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옛 만촌동 모습
만촌(晩村)은 과거 '늦이·느지미·느짐'으로 불렸다. 만촌동은 학문을 중시해 늘 이웃 마을보다 농사가 늦었다. 이처럼 농사가 늦다는 뜻에서 만촌이란 동명을 얻었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만촌동 일대에 낮은 언덕이 느즈러져 있어 ‘느지미’란 동명을 얻었다고도 한다. 지명조사철(1959)에는 “촌락으로서 (상대적으로) 늦게 생긴 부락이라 하여 ‘늦지미·늦임’이라 불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진 맨 위쪽에 만촌동의 시작인 옛 만촌동 큰마을이 보인다. 지금의 효목네거리 동쪽 지역이다. 무열로를 따라 남쪽에 ‘샘골’이 있고, 샘골 서쪽에 현재 수성도서관이 자리한 ‘송곡지’가 보인다. 송곡지 남서쪽에 ‘바리곧에골’이 있다. 과거 이곳에는 ‘국군대구병원’(1963-1994)이 있었고, 현재는 만촌메트로팔레스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 무열로 동쪽 ‘뱀골’을 포함한 낮은 산지 일대에는 1968년 제2작전사령부(무열대)가 들어섰다. 부대 조성 당시 마을 하나가 수용됐으며, ‘만촌지’와 ‘사동지’는 지금도 부내 안에 남아 있다. ‘지장못’은 1970년경 매립되어 무열로에 수용됐다. ‘지장골’에는 1968년경부터 1980년대까지 개미마을이 있었다. ‘개미마을’은 넝마주이·구두닦이들의 교화와 복지를 위한 마을이었다. ‘두봉골’은 ‘두리봉 북쪽 골짜기’ 혹은 ‘두 봉우리 사이’란 뜻에서 유래됐는데, 오성중고와 수성대가 자리한 지역이다. ‘각계지’는 1980년대 초 매립되어 금탑·화성파크드림 아파트가 들어섰다. ‘담티고개’는 옛날 대구와 경산의 경계였다. 과거 만촌동에는 대구와 경산을 잇는 고개로 담티고개, 고모령(형봉과 제봉 사이), 팔현고개(팔현마을 인근)가 있었다. 현재 만촌동은 무열로를 기준으로 동쪽은 자연녹지지역으로 자연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서쪽 역시 난개발이 없어 1970-80년대 옛 주택가 모습이 잘 남아 있다. 서쪽 주택가에 유독 오르막 내리막길이 많은 것은 산지(무등산)에 주택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달구벌대로와 무열로는 과거 좁고 긴 논이었다.
사진 : 국토지리정보원
글 : 수성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송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