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태건 시인, 첫시집 '내가난한 문장은 자주 길을 잃는다'(작가마을) 발간
◉출판사 서평
배태건 시인이 첫 시집 『내 가난한 문장은 자주 길을 잃는다』(사이펀현대시인선 26)를 출간했다. 배태건 시인은 경남 고성출생의 법학자이자 비케이 엔지니어링 대표로 있다. 시인은 비교적 늦은 나이에 문단에 발을 들여놓았다. 정식 문단데뷔도 2024년 계간 《사이펀》 가을호에 ‘사이펀이 찾은 시인’으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등단작품이 뛰어난 서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데다 마침 한 권 분량의 시집 원고가 있다는 말을 들은 출판사에서 서둘러 기획출판 한 것.
이번 시집 『내 가난한 문장은 자주 길을 잃는다』는 시인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그간 치열한 사회인으로서의 일상에서 스스로에게 늘 물음표를 던졌던 감성의 잔재들을 시라는 정서적 순환으로 치환시켜 토해낸 작품들인 셈이다. 그러기에 시집 전반이 잔잔하면서도 내면적인 서글픔과 그리움들을 담고 있다. 어쩌면 시인은 영원한 그리움에 포획당한 혼돈의 상처를 갖고 있는 사람들임을 배태건 시인은 당당히 독자들에게 고한다.
황정산 평론가는 “배태건 시인의 시는 슬프다. 슬픔에 대해 직접 말하거나 비통한 상황을 제시하거나 애절한 사연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아도 그의 시의 행간에는 슬픔이 짙게 배어 있다.”며 시집 전반의 내면적 정조를 파악하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슬픔과 그리움의 자화상은 결국 우리 인간들이 지닌 근원적 상처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하여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자신의 문장이 자주 길을 잃더라도 독자들을 위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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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서평
배태건 시인의 시는 슬프다. 슬픔에 대해 직접 말하거나 비통한 상황을 제시하거나 애절한 사연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아도 그의 시의 행간에는 슬픔이 짙게 배어 있다. 시어와 시어 사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 슬픔의 정조가 안개처럼 퍼져 있어 전체적으로 그의 시는 슬픈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앞에서도 자세히 썼지만 바로 꿈을 꾸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며 꿈꾸는 사람들에게 현실은 슬픔으로 점철되어 다가온다. 자신이 그리워하는 것들은 결핍으로 남아 있고 그 결핍을 채우지 못한 좌절된 욕망은 결국 슬픔이라는 정서를 내재화한다. 하지만 이 슬픔을 벗어나는 일마저 시인은 꿈꾸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는 그 기적을 바라고 시를 쓴다.
저기 햇살이 부시네
기적처럼 기적을 울리며
- 「기적」 부분
시는 기적汽笛처럼 우리의 정신을 불현듯 깨우쳐 준다. 그렇기에 그것은 기적奇籍이기도 하다. 꿈이 사라진 시대, 희망이 희미해진 현실에서 아직 그리운 것들이 남아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의 시어들이 햇살처럼 눈부시게 다가와 우리의 마음속에 기적을 들려주어 기적을 일으키기를 기대해 본다.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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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돌아서서 바라보니
바다를 이고 사는 것들은
기댈 곳도 없고
지난날 이야기들은
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바라보고 머물다
웃는다
내 가난한 문장을 찾아
길을 잃는다.
2024. 늦가을, 배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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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약력
.배태건 시인은 한려수도 비경이 남다른 경남 고성에서 출생했으며 법학박사이자 비케이 엔지니어링 대표이사이다. 뒤늦게 文靑의 가슴앓이를 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하다 2024년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가을호에 ‘사이펀이 찾은 시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사이펀문학상 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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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속으로
낭만 노숙
글썽글썽 저를 뜯어내는 통기타 곁으로
어둠의 발길들이 멈춰 선다
기울어진 술잔처럼 엇박자 노래를 흘리는
허술한 몸짓
날개 접은 밤 비둘기도 구구구구 모여든다
가늘고 굵은 줄들이 퉁겨 뱉어내는 이야기
포개 얹은 종이박스 몇 장에 올라앉아
펄럭거리는 지폐 몇 장을 누르고 있다
온몸 터져라 긁어 대는 밤의 집시여
가자, 낭만으로
텅텅 빈속을 채워 넣으며
길들도 기울어지는 곳
으슥한 도시의 한 쪽을 갈아 끼우며
어디에든 틀어 앉으면 둥지가 된다
흐느적거리는 통기타를 향해 시집 한 권이 다가간다
머뭇머뭇 쓰다만 시의 행간에 끼워 넣은
지폐 한 장도 따라간다
새 이름을 붙이며 노숙의 밤이 몇 페이지 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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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쓰기
풀섶을 헤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세상을 음미하고 시간의 질척한 골짜기를 더듬던 방랑의 힘으로 없는 길을 만든다.
길을 채우며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미쳐야 한다. 떨어져 누운 단풍잎을 그냥 보내기 아쉬워 고운 잎 곁에서 맴을 돈다.
거대한 이야기책에 꽂혀있는 책갈피처럼 마음 닿기를. 미필적 사연들이 책갈피 사이사이 끼인 채 바스러지고 마는 아픔이 아니길.
내 남은 생의 첫날을 가장 황홀한 빛깔로 채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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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간
마지막 잎새처럼 매달려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12월의 달력 사진
동백나무 가지에서 깜박이는 빨간 신호등
한 번쯤 뒤돌아보라는 듯
잠깐 멈추라고 길을 막는다
한 해의 벼랑 끝에 서서
산길, 들길, 바닷길
사계절을 쉼 없이 길 위에서 함께한 시간을 돌아본다
어리석음은 미래를 꿈꾸는 시간
아쉬움과 미련은 버릴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일상
움츠려 새우잠을 자던 별은 그믐달 달빛 사이로
사라지고
말을 걸어도 사방은 흘깃거리지도 않는다
잠들지 못한 시간이 불러오는
새벽은 달력 속에 멈춰 웃는다
동백 신호등에 잡혀 나가지 못하는 마우스와 커서
키보드와 모니터에 갇혀 식어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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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났다
다시는 만나지 않으려 했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밤마다 불러내는 내 사랑은 이기적이다
염천의 날씨에도 단 한 번 거부를 하지 않는
매끈한 몸매, 탄력 있는 허리
조용히 내 품에 안긴다
태양이 쏟아부었던 대낮의 열기
거칠게 내어 뿜는 뜨거운 숨소리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 같은
열대야에 익혀진 내 몸을 식히는 것은
오롯이 그녀와 나누는 애정
절정의 순간
깊은 여름밤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손톱자국 대신 비밀스러운 육각형의
문양을 내 몸에 새겨 넣는다
내 사랑 竹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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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목차
배태건 시집
시인의 말
1부 낭만 노숙
매화
목련꽃 밤하늘
가을이 지는 저녁
낭만 노숙
꽃의 이면
기적
5월
별일
낙엽이 보내온 낙서
길 위에서 말리다
부엉이의 대답
분수대
서문 쓰기
섬
쓸쓸한 것들
여름 보내기
다시 백-일-홍
제2부 파랑새의 언어
섬 이야기
연애 맞다
낮달이 내려다보는 한낮
답은 없다
동행
대웅전 부처님
혼술
한여름 꿈
파랑새의 언어
타인의 시간
대보름
미녀봉
배웅
시월, 마지막 날에
그녀를 만났다
낮 달맞이꽃
제3부 로또는 로또를 모른다
잎의 말
부부
로또는 로또를 모른다
국밥 한 그릇
다리미가 뜨거워지면
신발의 표정
오리발 후유증
다 쓰지 못한 일기
伏날 福날
손주에게
잘 가시오
위하여
수확의 시간
마법
파도가 하는 말
퇴고
제4부 묘비명
가을에 들다
심장을 묻다
집밥
어디로 가십니다
뉘신지요?
달빛에 홀리다
양육은 끝나지 않았다
오늘의 날씨
첫 벌초
흑백사진
홍화소심
춘란
연꽃
매생이 떡국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묘비명
해설/ 꿈꾸는 자들은 슬픔을 안다-황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