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언양 화장산은 영남알프스 둘레길 2-2구간의 일부이다. 걷는 시간은 적을지라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시간은 오히려 더 길다. 소설가 오영수에게 어린 날 언양은, “봄이면 뻐꾸기 울음과 함께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고, 가을이면 단풍과 감이 풍성하게 익는, 물 맑고 바람 시원한 산간 마을이었다.”
한때 많은 아이가 마을 뒷산에서 놀았다. 산소는 놀이터였다. 배고프면 삘기나 찔레, 산딸기, 뽕나무의 오디를 먹거나 칡을 캐어 묵기도 했다. 산은 추억의 통장이었다. 이제 마을 뒷동산에 놀러 가는 아이들이 없다. 마을 산은 단지 거기에 있을 뿐이다. 오늘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마을 뒷동산 같은 언양 화장산에 가보자.
언양의 진산은 고헌산이지만, 마을 사람에게 주산은 화장산(210m)이다. 이 산은 문학, 생명, 역사, 종교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출발은 오영수 문학관이다. 난계 오영수는 언양읍성 근처에서 태어나, 언양초등학교를 졸업한 소설가로, 근대적 도시문명으로부터 떨어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담아낸 단편소설을 썼다. 그는 농촌공동체의 정서를 중시한 자연 친화적이고 서정적인 반문명적인 작품 활동을 했다. 그에게 부족했던 역사나 사회에 대한 책무는 그의 아들 오윤이 메꾸었다. 오윤은 80년대 민족적 사회적 사실주의에 따라서 민중 판화, 민중 예술의 문을 연 요절한 조각가였다. 오영수 문학관은 올해 1월 21일 개관하였다. 지상 2층 건물로 1층은 전시관, 2층은 도서실과 세미나실로, 야외 공연 공간도 있다.
소설가 오영수의 묘(왼쪽)엔 큰아들이자 판화가 오윤이 ‘오영수 여기 잠들다’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오영수문학관 전시관 내부(오른쪽) 지난 21일 울산 최초의 문학관인 오영수 문학관이 개관돼 그의 문학정신과 주민의 문학공간이 될 것이다.
문학관에서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은 언양성당과 성모동굴 가는 길이다. 길에 순교자 오상선의 묘가 있다. 그는 병인박해 중 언양옥에서 얼굴에 물을 뿜고 백지를 붙여 질식사시키는 백지사(白紙死)를 당했다. 신앙의 자유가 질식하던 시절,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산으로 난 800m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처음에는 나무 십자가를 세웠었다. 지금은 예수가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인 골고다 언덕을 향해 걸었던 약 800m의 길에 있었던 14개 사건을 부조로 표현하고 있다. 속을 비운 대나무가 바람에 서걱거린다. 경건함이 저절로 깃드는 속죄의 길이다. 성모동굴은 생각보다 꽤 넓다. 석간수가 흐르고, 성모마리아 상이 있고, 그 주변에 의자가 몇 놓여있어 예배를 볼 수 있다. 동굴의 천장은 연기에 그을린 흔적이 보인다. 앞에는 대나무 숲이 있어 멀리서도 잘 보이지 않고, 동굴 위에서도 알 수 없다.
성모동굴, 성모마리아와 의자가 있어 예배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밖에서는 보지이 않는 곳이다. 1926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곳이다.
동굴 오른쪽으로 난 길을 올라가면 화장산 정상이다. 천주교인들의 공동묘지이다. 그 중 정삼품 통정대부 김해김공의 묘비명이 눈에 들어온다. 빈부격차가 무덤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영남알프스와 언양 일대가 눈 가득 들어온다. 왼쪽으로 난 길 끝은 ‘바람의 언덕’이다. 울주군 상북면과 석남사 가지산에서 부는 바람이 모두 이곳을 스치는 듯 바람이 거칠다. 다시 길을 오른쪽으로 가면 정자가 나오고 길을 따라 내려간다. 산정상에서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 조금씩 펼쳐진다. 작년 봄 화장산 일대 화재 현장이다. 화장산은 소나무 산이다. 몇몇 나무는 그을렸지만 푸른 잎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북쪽으로 걸어갈수록 곧게 뻗은 소나무들이 검은 상복을 입고 서 있다. 나무들의 공동묘지이다. 산새들도 장송곡을 부르는 듯하다. 푸름이 사라진 검은 숲이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는 가지가 없다. 일부 나무 아래에 새순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드물다. 오히려 고사리 등 양치류가 많이 보인다. 불난 뒤 나물 천국이 맞다. 죽음이 있어도 생명은 늘 새롭게 탄생한다. 그것이 자연 생태계이다.
산불 이전 김취려 장군의 묘지은 울창한 소나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은 검은 소나무들이 호위하고 있다.
김취려 장군의 묘는 불 폭탄을 맞은 것처럼 주변에 살아있는 나무가 하나도 없다. 장군은 언양 김씨 시조로, 고려 때 거란의 침입에 맞서 1만 5천 명의 군사로 15만 명을 물리쳤다. 거란족을 떨게 한 고려의 명장에다 최고 관직인 문하시중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무덤은 동향의 양지바른 곳에 있다. 사자 석상, 신구 문인석과 무인석이 양쪽에 나란히 서 있다. 무덤 정면에 제단이 있고, 그 앞에 석등(장명등) 하나, 양쪽에 동자가 한 명씩 서 있다. 그런데 옛 문인석은 똑같이 머리 부분이 각각 하나씩 없다. 호위무사처럼 에워싸있던 소나무들은 을씨년스럽다. 장군의 무덤에서 약 350m 내려오면 오영수 무덤이 있다. 오윤의 글씨로 ‘오영수 여기 영원히 잠들다.’라는 비석을 울산문인협회에서 세웠다. 무덤 주변에 별다른 특징이 없어 그의 삶에 대한 안내판 하나 정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은 화마를 피했는지 대나무와 소나무가 여전히 살아 푸른빛을 반짝이고 있다.
다시 화장산으로 올라간다. 산 위에는 도화정이 서 있다. 사방 탁 트여 주변을 조망하기 좋다. 정방형을 한 언양읍성 전체를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다. 화장산에는 신라 때 곰에 의해 죽은 사냥꾼 부부를 찾으러 갔다 얼어 죽은 남매가 대나무, 소나무가 된 이야기가 전해온다. 그래서일까. 화장산에는 송죽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신라 소지왕의 병을 기도불공으로 고친 도화스님 때문에 언양읍 남문루의 현판을 영화루로 고치고, 산 이름을 꽃을 감춘 산인 화장산으로, 그리고 화장암을 창건한 유래를 간직하고 있다.
화장산에서 본 여름날의 언양읍, 가운데 정방형이 언양읍성이고, 마주한 산이 문수산이다.
굴암사는 큰 바위 아래, 방처럼 넓은 공간에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아미타불은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구제하여 정토를 구현하겠는 신념을 지닌 부처이다. 동굴 안에 흐르는 염천(廉泉, 옥샘)은 예로부터 전해오기를 부정한 사람이 와서 이 물을 마시면 샘에서 냄새가 나며 또한 물이 마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탈속의 공간은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실천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깨달음은 바로 그 자신에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방황하는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야생의 소를 길들이는 과정으로 비유한 심우도의 마지막은 입전수수(立廛垂手)이다. “이제는 거리로 들어가 중생을 제도하라.”는 것이다. 종교는 단지 종교적 공간에서 삶을 해방하는 것이 아니다. 석가모니의 삶은 탈속의 공간이 아닌 세속의 저잣거리였다. 계급적 차별을 넘어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선각자였고 기득권을 포기한 사람이었다.
굴암사를 내려오면 언양성당이다. 언덕에 꿋꿋하게 서 있는 소나무처럼 울산 언양지역 천주교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다. 1936년에 완공된 건물로, 에밀 보드벵신부가 명동성당을 건축한 중국기술자들을 데려와서 지었는데, 부산교구의 유일한 고딕식 석조 2층 건물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제이다. 부산교구 내에선 두 번째로 설립된 본당으로 주변에 여러 곳의 공소와 순교자의 무덤이 있는, 영남지역 천주교 신앙의 출발지요 신앙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주변의 아파트에 때문에 왜소해 보이지만 성당을 지을 그 당시는 주변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이었다. 신앙유물 전시관에는, 초기교회 교우들이 사용하던 각종 기도서 교리서 등 고서, 그리고 미사와 전례에 사용했던 제의와 제구들도 전시되어 있다. 우리 주변 마을마다 민속과 마을사람의 삶을 전시할 공간이 많아야 한다. 그래야 후세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양성당은 1936년에 완공된 건물로, 에밀 보드벵신부가 명동성당을 건축한 중국기술자들을 데려 와서 지었는데, 부산교구의 유일한 고딕식 석조 2층 건물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제이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이 화제이다.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이다.” 자본주의의 탐욕을 비판하고 사회적 소수자, 약자에 관한 관심을 촉구한 그가 생일 아침 초대한 손님은 교황청 앞 노숙인 세 명이었다. 세상의 소금 역할을 종교가 해야 한다. “안온한 성전 안에만 머물며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밖으로 나가라.”,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정의구현이야말로 교회가 새로 하는 복음 선교다.” 결국 세상을 바꿀 실천자는 각 개인이다. 하지만 단결된 조직이다. 그리고 나와 가족의 구원을 넘어 세계인의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면 예수의 사랑과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것이리라. 예수의 혁명은 강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약자를 위한 것이었다.
언양 화장산은 문학에서 시작하여 자연의 생태계를 생각하다가 종교로 마감되는 산이다. 작은 마을 뒷산에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다. 숨은 꽃, 화장산에서 이제 우리가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