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거창을 찾아온 야생화 중 그 몇
- 정연탁 (푸른산내들 대표)
5월의 거창은 어디를 가나 꽃 천지다.
일년 내내 야생화로 온산을 채우고 있는 감악산을 둘러보았다.
마침 거창 여중 생태동아리원들과 함께 하였다.
산 여기저기 한 때 골프장이니 생활체육공원이니 하면서 파헤쳐 놓았다.
인간의 잘못으로 생성된 지구 전체의 공해로 안그래도 힘든 산인데
인간들의 작위에 의해 고통을 더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럼에도 꽃들은 어김없이 오월의 산을 찾아 피어내었다.
지난 겨울들의 독한 한파도 저들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1. 붓꽃들
감악산에 피어있는 붓꽃은 각시붓꽃, 금붓꽃, 흰붓꽃이 있다.
각시붓꽃은 어느 산에나 대체로 많다. 가정 화단 등에 보이는 일반 붓꽃에 비해 자그마한 모습이 마치 새색시와 닮았기 때문에 불리어진 이름일 것이다. 연한 파란 색을 꽃잎에 담고 나지막하게 피어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어린 누이가 생각난다.
이에 비해 금붓꽃은 독특한 금색을 꽃잎에 담고 있다. 각시붓꽃에 비해 꽃잎이 두텁고 꽃잎 가장자리가 단정하다. 각시붓꽃이 가냘픈 모습이라면 금붓꽃은 어떤 결의가 보인다. 어떤 큰일도 너끈하게 해결할 것이다 선언하듯 하다.
거창은 행운아다. 감악산은 행운아다. 우리 강토 전체를 걸쳐 드문 꽃이다. 그 꽃이 감악산에 피어있다. 산 전체를 헤집고 다니면 일년에 열 송이 안쪽으로 볼까 말까한 꽃이다. 각시붓꽃이 전국에 걸쳐 흔한 꽃이라면, 금붓꽃은 다른 산에는 드물지만 감악산에는 흔한 꽃인데, 그 중에도 흰붓꽃(이 꽃 촬영자 : 이순정)은 참으로 드물다. 그만큼 예민한 꽃인 것 같다. 조금의 환경 변화에도 버티지 못하는 것 같다. 감악산을 생태공원으로 특별관리하지 않으면 아마 조만간 거창 근처에서는 보기 드믄 꽃이 될지도 모른다.
2. 노랑제비꽃
이른 봄의 감악산은 얼레지 꽃 천지이다. 그 시기가 지나면 노랑제비꽃이 찾아온다. 산 전체를 노랑제비꽃이 덮친다. 꽃잎이 노랑색이라 노랑제비꽃이라 불린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저 노랑 꽃잎 뒷면은 붉은 색이라는 것을. 자신의 붉은 정열을 다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다가가는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려는 저 꽃의 배려를.
3. 은방울꽃
노랑제비꽃이 전성기를 지날 즈음이면 이 은방울꽃과 아래의 애기나리가 찾아온다. 상상해 보시라. 비비추 못지않은 넓은 초록 잎들 아래에 하얀 색의 방울이 봄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온산을 낮게낮게 퍼져 나가는 흰색 꽃의 흔들림을. 꽃을 바라보는 자체로만 그대는 세상의 시름을 다 씻을 수 있으리라.
4. 애기나리
일반 나리에 대한 상상을 버리시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펼쳐지는 꽃이다. 은방울꽃들이 많은 곳에 따라 핀다. 어린 싹들은 언뜻 둥굴레와 비슷하다. 꽃을 피우기 전에는 둥굴레가 될지 애기나리가 될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마치 어제는 둥굴레, 오늘은 애기나리로 자신을 변신하듯 하다.
5. 둥굴레
둥굴레는 익숙한 이름이다. 꽃이 알려지기 보다는 차로서 먼저 우리 곁에 다가왔다. 늘 둥굴레 차를 마시면서 그 꽃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꽃이 이리도 이쁘게 피어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다. 지금부터라도 그대여,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저 꽃 속에 담겨진 초록색 바람을 음미해 보시라.
6. 윤판나물
감악산을 4-5년 다닌 후에 금원산을 다시 4-5년을 다녔다. 그러나 감악산에 보이던 이 꽃은 금원산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그만큼 윤판나물도 감악산에서만 많이 볼 수 있는 꽃이다. 이번에는 군락지를 발견했다. 보시라. 저 노랑 종들이 산자락 빼곡이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 자체로 행복하다.
대애기나리라고 하며, 기침, 식체, 폐결핵에 좋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 그러나 저리 꽃을 바라보는 것이 마음에 더 큰 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7. 애기풀
사진으로 보니 커 보인다. 그러나 기껏 10cm 정도도 안된다. 불과 5mm도 안되는 꽃 속에 작은 솜털같은 꽃술이 촘촘히 달려있다. 그 꽃술에 봄바람이 잠시 머물러 있는 모습. 상상해 보시라. 보는 순간 그대의 발걸음은 얼어버릴 것이다. 주로 임도 근처나 숲속 길가 낮은 풀이 많은 곳에 핀다. 그러니 걸을 때 몸을 조금만 숙이고 찬찬히 걸을 일이다. 재수 좋다면 그대 가슴에 보라색 파장을 가득 채울 수 있다.
8. 개감수
일반적으로 대극으로 알려져 있다.대극과 꽃들 중 이 개감수는 특이하다. 연노랑 꽃들과 한 줄기 올라가 잎을 거치면서 다시 둘 갈래로 나눠 자라, 다시 그 행위를 반복한다. 꽃 옆에 달린 통통한 열매가 마치 사람의 엉덩이를 보는 것 같다. 동행들을 함께 바라보다 보면 서로 얼굴색이 슬쩍 붉히게 된다.
감악산 정상에 오르면 그 자체로 행복하다. 탁 트인 하늘 아래 촘촘히 이어지고 있는 산마루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고인들이 그린 산야에 대한 수묵화 그대 눈망울에 담을 수 있다.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거창,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런 모습을 지금의 우리까지 고스란히 물러주신 조상들이여! 감사하다. 이제 우리가 이 모습을 후손들에게 별탈없이 물려 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첫댓글 잘 쓰셨네요.
흰붓꽃촬영 이순정^^
꽃은 온몸으로 잉태하여 출산하셨고
글은 온기가 느껴지는걸 보니
가슴 한켠 체온을 얹었네요.
멋쪄요~~ㅎㅎ 사진속에 들꽃의 숨결까지 다 담으신듯해요~~
흰붓꽃 촬영자가 풀꽃님.. 정말 고운맘을 가지신듯해요~~ㅎㅎ
정말 아름다운 꽃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의 꽃들이지요
자연에서 나오는 그러한 생각들이 들어요
잘 보았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랑으로 찍어야 할까요
어느날 문득 사진찍으시는 모습을 보며 박수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예전에 감악산 식생군이 다양하다는 불함님의 말이 떠오르네요~감악산도 생태가치가 꽤 있는데 주기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것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