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하면 떠오르는게 있다. 지리산, 섬진강, 춘향전, 판소리, 광한루,흥부고을등등등..... 너무 많아 단편적으로 소개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같은 전라도지역의 전북권역에서도 약간의 이질적인 문화를 많이 내포하고 있는 우리고장 남원은 역사적 문화도시답게 정말 다른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곳이다. 남원을 알면 전국을 안다는 말이 남원문화를 알아갈 수록 실감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남원의 실체가 그러하다.
이는 역사와 각 시대별 문화유물들이 체계적으로 골고루 분포해 있고 민속문화와 예술, 인물, 자연이 원형가까이 남아 있고 또 바로 과거 삼국시대의 백제와 가야, 백제와 신라문화의 영향이 아직도 많이 잔존하고 있는 것을 많은 시대적 유물에서 비교 평가,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다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오늘은 과거 삼국시대의 국가간 경계지역이었던 우리 남원의 산성문화를 두곳을 중심으로 하여 재미있는 추억여행지들을 알아보고자한다.
오늘 주제인 남원지역의 산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성과 미약하나마 이제 미래성을 가져가고 있다. 많은 수의 산성들이 사실 많이 훼손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여러 상황중에서도 역사적 향기 만큼은 옛날 못지 않게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음을 반비례적으로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남원으로의 별난 여행인 두곳의 산성과 함께 산성 주변지역의 문화기행에 대해 추천드리는 바이다.
우선 성곽문화에 대한 기초지식이 있어야 남원의 산성문화를 제대로 알 수 있어 개략적인 한국전체의 성곽문화를 알아보자...........
우리나라에서의 성곽문화에 대해서는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 조선전 편에서 평양성의 존재가 언급되어 있음을 볼 때 정말 오래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남한지역에서의 성곽에 대한 기록은 서기 2세기부터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곽은 최초의 형태로서 목책이라는 뾰족한 통나무창을 땅에 수백개를 비스듬히 설치하여 적으로부터의 침입에 대비한 시설물에서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던 것이 시대적 요건에 따라서 담장형태의 흙으로 만든 토성이 생기면서 본격적인 성곽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다시말해 흙을 다져서 성곽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평지에서는 판축식으로 흙을 다져가면서 성곽을 쌓고 산같은 경사가 있는 곳에서는 앞뒤의 흙을 긁어 올리면서 성곽을 만드는 이른바 삭토식으로 성을 쌓은 것이다. 후에 성곽의 재료가 돌로 견고하게 만들어지는 석성이 많은 전쟁경험으로 설치되면서부터는 한국의 성곽문화가 비약적으로 완성되어 왔다.. 성곽의 종류도 국가수도인 도읍지의 도성과 천리,만리등의 긴거리를 성곽으로 만드는 장성, 산성, 읍성, 나성, 옹성 등등등등.... 성곽의 다양화 보편화가 이루어졌다 .
역사적으로볼때도 고구려시대에서는 외침때문에 산성중심으로 성곽을 쌓았고 신라는 국경경계용으로 백제는 토성을 많이 설치하였고 고려시대로 오면서 행정과 국경수비용으로 성곽이 많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 조선시대에서는 당연히 일본 왜구들이 약탈방지용으로 읍성과 행성이 많이 많들어졌다. 대표적인 읍성과 행성인 수원화성과 순천 낙안읍성, 고창 모양성, 충청도 서산시 해미읍성등이 그경우며 우리고장의 남원교룡산성도 백제때부터 존재한 산성이다.
이런 사전지식을 가지고 산성을 보면 너무도 이채롭고 역사적 향기가 너무도 진해서 마치 우주의 블랙흘 처럼 역사적 문화물인 성곽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요즘 산성등을 자주 올라가 보려고 노력하는 데 사실 쉽지많은 않다. 발품을 팔지 않고서는 결코 산성문화를 실질적으로 안다고 할 수없기 때문인 까닭이다. 우리지역 제일의 향토문화전문가인 어느 선배가 남원지역 산성들을 직접 산에 올라가서 성곽을 연구하는 도중에 간첩으로 오인 되어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아이러니가 있었다는 이야기에 역시 문화연구의 어려움또한 전해듣기도 한다. 이런 발품여행을 해본 사람은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는 다. 이른바 남이 안가본 곳으로의 여행이다. 오지여행과도 비슷하다고나 할까 !!
실은 여행도 남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곳에 맞춤식으로 다니면 또 다른 세계의 진정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여행방식이 바로 진정한 여행가의 조건이 아닐까 싶다.
화려한 관광지만을 보는 것만이 여행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한 다. 한가지 예로 우리고장 남원사람들은 주말만 되면 썰물빠지듯 시내가 텅하니 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이유야 어찌됐건 은 시민들이 주말에는 썰렁한 느낌이 들 정도로 타 지방으로 가는 것 만큼은 사실이다. 물론 당연히 타지로의 여행도 견문도 넓히고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타지여행때문이라면 그 전에 우리자신의 고장인 남원지역안에서도 볼만한 곳, 즐길만한 곳이 얼마든지 많다는 것을 인식하는 문화의식을 동반한 타지여행이 중요할 성 싶다. 다시말해 자기지역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정도로 많이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가끔 고향분들이 남원권역모두를 보면서 남원안내를 하는 나에게 여기또는 저기는 전부 다 가본 곳이다며 남원에 또 어디 갈데가 있나면서 가끔 반문하는 것을 많이 보고 느끼는데 그 때마다. 아직은 남원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많다고 그 분들에게 얘기할 때가 많다.
남원시 면적이 서울시 면적(630평방킬로미터)보다 큰 757 평방킬로미터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만이다.
그럼 이제부터 간략하게 남원지역안의 산성문화기행을 떠나보자
우선 첫째로 남원을 대표하는 산성으로는 남원시내의 한적한 곳에 있는 남원에서 풍수지리상의 주인인 본산(토박이산)인 백공산 보다 훨씬 높고 멋진 손님산(객산)인 교룡산성과 국민관광지가 있다.
현재 4킬로미터정도 성곽유구물인 교룡산성이 남아있는데 ,교룡산성으로 치자면 이른바 역사적가치로 보자면 엄청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으로서 해발 518미터 고지의 교룡산 중턱에 위치하고 석성이며 폭이 3.12미터, 높이 4.5 미터로서 과거 임진왜란때 김제 금산사의 고승인 처영대사의 승군이 마지막으로 증축했던 성으로 남원의 선사시대 이름인 고룡군의 이름을 따서 교룡산성으로 명명되었던 유래가 있다.
그 유명한 정유재란 (1597)의 처절했던 남원성전투의 배경지로도 잘 알려져 있고 동학혁명운동때의 전투장소로서, 그리고 동학운동의 교주 이셨던 최제우선생이 교룡산성안의 작은 암자인 은적암에서 동경대전이라는 교리서적을 집필하는 등, 역사적 우여곡절 또한 많다. 지금은 교룡산성내의 선국사라는 유서깊은 사찰과 함꼐 아담한 남원시민의 휴식처와 등산코스로 인기가 높다.
그러므로 남원으로의 산성문화를 보기위한 여행을 생각할 때 이름난 국민관광지와 함께 교룡산성으로의 휴양 발품여행을 첫번째로 권해드린다.
두번째로는 아막산성과 흥부고을이 있는 인월면,아영면을 들수 있다. 이른바 과거 영호남의 경계지역이 그 곳이다. 삼국시대부터 지금껏 내려온 국가간의 경계지역이기도 한 그 곳은 우리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문화권역으로서 같은 남원문화권속에서도 언어와 생활방식이 남원시내권과는 약간 다른 독특한 지리산권문화와 가야시대문화권으로서 전라도와 경상도 문화를 동시에 경험해 볼 수 있는 전국에서 몇 안되는 곳이다.
우선 남원시 아영면 성리 상성마을과 하성마을에 가면 박춘보라고 하는 흥부전의 주인공인 흥부로 추정되는 인물의 발복지 (복 받은곳,복성촌 - 전북장수군번암면)가 있다.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흗날 오전 10에 박춘보 망제를 드리는 데 , 이러한 광경을 시작으로 한국국민이면 모두가 다 알고 있는 흥부놀부이야기의 실제로 있었던 이곳을 다닐라 치면 가는 곳곳마다 너무도 재미있고 더우기 이곳의 흥부고을전체를 마을지도의 도움으로 다녀보면 정말 알찬 문학기행의 여정이 아닐 수 없다.
1992년 경희대학교 민속문화연구소 연구원이셨던 주강현 박사님팀("우리문화의 수수께끼" 의 저자)이 흥부고장으로 직접 확인하고 명명한 이 흥부마을에는 흥부가 직접 목말라 팠다는 흥부참샘이 있고 (지금도 맛있는 약수가 나온다)또 화초장바위며 장구목이며 구름다리 장터, 고둔터(흥부가 복받은 집터), 흰죽배미, 층층정 등등등 많은 대학생문학도들이 버스를 대절해와서 흥부전 책을 들고 다니며 직접 지명을 확인해가면서 흥부와 흥부전의 문학성을 배우는 광경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여기에 우리고장의 산성인 아막산성이 있다. 아막산성에서 내려다본 성리마을은 그야 말로 전망또한 다부지다.
근처 인월면 성산리의 영호남 경계에는 박첨지라하여 놀부의 모텔이 된 인물이 있었고 박춘보라는 흥부의 모델이 한 때 있었다하여 흥부의 탄생지와 놀부의 근거지로 알려진 흥부전의 무대가 또 있다. 아영면 성리마을을 보고 바로 옆 팔량치라는 고개만 100 미터 넘으면 경상도 땅이 나오는 정말 좋은 문학상의 무대다. 또 근처에는 합미성이 있다.
아막산성은 삼국시대시절 신라의 화랑도와 백제의 열혈군인들이 치열하게 영토전쟁을 벌인 곳중의 하나로서 백제와 신라가 일전일퇴의 공방전을 벌였다는 기록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전략적인 요충지였다는 것이 증명되는 곳이다.
흥부마을 과 아막산성의 인근에 분포되어 있는 아영면 두락리나 인월면 유곡리의 가야고분군이 말해주듯이 이 지역은 가야시대의 후반기를 장식했던 대가야 (경상도 고령군 중심)와 백제간의 경계지역다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88올림픽고속도로의 지리산 인월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오면 바로 20미터 왼쪽으로 좌회전해서 볼 수 있는 곳들이다. 가는 길에 인월요업역사관과 한국선종(현 조계종)불교의 본산인 남원실상사와 국보 10호인 백장암 3층석탑을 보고 가면 산성기행과 함께 멋진 남원추억여행이 될 것이다. 또 남원시내로 가는 24번국도상에 있는 남원시 운봉읍에는 1392년 위화도 회군으로 새시대인 조선을 연 조선태조 이성계 장군의 왕조탄생의 실질적 기반이 되었던 왜구와의 싸움터였던 황산대첩지와 한국 동편제 판소리의 거두인 위대한 소리꾼 가왕 송흥록명창 생가터와 박초월 명창묘소가 있는 곳을 두루두루 볼 수있을 것이다.
다시 24번 국도로 남원시로 오는 도중에는 지리산 정령치로 가거나 주천면고기리에서 육모정계곡으로 내려오는 지리산 관광일주도로를 타고 남원시내로 온다면 정말 환상적인 남원여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남원으로의 산성은 10개소가 넘는 다. 전국적으로 봐도 단일도시치고는 대단한 것이다. 거기다가 인월장터가 또 있다. 전라도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의 화개장터(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도 유명하지만 남원시 인월면은 경상도 함양과 바로 지척을 두고 실질적인 교역를 한곳으로 화개장터보다 수십배 이상의 물량이 오갔던 곳으로 지금도 인월장이 선다. 남원시의 동부권이라고 할 수 있는 인월면, 아영면은 이래서 특별하다. 지리산문화가 준 선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따라서 인월과 아영으로의 여행도 사전지식을 가지고 가면 정말 알짜배기 여행으로 추억에 고이 간직할 수있다.
이렇듯 산성에는 다양한 문화적 동기와 이유를 지닌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간의 문화가 있음으로 경제생활과 치가 있어왔다. 그래서 산성은 중요한 것이다. 우리의 자랑스런 산성을 잘 지켜 산성문화가 주는 역사적 향기를 잊지 않도록 하자.....
이것으로 두곳의 산성을 얘기했다... 두곳다 걸어서 2시간 이내에 다 즐길 수 있는 곳들이다. 발품을 팔아 다니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따라서 문화는 발로 직접 가보아야 할 것이다. 남원지역 산성으로의 발품을 판 추억여행은 분명 맟춤식 여행이다. 그건 진정한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