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구소의 핵연료실에 있던 모든 장비가 대전으로 내려가고, 텅빈 연구실에는 그 동안 핵연료 제조 기술을 개발하기 위하여, 소량의 이산화우라늄 분말을 사용하였는데, 이 분말의 찌꺼기가 버리고 간 후드, 닥트, 통풍구, 등에 제법 많이 끼어 있었는데, 이것을 제염하는 작업을 JY 선배와 내가 하고 대전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나는 방사능 오염 시설을 어떻게 제염하는 지를 모르는데, 영국에 있는 유명 연구소로 OJT를 갔다가 최근에 귀국한 선배가 하는데로 일손을 보태는 것이어서 별로 부담은 없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이산화 우라늄 분말을 온 몸에 뒤집어 쓰는 상황이 몇번 이어지자, 점점 속이 뒤집어지고, 오후 늦게 일이 마무리 되었을 때 즈음에는 완전 탈진이 되었다.
입고 있던 작업복을 모두 쓰리기 봉투에 버리고, 대충 샤워를 하고난 후에, 연구소 앞에 있는 단골 술집에서 소주로 뱃속까지 들어온 이산화 우라늄 분말을 씻어 내는데,
선배나 나나, 이런 방법으로는 머리 속에서 아우성치는 '이걸로는 어림없어~!'라는 소리를 몽롱하게 달래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때의 경험때문에, 이산화 우라늄 분말로 뭔가를 하는 작업 현장에 갔다가 오는 날에는 소주를 몇병 걸쳐야 잠이 온다.~☆
대전으로 내려 오니 모든 것이 새롭다.
먼저 직원들의 숙소인 독신료가 대전 연구소 정문에서 약 100 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서, 출퇴근에 여유가 있어 좋다.
또 사무실과 실험실도 모두 새로 만든 것이어서, 어디를 가나 깨끗하여 서울에서의 마지막 작업 후유증을 어느 정도는 힐링시킬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하는 일도 서울 연구소에서 하다가 남은 COBRA 코드를 돌아가게 하는 일이 전부이어서 여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과학 분야에서는 주로 포트란이라는 컴퓨터 언어로 프로그래밍을 했는데, 조금만 배워도 코드 작업을 할 수가 있었다.
다만 에러가 떳을 때에는 출력 리스트의 마지막 장에 있는 에러 맵을 보고 에러의 원인을 찾아가는데, 이것이 그 당시에는 기계어로 되어 있어서, 이것을 해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서 테이프에 들어 있는 컴퓨터 코드를 사오지 않고, 어떤 코드의 소스 리스트를 구해서, 이것을 컴퓨터에서 돌아가게 만드는데는 아주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특히 내가 하는 작업처럼 소스 리스트가 글자를 잘 판독할 수 없는 마이크로피쉬에 담겨 있을 때에는 몇 배나 더 많은 시간을 공들여야 코드를 완성시킬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을 팀장이 잘 알고 있어서 나는 여유롭게 전산실을 들락거리는 것이 일과이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구내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에 독신료에 모여든 동료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이런저런 것을 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네는데, 나는 주로 TV를 보거나, 맘에 맞는 동료들과 어딘가로 술을 마시러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최근에 방영되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토요일 밤의 열기'에서 나오는 디스코라는 춤과 유사한 허슬이라는 춤을 여동생에게서 배워 와서, 저녁에 독신료에서 시간을 보네는 동료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처음에는 친한 동료 한 두명이 배우다가, 소문이 나자 대여섯 명이 배우러 와서 한달 정도는 시끌벅적하니 저녁 시간을 보네기도 하였다.
1979년 초에 공단에 전면적인 조직 개편이 있었는데, 핵연료 제조 기술을 개발하는 팀은 그대로 핵연료실에 남고, 우리 팀과 다른 실에 있는 원자력공학과 출신들은 모두 핵공학1실과 2실에 배치되었다.
우리 팀은 팀장과 나를 포함하여 4명이 핵공학 1실로 배치되었는데, 실장은 카나다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유치과학자로 초빙된 S 박사가 임명되고, 핵공학 2실은 나랑같이 제염 작업을 하였던 JY 선배가 되었는데, 서울대 원자과 출신들은 나만 빼고 모두 2실로 발령받았다.
이러한 발령은 이상한 것이 많은데, 가장 괴상한 것은
S 박사가 1 실장이 되고, JY 선배가 2 실장이 된 것이다.
JY 선배는 이전 팀에서 우리 팀의 최고참이기는 하지만, 2실장이 되었는데, 우리 팀장은 여전히 1실의 실원으로 발령을 받았으니,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서 며칠 후에 다른 실로 옮겨 갔다.
그러자 우리 팀에 있었던 나보다 고참들도 모두 다른 실로 옮겨가기 시작했는데, 일주일 쯤 지나자 내가 실에서 제 2인자가 되었다. 참~^ 세상에 이런 일이~☆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서울대 원자과 출신은 모두 2실로 발령을 받고, 그 중에서 JY 선배가 최고참이어서 실장이 되었는데, 거기에서 나만 달랑 빠진 것이 왜(?)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JY 선배가 군대에 갔다와서 3학년 때에 복학을 하는 바람에 2년간 같이 공부를 하여, 그런대로 친한 사이인데~?
새로운 실로 발령을 받고, 보름쯤 지나서, S 실장이 나를 조용히 불러, 원자로에 장전할 조시시험시편을 설계하라고 한다.
나는 깜짝놀라서 나는 그럴 실력이 없다~^-^고 하자, 그럼 누구에게 시켜야 하느냐~?고 되 묻는다.
하기야 내가 실의 제 2인자이고, 우리 실의 주 업무가 조사시험시편을 설계하여 원자로에 장전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예전 실에서 조사시험팀에 2년쯤 근무하였지만, 모든 일은 팀장이 주도하고, 고참들이 뭔가를 하고, 나는 잔심부름만 하여, 당시 하던 조사시험시편의 목크업을 어떻게 설계하고, 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수박 겉핥기 식의 내용 밖에 아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실장실을 나왔지만, 그 후로 거의 보름간은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자는지, 비몽사몽이 되어, 어디를 놀러가지도 못하고, 누구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거리는데, 그러다 문득 한가지 반짝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그 생각을 설명하기 위하여 스케치 하나와 내용 몇줄을 적어서 실장실로 찾아 갔다.
실장은 내 설명을 듣고, 몇 분간 통박을 굴리다가, 그렇게 하라고 한다.
나는 실장실 나오며, 이 번에 제안한 개념 설계 정도의 조사시험시편이라면, 내가 주도해서 설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 자리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내가 실장에게 제안한 개념 설계의 내용은 중수로형 핵연료봉 3개의 양단을 삼각형으로 배치하고 그 양단을 중수로형 핵연료다발과 마찬가지로 봉단접합판에 용접하여 3봉핵연료 다발을 만든 후에 그 양단에 TRIGA-Mark-3 핵연료봉의 양단 고정체를 부착하는 그런 모양의 조사시험시편을 만드는 것이다.
~^♡^~
이러한 조사시험시편은 위에 몇줄로 모든 내용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단순한 설계이어서, 중수로형 핵연료봉과 다발이 어떻게 생기고, TRIGA-Mark-3 핵연료봉의 양단 고정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아는 사람은 듣는 즉시 이것이 뭔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실장이 나를 불러 다시 설명하라고 하더니, 그 다음 날도 같은 설명을 지시한다.
나는 세부적인 수치를 조사하여, 예비 설계도를 그려서 실장에게 가져다 주고, 이것의 설계자료를 생산하기 위한 컴퓨터 코드로 핵연료봉 성능계산 코드, 열수력 설계 코드, 핵설계 코드로 뭐가 필요하고, 안전성 분석은 적절한 방법론을 새로 개발하여야 하고, 시편 제조와 품질 검사는 어떤 것을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전반적인 마일스톤을 요약하여 보고를 해야 정상적으로 설계 업무가 진행이 되었을 터인데, 불행하게도, 그 당시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나도~ 실장도~ 알 지 못했다.으~ㅋ~^
내가 그 당시에 실의 제 2인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다음 단계에 해야 할 일을 찾아내는데, 일주일이 소요되고, 이것을 3일간에 걸쳐 실장에게 같은 설명을 3번하고, 승낙이 떨어지면, 필요한 코드를 찾아서 입수하는데, 약 한달, 그것을 익혀서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고, 팀원들에게 숙지시키는데, 두어달이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