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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4월29일은 매헌 윤봉길의사의 상하이의거 80주년 되는 날입니다. 24세 홍안의 대한청년 윤의사는 1932년 4얼29일 일본의 천장절과 전승기념 축하식 단상에 수통형 폭탄 투척하여 일본군 대장 시라카와 등을 처결하였습니다. 윤의사는 한국 씨알 뿐 아니라 중국인도 존경하는 항일 영웅입니다. 장개석은 "100만 중국군이 못한 일을 대한청년 한 사람이 해냈다"며 격찬한 바 있으며 어제 서울 양재동 매헌기념관과 중국 루신공원에서 그를 기리는 행사를 가졌습니다.
백범이 조국광북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분 삼의사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시는 일이었습니다. 1945년 귀국한 백범은 다음해 1946년 7월6일 효창공원 중심 되는 곳에 안중근의사의 가묘와 함께 국민장으로 모셨습니다.
그 다음해 1947년 임정요인 이동녕 차이석 조성환 세분의 유해를 모시고 와 별도의 묘역을 마련하여 모셨으며 1949년 6월26일 백범이 암살자의 흉탄에 쓰러져 또한 이 곳에 묻히시어 효창공원은 조국광복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우리 5월의 순례자들은 백범 김구,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이동영, 차리식, 조성환 일곱 분을 만나러 갑니다. "독립조국에 뼈를 묻어 달라" 유언하신 안중근의사의 묘는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해 아직 빈 무덤으로 남아 있습니다. 효창공원에서는 매해 임정수립 기념일인 4월13일 여덟 분의 합동추모제를 갖습니다.
효창공원의 원래 이름은 효창원으로 정조의 큰아들 문효세자와 세자의 생모 의빈 성씨, 순조의 후궁 박씨와 그의 소생 영온옹주가 묻혔던 곳이나 일제패망 직전인 1945년 3월 모두 서삼릉으로 옮기고 공원으로 조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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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번 씨순길은 어린이날이라서 손녀들을 위해 놀아줘야 되어서 아깝지만 동행하지 못하네요. 다들 건강하게 잘 다녀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