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 폭탄주를 생각나게 하는 ‘독주’다. 웬만한 술꾼 아니면 피하고 싶은 술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다른 이미지가 있다. ‘CEO의 품격을 말해 주는 술’로 여겨지기도 한다. 믿기 어렵다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위스키가 갖는 한 가지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비싼 술’이다. 실제로 비싸다. 1억원이 넘는 것도 있다. 당연히 ‘부자가 마시는 술’ ‘귀족 술’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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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윤종웅 하이트 맥주·하이스코트 대표 (오른쪽)와 장헌상 스코틀랜드 국제개발청 대표. |
좋아하는 것에는 관심이 가고 많이 알게 된다. 부자나 귀족은 자신이 좋아하는 술, 위스키에 관심도 많고 알기도 많이 안다. 그래서 “위스키가 CEO의 품격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 위스키를 많이 알고 잘 마실 줄 알면 ‘품격 있는 CEO’로 대우받는다. 당연히 비즈니스도 잘 풀린다.
대한민국에서 위스키를 가장 잘 아는 CEO는 누구일까? 두 명을 꼽는다. 하이트맥주와 하이스코트 등 두 개 회사를 맡고 있는 윤종웅(58) 대표, 그리고 스코틀랜드 국제개발청의 장헌상(55) 대표다.
윤 대표는 “주류 회사 대표가 술에 대해 잘 아는 것은 당연하다”며 극구 이번 좌담을 사양했지만 “위스키를 제대로 알리자”는설득 끝에 겨우 허락을 받아냈다. 윤·장 두 대표는 위스키 산업의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스카치 위스키 클럽 ‘키퍼즈 오브 퀘익(The Keepers of Quaich·우정의 잔을 보유한 사람들)’의 멤버이기도 하다.
참석자 및 장소 |
▶장소 : 삼성동 모던바 好 ▶참석자 윤종웅 하이트 맥주·하이스코트 대표, 장헌상 스코틀랜드 국제개발청 대표 ▶사회 : 이재광 전문기자 | |
위스키 핵심은 피트 향
서울 삼성동 모던바 호(好)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위스키 전문가로 꼽히는 CEO 두 명을 만났다. 깔끔하게 정돈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위스키는 ‘킹덤 21’. 하이트맥주의 계열사 하이스코트가 지난해 연말 출시한 연산 21년의, 국내 브랜드 중 최고이자 최고가품이다. “신제품에 대해 한 말씀 해달라”는 요청에 윤 대표가 하는 평이 ‘전문가’답다.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섞은 블랜디드 위스키이며 21년산으로 출시된 수퍼프리미엄급 제품입니다. 한국인의 취향에 맞춰 특별히 맛과 향을 제조했고 투구를 연상시키는 병 모양 역시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형태입니다. 위스키의 명품으로 유명한 매켈란의 원액을 사용해 세계적인 스카치위스키 제조사 에드링턴 그룹이 만들어 맛의 기품이 다릅니다.”
시작부터 어렵다. 몰트·그레인·블랜디드·수퍼프리미엄·매켈란…. 가장 기초적인 이들 단어 뜻 몇 개만 알아도 위스키의 지식이 훌쩍 커질 것이다. 위스키에 대한 지식은 일단 뒤로 하자(상자기사 참조).
백문이불여일음(百聞以不如一飮)이다. 킹덤 21을 한 잔씩 따라 맛을 봤다. 눈을 지그시 감고 가볍게 위스키를 입에 적신 윤 대표는 “위스키가 목에 넘어갈 때 부드럽고 감미로운 향이 느껴지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러고는 “우리 한국인들은 자극적인 맛보다는 이처럼 부드러운 향과 맛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세계적인 명품 위스키”라는 것이다.
장 대표도 한마디 거들었다.
“킹덤 21은 바닐라 향이 맴돌고 끝 맛이 감미로운 것이 매력적입니다. 위스키를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은 맛보다 코로 먼저 위스키를 느끼지요. 그건 위스키의 독특한 향 때문이기도 한데요, 위스키를 증류할 때 연료로 쓰는 피트(나무 화석연료의 일종)가 이 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위스키의 맛? 문외한으로서는 이해가 쉽지 않다. “위스키의 맛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종류가 다양해 맛에서도 차이가 큽니다. 몰트 위스키는 맛이 중후하며 짙고, 향이 풍부한 반면 블랜디드 위스키는 부드럽습니다. 좋은 블랜디드 위스키는 조화로운 맛이 일품이지요.”(윤 대표)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몰트 위스키가 진한 맛과 향이 느껴지는 것은 피트 향이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블랜디드 위스키 역시 몰트와 그레인의 배합 비율에 따라 맛과 향이 천차만별이지요.”(장 대표)
위스키 잘 마시는 5가지 비법 |
1. 지식이 필요하다 위스키에 대한 지식을 쌓고, 마시는 위스키가 어떤 종류인지를 알라. 맛과 향이 다를 것이다. 2. 연산에 따라 달리 마셔라 위스키는 연산에 따라 다르다. 21년산 이상의 수퍼 프리미엄급은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것이 좋다. 3. 향을 즐겨라 위스키의 향이 다 다르다. 마시기 전에 즐겨라. 4. 맛을 음미하라 위스키는 혀끝의 감촉과 맛이 일품이다. 사랑을 속삭이듯 천천히 그것을 음미해야 한다. 5. 천천히 마셔라 위스키는 향과 맛, 감촉을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 한 잔을 갖고 20~30분은 마셔야 한다. | |
위스키의 마력은 시간과 정열
두 대표는 위스키의 매력에 푹 빠진 위스키 애호가다. 숱한 술 중 왜 유독 위스키인가? 이들의 위스키 예찬론을 들어봤다.
“위스키는 시간과 열정이 깃든 술입니다. 지금 우리가 마시는 킹덤 21을 예로 들어보지요. 주원료인 몰트 위스키만 해도 에드링턴가에서 몇십 년을 숙성시켰고, 존 람지라는 세계적인 위스키 마스터 블랜더(위스키 제조 전문가)가 수십 차례 방한해 한국 소비자들의 맛과 향을 조사해 만들었습니다. 시간과 열정이 들어 있지요.”(윤 대표)
“맞습니다. 술의 세계는 느림의 미학이라고 합니다. 위스키는 최소 5년 이상은 숙성시켜야 제 맛이 나는 술이에요. 스코틀랜드의 전문 위스키 상점에서는 30년 이상 된 위스키가 전시되어 있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 나이만큼의 술도 보게 되고, 그럴 때는 각박한 생활 속에서도 작은 경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장 대표)
두 대표 모두 위스키의 매력으로 ‘시간’과 ‘열정’을 꼽았다. 그러니 폭탄주를 마시는 사람은 바로 이 위스키의 시간과 열정을 맛보지 못한다. 위스키 전문가들은 이 폭탄주를 어떻게 생각할까? ‘무지막지한 술’로 여길 것 같다. 하지만 의외다. 두 명의 위스키 전문가들은 모두 ‘폭탄주 예찬론자’이기 때문이다.
“폭탄주는 이색적인 술 문화 중 하나지요. 장점도 있어요. 사실 도수가 4.5도 정도인 맥주와 40도 내외인 위스키를 섞으면, 알코올 도수는 10도로 떨어져 순한 술이 됩니다. 또 위스키를 섞으면 맥주 맛이 희석되어 부드럽게 느껴집니다.”(장 대표)
“개인적으로는 위스키를 잘 알고 즐기면서 마시는 사람이 늘길 바랍니다. 하지만 폭탄주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연말이나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에선 종종 폭탄주를 마십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위스키 문화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윤 대표)
자, 폭탄주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주법(酒法)이다. 그렇다면 위스키를 마시는 것과 관련된 세계적인 스탠더드 음주법이 있을 법하다. 와인 붐이 일면서 와인을 배우려는 애호가들도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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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웅 대표 21년산 이상 되는 제품은 스트레이트로 조금씩 음미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진한 맛과 잔향을 즐길 수 있습니다. | |
술잔을 손으로 감싼 뒤 마셔야
“와인과 비슷합니다. 위스키도 마시기 전에 코로 향기를 느껴야 합니다. 잔을 손바닥 전체로 잡아 손의 열로 향이 더 날 수 있도록 만든 뒤 즐기는 것이 좋습니다. 또 위스키를 입안에서 살짝 머금은 뒤 혀로 달고 진한 맛을 음미하고, 넘길 때 입안과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 부드러움을 즐겨야 합니다.”(장 대표)
“연산에 따라 달리 마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12년산은 미네랄워터나 소다를 섞어 천천히 향을 음미하며 마시면 목 넘김이 부드럽습니다. 17년산도 마찬가지로 술과 물을 6 대 4 비율로 맞춰 도수를 25도 정도로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21년산 이상 되는 제품은 스트레이트로 조금씩 음미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진한 맛과 잔향을 즐길 수 있습니다.”(윤 대표)
윤 대표와 장 대표는 계속 ‘음미’라는 말을 쓴다. 위스키를 음미한다…. 이 말 역시 알 듯 모를 듯하다. 윤 대표는 이를 “분위기를 내면서 마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분위기는 지식에서 나온다”고 한다.
“내가 마시는 위스키가 어떤 종류인지, 어디서 난 것인지를 조금이라도 알면 그 맛이 더 깊이 있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를 때는 그냥 독한 술, 쓴 술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술에 대해 알고 나면 맛도 향도 다르다”고도 말한다.
위스키는 또 ‘귀족의 술’ ‘리더의 술’이라는 별칭이 있다. 값이 비싸 상류층만 마실 수 있다는 말도 있다. CEO들은 현대판 귀족이고 리더다. 과연 이들은 진짜 위스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것일까? 두 대표는 모두 “그렇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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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상 대표 조금씩 맛을 보면서 위스키 한 잔을 20~30분 동안 마셔야 합니다. 좋은 위스키를 제대로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해요. | |
윤 대표는 “CEO들은 다른 술보다 위스키를 많이 마시고 자연스럽게 위스키에 대한 지식이 쌓이게 된다”며 “그런 CEO를 만나면 얘기도 잘된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위스키로 친구를 사귈 수도 있고 비즈니스도 힘을 얻을 수 있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위스키를 자주 접합니다. 대화에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분위기를 띄우는 데도 편하지요. 그 사람의 성향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윤 대표)
“CEO는 위스키에 대해 알아야 건강도 비즈니스도 지킬 수 있습니다. 독한 술일수록 술잔이 작지만 종류에 관계없이 술 한 잔에 담긴 알코올 양은 10g 내외로 일정합니다. 보통 몸무게 70kg 정도의 성인이 알코올 10g을 처리하는 데 대략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니까 4~6잔 정도 마시면 다음날 업무에 지장을 받지 않게 됩니다.”(장 대표)
그럼에도 위스키는 아직 폭탄주의 이미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게 우리나라 위스키 문화다. 위스키 전문가이자 애호가인 이들이 원하는 위스키 문화는 무엇일까? 그들이 말하는 ‘희망’을 끝으로 좌담을 마쳤다.
“위스키는 시간과 열정이 깃든 술입니다. 그것만의 독특한 맛과 문화를 향유할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윤 대표)
“그러려면 조금씩 맛을 보면서 위스키 한 잔을 20~30분 동안 마셔야 합니다. 좋은 위스키를 제대로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해요.”(장 대표)
잠깐상식
▶몰트·그레인·블랜디드 위스키 원료를 기준으로 위스키를 구분한 것이다. 몰트 위스키는 보리의 싹인 맥아만을 원료로 만든다. 향이 풍부하지만 생산량이 적어 비싸다.
그레인 위스키는 더 많은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개발됐다. 호밀이나 귀리·밀·옥수수 등에 맥아를 15~20% 정도 혼합해 만든다. 블랜디드 위스키는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혼합한 것. 1950년대 처음 만들어졌으며 원료와 혼합 방식의 차이로 다양한 맛과 향을 낼 수 있다.
▶위스키의 등급 연산 12년 이하의 제품은 스탠더드 위스키로 분류한다. 17년산 이상은 프리미엄급, 21년산 이상은 프리미엄급 중에서도 수퍼프리미엄으로 치는 고급 위스키다.
▶스카치 위스키 정통 위스키로 얘기된다.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합병된 직후 위스키 제조업자들이 산 속으로 숨어 이 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보관 용기가 없어 수입 포도주를 담았던 빈 참나무 통에 밀주를 담아 지하 창고에 숨겨뒀던 것이 스카치 위스키의 원류다.
세월이 흐른 뒤 참나무통을 열어 보니 무색이었던 술이 연갈색을 띠고 은은하면서 진한 향을 내는 술로 변해 있었고 이게 바로 ‘스카치 위스키’의 시작이 되었다.
▶매켈란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방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위스키 브랜드. 150년 이상 내려오는 옛 방식에 의해 셰리통에서 숙성시키며 뛰어난 호박 색조와 환상적인 부드러움, 그리고 감미로운 맛과 향기로 세계 품평회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다. |
이재광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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