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의 숨결, 이성산성을 둘러보며,
서울 송파에서 몽촌토성 앞의 강동대로를 따라 가면 경기도 하남이 나온다.
하남시 춘궁동에는 나지막한 구릉지가 있는데 이곳이 이성산(209.8m)이다.
이 산을 오르다 보면 고려시대 절터인 춘궁동 동사지(桐寺址) 절터가 보인다.
이 절터는 후삼국시대에서 고려 전기에 이르는 시기에 지어진 웅장하고 거대한 규모의 절로
현재 두 개의 석탑(보물 제12호 5층석탑, 보물 제13호 3층석탑)만이 나란히 남아 있어 조용한 산세만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의 백제의 흔적이 남아있는 석축산성인 이성산성(二聖山城)이 있다.
이 산성은 3차례에 걸쳐 축조되었는데 최초 성벽의 시원은 「삼국사기」에 자주 언급되는
백제의 토루(土壘)일 가능성이 높고, 두 번째 성벽은 기단석을 깔고
그 위에 쐐기형 성돌을 쌓은 것으로 볼때 전형적인 고구려 양식이다.
신라인은 두번째 성벽이 무너진 후에 세 번째 성벽을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보물 12호와 13호
아래쪽 저수지로 내려가면 화강암으로 쌓은 성벽이 앞을 막는다.
산의 능선을 따라 올라가 성벽 안쪽에 이르면 성벽을 따라 돌 수 있게 만든 길인 회곽도(廻郭道)가 나를 안내한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산의 거대한 암벽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성벽삼아 성돌을 쌓은 모습이 인상적으로 보였으며,
돌이끼는 옛 선조들의 숨결을 간직한듯하다.
마방집 정원
산성의 주인이 백제, 고구려, 신라로 바뀔 정도로 중요한 산성인 만큼 산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거칠 것이 없다.
산 정상에서 보면 이 산성의 전략적 중요성은 팔당, 미사리, 강동구 등 한강 유역을 살피는 것임을 알게 된다.
북쪽으로는 하남시와 한강이 이어지고, 산성의 남쪽으로는 남한산성이 있는 청량산이 버티고 서 있으며,
정상에서는 거대한 크기의 이성산성(성벽 둘레는 1,925m, 성 내부 면적은 약 4만 7천 평)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천년이 지나 우리 앞에 나타난 역사적 향기에 취한채 다시 춘궁동으로 내려왔다.
뒷간 입구
춘궁동은 이천·여주·장호원 등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인데,
조선시대 한양으로 과거시험과 장사를 위해서는 이 길을 거쳐야만 했고,
길이 험난하여 밤이 돼서야만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도 광주골 낙타고개에는 산적들이 자주 출몰하여 조정 진상품과 상인들의 진귀한 물품을 많이 노렸고,
그래서 천연동일대에는 객주와 마방, 기방이 자연스럽게 생겨나 그들의 쉼터의 역할을 하였다.
민속적인 분위기
당시 상인은 보부상으로 부르지만 원래 이름은 부보상이라고 한다.
부보상은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가 백달원에게 유아부보상지인장(唯我負褓商之印章)이라고 새겨진
직인용(職印用) 옥도장(玉圖章)을 하사한 것에서 유래한다.
부보상은 부상(負商:男)과 보상(褓商:女)의 합성어(合成語)로써
식생활(食生活)에 관련된 용품을 판매하는 부상(負商)은 지게(支械)에 지고 팔러 다니던 남자행상(男子行商 : 등 짐장수)이고
의생활(衣生活)에 관련된 문화용품을 판매하는 보상(褓商)은 물건을 보자기(褓: 布)에 싸서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팔러 다니던 여자행상(女子行商 : 봇짐장수)을 말한며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추어 장시의 일정에 맞추던 상인조직이었다.
마방집 맛의 비밀
초창기의 객주와 마방은 단순히 허기와 숙소를 해결하는 주막의 역할을 하였으나
추후 물물교환의 장소로까지 확대하게 되었고, 그 당시의 객주와 마방이 지금의 모텔이나 호텔의 효시가 아닌가 짐작해 본다.
옛 주막집의 맥을 잇는 하남시 천연동 ‘마방집’의 정확한 개업 연도는 알 수 없으나
1920년대부터 3대에 걸쳐 국도 변에서 90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오가는 나그네의 허기를 달래주고 있는
「마방집」. 이곳은 틀림없는 이 땅의 마지막 주막이다.
영남, 충청내륙, 강원도 지방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하여 길손들이 하룻밤을 지세우던 장소였던 마방집은
마방집(우마차(牛馬車)가 쉬어가던 집)이란 이름처럼 소나 말을 끌고 서울로 올라가는 이들의 쉼터였으며,
현재는 옛날의 정취를 살린 식도락가의 맛집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이 세월을 영사기에 놓고 돌린다면
아주 오래된 흑백화면에서 고화질의 컬러화면으로 오버랩되지 않을까 싶다.
전통가옥 한옥
마방집은 한국전쟁 당시 불탄 것을 복원한 본채(옛집)와 도로공사와 함게 신축한 신관(새집) 그리고 별채로 구성되어 있다.
길손들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했던 주막에서 숙박의 기능은 퇴화하고 토속음식점으로 탈바꿈하였지만
전통적인 한옥건물과 마당에 있는 정원과 물레방아가 어우려져 그때의 정취만큼은 그대로 살아있다.
애마들 쉼터
음식맛 지키기 위해 전통방식 고수
우리 주변에서 궁중음식을 선보이는 음식점은 많이 봐왔다.
또한, 사대부 집안에서 음식을대를 이어 지키는 음식은 많이 맛 볼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90% 이상을 차지하는 서민들을 대표
하는 음식은 지금와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
그 이유는 무엇인가?’ 짐작컨대 맛없는 풀뿌리 음식이라 치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나 마방집은 달랐다. 마방집은 겨울이면 재래식 방법으로 메주를 쑤고 처마 끝에 매달아 놨다가
간장을 담궈 뒤뜰에 마련된 장독대의 2백여 개의 항아리에 보관하여 변함없는 맛을 자랑한다.
또, 장독대와 가마솥은 사장님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특별관리 구역으로 지금까지도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마방집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전통음식점으로 선정하여 외국인들이 우리의 전통맛과 멋을 느끼는 곳으로 유명하다.
마방집 맛을 제대로 느끼기
처음 마방집에 가면 접수대에서 주모가 우리를 맞이한다.
마당의 대청마루와 방 중에 선택하여 안으로 들어가면 한옥건물과 물레방아가 눈에 들어온다.
요정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을 여기서는 볼 수 있는 것이다. 주문하면 요상한 목각인형을 하나 선사한다.
처음 방문한 손님이라면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나중에 ‘픽’하는 나지막한 웃음과 함께 번호표임을 직감한다.
밥상이 나오기 전까지 주변을 둘러보면 마당 한쪽을 꽉 채운 연못에 큼지막한 돌과 물레방아가 어우러져 물보라를 일으키고,
옥잠화와 담쟁이 덩굴, 그리고 고풍스런 기와는 우리를 조선시대 주막으로 이동시켜준다.
밥상을 한아름 들고오는 주막 아줌마의 모습이 보이면 다들 놀라움에 혀를 찬다.
밥과 20가지의 나물반찬과 2년간 숙성시킨 장으로 끊인 된장찌개는 갖은 버섯의 향취와 쇠고기의 육질 맛과 어우러져
이곳만의 깊은 맛을 내 형언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을 선사한다.
우선 시원 새콤한 동치미로 입맛을 돋은 후, 쇠고기를 가미한 된장찌개를 한숟가락 떠 넣으면
구수하고 수수한 맛이 입안에서 울려 퍼진다. 꼬들꼬들한 가마솥으로 지은 밥으로 진정을 시키고,
추가 주문한 아삭한 더덕구이와 보김치는 이 집의 별미이다.
보김치는 개성식의 김치보쌈으로 배춧잎으로 배추김치, 잣, 대추, 석이버석, 낙지, 배, 건포도 등을 넣어
보자기 쌈 모양으로 하고 있는 김치로, 보김치 안의 갖은 보물들을 찾아가며 가마솥 밥에 함께 먹는 것 또한 쏠쏠한 재미가 있다.
마방집의 마지막 별미는 가마솥 누룽지 숭늉이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집에서 제공되는
누룽지 숭늉은 알알이 씹히는 누룽지의 고소함은 입안에 남아 있는 음식의 여운을 제거해주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방집을 나오면서 목각인형과 장승을 둘러보며 ‘마구간은 어디있었을까?’
또, ‘창고는 어디일까?’ 등 생각해보는 여유로움을 가져 보는것은 어떨까?
메뉴 한정식(8천500원), 꽁보리밥정식(8천500원), 소장작불고기(1만3천원),
돼지장작불고기(8천원), 보김치(7천원) 문의 031-791-0011
첫댓글 이상하네 이것도 사진이 안뜨네...
사진이 정말 음네....어디더라???
이것도 아는데 고칠 수 없어요 글구 털콩네 부부랑 갔던 곳이라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