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식일은 구약의 율법이며 그림자로서 신약 시대에는 폐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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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신약 시대에 안식일이 과연 폐해졌는가? 안식일은 십계명 중의 넷째 계명이다. 안식일이 폐해졌다면 십계명 자체도 신약시대에는 폐해졌으며 지킬 필요가 없어야 한다. 한 마디로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흔히 십자가 이후에는 십계명까지도 폐해졌다고 주장한다. 안식일에 대한 이유 없는 반감 때문에 신성한 도덕법인 십계명까지 도 폐기해버리는 무모한 짓을 자행하는 것이다. 십계명이 없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규범으로 살아가겠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부모의 명령과 소원을 모조리 폐기해버리고 무시하는 자가 “부모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율법주의자들이며 나는 법 같은 것은 필요 없고 오직 부모임의 은혜로 살아갈 뿐” 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b. 율법 중에는 십자가로 폐지된 법이 분명히 있다. 제사지내는 의문의 율법이라든지 절기에 관한 법들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을 나타내는 상징이요 그림자이기 때문에 원형인 그리스도가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 구속 사업을 완성하시자 분명히 폐지되었다.(골2:14). 그러나 도덕법인 십계명은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한 것처럼 폐지될 수 없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5:18)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장로교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도 십계명은 세상 끝 날까지 폐지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적극적이고 도덕적이고 영구적인 명령을 발하여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특별히 이레 중 하루를 안식일로 택정하여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지키게 하셨다...성경에는 이날이 주의 날로 불리고 있다. 이날은 세상 끝 날까지 기독교의 안식일로 지켜져야 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21장 7항)
c. 신약 시대에도 안식일이 폐하여지지 않았다는 유력한 성경적 증거는 십자가 사건 이후에도 예수님을 따르던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계속 지켰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엄청난 사건도 사람들이 “계명을 좇아 안식일에 쉬”는 (눅23:56) 것을 막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약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직접적인 명령이 없다고 말하며 심지어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안식일 계명이 폐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신 밤에 제자들이 지킨 그 안식일 보다 더 강력한 증거가 있을까? 예수께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거나 폐하셨다는 조그마한 암시라도 주셨다면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두고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킬 수가 있었을까? 의문이다(눅23:56).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돌아가신지 20년 후에도 신실하게 규례대로 안식일을 지키고 있다. 유대인 남자 10명이 없어서 회당을 세우지 못하는 빌립보에서는 강가에까지 가서 안식일을 지키고 있다(행16:13). 바울이 안식일에 유대인을 만나서 전도하려고 강가에 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빌립보에 왜 회당이 없는 지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바울이 강가에서 만난 루디아도 유대인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God fearer)라는 표현은 유대인에게는 쓰지 않는 다. 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이방인들을 말할 때 쓰이는 말이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다고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 했는데 하물며 바울이 안식일을 무시하면 유대인들이 그를 그냥 두겠는가?
d. 신약에서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 중 가장 확실한 것은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부탁의 말씀 가운데 안식일에 관한 것이다 .그는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24:20)고 말씀하셨다. 유언처럼 하신 말씀 중에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하신 것이다. 만일 안식일이 자신의 죽음 후에 폐지되는 것이었다면 왜 이런 부탁의 말씀을 하셨을까?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폐하시기는 했지만 제자들이 마지막 환난 날까지도 안식일을 철저히 지킬 것을 미리 아시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는 미련한 제자들을 위하여 예수님이 기도하라고까지 하셨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말씀은 분명히 세상 끝날 까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라는 말씀이다.
2. 안식일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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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하나님께서 창조주일에 안식일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창세기 2:1~3에 잘 나타나 있다 .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b. 첫째로, 복 주시기 위함이다(창2:3).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도 아니고 셋째날도 아니고 창조를 다 마치셨던 일곱째 날을 복 주셨다. 일곱째 날은 창조를 다 마친 후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고 기뻐하셨던 청조의 기념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날을 기억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것은 시간 속에 내리신 축복이었다. 만일 어떤 인종이나 장소에 축복하셨다면 온 인류가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축복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에 내리신 축복은 그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얻을 수 있는 축복이다. 따라서 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위한 물질적 축복을 예비일에 두 배로 채워주셨고 그것은 안식일에 썩지 않고 그대로 보존되었다. 따라 서 사람들은 안식일에 육신을 위해 일할 필요가 없이 하나님과고 교제하는 영적인 축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즐거운 날이었다(사58:13,14). 안식일은 하늘의 공기를 미리 맛볼 수 있는 영원의 창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을 7일씩 끊어서 사람들이 미리 맛보도록 하신 것이다. 안식일은 시간속에 들어온 영원이다.
c. 둘째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이다(창2:3).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다. 거룩하다는 말이 처음으로 일곱 째날 즉 안식일에 사용되었다 .왜 안식일이 거룩한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이라는 인간 시간의 유한성 속으로 들어오셔서 함께 쉬시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는 어떤 공로도 없이 그들의 첫 안식일을 맞이했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쉬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에(겔20:12) 안식일에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사람은 의롭고 거룩하게 되어 성화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d. 셋째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게 하기 위해서이다(창2:3). 하나님께서는 평일 중 하루가 아니라 바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그날에 쉬시고, 그 날을 복 주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아담과 하와의 첫날이 안식일이었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하기도 전에 안식일의 쉼으로부터 그들의 삶은 시작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었다. 완전히 하나님의 선물, 즉 안식일의 쉼으로부터 그들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인간이 맨 처음 목도한 하나님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고 안식하시는 행동이었다. 인간은 그들의 첫날을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였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진수는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이런 중요한 의미와 목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축복으로 주신 것이다.
e. 우리는 지금까지 안식일이 왜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를 살펴보았다. 안식일이 사람에게 나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문제를 십계명 중 넷째 계명에 두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일요일을 준수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며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결론짓지 않을 수 없다 . 넷째 계명은 기억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한다. 시간 속에 들어있는 안식일의 축복을 받는 유일한 방법은 기억하는 것이다.
3. 안식일은 의식법에 속하기 때문에 다른 계명들처럼 지켜야 할 도덕적 의무가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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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먼저 제7일 안식일이 과연 의식법이나 절기인지를 살펴보자. 구약 레위기 23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할 절기들이 나온다. 첫째는 정월 14일에 지키는 유월절이다. 정월 15일 은 무교절이며, 16일은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하나님 앞에 흔들어 드리는 초실 절(요제절)이다. 그 때로부터 50일 후에 오순절이 있었으며 7월 1일은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나팔 절이요 7월 10일은 대속죄일이었다. 7월 15일은 광야 생활을 회상하면서 초막을 짓고 추수를 기뻐하는 초막절 이었다. 그 외에 레위기 23장에서는 일곱 개의 절기 안식일(the seven sabbatical days)을 언급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무교절의 첫 날, (2) 무교절의 마지막 날, (3) 오순절, (4) 나팔절(7월 1일), (5)대속죄일(7월 10일), (6) 초막절의 첫날, (7) 초막절의 마지막 날이 그것이다. 절기나 절기 안식일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며 십자가로 폐지되었다. 절기 안식일들은 절기와 마찬가지로 표상(type)이고 실체(antitype)가 오면 사라져야 할 그림자들이었기 때문이다.
b. 가장 결정적인 사실은 제7일 안식일은 그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제7일 안식일은 다른 절기처럼 애굽의 속박에서 벗어나거나 죄로부터의 용서와 해방을 기념하는 절기로 이스라엘에게 주신 그림자가 아니다. 제7일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 아니요, 타락 전에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으며 도덕법인 십계명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이다. 만일 제7일 안식일이 그림자라면 창조 때 하나님께서는 그림자를 축복으로 주신 것이 되며 그림자를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표징으로 삼으신 것이 된다(겔20:12,20).
레위기 23장도 제7일 안식일을 다른 절기와 구분하고 있다. 모든 절기와 절기 안식일을 설명한 후에 레위기의 기자는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삼고...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레23:37,38)고 말하여 제7일 안식일이 절기 속에 들어있지 않음을 명백히 했다. 절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 하니라”고 말한 레위기 23:2과 23:4 사이에 제7일 안식일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는 것은 안식일이 절기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설명하려는 절기와는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삽입한 것이라 보아야한다. 그것은 레위기 23:37,38의 말씀으로 명백해진다.
c.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고 명령하신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 도덕적인 의무가 없는가? 그것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째 계명과는 명백히 구분되어 오늘날 우리와 상관없는 별개의 성격을 가진 계명인가? 그렇지 않다. 창조주께서 창조 후 즉시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창2:3)하셨으며 그날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하셨는데 거기에 도덕적인 의무가 없단 말인가? 선생과 학생들이 매주 수요일 오전 9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면 학생들이 그 약속을 어겨도 그것이 시간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책임이 없는가?
안식일을 기억하는 것에는 사랑과 순종 그리고 언약과 같은 핵심적인 요소들이 들어있다. 만일 그런 안식일 계명에 도덕적 의무가 없다면 다른 모든 계명에도 도덕적 의무가 없어야 할 것이다. 안식일이 폐했다고 주장하려면 특별히 한 계명만 그렇게 하지 말고 십계명 전체가 폐했다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정직한 것이다.
d. 장로교의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의 해석서도 안식일 계명이 의식법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만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율법 주의적이라면 즉 모세 시대만을 위하여 제정된 의식적인 명령이라고 한다면, 모세 이전 시대의 안식일에 대해서는 설명할 길이 없게 되며, 첫째, 둘째, 여섯째 그리고 기타의 계명들 또한 의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런데 이 남은 계명들은 분명히 의식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넷째 계명만을 의식적인 것으로 불수는 없는 것이다.(고든 H. 클락, 장로교인들은 무엇을 믿는가? 나용화 역[서울; 1990], 262).
e. 안식일은 또한 시내 산에서 제정된 것이 아니다. 십계명을 주시기 수천 년 전 창조 때에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이다. 십계명의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는 말씀에서 “기억하여”는 안식일이 그전부터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4. 구약에서도 안식일을 폐할 것이 예언되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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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호세아 2장은 배도한 이스라엘에게 벌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이다(호2:13). 따라서 호세아 2:11에서, 하나님께서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다고 하신 것은 심판의 선언이다. 그렇게 하나님을 계속 배도하고 떠나면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이라도 허사가 되고 말 것이라는 경고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보호하심을 받지 못하고 외국의 침략을 받게 되면 어떻게 절기나 월석이나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겠는가라는 말씀인 것이다. 이 말씀이 실제로 절기나 안식일을 폐하셨다는 말씀이 아닌 것은 그 후로도 이스라엘이 계속하여 절기와 안식일을 지킨 것을 보아서 분명하다.
5. 안식일은 애굽에서 해방된 기념일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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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어떤 사람들은 신명기 5:15에 나오는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였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켰기 때문이며 따라서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b. 그러나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이 말씀이 그런 뜻이 아님을 알고 있다. 제 7일 안식일은 “애굽으로부터 해방”이 아니라 “창조주일”과 긴밀한 관계가 있으며 유대인에게 비로소 주신 것이 아니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애굽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그 증거이다 .그렇다면 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였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이 지금 처한 상황 때문이었다.
수백 년 동안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면서 안식일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더구나 노예 생활 중 안식일을 기억해 준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계명들은 마음속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을 구분해야하는 안식일만은 노예들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해방시키셨다. 이제는 안식일을 자유롭게 지킬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제 당당하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청하실 수 잇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을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너희들이 애굽에 있을 때는 안식일을 자유롭게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너희들은 자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데 이제는 안식일을 지키라.”
6. 제7일 안식일이 오늘날의 토요일인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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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주일의 주기는 세계가 창조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일곱째 날을 복주사 거룩하게”(창2:3) 하신이래. 한 번도 단절됨 없이 계속되어 왔다.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광야로 나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만나로 친히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를 보여 주셨다. 그 후 온갖 전쟁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유대인들은 제7일 안식일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지켜왔다. 예루살렘 멸망 후(AD70) 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으나 어디에 있든지 안식일을 지키는 것만은 철두철미하게 이어져 내려왔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이 토요일을 안식일로 아무런 문제없이 준수하는 것이 안식일이 토요일인 증거 중의 하나이다.
b. 요일의 이름이 정해지기 전에는 모든 날들이 첫째 날, 둘째 날, ... 일곱째 날과 같은 식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후에 요일의 이름들이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의 아름을 따라 정해지고 첫째 날이 일요일이 되고 일곱째 날이 토요일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일곱째 날이 중요한 것이지 요일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c. 안식일이 지금의 토요일인 성경상의 확실한 증거가 있다. 성경은 예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시고 안식일에 무덤에 계셨으며 첫째 날에 부활하셨다고 말한다(막16:9). 예수께서 첫째 날 즉 일요일에 부활하신 것이 분명하며 오늘날 아무도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날이 안식일 즉 오늘날의 토요일인 것도 분명하다.
7. 제7일일 안식일은 유대인에게만 주신 “유대인의 낡은 안식일” 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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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먼저 안식일을 누가, 언제, 누구에게, 왜 주셨는가를 성경에서 찾아보자. 그러면 안식일을 유대인에게 주셨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안식일은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수천 년 전 창조주일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시조인 아담과 하아에게 축복으로 주신 제도이다(창2:1~3). 그러므로 안식일의 기원은 유대인과 관계 없다.
b. 예수께서도 안식일이 유대인을 위하여 있다고 하지 않으시고 “사람을 위하여”(막2:27)있다고 말씀하셔서 안식일이 온 인류를 위한 제도임을 천명하셨다.
8. 신약 시대에는 안식일의 의미가 일요일로 옮겨졌다는 주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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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성경적 근거도 신학적 근거도 없기 때문에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이 이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차라리 일요일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에 부활의 기념으로 지킨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 사건은 우리가 순간순간 기억하여 할 사건이지 1주일 마다 기억해야할 시간적 사건이 아니다.
b. 만일 안식일의 의미가 일요일로 옮겨질 것이라면 예수께서 돌아기시기 적전 감람산에서 말씀하실 때에 왜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24:20)고 당부하셨을까? 예수께서 옮기신 것이 아니라 부활을 기념하여 교회가 그렇게 하였다면 교회는 왜 예수님의 당부를 거역하고 안식일을 옮겨버렸을까?? 그렇게 하는 과연 안식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일까?
9. 제7일인가? 1주일 중 하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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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로교의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The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제 21장 7항은 하나님께서 “7일 중 하루를 안식일로 특별히 결정하사 성별토록” 하셨다고 말한다. 과연 성경에 7일중 하루라는 말이 나오는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제7일 안식일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성경에 없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b. 성경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7일 중에 하루”라고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고 “일곱째”날을 복 주셨다(창2:2,3). 그리고 십계명에 명확히 못 박아 말씀하시기를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하셨다. 만일 7일 중에 하루라면, 기억하라는 말씀이 도대체 왜 필요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엄격하게 제7일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0.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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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 질문은 “부모를 공경해야 구원을 받습니까?” 라는 질문과 같은 평범한 질문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문제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며 따라서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안식일 준수 자들은 율법주의자라고 사람들이 비난한다.
기독교는 행위로 구원받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가르친다. 아무리 선하고 의로운 행위라 할지라도 자기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진리이다. 이것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가 거듭거듭 가르치는 진리이다.
b.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구원을 받기 위하여 순종하는 것과(안식일을 기키는 것) 구원받은 결과로 순종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우리는 광복절을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위하여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광복절을 기억한다. 광복절에 태극기를 거는 사람을 보고 법에 매달려 사는 율법주의라라고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걸지 않고 광복절을 무시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외국인이든지, 혹은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을 조금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안식일도 마찬가지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기독교인들은 의롭게 되기 위하여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기 때문에 순종하여 안식일을 지킨다. 구원받은 사람이 십계명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서 다른 핑계를 댈 필요가 없고 그렇게 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c. 안식일을 지키는 행위 없이도 구원을 받는 다면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왜 전도하는가? 순종이 따르지 않는 구원이 올바른 구원일 리가 없다. 그것은 야고보가 적절히 지적한 대로, 죽은 믿음이다(약 2:26).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 계명을 가르치는 이유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구원의 의미와 순종을 가르쳐주기 위함이다. 가인과 아벨은 둘 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들었다. 그나 가인은 자기 생각대로 그가 추수한 농산물로 제사를 드렸다. 불순종하는 가인이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이해하고 온전히 믿음대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이럴 때 아벨의 책임과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가인이 아벨을 미워할지라도 가인을 권면하여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는 신앙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벨의 책임일 것이다.
11. 매일 안식일과 같은 삶을 산다면 구태여 1주일 중 하루를 안식일로 정하여 지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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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우선 안식일을 만들고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매일을 안식일처럼 지내라고 말씀하신 일이 없다. 그리고 사람은 매일을 안식일처럼 살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출20:9) 것이지만 제7일 안식일은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하셨다(출20:8). 힘써 일하는 엿새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안식일이 있는 것이다. “매일 안식일과 같은 삶을 산다”는 것은 안식일 없이 산다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12. 신약에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한 부분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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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에는 안식일은 유대인에게 주셨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안식일은 창조 시에 제정되어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것으로서 수천 년 후에 생겨난 유대인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도 안식일이 유대인을 위하여 있다고 하시지 않고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막2:27)고 하셨다. 예수 당시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사회적, 종교적 관습이요 의무였기 때문에 안식일에 관한 것은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바울도 예수께서 돌아가신 지 20년 후에도 신실히 안식일을 지켰으며 빌립보라는 도성에서는 교회(회당)가 없었기에 강가에까지 가서 안식일을 준수하였다(행16:13).
그러므로 그 당시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이 계명에 따라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날에 해서는 안 되는 39가지의 금지 조항을 법으로 정할 만큼 철저한 의무였기 때문에 유대인이고 이방인이고 간에 안식일을 지키라는 특별한 부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안식일을 그런 법조문에 매여 지키지 말고 원래의 참 뜻을 깨달아 지켜야 한다고 예수께서는 권면하고 계신다(마12:9!14;막3:1~6l 눅6:6~11). 이것은 역설적으로 안식일을 잘 지켜야 한다는 권면이 아니겠는가? 안식일이 만일 폐했다면 그 참뜻을 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3. 안식일은 안식하는 날이지, 예배를 드리라는 성경상의 근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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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알아야 할 것은 안식일은 단순히 휴식의 날이 아니라는 것이다.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과 만나 복을 받고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창2:3). 그리고 “하나님과 만나 복을 받고 거룩하게되고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는” 것의 중심에는 예배가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그 제자들도 안식일에는 어김없이 규례대로 회당에 가서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14. 일요일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에 구속의 날로서 의미가 있다고 일부 학자들은 주장한다. 거기에 비하여 구속의 기념일로서 안식일의 의미가 명확히 드러나는 성경 구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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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안식일은 구속의 기념일일뿐 아니라 창조의 기념일임을 알아야 한다. 안식일은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에 죽 구속이 필요하기 이전에 사람에 대한 축복으로 주어진 것이다. 안식일에 구속의 의미가 있다면 타락한 이후에 생겨난 것이다. 즉 죄악 세상에 살지만 1주일에 한 번씩 어김없이 돌아오는 안식일은 타락 이전에 제정된 제도이기 때문에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미리 맛보는 날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안식일이 갖게 될 구원과 치료와 회복의 의미는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시면서 명확히 말씀하셨다(막2; 눅13,14; 요5:9을 참고할 것).
그리고 일요일에 구속의 의미가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부활은 사건이 중요한 것이지, 부활의 시간이나 어느 요일에 부활하셨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일요일에 구속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 사건에 구속의 의미가 있다. 예수께서는 일요일이 중요해서 그날에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안식일 이튿날(레23:11)이기 때문에 부활하신 것일 뿐이다.
15. 우리가 쓰는 달력은 두 번이나 바뀌었다고 하는데 그 와중에 안식일에도 어떤 변동이 있지 않았을까? 달력이 바뀌었어도 요일은 틀림이 없다는 증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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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식일에는 아무런 변동도 없었다. 역사상 달력에 두 번의 변동이 있었다. 그러나 율리우스 달력(Julian Calender)에서 그레고리우스 달력(Gregory Calender)으로 변동 할 때 주일의 요일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 율리우스 달력에는 날짜 계산에 계속적인 착오가 있어서 마침내 춘분이 3월 21일이 아닌 3월 11일이 되었기 때문에 10일의 착오가 생겼다. 이것을 수정하기 위해서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8세는 달력 변경 령을 공포하고 10월에서 10일 빼냈다. 즉 10월 4일(목) 다음날을 10월 15일(금)으로 고친 것이다. 그러나 요일 시스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1752년에는 영국 국회가 다시 한번 날짜 수정의 필요를 느끼고 법에 의하여 9월에서 열하루를 뺐다. 즉 9월 2일(수) 다음 날을 9월 14일(목)로 바꾼 것이다. 그러므로 날짜에는 차이가 생겼지만 요일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었다.
b. 달력의 날짜만을 조정하면 요일에는 변동이 없다. 지금까지의 달력 변경은 다 날짜를 바꾸는 것이었기 때문에 요일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만일 매년 1월 1일이 일요일로 시작하도록 달력을 개정한다면 일곱째 날을 요일로 지키는 것은 일대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16. 날짜 변경선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미국에서의 안식일과 한국의 안식일은 서로 시간이 다른데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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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식일을 정확히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에 안식일을 기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날짜 변경선 문제나 지역에 따라 인식일 시간이 다름을 문제 삼는다. 날짜 변경선 문제란 무엇인가? 여행자가 태평양을 동서로 횡단할 때 날짜 변경선을 지나면서 하루를 얻거나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는 알고 있다. 금요일 저녁에 날짜 변경선을 지나는 사람은 아참에 일어나보면 그날이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안식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가?
먼저 날짜 변경선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은 일부 변경선은 우리가 상상하는 대로 실제로 하루를 잃어버리거나 얻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간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은 단지 지구 이편과 저편의 시간의 차이를 맞추기 위하여 편의상 날짜를 조절해주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날짜 계산에서 야기될 수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지구상의 모든 지역들의 날짜를 통일시켜주는 조정기 역할을 하는 것이 일부 변경선이다 . 오히려 날짜 변경선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혼란 없이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b. 하나님은 기계적인 분이 아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의 시간이 다른데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시간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레위기 23:3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말씀하신다. 각각 자기가 사는 곳에서 해질 때부터 해질 때까지 안식일을 기억하면 되는 것이다(레23:31,32).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금요일 오후에 미국으로 출국하면 12시간 이상이 지났는데도 다시 금요일일 오후에 미국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면 미국 사람들과 함께 미국의 안식일을 즐기면 될 것이다. 미국에서 돌아올 때는 반대로 금요일 오후에 비행기기를 타면 일요일에 서울에 도착하게 된다. 안식일이 아주 짧게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불가피한 일이 있어 금요일 비행기를 탔을 때는 비행기 안에서 지나가는 짧은 안식일이 그의 안식일이 될 것이다.
17.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골3:18)이란 표현에서 절기 안식일은 절기 속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골로새서의 안식일은 제7일 안식일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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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제7일일 안식일은 일반적으로 절기와 함께 나란히 나오지 않고 “여호와의 안식일” 등으로 표시된다(레23:3). 그러나 이곳의 안식일이 제7일 안식일일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런지 이 절의 평행 절이나 그 다음 문맥을 자세히 봐야한다.
b. 먼저 골로새서 2:16과 평행절인 갈라디아서 4:10,11을 보면,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 한다고 기록되었다. 골로새서 2장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말씀이다. 골로새서 2:16의 안식일에 해당되는 것을 갈라디아서에서는 “날들”이라고 쓰며 원어에도 북수로 되어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날들”(헤메라스 hēmeras)이다. “날들”이란 말이 과연 제7일 안식일을 의미하는가? 그러나 성경에서는 제7일 안식일을 말하면서 “날”이란 헬라어 헤메라(hēmeras)를 사용하지 않으며 더구나 복수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날들이란 절기 안식일이 틀림없다. 따라서 댓구인 골로새서 2:16의 안식일도 절기 안식일이다.
또한 골로새서 2장은 절기와 의문의 율법을 지키는 율법주의자들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에 제7일안식일에 대한 언급이 아닌 것이다. 또한 바울이 제7일 안식일이 그림자이며 십자가로 폐했다고 주장했다면 엄청난 충격과 저항에 부딪혔을 텐데 성경에는 안식일에 대해서 어떤 반박이나 충격도 나타나지 않는다.
18. 새 하늘 새 땅에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다는 주장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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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이사야 66:22,23에 나오는 말씀, 즉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하나님 앞에 경배할 것”이라는 말씀은 재림 후 천국에서 있을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구약 시대에 성취된 사건이기 때문에 안식일은 천국에 가서도 존재하는 영원한 것이라는 해석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든다.
(1) “새 하늘과 새 땅에서”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사야 66:22의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처럼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겠다는 위로의 말씀에 불과하다.
(2)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지금 안식일을 지키는 한 증거가 된다면 월삭도 지금부터 지켜야 할 것이다. 왜 월삭은 지키지 않는가?
(3) 월삭이 십자가에서 폐한 것처럼 안식일도 폐한 것이다.
(4)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하나님 앞에 경배한다고 했는데 천국에는 혈육이 없기 때문에(고전15:50)이 기사는 천국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 구약 시대에 속한 어느 때의 일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이사야서의 전체적인 주제와 구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이다. 위의 잘못된 주장에 대하여 간단히 대답하면 다음과 같다.
(가)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이사야서 전체의 내용과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체 구조를 무시하고 한 구절을 따서 자기의 목적에 이용하는 일은 성경 해석에서 가장 피해야할 것이다. 이사야 66장은 심판과 회복의 기별을 외친 이사야서의 총 결론이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구원받은 자의 복된 미래의 삶에 대한 예언인 58장~66장의 종결부분이다(그랜드 종합주석, 제9권, 1301).
하나님의 최후 심판과 악인들의 멸망(66:24)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경배하는 일을 설명하는 대선지자의 장엄한 묘사인 것이다. 이것이 구약시대에 성취된 예언만이 아님은 최후의 심판을 묘사하는 66:24의 말씀이 그것을 증거한다. 성경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66:24의 사건이 구약 시대에 다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새 하늘 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라는 말씀은 단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겠다는 위로의 말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함께 영원히 살 것이라는 보증의 말씀이다. 만일 구원받은 사람들이 새 하늘 새 땅에 있지 않다면 도대체 어디에 항상 있다는 말인가? 이사야 66장의 마지막 심판과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은 모든 성경 주석가들이 동의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나) 월삭(new moon)은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음력 달의 첫날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음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그믐달이지고 첫 초승달이 나타나는 날을 새로운 달의 시작으로 잡았다. 이날에 제사장은 나팔을 불어 새로운 달의 시작을 알리고 백성들은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날이기도 했다. 따라서 월삭은 유월절이나 대속 죄일 같은 절기와는 달리 어떤 것의 표상이 아니라 단순히 새로운 달의 시작을 알려주는 시간적 의미가 강하다. 이사야 66:23에서 말하는 월삭도 어떤 절기라기보다는 매달의 첫 날이라는 의미이다. 새 하늘에서는 매달의 첫날과 매 안식일에 하나님 앞에 경배한다는 것이다.
안식일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준수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창2:1~3)십계명에도 명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날도 순종하는 것이다. 안식일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주신 제도가 아니고, 타락 전에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제정하셨기 때문에 회복된 하늘에도 안식일이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다) 유대인들이 매월의 첫날로 삼던 월삭은 이제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우리가 양력을 쓰기 때문에 초승달이 처음 나타나는 날이 특별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력을 쓸 경우에는 지금도 월삭 즉 초승달이 처음 나타나는 달의 첫 날은 시간 계산에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의 절기로서 월삭의 의미도 지금 우리들에게는 없어졌다. 그러나 안식일은 다르다. 안식일은 단순히 시간을 나타내는 신호가 아니라 창조 때부터 제정하신 특별한 제도요 유대인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타락 전에 주신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표상인 그림자가 아니요 십자가로 폐해는 것도 아닌 영원한 것이다.
(라) 천국에는 혈육이 없기 때문에(고전 15:50) 혈육이 모인다는 이 기사는 천국에 대한 말씀이 아니고 구약 시대에 속한 어느 때의 일이라는 이론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다. 성경에서 혈과 육이라는 말은 어떤 “영적인 존재”에 대하여 단순히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창6:9; 8:17; 시56:4; 마16:17;갈1:16; 히2:14). 예수께서도 이 땅에 계실 때 혈육에 속하였다(히2:14). 아담과 하와는 혈과 육이 있는 생명으로 창조되었다. 타락 전에 그들은 혈육이었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사람은 혈육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없다는 고린도전서 15:50의 혈과 육은 변화되기 전 죄악의 육체를 말하는 것이다. 썩지 않을 몸 즉 변화된 혈육이 되어야 재림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그랜드 주석의 설명은 이를 옳바르게 지적하였다.
“여기서 모든 혈육은 66:16의 모든 혈육 곧 육체를 따라 난 자들과는 대조적으로 성령을 따라난 자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랜드 종합주석 제9권, 1307).
결론적으로 이사야 66:22,23에서 말한 것 즉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경배한다는 말씀은 문제될 것이 없는 너무나 당연한 말씀이다. 매 월삭이라는 것은 매 월 첫날을 의미하는 시간적인 것이요 안식일에 경배하는 것은 창조 때부터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에 새 하늘에서 다시 회복되는 것이 당연하다.
19. 사랑의 하나님께서 안식일(토요일)에 드리는 예배는 받아 주시고 일요일 예배는 거절하시겠는가? 정성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어느 날이든 괜찮지 않을까? 하루 사이인데 그렇게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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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안식일 문제는 예배를 토요일에 드리느냐 일요일에 드리느냐 하는 예배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 하는 기독교 핵심 사상의 문제이다. 만일 안식일을 무시해버리고 아무 날이나 하루를 택하여 예배를 드림으로써 문제가 해결된다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제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으로 시작되는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출20:8)은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그날은 의미로 가득 찬 날이며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우리는 아침부터 태극기를 내걸어 그 날을 경축한다. 8월 16일은 8월 15일과 불과 하루 사이지만 아무날도 아니다. 16일에는 광복절의 의미는 단 하나도 없다. 단지 광복절 이튿날일 뿐이다. 어린이날 어린이들은 고궁에 무료로 들어갈 수 있고 그날의 특권을 누린다. 만일 어떤 어린이가 5월 6일에 고궁에 무료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 집은 5월 5일 어린이날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5월 6일을 어린이날로 하기로 했다고 주장하면 그 주장이 통할 수 있을까? 5월 6일은 어린이날과 아무 상관이 없는 날이며 단지 그 이튿날에 불과하다. 이것이 기억해야 하는 모든 날들의 특징이다. 그렇지 않다면 기억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아담의 아들 가인은 동생을 죽인 살인자요 전형적인 악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인이 제사를 드리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가인과 아벨은 둘 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가인은 그의 처음 익은 농산물로 제물을 드렸고 아벨은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다. 아마도 정성으로 보면 가인이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을 지도 모른다. 농산물을 준비하는 것이 어린양 한 마리를 잡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는 본 척도 하지 않으시고 동생 아벨의 제사만 받아 주셨다. 이것이 가인을 격노케 했다. 그래서 죄 없는 동생을 박해하고 죽였던 것이다. 우리는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제물이 농산물이면 어떻고 어린양이면 어떠냐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제물의 종류 문제가 아니라 순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식일도 마찬가지이다. 아무 날이나 하루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안식일의 목적이라면 “기억하라”는 말로 시작되는 십계명의 제4계명에 넣어 놓지도 않으셨을 것이고 제7일을 지명하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20. 많은 교회들이 십계명을 준수한다고 하면서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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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서점에 가면 “십계명 해설”이라는 책이 여러 종류 출판되어 있다. 기독교인들의 삶의 규범이 되는 십계명을 하나하나 해설한 책이다. 다른 계명은 해설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상당수의 기독교인들이 순종하지 않는 네 번째 계명, 즉 안식일 계명은 어떻게 해설하고 있을까?
십계명을 해설한 책들의 넷째 계명 해설 내용은 모두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안식일의 중요성이다. 그리고 제2부는 그렇게 중요한 성경상 안식일은 왜 지키지 않고 일요일을 지키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1981년에 교문사에서 출판한 이순경 목사의 십계명 해설을 살펴보기로 한다.
저자는 제4계명을 해설하면서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제1부를 시작하고 있다. 그중에서 몇 문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10계명을 주시기 오래 전부터 벌써 안식일을 지키게 하셨던 것입니다. 안식일은 성별된 날입니다. 안식일은 다른 날과 같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그날을 특정한 날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날처럼 안식일을 다룬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범죄 하는 것이 됩니다."(79쪽)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에 힘써야 할 것이요, 제4계명은 가장 중요한 계명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48쪽)
참으로 안식일의 중요성을 잘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안식일 계명이 계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제2부에서 시작된다. 제2부의 내용은 “안식일과 주일”이다. 제2부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안식일을 그리스도인들이 왜 지키지 않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이다. 저자는 거기에 대하여 분명한 대답을 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고는 오늘날 교회에서 성경상 안식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키는 이유는 교리문답 59조에 나와 있다고 대답한다. 다시 말하면 성경에서는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교리문답 59조는 우리 신앙의 근본이 될 수 없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가톨릭은 무엇이라고 설명하는가? 박도식 신부가 쓴 천주교와 개신교(서울“ 가톨릭 출판사, 1997)라는 책 72쪽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박 신부: 예 먼저 하나 물어보겠어요. 개신교에서는 일요일을 주일로 지내고 있지요? 성경 어디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까? 성경에는 분명히 안식일을 주장했고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어찌하여 성경에도 전혀 (근거가) 없는 일요일을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까?
송양: ?!
박 신부: 성경에는 그런 말(일요일을 지키라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일요일을 주일로 지내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을 신약 시대의 중심일로 생각하고 사도들이 정한 것입니다. 이런 전통은 가톨릭에서가 아니면 어느 종파에서도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위의 글은,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만으로 살아야 되기 때문에 성경에 없는 교리들(마리아 숭배 등)을 가지고 있는 가톨릭은 틀렸다고 개신교의 주장에 대한 가톨릭측의 반박이다. 성경 말씀 그대로 순종하려면 안식일을 지켜야 맞지, 왜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일요일을 지키면서 그런 주장을 하느냐는 비난이다. 일요일 준수는 가톨릭이 교회의 권위로 그렇게 변경하였기 때문의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성경만을 주장하는 개신교는 일요일 준수를 하면 안 되며 스스로 모순에 빠지게 된다는 박 신부의 설명은 사실 모든 일요일을 지키는 개신교에서는 반박할 수 없는 주장이다.
우리는 위에서 성경 상 안식일 대신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부르며 준수하는 이유에 대하여 개신교측의 답변과 가톨릭의 답변을 들어보았다. 그러나 교리문답 59조에 근거한 개신교의 답변이나 교회가 교회의 권위로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꿨다는 가톨릭의 주장은 둘 다 성경적이지 못하며, 정직한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나님의 계시로 된 성경 말씀은 거룩하고 엄숙한 것이어서 어떤 인간도 바꿀 수 없다. 계시에 손을 대는 그 순간 그것은 종교로서 생명을 잃어버린다(계 22:18, 19).
21. 성경에 일요일(첫째 날)을 정기적으로 지켰다는 근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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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을 준수하는 학자들은 초기교회가 일요일에도 모였다는 증거로 세 성경절을 제시하고 있다(행 20:7; 고전 16:2; 계 1:10). 그러나 그 세 성경절들은 그렇게 주장하는 학자들도 스스로 민망해 할 정도로 전혀 첫째 날 준수의 증거가 되지 못함은 이미 난해절 해설에서 상세히 밝혔다. 결론적인 사실만 다시 한 번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a. 사도행전 20:7은 초기교회 신자들이 안식 후 첫날 즉 일요일에 모였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안식 후 첫날이라고 기록된 그날 밤은 일요일 밤이 아니라 [새번역] 신약 성경이 정확히 번역한 대로 안식일 밤이다. 일요일 밤은 유대력에 의하면 이미 둘째 날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날 밤 드로아에서 다락방 집회는 정기 집회라기보다는 날이 새면 위험한 길을 떠나야 할 바울의 송별집회였다. 초기교회에서 떡은 성도들이 모이는 곳이면 날마다 라도 떼었기 때문에 정기 집회의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바울은 날이 새어 일요일 새벽이 되면 먼 길을 떠나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첫째 날을 준수하는 것은 그의 계획에 없었다.
b. 고린도전서 16:2에서 첫날에 저축하라는 것은 헌금을 계산하는 날의 편리성을 말하는 것이지 첫째 날에 모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헌금을 한데 모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저축하여 두라고 말씀한 것이 그것을 증거한다. 헌금을 각 사람이 개인적으로 하라고 했다. 즉 단독으로 하는 행위에 대한 말씀이지 교회에 모여 단체로 헌금하는 것을 언급한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각 사람”을 향한 개인적 부탁이지 교회 부탁하는 것이 아니다. 연보를 각 사람이 “저축하여 두라고”했다. 매 주일 첫날에 교회에 가져와서 바치라는 말이 아니라 매 주일 첫날에 계산한 다음 바울이 갈 때까지 개인적으로 보관해 두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성경절을 일요일 준수의 근거로 삼으려는 것은 근거가 너무나 빈약하다. 이것은 극히 개인적인 부탁이요 각 사람이 갑자기 헌금을 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또 효과적으로 헌금을 모아 놓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뿐이다. 바울이 사람들에게 매 주일 첫날에 수입을 계산하라고 권하기 때문에 이 구절은 오히려 일요일에는 공중모임이 없는 날이었다는 증거가 된다고 하겠다.
c. 요한계시록 1:10의 “주의 날”이 일요일 준수의 증거가 될 수 있는가? “주의 날”에 대한 성경의 유일한 단서는 마가복음 2:28에 나오는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라는 말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안식일이 “주의 날”이라는 명백한 말씀이다. “주의 날”이 일요일이라는 어떤 성경적 근거도 없기 때문에, 요한이 그렇게도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언급한 “주의 날”은 일요일이 아니고 안식일 즉 오늘날의 토요일임에 틀림없다.
요한이 계시록을 썼던 AD 1세기 말에 첫째 날 즉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불렀다는 어떤 기록도 없다. 그런 기록이 나오는 것은 2세기 후반에 와서였다. 그러므로 요한이 “성령에 감동하여....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은 날은 일요일이 아니라 오늘날의 토요일인 안식일이었다.
22.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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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질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되는가 혹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십계명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동일하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십계명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째 계명을 지켜야 하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너무나 자명한 것처럼, 안식일 준수에 대한 답변도 자명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히 여기고 순종하기로 결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이것은 율법주의의 문제가 아니다. 일요일을 지키는 것이 율법주의가 아닌 것처럼 십계명의 말씀대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는 것은 전혀 율법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순종의 문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연스러운 의무이고 특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