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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지게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갈고 닦아 마침내 한 부문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이야기는 식상한 것 같으면서도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초년 복 보다는 늦복이 좋다’는 어른들
말씀도 따져보면 오랜 시간 노력한 결과에 대한 상찬(賞讚)이겠지요.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화가로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그 동안 여러 번 소개했는데, 스웨덴의 칼 라르손 (Carl Larsson / 1853~1919)의 경우도
그 누구 못지 않습니다
숙제를 하는 Esbjorn Esbjorn doing his homework / 74cm x 68.5cm / 1912 / watercolor
그림 속 아이 Esbjorn (스웨덴어 발음을 몰라 이렇게 쓸 수 밖에 없습니다)은 라르손의 막내 아들입니다.1900년생이니까 그림 속 아이는 열 두 살이겠지요. 숙제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것들로 이미 머리는 가득 찼습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자세나 의자를 뒤로 살짝 젖힌 모습을 보면 어지간히
숙제가 싫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벽에 걸린 거울 속 라르손의 모습이 보이시는지요? 처음 볼 때 아들을 그리는
아버지의 모습이 액자 속 그림인줄 알았습니다. 퀴즈를 하나 해결한 기분입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라르손의 집안은 정말 가난했습니다. 그를 소개한 자료에는 슬프고도 비참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하는 것이 없는 쓸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식구들에게 폭언을 일삼기
일 쑤였습니다. 자기 절제가 안 되는 성격 탓에 일용 노동자, 선박의 화부(火夫) 노릇, 곡식을 나르는 짐꾼을
전전했습니다. 아들에게 ‘나는 네가 태어난 날을 저주한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였으니까 말 다한 것이죠.
11월 November / 1882 / watercolor
달이라고 한다지요. 다 사라지지 않았으니 비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림 속 노인도 인생의 11월을 지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림을 보다가 지난 주 주보에 실렸던 글이 떠 올랐습니다. 산다는 것은 야간 열차를 타고 가다
때가 되면 자신이 내려야 하는 곳에서 내리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식구들이나 친구들을 열차 안에 두고 내리는
것이지요. 내릴 곳이 가까워진다는 방송이 들렸을까요, 노인의 발 걸음이 무거워 보입니다.
결국 그런 아버지에 의해 라르손은 어머니, 동생과 함께 집에서 쫓겨 납니다. 방 한 칸에서 세 식구가 살게 된
곳은 가난하고 지저분한 곳이었습니다. 근처에는 매춘을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온전히 자랄 수
없었겠지요. 아이들과 먹고 살기 위해서 라르손의 어머니는 세탁과 같은 일을 끝없이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라르손의 작품들을 보면 이런 흔적이 보이질 않습니다. 환경이 반드시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저녁 램프 밑에서 At the Evening Lamp
딴 짓 하지 말고 똑 바로 읽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 가뜩이나 책을 읽기 싫은 아이의 표정이 더 구겨졌습니다. 바느질 거리를 잡고 있는
엄마는 아이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아이의 마음을 다 알고 있습니다. 벽난로의 열기가 방안을 조금씩 데우고
있고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와 함께 아이의 작은 입이 점점 나오고 있습니다.
라르손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는데 외 증조할아버지가 화가였다니까 엄마 쪽의 그 것을 받았던 모양
입니다. 열 세 살이 되던 해 라르손은 미술 아카데미 준비 학교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워낙 가난했던 라르손에게
학교는 버거운 것이었습니다. 라르손은 학교에서 아웃 사이더였고 사회적으로도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가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겠지요. 야곱슨 선생님은 그런 라르손에게 미술 아카데미로 진학하도록 그를 격려하곤
했습니다.
편지 읽는 여인의 있는 실내 풍경 An Interior with a Woman Reading / 1885
참 화사한 실내 풍경입니다. 창문 앞에 놓인 화분들과 빛이 나는 가구로 적당히 무게가 있으면서도 경쾌한 느낌이듭니다. 화면에 너무 많은 것들이 놓여 있어서 어지러울 만도 한데 편지를 읽는 여인이 한 쪽에 배치되면서
화면의 구성이 좌우 대칭 식으로 안정을 찾았습니다. 편지를 읽는 여인의 입이 살짝 열려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처럼 소리 내어 읽고 있던 것일까요, 아니면 편지에 담긴 내용에 자기도 모르게 ‘아’하는 감탄의
소리를 내는 것일까요? 마음이 담긴 편지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얼굴도 편지의 내용에 따라 변하던, 아득한
기억이 떠 오릅니다.
열 여섯 살에 스톡홀름 미술 아카데미의 가장 낮은 반에 합격한 라르손은 비로소 자신감을 되찾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지만 우선은 그림 실력이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났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실력보다 더
강한 무기는 없거든요, 학교를 졸업한 라르손은 유머 잡지에 캐리커쳐를 그리는 일과 신문사의 그래픽 아티스트로
일을 합니다. 여기에서 번 돈으로 더 이상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신문을 읽고 있는 숙녀 A Lady Reading a Newspaper / 1886 / watercolor
돗자리를 깔고 비스듬히 누워 신문을 들고 턱을 고인 한쪽 팔은 풀 밭에 내려 놓았습니다. 실내 소파 위가
더 어울릴 것 같은 풍경이지만 사선으로 들어 오는 햇빛 아래에서 저렇게 신문을 읽어도 좋겠다 싶습니다. 신문이
아니라 책이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여인의 교양미를 더 보여주기 위한 연출일까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 교정에
시멘트로 된 스탠드가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학원에 갈 시간이 남을 때까지 간혹 그 곳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전혜린과 카뮈 그리고 가끔은 황석영과 한수산도 만났었습니다. 그 기울어가던 햇살이 그립습니다.
스물 네 살이 되던 1877년, 라르손은 화가의 꿈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파리로 갑니다. 미술가로 자리를 잡기 위해
몇 년간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만 어떤 성공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당시 파리는 인상파가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때였습니다. 라르손이 보기에 인상파는 급진적인 미술 사조였고 때문에 인상파 화가들과 친분을 쌓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바르비종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인생을 바꾸는 일이 일어납니다.
키 큰 자작나무 아래에서의 아침 식사 Breakfast under the big birch / 32cm x 43cm / 1896 / watercolor
아침부터 야외 식사자리를 만들었군요. 검박한 식탁입니다. 아이를 세어 보니까 5명, 그렇다면 라르손의 아이들
모습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림에서 우리를 보고 있는 아이는 이제 세 살이 된 브리타겠군요. 맨 왼쪽 비어있는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가 되겠지요. 어느 광고에도 있었지만 가족 사진을 보면 아버지는 늘 화면 밖에 있었습니다.
음식은 한 가지도 묘사된 것이 없는데 모두들 아주 열심히 먹고 있는 느낌입니다. 그건 그렇고 식탁을 내려다
보고 있는 개는 뭔가요 ---– 처음에는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1882년 라르손은 풍텐블루 숲 근처에 있는 그레 쉬르 루앙으로 자리를 옮겨 정착하는데 스웨덴 출신 화가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죠. 그 곳에서 라르손은 카린이라는 여류화가를 만납니다. 둘은 곧 사랑에 빠졌고 이듬해 결혼
합니다. 결혼은 남자에게 많은 것을 주기도 하고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라르손은 이제까지 그가 끝없이 추구해
왔던 유화를 버리고 새로운 수채화 기법으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일생을 보면 결혼은 그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었습니다.
목수의 작업장 The Carpenter's Shop
아빠가 일하는 곳으로 아이가 찾아 왔습니다. 어수선하지만 맑은 수채화 기법 때문인지 물에 씻어 놓은 듯이화면이 말끔합니다. 수북이 쌓인 대팻밥 사이에서 아이는 아빠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못하는 것이 없는 수퍼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저는 수퍼맨일까요? X맨만 아니면
다행이겠지요. 문득 그림 속 아버지가 대패질을 하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꿈은 저렇게 늘 다듬는 것이 맞겠지요.
라르손과 카린은 두 살 때 죽은 아이를 포함 모두 여덟 명의 아이를 낳습니다. 부부 사이가 좋았겠지요.
아이들은 라르손 작품 속의 모델로 등장합니다. 1888년 라르손의 장인은 순트보른에 있는 작은 집을 사위에게
선물로 줍니다. ‘작은 용광로’라고 이름을 가지고 있던 이 집은 1891년 라르손 가족들이 스웨덴으로 귀국, 입주
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조금씩 고쳐갔는데 라르손의 작품 속에 이 집이 묘사되면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의 집이 되었습니다.
음계 연습 Playing Scales
손은 건반에 올라 있지만 눈은 악보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악보를 보는 눈이 초롱초롱 합니다. 모든 신경이
눈과 손에 몰려 있겠지요. 소녀는 단순한 음계 연습을 하고 있지만 피아노 옆에 걸린 그림 속 여인은 신이
났습니다. 3년 전 더 나이 먹기 전에 피아노를 배우겠다고 결심을 하고는 일주일에 한 번씩 6개월 정도 레슨을
받았습니다. 동요집 한 권과 연습곡집 1권을 끝내고 멈췄지만 저도 처음 소녀처럼 악보를 쳐다 봤습니다.
한 음씩 따라가다 보면 어느 날 곡 전체가 손과 머리로 들어 오게 되더군요.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지 않으면
결코 전부를 알 수 없는 것, 사람 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더군요.
라르손과 카린의 취향에 따라 집의 외부와 내부가 장식되었습니다. 인테리어는 현대 스웨덴 인테리어의 기준이
된다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불우했던 그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그 집을 그렇게 예쁘게 꾸미게 하는 힘이 되지
않았을까 상상을 해 봅니다. 이 집은 지금도 라르손의 후손이 살면서 5월부터 9월까지 일반 관람객들에게 문을
열어 놓고 있다고 합니다. 그림만큼 유명한 집입니다.
수영하기 좋은 곳 A Good Place For Swimming
이런 그림을 볼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아이들은 노는데 천재입니다. 다이빙을 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데 꼬마는 겁도 없이 다이빙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손을 든 모습이나 약간 구부정한 모습을 보면 나름대로
긴장한 것 같고 이런 일이 늘 있었던지 나무 그늘 밑 엄마는 강 건너로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다. 밝은 하늘 아래,
어리지만 건강한 생명력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1890년대 출판물에 색을 재현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그의 작품에 대한 인기가 놀라울 정도로 올라갔습니다.
그가 그리고 글을 쓴 책들이 제작되었는데, 책을 통해서 그의 작품 색상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1909년 독일에서 ‘햇빛 속의 집 The House in the Sun’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그의 작품 수록집은 3개월만에
4만부가 팔렸다고 하니까 라르손 내외가 오히려 성공에 경악했다는 기록이 이해 됩니다. 2001년까지 40쇄를
인쇄했으니까 대단하죠.
의젓하게 의자에 앉아 아침에 배달되어 온 만화를 넘겨 보는 아이도 있습니다. 침대 위에서 장난감 칼을 들고
출항 명령을 목소리 높여 외치는 녀석도 보입니다. 크리스마스 아침, 산타클로스가 어떤 선물을 주고 가셨는지
한 눈에 알 수 있군요. 한 때는 저도 산타클로스였습니다만, 딸 아이에게 정체를 발각 당한 이후 15년 가까이
산타클로스 일을 쉬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라르손의 수채화에 열광했지만 정작 본인은 프레스코화가 자신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1896년, 라르손은 스웨덴 국립 미술관으로부터 미술관을 장식할 프레스코화 몇 점을 주문 받았습니다.
마지막 작품이 완성된 것은 1915년이었습니다. 마지막 작품의 제목은 ‘동지 제물 (Midwinter Sacrifice)’이였는데
기근을 피하기 위해 스웨덴 왕이 제물로 나서는 장면을 묘사한 세로 6미터, 가로 14미터의 대작이었습니다.
문제는 작품이 완성되었지만 미술관 이사회에서 이 작품의 게시를 거절한 것입니다.
낚시하는 리스베스 Lisbeth fishing / 32cm x 43cm / 1898 / watercolor
일곱 살입니다. 어른들 흉내를 내는 것이지 고기를 낚아 올리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렇게 아이들은 어른을 보고 자랍니다. 가는 곳이 정해졌으면 그 삶도 정해져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확실히
정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니 --- 낚시나 가 볼까요.
거절을 통보 받은 라르손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 자신이 자신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역작이라고
여겼던 것을 거절 당했으니 그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훨씬 더 좋은 곳에 걸려 찬사를 받을 거야’ 라는 그의 말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 납니다.
3인용 책 Book for three 54cm x 72cm / 1912 / watercolor
책을 보는 동생 어깨 너머로 누나도 함께 책에 빠져 들었습니다. 예전에 만화책을 볼 때면 혼자 보는 것 보다동생과 함께 볼 때가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동생들은 싫어했지만 이미 본 것을 다시 보는 것이라서 다음 페이지
내용을 미리 말해주는 스포일러 역할이 짜릿했거든요. 누나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누나가 동생 쪽으로 몸을
굽히자 조금씩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고양이의 눈에 긴장감이 돌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아래로 떨어질 지경
입니다.
실제로 ‘동지 제물’은 일본인에게 팔렸다가 1992년 스웨덴 국립 미술관에서 라르손 작품 전시회를 할 때 걸리게
됩니다. 스웨덴에서는 이 품에 대한 논의가 끊이질 않았는데 결국 1997년 일본인으로부터 다시 작품을 사 들여
원래 전시하고자 했던 곳에 걸림으로써 끝이 납니다.
하늘에서 이 사실을 알았다면 라르손은 분명히 이렇게 말했겠지요.
거 봐, 내 말이 맞았지?
[출처] 칼 라르손 - 비참한 유년시절에도 영혼은 맑게 자라고|작성자 레스까페
http://blog.naver.com/dkseon00?Redirect=Log&logNo=140133386845&from=section
첫댓글 고맙다 지기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몇년전에 스톡홀름 국립미술관에 갔었는데---. 라르손의 작품은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