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성경의 역사 ●
<존 로스 팀 중국에서 우리말 성경 번역과 반포활동>
<존 로스 목사>
1872.8.23. 로스,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중국 선교사로 상해에 도착함.
1874.10. 로스, 첫번째 고려문 여행에서 상인인 백홍준의 부친을 만나 한문 신약전서와 '正道戒命'을 전함.
1875. 로스, 매킨타이어와 만나 동역자로 일하게 됨.
1876.4. 로스, 두 번째 고려문 여행에서 이응찬을 만나 한글을 배우기 시작함.
1877. 로스와 이응찬, 한글 성경 번역을 시작함.
1878. 로스, 이응찬과 요한복음과 마가복음을 번역하고, 다시 서상륜을 만나 누가복음을 번역함.
<서상륜>
서상륜
1879.1∼3. 매킨타이어, 백홍준 등과 마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일부)를 번역함.
1879.4. 매킨타이어, 이응찬 등과 로마서에서 신약성경 끝까지 번역함. 백홍준, 이응찬 등 4명이 매킨타이어로부터 세례를 받고 한국인으로는 첫 세례교인이 됨.
1880. 백홍준, 기독교 서적 휴대로 투옥되었다가 석방됨.
1880.10. 로스, 스코틀랜드성서공회의 한글성경위원회에 참석하여 누가복음, 요한복음 출간비용 지원을 허락 받음.
1881.10. 로스, '심양 문광셔원'을 창설하고 최초의 한글 기독교문서인 '예수셩교문답'과 '예수셩교요령'을 출간함.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
(1882)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 (1882) 1882. 로스와 한국인 번역자들, 심양 문광서원에서 최초의 한글 성경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를 3월에 '예수셩교요안복음젼서'를 5월에 출간함.
1882.3. 김청송, 만주 서간도의 한인촌에 복음 전파함.
1882.4. 서상륜, 로스로부터 세례를 받음.
1882.9. 영국성서공회, 만주에서 로스와 이응찬 등에 의해 번역된 복음서 인쇄비용을 조달해 줌으로써 한국에 대한 성서사업을 시작함.
1882.10.6. 서상륜, 영국성서공회의 한국 최초의 권서로 한국으로 파송 받음.
1883.10. 로스, '예수셩교셩셔요안복음',
'예수셩교누가복음뎨쟈' 출간함.
예수셩교젼셔
1887
'예수셩교젼셔'
(1887) 1884.3. 로스, '예수셩교셩셔맛복음'과
'예수셩교셩셔말코복음' 출간함.
1884.11. 로스, 웹스터와 서간도 한인촌을 방문하여 12월 한국인 75명에게 세례를 베풂.
1885.10.11. 한국 최초의 성찬식이 거행됨.
로스, '예수셩교셩셔요안복음이비쇼셔신' 출간하고, '예수셩교셩셔맛복음' 개정본 발행함.
서상륜, 로스를 방문하여 한국에 70명 이상의 세례 청원자가 있고 서울 서쪽에 설교당이 개설되었음을 보고함.
1887.2. 로스와 한국인 번역자들, 최초의 한글 신약전서인 '예수셩교젼셔'를 심양에서 출간함.
1892.9. 로스, 심양에서 '예수셩교셩셔맛복음'을 발행함.
■ 설명■
한국 개신교회가 선교 원년으로 삼는 알렌이 입국한 1884년 이전에, 이미 중국과 일본에서 한글 성경번역이 시작되었다. 중국으로 파송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선교사 존 로스 목사와 존 매킨타이어 목사가 고려문을 넘다들며 장사를 하던 의주 청년들 이응찬, 서상륜, 백홍준 등을 만나 뜻을 같이하여 함께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당시에 복음에 배타적이요 쇄국의 상황에서 중국을 오가며 장사했던 서북지방 상인들이 개방적이었고 또한 만주어에도 능통했으며 새로운 문화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1877년 로수와 한국인들은 선교사들을 위한 한국어 교본(Corean Primer)를 출판함으로 한글 성경 번역을 시작했다. 또한 1881년에는 최초의 한글 기독교 문서인 '예수셩교문답'과 '예수셩교요령'을 출판하여 성경의 주요 교리를 한글로 번역했다. 성경을 번역함에 있어 그들은 중국어 성경을 참고하여 영어(영국의 RV), 원어(Alford의 그리스 성경) 성경을 참조하여 1882년에 최초의 신약 복음서인 '예수셩교누가복음젼서'를 출판했다. 이는 1884년과 1885년 알렌과 언더우가가 입국하기 전이었다. 로스와 한국인들은 그 후 계속해서 신약성경을 번역했고, 드디어 1887년에 신약 전체를 완간하여 '예수셩교젼셔'를 출판하였다. 로스의 성경번역 과정에서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김청송 드잉 번역 조력자로 참가했으며 이들은 또한 권서로서 성경을 반포하는데 헌신했다. 로스와 한국인들의 성경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한국교회를 시작하게 했다. 그래서 서간도 한인촌 교회, 의주교회, 소래교회, 새문안교회, 정동제일교회 등을 설립하게 되었다.
<이수정 일본에서 번역과 반포활동>
<이수정>
1883. 4. 이수정, 일본에서 미국 선교사 녹스로부터 세례를 받고 한국에 선교사를 파견해 줄 것을 요구함.
1883. 6. 나가사카,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일본지부의 촉탁으로 부산에서 한글 성경과 일본어 성경 등을 반포함. 이수정, 현토한한신약성경 번역함
1884. 4. 이수정, '新約聖書馬太傳', '新約聖書馬可傳', '新約聖書路可傳', '新約聖書約翰傳','新約聖書使徒行傳' 등 5권의 漢韓聖經을 일본에서 출간함.
1885. 2. 이수정, 일본에서 '신약마가젼복음셔언히'를 출간한 후 성경 번역사업을 중지하고 5월 귀국함.
신약마가젼복음셔언히(1885)
■ 설명■
1882년 우리 나라 수신사로서 일본에 간 박영효의 일행으로, Ross역에 동참한 문맹한국 인과는 달리 사회적 지위와 지적 인텔리이었다. 그는 1884년 한국사람이 우선 한문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토를 단 [현토한한 신약성경](중국 성경에 토를 단 성경)를 출간했고 1885년 [신약 마가젼 복음셔언히] 최초의 국한문 성경을 출간함.(언히 는 언문 (諺文) 즉 저속한 하층민의 글이라는 뜻) 이수정역에서 특기할 사항은 기존의 우리말 성경이 대부분 한자표기에 의존했던 것과는 달리 "고유명사 음역표기 원칙"을 그대로 적용한 최초의 우리말 성경이다.
예로서 [예슈쓰크리슈도스] [예루살넴] [밥테슈마] 등 음역의 표기방식이 일본어 성경 영향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례대신 밥테슈마로 번역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중국어 야소를 한국어 예수로 번역한 통념을 깨고 예수쓰으로 한 것은 특이한 것이 다. 이수정의 선교사 요청으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한 계기가 되었고 그들은 1885년 이수정이 번역한 마가복음을 들고 한국에 입국하였던 것이다.
<캐나나의 침례교 선교사 펜윅의 활동>
세례대신 침례를 가르쳐고 성경대로 선교를 실행해 보려고 노력(성직제도 등)
1889년 12월 내한하였고, 1898년 "성경번역 위원회" (외국선교사를 망라함)의 부회장이 됨."세례"표기를 강행하자 탈퇴하여 독자적인 번역에 착수
1899년 [요한복음전] [비립비인서(빌립보서)]를 출간배포
1917년 신약성경 [만민됴흔긔별](만민 좋은 소식)을 출판.(원산역이라 불림)
세례대신 침례 Holy Ghost를 성신, 성령으로 하지않고 "셩슘님" 주님의 존함을 "예쑤쓰 긔독" "태자님 께셔 하나님의 아들되시거든" (마태복음 4:1)
펜윅조차 원본주의 및 알렉산드리아 이념에서 벗어나지못함.
그러나 킹제임스 성경이 확실하였고 믿어지는 부분들은 임의로 첨가함.(마 6:13, 요 1:18, 행8:37, 딤전3:16, 계22:19, 은 KJV역, 막1:1. 룩23:42, 롬14:10 요1:7, 계22:14 등은 알렉산드리아 식임)
<공인번역 위원회(성서 공회의 원조)와 구역>
<언더우드>
<아펜젤러>
1885.4.5.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한국에 입국함.
1885.10.11. 한국 최초의 성찬식이 거행됨.
1887.1. 서경조·최명오·정공빈, 언더우드로부터 세례를 받음.
1887.2. 상임성서위원회가 조직됨.
1887.여름. 상임성서위원회(언더우드, 아펜젤러)의 번역으로 일본 요코하마에서 '마가의젼복음셔언'를 출간함.
1887.9.27. 새문안교회, 로스와 한국인 신자 14명이 참석한 가운데 언더우드에 의해 설립됨.
1890. 올린저, 제물포에 성경보급소를 개설하고 성경판매를 시작함. 아펜젤러, 로스역의 개정인 '누가복음젼'을 삼문출판소(후에 미이미교회인쇄소)에서 출간함. 아펜젤러·스크랜튼, 로스역의 개정인 '보라달로마인셔'를 출간함.
1891.2. 펜윅과 서경조, 로스역의 개정이며 국한문 병용성경인 '요한복음젼(約翰福音傳)'을 삼문출판소에서 인쇄·출간함.
1891.6. 로스역의 개정작업이 포기되고, 주한 선교사들에 의한 새 번역이 추진됨.
1892.1. 아펜젤러, 순수 국내역본으로 '마태복음젼'을 출간함. 게일, 순수 국내역본으로 '도젼'을 출간함.
1893.5. 상임성서위원회가 상임성서실행위원회로 개편·조직됨(1903년까지 존속함). 언더우드, 게일, 스크랜튼, 아펜젤러, 트롤로프 등 5명을 번역자로 하여 일반개정위원회를 조직함. 털리, 영국성서공회 한국지역 부총무의 자격으로 켄뮤어와 함께 한국을 방문함. 펜윅, '요한복음젼'을 번역·수정하여 순한글로 된 '약한의긔록로복음'을 출간함. 털리, 서울에 영국성서공회 성경보급소를 설치하고 중국인 류치화, 왕영상이 활동함. 로스, '예수셩교셩셔누가복음'과 '예수셩교셩셔뎨쟈' 인쇄를 마쳤으나, 누가복음 인쇄는 런던본부의 불허로 중단됨.
1893.9.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서부위원회는 한국에 지부를 설치하지 않기로 하고, 문리본 신약전서의 번역을 한국상임실행위원회에 제안하기로 함.
1893.10.11. 전임번역자회(언더우드, 게일, 스크랜튼, 아펜젤러, 트롤로프, 1895년 레널즈 추가)가 스크랜튼 집에서 열려 회장에 언더우드, 서기에 스크랜튼을 선출함.
1894.4. 영국·미국·스코틀랜드 성서공회가 연합하여 한글 성경 번역사업을 지원하기로 함.
1894.6. 아펜젤러, 최병헌을 책임자로 서울 종로에 서점 대동서시(大東書市)를 개설함.
1894.10. 영국성서공회에서 대동서시에 성경보급소를 다시 개설하고 최병헌을 책임자로 활동하게 함.
트롤로프 등, 성공회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전례용 발췌성경인 '조만민광(照萬民光)'을 출간함. 영국성서공회, 제물포와 원산에 존스와 맥길의 책임하에 영국성서공회 지점을 설치함. 펜윅, '요한복음젼'을 번역, 수정하여 순한글로 된 '약한의긔록로복음'을 출간함.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상임성서실행위원회가 결성되면서 다시 한국의 성서사업에 참여함.
1895.4. 켄뮤어, 만주·몽고·한국 담당 임시 총무로 한국의 성서사업을 위하여 입국함.
1895.5. 피터즈, 미국성서공회의 한국 최초의 권서 겸 부총무로 활동함.
1895.10.18. 켄뮤어, 만주·한국의 임시 총무로 한국지부 설치를 준비하기 위하여 입국함. 번역자회, '마태복음', '사도행전', '마가복음', '요한복음' 등을 출간함.
1895.가을. 미국 남장로회의 레널즈가 번역자회에 추가로 임명됨.
1896.5.20.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 설치가 본부로부터 공인됨.
1897.1. 켄뮤어, 북감리회의 구 시병원 건물을 성경보급소로 사용하기 시작함.
1897.4. 번역자회, 개인역 내지 임시역 단계에서 시험역본 준비에 들어가, 서신서로는 처음으로 '바울이갈나대인의게편지·야곱의공번된편지'를 합본 형태로 출간함.
1897.7. 피터즈, 시편 번역에 착수함. 구약 번역이 성서공회나 번역자회와 관련하여 처음 시작됨.
1898.5. 피터즈, 한글 최초의 구약 단행본인 '시편촬요'를 출간함
■ 설명■
번역대본은 그리스 성경(네슬 25판), RV(영국의 개역본), ASV(미국표준역본)을 사용하였다. 특히
'LORD'를 '여호와'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ASV의 영향으로 보인다. 간혹 요3:36, 행8:37등 몇몇 부분이
KJV역과 일치하는 것은 중국어 성경에 맞추어진 결과일뿐 대부분은 알렉산드리아 본문을 반영하였다.
<한글개역성경시대>
신약개역위원
구약개역위원
게일목사
신약전서
국한문(1906)
구약전서(1911)
1911.9. 성서위원회에서 기존의 '번역자회'를 '개역자회'로 개편함(위원:언더우드, 게일, 레널즈).
1917.12.4. 개역자회, 회장에 게일, 서기에 케이블, 위원에 레널즈와 스톡스로 조직을 정비함. 성서위원회에서 케이블, 스톡스를 개역위원으로 임명함.
1920.10. 성서위원회에서 엥겔, 어드맨을 개역위원으로 임명하고, 영국성서공회 총무로 하여금 직권상 개역자회 위원을 겸직하도록 정관을 수정함. 개역자회, 회장에 게일, 서기에 케이블, 위원에 레널즈, 엥겔, 어드맨으로 조직을 정비함.
1922. 최초의 영한 병용본인 '英韓對照路可福音'을 출간함.
1922.3. 성서위원회, 베어드, 하디를 개역위원으로 임명함.
1923.9. 많은 부수의 한글 성경을 인쇄해 온 요코하마의 요코하마복음인쇄소가 관동대진재로 전소됨. 이후 서울의 대동인쇄주식회사, 신문관, 조선기독교창문사, 중앙인쇄소, 동양인쇄소, 충현인쇄소 등에서 인쇄함.
클라크가 개역자회에 참여함.
1924. 1923년 관동대진재로 요코하마복음인쇄합자회사가 전소되자, 서울에서의 성경 인쇄가 활발해짐.
1925. 최병헌, 최초의 국한문 성경인 '創世記鮮漢文'을 출간함.
1925.12. 게일, 최초의 사역 성경전서인 '新譯新舊約全書'를 출간함.
1926.3. 성서위원회에서 피터즈, 남궁혁, 김인준, 김관식을 개역위원으로 임명함. 정태용·조용규, 최초의 국한문 성경전서인 '鮮漢文貫珠聖經全書'를 출간함.
1926.11.14. 로스, 윈, 컨닝햄이 개역자회에 참여함.
신약 개역자회가 조직됨(위원:스톡스, 로스, 윈, 컨닝햄).
1928. 베어드2세가 개역위원으로 임명됨.
1930. '관쥬셩경전셔'가 출간됨.
1930.2. 총독부에서 제3차 '언문철자법'을 발표함. 크레인, 개역위원에 임명됨.
1931. '簡易鮮漢文新約全書'가 홍순탁(洪淳倬)에 의해 출간됨. 장·감 연합공의회, 3개년 전진운동(성경 읽기, 복음전도, 기독교문서 출판과 독서증가운동)을 성서공회와 협조하여 추진함. 남궁혁, 저다인, 개역위원으로 임명되었으나 저다인은 개역에 참여하지 못함. <요한복음개역>이 개역으로는 최초로 출간됨
1933.10.29. 조선어학회, 한글 반포 487돌을 맞아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발표함.
1933.12.20. 조선어학회, 성경이 '신철자법에 의하여 출판되기를 바라는…' 공한을 발송함.
1934.3. 성서위원회, 남궁혁, 김관식, 채필근, 클라크, 밀러 등으로 개정철자위원회를 조직함.
1935.3. 성서위원회, 이원모를 개역위원으로 임명함.
1935.10. 영국성서공회 총무 템플, 한국지부 개설 40주년에 때맞춰 한국을 방문함.
1936. '셩경젼셔'의 구약 개역이 이루어져 '구약젼셔역'이 출간됨.
1937.봄. 신약 본문의 개역작업을 완료함.
1937.9. 변홍규, 한국성서위원회의 최초 한국인 회장으로 선출됨.
1937.10. '셩경젼셔'의 신약 개역이 이루어짐.
1938. 성서위원회, 조선성서공회로 변경함을 결정, 12월 6일 해외행정소위원회에서 명칭 변경을 허락함.
1938.10. '셩경젼셔'의 신약 개역인 '신약젼셔'가 발행되고, 신구약을 합쳐서 '성경개역'이 출간됨. 성경 반포사업을 위한 후원자 모집 계획을 채택함
■ 설명■
한글 개역성경은 1938년 소위 공인역이 수정 보완(주로 문법, 맞춤법, 표기법)을 거치면서 개역됨으로써 붙여진 이름이다. 1956년 판이 '한글맞춤법 통일안'에 따른 수정을 거쳐 최종 결정판으로 출간되어 오늘에 이른다. 개역성경은 사본상의 계보가 뚜렷하지 못한 '혼합역'이다. 즉 대본(Text) 보다는 저본(이미 나온 중국어, 일본어 성경)을 많이 사용하였다. 개역 성경은 사본상의 계보가 뚜렷하지 못한 '혼합역'이다. 미국은 성서공회측에서 구역이나 개역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던 이유는 알렉산드리아 본문을 제대로 반영시키지 않은 것 때문이었다.(이유는 일본어, 중국어 성경을 반영했음)
-문제의 성경귀절들
마17:21, 18:11, 23:14, 막9:44,46 11:26, 15:48, 룩17:36, 23:17, 행8:37, 요일:5:7, 약5:16, O.T에서는 창3:5, 단3:22, (요9:35, 요1:18, 히9:15-20, 벧전2:2, 출21:22 등 살후1:7,8, 계 22:19 등도 대조바람 이외에도 무수히 많음 마1:25, 6:7, 20:22, 24:36, 막1:2,3, 11:10, 행1:3, 19:37, 계21:24)
<한글개역 이후>
새 번역 신약전서(1960-1967. 12. 15)
대한성서공회는 세대교체에 따른 문화전 변화의 추세에 따라 새변역을 시도했다. 새로 태어난 해방 세대들로서는 1937년판 구성성서에 대한 이해가 쉽기 않았으므로 그들은 중학교 학력정도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성서를 새로 번역해야 한다는 중론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의 번역방침은 최신 비평판 헬라아 성서(네슬25판과 영국성서공회가 펴낸 그리스 신약성서'알렉산드리아 원본')를 기본으로 하고 현대어 번역을 대본으로 하여 진보적인 번역을 시작했다. 이들은 "직역은 참 번역이 아니다"라는 견해에 따라 그들은 직역이 아니라 의역을 함으로 '새번역'은 성서번역 사상 최초로 의역의 길잡이가 되었다. 결국 이 번역은 표현에서, 신학적인 민감한 반응을 일으켜 보수 교단들에 의해 거부되었다.
신구교의 합장, 공동번역성서
1965년 로마카톨릭의 '바티칸 제2공의회'에서 채택한 '에큐메니컬 지칭'에 따라 바티칸의 에큐메니칼 센타는 U.B.S(세계성서공회)에 '공동성경'(신구교 합동성경)을 만들도록 지시함.
1968. 2. 15 천주교와 개신교가 구약성서 공동번역 합의
1968. 4.1-4일 공동위원회 조직(회장 김정준)
1971년 신약은 '새변역을 기준으로 2년간 보충 작업으로 번역완료
1977년 부활절 신구역 합본 출간(개역한글 40년만에 나온 공인된 성경으로 카톨릭으로서는 최초의 성경이라 자평) - "공동번역"
공동번역 성서의 음모가 별반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당황한 대한성서공회는 1993. 2.10 표준새번역 성경전서를 출간 그러나 예장 합동측의 '성경공회'의 반대에 부딛침. 여기에도 만족하지 못한 성서공회는 1937년판 개역성서에 길들여진 신도들의 기호에 따라 1937년판 개역성서를 다시 개역해서 1998년 8월에 소위 '개역 개정판'을 출간했다. 개역개정은 단지 단어를 바꾸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예장 합동측의 '성경공회'에서 성서공회와는 별도로 번역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