽의 올드 페이스펄 사이에 놓인 노리스 간헐천 지대는 스팀보트 가이저와 포셀레인 등 수백개의 간헐천이 시시때때로 뜨거운 물을 뿜어내고 뿜어져 나온 온천수는 웅덩이에 고여 거대한 노천 온천탕 같은 곳이다.
옐로우스톤 지표 아래서 내연하고 있는 마그마의 열기가 지표로부터 흘러든 물을 데워 물위로 뿜어내고 크고 작은 분화구들은 굉음을 내며 지하의 열기를 뱉어낸다. 온천에서 쏟아져 나온 온천수는 작은 강줄기를 이룰 정도로 그 양이 엄청나다.
온천지대를 가로 질러 놓인 데크를 따라 직접 온천지대 안으로 들어가면 휴화산지대를 실감하게 된다. 매케한 유황냄새가 코를 찌르고 혹은 지하에서 솟아오른 수증기가 일대에 자욱하게 덮여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곳도 있다. 쉬~익 소리와 함께 분화공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고압가스는 마치 금방이라도 폭발을 일으킬 것 같다.
온천수가 유황, 마그네슘 같은 광물과 작용해 색상도 다채롭다. 에메랄드와 호박빛을 내는 온천이 가장 많지만 간혹 보라색과 갈색 온천도 눈에 띤다. 휴화산 지대는 메머드 핫 스프링스에서 올드페이스펄까지 약 80킬로미터 구간에 걸쳐 있다. 그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화산온천이 바로 메머드 핫 스프링스이다.
휴화산지대의 분화공들은 대부분 흙으로 이뤄진 토양위에 퍼져 있지만 메머드 핫스프링스의 분화구는 모두 석회석 고대(高臺)위에 있는 점이 독특하다. 길이와 폭이 수백미터는 될 정도로 큰 석회석 평상 위에서 온천수가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석회석 고대를 뚫고 올라온 용천수가 하얀색 석회석 위를 이리저리 흘러내려 뽀얀 언덕이 갈색과 황색 등 무채색으로 얼룩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