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빌로니아의 여신 이슈타르(Ishtar)
<이슈타르(Ishtar) 여신을 고대 수메르인은 인안나, 아카디아 및 바빌로니아 나시리아에서는 아슈타르, 페니티아인 등은 아스타르테라 부른다.>
이슈타르(Ishtar)
일부 점성술사들은 바빌로니아의 여신 이슈타르를 처녀자리의 여신들과 동일시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슈타르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겠습니다.
이슈타르는 풍요, 다산, 사랑, 전쟁의 여신등으로 나타나며, 그녀가 없을때는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번식을 못하게 됩니다. 또한, 그녀는 전투에서 일곱마리 사자가 끄는 마차를 타고 활로 무장하며 무자비하고 잔혹한 파멸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저승의 왕권을 노리고 들어갔다 저승의 여왕의 계략에 걸려 실패로 다시 왔지만 저승에서 살아서 나온 유일한 존재이기도 했다.
천공의 신의 딸이라고도 하며 달의 신의 딸이라고도 하는데 정확하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것 같습니다. 바빌로니아에서 그녀는 최고신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이슈타르를 경외시하며 정성을 다해 모셨다고 합니다.
이슈타르는 수메르인의 인안나(Inanna)와 북서 셈어족 여신 아슈타트(Ashtart)와 유사합니다. 이름의 의미는 아슈르(Assur)처럼 지도자, 지배자 와 같을 수도 있겠지만, 정확한 의미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역사 속에서 남자신들과 독립적으로 숭배되었으며, 여러지역에서 난아(Nana),인난나(Innana),니나(Nina),안유닛(Anunit), 이쉬하라(Ishhara), 니니?(Irnini)등 다양한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이름은 순전히 영어식 발음으로 정확한 발음은 뭐라고 하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합무라비시대 초부터 여러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여신들이 위대한 여신으로 의미되는 이슈타르(Ishtar)로 바뀌어간것 같습니다.
모든 신을 모신 신전인 판테온에서는 바빌로니안에서 앗시리안의 종교적인 변화가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그녀의 개성은 잃지 않았으며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한 유일한 여신입니다. 세다(cedar) 산에 그녀의 왕좌가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누(anu)또는 신(sin) 어머니는 안텀(antum)이며, 행성은 금성으로 나타나며, 동물은 사자로 상징되며, 8개 또는 16개의 별로 상징됩니다.
다음은 이슈타르에 대한 자료를 퍼온 것입니다.
출처: http://members.nate.com/dahlia27/isutar.htm
◆ 이슈타르 ◆
이슈타르(Ishtar) 여신을 고대 수메르인은 인안나, 아카디아 및 바빌로니아 나시리아에서는 아슈타르, 페니티아인 등은 아스타르테라 부르고 사랑, 아름다움, 생식,풍작, 전쟁의 여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리스의 신으로는 아프로디테 여신에 견줄 수 있다. 이슈타르는 천공의 신인 아누(anu) 또는 달의 신인 신(sin)의 딸 이라 한다. 아누의 딸이라 할 때는 그 속성을 사랑, 생식, 식물, 생명의 소생 등 지모신으로 인식하고, 신의 딸이라 할 때는 전쟁의 여신으로 외경하며 해 신 샤마시(수메르의 우투)와는 오누이간이다.
'전쟁터의 귀부인'이라는 별칭 을 가진 최고로 용맹한 정의 여신 이슈타르는 아시리아의 주신 아슈르와 마찬 가지로 직접 원정 전투에 뛰어들어 적에게 공포를 불어넣었다. 일곱 마리 사 자가 끄는 전차를 몰고 손에는 활을 지닌 상징상으로 표출되는 이 여신에 대 해 니네베와 아르벨라(이라크 Erbil)에서는 각별히 예배하며 숭배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속성은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시대에도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되며 메소포타미아 세계에서 수천년 간 신앙의 대상으로서 숭배되었다. 한편 이슈 타르를 여성신으로 인식하는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인과는 달리, 아랍인들의 경 우는 그녀를 아트타르라 하여 남성신으로 인식하여 차이를 보여준다.
도시를 넘어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전파되어 오랫동안 지배적 신앙으로 자리잡은 이슈타르 숭배는 기원전 600~500년에는 유대인에게 받아들여져 예 루살렘에 탐무즈 비의가 성행하였다. 이슈타르와 유사성이 짙은 이름들, 예 컨대 아스타르테나 아슈타르 혹은 아트타르는 모두 '별'이라는 뜻을 갖고 있 으며 이슈타르 여신은 스스로 "나는 새벽의 샛별, 저녁의 샛별이다"라고 하 여 금성의 인격화된 신이 되었다. 바빌로니아 성전聖典에서는 이슈타르를 ' 세계의 광명', '만군의 지휘자', '자궁을 여는 자', '율법을 정하는 입법자', '여신 중의 여신', '힘을 주는 승리의 여신', '죄를 용서하는 자'로 호칭되 고 있다. 또한 하르(그리스의 호라이)라는 칭호도 있으며 여신 스스로 '지혜 가 풍부한 창부[聖娼]라고 칭하고도 있다. 성왕聖王으로 선택된 남성은 창부 여사제와 성교의식을 통하여 여신과 영적 교류를 하고 여신에게 희생 공양되 었다. 길가메시 왕은 이 때문에 최고의 여신인 이슈타르에게 애인들에 대해 잔인하다고 핀잔을 주었다. 바빌로니아의 이 최고 여신인 이슈타르에게 올리 는 기도문은 후대에 유대 사제들에 의해 그대로 모방되어 신에게 올리는 찬 사 및 예배문으로 도용되었다.
구약성경의 '하늘 여신'(에레미아 44:19)이란 이슈타르를 지칭한 말이며 그 밖에도 아슈토레트, 아나트, 아쉐라 혹은 에스 테르라고도 호칭하였다. 신약성서에서는 '큰 바빌로', '창녀의 어머니'라 하 여 혐오와 신랄한 비난을 보내고 있다(요한계시록 17:5). 이슈타르 여신의 지하세계 행차 신화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는 이야 기로 신앙 차원에서 중요하다.
저승으로 행차하는 귀부인(여기부터 하나의 일화군요.)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판본에 의하면 다음 과 같다.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여왕은 성미가 악독한 에레슈키갈로 이슈타르 의 언니였다. 이슈타르는 명계로 간 애인 탐무즈(수메르에서는 두무지)를 만 나보기 위하여 지하세계로 가기로 하고 신들에게 동의를 구하였다.
신들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이 요청을 마지못해 들어주었다.
여신은 시녀 닌슈 부르에게 만약 3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을 경우 해야 할 일들을 지시해 놓 고 길을 떠났다.
성미 급한 이슈타르는 저승으로 들어가는 문 간지르에 닿자 마자 문을 격렬히 두드리며 열지 않으면 때려부수겠다고 소리쳤다.
수문장 네티가 여왕 에레슈키갈에게 아름다운 동생이 찾아왔다고 알리자 전혀 반가 워하는 기색 없이
"그 아이의 마음을 나한테 쏠리게 한 게 누구지? 무엇이 그 아이의 마음을 여기에 끌어들였을까?" 하며
"그 아이가 명계의 법도를 따 를 경우에만 들여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문 은 일곱 개가 있고 문을 통과할 때마다 일곱 가지의 상징적 권위를 하나씩 버려야 했다.
죽은 자들은 지상에서 누리던 권세의 흔적과 재물을 모두 버리 는 것이 규칙이었던 것이다.
이슈타르는 먼저 왕관을 벗어 놓고 첫문을 들어 선 후 차례로 문을 통화할 때마다 보석장신구를 비롯하여 몸에 지닌 것을 하 나하나 풀어놓고 마지막 일곱번째 문 앞에서는 입은 옷마저 벗어 완전히 알 몸이 되었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사악한 언니는 동생을 보며 "여긴 무 엇하러 왔느냐"며 소리쳤다.
에레슈키갈은 지하계의 신들인 아눈나(천상의 신들은 이기기라 한다)를 시켜 죽은 자들의 죄를 처벌하는 형벌(60가지 질병) 을 안겨 주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이슈타르는 형벌의 고통으로 초죽음이 된 채 축 늘어져 갈고리에 매달린 신세가 되었다.
한편 이슈타르가 명계에 있는 동안 지상의 농작물들은 전혀 자라지 않았으 며 모든 동물의 생식작용도 정지되었다. 남자들은 더 이상 여자들에게 씨를 뿌리지 않았으며 소나 말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흘 밤과 사흘 낮이 지났는데 도 이슈타르 여신은 나타나지도 않았고 소식 또한 깜깜하였다. 그래서 닌슈 부르는 여주인이 떠나기 전 지시한 대로 일을 진행하였다.
그녀는 먼저 니푸 르의 엔릴(대기의 신으로 우주 창조신) 신전을 찾아갔다. 그러나 엔릴 신은 분노에 차 있어서 도움을 주기는커녕 지하세계까지 지배하려는 이슈타르의 욕심을 저주하며 지하세계의 권력을 탐내는 자는 누구든 지하계에 머물러야 한다고 호통을 쳤다.
우르의 난나(엔릴이 닌릴에게서 낳은 소생)의 대답 또 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혜의 신 엔키를 찾아갔다. 엔키는 이슈 타르가 지하계로 떠나기 전에 그녀의 간척으로 방책을 일러준 바 있었던 신 이다. 엔키는 두 허수아비 피조물 쿠르 가르 라와 갈라 투르 라를, 혹은 일 설에는 거세한 남자피조물로 지상에서 가장 잘 생긴 아수슈타미르를 만들어 딸려 보내며 동시에 생명을 소생시키는 약초와 약수를 주어 이슈타르의 삶을 확실히 소생시키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해서 지하세계로 들어오니 이 곳은 알몸인 채로 중노동에 시달리는 모든 죽은 자들이 내는 비탄의 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에레슈키갈은 지상에 서 온 이들이 가지고 온 선물이 자신을 매우 즐겁게 해 주는 선물임을 알고 자신도 그 보답으로 선물을 내려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사품을 사양하고 대신 이미 숨이 끊어진 이슈타르의 시신을 넘겨줄 것을 부탁하였다.
돌려받은 이슈타르의 시신에 자신들이 가지고 온 약수를 뿌리고 약초를 먹이 니 놀랍게도 그녀의 생명이 소생하였다.
이슈타르가 다시 살아난 것에 놀란 명계의 신들 아눈나는 "지하세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은 아직껏 없었다. 더구나 살아 일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항의하며 그녀를 붙들고 만약 이 곳을 떠나려면 대신할 자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였다.
몰인정하고 적의에 찬 귀신들도 다시 소생한 이슈타르의 뒤를 따르며 대신할 자를 요구하였다.
그때 이슈타르의 눈에 먼저 띈 것은 바로 누더기를 둘러쓰고 그 속을 기어오 는 닌슈부르였다.
그러나 자신을 대신할 사람으로 이 충실한 시녀를 아귀다 툼하는 귀신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참에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찾아헤매던 그녀의 애인 탐무즈가 눈 에 띄었다.
그는 쿨라브 들판에 있는 사과나무 거목 아래 찬란한 의상을 걸 친 채 옥좌에 앉아 있었다. 이 무정한 애인에 격분한 이슈타르는 귀신들에게 탐무즈를 넘겨줘 버렸다.
놀란 탐무즈가 처남이자 해신인 샤마시(야간에는 지하세계로 이동하여 빛을 비춰 주고 죽은 자들을 양육한다. 수메르의 우투) 에게 구해 달라고 애원하여 뱀으로 변신, 도피하지만 결국 귀신들의 추격으 로 붙잡히고 말았다.
그 다음 이야기는 단편만 남아 있어 확실치 않으나 추 측에 의하면 이슈타르 혹은 에레슈키갈이 개입하여 탐무즈는 한 해의 6개월 은 명계에서 지내고 나머지 반은 팀무즈의 자매 게슈틴안나가 맡도록 하였다.
어쨋든 이슈타르는 이로써 명계를 벗어나 지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 때는 지하세계로 들어갈 때와 반대로 첫문을 나와 옷을 돌려받고 다음 문을 나와 서는 팔찌와 발찌를, 그 밖의 소지품도 문을 나올 때마다 다시 돌려받아 마 지막 지상으로 통하는 문을 나왔을 때는 왕관을 쓰고 일곱 가지 신권을 모두 되찾았다.
마침내 이슈타르가 지상으로 돌아오자 모든 생명체는 다시 생기를 되찾아 열매를 맺고 암수 동물은 생식을 위하여 한 쌍이 되고 남녀는 사랑하 여 모든 생물은 지상의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지하세계를 다녀와 저승의 힘을 획득한 그녀는 이렇게 하여 삶과 죽음에 영 향력을 지닌 월등한 존재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하세계의 지배권은 여전히 에레슈키갈에게 있었다.
그런데 이슈타르는 간지르(저승문)까지의 여 정은 지하가 아니라 지평 이동이며 지상의 여러 곳을 가로질러 지하세계 입 구로 왔으며, 그녀는 수메르 여러 곳의 신전을 버리고 지하세계로 갔다고 한 다.
예컨대 부켈라티의 추정 여정표에 의하면 그녀는 에레크, 바드티비라,자 발람, 아다브, 니푸르, 키시 및 아카드의 7개 도시를 거쳐갔다. 마지막 목적 지는 지하세계의 왕 네르가(에레슈키갈의 남편)의 왕도王都 쿠투였다고 한다.
이것과는 달리 위 내용이 신화적 여정이기보다는 실제 신앙의식의 순례행차 라는 설도 있다. 예컨대 아카디아 서판에는 명백히 지하세계는 쿠투(혹은 쿠 루)로 되어 있고, 그 문을 들어서자 수문장은 그녀에게 "귀부인이여 어서 오 소서! 쿠투는 귀부인으로인해 기뻐하게 되나이다"라 인사하며 환영하고 있다.
쿠투가 지하세계를 의미하지 않음을 생각할 때 이는 도시기능을 상징한 것이 라 할 수 있고, 그렇다면 여정은 종교적인 신앙의식의 행차가 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슈타르의 첫번째 지하계 원정은 실패하였으나 저승 의 권력을 직접 탐지하는데는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가 명계 여왕의 왕 권을 찬탈하는 데 실패한 것은 우선 명게의 문을 통과할 때 지상의 힘을 모 두 상실하였기 때문이며, 이는 라이벌 에레슈키갈의 만만치 않은 전략을 엿 보게 한다.
그러나 이슈타르는 다음 단계에서 닌슈부르에게 지시한 대비책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였다. 그녀의 승리는 '돌아나올 수 없는 땅'에서 돌아나 온 데 있고 ,따라서 지하계 왕 네르갈의 힘을 얻은 것이다. 즉 명계의 핵심 세력의 저항을 극복하고 한 번 들어가면 누구든 붙잡혀 있어야 하는 곳에서 다시 살아나온 것이다.
원래 죽음의 지배권이란 저승 신들에 속하는 것으로 누구든 함부로 넘겨 볼 수 없다. 누구나 가야 하는 저승에서 다시 이승으로 나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이 죽음의 수수께끼를 이슈타르가 마침내 탐색하고 부 활을 체득한 거이다.
명계의 신들 아눈나의 말을 들어보자. "누가 지하계에 서 일어났단 말인가! 누가 언제 지하세계에서 살아 일어났단 말이냐?" 따라 서 이슈타르의 부활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특권을 간단히 양보하려 들지 않았고, 이 때문에 그녀에게 "이 곳을 떠나려면 대신할 자를 내놓으라" 고 한 것이다. 결국 이슈타르 여신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지상으로 돌아 와 그의 신앙을 세계적 신앙으로 확장시키고 이승에서 저승까지 위력을 떨치 는 위대한 종교 혁신을 완수하게 된다.
===
[펌]☞http://blog.daum.net/jasook0691/1460230
신 바빌론 (B.C. 612년)
세계 역사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개의 바빌로니아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기원전 1830년부터 1531년까지 3세기 동안 존속한 바빌론 제 1왕조인 구 바빌로니아(the Old Babylonia)와 그 뒤 천년 후에 같은 자리에서 1세기를 못 넘긴(B.C. 605-53C)느브갓네살의 신(新)바빌로니아(The Neo-Babylonia) 로 구분됩니다. 성경에는 이런 구분이 없이 바빌론(Babylon)으로 불리워져 있습니다.
독일 페르가몬 박물관은 터키 페르가몬의 제우스신전을 통째로 옮겨다 놓았다. 바빌론 최고의 유산인 ‘이슈타르의 문’도 독일 페르가몬 박물관에 있다.
제1왕조가 망한 뒤에도 바빌론은 계속 고대 세계의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로 각광을 받다가 앗시리아 제국 당시에는 봉신(封臣)왕국이 되었습니다.
바빌론 성은 이중성곽으로 높이 3.7m 두께 6.5m이고 양변이 1천8백m와 1천3백m에 달하는 거대한 직사각형입니다. 여덟 개의 거대한 성문 가운데 바빌론의 신 마루둑을 위해 세운 이슈타르 성문이 가장 유명합니다. 성문을 통과하는 길에는 유약을 바른 타일로 만든 황소(벨)와 용(마루둑의 상징)의 형상이 줄을 지어 서 있습니다, 벽에는 파란색 유약을 바른 벽돌로 만들어졌는데 거기에는 빨간색, 노란색, 흰색의 사자들(이슈타르의 상징)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당시 바빌론에는 위대한 신들을 위한 신전 53개, 마르둑신을 위한 예배당 55개, 대지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 3백개, 하늘의 신들을 위한 예배당이 6백개가 있었으며, 여러 신들을 위한 제단이 4백개가 있었습니다. 이 중에는 ‘신의 문’이라는 뜻의 지구라트가 있었는데, 이 탑은 7층으로 높이가 90m며 8천5백만개의 벽돌을 사용했습니다.
바빌론은 거의 2천년 동안 황폐해진 상태로 방치됐다가 1899년부터 1917년까지 독일인 콜데바이에 의해 다시 햇빛을 보게 됩니다. 바빌론은 지구상에 알려진 고대의 성 가운데 가장 크고 장대한 성이었습니다. 바빌론에는 사자의 그림이나 조각이 많은데 이는 사자를 여신 이슈타르와 동일시했기 때문입니다.
[펌]☞http://blog.daum.net/jasook0691/1460230
===
바빌론
고대의 가장 유명한 도시 중의 하나로 BC 2000년대 초기부터 1000년대 초기까지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수도였고 BC 7세기와 6세기의 전성기 때 신바빌로니아(칼데아)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88㎞ 떨어진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바빌론의 광대한 유적은 재 이라크의 알하라시 근처에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넓은 유적지는 몇 개의 흙둔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중요한 것으로는 (1)바빌, (2) 카스르, (3) 메르키즈, (4) 암란 이븐 알리, (5) 훌라 등이 있다.
이슈타르 문
바빌론의 정면현관에 있으며 벽에 사자·황소, 그리고 과 꼬리가 용과 비슷한 괴수 Mushhush가 그려져 있다. 현재 유적의 입구에 있는 이슈타르 문은 복원된 것이고 원 문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천지창조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한 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사랑의 신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그리스의 아폴로디테의 전신이 이슈타르였다는 설도 있다.
공중정원
바빌로니아 수도 바빌론의 왕궁 안에 꾸몄던 정원으로 세계 7대 불가사리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실제로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이 솟아 있는, 즉 지구라트에 연속된 계단식 테라스에 만든 옥상 정원으로 유프라테스 강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물을 댔다. 전해 내려오는 말로는 반전설적 인물인 삼푸라마트 여왕이 만들 었다고도 하고, 네부카드네자르 2세(BC 604∼562 제위)가 고향의 산과 나무를 달래기 위해 만들었다고도 한다.
사마라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130㎞ 정도 떨어 곳에 위치한 사마라는 836년에는 바그다드에서 수도를 이전했던 곳이다. 그러나 다시 892년에 바그다드로 수도를 천도했다. 바그다드에서 모슬까지 가는 철도를 이용하는 것보다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 국영버스나 소형버스, 택시를 용할 수도 있다. 이 중에서 국영버스는 편리하지도 않지만 이용도 어렵다.
하트라와 하트라 사원
성문에 신전입구의 표식과 성내의 약도가 그려져 있다. 입장료를 내고 가다보면 내벽의 입구에 부딪치는데 차는 이 곳까지만 가지고 올 수 있고 더 이상 들어가지는 못한다. 대리석으로 된 성문도 훌륭하지만 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아슈탈테 신의 위풍은 주위를 누른다. 신전을 지탱하는 양쪽 대리석에는 섬세한 조각이 새겨져 있고 벽과 천장을 지탱하는 양 기둥에도 무늬가 새겨져 있다.
함무라비 법전
고대 바빌로니아 제1왕조의 제6대 왕인 함무라비왕(재위 BC 1792∼BC 1750)이 그의 만년인 BC 1750년경 제정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성문법으로 "복수주의"이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후세의 쐐기문자법(바빌론법 ·아시리아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르지역
지금은 텔 엘 무카이야르이다. 1854년 J.E. 테일러가 발견하였다. 우바이드기에서 페르시아 시대에 이르는 각 시대의 유적 ·유물이 밝혀졌으며, 최고 주민은 BC 4000년경까지 소급된다. 우바이드기 후반에 2.4 m 두께의 홍수층이 있는데, 울리는 이것이 수메르지방 일대를 덮치고 뒤에 길가메시 서사시에 반영된 대홍수라고 생각하였다.
【왕묘의 발굴】울리는 ‘왕가의 묘지’로 일컬어진 지구에서 약 2천기를 발굴하였으며, 왕묘는 그 중 16기이다. 모두 지하에 석조로 만들어졌으며, 호화로운 부장품과 다수의 순사자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여왕 슈브 아드 묘에는 정교한 금 ·은세공과 보석을 여기저기 박은 머리장식품 ·빗 ·귀걸이 ·가슴장식품 등을 여왕의 시체에 장식하였고, 28명의 성장(한 시녀를 매장하였다.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된 하프, 7현금, 2마리 당나귀가 끄는 썰매, 황금그릇 등 다수가 출토되었다.
[펌]☞http://tvzonebbs6.media.daum.net/griffin/do/talk/gallery/SS501/read?bbsId=S000021&articleId=640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