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건축 설계사무소의 주된 업무는 보수할 건물을 조사하고 그걸 도면으로 옮겨 견적을 뽑는 일이다. 보수가 필요한 건물이지만 이미 완성된 건물이다. 건물을 해체하기 전엔 기둥과 대량이 어떻게 조립되었는지 대공이 어떤 방식으로 대량에 세워졌는지를 알지 못한다. 물론 이론적으로 부재의 맞춤과 이음에 대해 공부를 하였으므로 알고는 있다. 코끼리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에게 코끼리 다리는 굵고 크다고 가르쳐 주면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마 코끼리 다리는 기둥처럼 둥글고 매끄러울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전통건축을 이론으로만 아는 사람은 목구조의 맞춤과 이음을 머릿속으로 추측할 뿐이다.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이다. 그걸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기 전엔 정확한 답을 모른다. 완성된 건물의 도면을 제아무리 잘 그린다 해도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전통건축 설계사무소에 근무하던 어느 날 내가 직접 조사하고 설계한 수리현장을 탐방하였다. 설계한 내용이 제대로 현장과 부합하는지 알고 싶었다. 목수들이 하방을 조립하기 직전이었다. 이미 기둥과 옥개부의 조립이 끝난 상태다. 나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하방을 조립하려면 기둥을 양측으로 벌리고 끼워 넣어야 하는데 이미 기둥이 고정되었으니 어떻게 하지’ 하였다. 그런데 목수들이 기둥을 그대로 둔 채 하방을 조립하는 게 아닌가. 하도 궁금해 목수에게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기둥 양측에 판 장부구멍을 하방의 길이보다 깊이 파서 하방을 한쪽으로 밀어 넣었다가 반대편 구멍에 끼우면 되죠.” 그때 문득 고향집 외양간 입구에 건너질러 고정했던 빗장이 생각났다. 아 그렇구나. 매우 단순한 방법인데 그걸 모르고 있었던 자신이 너무 창피해서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그날 받은 충격은 적잖이 나 자신을 자극하였다. 장기인 선생님이 쓴 ‘목구조’ 책을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그러면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복잡해 보이는 결구라도 원리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뒤로 전통건축 목구조 결구방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전통건축 설계사무소를 나와 전통건축 시공사에 근무하게 되었다. 첫 현장으로 배치된 곳이 청양의 ‘장곡사 운학루 이전복원공사’였다. 설계 도서를 훑어보았다. 설계사무소에서 늘 작성했던 것이기에 내겐 새로울 것도 없었다. 사장님이 내게 목재 물목을 뽑아 제재소에 주문하라고 지시하였다. ‘목재’라는 말은 알겠는데 ‘물목’이란 단어를 생전 처음 들었다. 설계사무소 식으로 말하자면 ‘현장에 반입할 목재 수량을 파악해 제재소에 주문하라’는 말인데 못 알아들은 것이다. 같은 계통이지만 설계사무소와 현장의 용어가 달랐던 것이다. 설계사무소에서 사용하는 용어는 표준어에 기초한 것이라면 현장은 옛날부터 현장에서 사용하던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물목이란 게 또 사람 뒷목을 잡는다. 설계사무소에서 수량을 뽑을 땐 미터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각기둥 높이가 3m이고 각 단면이 21cm라면 0.21x0.21x3=0.132m3가 된다. 이것을 목재 단위인 재로 환산하려면 300을 곱하면 된다. 즉 0.132x300=39.69才 가 된다. 같은 내용이라도 현장 식으로 바꾸면 7치(寸)x7치(寸)10자(尺)/12=40.83才가 된다. 여기까진 이해가 된다 치자. 내가 주문할 서까래는 지름이 15cm 길이가 2.7m다. 도면에 표기된 정확한 수치다. 그런데 제재소에서 취급하는 서까래는 껍질이 붙어있는 상태일 것이므로 내 생각엔 껍질두께(3cm)와 치목 시 깎여나갈 표면 두께(3cm)를 감안해 지름 21cm 길이 2.7m의 서까래 100여 개를 주문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침 일찍 현장에 들어갔다. 나보다 먼저 와 계시던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쌍욕을 해대며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일단 사장님께 다가갔다. 이유인즉슨 내가 주문한 서까래가 현장에 도착했는데 지름이 무려 24cm에 가까운 것이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것이지 당황하고 있는데 사장님의 언성은 계속 이어졌다. “야 00끼야 이게 서까래냐 기둥이지 이 미친 00놈아 이걸 목재 주문이라고 시켰냐. 네가 다 물어내 이00끼야” 어안이 벙벙한 채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서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서까래 주문은 도면에 표기된 대로 주문하면 제재소에선 치목 과정에서 깎여나갈 두께를 감안해 주문한 굵기보다 약 1치~1치 오픈 정도 큰 규격을 보내온다. 도면대로라면 현장에 도착할 서까래의 굵기는 껍질 포함 18cm 정도면 되었던 것이다. 난 그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 목수에게 물어나 볼 것이지 설계사무소 출신이라는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어림짐작으로 주문한 결과가 그 모양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창피하고 다 큰 어른이 다 큰 놈에게 쌍욕을 퍼분 것이 얼마나 서럽던지 당일 현장을 빠져나와 전화고 뭐고 모두 끊고 삼일을 잠적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아무리 설계사무소 출신이라도 현장은 현장을 통해 배운다는 걸 깊이 깨달았던 경험이다. 더는 실수하지 않으려고 문화재표준시방서를 달달 외우고 다녔다. 그러나 실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론을 알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될 꺼라 철석같이 믿은 게 애초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현장은 현장을 통해 배운다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내가 고작 이정도 밖에 안 되는가 싶어서다. 알량한 자존심은 깡그리 무너졌다. 콧대 높던 설계사무소 출신이라는 허울 좋은 이력도 아무 쓸모 짝에 없었다. ‘현장은 현장을 통해 배운다.’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어떻게 하면 추락한 자존심을 회복할 것인가에 골몰했다. 그러다 무릎을 쳤다. 목공사는 목수에게 미장공사는 미장공에게 석공은 석공에게 직접 물어보고 배우자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완벽한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점은 나도 잘 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서로 비교하며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어떤 것은 내가 맞고 어떤 것은 그들이 맞았다. 일하기 전에 먼저 기능공들에게 도면을 주고 궁금한 점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내가 궁금한 것을 그들에게 여쭤보았다. 그리고 작업과정을 꼼꼼히 지켜보았다. 도면과 시방서에 표기한 내용과 맞는지 비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자 점차 실수는 줄어들었고 업무에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도 현장이 생기면 일하기 전에 항상 겸손한 자세로 먼저 기능공과 일에 대해 상의한다. 작업 도중에도 뭔가 일이 틀어지면 소리치며 따지기보다 왜 이렇게 했는지 물어보고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조근조근 지도한다. 내가 알면 얼마나 기능공 보다 알까 마는 혹여 기능공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잔머릴 굴려가며 나를 속이려 들면 작업을 중단시키고 단단히 일러 말한다. 한 번은 석공이 돌을 쌓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 재시공을 시켰다. 그런데 지적할 때만 따르고 내가 자리에 없으면 도로 잘못된 버릇이 나왔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00석공님, 석공님이 일한 것을 누가 평가합니까. 저 같은 현장대리인이 하는 거 아닙니까. 지시한 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내가 다른 시공사 현장대리인에게 00석공은 쓰지 마라 엉터리다.라고 말할 거 아닙니까. 그럼 누가 손해인가요. 그리고 석공이 시공을 제대로 하면 칭찬을 들을 것이고 그러면 다른 시공사에서도 서로 섭외가 들어올 것 아닙니까. 지금 당장 눈 가리고 아옹하면 그만이란 생각은 빨리 버리셔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대개는 내 말뜻을 알아듣고 본인이 잘못했다고 시인하며 다시는 내 앞에서 요령을 피우지 않는다.
사실 현장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고려 적 운운하며 자신이 하는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는 고집불통 기능공들 상대로 일을 시키는 것이다. 이젠 이골이 나서 그들 다루는 방식에 도사가 됐지만 처음엔 참 많이 속상하고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난다.
일이란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때론 실수도 하고 때론 오해도 하며 배운다. 그 과정이 죽기보다 싫고 당장 때려 치고 싶다는 생각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참고 또 참으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두고 지내다 보면 나중엔 일이 잘 풀린다. 대개 이쪽에서 먼저 상대를 존중해 주고 그들에게 상의 조로 다가서면 그쪽에서도 진실 되게 나오는 법이다. 뭘 좀 안다고 건방 떨고 거들먹거리면 누구라도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다.
간혹 현장대리인이 기능공들의 상위 계급 정도로 아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소리다.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으나 각자 업무 분장이 다를 뿐이다. 협조와 이해를 전제로 일하는 게 가장 상책이란 걸 두고두고 기억해야 한다. 회사 대표자 역시 같은 생각으로 직원들을 대하고 서로 격려해주고 힘을 북돋아 줄 때 그 회사는 탈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는 대표자를 만난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