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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전가를 연구하면서 만난 이 작품에서 유교적 사회의 연장을 여성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작가에 대한 재고를 하고 있다. 사회가 급격히 변해가는 중에도 여성에게 유교적 사회를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는 가사이다.
이 작품의 문제는 일반화전가와 달리 단순하게 꽃놀이를 노래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꽃놀이 도중 청춘과부가 자신의 슬픈 사연을 이야기하는 부분과 이를 위로하는 덴동어미의 내력은 기막힌 현실로 등장한다. 그는 네번의 결혼과 네번의 사별을 한 인물인데 첫째 남편은 함께 추천(그네)를 타다가 줄이 끊어져서 사망하고, 둘째 남편은 많은 빚을 지고, 역병(괴질)이 돌아 사망하고, 셋째 남편은 산사태로 사망하고, 넷째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는데 엿을 만들다가 집안에 화재가 일어나 사망하고 아이는 화상을 입어, 자신은 덴동어미로 불리게 되었다. 덴동어미는 둘째 남편 이후 남편들이 죽을 때마다 자살을 결심하지만 주변의 만류로 인해 겨우겨우 목숨을 이어가며, 연민과 위로가 나타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유교적 맥락이다. 개가를 해봤자 죽을 고생만 하니 개가하지 말고 수절하고 살라는 충고가 그것이다. 즉 운명론적 인생관과 더불어 팔자를 강조하면서 팔자 고칠 생각말고 수절하며 살라는 의미다. 이를 통해 이 노래의 작가에 대한 재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유교의식의 확장을 일반화전가에 끼어든 덴동어미의 액자식 서사를 통하여 한바탕 신나게 놀면서도 모든 것이 운명이요 팔자니 개가하지 말고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서 당시 여성들의 개가에 대한 의식이 크게 재고되고 있었으며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커져 가고 있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즉 일반화전가에 당시에는 가능하지 않은 덴동어미의 서사를 입혀서 일반 서민을 계도하고 있다. 신분제의 동요는 물론 여성들의 목소리도 커져가는 사회에서 이를 신명나는 화전가 속에 삽입하여 유교사회의 연장을 의도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는 대목이다.
덴동어미의 네번의 개가 사건은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을 넘어서는 억지에 가까운 서사다. 당시의 사회가 개가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데 네 번씩이나 개가하였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게다가 그는 개가할 때마다 남편이 비명횡사하는 기막힌 상황을 만난다. 이 또한 너무 억지에 가까운 비현실적 요소라 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개가해봤자 운명은 어쩔 수 없다는 의식을 심어 주어 개가보다는 수절이 났다고 계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써 당대 사회에서 변해가는 여성의 의식이 성장하는 것을 막고 유교사회의 연장을 유도하며 일반화하려는 꼼수가 느껴진다. 여성 억압을 교묘하게 화전가라는 신명나는 놀이에 끼워넣은 것이다.
덴동어미화전가
가세 가세 화전 가세 꽃 지기 전에 화전 가세.
이때가 어느 땐가 때마침 3월이라,
햇볕의 은혜 깊어 봄 날씨 따뜻하고
꽃 필 바람 화공되어 만화방창 단청 되네.
이런 때를 잃지 말고 화전놀이를 하여보세.
문밖 출입 않다가도 소풍은 하려니와
우리 비록 여자라도 흥취 있게 놀아보세.
어떤 부인은 맘이 커서 쌀 한 말을 퍼내 놓고,
어떤 부인은 맘이 적어 쌀 반 되 떠내 주고,
그렁저렁 모아보니 쌀 닷 말이 조금 넘네.
어떤 부인 참기름을 어떤 부인 들기름을
어떤 부인 많이 내고 어떤 부인 적게 내니,
그렁저렁 모아보니 기름 반동이 넉넉하네.
놋대야가 두세 채라 짐꾼 없어 어어 할꼬.
상단아 기름을 이어라, 삼월이 쌀가루 이어라.
취단이 쌀가루 이고, 향난이 놋대야 이어라.
열여섯 열일곱 새색시 갖은 단장 옳게 한다.
청색실 홍색실을 감아들고 눈썹을 지워내니,
가는 붓이 그린 듯이 팔자 눈썹 어여쁘다.
양식단 겹저고리 길상사 고쟁이
잔줄누비 겹허리띠 맵시 있게 잘끈 매고
광월사 치마 분홍 밑단 툭툭 털어 들쳐 입고
가르마 곱게 빗어 잣기름 발라 손질하고
공단댕기 갑사댕기 수북이 다남자를 딱딱 박아
청홍진주 곱게 붙여 착착 접어 곱게 매고
금비녀 금비녀 뒷머리에 살짝 꽂고
금은 장도 갖은 장도 속고름에 단단히 차고
금은 조롱 갖은 패물을 겉고름에 비껴 차고
일광단 월광단 머리보는 고운 손에 감아들고
삼승버선 수당혜를 날 자로 신었구나.
반만 웃고 썩 나서니 일행 중에 제일일세.
광한 선녀 강림했나, 월궁 항아 하강했나.
있는 분은 그렇거니와 없는 분은 그대로하지.
양대포로 겹저고리를 솜씨 있게 지어 입고
칠승포에 칡물 들여 일곱 폭 치마 떨쳐 입고
칠승포 삼배 허리띠를 모양만 있게 들러 띠고
굵은 무명 겹버선을 술술하게 빨아신고
반 돈짜리 짚신이라 그도 또한 소박하다.
열일곱 살 청춘과부 나도 같이 놀러가지.
나도 인물 좋건마는 단장할 뜻 전혀 없어
때나 없게 세수하고 거친 머리 대강 만져
놋비녀를 슬쩍 꽂아 눈썹 지워 무엇하리.
광목과 당목 남빛 치마 끝동 없는 흰 저고리
흰 고름을 달아 입고 전에 입던 고쟁이
대강대강 수습하니 어련하고 무던하네.
건넛집의 덴동어미 엿 한 고리 이고 가서
가지가지 가고 말고 낸들 어찌 안 가리까.
늙은 부녀 젊은 부녀 늙은 과부 젊은 과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자 행차 장관이라.
순흥이라 비봉산은 이름 좋고 놀기 좋아
골골마다 꽃빛이요 등등마다 꽃이로세.
호산나비 병나비야 우리 같이 화전하나.
두 날개를 툭툭 치며 꽃송이마다 밟고 다니니
사람 간 곳 나비 가고 나비 간 곳 사람 가니,
이리 가나 저리 가나 간 곳마다 동행하네.
꽃아 꽃아 두견화야, 네가 진실로 참꽃이다.
산으로 일러 두견산은 귀촉도 귀촉도 관중이오.
새로 일러 두견새는 불여귀 불여귀 산중이오.
꽃으로 일러 두견화는 불긋불긋 만산이라.
곱고 곱다 진달래요, 사랑하다 진달래요,
넓게 퍼진 진달래요, 갖은 빛깔의 진달래라.
치마에도 따 담으며 바구니도 따 담으니
한줌 따고 두 줌 따니 봄빛이 바구니에 머무르고
상놈이 뚝뚝 꺾어 양쪽 손에 갈라 쥐고
잡아뜯을 마음 없어 향기롭고 이상하다.
손으로 쥐어 보고 몸으로 털어 보고
낯에다 살짝 대고 입으로 함빡 물고
저기 새댁 이리 오게. 곱네 곱네 꽃도 곱네.
오리불신 고운 빛은 자네 얼굴 비슷하이.
방실방실 웃는 모양 자네 모양 방불하이.
앵고부장 속 수염은 자네 눈썹 똑 같으네.
아무래도 다른 맘 없어 뒷머리에 꽂아 보니,
앞에 봐도 화용이요 뒤로 봐도 꽃이로다.
상단이는 꽃 데치고, 삼월이는 가루짐 풀고
취단이는 불 넣어라, 향단이가 떡 굽는다.
시냇 넓은 바위 위에 노소 갈라 자리 펴고
꽃떡을 드리나마 노인 먼저 드리어라.
엿 떡 함께 먹으니 향기로운 감미로다.
배불리 실컷 먹고 서로 보고 하는 말이
일 년 한번 화전놀이 여자놀음 제일일세.
종다리는 날쌔게 떠 빌빌밸밸 피리 불고
오고가는 뻐꾸기는 벅궁벅궁 벅구치고
봄 빛자는 꾀꼬리는 좋은 노래로 벗 부르고
호랑나비 범나비는 머리 위에 춤을 추고
말 잘하는 앵무새는 잘도 논다고 치하하고
천연화표 학두루미 요지연인가 의심하네.
어떤 부인 글이 용해서 내칙편을 외워내고
어떤 부인 흥이 나서 칠월편을 노래하고
어떤 부인 목청 좋아 화전가를 잘도 부르네.
그 중에도 덴동어미 멋나게도 잘도 놀아
춤도 추며 노래 하니 웃음소리 낭자한데
그 중에도 청춘과부 눈물콧물 꾀죄하다.
한 부인이 이른 말이 좋은 풍경 좋은 놀이에
무슨 근심 대단해서 눈물이 웬 일이오.
수건으로 눈물 닦고 내 사정을 들어보소.
열네 살에 시집 올 때 청실홍실 늘인 인정
이별 말자 맹세하고 백년 살자 하였더니
겨우 삼 년 동거하고 죽어 영영 이별하니
임은 겨우 십육이요 나는 겨우 십칠 세라.
선풍도골 우리 낭군 어느 때나 다시 볼꼬.
방정맞고 가련하지 애고애고 답답하다.
십육세에 요절한 이 임뿐이요,
십칠세의 과부는 나 뿐이지.
삼사 년을 지냈으나 마음에는 안 죽었네.
이웃사람 지나가도 서방님이 오시는가,
새소리만 귀에 오면 서방님이 말하는가,
그 얼굴이 눈에 삼삼 말소리가 귀에 쟁쟁
눈만 뜨면 우리 낭군 자나 깨나 잊겠는가.
잠이나 잘 오면 꿈에나 만나지만
잠이 와야 꿈을 꾸지 꿈을 꿔야 임을 보지.
간밤에야 꿈을 꾸니 정든 임을 잠깐 만나
정담을 다 하렸더니 이야기를 채 못하여
꾀꼬리에 깨어나니 임은 정녕 간 곳 없고
촛불만 깜박이니 아까 울던 저 놈의 새가
자네 듣고 좋다 하되 나와 백 년 원수로세.
어디 가서 못 울어서 내 단잠 깨우는고.
정정한 마음 둘 데 없어 이리저리 재던 차에
화전놀이 좋다 하니 상한 마음 풀까 하고
자네 따라 참여하니 슬픈 감정뿐이로세.
보니 족족 눈물이요 들으니 족족 한숨일세.
천하만물 짝 있는데 나는 어찌 짝이 없나.
새소리에 마음 상하고 꽃 피어도 슬픈데
애고 답답 내 팔자야 어찌하여야 좋을까나.
가자하니 말 아니요, 아니 가고 어찌할꼬.
덴동어미 듣다가 썩 나서며 하는 말이
가지 마오 가지 마오, 제발 적선 가지 말게.
팔자 한탄 없을까만 간단 말이 웬 말이오.
잘 만나도 내 팔자요 못 만나도 내 팔자지
백년해로도 내 팔자요, 십칠 세 과부도 내 팔자요.
팔자 좋을 양이면 십칠 세에 과부될까.
운명은 못 피할지라 , 이내 말을 들어보소.
나도 본디 순흥 읍내 임이방의 딸이러니,
우리 부모 사랑하사 어리장 고리장 키우다가
열여섯에 시집가니 예천 읍내 그 중 큰 집에
치장하여 들어가니 장이방의 집이러라.
서방님을 잠깐 보니 준수비범 풍후하고
시부모님 알현하니 사랑한 마음 거룩하네.
그 이듬해에 처가 오니 때마침 단오여라.
삼백 장 높은 가지 그네를 뛰다가
그네 줄이 떨어지며 공중에서 메어 박혀
그만 몸이 부서지니 이런 일이 또 있는가.
새 정이 미흡한데 십칠 세의 과부 됐네.
하늘 향해 슬피 운들 죽은 낭군 살아올까.
한숨 모아 큰바람 되고 눈물 모아 강물 된다.
낮밤 없이 슬피 우니 보는 이마다 눈물나네.
시부모님 하신 말씀 친정 가서 잘 있거라.
나는 아니 가려하니, 달래면서 타이르니
할 수 없어 허락하고 친정이라 돌아오니
삼백 장이나 높은 나무 나를 보고 흐느끼는 듯
떨어지던 곳, 님의 넋이 나를 보고 우니는 듯
너무 답답 못 살겠네. 밤낮으로 통곡하니
양쪽 부모 의논하고 상주읍에 중매하니
이상찰의 며느리로 이승발의 후처 되니
가세도 웅장하고 시부모님도 자애롭고
낭군도 출중하고 인심도 거룩한데
매양 앉아 하는 말이 포가 많아 걱정하더니
해로 삼 년 못다 가서 성 쌓던 조등내 도임하고
엄한 중에 수금하고 수만 냥 빚을 추려내니
남전북답 좋은 전지(田地) 추풍낙엽 떠나가고
안팎 행랑 큰 기와집도 하루아침에 남의 집 되고
압다기둥 마전켠 뒤지며, 큰 황소 적대마 서산나귀
대양푼 소양푼 세숫대야 큰 솥 단밤가마
놋주걱 술국이 놋쟁반에 옥식기 놋주발 실굽달이
게사다리 옷걸이며 대병풍 소병풍 산수병풍
자개함농 반다지에 무쇠독 아루쇠 받침
쌍용 그린 빗접조비 걸쇠등잔 놋등잔에
백통재판 청동화로 요강 타구 재떨이 거짐
용두머리 장목비 아울러 아주 훌쩍 다 팔아도
수천 냥 돈 모자라서 일가친척에 일조하니
삼백 냥 이백 냥 일백 냥에 가장 적은 게 쉰 냥이라.
어느 친척 좋다하며 어느 일가 좋다하리
사오만 냥을 탕진하여 공채 필납 하고 나니,
시아버님 장독 나서 일곱 달만에 돌아가고
시어머님 홧병 나서 초종 후에 상사 나니
근 이십 명 남노여비 시실 새실 다 나가고
시동생 형제 외임(外任)가고 다만 우리 내외만 있어
남 건넌방 빌어 있어 세간살이 하자 하니,
콩이나 팥이나 양식 있나 질노구 바가지 그릇 있나.
누가 내게 돈을 줄까, 주선할 이 달리 없네.
하루이틀 굶고 보니 생목숨 죽기가 어려워라.
이 집에 가서 밥을 빌고 저 집에 가서 장을 빌어
정한 거처나 소굴도 없이 그리저리 지내가니
일가친척은 나으리라 한번 가고 두세 번 가니
두 번째는 눈치 다르고 세 번째는 말을 하네.
우리 덕에 살던 사람 그 친구를 찾아가니
여러 번 안 왔는데 안면박대 바로 하네.
무슨 신세 많이 져서 그제 오고 또 오는가.
우리 서방님 울컥하여 이역 설움 못 이겨서
그 방안에 뒹굴면서 가슴 치며 통곡하네.
서방님아 서방님아 울지 말고 우리 둘이 가 보세.
이게 다 없는 탓이로다, 어디 가든 빌어보세.
걸식으로 전전하며 경주 읍내 당도하여
주인 불러 찾아드니 손굴노의 집이로다.
둘러보니 큰 여객에 남래북거(南來北去) 분주하다.
부엌으로 들이달아 설거지를 걸신 하니
모은 밥을 많이 준다 둘이 앉아 실컷 먹고
아궁이에 자려하니 주인 마누라 후하기로
아궁에 어찌 자려는가, 방안에서 자고 가게.
종놈에게 당부하되, 아까 그 사람 불러들여
봉놋방에 재우라네. 다시 절하고 인사하니
주인 마누라 불쌍히 여겨 곁에 앉혀 하는 말이
그대들을 아무래도 걸식할 사람은 아니로세.
본디 어느 살았으며 어찌하여 저리되었나.
우리는 본디 살기는 청주 읍내 살다가
팔자가 괴이하고 집안 재앙 참혹하여
다만 두 몸 살아나서 이리 빌어 먹나이다.
사람 보니 순직하니 안팎으로 머슴살면
바깥사람은 백오십 냥을 자네는 백 냥 줌세.
내외 품삯 합하고 보면 이백 쉰 냥 아니 되나.
몸은 비록 고되나마 의식(衣食)이야 걱정인가.
내 맘대로 어찌 하리까, 가장과 의논하사이다.
이내 봉놋방 나가서 서방님을 불러내어
서방님 소매 부여잡고 정답게 하는 말이
주인마누라 하는 말이 안팎으로 머슴살면
이백오십 냥 준다 하니 허락하고 있사이다.
나는 부엌 어미 되고 서방님은 종놈 되어
다섯 해 작정하면 한 만 금을 못 벌까.
만 냥 돈만 벌었으면 그런 대로 고향 가서
이전처럼 못살아도 천대는 안 받으리.
서방님은 허락하고 지성으로 버사이다.
서방님이 내 말 듣고 둘의 낯을 한데 놓고
눈물 흘려 하는 말이 이 사람아 내말 듣게
임상찰의 따님이요 이상찰의 아들로서
돈도 돈도 좋지마는 내사내사 못하겠네.
그런 대로 다니면서 빌어먹다 죽고 말지
신세가 곤궁하나 군노놈의 사환되어
한번만 잘못하면 무지한 욕 어찌 볼꼬.
내 심사도 할 말 없고 자네 심사 어떠할꼬.
나도 울며 하는 말이 어찌 생전에 빌어먹소.
사나운 개 무서워라, 누가 좋아 밥을 주나.
밥은 빌어 먹으나마 옷은 뉘게 빌어 입소.
서방님아 그 말 말고 이전 일도 생각하게.
궁팔십 강태공도 광장삼천조 하다가
주문왕 만난 후에 달팔십을 하였고,
표표기식 한신이도 소년에게 욕보다가
한고조를 만난 후에 한중대장 되었으니,
우리도 이리해서 벌어가지고 고향 가면
이방을 못하며 호장을 못하오, 부러울 게 무엇이오.
우리 서방님 하신 말씀 나는 하자면 하지마는
자네는 여인이라 나만큼 할 지 모르겠네.
나는 조금도 염려 말고 그리 작정하십시다.
주인 불러 하는 말이 우리 사환 할 것이니
이백 냥은 우선 주고 쉰 냥은 갈 때 주오.
주인이 웃으며 하는 말이 심부름만 잘하면은
칠월 벌이 잘 된 후에 쉰 냥 돈을 더 주겠네.
행주치마 털어 입고 부엌으로 들이 달아
사발 대접 종지 접시 몇 죽 몇 개 헤아려서
날마다 궁구하여 솜씨 나게 잘도 한다.
우리 서방님 거동 보소 돈 이백 냥 받아놓고
일수 월수 체계놀이 내 손으로 기록하여
주머니에 간수하고 명주수건 싸매두고
말죽 쑤기 소죽 쑤기 마당 쓸기 봉당 쓸기
상들이기 상내가기와 오며가며 걷어 친다.
평생에 안하던 일 눈치보아 잘도 하네.
심 년을 나고 보니 만여 금돈이 되었구나.
우리 내외 마음 좋아 다섯 해까지 갈 것 없이
돈 추심을 알뜰히 하여 내년에는 돌아가세.
병술년 괴질 닥쳤구나. 안팎으로 삼십여 명이
모두 병이 들어 사흘 만에 깨어나 보니
삼십 식솔 다 죽고서 주인 하나 나뿐이라.
수천 호가 다 죽고서 살아나니 몇 없다네.
이 세상 천지간에 이런 일이 또 있는가.
서방님 시체 잡고 기절하여 엎드러져서
아주 죽을 줄 알았더니 겨우 인사 차려 하네.
애고애고 어이할까 가엽고 불쌍하다.
서방님아 서방님아. 아주 벌떡 일어나게.
천여 리 타관객지 다만 내외 왔다가서
나만 하나 이곳 두고 죽는단 말이 웬말인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세.
이내 말만 명심하고 삼사년 일 헛일일세.
귀한 몸이 천인되어 만여 금돈 벌었더니
일수 월수 장변 체계 돈 쓴 사람 다 죽었네.
죽은 낭군 돈 달라나 죽은 사람이 돈을 주나.
돈 낼 놈도 없거니와 돈 받은들 무엇할꼬.
돈은 같이 벌었으니 서방님 없이 쓸데없네.
애고애고 서방님아 살뜰이도 불쌍하다.
이럴 줄을 짐작하면 천한 일을 아니했지.
오 년 작정 하올 적에 잘 살자고 한 일이지.
울면서도 마다할 적 무슨 대수로 세웠던고.
군노놈의 무지한 욕설 꿀과 같이 달게 듣고
곤란해도 가리지 않고 조금도 안 어기네.
한번 정해 먹은 마음 한번 살아 하였더니
조물이 시기하여 귀신도 야속하다.
전생의 무슨 죄로 팔자가 이러한가.
금도 돈도 내사 싫네 서방님만 일어나게.
아무리 통곡한들 죽은 사람 어찌 사나.
아무래도 할 수 없어 그럭저럭 장사(葬事)하고
죽으려고 애를 써도 산목숨은 못 죽네.
억지로 못 죽고서 또 다시 빌어먹네.
이 집 가고 저 집 가나 임자 없는 사람이라
울산 읍내 황도령이 나더러 하는 말이
여보시오 저 마누라 어찌 저리 슬퍼하오.
하도 내 신세 곤궁해서 이 내 마음 매우 슬프오 .
아무리 곤궁한들 나처럼 곤궁할까.
우리 집이 자손 귀해 오대 독자 우리 부친
오십 넘어 자식 없어 일생 한탄 무궁하다가
쉰다섯에 나를 낳으니 육대 독자 나 하나라.
장중보옥 으뜸같이 안고 지고 키우더니
세 살 먹어 모친 죽고, 네 살 먹어 부친 죽네.
인근 친척 본래 없어 외조모에 길러지더니 ,
열네 살에 외조모 죽고 열다섯 살에 외조부 죽고
외사촌 형제 같이 있어 삼 년 초토 지나더니
남의 빚에 못 견뎌서 외사촌 형제 도망가고
의탁할 곳 전혀 없어 남의 집에 머슴살아
십여 년을 고생하니 장가 밑천 되더니만
서울 장사 남는다고 새경 돈을 말짱 추심하여
참깨 열 통 무역하여 대동선에 부쳐 싣고
큰 북 둥둥 울리면서 닻 감는 소리 신명난다.
도사공은 키만 들고 입사공은 춤을 추네.
망망대해 떠나가니 신선놀음 이 아닌가.
해남관 머리 지나다가 바람소리 일어나며
왈칵 덜컥 파도 일어 천둥 끝에 벼락 치듯
물결은 출렁 산 같고 하늘은 캄캄 안 보이네.
수천 석 실은 그 큰 배가 회오리바람에 가랑잎 뜨듯
빙빙 돌며 떠나가니 살 가망이 있을런가.
만경창파 큰 바다에 기대 없이 떠나가다
한 곳에다 들이 받쳐 수천 석을 실은 배가
조각조각 부서지고 수십 명의 격군들이
사라져 못 볼러라, 나도 역시 물에 빠져
파도머리에 밀렸다가 마침 눈을 떠서 보니
뱃조각 하나 둥둥 떠서 내 앞으로 들어오니
두 손으로 검어 잡아 가슴에다 붙여놓으니
물을 무수히 토하면서 정신을 수습하니
아직 살긴 살았지만 아니 죽고 어찌할꼬.
오르는 전 더미 손으로 헤고
내리는 전 더미 가만히 있으니
힘은 조금 들었지만 몇 달 며칠 기한 있나
기한 없는 이 바다의 몇 달 며칠 살 수 있나.
밤인지 낮인지 정신없이 기한 없이 떠나간다.
풍랑소리 벼락 되고 물거품이 안개 되네.
물귀신의 울음소리 응얼응얼 귀 막힌다.
어느 때나 되었던지 풍랑소리 없어지고
만경창파 잠을 자고 까마귀소리 들었거늘
눈을 들어 살펴보니 백사장이 뵈는구나.
두 발로 박차며 손으로 헤엄쳐서 백사장에 닿는구나.
엉금엉금 기어 나와 정신없이 누웠다가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고 다시 일어나 살펴보니
나무도 풀도 돌도 없고 다만 해당화가 붉어 있다.
몇 날 며칠 굶었으니 배인들 아니 고프겠는가.
엉금엉금 설설 기어 해당화꽃 따 먹으니
정신이 점점 돌아와서 또 그 옆을 살펴보니
절로 죽은 고기 하나 커다란 게 거기 있구나.
불이 있어 구울 수 있나 생으로 실컷 먹고 나니
본 정신이 돌아와서 눈물 울음도 인제 나네.
무인도 백사장에 혼자 앉아 우노라니,
난데없는 어부들이 배를 타고 지나다가
우는 걸 보고 기이하게 여겨 배를 대고 나와서
나를 흔들며 하는 말이 어찌 사람이 혼자 우나. 울
음 그치고 말을 해라 그제야 자세히 돌아보니
육칠 명이 앉았는데 모두 다 어부여라.
그대들은 어디 살며 이 섬 중은 어디입니까.
이 섬은 제주 한라섬이요, 우리는 다 정의에서 왔노라.
고기 잡으러 지나다가 울음소리 따라왔다.
어느 곳의 사람으로 무슨 일로 여기 와 우나
나는 본디 울산 살았는데 장삿길로 서울 가다가
풍파 만나 파선하고 물결에 내쳐졌으니
죽었다가 깨어난 사람 어느 곳인 줄 아오리까.
제주도 우리 조선이라 길을 인도하오.
한 사람이 일어서며 손을 들어 가리키되
제주 읍내는 저리 가고 대정 정의는 이리 가지
제주 읍내로 가오리까, 대정 정의로 가오리까.
밥과 고기 주며 자세히 일러 하는 말이
이곳에서 제주읍 가려하면 사십 리가 넉넉하다
제주 본관 찾아들어 본 사정을 호소하면,
우선 호구 할 것이요 고향 가기 쉬우리라.
신신이 당부하고 배를 타고 떠나간다.
가르치던 그곳으로 제주 본관 찾아가니
본관사또 내 말 듣고 불쌍하게 생각하여
돈 오십 냥 내어주고 전령 한 장 내주시며
네 이곳에 있다가 왕래선이 있거들랑
사공 불러 전령 주면 뱃삯 없이 잘 갈 것이다.
그럭저럭 세 달 만에 왕래선에 건너와서
고향이라 돌아오니 돈 두 냥이 남았구나.
사기점에 찾아가서 두 냥어치 사기사고.
마을마다 도부하며 밥일랑은 빌어먹고
서너 달을 하고 나니 돈 열댓 냥이 되었지만
삼십 넘은 노총각이 장가 밑천 가망 없네.
애고 답답 내 팔자야 언제 빌어 장가갈꼬.
머슴 살아 사오백 냥 보잘것없어 부쳐두고
두 냥 밑천 다시 번들 언제 벌어 장가갈까
그런 날도 살았는데 슬퍼 마오 울지 마오.
마누라도 슬프다 하되 내 설움만 못하오리.
여보시오 말씀 듣소, 우리 사정을 논하건대
삼십 넘은 노총각과 삼십 넘은 홀과부라
총각 신세 가련하고 마누라 신세 가련하니
가련한 사람 서로 만나 같이 늙으면 어떠하오.
가만 곰곰 생각하니 먼저 얻은 두 낭군은
홍문 안의 사대부요 큰 부자의 살림살이
패가망신 하였으니 흥진비래라 그러한가.
저 총각 말 들으니 육대 독자 내려오다가
죽을 목숨 살았으니 고진감래 할까 보다.
마지못해 허락하고 손잡고서 이르기를
우리 서로 불쌍히 여겨 허물없이 살아보세.
영감은 사기 짐 지고 골목에서 크게 외고
나는 광주리 이고 가가호호 도부한다.
조석이면 밥을 빌어 한 그릇에 둘이 먹고
남촌 북촌 다니면서 부지런히 도부하니
돈 백이나 될 만하면, 둘 중 하나 병이 난다.
병치레 약시중에 남의 신세를 지고 나고
부지런히 다시 모아 또 돈 백이 될 만하면,
또 하나가 탈이 나서 한 푼 없이 다 쓰고 나네.
도부장사 한 십 년 하니 장바구니에 털이 없고
모가지가 자라목 되고 발가락이 무지러졌네.
산 밑 주막 주인하고 궂은 비가 오는 날에
건너 동네 도부 가서 한 집 건너 두 집 가니
천둥소리 볶아치며 소낙비가 쏟아진다.
주막 뒷산 무너지며 주막 터를 빼 가지고
동해수로 달아나니 살아날 이 누굴런고.
건너다가 바라보니 망망대해 뿐이로다
망측하고 기막힌다, 이런 팔자 또 있는가.
남해수에 죽을 목숨 동해수에 죽는구나.
그 주막에 있었다면 같이 따라가 죽을 것을
먼저 괴질에 죽었다면 이런 일을 아니 볼 걸
곧 죽을 걸 모르고서 천년만년 살자하고
도부가 다 무엇인고, 도부 광주리 부여박고
생각 없이 앉았으니 억장이 무너진다.
죽었으면 좋겠으나 성한 목숨 못 죽는구나.
아니 먹고 굶어 죽으려니 그 집 댁내가 강권하니
죽지 말고 밥을 먹게 죽은들 시원할까.
죽으면 쓸데 있나 살기만도 못하리라.
저승을 뉘 보았나, 이승만은 못하리라
고생해도 살고 보지 죽어지면 말이 없네.
훌쩍이며 하는 말이 내 팔자를 세 번 고쳐
이런 액운이 또 닥쳐서 시체 한 번 못 만지고
동해수에 영결종친 하였으니
애고 애고 어찌 어찌 살아볼꼬.
주인댁이 하는 말이 팔자 한번 또 고치게.
세 번 고쳐 곤한 팔자 네 번 고쳐 잘 살는지
세상일은 모르나니 그런 대로 살아보게.
다른 말 할 것 없이 저 꽃나무를 두고 보지
이삼월에 봄바람에 꽃봉오리 고운 빛을
벌은 앵앵 노래하며 나비 펄펄 춤을 추고
유객은 왕왕 놀고 산새 영영 흥이 난다.
오뉴월 더운 날에 꽃이 지고 잎만 나면
녹음이 가득하여 좋은 경치 별로 없다.
팔구월 가을 바람에 잎사귀조차 떨어진다.
동지섣달 눈 바람에 찬 기운을 못 견디다가
봄바람 다시 불고 비온 뒤에 붉어지니
자네 신세 생각하면 눈보라를 만남이라.
흥진비래 다 한 후에 고진감래 할 것이니
팔자 한번 다시 고쳐 좋은 바람 기다리게.
꽃나무 같이 봄바람에 가지가지 만발할 때
향기 나고 빛이 난다 꽃 떨어지자 열매 열려
그 열매가 종자 되어 천 몇 년을 전하나니
아들 하나 낳게 되면 수복에 다자손 하리.
여보시오 그 말 마오, 이십 삼십에 못 둔 자식
사십 오십에 아들 낳아 자식 덕을 어찌 볼까.
아들 덕을 볼 터이면 이십 삼십에 아들 낳아
사십 오십 보겠지만 내 팔자는 그뿐이오.
이 사람아 그 말 말고 이 내 말을 자세히 듣게.
눈보라에 꽃 피던가, 봄바람에 꽃이 피지.
때 아닌데 꽃 피던가, 때를 만나야 꽃이 피지.
꽃 필 때라야 꽃이 피지, 아니 필 때 꽃 피던가.
봄바람만 불면 누가 시켜 꽃 피던가.
제가 절로 꽃이 필 때 누가 말려 못 피던가.
고운 꽃이 피고 보면 귀한 열매 또 열리니
이 뒷집의 조서방이 다만 내외 있다가
먼저 달에 상처하고 지금 혼자 살림하니
저 먹기는 태평이나 그도 또한 가련하니
자네 팔자 또 고쳐서 내 말대로 살아보게.
이왕사를 생각하고 갈까 말까 헤매다가
마지못해 허락하니 그 집으로 인도하네.
그 집으로 드리 달아 우선 영감 자세히 보니
나이는 비록 많으나 기상이 든든 순후하다.
영감 생계는 무엇이오, 내 생계는 엿장사라.
마누라는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나.
내 팔자가 무상하여 만고풍상을 다 겪었소.
그날부터 양주되어 영감 할미 살림한다.
나는 집에서 살림하고 영감은 엿장사라.
호두약엿 잣박산에 참깨박산 콩박산에
산 사과 질민 사과를 고루고루 갖추어서
상자고리 담아 지고 장마다 매매한다.
의성장 안동장 풍산장과 노로골 내성장 풍기장에
한달 육장 매장 보니 엿장사 조첨지 별호 되네
한달 두달 이태 삼년 사노라니 어찌하다가 태기 있어
열 달 배불러 해산하니 참말로 옥동자라
영감도 오십에 첫 아들 보고 나도 오십에 첫 아이라.
영감 할미 마음 좋아 어리장 고리장 사랑한다.
젊어서 어찌 아니 나고 늙어서 어찌 생겼는고.
흥진비래 겪은 나도 고진감래 하려는가.
희한하고 이상하다 둥귀둥둥 교태로다.
둥귀둥귀 둥귀야 아가 둥귀 둥둥귀야,
금자동아 옥자동아, 섬마둥귀 둥둥귀야,
부자동아 귀자동아, 놀아라 둥귀 둥둥귀야,
앉아라 둥귀 둥둥귀야, 섰거라 둥귀 둥둥귀야,
궁둥이 툭툭 쳐도 보고 입도 쪽쪽 맞춰보고
그 자식이 잘도 났네 이제야 한번 살아보지.
한창 이리 놀리다가 어떤 친구 오더니만
수동별신 큰별신굿을 아무 날에 시작하니
밑천이 적거들랑 뒷돈은 내 대 줌세.
호두약엿 많이 고고 갖은 박산 많이 하게.
이번에는 수개 나리 영감님이 옳게 듣고
찹쌀 사고 기름 사고 호두 사고 추자 사고,
참깨 사고 밤도 사고 칠팔십 냥 밑천이라.
닷동이들이 큰 솥에다 삼사 일을 고노라니
한밤중에 바람일자 굴뚝으로 불이 났네.
온 집안에 불 붙어서 불빛이 치솟으니
인사불성 정신없이 그 엿물을 다 퍼얹고
안방으로 들이 달아 아들 안고 나오다가
불더미에 엎어져서 구부려서 나와보니
영감은 간 곳 없고 불만 자꾸 타는구나.
이웃 사람 하는 말이 아이 살리러 들어가더니
아직까지 안 나오니 벌써 죽었구나.
한 마루 때 떨어지니 기둥조차 다 탔구나.
일촌 사람 달려들어 다 헤치고 찾아보니
포수 놈이 불고기 하듯 아주 함박 구웠구나.
이런 망할 일 또 있는가 나도 같이 죽으려고
불덩이로 달려드니 동네 사람들이 붙들어서
아무리 몸부림하나 아주 죽지도 못하고서
온 몸이 콩껍질 되었구나, 이런 년의 팔자 있나,
깜짝 사이 영감 죽어 혼백이 불꽃 되어
불티와 동행하여 아주 펄펄 날아가고
귀한 아들 불에 대어 죽는다고 소리치니
엄마엄마 우는 소리 이내 창자가 끊어진다,
세상사가 귀찮아서 이웃집에 가 누웠으니
덴동이를 안고 와서 가슴 헤쳐 젖 물리며
지성으로 하는 말이 어린 아이 젖 먹이게.
이 사람아 정신 차려 어린 아기 젖 먹이게.
우는 거동 못 보겠네, 일어나서 젖 먹이게.
나도 아주 죽으려네, 그 어린 것이 살겠는가.
그 거동을 어찌 보나 아주 죽어 모르려네.
데인다고 다 죽는가, 불에 덴 이 허다하지,
어미라야 살려내지 다른 이는 못 살리네.
자네 한번 죽어지면 아이 아니 죽겠는가.
자네 죽고 아기 죽으면 조첨지는 아주 죽네.
살아날 것이 죽고 보면 그도 또한 할 일인가.
조첨지를 생각거든 일어나서 아기 살리게.
어린것만 살고 보면 조첨지 사뭇 안 죽네.
그 댁네 말은 옳게 듣고 마지못해 일어 앉아
약시세 젖먹이니 서너 달 만에 나았으나
살았다고 할 것 없네, 갖은 병신 되었구나.
한쪽 손은 오그라져 조막손이 되어 있고
한쪽 다리는 뻐드러져 장채다리 되었으니
성한 나도 어렵거늘 갖은 병신 어찌 살꼬.
수족 없는 아들 하나 병신을 볼 수 있나.
덴 자식을 젖 물리고 달래 안고 생각하니
지난 일도 기막히고 이 앞의 일도 가련하다.
건널수록 물도 깊고 넘을수록 산도 높다.
어떤 년의 고생팔자 일평생을 고생인고.
이 내 나이 육십이라 늙어지니 더욱 슬퍼
자식이나 성했으면 저나 믿고 살지마는
나이 점점 많아지니 몸은 점점 늙어가네
이렇게도 할 수 없고 저렇게도 할 수 없다.
덴동이를 뒤에 업고 본 고향에 돌아오니
이전 강산 의구하나 인정 물정 다 변했네.
우리 집은 터만 남아 쑥대밭이 되었구나.
아는 이는 하나 없고 모르는 이 뿐이로다.
그네 매던 은행나무 나 오기를 기다렸나.
난데없이 두견새가 머리 위에 둥둥 떠서
불여귀 불여귀 슬피 우니 서방님 죽은 넋이로다.
새야 새야 두견새야 내가 올 줄 어찌 알고
여기 와서 슬피 울어 내 설움을 불러내나
반가워서 울었던가 서러워서 울었던가.
서방님의 넋이거든 내 앞으로 날아오고
임의 넋이 아니거든 아주 멀리 날아가게.
두견새가 펄쩍 날아 내 어깨에 앉아 우니
임의 넋이 분명하다 애고 탐탐 반가워라.
나는 살아 육신이 왔네, 넋이라도 반가워라.
근 오십 년 이곳에서 나 오기를 기다렸나.
어이할꼬 어이할꼬 후회막급 어이할꼬.
새야 새야 울지 말아라 새 보기도 부끄러워
내 팔자를 생각하니 새 보기도 부끄러워라.
처음 당초에 친정 와서 서방님과 함께 죽어
저 새처럼 자웅 되어 천만년이나 살아볼 걸
내 팔자를 내가 속여 기어이 한번 살아보려
첫째 낭군은 그네에 죽고 둘째 낭군은 괴질에 죽고
셋째 낭군은 물에 죽고 넷째 낭군은 불에 죽어
이내 한번 못 잘살고 내 신명이 그만일세.
첫째 낭군 죽을 때에 나도 함께 죽었거나
살더라도 수절하고 다시 가지 말았다면
산을 보아도 부끄럽지 않고,
저 새 보아도 염치가 없지 않지.
살아생전 못된 사람 죽어서도 악귀로다.
내 수절만 하였다면 열녀각은 못 세워도
남이라도 칭찬하고 불쌍하게 생각할 걸
남이라도 욕할 게요, 친정일가인들 반가울까.
잔디밭에 물러 앉아 한바탕 실컷 우니
모르는 한 노인이 어떤 사람이 슬피 우나.
울음 그치고 말을 하게 사정이나 들어보세.
내 슬픔을 못 이겨서 이곳에서 우나이다.
무슨 설움인지 모르거니와 어찌 그리 서러워하나.
노인일랑 들어가오, 내 슬픔 알아 쓸데없소.
인사를 못 차리고 땅을 치며 자꾸 우니
그 노인이 민망하여 곁에 앉아 하는 말이
간 곳마다 그러한가, 이곳에서 더 그런가.
간 곳마다 그러하나 이곳에서 더 서럽소.
저 터의 임상찰이 지금 어찌 사나이까.
그 집 벌써 결단나고 아무도 없다네.
더군다나 통곡하니 그 집 어찌 알았던가.
저 터의 임상찰이 우리 집과 오촌이라
자세히 본들 알 수 있나, 아무 형님 아니신가.
달려들어 두 손 잡고 통곡하며 슬퍼하니
그 노인도 알지 못해 형님이란 말이 웬말인고.
그나 저나 들어가세 손목 잡고 들어가니
청삽살개 윙윙 짖어 난 모른다고 소리치고
큰 대문 안 거위 한 쌍 게욱게욱 달려드네.
안방으로 들어가니 늙고 젊고 알 수 있나
부끄러워 앉았다가 그 노인과 한데 자며
이전 이야기 대강 하고 신세타령 다 못하네.
엉송이 밤송이 다 쪄 보고 세상의 별 고생 다해 봤네.
살기도 억지로 못하겠고 재물도 억지로 못 하겠데
고약한 신명도 못 고치고 고생할 팔자는 못 고치네.
고약한 신명은 고약하고 고생할 팔자는 고생하지.
고생대로 할 지경엔 그른 사람 되지 말지
그른 사람 될 지경에는 옳은 사람 되지 그려.
옳은 사람 되어 있어 남에게나 칭찬 듣지
청춘과부 가려하면 양식 싸고 말리려네.
고생팔자 타고나면 열 번 가도 고생이네.
이팔청춘 과부들아 내 말 듣고 가지 말게
아무 동네 화령댁은 스물 하나 혼자되어
단양으로 갔다더니 겨우 다섯 달 살다가
제가 먼저 죽었으니 그건 오히려 낫지만
아무 동네 장암댁은 갓 스물에 과부 되어
제가 춘광 못 이겨서 영춘으로 가더니만
몹쓸병이 달려들어 앉은뱅이 되었네.
아무 마실에 안동댁도 열아홉에 남편 잃고
제가 공연 발광 나서 내성으로 간다더니
서방에게 매를 맞아 골병 들어 죽었다네.
윗집에 월동댁도 스물둘에 과부 되어
제 집 소실 모함하고 예천으로 가더니만
전처 자식 구박하다 서방에게 쫓겨나고
아무 곳에 단양이네 갓 스물에 가장 죽고
남의 첩 가더니만 큰어미가 사나워서
매일 싸우다가 비상 먹고 죽었다네.
이 사람네 이리 될 줄 온 세상이 아는 바라
그 사람네 개가할 때 잘 되자고 갔지만
팔자는 고쳤으나 고생은 못 고치네.
고생을 못 고칠 때 그 사람도 후회하리.
후회한들 어찌할꼬, 죽을 고생 맨날 하니
큰 고생을 안 할 사람 상부부터 아니하지
상부부터 하는 사람 큰 고생을 하느니라.
내 고생을 남 못 주고 남의 고생 안 하나니
제 고생을 제가 하지, 내 고생 누구 줄꼬.
역역가지 생각하되 개가 해서 잘되는 이는
넷의 하나 아니 되네. 부디부디 가지 말게.
개가 가서 고생보다 수절 고생 호강이니
수절 고생 하는 사람 남이라도 귀히 보고
개가 고생 하는 사람 남이라도 그르다 하네.
고생팔자 고생이니 수명 길고 짧고 상관없지.
죽을 고생하는 사람 칠팔십도 살아있고
부귀호강하는 사람 이팔청춘 일찍 죽어
고생해도 덜 살지 않고 호강해도 더 살지 않네.
고생에도 한이 있고 호강에도 한이 있어
호강살이 제 팔자요 고생살이도 제 팔자라.
남의 고생 꿔다 하나 한탄한들 무엇할꼬.
내 팔자가 사는 대로 내 고생이 닿는 대로
좋은 일도 그뿐이오, 그른 일도 그뿐이라.
봄 삼월 좋은 시절의 화전놀이 와서들랑
꽃빛일랑 곱게 보고 새소리는 좋게 듣고
밝은 달은 예사로 보며 맑은 바람 시원하다.
좋은 동무 좋은 놀이에 서로 웃고 놀아 보소.
사람의 눈 이상하여 제대로 보면 상관 없고
고운 꽃도 섞어보면 눈이 캄캄 안 보이네.
귀도 또한 별일이지 그대로 들으면 괜찮은 걸
새소리도 고쳐 듣고 슬픈 마음 절로 나니
마음 심 자 제일이라 단단하게 맘 잡으면
꽃은 절로 피는 게요, 새는 예사로 우는 게요.
달은 밝은 게요, 늘 바람은 부는 게라.
마음만 예사로 태평하면 예사로 보고 예사로 듣지
보고 듣고 예사로 하면 고생될 일 별로 없소.
앉아 울던 청춘과부 환하게 모두 깨달아서
덴동어미 말 들으니 말씀마다 모두 옳아
이내 수심 풀어내어 이리저리 부쳐 보세.
이팔청춘 이내 마음 봄춘자로 부쳐두고
꽃같은 이내 얼굴 꽃화자로 부쳐두고
술술 나는 긴 한숨은 가랑비 봄바람에 부쳐두고
밤낮으로 숱한 한심 우는 새나 가져가게.
일촌간장 쌓인 근심 흐르는 물로 씻어볼까.
천만첩 쌓인 시름 웃음 끝에 하나 없네.
깊은 마음 속 깊은 시름 그 말끝에 실실 풀어
삼동설한 쌓인 눈이 봄춘자 만나 실실 녹네.
자네 말은 봄춘자요 내 생각은 꽃화자라
봄춘자 만나 꽃화자요 꽃화자 만나 봄춘자라
얼씨구나 좋을시고 좋을시고 봄춘자
화젅놀이 봄춘자 봄춘자 노래 들어보소
가련하다 이팔청춘 내게 당한 봄춘자
늙어 다시 고향 봄이니 덴동어미 봄춘자
장생화발 만연춘 우리 부모님 봄춘자
계수나뭇잎 일가춘 우리 자손의 봄춘자
금지옥엽 구중춘 금주임 봄춘자
팔선대혜 구윤춘 이자선의 봄춘자
봉구황곡 곽래춘 정경파의 봄춘자
연작비래 보희춘 이소황의 봄춘자
삼오성희 정재춘 전채봉의 봄춘자
위기위선 보보춘 기춘운의 봄춘자
금대문장 백유춘 계섬월의 봄춘자
절색천명 하북춘 적경홍의 봄춘자
옥대관의 의회춘 심조연의 봄춘자
청수답의 음곡춘 백릉파의 봄춘자
삼십육관 도시춘 제일 좋은 봄춘자
도중의 송모춘은 마상객의 봄춘자
춘내의 불사춘은 왕소군의 봄춘자
송군 검송춘의 이별하는 봄춘자
낙일 만가춘은 천리원객 봄춘자
등누말이 고원춘 강강객의 봄춘자
부화 오류춘은 도연명의 봄춘자
황가백초 본무춘 관산만리 봄춘자
화광은불감 만재춘 고국을 생각한 봄춘자
남은비과 동정춘 여동빈의 봄춘자
오호편주 만재춘 월서시의 봄춘자
회두일소 육관춘 양귀비의 봄춘자
용안일선 사회춘 태평성대 봄춘자
주사도면 심십춘 이청영의 봄춘자
어주축수 애산춘 불변선원 봄춘자
양자강두 양유춘 문양귀개 봄춘자
동원도이 편시춘 창가소부 봄춘자
천하의 태평춘은 강구연월 봄춘자
풍동화 수전춘은 고소대하 봄춘자
화기혼여 백화춘 양과천봉 봄춘자
만리강산 무한춘 유산객의 봄춘자
산하산중 홍자춘 홍정골댁 봄춘자
일천명월 몽화춘 공내댁네 봄춘자
명사십리 해당춘 새내댁네 봄춘자
작작도화 만점춘 도화동백 봄춘자
목동이요지 행화춘 행정댁네 봄춘자
홍도화발 가가춘 도지미댁네 봄춘자
이화만발 백동춘 회여골댁네 봄춘자
수양동구 만사춘 오양골댁네 봄춘자
홍교우제 동화춘 홈다리댁 봄춘자
융융화기 영가춘 안동댁네 봄춘자
제조영영 성곡춘 소리실댁 봄춘자
채련가출 옥계춘 놋접댁네 봄춘자
제월교편 금성춘 청다리댁 봄춘자
강지남천 채련춘 남동댁네 봄춘자
영산홍어 화영춘 영출댁네 봄춘자
만화방찬 단산춘 질막댁네 봄춘자
겅천막막 세우춘 우수골댁 본춘자
십리장임 화려춘 단양댁네 봄춘자
맑은 바람 살살 불어 청풍댁네 봄춘자
비의 덕에 꽃이 핀다 닥고대댁네 봄춘자
바람 끝에 봄이 온다 풍기댁네 봄춘자
비봉산의 봄춘자 화전놀이 흥이 나네
봄춘자로 노래하니 좋을시고 봄춘자
봄춘자가 못 가게 실버들로 꼭 조여매게
춘여과객 지나간다 앵무새야 만류해라
바람아 불지 마라 반경도화가 떨어진다
어여쁠사 소낭자가 의복단장 옳게 하고
방긋 웃고 썩 나서며 좋다 좋다시고 좋다
잘도 하네 잘도 하네 봄춘자 노래 잘도 하네
봄춘자 노래 다했는가 꽃화자타령 내가 함세
화수동유 흐른 물에 얼굴 가득한 수심 세수하고
꽃화자 얼굴 단장하고 반만 웃고 돌아서니
해당스레 웃는 모양 해당화와 한가지요
오리불실 앵도볼은 홍동화가 빛이 곱다.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온 전신이 꽃화자라
꽃화자 같은 이 사람이 꽃화자타령 하여보세.
좋을시고 좋을시고 꽃화자가 좋을시고
화신풍이 다시 불어 만화방창 꽃화자라
당상천연 장생화는 우리 부모님 꽃화자요
실하만세 무궁화는 우리 자손의 꽃화자요
요지연의 벽도화는 세왕모의 꽃화자요
천연일개 철수화는 관한전의 꽃화자요
극락전의 선비화는 석가여래 꽃화자요
천태산의 노고화는 마고선녀 꽃화자요
춘당댁의 선녀화는 우리 금주임 꽃화자요
부귀춘과 우후홍은 우리 집의 꽃화자요
욕망난망 상사화는 우리 낭군의 꽃화자요
천리 타향 일수화는 소인적객 꽃화자요
월중월중 단계화는 월궁항아 꽃화자요
황금옥의 금은화는 석가랑의 꽃화자요
향일하는 촉규화는 등장군의 꽃화자요
귀촉도 귀촉도 두견화는 초희왕의 꽃화자요
명사십리 해당화는 해상선의 꽃화자요
석교다리 봉선화는 이자선의 꽃화자요
숭화산 이백화는 이적선의 꽃화자요
용산낙모 황국화는 도연명의 꽃화자요
백률퇴의 청총화는 왕소군의 꽃화자요
마외역의 귀비화는 당명왕의 꽃화자요
만첩산중 철쭉화는 팔십 노승의 꽃화자요
울긋불긋 질여화는 조카딸네 꽃화자요
동원도리 편시화는 창가소부 꽃화자요
목동이요지 살구꽃은 차문주가 꽃화자요
강지남의 홍연화는 전당지상의 꽃화자요
화중왕의 목단화는 꽃중에도 어른이요
기장지천 옥매화는 꽃화자 중에 미인이요
화게상의 함박꽃은 꽃화자 중에 공경하다.
허다하게 많은 꽃화자가 좋고 좋은 꽃화자나
화전하는 꽃화자는 참꽃화자가 제일이라
다른 꽃화자는 그만 두고 참꽃화자 화전하세
쌍저협내 향만 구하니 일연 꽃화자 복중전을
향기로운 꽃화자전을 우리만 먹어 되겠는가
꽃화자 전을 부쳐 꽃가지 꺾어 많이 싸다가
장생화 같은 우리 부모 꽃화자로 봉친하세
꽃다울사 우리 아들 꽃화자로 먹여보세
꽃과 같은 우리 아기 꽃화자로 달래 보세
꽃화자타령 잘도 하니 노래 속에 향기 난다
나비 펄펄 날아들어 꽃화자를 찾아오고
꽃화자타령 들으려고 난봉공작이 날아오고
뻐꾸기 꾀꼬리 날아와서 꽃화자 노래에 화답하고
꽃바람은 실실 불어 쇄옥성을 가져가고
청산유수 물소리는 꽃노래를 어우르고
붉은 노을이 일어나며 꽃노래를 어리려고
오색구름이 일어나며 머리 위에 둥둥 뜨니
천상 선관이 내려와서 꽃노래를 듣나 보다
여러 부인이 칭찬하니 꽃노래도 잘도 하네.
덴동어미 노래하니 우리 마음이 더욱 좋다.
화전놀이 이 자리에 꽃노래가 좋을시고
꽃노래도 많이 하니 우리 다시 할 것 없네 .
궂은 맘이 없어지고 착한 맘이 돌아오고
걱정 근심 없어지고 흥취 있게 놀았으니
신선놀이를 누가 봤나 신선놀이 한 듯하니
신선놀이 다르겠는가, 신선놀이 이와 같지
화전홍이 미진하여 해가 벌써 석양일세.
사월 해가 길다더니 오늘 해가 짧구나.
하느님이 감동하셔서 사흘 해만 더해 주소.
사흘 해를 더하여도 하루 해는 마찬가지니
해도 해도 길고 보면 실컷 놀고 가지마는
해도 해도 짧을시고, 이내 그만 해가 가네.
산그늘은 물 건너고 까막 까치 희미하다.
각기 귀가 하리로다, 언제 다시 놀아볼꼬.
꽃 없이는 재미없어 내년 삼월에 놀아보세.
첫댓글 좀더 작가에 대해 살펴보니 수장고와 같은 구석에서 논문하나를 발견했다. 소백산대관록의 말단직의 몰락양반인 남성작가가 쓴 것이라는 연구논문이다. 그러니 더욱 분명해진다. 변화하는 사회에서도 여성만을 옥죄고 가두려는 심산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