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신문 2010년 5월 21일자 지면에 흥미로운 기사가 났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오이타현 료칸 유후인 온천
일본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를 기획 설계한 건축가 아즈마 리에를 인터뷰한 기사다. 가루이자와는 일본에서 가장 고급스런 별장 리조트지대다. 일본 황실의 여름별장이 가루이자와에 있다. 한국으로 말하면 평창, 용평리조트와 비교되는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이며 정말 아름다운 여름 별장지대다. 물론 그 규모에 있어서는 가루이자와가 수십배는 크겠지만....., 2005년에 가루이자와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직도 그 아름다운 경치와 리조트, 별장 등이 눈에 선하다.
일반적으로 관광업계의 호텔의 등급은 1~5 스타로 구분한다. 이것은 세계 호텔업계의 연합회가 공식적으로 기준과 평가를 제시한 호텔평가의 기준이다. 두바이의 6성급이나 7성급이란 호텔이란, 이런 호텔 협회의 기준이나 등급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마케팅용 비공식적인 '수사'이다. 우리나라의 호텔도 시설과 서비스에 따라 등급이 평가되어 매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여관이나 여인숙은 가장 싸구려의 하급 숙박시설의 이미지가 있고 또 사실이 그러하다. 하지만 일본은 어떤가? 일본의 숙박시설의 등급은 세계적인 기준과 사뭇 다르다. 그것은 바로 료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료칸은 일본의 전통적 건축물이며 숙박시설이다. 오래된 료칸이 일본 전역에 즐비하다. 그야말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설들인 것이다. 일본의 전통료칸과 근대화된 호텔의 등급은 어떠한가? 일본에서는 료칸과 호텔의 등급은 나누지 않는게 불문률이다.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양의 호텔 시스템에 전통 료칸을 편입시킬 수 없다는 의미이다. 물론 유명한 온천 료칸은 세계 10대 호텔의 숙박비와 맞먹으며 고급 손님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 규모는 중요한게 아니다. 역사적 유명 인사나 역사적 사건, 사료들이 촘촘히 호텔의 전통을 빛내주고 있다. 오히려 료칸이 더 고급이라고 할 수 있다.
한옥 건축양식은 이러한 숙박시설에 적용되는 것이 가능한가?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있어왔지만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라할 수 있는, 경주의 호텔 라궁이다. 여기서 호텔 라궁이 평당 공사비가 얼마들었냐는 것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컨셉의(?) 한옥 호텔이 성공적으로 지어져서, 고객들의 사랑과 인기를 꾸준히 받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라궁은 한옥건축의 숙박시설, 리조트로서의 사업적 타당성을 적용하는 시험대가 되었다. 물론 창덕궁 낙선재나 경복궁 건천궁 수준의 건축비를 들여 지은 한옥호텔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한 막대한 투자가 가능하여 국보급 호텔을 건립할 날이 올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궁은 선구자적인 노력의 결실이라 생각되며 앞으로, 한국에서 본격적인 전통양식 한옥호텔 & 리조트의 가능성을 기대해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주 한옥호텔 '라궁'
전통건축 양식이 리조트&호텔에 적용되기 위해선 선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바로 건축비 문제이다. 이 사항은 추후 별도의 내용으로 기고할 예정이다.
일본이란 나라는 보면볼수록, 가보면 가볼수록 참으로 대단한 저력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가 '일본은 없다'라는 아주 수박 겉핧기, 쓰레기 같은 내용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과연 일본이 그럴까? 일본은 없을까? 한국인들의 가장 착각은 일본을 모르면서 일본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일문학 박사도 어느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든지, 과연 일본의 고전을 해독할만한 실력을 가진 학자가 과연 한국에 있을까?
서양 열강의 제국주의 문화가 200~150년 전부터 전 지구를 휩쓸고 지나갈 때 아시아의 가장 변방에 있던 일본은 누구보다도 먼저 젊은 근대화 선각자들이 '탈아입구'를 외치며 서양의 기술 문명과 과학 문명을 받아들였다. 여기에는 일본 개화파의 피끊는 젋은이들의 무수한 희생이 뒤따랐다. 반면 한국은 자발적인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희생한 젊은이가 몇이나 되는가? 설문조사에 일본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은 '사카모토 료마'이다. 이 사람은 33세의 젋은 나이에 반대파 테러리스트에 희생되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조선 침략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한 후쿠자와 유키치란 일본 만엔에 새겨진 인물도, 반대파의 테러 위험 때문에 수십년간 집 밖을 맘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했다.
일본 근대 개화파들은 존왕양이파와 때로는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또 때로는 국익을 위해서 서로 타협하면서 일본의 개화를 이끌어왔다. 1868년 드디어 명치유신을 단행한다. 가장 서구화를 외치는 일본, 세계 첨단, 기초과학기술의 거의 70%~80%를 가지고 있는 나라, 한편으로는 빈틈없이 완벽하게 그들의 전통을 잘 보전하고 발전시키고 산업화시킨 나라가 아닌가? 남의 것까지도 빼앗아와 자신들의 것인양 우기는 나라가 아닌가? 왜? 서구화를 외치면서도 단 한번도 자기 것을 버린 바 없고, 무시한바 없고, 팽개친바 없는가, 일본은 왜?
왜 우리는 5천년 이상의 글자그대로 찬란한 문화유산과 역사, 언어를 팽개치기를 너무나도 사려없이 신속하게 진행하면서 우리 것과 괴리되어 버렸는가? 한옥 한채 찾으려면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동떨어진 특별한, 다시말하면 먼 곳으로 열심히 찾아가야만 하는 단절이 이루어 젔는가? 왜? 일본이 약탈해가서? 프랑스 해적들이 도굴해가서인가? 일부는 그렇지만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의 전통건축이 럭셔리한 문화재급 리조트 호텔로 나타나 고객들과 세계의 손님들에게 환영받는 때는 언제가 될 것인가?
서양호텔 이기려 旅館으로 승부했죠" |
첫댓글 좋네.....^^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