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계국민학교 2
새침떼기 영선이, 얌전이 규희, 여우 성배, 시력이 걱정이었던 순배, 다박골 오동통 경희, 까불이 찬우, 그 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꼬마 맏상주로 보는 이 가슴이 메어지게 했던 태주, 할머니의 병환으로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월송리 동신이 .....
3학년 1반, 나의 첫 제자들이다.
동네에서 마주치면 담 모퉁이로 숨어 눈만 내놓고 수줍게 쳐다보던 귀여운 꼬맹이들...... 그들도 이젠 50이 넘은 나이이다.
제비 새끼처럼 짹짹대던 32명의 아이들, 제 선생이 최고인줄만 알고, 올챙이처럼 옹가종기 내 옆으로 몰려들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몇 년 전부터 전화가 온다. 선생님 보고 싶다고.
첫 제자들이라서 그런지 정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보고 싶다.
몇몇이 모여 찾아 오겠다고 했는데, 그게 쉽겠는가 ?
몇 번 약속이 이루어졌다가 뻐그러졌다.
사실 그들에게서 온 전화를 받을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먼저 든다.
교대 2년, 전문적 지식과 지도 방법을 습득하기엔 너무 짧은 시절,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이며 배움에 목말라 했어도 부족했을 시간에 ‘뭐 하다 보면 되겠지. 그까짓 국민학교 선생 못하랴’ 생각으로 무사안일, 허송세월했었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내용에 통달함은 물론 깜깜한 밤중에 눈을 감고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지도 방법에도 익숙해야만 효과적인 지도가 가능한 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가르쳐야 좋을지 허둥대기만 했던 나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
지난 날이 후회되면서도 개선해야겠다는 의지는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았다.
가르쳐 주려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우려 해도 길이 아득했다.
교내 장학이란 말은 책 속의 구호로만 남아있고, 네 반 네가 알아서 해라다.
어쩌다 마음 먹고 책이라도 보려면 수시로 오는 유혹이 있다.
“이선생, 오늘 독사 좋은 놈 한 마리 잡았어. 한 잔 하세. 허허허”
술을 좋아하는 곽선생이 오늘도 퇴근 길을 붙잡는다.
젊은 남자가 셋이 있었는데 우선배님은 점잖은 분이라 고고하셨고, 두 살 위 곽선생이 붙잡을 사람은 언제나 나뿐이었다. 하도 간절해서 거절이 어렵다.
술을 먹어도 상대가 있어야지 혼자 먹으면 무슨 맛이겠는가 ?
또 한 잔이다.
소주는 언제나 댓병이다. 숙직실 앞에 깔판을 깔고 철퍼덕이 앉는다.
먼저 병의 소주를 다 따르고 독사를 병에 넣고 과학실 깔때기로 주둥이를 막은 후에 소주를 붓는다. 크기가 실한 독사다.
처음에는 뱀만 보면 무서워 피했는데 곽선생 덕에 친근해졌다.
독사가 병속에서 위 아래로 오르락 거리다 숨이 막혀 죽는다.
그 때 독사의 이빨에서 하얗게 독이 나와 연기처럼 술 속에 퍼진다.
처음에는 밀봉해서 뒷산에 파묻었다. 100일 후에 꺼낸다나.
하여간 곽선생은 그런 쪽에는 박사였다. 학위는 없었지만.....
몇 병을 묻은 후에는 작전이 바뀌었다.
기다리기 너무 어려우니 그 자리에서 해치우잔다.
병의 술을 주전자에 따르고, 뱀을 꺼내 껍질을 벗겨 연탄 불에 구은 다음 안주로 먹는 것이다. 1석 2조다.
뱀 독이 섞인 술을 마시고 안주로 독사 고기를 먹으니 별도의 안주도 필요 없다. 가난한 동네라 술집에 가봐도 안주가 없는 곳이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곽선생은 자랑한다.
자기 말을 들으면 큰 이득이 오니 앞으로도 잘 따라 다니라는 폼세다.
그런데 그런 술을 먹고 나면 배에 땀띠기보다 작은 아주 작은 붉은 반점이 솟아 올랐다. 곽선생은 독사를 먹은 약효가 오른 것이라고 좋아한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게 독사의 독 때문에 생긴 것일 것이다.
만약에 내장 속에 상처라도 있었다면 그 상처를 통해 독이 침투해서 위험한 상황이 될수 있을지도 몰랐겠다 생각하면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어쩌다 개도 잡았다.
동네에서 신발을 물어뜯는다든지 말썽 피우는 개가 있으면 곽선생에게 연락이 온다. 그런 개는 좀 싸게 살 수 있다. 곽선생은 개를 잡는데도 도사다.
짚으로 만든 가마니 한 장이면 문제가 끝이었다.
언제나 나를 데리고 다니려 했던 곽선생 때문에 많이 배웠다.
교통이 불편하여 월금을 타는 주말에야 집에 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니 그 외 주말은 무료하다.
어떤 날은 삽을 들고 논의 물고를 파헤치면 미꾸라지가 버글댔다.
양동이로 하나가 금방 찬다.
곽선생의 고향인 금산식 미꾸라지 숙회가 만들어진다.
미꾸라지를 쪄서 통째로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다.
이래야 많이 먹을 수 있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다른 날은 삼태미 그물을 갖고 저수지 가에 매어놓은 배 밑바닥을 훑는다. 말조개도 흔했다.
금새 새우 한 양동이가 생긴다.
새우로 쑨 어죽은 열그릇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가난한 동네의 하숙집은 언제나 배가 고팠다. 하숙비 한 달에 쌀 일곱말.
밥이라도 많이 퍼 주었으면 바랐지만, 밥 더 달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나이 스물 둘, 한참 먹어야 할 나이에 속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서도 곽선생의 몬도가네 여행에 열심히 휩쓸렸다.
첫댓글 몬도가네 여행이라...
온통 징그런 얘기 읗 읗 읗
선생님 너무감동입니다 제가너무 늦었지요 용기도 없고 세월도 많이 흘럿지만 이제라도 뵙게되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