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의령문학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책소개 스크랩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최인호)
우청 추천 0 조회 41 11.06.23 17:52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1부

          어젯밤의 숙취가 채 가시지 않는다. 여느때와 같이 내가 누웠던 침대다. 어제와 다른 점은 마음과 달리 몸이 침대를 떠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갈증이 난다.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꺼내들어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킨다. 머리는 어지럽고 속은 욕지기를 끌어 올린다. 허기도 난다. 샤워기 아래서 어젯밤의 낯선 풍경을 벗겨낸다. 벌거벗은 모습이 거울 앞에서 생선처럼 물을 뒤집어 쓴 채 파닥이고 있다. 시간이 급하다. 어제의 찌들은 숙취를 다 벗겨내는 건 여전히 무리다. 몽롱한 상태에서  양복을 꺼내 입고 현관문을 나선다. 어제 그 길이다. 그럼에도 내가 보던 그 사물들은 흐린 그림자를 드리운 채 스쳐지나간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낯익은 이 거리가 왜 의문투성이의 방점에 찍혀 흔들리는가?  눈앞에서 30여년간 나의 밥그릇을 제공해주던 건물이 버티고 있다. 벌집을 나왔던 벌레 한 마리가 또다시 구멍을 찾아 들어간다. 다 낯익은 사람들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컴퓨터를 주시하고 있다.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듯 목을 주억거리며 한 마리 먹이를 낚아챌 매 눈이다. 저들이 한 솥밥을 먹는 나의 전우들이라니. 여전히 몽롱하다.

 

   2부

              길은 길이 아니였다. 온통 방황의 늪을 펼쳐놓고 개펄에 뒹구는 게 처럼 옆걸음질을 하고 난 뒤 나는 바로 걸어 왔는지에 대한 깊은 사고에 함몰된다. "휴우~" 긴 한숨을 내뿜고 나의 그림자가 남았는지 뒤돌아 보지만 태양은 구름에 가려져 흔적조차 없다. 뭔가에 홀렸다. "아!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나도 거기에 있었다. 나의 지난 밤도 차가운 육신의 아내가 삼진 아웃을 경고하진 않았을까? 술집 그 어디에서 세일러문이 마법의 봉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진 않았나? 내가 바로 레인저이고 레인저가 내가 되어 아직도 합일을 이루지 못한 채 꿈을 꾸는 이 모양새를 보고 앵무새 한 마리가 여전히 야누스를 외치고 있지 않는가? 강도 6.2의 지진을 감지한 쥐들이 떼거리로 도망치는 이 거리를 보라. 이미 내가 걸어왔다고 생각했던 길은 길이 아니였다.

 

  3부

          아침의 숙취를 거두어 본다. 하루 해는 산을 넘고 창 너머의 저녘 어스럼이 나를 유혹한다. 술이 고프다. 아침 보다 훨씬 익숙하게 개미의 행렬처럼 낯익은 그 자리에 앉는다. 세상을 잘근잘근 씹어도 소화불량은 여전하다. 중년의 채지방이 술잔을 잡아 당긴다. 밖은 이제 불빛이다. 비로소 나를 본다. 술집 주모가 가족이다. 답답하던 가슴에서 갑자기 훅 열기가 일어난다. 어디서 솟구치는지 기운이 비아그라 처럼 발기를 시작한다. 쉴새없는 언변이 혓바닥을 밀치고 입술 밖으로 탈출을 시도한다. "바로 나다"

일탈을 꿈꾸던 내가 낯익은 거기에 있다. "너 뭐하니?" 되묻는다. 왜 그냥 세상이 그러니까 술을 마신다. 환청같은 미래의 스쿠루지 영감이 등불을 들고 길을 인도 한다며 다가온다. 멈칫 발을 빼고 따라가지 않겠다며 반항하는데 밤12시를  알리는 자명종이 요란하게 심장을 때린다.  "갈 곳이 있다. 갈 곳이 있단 말이야." 허공에다 눈물같은 고성을 던지며 비틀비틀 술집 문을 나선다. 불빛에 흔들리는 거리가 춤을 추고 있다. 밤은 날마다 축제인데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4부            

        골목길엔 죽음 같은 정적이 감돈다. 그 길을 따라 버려진 내가 허물허물 가고 있다. 말은 끊어지고 하소연은 허공으로 사라졌다. 정녕 내가 품어야 할 여인은 어디에 잠들고 있는가?  현관이다. 여기도 희미한 불빛을 안고 죽음 같은 정적이다. 문을 연다, 죽은 듯 잠든 저 여인은 또 누구인가? 저기 놓인 텔레비젼.그리고 아무렇게나 쌓인 책들. 생명이랍시고 푸르게 흔들리는 저 난잎들. 내가 보던 낯익은 우리 집 풍경인가. 일단 요의나 풀어보자. 최인호 선생이 풀어놓은 그 소변 줄기 처럼 나의 샛노란 액체에서도 풀풀 알콜 냄새가 튕겨져 나온다. 내 오줌발인가? 아니면 주점의 알콜이 막무가내 그대로 나를 뒤쫓아 온 것인가? 왜 저놈은 끝까지 나에게 빌붙어 마구잡이로 흔들어 놓는가? 언제부터인지 요동치는 밤은 없다. 아내가 예고한 삼진 아웃은 예고가 아닌 현실이다. 벌거벗은 고기덩어리에서 비릿한 악취가 난다.

 

  5부

       저런저런 펄펄끓던  그 청년은 어디 가고 수행한 달마 대신 꼬락서니만 희멀건 빛나리 달마가 왜 여기 있는가. 사람들은 뭐가 그리 잘나 제 모습 이뿌다고 저리 카메라 셔트를 게임하 듯 눌러대는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두운 터널에서 죽은 전조등을 켜는 나의 손은 또 무엇인가.  재래시장은 5일 마다 열리는데 왜 나 같이 치졸한 물건은 매매조차 되지 않는가? 왜 나의 고장난 장기들을 한 번도 교체 해주지 않는가? 의사들은 무엇하는 넘이며 잘난 넘들은 또 뭣들 하고 있는가. 도대체 사람을 쥐고 있는 정치판에서 똑똑한 넘들이란게 하는 짓이  뭣인가. 그냥 갈쿠리로 냄새나는 돈이나 긁어 모은 꼬락서니를 보니 나의 욕지기와 바꿀 수 있는 게 고작 한 잔 술 밖에 더 있는가. 그렇지 가소로운 변명일랑 낙엽처럼 떨구고 가야지. 그래 새벽 안개가 거리에 깔리는구나. 희미한 나의 뒷모습이 여전히 어제 그 길을 가고 있군. 아!  요란스러운 저 개짖는 소리. 컹컹컹      

    

       

 

 
다음검색
댓글
  • 11.06.23 20:20

    첫댓글 헐~ 방금 하대동 탑마트 진주문고점에서 사 온 책이라는걸 우찌 알고., 김인숙의 '미칠 수 있겠니'도 함께...

  • 11.06.24 10:43

    김인숙의 소설 읽어보아야겠는데 술먹는다고 책을 멀리하고 있는 중이라 책을 펴면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젠장 !

  • 작성자 11.06.24 11:40

    읽고 나서 거리에 나서 보거라. 누가 슬비인지 또 누가 꽉인지 찾을 수 있는지......

  • 11.06.24 10:47

    잘 써 놓았군요! 꼭 나를 보는 듯~~~ 그 옛날 술먹고 오줌 누다가 세면대 뽀사묵은 생각이 납니다. 그 때는 부모님과 함께 살 때였는데, 나를 보는 부모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저 놈 때리 쥑일 놈!~~ 아마 그랬을 겁니다.

  • 작성자 11.06.24 11:38

    나와 또 다른 나의 합일은 언제 이루어질지 까마득하구나/ 이 소설을 읽고 거리를 헤매어 봤지만 눈물같은 시간이
    옷깃을 당기던구나 온통 허상이었다....세상도 사람도 가식과 형식에 갇힌 너울을 뒤집어 쓴 채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나도 너도 쥑일 넘 된지 꽤 오래 되었나본 데 바람이 심하게 분다...등떼기 떠밀려 나자빠져야 겠다

  • 11.06.29 17:47

    역시 이 소설의 힘이 50~60대 남성들. 그러니까 한때의 문청들이라더니 그 느낌이 저의 '젊음'이 감당해 낼 고독보다 깊습니다.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아주 잘 읽었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