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언어나 유행 처럼 항상 변해가는게 흐름입니다만 개선이 아닌 개악으로의 변화가 있는 경우 옛날 맛을 간절히 그리워 하게 되죠. 그 대표적인게 중국집입니다. 80년대를 기점으로 화교분들이 운영하던 업소들이 상당 수 문을 닫고 한국인 운영업소가 폭발적으로 늘며 하향평준화의 길을 걷고 말아 현재의 동네 배달 중국집들의 맛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전 맛을 모르는 신세대들이야 요즈음 것에 만족하며 살 수 있어도 그 전 세대들은 언제나 불만을 안고 지내올 수 밖에는 없는데...
한남대교 남단의 신사동 골목길 깊숙히에 작은 화교 중국집이 있고 그 곳의 음식이 옛날 그 맛 그대로이며 가격도 높지 않아 만족도가 하늘을 찌른다는 소문을 접하고 얼마 전에 식도락가분들 십여명과 함께 찾아가서 마구 먹어 본 이갸기입니다.
결론을 일단 내려 놓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옛맛의 보존은 물론 그 자체의 솜씨와 맛만으로도 칭찬을 마구 뒤집어 쓰고도 남을 수준이었다는....
커 보이지만 테이블이 몇 안되는 작은 곳입니다.
허름하지도 않고 솜씨가 있어서 주위 직장인들은 물론 멀리서도 많은 분들이 찾기에 식사시간에 자리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테이블이 많이 비었다고요? 이미 예약 완료로 빈 곳 없습니다.
이 사진은 식사 마치고 나올 때의 폐점시간 풍경이고..
첫 메뉴가 등장했습니다. 깐풍기.
자태 부터 심상치 않더니 입에 넣고 씹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매우 맛있어서;;;;;;;;
절묘한 튀김솜씨로 폭신한 바삭함이 대단하고 매콤한 양념도 과하거나 덜하지 않으며 기름에 쩔지도 않은 궁극의 깐풍기.
이제껏 최고의 깐풍기로 여겨왔던 회현동 야래향의 것을 단숨에 밟고 올라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섭니다.
소문이 진짜가 되는 순간이죠. 아니, 소문 보다 더 나은....
기분이 잔뜩 업되어 술 더 주문 들어갑니다.
역시나 저렴한 이과두주 한 병을 청했는데 리필방지용으로 주둥이를 자기로 밀봉해 봐서는 서빙 보는 분이 그걸 깨고 저에게 건내 줬습니다. 튀김실력은 앞서의 깐풍기에서 검증이 되었고 볶음실력도 있을 것 같아 주문해 본 부추잡채.
양이 적어서 순간 실망스러운 감정이 솟아 올랐으나 맛을 보고나서는 다시금 탄성이 흘러 나왔습니다. 볶음실력도 수준급!!!
보통은 돼지를 쓰는데 소고기가 들었고 구수한 불맛도 납니다. 양 적고 호부추가 굵지 않은 것만 빼면 나무랄데 없는 맛.
곁들여 나온 꽃빵에 얹어 먹어주면 한결 맛나죠.
개인적으로 제일 기대가 컸던 탕수육. 업소를 저에게 추천한 분의 말씀으로는 최고의 탕수육이라고 하셨는데
제가 맛 본 소감은..
최고 정도가 아닙니다. 최고 중의 최고! 최고를 넘어서는 최고!!
감히 현존 최고의 탕수육이라고 칭해 드립니다.
제가 어릴적에 먹던 감동의 옛맛 그대로를 충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명화원,야래향,목란 절정기 때의 맛 보다 더 낫습니다. 물론 제 개인 취향 기준입니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다른 평가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제 경우에는 이 집 것의 비슷한 수준도 현재는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최고]입니다.
옛날의 탕수육맛을 모르는 신세대들에게는 이 집 것이 어떻게 받아들여 질지 모르겠습니다만 80년대 초반 이전에 화교 중국집에서 잘 만든 탕수육을 먹어 본 경험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제가 말한 '옛맛의 충실성'에 대해 이해를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명화원 것이 지나친 쫄깃함, 야래향 것이 오버쿠킹, 목란 것이 과도한 단단함으로 각기 단점을 안고 있지만 여기의 것은 완벽한 옛맛 재현에다 절정의 튀김솜씨로 인해 절정의 맛을 선사해 주고 있는 것이죠.
2001년 겨울 회현동 야래향(테이블 네 개뿐이던 시절)을 처음 찾아가서 탕수육을 먹어보고 감동의 눈물이 솟구쳐 오를 때 이후 처음으로 코끝이 찡해왔습니다. '이게 바로 음식이 주는 감동이다'라고 느낄 수 있는 드문 순간이죠. 일본 음식만화에나 나올 법한 순간을 현실에서...
방배동 '주'의 빵 같은 튀김옷에 삶은 듯한 질감의 고깃덩어리가 든 탕수육을 이 집 것 보다 더 맛나게 여길 분도 계실 것이고 명화원의 찹쌀떡 같이 찐득한 탕수육을 더 맛나다 여길 분도 계실 것이지만 저는 이 집 것이 제일입니다.
Love at first bite 입니다.
옛날의 탕수육은 소스가 시질 않았기에 간장에다가 식초(실제로는 빙초산 희석액이었죠)를 섞어 찍어 먹어야만 맛이 완성되었습니다. 요즈음의 탕수육은 소스가 캐첩이나 식초를 잔뜩 넣어 만들어 그 자체만으로도 심하게 시큼하기에 간장+식초 장에 찍어 먹는 경우가 거의 없게 되었죠.
이 것은 옛맛이므로 찍어 먹고 싶었지만 다들 경쟁하듯 허겁지겁 먹고들 있어서 저 혼자만 느긋하게 장을 조제하고 있을 여유가 없어 그냥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