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정경화
성경은 어떻게 나왔을까? 이스라엘에는 ‘파피루스’라는 식물이 있다.
이 식물의 히브리어로는 ‘비불로스’라고 하는데 이는 “기록된 문서”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비불로스 식물을 펴서 말린 후 거기에 신약을 썼다.
이것이 "Bible" 의 유래가 되었다.
성경은 어느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BC 587년 구약시대 유대국가가 바벨론에게 망한다.
그후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그 다음에는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다.
BC 3세기 말경 프톨레미 2세가 알렉산드리아에 살고 있던 유대인 디아스포라들 중
72명의 랍비를 불러 성경을 번역하게 했다.
그 동안 두루마리로 돌아다니고 있는 히브리 성경을 당시 공용어였던 헬라말로
번역한 것이다. 이 최초의 번역성경을 70인경이라고 부른다.
이 때 모세오경, 역사서들, 시가서들, 예언서들을 모아 번역했다.
그러다가 AD 90년경 얌니아 랍비회의에서 오늘날의 구약 39권의 목록으로
성경의 분류
이스라엘의 성경은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과는 조금 다르다.
먼저 그들의 성경은 율법서인 ‘토라’와 예언서인 ‘느비임’,
그리고 성문서인 ‘케투빔’으로 나뉘어 있다.
*토라(율법서)- 창, 출, 레, 민, 신
*느비임(예언서)- 전기예언서(수, 삿, 삼, 왕,), 후기예언서(사, 예, 12소예언서)
*케투빔(성문서)- 시, 잠, 욥, 룻, 애, 전, 렘, 단, 스, 느, 대
그렇다면 왜 우리와 다를까?
그들에게 있어서 '토라' 즉 율법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 율법서가 흔히 우리말로 '모세오경'이라 한다.
왜 율법서를 중요하게 생각할까?
먼저 예언서로 불리는 느비임의 시작인 여호수아 1:8에 있는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라고
기록되어져있다. 여기에서 율법은 토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가 죽고 나서 다음 후계자가 여호수아로 선택받게 된다.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가 죽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느비임이 시작된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중요한 시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율법(토라)를 주야로
묵상하라고 한다.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며, 가장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성문서인 케투빔도 보자, 케투빔의 시작인 시편의 (시 1:1-2)에 있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성문서의 시작인 시편에서의
첫마디가 율법(토라)를 주야로 묵상하라고 나온다.
유대인들은 이처럼 토라(율법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새로운 시대가 열릴 때마다 율법서를 읽으며, 그 율법서를 읽으면 형통하게
되어진다는 것을 알고 율법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빠르게 변해가고
오늘의 것이 내일의 구식이 되어지는 요즘 언제나 새로워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율법서(성경)를 읽고 지켜나가야 한다.
성경은 크게 역사서 17권, 시가서 5권, 예언서 17권으로 나뉜다.
역사서---창세기, 출애굽기(레위기), 민수기(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룻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 에스라(에스더), 느헤미야
시가서---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예언서---오바댜, 요엘, 요나,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나훔, 스바냐, 예레미야,
예레미야 애가, 하박국 / ★다니엘 ★에스겔★학개★스가랴★말라기
※ 역사서에서 ( )에 있는 성경은 역사 속에 있는 한 사건이며 역사의 흐름이 없이
그 시대에 한편의 드라마와 같은 사건이다. 레위기는 법전이다.
※ 예언서 중 12명의 선지자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며
★선지자는 포로시대 때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구약성경 정리
창세기(모세오경)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 세계는 자연적으로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물인 것이다.
성경은 ‘창조론’과 ‘진화론’ 중에 어느 학설을 믿느냐에 따라
성경이 읽어지고 읽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성경의 가장 먼저 쓰여진 말씀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때문에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창조론을 믿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구절을 통해 세상의 많은 이론들을 반박할 수 있다.
1) 무신론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2) 범신론(모든 것은 신이고, 신은 모든 것이다)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분이 창조하신 것들을 초월하기시 때문이다.
3) 다신론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한 분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4) 물질주의를 반박한다. 왜냐하면 물질은 시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5) 이원론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그분이 창조하실 때 하나님이 홀로 계셨기 때문이다.
6) 인본주의를 반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며, 궁극적인 실체이시기 때문이다.
7) 진화론을 반박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역사를
기록으로 남겼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계시를 받은 사람이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쓰신
것이다. 인류가 창조된 이후 어떻게 그 역사가 흘러 갔는지 계시해 주신 것이다.
창세기는 인류 역사의 출발을 생각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가 출발한다. 이 세상 우주만물, 인간, 가정, 죄, 예배, 산업 등의 기원을
말해주고 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류의 역사에 죄가 흐르게 된다.
홍수 심판 이후 노아의 후손 함, 셈, 야벳으로 새 인류가 번성한다.
그들은 온 세계에 흩어져 각 민족과 나라를 이루게 되는데
이 부분이 인류 일반 역사이다.(창세기 1~11장까지)
창세기 12장부터 아브라함의 역사가 시작된다.
이때부터가 이스라엘의 국사가 시작된다.
이 때부터 하나님이 건설하시는 성경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 초점을 맞추신다.
이 때부터의 역사를 구원 역사라고 부른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생애를 다룬 50장까지 족장시대라고 부른다.
야곱의 70여 식구가 이집트로 들어가면서 창세기는 끝이 난다.
이들은 400여 년 동안 이집트에서 살게 된다.
그 이후 성경은 침묵한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것인데 이 때는
선지자를 통해서도 말씀을 안하신다. 큰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나라로 세우시기 위해서 백성의 수를 번성하게 하신다.
출애굽기(모세오경)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첫 발걸음을 딛는
중요한 사건이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은 자신의 왕국을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하신다. 구약을 통틀어 한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나라 만들기’ 이다.
나라가 만들어 지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이 있어야 하며, 법이 있어야 하며,
영토가 있어야 한다. 이제 하나님께서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 가시는
놀라운 역사 이야기가 성경의 이야기 이다.
요셉도 죽고 요셉에게 선처를 베푼 바로왕도 죽고 계속 정권이 바뀌면서
400여 년이 흐른다. 그동안 히브리민족은 애굽의 노예로 전락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세우시고 열가지 재앙, 유월절 사건, 홍해 사건 등
기적을 베푸시면서 히브리민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신다.
나라를 세우실 때가 된 것이다.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가나안 땅을 향해 전진시키신다.
가나안 땅은 함의 아들 가나안이 조상이 되어 살았던 땅 이름인데
노아에게 저주를 받았던 가나안이 살면서 온갖 죄를 짓고 살고 있었는데
그 죄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들로 성경에 말씀하고 계시는
온갖 죄의 근원이 되었다.
2개월 동안 이동해서 시내산에 오게 되는데 여기서 11여 개월을 머물게 된다.
여기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십계명과 율법과 성막에 대한 말씀을 받는다.
성막 건축 헌물을 드려서 성막을 완성하고 봉헌하는 장면으로 출애굽기의
막이 내린다. 그 성막 위에 하나님의 구름기둥이 머문다.
레위기(모세오경)
레위기의 핵심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이다.
‘거룩’하단 말이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거룩은 ‘구별’된 것을 말한다.
무엇으로부터 구별되어지길 원하실까? 바로 ‘죄’로부터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은 죄로부터 구별되어지길 원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무엇으로부터 구별되어져야 하는지 몰랐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레위기를 통해 구별되어지는 방법을 알려주고 계신다.
➀ 먼저 모든 죄로부터 구별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5가지 제사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통해 자신의 백성들이 죄로부터 구별되어지길 원하셨다.
하나님과 반대되는 속성이 죄이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고, 경멸하신다.
때문에 하나님은 먼저 모든 죄로부터 구별되어지길 원하셨다.
➁ 먹는것도 구별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이 땅에 모든 동물들을 창조하시고
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어 구별하여 먹게 하셨을까?
그 이유는 그때 당시 근동지방의 제사법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기로 하신 땅, 가나안 땅에는 여러 신들을 숭배하고,
그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는 가나안민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이지만, 하나님에게는 가나안민족들이 이방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에게 제물을
바칠 때, 따로 구별하여 바치거나, 특별한 제물이 없었다. 아무거나 제물로 삼아 자신들의
신에게 바쳤다. 그들의 유적에서 주로 돼지의 뼈나, 조개껍질 등이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 이방인들과 구별되길 원하셨기 때문에,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나누어
제사를 지내게 하셨으며, 먹게하셨다.
➂ 공간을 구별하길 원하셨다. (레 13-14장)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몸을
시작으로 의복, 사는 공간(집) 등도 구별하길 원하셨다. 몸에 생기는 나병이나 피부병들,
옷에 생기는 곰팡이, 집에 생기는 곰팡이 등을 정결하게 하라고 명령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가짐과 옷, 거주지들이 항상 정결하고 깨끗해야한다.
왜냐하면 가나안민족들은 정결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➃ 성적인 모든 범죄로부터 구별되어져야 한다. (레 18장) 레위기 18장에 보면 자신의 가족들과
친척들 심지어 동물들과 관계를 맺지 말라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하고, 음란하게 다루면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아름답게 창조하셨다.
순수하고 깨끗하게 창조하셨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한 가나안 땅의 주민들은
하나님께서 하지말라 명령하신 성적인 죄악들을 모두 짖고 있었다. 때문에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은 그들과 구별되길 원하셨기 때문에 성적인 정결을 명령하신 것이다.
➄ 삶이 구별되어져야 한다. (레 19장)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몸과 자신들이 사는 공간의
구별을 넘어 삶까지도 구별되길 원하셨다. 자신의 백성들이 가난한 자들을 돕거나,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것, 거짓말 하지 않는 것, 불의를 행치 않는 등 그 삶을 통해서 다른 민족들이 보고,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르다는 것을 알리고 싶으셨다.
그래서 삶을 통해서 구별되어지는 것을 원하셨다.
➅ 시간도 구별되어져야 한다. (레 23장) 레위기 23장에 가면 하나님께서 여러 절기들을 만드셨다.
유월절과 무교절, 속죄일, 초막절 등등 여러 절기들을 만드셨다. 왜 이러한 절기들을 만드셨을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간을 값지게 보내길 원하셨으며, 그러한 절기들을 지킴으로서
하나님을 기억하길 원하셨다. 이 절기들을 보면 7일, 1년, 7년 50년으로 지켜지게 된다.
7일째 절기를 지킴으로써 6일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으며 또 보내게 된다.
1년의 절기를 지키면서 그 1년을 무사히 지키게 된다. 그렇게 7년의 절기를 지키고,
50년 절기를 지킴으로써 벌써 50년의 새월을 무사히 보낼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절기들을 통해 시간에 대한 구별을 원하셨고,
하나님 자신을 기억하고 기념하길 원하셨다.
레위기를 읽는 많은 사람들은 레위기가 어려운 성경이라 말하고,
너무 딱딱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법에 관한 내용이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렇게 하지 말라 저렇게 하지 말라, 어려운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 성막을 만들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왜 레위기를
주셨을까?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은 레위기를 주셨다. 그것도 ‘하지 말라’ 라는 명령이
더 많은 레위기를 주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하지말라고 명령하신 그 모든 것들이 가나안에서
성행하고 있는 죄악들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만의 문화가 없고, 법이 없고,
구별된 것이 없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가나안 문화에 물들이게 되고 젖어들어 흡수되게
된다. 다시 가나안 땅은 매우 문명이 발달된 땅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다 할 내세울만한
문화도 없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다면, 100%로 그들 문화에 동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레위기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별시켜 놓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잔인하다
할 정도로 가나안에 있는 사람들과 어린아이들 짐승까지도 모조리 죽이라고 명령하신다.
그들의 문화를 모조리 부셔버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구별되어져야 한다. 비록 세상이 커보이고 대단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그 세상의 문화를 흡수하고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구별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야곱의 12명의 아들 중 네번째 아들이 레위이다. 레위지파 사람들은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다. 성막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사람들 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서이다.
하나님께서의 히브리 민족과의 관계 방법, 제사법, 생활법, 절기 등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목사님. 전도사님. 성가대원들. 사찰.
민수기(모세오경)
민수기는 시내선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을 말하고 있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일까?
바로 ‘전쟁’을 하기 위해서 가는 여정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부터 레위기까지,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통해 백성들을 만드시고,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율법을 만드셨다. 그렇다면, 나라가 세워지기 위한 세 가지 요소 중, 백성과 법은 만들어 졌다.
그럼 이제 땅을 차지하기 위해 하나님은 전쟁을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군대가 있어야 한다. 민수기는 이러한 전쟁을 위해 군인을 모으고,
그 수를 세는 작업을 한다. 그런데 민수기의 특징이 있다. 민수기의 1장부터 26장까지
출애굽을 했던 1세대들이 모두 죽게 된다. 26장부터 2세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는 전∙후로 나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불만을 외칠 때,
언약 전에는 벌하지 않으시고 달래시고 이끌어 가시지만,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후로는
불평불만 때마다 바로바로 벌을 내리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은,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겠다는 일종의 계약서를 쓴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시내산을 중심으로
자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평을 외칠 때마다 즉각 반응을 하시는 것이다.
민수기의 후반으로 갈수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죄악은 점점 더 악화되어가고 있었다.
(민 25:1-3)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이 구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죄악의 마지막까지 왔는지 알 수 있다.
바알을 믿는 이방제사는 성창이 있었다. 성창은 바알신의 여제사장들이었는데,
바알에게 제사를 지내고 남자가 여제사장들과 성교를 마지막으로 제사를 끝내는 제사법이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맹세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바알에게 제사를 지내며, 더 나아가 그들의 여제사장과 모압 여인들과 음행하는 죄를 지었으니,
하나님께서 1세대들을 염병으로 죽여버리신다.
가나안 땅까지 가는 동안 전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병력을 정비하기 위해
인구 센서스를 하게 된다. 출애굽 후 13개월째 부터 40여 년 동안 광야생활을
기록한 내용이다. 중요한 장소는 시내산, 가데스바네아, 모압평지이다.
모압평지는 모세가 요단강은 못 건넜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요단강 동편의
길르앗 땅을 정복해서 얻은 땅이다.
가데스바네아에서 39년여 동안 광야생활을 하게 되는데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10명의 정탐꾼을 보냈는데 거인같은 아낙자손을 보고 10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메뚜기 같은 존재라고 하면서 절대 반대를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들은
'우리의 밥' 이라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광야생활은 하나님께서 메뚜기 같은 존재라고 한 말에 대해서 심판을 하신 것이다.
신명기(모세오경)
신명기의 내용은 모세의 고별설교(유언)이다. 신명기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과거를 걱정하는 장면이다 (신 1-11장), 둘째, 현재를 당부하는 장면 (신 12-26장),
셋째, 미래는 하나님께 순종하라 (신 28-34장)
모세는 신명기에서 죽기전 마지막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모세가 2세대들이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힘을주기 위해,
옛날 정탐꾼의 일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기적이 그 때와 같이 일어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2세대들이 드디어 하나님의 명령으로 정복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신 계명이라는 뜻. 모세가 죽기 전 모압평지에서 한
고별설교.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20세 이상은
다 죽게 된다. 광야에서 태어난 2세대들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내용을
회고하면서 교육시킨 말씀이다.
여호수아
여호수아는 성경에서 나와 있지 않지만 걱정과 근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또한 모세의 후계자로서 그 부담감은 더욱 컸을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고 담대히 하라고 3번이나 강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함께하신다고 하셨던 약속처럼 여호수아에게도 똑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다.
모세 때와 같이 네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신다. 모세처럼 여호수아도 하나님께서 직접 만나주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모세 때는 '떨기나무'로 여호수아 때는 '군대 장관' 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신 것처럼 여호수아를 통해 요단간을 갈라지게 하셨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믿음으로 지팡이를 들었고,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언약궤를 멘 자들이 먼저 들어갔을 때 기적을 보여주셨다.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진보하여 먼저 행동으로 믿고 따라가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즉 믿고 행동으로 먼저 행했을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의 결과를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레위기를 통해 가나안민족들의 죄악을 모세에게 알려주셨고,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 같은 가나안민족들을 어린아이와 짐승들까지 죽이라고 명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에게도 모세와 같은 기적과 능력들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통해 모세라는 인물의 능력이 아니라 어떠한 인물이든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많은 이적들과 능력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제도 계셨고, 오늘도 계시고, 내일도 계실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따른다면
모세에게 행하셨던 그 능력들을 우리 현재의 삶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능력과 권능으로 이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모세를 이은 후계자의 이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정복해서
분배하는 과정을 기록.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내용이 현실화 된다.
여리고성을 점령할 때도 미리 정탐꾼을 보내는 것이 모세 때와 같다.
그리고 이방 여자 창기인 라합이 구출 받는다. 살몬족장의 아내가 된다.
아이성을 점령하기 전 아간의 죄를 적발하게 된다.
마지막 부분에서 여호수아도 고별설교를 한다.
사사기
모세가 죽은 뒤에는 여호수아라는 지도자가 그 대를 이었다.
하지만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는 그의 뒤를 이를 지도자가 나오지 않았다.
지도자의 대가 끊긴 것이다. 이 말씀에서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민족과
싸울것임을 하나님께 여쭙고 ‘유다’가 먼저 나가 싸울 것을 명령받는다.
이방인과 싸우기 위해 하나님께 여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과
싸우기 위해 하나님께 여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방인이 아닌 동족과의 싸움이 일어나는 모습인 것이다.
창세기의 가인처럼 형제를 보호하지 않고 죽이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여호수아 이후 12지파 별로 분배 받은 땅에 정착해 가는 과정을 기록.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겨 주변 나라들에 의해 핍박을 받는다.
오랫동안 살아오던 땅을 빼앗긴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그때마다 사사들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곤 한다.
아직 왕이 세워지기 전의 혼탁한 사회상을 기록했다.
룻기(다윗 등장-→예수님 탄생)
사사시대에 살았던 한 가정-이스라엘-의 몰락과 구원의 이야기를 다룸.
나오미 가정은 가뭄의 굶주림을 피해 이방 나라 모압으로 이민을 가는데
그 곳에서 얻은 이방 며느리 룻은 나중에 다윗 왕의 증조 할머니가 된다.
그래서 예수님의 족보에 룻의 이름이 등장한다.
여기서부터 성경은 다윗을 향해 방향을 조정 한다.
사사시대와 왕정시대를 잇는 고리역할을 하는 것이 룻기이다.
사무엘상·하
사사시대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의 사역을 기록.
책 이름은 사무엘이지만 내용은 다윗왕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초대 왕 사울의 정치와 제2대 왕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다윗의 목동 시절부터 왕궁을 출입하게 된 경위, 골리앗과의 싸움,
사울을 피해 다니는 정치적 유랑생활, 유다 지파로 왕위에 오르기까지 기록.
사울 왕의 아들인 요나단과의 우정도 감동적이다.
사울 왕에 이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요나단이 다윗이 왕위에 오르도록
전적으로 도운 눈물겨운 우정에 갈채를 보낸다.
열왕기상·하
다윗 이후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 사기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울, 다윗, 솔로몬까지 통일국가인데 솔로몬 왕 이후부터 우리나라처럼
남과 북으로 분열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남쪽지역에 '유다왕국'을 이루고,
나머지 10개 지파인 르우벤, 므낫세, 에브라임, 시므온, 스불론, 잇사갈,
아셀, 납달리, 단, 레위 지파가 여로보암 왕을 중심으로 해서 북이스라엘을
세운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북방 이스라엘로 나중에는 이방인과 섞여 사마리아인으로
성경에 등장하게 되며 유대인으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남방유다 왕국은 다윗 왕조로만 이어간다.
역대상·하
열왕기하 끝에서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하고,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한다.
포로 지역에서 오랜 후에 태어난 에스라가 귀환 포로 백성들을 영적으로 지도하는
역할을 하는데 돌아온 백성들의 명단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족보를 정리하는데
에스라부터 시작해서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노아까지, 노아에서 아담까지,
아담에서 하나님까지 정리한 족보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현재까지
족보식으로 정리했다.
여기에 나오는 족보 명단은 실질적으로 장자가 아니라 믿음의 장자 계열이다.
이때부터 남방유다 위주로 역사를 기록했으며 오직 남방유다 민족만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민족인 선민이라고 주장한다.
북방 이스라엘은 이방인 취급을 하면서 역사 기록에서 제외시켰다.
에스라
에스더 사건 이후 20여 년이 흐른 후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귀향한다.
에스라서에 성전 재건이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막상 에스라가 귀향하는 것은
성전재건 후 60여 년이 지나서이다. 에스라가 귀향해 보니 예루살렘 성전은
재건 되어 있었다.
에스라는 귀환포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쳐서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도록 격려한다. 특히 이방 백성들과 섞여 혼합민족이 되어가는
상황을 보고 개혁을 단행하는데 이혼시켜 그 나라로 추방시킨다.
역대상하, 에스라서, 느헤미야서, 에스더서를 기록한다.
율법에 있어서는 모세 같은 존재이다.
느헤미야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지 13년 후에 예루살렘에 도착한다.
이 때는 성전이 완성되어 있었고 에스라가 활동하고 있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개축하는 사명을 갖고 귀향한다.
스룹바벨과 예수아는 성전재건의 꿈을 갖고 귀향했었고
학개와 스가랴는 재건이 잠시 사마리아인의 방해로 중단되자
격려하고 힘을 주기 위해 귀향했고, 에스라는 영적 생활을 지도하기 위해
귀향했다면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려고 귀향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바사의 총독 직함을 가지고 공인으로 이 역사를 감당한다.
히브리 성경에는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한권으로 되어 있다.
에스더가 느헤미야 보다 앞선 시대 사람인데 느헤미야 뒤에 배정됐다.
에스더
학개와 스가랴의 도움으로 성전재건을 완성한 이후 40여 년 후에 바사에서
에스더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이 다스릴 때 유다 사람
에스더가 왕비로 발탁되면서 하만의 모함으로부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민족을 구원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 사건을 기념한 명절을 유대인들은 부림절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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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족장시대 실존했던 인물로 한 신앙인의 고난을 다뤘다.
믿는 자의 고난이 주제이다. 인생을 말하는 성경이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티끌 같은) 아닌 존재이다.
"자랑하지 말아라"는 교훈이 담긴 내용이다.
욥은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로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그렇지만 그 물질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착하고 의로워서 베풀었다고 자고해서(욥 29장,30장,31장)
사탄이 하나님께 참소했다.(욥기 1:9~11)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셨다.(욥기 1:12)
부자였던 욥의 자녀들이 모여서 잔치라도 벌린 날은 욥이 하나님께
번제를 지냈다. 잠깐 동안이라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를 지었을까
염려했다. 그 정도로 죄를 멀리 하려고 했지만 자기 힘으로 하려고 했다.
(욥 29:20) "내 영광은 내게 새로워지고 내 손에서 내 화살이 끊이지 않았노라"
욥은 자기의 의로움으로 구제도 최고였고 도덕적인 깨끗함도 승하였는데
단지 영광을 자기에게 돌렸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지도
모르고 자기자랑만 늘어 놓다고 결국은 하나님께 책망을 듣는다.
(욥 29:7) "그 때에는 내가 나가서 성문에 이르기도 하며
내 자리를 거리에 마련하기도 하였느니라"
(욥 29:8) "나를 보고 젊은이들은 숨으며 노인들은 일어나서 서며"
(욥 29:9) "유지들은 말을 삼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욥 29:10) "지도자들은 말소리를 낮추었으니 그들의 혀가 입천장에 붙었느니라"
(욥 29:11) "귀가 들은즉 나를 축복하고 눈이 본즉 나를 증언하였나니"
(욥 29:12) "이는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욥 29:13)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하였느니라"
(욥 29:14) "내가 의를 옷으로 삼아 입었으며 나의 정의는 겉옷과
모자 같았느니라"
(욥 29:15) "나는 맹인의 눈도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의 발도 되고"
(욥 29:16) "빈궁한 자의 아버지도 되며 내가 모르는 사람의
송사를 돌보아 주었으며"
(욥 29:17) "불의한 자의 턱뼈를 부수고 노획한 물건을
그 잇새에서 빼내었느니라"
(욥 29:18)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숨을 거두며 나의 날은 모래알 같이 많으리라 하였느니라"
(욥 29:19) "내 뿌리는 물로 뻗어나가고 이슬이 내 가지에서
밤을 지내고 갈 것이며"
(욥 29:20) "내 영광은 내게 새로워지고 내 손에서 내 화살이 끊이지 않았노라"
(욥 29:21) "무리는 내 말을 듣고 희망을 걸었으며 내가 가르칠 때에 잠잠하였노라"
(욥 29:22) "내가 말한 후에는 그들이 말을 거듭하지 못하였나니
나의 말이 그들에게 스며들었음이라"
(욥 29:23) "그들은 비를 기다리듯 나를 기다렸으며 봄비를 맞이하듯
입을 벌렸느니라"
(욥 29:24) "그들이 의지 없을 때에 내가 미소하면 그들이 나의 얼굴 빛을
무색하게 아니하였느니라"
(욥 29:25) "내가 그들의 길을 택하여 주고 으뜸되는 자리에 앉았나니
왕이 군대 중에 있는 것과도 같았고 애곡하는 자를 위로하는 사람과도
같았느니라"
(욥 31:5) "만일 내가 허위와 함께 동행하고 내 발이 속임수에 빨랐다면"
(욥 31:7)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욥 31:9)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욥 31:13)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욥 31:16)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욥 31:17) "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욥 31:18)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욥 31:19) 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본 체 했다면"
(욥 31:20) "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
(욥 31:21) "만일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욥 31:29)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가 재난을
당함으로 즐거워하였던가"
(욥 31:31) "내 장막 사람들은 주인의 고기에 배부르지 않은 자가
어디 있느뇨 하지 아니하였는가"
(욥 31:32) "실상은 나그네가 거리에서 자지 아니하도록 나는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노라"
(욥 31:33) "내가 언제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긴 일이 있거나
나의 죄악을 나의 품에 감추었으며"
(욥 31:34) "내가 언제 큰 무리와 여러 종족의 수모가 두려워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잠잠하였던가"
(욥 31:39) "만일 내가 값을 내지 않고 그 소출을 먹고 그 소유주가
생명을 잃게 하였다면"
욥은 인간입장에서는 철두철미하게 도덕적으로 바른생활을 하면서
지냈지만 사랑과 긍휼로 한 것이 아니라 도덕심에서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한 것이었다.
친구들과의 논쟁 속에서 결국은 하나님을 제대로 찾고 선행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과 성품으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셔서 창조부터 말씀하시면서 네가 가진
물질이나 복들이 네 것이냐고 물으신다.
욥기 38장, 39장, 40장, 41장
(욥기 41:11)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아멘.
여기에서 욥은 자신은 하나님 앞에 자기 자랑 다 거두어 들이고
아무 것도 아님을 고백하면서 모든 것이 회복된다.
그러면서 전보다 갑절의 복을 받는다.
(욥 40:4)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욥 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욥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 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 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아멘.
시편
150편의 시를 다윗의 지도하에 모은 책이다. 다윗의 시라고도 일컫는다.
시인들이 하나님을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으로 표현했다.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왕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라고 표현했다.
잠언
솔로몬의 잠언이라고도 일컫는다. 어리석은 자를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해서, 지혜있는 자를 지혜롭게 하기 위해서 기록한
책이다. 한마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교훈이다.
아가
솔로몬이 지은 아름다운 노래라는 연가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사이의 청순한
사랑을 그린 노래이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를 비유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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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남 유다 아하스, 히스기야왕때)
신약의 선지자라고 보일 만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아주 중요한
예언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다. 동정녀 아들, 평강의 왕, 그의 백성의 위로,
구속자, 창조주와 왕, 이스라엘의거룩한 자, 연한 순, 고난받는 종 등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명확히 예언한 칭호이다.
특히 이사야 53장의 십자가 고난에 대한 예언은 클라이막스다.
예레미야(남 유다 멸망기- 요시야, 여호야하스, 여호야긴, 시드기야왕 때)
BC 627~587년 경 활동했다고 본다. 남방유다가 망할 때쯤 활동했는데
이 때는 앗수르라는 큰 나라가 망하는 시기와 같다. 앗수르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큰 나라였는데 남 유다가 망하는 시기에 신흥 바벨론이라는
거대 국가에 의해 멸망당한다. 이 신흥 바벨론은 성경에서 통상적으로
바벨론, 갈대아라고 지칭된다.
예레미야 애가
유다는 바벨론의 침공으로 완전히 망하게 되는데 초토화된 유다를 보면서
슬픔을 노래한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이 그 언약을 파기했으나
결국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언약에 실패한 백성이지만 새언약을 통해 회복하실 하나님을
의뢰하자고 강조하고 있으며 그 이후 예레미야는 애굽으로 강제 이주 당한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깊이 슬퍼하고 계시는 성경 말씀이다.
에스겔(왕국/포로시대- 남 유다의 여호야긴, 시드기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에스겔은 BC 597년경 그의 나이 25세 될 때 바벨론에 2차 포로로 잡혀간다.
다니엘은 1차 포로로 잡혀간다. 에스겔은 많은 환상과 이상을 본다.
유다를 비롯한 주변 국가들에 대한 예언과 함께 특히 40~48장에 있는
새예루살렘 성전의 묘사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시하고 있다.
새로 제시되는 청사진은 마치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베푸셨던
성막 설계도를 연상케 한다. 하나님 나라는 새로운 차원으로 회복 될
것이라는 것이다. 성전이 회복된다는 예언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는 뜻이다.
다니엘(왕국/포로시대- 남 유다 시드기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바사 고레스왕)
에스겔보다 먼저 BC 605년 바벨론에 잡혀간다. 이것이 1차 포로잡힘이다.
다니엘은 상류층 귀족으로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사람이었다.
애굽과 신흥 바벨론이 패권 다툼을 할 때 두 번의 큰 전쟁을 했는데
두 번째 전쟁인 갈그미스 전투 때였다.
다니엘은 포로였지만 정복 국가에서 영웅으로 살아갔으며 동시에
하나님을 이방 땅에 선포했다. 그의 깊은 기도생활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비밀을 낳았고 환상도 본다. 바벨론시대를 살고 있던 다니엘은 베발론
이후 바사, 헬라, 로마시대까지 이어질 제국의 역사를 환상가운데
미리 본다. 요한계시록과 같은 맥락이다.
호세아(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호세아 때는 타락이 극에 달했다. 하나님과 언약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호세아와 그의 아내 고멜과의 결혼생활에 은유하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신랑되신 하나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메시지이다.
결국 호세아서 예언이 시작된지 40년 후에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한다.
요엘(남 유다 여호사밧왕)
선지자 오바댜와 같은 시기인 BC 9세기 중반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요엘서는 여호와의 날, 심판의 날 등 신학적인 사상이 들어있으며 베드로는
특히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배경 예언으로 이 요엘서를 인용했다.
아모스(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호세아, 요나와 같은 시대 때 활동했다.
아모스는 남방 유다왕국 사람인데도 북 이스라엘에 대한 메시지를 하나님께
받는다. 그래서 북 왕국에서 활동한다. 가장 부요했던 황금시대를 지나면서
그것이 원인이 되어 불법과 탐욕의 시대를 만들었던 이 사회를 향해
정의를 외친다.
오바댜(남 유다 여호사밧왕)
모든 선지자 중 가장 앞선 시대에 활동했던 것으로 본다.
에돔(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이라는 한 나라에 대한 예언이며
1장으로 되어 있다. 성경 중 가장 짧은 성경이다.
요나(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
호세아, 아모스와 같이 활동한다. 요나는 티그리스강 상류에 위치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을 받는다.
그러나 요나는 반대로 다시스로 도망간다.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한 후
니느웨 사역을 감당한다. 요나서는 구약에 나타난 해외선교라고 본다.
미가(남 유다 아하스, 히스기야왕)
이사야 선지자의 활동 시기에 같이 사역한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왕국에서 활동했다. 예루사람(유다)의 왕, 지도자, 권력 계층,
부자들의 타락으로 백성들의 고난이 심했던 사회를 향해 회개를 촉구한다.
나훔(남 유다 요시야왕)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유다의 쇠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앗수르도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우주적인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공의 등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보이고 있다.
하박국(남 유다 여호야김왕)
레위 지파 출신의 선지자이다. 예레미야 시대에 활동했다.
신흥 바벨론의 급부상으로 그 큰 나라에 아첨하느라고 부패한
지도자들, 불의한 자들이 득세하는 것을 보고 고민한다.
왜 악한 자들이 잘되고 의인들은 고난을 받는가 하는
신정론의 문제를 다룬 예언서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성경의 사상을 깨닫는다.
스바냐(남 유다 요시야, 여호야김왕)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에 동역한다.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때에 활동한다.
남방유다의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이전까지 활동한다. 그는 히스기야 왕
가문과 혈연관계에 있었던 저명인사였다. 왕족답게 당시의 정치적
현안들을 예리하게 다룬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 열방에 대한
심판들을 예언한다. 그러나 결국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선포한다.
학개/스가랴(바사의 고레스 이후 다리오 1세때-포로귀환 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던 학개와 스가랴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바사가 바벨론을 정복하고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포로들을 귀향시킨다.
일차로 귀향한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중심이 되어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중단된다. 이때 바벨론 땅에서 학개와 스가랴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중단된 성전건축을 다시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귀향한 학개와 스가랴는 중단됐던 성전건축을 재개한다. 그리고 완성한다.
에스라서 안에 있는 이야기이지만 아직 에스라는 귀향한 때가 아니다.
학개와 스가랴가 성전을 완성하고 나서도 60여 년이 지나서 귀향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는 에스라서에 쓰여져 있다.
에스라가 돌아와서 정리한 것이다.
말라기(바사 다리오왕 2세 때-고레스 다리오 1세 등 포로귀환 후)
느혜미야와 같은 시기이나 그 이후에도 활동한 것으로 본다.
성전도 재건하면서, 무너진 성벽도 개축하면서, 포로귀환한 유대인들은
제사장 에스라의 가르침과 종교개혁에 힘입어 100여 년간을 살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의 법도에서 떠나 범죄하고 있는 이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선지자를 보내신다. 말라기이다.
하나님과 언약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율레를
지키며 살라는 내용이다.
(말라기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아멘.
BC 430년경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신약시대 어느 시점에
엘리야를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고 예언하시고 구약시대가 막을 내린다.
(마태복음 17: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 인줄을 깨달으니라" 아멘.
신약시대에 엘리야가 요한으로 태어나서 순교당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잘못 생각하면 안되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과는 완전 다른 개념이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 말라기를 쓰시고 나서
신약에 와서 선지자로 연결한 인물이 세례 요한이다.
열심이 특심이었던 엘리야의 성정을 그대로
세례 요한에게 주시고 사용하신 것이라고
성령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셨다.아멘.
신약으로 이어지는 배경
말라기 선지자 이후 선지자들의 활동이 중단된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이다.
야곱의 70 식구가 애굽으로 내려간 이후 모세가 등장하기까지 400여 년 동안
침묵하신 것처럼 이 때부터 예수님 오시기까지 침묵하신다.
중요한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구약과 신약 사이는 한장 차이지만
그 사이는 400년이라는 시간이 숨어 있는데 그것은 세계사를 알아야 한다.
신약성경을 아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중간시대가 없기 때문에
갑자기 변한 환경에 당황하게 된다.
신약의 배경이 되는 정치구조, 사회구조, 영적인 상황을 모른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연결된 것이고 흘러온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약에 나타나는 모든 환경이 낯설기만 하다.
북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성경은 유다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북 이스라엘에 대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신약에 와 보니예수님이 자라신 땅은 북 이스라엘의 갈릴리이다.
갈릴리는 팔레스타인땅 북부지역의 한 도이다.
사마리아인과는 상종을 안하는 유대인들이 북부 갈릴리 지역에도 살고 있었다.
바사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살 곳을 찾아 여기저기 흩어진 것이다.
그들에게서 후손이 퍼져 나와 계속해서 신약까지 흘러 간 것이다.
팔레스타인땅, 요단동편 베레아지역(모압), 데가볼리(갈릴리 동북쪽 이방땅),
지중해 연안의 두로와 시돈 지역에도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았다.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3개월 간은 베레아지역에서 사역하시는데
회당에서 가르쳤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 말고 또 있다. 포로로 잡혀갔거나 일찍이 외국으로 흩어져서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애굽, 메소포타미아 지역, 바사의 수사성,
터키 지역(소아시아, 에베소), 유럽(빌립보, 데살로니가, 마게도냐, 아테네,
고리도 지역 등), 이탈리아 로마에도 있었다. 러시아 쪽으로도 갔다.
심지어 일본에도 유대인들이 흘러갔다. 한국에도 온거 같다.
색동옷, 팥죽, 문지방 밟지 않는 것 등 이스라엘 풍습과 비슷한 것들이 많다.
바울사도가 이방을 전도할 때 먼저 회당에서 복음을 전도한 것을 보면 여기 저기
흩어진 유대인들이 그들 나름대로 회당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400여 년 동안 세계사적으로는 바벨론(70년) → 바사(200년) → 헬라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30년) → 이집트의 프톨레미왕조(100년) → 앗수르 바벨론 통치자
셀레우코스왕조(34년) → 유다가 독립함(마카비 혁명 100년) → 로마의 점령
(BC 63년) → 예수님 탄생(BC 4년)
(마태복음 11:13~14) "모든 선지지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 아멘.
예수님께서 태어나기 6개월전에 세례 요한이 태어났다.
그의 사명은 예수님께서 복음사역을 하실 일에 앞서 길 닦는 역할이었다.
제자를 키워 놓고 예수님께 인도해 주는 사명이었다.
(마태복음 11:2~3)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아멘.
그리고 순교하는 사명이었다.
에돔왕 헤롯
예수님께서 태어날 당시 유대를 다스리는 왕이 있었는데 '헤롯'이었다.
헤롯은 에돔왕으로 로마에게 잘보여 유대를 다스리는 분봉왕이 되었다.
그의 통치 말년에 예수님의 탄생을 둘러싸고 사건이 생긴다.
자기가 왕인데, 어떻게 해서 얻은 유대인의 왕 자리인데, 자기 말고
누군가 '유대인의 왕'이 난다니, 이 헤롯이 가만 있을리가 없다.
유아들을 살해하라는 명령까지 냈는데 그만 자기가 죽어버린다.
BC 4년 봄에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탄생연도를 BC 4년이라고
하기도 하고 그보다 조금 일찍 겨울로 잡기도 하는 것이다.
헤롯의 죽음이 예수님의 탄생 년도를 계산하게 해주는 것이다.
'유대인의 왕'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자마자
유대인의 분봉왕 대헤롯이 죽었다.
바리새파는 정치적으로 보다 종교적인 면에서 더 인정을 받는 그룹이었다.
니고데모, 바울과 같은 바리새인도 있었던 점으로 보아 진지하게 율법을
연구하며 구약을 계승하려는 그룹이었음에 틀림없었다.
바리새인들은 에스라에서부터 교육을 받아온 유대교의 핵심이라고 말할수 있다.
사두개파는 제사장적 귀족 집단을 형성하고 있던 종파인데 바리새파와 반대 입장을
취하며 경쟁관계에 있었다.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천사와 영의 존재를
부인했다. 그들은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교사들과 논쟁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예수님의 행적(시간대별 정리)
♡ 예수님의 탄생 ♡ 소년 예수의 유일한 기록/ 열두살 때 성전에 올라감
♡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 ♡ 유대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 하심
♡ 세례요한의 집회장소 지역에서 다섯 제자를 만나심
(파트타임 사역 요한복음 1:40절부터)
♡ 가나 혼인잔치 ♡ 가버나움에 며칠 내려가 계심 ♡ 성전을 청결케 하신 사건♡ 예루살렘에서 많은 이적으로 사역하심 ♡ 니고데모의 방문 ♡ 예루살렘을 떠나심
♡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심 ♡ 왕의 신하를 고치심 ♡ 예수님을 배척한 나사렛
고향사람들 ♡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심
♡ 제자들을 다시 부르심으로 본격적 갈릴리 복음 전파 사역을 시작하심
(전임 사역 돌입 마태복음 10:2~4)
♡ 가버나움에서 어느 안식일 하루에 일어난 여러가지 일(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으시는 예수님, 베드로의 장모님 집으로 심방가서 열병을 고치심,
그리고 그 날 밤을 새우심) ♡ 갈릴리 1차 순회전도(그 후에 마태를 부르심)
♡ 베데스다 연못 옆 38년간 병든 사람을 고치심 ♡ 12제자를 확정하셔서 임명하심
♡ 산상수훈 ♡ 백부장의 종을 고치심(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
♡ 세례 요한의 질문(오실 그 이가 당신입니까?)
♡ 장터에서 피리 부는 아이 비유 ♡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가르침 ♡ 옥합을 깨뜨린 여인 ♡ 귀신들려 눈멀고 벙어리된 자를 고치심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구함 ♡ 13개의 중요한 비유를 베푸심
♡ 바다를 잔잔케 하심(가다라지방의 귀신들린 자를 고치심) ♡ 레위 마태가
큰 잔치를 베푼 자리에 참석 ♡ 혈루증 여인을 고치심(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 오병이어 ♡ 바다 위를 걸으심 ♡ 장로의 유전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
♡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 ♡ 4000명을 먹이심 ♡ 마가단 지역에까지 와서
하늘로 오는 표적을 보이라는 바리새인들 ♡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의
위대한 질문과 대답 ♡ 변화산 사건 ♡ 산 아래에서 제자들이 귀신 들린
아이를 놓고 쩔쩔 매고 있음 ♡ 갈릴리로 돌아오는 길에 제자 간에 누가 크냐
싸움 일어남 ♡ 갈릴리로 돌아와서도 집중적으로 제자 훈련 시키심
♡ 사마리아를 통과 ♡ 가는 길에 제자 되고 싶어하는 세 사람을 만남
♡ 70인 전도단을 둘식 짝 지워 베레아 지방에 파송하심 ♡ 초막절 중간과
끝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심 ♡ 마리아와 마르다 ♡ 예수님의 주기도문
가르치심 ♡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치심 ♡ 수전절에 성전에서 목자와
양에 대해 설교하심 ♡ 나사로를 살리심 ♡ 베레아에서 마지막 3개월
♡ 베레아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시는 길에 삭개오를 만나심
♡ 베다니 마리아가 향유를 부음 ♡ 나귀타고 예루살렘 입성 ♡ 두번째 성전
청소(무화과 나무 저주) ♡ 종교지도자들의 마지막 질문공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감람산 강설) ♡ 유월절 만찬 ♡ 잡히심(베드로의 배반) ♡ 빌라도의 재판
♡ 십자가에 죽으심 ♡ 부활하심
복음서와 사도행전 중간지대
♡ 진공상태에 빠진 제자들 ♡ 제자들이 앞으로 무얼하며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사명을 주심 ♡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주심(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교회를
떠나지 말라) ♡ 감람원이라는 산 예루살렘 근교에서 승천하심
♡ 약속을 기다리라고 하심(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시겠다고 약속)♡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심(창세기 11장 바벨탑 사건에서 흩어졌던
언어가 방언기도로 다시 통일됨)
(사도행전 2: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맏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아멘.
(사도행전 2: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아멘.
(사도행전 2:11)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아멘.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서들
♡ 초대교회 시작부터 베드로의 활약 ♡ 오순절 날에 성령님께서 강림하심
♡ 사도 바울의 다메섹상에서의 개심 ♡ 사도 바울의 활약과 세워지는 이방인 교회들
♡ 사도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 ♡ 예루살렘 종교회의
♡ 사도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 사도 바울의 제3차 선교여행---에베소 도착,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남,
에베소 사역, 회당과 두란노 서원에서 전도, 에베소에서 있었던 일(고린도전서 집필)
에베소 폭동사건으로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로 이동(고린도후서 집핍)
♡ 고린도(헬라/그리스/아가야지방)에서 3개월 동안 머무름
(로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집필)
♡ 예루살렘행 ♡ 예루살렘에서 체포-로마행(가이사랴로 이송, 로마로 향함)
♡ 사도 바울의 1차 구금(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 빌립보서(옥중서신) 집필)
♡ 사도행전 성경 완성(끝) ♡ 사도 바울의 4차 전도여행(디모데전서, 디도서(목회서신)
♡ 사도 바울의 2차 구금(디모데후서 집필, 순교)
공동서신들
♡ 베드로전후서(베드로 집필)
♡ 히브리서(사도바울 집필-믿음장)
♡ 야고보서(예수님 동생)
♡ 유다서(예수님 동생)
♡ 요한 1·2·3서(사도 요한 집필)
♡ 요한계시록(사도 요한 집필)
신약성경 정리
마태복음
AD 63~67년 사이에 기록한 것으로 추정한다.
예수님의 제자 세리 마태가 세무 공무원답게 꼼꼼하게 기록했다.
구약 말라기에서 마태복음으로 연결해서 읽는 것이 가장 좋다.
구약적 배경을 갖고 쓴 예수님의 생애이기 때문이다.
한 세무공무원이 어떻게 예수님 사건을 경험했으며 그 경험을 어떻게
이해하고 썼나 하는 시각으로 읽어야 한다.
하나님이 불러주셔서 받아 적은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이 깊이 깨달은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가복음
AD 55~65년에 기록한 것으로 본다.
마가는 바나바의 생질이며 베드로의 믿음의 아들이다.
바나바, 바울과 함께 1차 전도여행을 가다가 중도에서 포기했다.
베드로에게서 들어서 예수님의 일생을 기록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실 때도 그곳에 통상 모이곤 하셨던게
분명하므로 그도 예수님을 만나보았을 것 같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의 집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큰 다락방이 있었으니
부유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바울도 그의 선교 초기와 후기까지도
마가와 관계했다.
마가는 나중에 베드로와 바울과 함께 초대교회를 이루고 또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초대교회의 교부 이레네오는 베드로가 헬라어를 못하니까 마가가
통역을 했다고 한다.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한 이후에도 쓰임 받다가
성경까지 기록한다.
누가복음
AD 63년 이전 바울의 투옥생활이 끝나던 때 기록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방인 성경 기록자로서 사도행전도 썼다. 그는 '사랑받는 의원 누가'라고
불렸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읽고 사도행전을 읽으면 좋다.
마태는 경험한 예수를 썼고, 마가는 베드로에게서 직접 들어서 썼고,
누가는 이방인으로서 사도들에게서 듣고 연구해서 쓴 것이다.
예수님을 보지도 못했고 우리같이 다른나라 사람이고, 자료를 통해
부지런히 연구하고 살피고 조사해서 진리를 발견하는 방법으로 썼다.
누가 자신이 이방인이기 때문에 이방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을
부각시키고 있다.
요한복음
사도 요한이 AD 63년경 기록된 것으로 본다.
예수님께서 가장 사랑했던 제자였다. 어부 출신이었는데 학자 출신
바울 못지 않게 지적인 통찰력과 심오한 철학적 센스가 있었던 것 같다.
예수님께 들었던 말씀들을 일차 소화해서 깊은 해석까지 겸하여 기록했다.
요한복음은 마태,마가,누가복음(공관복음)에 없는 내용이 90%를 차지한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 외에 요한 1서 2서 3서, 요한계시록까지 기록했다.
요한은 어머니까지 동원해서 예수 혁명정부가 들어서면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야망을 품은 사람이다.
구약의 하나님나라, 포로시대 때 없어져서 지금까지 주권없이 떠도는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고 싶었던 것이다. 명예욕도 있었겠지만 애국적인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 또 마지막 승천하시는
그 순간까지도 욕망을 가지고 있었던 듯 싶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이 질문이 그를 예수님께로 이끌어간 엔진이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참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을 보려고 기다리면서 기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로마를 정복하면 그 나라가 임하리라고
기대했었다. 그래서 예수님께 청탁도 했었다. 그들의 어머니도 그것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을 은근히 좋아하며 뒷바라지 했던 것이다.
사도행전
이방인 의사 누가가 AD 63년경 기록한 것으로 본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부터 남아 있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형성되는
과정(베드로 중심)과, 그 교회가 세계로 흩어지는 선교의 과정(바울 중심)을
그린 역사서이다. 4복음서가 증언적 성경이라면 사도행전은 역사적 기록이다.
지명이 많이 나온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사로
부름 받았기 때문에 여러지역으로 선교여행을 많이 다녔다.
예루살렘 교회의 탄생, 성장, 확장, 그리고 바울의 세계선교로 구성되어 있다.
로마서
AD 58년경 사도 바울이 썼다. 성경 중의 성경이라고 불린다.
마틴 루터도 이 책을 읽고 종교개혁을 일으켰고, 어거스틴도 이 책을
읽고 회개했다. 정독해야 한다. 바울 서신 중 가장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복음을 설명한 논문 성격의 책이다.
3차 전도여행 끝 무렵 속썩이던 고린도교회가 안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린도교회를 방문해서 겨울을 기다리며 쓴 성경인데, 겐그레아에 살고 있던
뵈뵈라는 자매의 손에 들려 로마로 전달했다. 그 로마 교회들의 후원을 받아
스페인으로 전도하러 갈 계획으로 후원을 요청하는 편지이기도 하다.
고린도전후서
AD 56~57년경에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제2차 선교여행의
중심지이다. 많은 문제를 가지고 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교회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문제가 일어날 때 답을 제공해 주는 책이 되었다.
파당 문제, 은사 문제, 교회 내의 음행문제 등 교회 성도들 사이에서
일어난 문제 정도가 아니라 사울 사도를 공격하는 문제였다.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충격을 받고 편지를 쓴다.
눈물로 쓴 편지라고 불리운다.
고린도후서는 인간 사도 바울의 개인적 감정이나 생각이 풍부히
들어 있는 책이라서 인간 사도 바울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빌레몬서)
AD 62~63경 감옥에서 썼다고 해서 옥중서신이라고도 한다.
바울의 로마 제1차 구금 중에 보낸 편지들로 본다.
사도행전 28장 끝 부분에서 쓴 것이다.
사도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에 도착한 시기는 AD 61년 봄 쯤으로
추정되는데 63년에 풀려나기까지 감금된 상태에서 쓴 편지들이
바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이다.
빌립보서를 조금 더 후에 썼다고 본다.
골로새서는 에베소의 인접 도시인데 사도 바울이 직접 가서
전도한 곳이 아니다. 에바브라에 의해 개척된 것 같다.
이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서의 수신자인 빌레몬이 중요 지도자로 있었다.
그러므로 빌레몬서와 골로새서, 이 두통의 편지가
오네시모에 의해 같이 전달됐다.
데살로니가 전후서
AD 52년경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중이었던 고린도에서 기록한 편지이다.
데살로니가는 인구 50만명 정도의 항구 도시로서 번화한 곳이었다.
유럽의 도시이다. 전서에는 교회 내부가 별 분쟁없이 조용한 데 반해
후서에서는 광신자들의 종말 도래설로 몹시 소란스럽다.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의 기록은 최소한 5~6개월 걸린 것으로 보아
광신적인 사상은 그렇게 빨리 퍼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사도바울은 이 편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했지만
원수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고 했다.
아무리 우리와 믿음의 사상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죄인처럼 정죄하지 말아야 하겠다.
디모데 전후서 / 디도서
AD 62~68년경에 바울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도행전이 바울의 감금으로 끝나기 때문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바울이 그 후 순교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바울이 로마에 잡혀가서 2년간 감금되었다가 풀려난다.
그 후에 4차 전도여행을 하는데 이 때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를 쓴다.
소위 목회서신이라고 부른다. 목회자인 디모데외 디도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후 바울은 제2차로 로마 감옥에 투옥된다.
로마의 네로 황제 때 대화재가 기독교인들의 소행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어 그리스도인들이 심한 박해를 받는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1차 구금 때와는 달리 2차 구금 때는
매우 어려웠던 것 같다. 감옥에 있으면서 겨울이 오기 전에
디모데가 와 주기를 바라고 있는 구절을 볼 때 AD 68년 가을 쯤
후서를 쓴 것 같다. 디모데후서는 사도바울의 가장 마지막 편지이다.
목회자로서 교회를 어떻게 목양해야 할지, 그리고 목회자
개인의 생활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교훈을 담고 있다.
디도는 사도행전에는 안나오지만 사도 바울의 충성스런 조수로
선교활동에 적극 참여한 사람이다.
빌레몬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인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 편지이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주인집을 탈출하여 로마로 가서
사도 바울을 만나 개종을 한다. 빌레몬에게 그를 용서해 줄 것을 부탁하는
바울의 인간미가 풍기는 편지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미상으로 보는데 사도 바울이라고 보는 견해가 더 많다.
흔히 믿음을 설명하는 책이라고 알고 있으나 예수님이 대제사장이심을
강조한 책이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임이 분명하다.
야고보서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는 초대 교회의 지도자였다.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다.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처음에는 형 예수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얘기를 듣고
걱정하기도 하고 형을 비꼬기도 했다. 형을 인간으로만 보았다.
그러나 후에는 그 형을 하나님이라고 믿는다. 한 인간으로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예수가 왕인 것을
발견한 다음 그도 그 발에 입 맞추고 예수로 인한 새 이스라엘
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충성한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바울의 신학을 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야고보서는 최소 바울의 저술 연대인 AD 57년 이후에 쓴 것 같다.
야고보는 이 편지를 통해 바울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행실을
무시하는 자들에 대해 논박하고 있다. 그런데 바울의 가르침이
왜곡되어 유포되기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베드로전후서
AD 63~64년 경에 사도 베드로가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이다.
베드로전서 5:13절에 '바벨론에 있는 교회'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 로마에서
기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AD 65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닥친 핍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핍박을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쓴 편지이다.
한 유대 사나이가 물고기 잡아서 먹고 살다가 예수를 만나
그가 하나님이셨다는 진리를 깨닫기까지 얼마나 파란만장했는가를
생각하면서 읽어야겠다. 그런 베드로가 나중에 교회 개념을 이해하고
그 성도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가 하는 관점으로도 읽어야겠다.
'내 양을 치라' 하신 예수님의 유언을 따라 어떻게 일평생 목양하는
삶을 살았는지 보아야 한다. 요한이나 베드로의 한 일생 속에 관여된
예수님 사건이 우리의 삶속에도 관여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고 따져 보고
내 일생을 걸어도 되는 분인지를 고뇌해 보아야 한다.
실수하기도 해야 한다. 깨닫지도 못한 채 열심히 일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지나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하는
목양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