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지에서(In der Strafkolonie 1919) La Colonie pénitentiaire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엄인정, 매월달, 2015. pp. 125-171. .
- 1919(서른여섯) 유형지에서(La Colonie pénitentiaire(In der Strafkolonie 1919)(71p.)
- 유형지 1914년에 쓰기 시작해서 거의 완성했다. 소송도 이해 집필 시작했다
* 사형제도에 대해 반대한다는 견해이라기보다도, 도대체 기이하고 복잡하고 괴상한 장치로 사형을 처하는 방식을 고집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점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런 방식이 특히 자신이 고안했다는 창조적 자부심을 시대의 변화에도 그대로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계속밀고 나가는 인간(장교)이 있다. 인간이 도구를 창안하여 사용할 때 그 편리함에 그저 빠져 있는 자들이 바로 주지주의자들이 아닌가? 그 인간은 얼마나 인간적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며 도구의 발명에 찬사와 영광을 받으려 하지 않았던가.
여기에 관련된 다른 인간들(죄수들)은 인간으로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계의 부속품으로 취급되고, 기계의 사용이 빈번하거나 또는 수적으로 많아질 경우에 그 장치의 부속을 교체하고 또 정비하는 병사도 그리고 이 기계를 집행하기 위해 장치를 점검하는 장교도 기계의 부속으로 배치물의 일부분이 된다. 이방인으로써 이곳에 온지 며칠 되지 않은 탐험가는 이런 기계가 아직도 작동하는 것이 신기하고 의아하다. 그리고 그 기계를 수리 보수하면서, 자신(또는 전임사령관)의 창조물이라고 자랑하며 아끼는 그 인간(장교)의 고착적이고 뻣뻣한 삶에 대해 웃어주고 싶지만, 그저 현 사령관이 판단할 것이라고 넘기려 한다. 그 장치에서 고결하고 준엄함이란 “정의를 수호하라”라는 명령인데, 장교는 그 실행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사형수가 아니라면 자기라도 그 장치의 준엄함을 시행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교는 그 사형수 대신 그 장치에 들어간다. 자기 스스로 죽음의 구덩이를 판 셈이다. 어쩌면 전쟁이란 것도 “정의 호소”라고 하지만 그 주장을 하는 자들이 그 수렁에 빠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지역민들이 웃는 곳에서 이방인은 웃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은 지역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아무 대꾸하지 않을 때 “웃음거리(le comique)”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유형지 섬의 항구에 있는 카페에 있는 자들이 웃고 있는 것은 전임사령관을 따르는 그 시절과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탐험가가 아무 말 없이 이 섬을 떠나는 것은, 여기서 신임 사령관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냐고 판단과 실제적 조치에 관하여 슬쩍 그 집행자들에게 넘기는 것이다. 그래도 그 찬사와 영광이라는 미몽에 빠진 자들은 스스로 그 속에 기어들어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강공주도 기춘 대원군도 그리고 “우리가 최순실 이다”라는 큰 현수막을 국회 의사당 앞에서 들고 시위를 했던 새누리당 의원들도 미몽에 빠진 것은 전쟁 트라우마를 아직까지도 이용해 먹는 짓거리들이다. 촛불의 솟아오름이 인민에게 심리 상흔을 벗어날 때를 알린 것이다. (50R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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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지에서 125-171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
“정말 신기한 장치지요” / 장교는 탐험가에게 이렇게 말한 뒤 새삼 놀란 분빛을 낯익은 장치를 바라보았다. 탐험가는 여행 중이었는데, 상관의 명령을 거스른 죄로 형을 선고받은 한 병사의 사형집행에 참석해 달라는 사령관의 제의를 받고 온 것이었다. 탐험가는 예의상 그의 제의를 승낙했다. 그러나 이런 처형에 관해서는 이미 이곳 유형지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 사방이 적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온통 모래밭 천지인 이 골짜기에는 장교와 탐험가, 입이 크고 머리와 수염이 텁수룩하며 얼굴이 시커먼 사형수와 사병만이 있을 뿐이다. ... (125, 첫 문단과 다음문단 일부)
“사형수도 본인의 판결 내용을 알고 있습니까?” / “전혀 모릅니다.” / 장교는 이렇게 말하며 계속 설명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탐험가가 재빨리 다시 물었다. / “자기의 판결도 모른다고요?” / “모릅니다.” (134)
“ ... / 예전에는 집행장 분위기가 이렇지 않았습니다. 처형 전날부터 이 골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었지요. 사령관은 오전부터 일찍 부인과 함께 이곳에 와 있었지요. 모든 이들의 잠을 깨우는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면 저는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는 보고를 했습니다. 여러 고관들이 모두 참석했지요. 참석자들은 모두 장치를 에워쌌고, 저 등나무 의지들이 바로 그때 사용되던 것들입니다. 관리가 잘 되어 있던 장치는 번쩍번쩍 빛이 나고 집행을 할 때마다 새 부속품을 사용했지요. 저 언덕까지 구경꾼들로 꽉 차서 다들 까치발로 서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령관이 직접 죄수를 써레 위에 눕혔습니다. 지금은 사병이 하고 있는 일이 당시에는 저의 일이었고 명예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집행이 시작되었고 소음 하나 없이 기계가 작동되었습니다. 구경꾼들 중에는 모래 위에 드러누워 잠을 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정의의 심판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때때로 펠트를 문 죄수의 비명만이 정적 속에서 들릴 뿐이었지요. 당시에는 써레의 바늘 끝에서 부식 약품이 흘러나오게 했기 때문에 죄수들이 펠트 뭉치를 물고 있어도 비명이 들렸지요. 현재는 사용이 금지 되었지만요. 그렇게 여섯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가까이 와서 구경하고 싶어 했지요. 하지만 그들 모두의 소원을 들어줄 수 순 없었기에 친절한 사령관은 어린아이들에게 우선권을 주었지요. 그래서 저는 어린아이들을 양팔에 끼고 장치 옆에 앉아 있곤 했습니다. 양심의 가책과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죄수의 얼굴에서 신성한 변화의 표정을 보았을 때 그때의 기분이란 목표에 이르는 순간 어느새 사라지는 정의의 빛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얼마나 화려했던 시절이었는지! 이봐, 자네!” / 감상에 젖은 장교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조자 잊는 것 같았다. (149-150) [과거의 영광에 빠져, 변화된 세계에서도 과거의 영화를 꿈꾸며 이야기하는 장교.. 써레(die Egge, die Heugabel, une herse) ]
장교는 벌거벗은 채 서 있었다. 탐험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탐험가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나 그는 장교의 행동을 제지할 권리가 없었다. 그 동안 장교는 심혈을 기울이던 재판 과정이 탐험가 때문에 위기에 처해질 수도 있으나 탐험가는 그게 그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만약 탐험가가 장교의 입장이었어도 그처럼 행동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 .. 사형수는 무언가 큰일이 벌어질 거라 예감하는 듯했다. ‘방금 전에는 자신이 벌거숭이가 되었고 이번엔 장교가 그렇게 되었으니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저 외국인 탐험가의 지시로 그렇게 된 것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복수다. 다행히 자신은 최후의 고통을 당하진 않았으나, 장교는 마지막까지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사형수는 웃고 있었다. (164)
... 그 순간 탐험가는 장교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살아 있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그가 그렇게 확신하던 구원의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고 눈은 뜨고 있었다. 눈은 평온해 보였으며 어떤 확신에 차 있었다. 그리고 이마에는 커다란 바늘이 조금 솟아나와 있었다. / 탐험가는 사병과 사형수와 함께 유형지의 어느 마을에 들어섰다. 그러자 사병이 어느 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 “저곳이 카페입니다.” (168)
‘노 사령관, 이곳에서 잠들다. 이름을 남기진 않았으나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그를 위해 무덤을 만들고 묘비를 세웠다. 시간이 흐르면 사령관은 다시 부활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는 여기서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유형지를 되찾을 것이니 모두 이 예언을 믿고 기다리라!’ / 탐험가는 묘비에 적힌 글을 다 읽고 일어섰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도 같이 일어서며 ‘우리도 읽어보았지만 정말 우스운 얘기요. 그렇지 않소?’하고 묻는 듯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170)
탐험가는 이미 계산을 다 내려와 사공에게 기선까지 태워다 달라는 말을 전하고 있었고, 두 사람은 재빨리 계단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큰 소리로 떠들면 일을 그르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이 계단을 다 내려왔을 때 탐험가는 이미 배를 올라탔고 육지에서 떨어진 상태였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배 위로 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탐험가가 배의 바닥에 있는 굵은 밧줄을 들어 올려 그들이 배에 오르지 못하도록 위협했다. (171, 마지막 문단)
(3:13 50RLE)
설1883카프카1919유형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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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Έρως, Cupido)의 원래 의미는 헤로도토스의 신통기에 카오스에게 에로스가 작용하여 가이아와 닉스를 낳았다. 그리고 점점 정교화되어 로마 신화에서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등장한다. 그는 매일 밤 프쉬케(Ψυχή, Psyche)를 찾아 간다. 프시케는 에로스를 알아보려고 하지만 알게 되는 순간에 에로스는 사라진다. 아프로디테가 프시케에게 준 벌이라 한다. 해석상 심리(영혼)은 내용을 알려고 하는 순간에 뒤로(심층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을 표상한다.
로마 신화가 된 이야기는 아풀레이우스(Apulée, en latin Lucius Apuleius, 123-170이후)가 쓴 변신Métamorphoses (4, 28-6,24)(원제: Metamorphoseon libri XI ou Asinus aureus)에 나오는 이야기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