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그리고 작가의 길- 유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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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펼치면 거기 부레옥잠처럼 오종종 엎드려 있는 다도해의 섬들, 거기 어디쯤 내고향 청산도가 있다.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로 알려진 후 제법 유명해졌지만 그 전만 해도 청산도는 관광객들이 별로 찾아오지 않는, 그야말로 절해고도였다. 명절이 되어야 가 볼 수 있는 고향이기에 나는 간혹 지도를 펼쳐 놓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얘들아, 여길 보아라. 바로 여기가 아빠의 고향이란다."
나는 제법 신이 나서 말하지만 도시의 문화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그저 까만 눈만 깜박거릴 뿐, 지도 속에 콩알만하게 표기된 '청산도'라는 섬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하긴 도시의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아빠의 고향을 역설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영화 속의 저기가 바로......"
<서편제> 비디오 테잎을 구입해 몇 번이나 보여 주어도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황토빛 길 좌우로 구불구불 이어진 돌담길,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남빛 바다, 멀리 그린 듯 고운 여인의 아미처럼 드리워진 섬들, 맛조개 속살처럼 붉은 저녁 노을, 세 사람이 <진도 아리랑>을 불며 내려오는 그 길을 아이들은 무슨 전설 속의 한 장면 보듯 하고 다시 게임에 열중해 버린다. 아빠는 그런 아이들이 섭섭했지만 곧 체념하고 만다.
그래, 아직 너희들은 고향의 의미를 알 나이가 아니지. 그래, 그런 거란다. 고향은 고향을 떠나 실패해 본 사람만이 그 소중함을 알지. 고향, 그것은 도시의 어두운 골목 선술집에서, 차디 찬 감옥에서, 몸시 앓고 있을 때, 아무리 돌아 보아도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을 때, 목숨이 막 떨어지는 그 순간 마술처럼 다가오는 것이지. 그러니까 고향, 그것은 실패한 사람의 서정적 미화하기에 다름 아니다. 성공한 사람의 너스레가 아닌, 실패한 사람의 그 서정적 미화 속에 고향은 뜨겁게 살아 있는 것이다.
소설 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소설, 그것은 철저하게 실패한 사람의 서정적 미화하기다. 실패해 보지 않은 사람은 소설을 쓸 수 없다. 작가는 그러므로 실패한 삶의 복수로 소설을 쓰는,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참 가엾은 존재이다. 그는 소설로 증언하려 한다. 그래서 억울하게 죽은 고향 사람들과 조상과 가족과 자신의 한을 달래 보려 하는 것이다.
그 속에 우리 할머니가 있다. 당신은 인공 때 두 자식을 잃었다. 그 충격으로 할아버지와 나머지 두 아들이 술병으로 세상을 떴다. 마지막 남은 아들이 몹시 앓던 어느 해, 할머니는 남은 아들 하나마저 앞세우는 비정한 어머니가 되기 싫어 당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식 넷과 지아비를 먼저 보낸 할머니의 한, 그것 때문에 나는 작가 되었다. 뭔가 쓰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소설로 할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서.
나의 데뷔작 <그들의 섬은>과 전남일보에 연재했던 <할미꽃 능선>은 바로 청산도 이야기이다. 지면상 자세히 소개할 수 없지만 나는 그 소설로 할머니의 한과 억울하게 죽은 고향 사람들의 한을 달래 주려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의 백부와 숙부...... 당신들은 모두 가셨지만 40년 동안 완도 일대에서 교직 생활을 하며 '민족의 혼'을 심어 주었던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에 나는 작은 위안을 느낀다. 유환봉, 청산 중앙 초등학교 초대 교장이기도 하셨던 조부를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중앙 초등학교에 비석을 세웠다. 그분이 바로 나의 할아버지이시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카페리호가 완도항을 떠나 청산도로 방향을 선회한다. 삼십 분 남짓 지나자 빨갛게 타던 해가 마악 숨을 넘기며 서산 너머로 모습을 감춘다. 누가 저기에 저렇듯 오묘한 물감을 풀어 놓았는가. 이 시간에 고향에서 보는 낙조는 한폭의 그림, 신이 지상에 창조해 낸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멀리 청산도가 보인다. 청산, 말만 들어도 얼마나 설레는 이름인가. 완도읍에서 유독 멀리 떨어져 있어 더 그리운 섬, 청산도. 긴 방파제가 팔을 벌려 거친 파도를 막아주고 그 안에 다닥다닥 옆구리를 맞대고 있을 크고 작은 어선들, 곧 만날 까만 피부의 사람들... 한을 간직한 삶들의 눈은 깊고 미소엔 인정이 넘치리. 비록 일 년에 한 두번 가는 고향이지만 나는 단순한 그리움 하나로 고향을 가지 않는다.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만나러 간다. 나는 그것이 내가 작가가 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며칠 간의 추석 연휴, 그러나 고향은 옛날의 생기가 없다. 추석이면 벌어지던 '콩쿨대회'도 없고 '운동회'도 없다. 그 많던 고기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배를 부리는 선후배들의 표정은 어둡다. 그래도 반갑게 웃어주는 그들이 있기에 긴 여독이 금세 사라지고 만다. 밤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름도 원망도 저 한줌 뼛가루 같은 삶도 잠시 잊어 버린다.
고향에 오면 나이를 잊어 버린다. 몇 해가 지나면 지천명이 될 친구들은 여전히 소년 같고 윷이라도 한 판 놀 참이면 온 동네가 생기를 되찾는다. 누군가는 성공해 외제차를 타고 왔다는 얘기, 누군가는 세 해째 고향을 찾지 않고 있다는 얘기, 씨가 마른 바닷고기 이야기, 손톱만한 전복이 자라 출하된다는 얘기... 몇 분은 세상을 뜨고 누구는 새 아이를 낳고... 고향의 밤은 우리 시대 <종합뉴스>에 다름 아니다.
보름달이 유난히 커 보인다. 가난한 사람들의 소원을 모두 가슴에 담아서일 것이다. 나도 두 손을 모으고 달님께 소원을 빌어본다.
고향을 잊지 않는 작가가 되게 하소서.
내가 저 착한 사람들을 배신하게 하지 마소서.
이 명절, 고향을 찾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충만한 사랑을 전해 주소서.'
카페리호가 청산도를 떠난다. 방파제가 점점 멀어진다. 부모들은 여전히 선창에 남아 배가 멀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깊은 주름살에 배인 그들의 한을 나는 사랑한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두고 떠나는 자식들의 마음은 어떨까. 하루 걸려 고향을 찾은 사람들은 다시 긴 여정에 지치겠지만 자루마다, 마분지 박스마다 오종종 숨어 있을 호박이며 멸치, 콩 한 됫박, 미역 한 줄기, 김 두어 톳...... 그것들을 펼쳐 놓은 도시의 방 안에서는 하루 종일 바다 냄새가 날 것이다.
나는 그 바다 냄새를 그려 나갈 것이다.
▶유영안/1958년 청산도 도락리 출신. 광주매일 신춘문예 시 <숫돌에 관한 명상> 당선, 전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그들의 섬> 당선, 민족문학 작가회의 정회원, 소설집 <산속 길은 누가 만들었을까>, <신춘문예 소설 걸작선>, 전남일보에 <할미꽃 능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