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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제19차 산행후기
◈산행구간 : 들머리 제10구간 이화령에서 날머리 제10구간 하늘재까지 [대간거리:18.47km/14시간 소요, 접속거리 없음, 휴식시간포함] ◈산행기간 : 2011년3월17일(목)~18일(금) 2일간 ◈산행 같이하신 분 : 박 우성, 송 갑윤, 김 길수, 정 경희 ◈산행출발 ♤전주 인후동 아중리에서 2011년3월17일7:30분에 승용차로 출발하여 전주자동차등록사업소 앞을 지나 봉동 과학단지 코아루아파트(08:00분)를 거처 입구 익산IC에서 25번호남고속국도→ 1번경부고속국도→ [남이분기점]에서 35번중부고속국도→ 출구 증평IC에서 좌회전 510번지방도를 따라→ 증평에서 직진 34번국도→ 괴산→ 괴산군 연평→ 이화령터널을 지나 800m정도 직진하여 우회전 이화령휴게소에 주차하고 10시30분에 이번산행을 시작하였다. ◈산행일정 ♤제1일차산행 : 이화령에서 조령까지 [대간거리 : 8.51km/7시간50분 소요, 접속거리 없음] ☞산행코스 이화령[큰 새재]/548m에서 10:30분 출발하여 →[2.7km]- 조령산/1026m →[1.7km]- 신선암봉/937m →[3.2km]- 깃대봉/835m →[0.91km]- 조령[제3관문, 구 새재] /643m 18:20분 도착하였다. ♤이번산행은 그 동안 못간 구간으로 들머리 큰 문경새재 이화령산불초소에서 소지품점검을 마치고 10:30분에 2011년 첫 백두대간산행을 시작하였다. 오랜만에 하는 산행은 몸이 따라주질 못하였고 여기에 몇 번이고 반복되는 암릉과 암릉위험지대 다시 암릉에 암릉위험 길을 지나는 동안에 오르막길에는 밧줄에 밧줄이 있고 내리막길에도 다시 밧줄에 밧줄이 있는가하면 아직 덜 녹은 눈길과 빙판길에 아이젠을 신고 벋기를 반복하고 때로는 낙엽 속에 숨어있는 빙판 때문에 아이젠을 신은채로 바위 길을 걸으니 발은 몹시 힘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조령산자연휴양림에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제2일차산행 : 조령에서 하늘재[계립령]까지 [대간거리 : 8.96km/6시간10분 소요, 접속거리 없음] ☞산행코스 조령[제3관문, 새재]/643m에서 06:30분 출발하여 →[0.88km]- 마역봉[마패봉]/927m →[3.3km]- 동암문 →[1.4km]- 주흘산갈림길 →[0.58km]- 평천재m →[1.0km]- 탄항산[월항삼봉]/856.7m →[1.8km]- 하늘재[계립령]/520m에 12:40분 도착하였다. ♤조령산자연휴양림[☏043-833-799423평형1실4인1박40,000원 조령에서15분 거리]막사에서 모처럼 직접취사를 하고 좋은 밤도 보내고 3월18일 좋은 새벽에 점심까지 싸들고 6시20분 휴양림을 출발하여 여사 박문수의 마패가 걸러있다는 마역봉[마패봉]을 향하였다. 이곳에는 신라와 고구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처 일제강점기까지 오는 동안 관문[關門]과 산성[山城]들이 우리민족의 군사와 역사적 흔적이 많은 지역이다. 일제 때는 소나무마다 V자모양의 소나무기름 공출을 한 흔적을 보면서는 최근 일본의 9.0의 대지진으로 쓰나미와 원전의 방사능유출 등 일본의 큰 재앙이 가슴을 시원케 하기도 했다.[진심으로 안타까운 현상이지만] ◈제19차 산행까지 종주거리 ♤지금까지 대간거리 : 천왕봉→ 하늘재[계립령]까지 [497.71km] ♤지금까지 접속거리 : 중산리→ 애당리까지 [31.78km] ♤지금까지 산행거리(대간거리+접속거리) : 중산리→ 하늘재까지 [529.49km] ◈산행 후 돌아오는 길 KBS촬영장소 하늘재산장 앞 나무 밑에 있는 야외간이식탁에서 도시락을 먹고 시간이 넉넉하여 귀가 길에 KBS대하드라마 문경새재KBS촬영세트장에 들러 조선시대판서가 되어 6판서 길을 걸어보기도 하고 형틀에서 죄수도 되는 체험과 과거보려 가는 길에서 과거를 보고 장원급제하여 돌아오는 선비들이 문경새재를 넘는 모습을 상상도 해보았다. 문경에서 돌아오는 길은 34번국도 따라→ 증평510번지방도→ 입구증평IC에서 중부국도고속도로에 진입→ 경부고속국도→ 호남고속국도→ 출구익산IC에서 봉동→ 전주까지 저녁약속이 있어 쉬지도 않고 직행하여 18시10분에 도착하였다. ◈백두대간 소백산 권[도상거리 108.7km] ◈제19차 산행관련 사진
이화령[梨花嶺] 이화령[큰 새재, 문경새재](梨花嶺548m)은 신라와 고려 때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통로인 하늘재[계립령]을 조선시대는 조령[제3조령관, 구 새재]를 다시 일제강점기에는 험준한 고개 길을 편리하게 하고 우리민족전통을 말살하려는 의도로 이우릿재 『이화현(伊火峴』이라고 부르던 고개에 새 길을 내면서 이름까지 이화령(梨花嶺)으로 바뀌어 나는 새도 쉬어간다는 큰 새재, 문경새재라 하여 현재는 국도 제3호선으로 주요교통로로 사용되고 있다.
조령산[鳥嶺山] 조령산[鳥嶺山](1,025m)은 일대에 울창한 산림이 있고 기암괴석과 노송이 있으며 문경새재도립고원으로 지정 되였고 서쪽으로는 조령산자연휴양림이 있다. 조령산이란 이름은 옛 기록에 나타나지 않으나 공정산 또는 조령으로 부른 것으로 보이며 현재에는 이화령에서 제3관문(조령관)까지를 조령산이라고 한다.
조령샘[鳥嶺샘]
신선암봉[神仙巖峰]가는 암봉 노송
신선암봉[神仙巖峰] 신선암봉[神仙巖峰](967m)은 바위산으로 북쪽에는 신라의 북진정책에 따라 뚫은 하늘재가 있으며 남쪽에는 조선시대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보러가는 새재가 있고 정상에는 병풍바위 할미바위, 방아다리바위 등이 있다.
조령관[鳥嶺關-영남 제3관] 조령관[鳥嶺關]은 새재정상에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았으며, 숙종(숙종 34년 : 1708) 때 중창하였고,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陸築)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과 석성(135m)과 누각을 복원했다
이화령-(2.5)-조령산-(5.3)-조령3관문-(1)-마패봉-(3.4)-부봉-(2.4)-탄항산-(2)-하늘재-(1.1)-포암산-(3.2)-938.3봉-(6.8)-부리기재-(1.4)-대미산-(1.9)-826.4봉-(4.5)-작은차갓재-(1.5)-황장산-(2.5)-폐맥이재-(3.8)-벌재-(5.3)-저수령-(7.2)-뱀재-(4.6)-묘적봉-(1.5)-도솔봉-(5)-죽령-(3.5)-제2연화봉-(5.8)-비로봉-(2.9)-국망봉-(7.6)-마당치-(2.5)-고치령-(3)-미내치-(2.8)-1096.6봉-(1.7)-마구령-(4.5)-966봉(갈곳산)-(1.3)-늦은목이-(1.5)-선달산-(4.7)-박달령까지[산림청 106.6]
문경새재[문경조령聞慶鳥嶺]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문화경제의 유통과 국방의 요충지의 새재(鳥嶺)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옛 문헌에 초점(草岾)이라고도 하여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 또는 하늘재(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의 [새(사이)재], 새(新)로 된 고개의 [새(新)재] 등의 의미가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의 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고, 이곳은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과 설화민요 등으로 이름 높으며,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에서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았다는 교귀정터만 남아있는 것을 1999년 중창하였고, 옛날에 산불을 막기 위하여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됴심”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가 있다.
조령산[鳥嶺山]자연휴양림 막사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에 자리 잡은 숲과 역사와 문화가 함께하는 다양한 희귀수목이 분포된 울창한 숲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옛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위해 한양으로 오가던 조령길목에 위치한 곳으로 문화유적이 많은 월악산국립공원, 수안보온천, 조령관문과 가까이 있어서 숙박, 야영, 등산에 편리한 가족휴양지이다.
마역봉[馬驛峰]
마역봉(馬驛峰925m)은 일명 마패봉(馬牌峰925m)으로 조령을 넘던 어사 박 문수가 마패(馬牌)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잠시 쉬어갔다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조령관(제3관문)을 사이에 두고 깃대봉과 마주하며 충북 쪽으로 신성봉과 맞닿아 있다.
일제강점기 소나무기름 공출 흔적
일제강점기 말기에 소나무수액[송유松油, 송지松脂, 솔 기름]을 추출하여 공출을 하였다. 제2차대전 당시 미국의 석유 수출금지는 일본에게 비행기 연료의 부족현상이 일어났으며 이를 대처하기위해 소나무기름(송지)을 강제노역으로 공출하여 갔는데 그 솔 기름을 받은 흔적이 한반도 전 지역에 이렇게 남아있다. 일제는 당시 소학생까지 동원하여 관솔공출을 하여 관솔에서 송유를 뽑는 송탄유굴[松炭油屈]이라는 가마까지 만들어 송유를 가져갔다.
조령산성[鳥嶺山城]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이 조령[鳥嶺]고개를 막지 못하여 패하자 조령관설치를 주장하였으나 설관을 못했으며, 선조27년~30년에 신 충원이 파수관(把守官)으로 임명되어 응암에 일자성(一字城)을 쌓고 가운데 문을 세워 고개 밑을 내려다보게 축성한 조동문(鳥東門)과 고개정상에 있는 조령관(鳥嶺關)과 초곡(草谷)에 있는 주흘관(主屹關)이 있는데 세 곳 모두 홍예문이 있으며 대로를 통하도록 되어 있으며 성내(城內)에는 여러 갈래의 개천이 있어 맑은 물이 흐르며 제1, 2, 3관문은 양쪽 산골짜기에 있고 관문 좌우의 성벽은 능선을 따라 우회하여 높이 솟은 봉우리 6부 능선에서 끝나 다시 다음골짜기로 이어져있다.
무너자가는 조령산성[鳥嶺山城] 흔적들
부봉[釜峰]삼거리
부봉[釜峰916.2m]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을 경계로 문경새재 길을 걷다보면 제2관문[조곡관]에서 우측으로 우뚝 솟은 6개의 암봉으로 제2봉이 제일 높다. 민요(民謠)에도 나오는 유명한 문경새재, 박달나무가 자생하는 등 희귀 동식물이 많아 이 일대가 지방기념물(地方記念物)로 지정된 곳이다.
탄항산[炭項山]
탄항산[炭項山, 월항삼봉](856.7m)은 평천재를 지나 하늘재 사이에 있는 산으로 3개의 봉우리가 우뚝 있어 三峰 또는 산삼이 많은 산이라 하여 蔘峰이라고도 하며, 하늘재[계립령]에서 탄항산을 거쳐 월항재 부봉으로 이어지는 연계산행코스로서 잠시 이곳에 쉬면서 바람에 땀도 식히고 일대를 조망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저 넘어 주흘산[主屹山]
주흘산[主屹山1,106m]은 주흘산이 솟아오를 때에 산 밑에 도읍을 정하리라고 생각하고 솟아 올라보니 삼각산이 먼저 솟아 있어서 삼각산을 돌아 등지고 앉았다고 할 정도로 삼각산과 흡사하다. 전국의 모든 산들이 서울 쪽을 보고 있는데 유독 주흘산만이 돌아앉은 이유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서라는 이야기도 있으며 문경의 진산(鎭山)으로서 춘추로 나라에서제사를 올린다. 제 1관문(주흘관) 은 숙종 34년(1708년) 설관, 홍예문 높이 3.6m, 폭 3.4m, 길이 5.4m 이다.
하늘재[大院領, 지릎재]
하늘재[大院領․지릎재](520m)는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괴산군 상모면 미륵리로 넘는 고개 길이며『삼국사기』에는 계립령으로 표기 되였고 삼국초기부터 조선 초 새재(鳥嶺)길이 열릴 때까지 기호지방과 영남지방을 연결하는 경제 문화적 교류로서 큰길이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신라의 국경지대로 군사적 역사적 중심지였다. 이 지릎재길을 따라 고대문화(유교․불교․청동기․철기문화)가 북에서 남으로 전파되어 나갔다. 고갯마루에는 동서로 뻗힌 성벽이 지금까지 남아있어 요충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딱따구리 구멍
딱따구릿과의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삼림에 살며 날카롭고 단단한 부리로 나무에 구멍을 내어 그 속의 벌레를 잡아먹는 다. 까막딱따구리, 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크낙새 따위가 있다.
포암사 입구
경북 문경시 관음리 월악산 국립공원내 하늘재 아래 포암산아래 백두대간의 허리자락에 자리잡은 포암사는 인상적인 돌탑앞에 표지석이 있다. 주흘관[主屹關]-영남제1관(嶺南第1關) 조령관[鳥嶺關]-영남제3관(嶺南第3關)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선조 초에 쌓고 숙종(숙종 34년 : 1708) 때 중창하였다. 1907년에 훼손되어 육축(陸築)만 남고 불탄 것을 1976년도에 홍예문및 석성 135m와 누각을 복원했다. 누각은 정면이 3칸, 측면 2칸이며, 좌우에 협문이 2개 있으며 팔작(八作)지붕이다. 홍예문은 높이 4.5m, 폭 3.2m, 길이 185m이고 성벽의 높이는2~3m, 폭 2~3m, 길이는 동측이 400m, 서측이 400m이며 대문의 높이는 3.9m, 폭 3.56m 두께 19㎝이다.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하여 숙종 34년(1708)에 설관 하였으며 영남 제1관 또는 주흘관이라고 한다. 정면 3칸(間)과 측면 2칸 협문 2개가 있고 팔작(八作)지붕이며 홍예문은 높이가 3.6m, 폭 3.4m, 길이 5.4m이며 대문의 높이는 3.6m, 폭 3.56m, 두께 11㎝이다. 좌우의 석성은 높이 4.5m, 폭 3.4m, 길이 188m이고, 부속 성벽은 높이가 1~3m, 폭 2~4m이다. 길이는 동측이 500m, 서측이 400m로 개울물을 흘러 보내는 수구문이 있으며 3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지니고 있다.
문경새재 과거 길
문경 땅 새재과거길은 조선시대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 차 한양으로 넘나들던 옛적 그대로의 길이다. 영남대로인 문경새재는 문경의 옛 지명 문희에서 처럼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라는 말과 같이 수 많은 선비와 길손들이 이곳을 왕래하였으며 아울러 장원급제한 선비들이 많아 장원급제길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KBS 드라마촬영장 입구
KBS 드라마촬영장은 한국방송공사가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사극 대하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하여 2000년 문경새재 제1관문 뒤 용사골에 건립하였다. 32억원을 투입하여 19,891평의 부지에 왕궁2동, 기와집42동, 초가40동, 기타 13동으로 건립한 국내 최초의「고려촌」이며 최대 규모의(세계 5번째) 사극 촬영장이었다.
문경새재에는 무엇보다도 조령산과 주흘산의 산세가 고려의 수도 개성의 송악산과 흡사할 뿐만 아니라 옛길이 잘 보존되어 있어 사극 촬영장으로 매우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KBS 대하드라마 태조왕건,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 대조영, 근초고왕, 성균관 스캔들의 촬영 주 무대가 되었고 영화는 스캔들, 낭만자객 등을 촬영하기도 하였다.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6판서의 길
현재의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은 문경시의 제작지원으로 과거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세트장을 허물고 새로운 조선시대 모습으로 2008년에 준공한 것이다. 공사비75억원에 규모는 70,000㎡ 부지에 광화문, 경복궁, 동궁, 서운관, 궐내각사, 양반집 등 103동을 건립 하였으며 기존 초가집 22동과 기와집 5동을 합하여 130동의 세트 건물들로 되여있다.
- 노래 : 문경새재 윤 지영/김 종희 시/ 유 영환 작곡
1절
주흘산 문경새재 비에 젖은 전좌문아
기약 없이 떠나 간님 오실 날을 말해다오
님의 숨결 그리워서 옛 오솔길 찾았건만
계곡마다 굽이돌아 깊은 사연 심는 구나
아- 그리움이 빗물 되어 고갯마루 내리네.
2절
조령산 문경새재 님 그리는 전좌비야
기약 없이 떠나 간님 오실 날을 말해다오
님의 숨결 그리워서 옛 오솔길 찾았건만
계곡마다 굽이돌아 깊은 사연 심는 구나
아-그리움이 눈물 되어 두 뺨 위에 흐르네.
첫댓글 이화령에서 3관문까지의 구간은 지금까지 거쳐 온 다른 구간보다도 밧줄에 의거 오르고 내리는 길이 제일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찔한 쾌감도 많이 있었으며 또한 백두대간 19구간은 역사의 탐방 길도 되었던 아주 유익한 구간이었습니다.
특히 조령산 자연휴양림에서의 안락함과 나의 특기를 발휘하여 맛있는 밥을 지은 것은 대원들이 오래토록 기억에 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료 정리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