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소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분수(分數)
한 달에 한 번, 거울 속의 내가 낯설어질 때쯤 어김없이 집 근처 이발소로 향한다. 도심의 화려한 미용실들은 통유리 너머로 세련된 음악을 흘려보내지만, 내가 찾는 이곳은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소박한 공간이다. 아직 시골 인심의 끝자락이 남아 있는 동네라 그런지, 낡은 회전 간판이 느릿느릿 돌아가는 모습만 봐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친근감이 밀려온다.
이발소 문을 열면 가위질 소리가 경쾌하게 공기를 가른다. 손때 묻은 가죽 의자, 구석에 놓인 연탄난로 위의 노란 주전자, 그리고 비눗물 냄새가 섞인 특유의 공기가 나를 반긴다. 이곳은 머리를 깎는 주인아저씨와 면도를 담당하는 삼십 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꾸려가는 작은 아지트다. 평소라면 동네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북적였을 텐데, 오늘은 운이 좋은 건지 얄궂은 건지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뿐이었다.
사각사각,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이발을 끝내고 검은 염색약을 바른 뒤, 그것이 머리카락에 깊게 스며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주인아저씨와 긴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저씨의 이야기는 수십 년 전, 뜨거운 모래바람이 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 5년만 꾹 참고 버텼으면, 지금쯤 강남에 빌딩 한 채는 올렸을 텐데 말이죠.”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젊은 날의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돈을 벌기 위해 나갔던 타국 땅에서 일 년 반 만에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부랴부랴 귀국해야 했던 사연. 계획했던 5년을 채우지 못한 것이 아저씨에게는 평생의 미련이자 훈장 같은 기억인 듯했다. 나는 그 미련 섞인 웃음에 슬쩍 농담을 보탰다.
“아저씨, 그때 목표대로 돈을 많이 벌었으면 지금쯤 길거리에 나앉은 노숙자가 되어 있을지도 몰라요. 원래 큰돈이 갑자기 들어오면 사람이 변하는 법이거든요.”
나의 짓궂은 참견에 아저씨는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 무릎을 탁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돈이라는 게 참 묘한 놈이니까.”
그렇다. 돈이란 것이 어디 우리 마음먹은 대로 오고 가는 존재던가. 흔히들 돈이 많아야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벌어들이는 액수보다 그것을 다스리는 마음의 크기다. 하루에 천 원을 버는 사람이라도 구백 원을 써버리면 백 원만 남지만, 오백 원을 버는 이가 백 원만 쓰기로 마음먹으면 사백 원이라는 여유가 남는다. 결국 돈의 가치는 가진 자가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하는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법이다.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 역시 가끔은 남들처럼 넘치도록 풍족한 삶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만석꾼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테두리 안에서 열심히 땀 흘리고, 자신의 분수(分數)에 맞게 소비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고귀한 행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철학적인 생각도 잠시, 현실로 돌아오면 나 역시 한 명의 나약한 가장일 뿐이다. 요즘 들어 부쩍 돈이 부족하다는 갈증이 나를 괴롭힌다. 나 혼자라면 연금 몇 푼에 소박한 밥상으로도 노후를 설계해 보겠지만, 아직 자라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진다.
아이들이 세상이라는 거친 파도에 맞서 스스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 부모 된 도리이지 않은가.
턱없이 모자란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긴 한숨을 내쉴 때면, 내가 걸어온 길이 어쩌면 가장 쉬운 구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씀씀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세상 구조 속에서, 나라고 해서 미래의 노숙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이발소를 나서며 거울에 비친 검게 염색된 머리를 만져보았다. 인생이라는 것이 늘 순탄할 수만은 없겠지만, 그래도 큰 풍파 없이 순조롭게 흘러가기를 소망해 본다. 아저씨와 나눈 대화 끝에 남은 것은 결국 ‘오늘을 어떻게 잘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가슴 주머니가 허전하다. 아무래도 오늘은 희망이라는 이름의 복권 한 장이라도 사야 할 모양이다. 그 종이 한 장에 담긴 것이 일확천금의 욕망이 아니라, 내 아이들의 미래를 향한 작은 안심이기를 바라며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