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4월 26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레이첼 카슨홀에서 주요 매체들과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약 한시간 반동안 진행된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은 주로 인류가 직면한 불확실한 ’미래’에 쏠려 있었다. 이 시대 가장 ’핫’한 역사학자에게 쏠린 인류의 미래에 대한 주요 질문과 답을 공개한다.
Q <사피엔스>에서 기술 이용에 따라 천국을 건설할 수도 지옥을 만들 수도 있는데 현명한 선택을 해야 인류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란 무엇일까?
기술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 현명하다 함은, 기술이 우리를 섬기도록 하며, 우리가 기술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술이 우리 인생 문제에 답을 주기를 기대하고, 기술이 우리 인생을 통제하도록 한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는데 기술은 우리가 물은 질문에만 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하는 것은 우리여야 한다. 진짜 문제는 개인도, 집단도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른다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목적을 기술이 정하게 두는 경우도 있다.
Q 빅 히스토리가 강자 논리를 정당화하는 담론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러한 담론이 초래할 불평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제국과 제국주의’ 그리고 ’불평등’ 문제는 분리해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제국과 제국주의에 대해 얘기하자면, 21세기 인류의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형태로든 전 지구적 정치체제가 필요하다. 그것이 독재이거나, 폭력과 전쟁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200여 개의 독립국가로 산산이 분열된 정치체제 아래서는 이런 도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세계적 불평등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지금은 시작 단계이지만 신기술, 생명공학이나 인공지능 같은 기술 때문에 앞으로 이 위협은 더욱 커질 것이다. 기술을 지배하는 소수 엘리트가 세상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게 점점 쉬워질 것이다.
Q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이 10년 내에 인류를 앞설 것이라고 보았다.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을 했으며 여기에 대한 해결책은?
10년은 너무 짧은 것 같고, 30~40년 정도의 시간으로 본다. 일단 인공지능은 지금 현존하는 거의 모든 직업에서 인간을 밀어낼 거라고 예상한다. 물론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수도 있지만, 그때쯤 되면 AI가 이 직업에서 인간을 능가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신종 직업도 해법은 아니다. 인간이 가진 감정적 기술이 인간의 우위를 점하게 해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생물학을 공부해보면 감정은 영적인 신비한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결정하는 데 필요해서 만들어진 생화학적인 알고리즘이다. 따라서 인간의 감정지능이 인공지능보다 뛰어날 것이라고 확신할 근거가 없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얼굴 표정이나 목소리,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지를 보며 어떤 감정 상태인지 분석하는데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겐 이런 (변화에 따른) 위협을 해결할 답이 없는 상태이며 지금 현존하는 모델은 모두 산업시대, 혹은 농업혁명시대에서 물려받은 유산이다.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
Q (인공지능이 인류를 앞서는 상황에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면) 자녀는 어떤 방식으로 교육하는 게 좋을까?
지금 현재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80~90%의 것은 그들이 40대가 되었을 때 별로 쓸모없는 것이 될 확률이 높다. 어쩌면 수업시간이 아니라 휴식시간에 배우는 것만이 이들이 40대가 되었을 때 쓸모 있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의 교육 체제는 정치 체제, 경제 체제와 마찬가지로 산업 시대 사람들의 삶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30~40년 후, 2050년에 세상이 어떨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지금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 하나뿐이다. 어쩌면 지금 아이들이야말로 선생님이나 연장자들에게 배워서 인생을 준비해나가기 어려운 역사상 첫 세대가 될 수도 있다.
Q 책에서도 인간의 행복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나?
역사적으로 인간은 자기 주변 세상을 바꾸면서 행복해지려 노력했다. 환경을 바꾸고, 경제․정치체제를 바꾸면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점점 더 내면을 바라본다. 지금껏 바깥세상을 바꾸는 건 많이 해봤는데 아직 만족을 못 하니 이제 내면을 바라보려는 것이다. 생화학적 조성, DNA, 두뇌를 바꾸면 만족할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이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런 본성이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바깥 세상을 바꾸든, 우리의 내면을 바꾸든 만족은 없고 갈망만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다.
Q 마음과 육체의 경계가 어떻게 변할 거라 생각하나?
마음은 아직 과학이 이해하는 데 실패한 주제다. 과학은 몸과 두뇌를 이해함에서 점차 발전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마음이란 건 두뇌가 만들어 낸 거란 가정을 한다. 가령 과학자들은 뇌에서 수백만 개의 뉴런이 전기신호로 전달되면 사랑이나 증오 같은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두뇌 어떤 부분에 어떤 패턴으로 불이 들어오면 분노를 일으키고, 기쁨을 느낀다는 부분까지 정확히 찾아내고 있다. 하지만 수백만 개의 뉴런이 서로 전기 신호를 쏘는 게 어떻게 주관적 감정을 만들어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인공 지능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은 인공지능은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지, 인공 의식(artificial consciousness)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컴퓨터도, 아무리 발달한 소프트웨어도 의식은 0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경기 중에 불안을 느끼거나, 이겼다고 기뻐한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높은 지능은 의식과 함께 갔다. 하지만 이제는 의식 없는 높은 지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Q 저출산문제가 심각하다. 몇백 년 뒤엔 한국인이 얼마 남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는데?
저출산율은 좋은 소식이 아닌가 한다. 이미 지구 상엔 인구가 너무 많다. 세계 전역에서 저출산율은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자신의 인생을 잘 컨트롤 할 수 있게 되는 것과 직접적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온다. 생태학적으로도 70억 대신 10억의 인구는 굉장히 좋은 소식이다. 아마 한국도 과거에 인구가 적을 때가 있었고, 그때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적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번영을 누릴 수 있다면, 인구가 많고 불안하고 힘든 것보단 나을 것이다.
Q 세계 정부가 나오지 않으면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는데, 녹색당과 같은 대안적 움직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녹색당은 상당히 고무적인 정치적 현상이긴 하다. 하지만 각국이 각자 정책을 결정하고, 각자 나라끼리 경쟁을 하는 한 아무리 녹색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생태적 위협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미래 기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현재 기술 상황에서는 경제성장을 멈추지 않고는 지구 온난화라는 현상을 멈출 수 없다. 심지어 녹색당이 정권을 잡더라도 경제성장을 멈추겠다고 선언하면 사람들이 화가 나서 선거에서 지게 될 것이고 정권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Q 프랑스에서 일어나는 노동시간 단축 등의 탈 노동의 움직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금은 일을 해야 수입이 있다는 것인데 일을 안 하고도 수입이 있는 모습이 있을지는 탐색하는 것 중 하나다. 이게 가능할 수도 있지만 이런 모델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선례도 없다. 역사로 봤을 때 이런 새로운 모델이 종이에선 근사하게 보이지만 이것을 실현하려면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공산주의가 그 좋은 예다.
Q 출간 예정인 신간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이번 9월에 영어로 출간되고, 한국어판은 1년 정도 후에 출간될 것 같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책이다. 이것은 예측이나 예언서가 아니다, 사실 인간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여러 가지 가능성, 기회, 위협에 접근해 보려는 시도이다. 어떻게 미래를 생각할 것인가, 어떤 행동을 취할지 어떤 경로들이 있을지를 지도로 그려보고자 했다. 그런데 우리가 진짜 무엇을 해야 할 지는 물론 아무도 모른다.
Q 지금 가장 천착하는 문제는 무엇인가?
지금 신간 집필을 막 끝내서 새로운 프로젝트로 <사피엔스>에 기반을 둔 아이들을 위한 책을 쓸까 한다. 빅 히스토리에 대해 10~11세의 아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역사책이 될 것이다.
▶ 유발 하라리 그는 누구인가?
2014년 <사피엔스> 이전까지 이스라엘의 한 대학의 역사학 교수가 쓴 책이 이토록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 과연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유발 하라리의 출신지는 1976년 이스라엘 북서부의 상공업 도시 하이파이며, 히브리대학교에서 중세역사 및 군 문화를 전공했다. 2002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지저스 칼리지에서 중세 전쟁사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히브리 대학교 역사학 교수이다. 2009년과 2012년에는 인문학 분야에서의 창의성과 독창성을 기리는 폴론스키 상(Polonsky Prize)를 두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그가 마흔 살 된 해에 출간된 <사피엔스>는 전 세계 30여 개 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열풍을 일으킨다.
※ 유발 하라리의 과거 출간 도서 및 논문
2007 <기사도 시대의 특별 작전, 1100-1550>
2008 <궁극적 체험: 전쟁터 폭로와 현대 전쟁 문화의 형성, 1450-2000>
2007 「세계 역사에서 ‘결정적 전투’의 개념」(The Journal of World History, pp. 251-266)
2007 「군대의 기억: 중세에서 근대 후반기까지의 역사적 개관」(War in History 14:3, pp. 289-309)
2008 「전투의 흐름: 전쟁에서 주관적 행복의 군사의, 정치적, 윤리적 영역들」(Review of General Psychology)
2010 「안락의자, 커피, 권위: 눈과 몸의 증언자들이 전쟁에 대해 말하다, 1100-2000」(The Journal of Military History, pp. 53-78)
▶ <사피엔스>는 어떤 책?
- "인간 문명에 관한 위대한 역사적 서술"(마크 주커버그)
- "<사피엔스>는 역사와 현대 세계에 대한 가장 큰 질문을 건드린다. 그리고 이 책은 잊을 수 없을 만큼 생생한 언어로 쓰여 있다."(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저자)
- "눈부시다.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사피엔스>는 인류 역사에 관한 최고의 책이다. 나는 이보다 더 나은 책을 읽은 적이 없다."(헨닝 망켈, 스웨덴 소설가)
< 사피엔스>는 약 135억 년 전 빅뱅으로 인한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현재, 미래에 이르기까지 ’빅 히스토리(Big history)’의 관점에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는 책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변방의 유인원에 불과했던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총 세 개의 혁명(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걸쳐 이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불, 뒷담화, 농업, 신화, 돈, 모순, 과학이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유발 하라리는 주장한다.
이 책은 국내 출간 이후 22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출간 5개월간 종이책 13만 부, 전자책 13,000부가 넘게 판매되었다. 600쪽이 넘는 분량에 22,000원의 인문서로서는 고무적인 판매결과였다.
무엇보다 지난 3월 초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 대국에서 <사피엔스>의 논의는 다시 한 번 조명을 받는다.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이 <사피엔스>의 마지막 장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에서 그가 한 주장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는 지난 40억 년간 인간이 자연선택의 지배를 받아왔다면 이제는 생물학적 족쇄를 벗어나 인공지능을 이용한 설계자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