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서양에서도 동양의 한국, 일본, 중국과 같이 " 무인시대 "는 존재하였지만 원래 서양에서는 중앙집권국가가 드물었으며 대다수의 시기에는 봉건국가들이 들어섬으로써 고려의 무신정권 때보다는 후삼국시대와 더 유사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에서 중요한 중앙집권국가를 찾는다면 다름아닌 로마를 들 수 있는데 로마 역시 고려와 같이 " 무인시대 " 동안에 체제의 모순과 변화, 내란과 외침 등의 모든 문제를 겪게 된다.
과두정 말기 원로체체제의 모순이 더해짐에 따라 로마는 첫번째 " 무인시대 ", 즉 내란기( 기원전 133∼31 )가 도래하여 마리우스( Marius ), 술라( Sulla ), 폼페이우스( Pompeius ), 카이사르( Caesar ), 안토니우스( Antonius ) 등의 무인들이 출현하여 원로원체제 중심의 벌족파( 閥族派 )와 신체제 중심의 민중파로 나뉘어 정쟁을 벌였다.
마찬가지로 고려에서도 문벌귀족체제의 모순으로 무인들이 집권하여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이의민, 최충헌 등과 같이 고위가문 출신의 온건파와 하층계급 출신의 급진파로 나뉘어 정쟁을 벌임으로써 " 무인시대 "가 단순한 정쟁이 아닌 구체제의 모순해결방법에 대한 사회계층 간의 대립임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로마에서는 내란의 와중에서도 영토를 확장하고 제국의 기틀을 쌓았으며 민중파가 승리함으로써 과두정에서 제정으로 체제가 전환하는데 반해 고려에서는 자체 역량이 소모되기만 했고 온건파 무신 최씨정권이 집권함으로써 역시 과두정에서 일인독재로 전환하였지만 반대로 왕조체제 자체는 바뀌지는 않았으며 새로운 계층의 진입이 저지되었고 구체제는 유지되었다. 이후 로마는 옥타비아누스( Octavianus ) 치하에서 원수정( 元首政 )의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로마의 최전성기였던 5현제 시대가 끝나자 로마의 원수정은 몰락하기 시작한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Septimius Severus )가 군사독재에 기반하여 일시 정권을 안정시킬 수는 있었으나 이로 인하여 군대가 대두함으로써 세베루스 왕조 이후에 마침내 로마의 " 무인시대 "가 재개되어 군인황제시대( 235~284 )가 시작된다.
군인황제시대 동안 중앙에는 황궁을 지키는 근위대장이 재상과 같은 권한을 행사하였으며 지방에서는 각 지방의 군대가 대립황제를 옹립하여 정치적 분열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로마제국에서는 30인의 참주 시대라고 하여 각지에 19명의 대립황제가 난립하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제위는 난마와 같이 교체되었다.
고려에서도 지방 무신세력은 존재하였지만 로마보다 더욱 중앙집권적이었던 고려에서 지방 무신들의 세력은 미약하여 중앙정부에 대한 도전은 결국 실패하였다. 이러한 지방 무신세력의 부재로 인하여 고려에서는 중앙의 무인세력만이 존재하여 권력투쟁을 벌이고 무인정권의 집정부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으며 유학사상의 영향이 미치는 관계로 고려의 정치적 통일성은 강하게 유지되었다.
( 고려와 로마의 무인정권을 타국의 무인정권 체제와 비교해본다면 고려 무인정권은 중앙의 무인정권인 막부가 존재하였던 일본 무인정권과, 로마 무인정권은 지방의 무인정권이 연속적으로 할거하였던 중국 무인정권과 유사한 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로마의 두번째 " 무인시대 " 역시 같은 무인출신인 디오클레티아누스( Diocletianus )가 즉위함에 따라 수습되었다. 그는 황제권력의 강화, 속주의 분할, 문관 및 무관의 구분 등의 정치, 경제, 군사적 체제를 재편하여 강력한 군주 중심의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이후 콘스탄티누스( Constantinus )는 개혁을 계승 강화하고 기독교를 도입하는 등의 활동으로 로마제국은 그 이전의 입헌군주정이었던 원수정에서 동방적 절대군주정로 변화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을 이루어냈다.
반면에 고려는 군주 자신이 적극적인 왕권회복의 주체가 되지 못하였으며 게다가 무신정권의 몰락이 몽골이라는 외세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탓도 있어 강력한 군주 중심의 개혁은 시도되지 못하였고 반대로 몽골의 강압으로 인하여 중앙정치기구가 속국의 체제로 격하되고 문벌귀족과 잔존무신이 결합하여 탄생한 권문세족계층이 집권함에 따라 권문세족의 합의기구인 도평의사사( 都評議使司 )가 발전하여 재상 중심의 정치체제가 성립됨으로써 중앙집권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로마는 " 무인시대 "로 인하여 발생한 위기를 절대군주정으로써 강력한 중앙집권을 꾀하여 일시적으로 해결하였으나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대내적으로는 사회, 경제적 모순으로, 대외적으로는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로마는 결국 자체 모순을 이겨내지 못하고 멸망하였으며 그 문명은 사라지고 말았다.
고려는 이와 달리 " 무인시대 "로 인하여 발생한 위기가 해결되지 못하고 변질된 귀족체제의 모순이 그대로 잔존하여 대내적으로는 신귀족계층인 권문세족으로, 대외적으로는 북방민족과 왜구의 침입으로 더욱 상황이 악화되었으며 게다가 세계제국 몽골의 간섭까지 받았다. 그러나 여말선초 동안 고려인들은 점진적으로나마 사회의 폐단을 개혁하였으며 비록 고려왕조는 교체되었으나 그 노력은 조선왕조의 건국으로써 결실을 맺었고 고려의 유교문명은 보존되었으며 계속 발전하게 되었다. 이 점에서 우리는 한국과 로마, 아울러 역사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