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춘몽
정용숙
‘딩동 ’메일이 도착했다는 문자 알림이다. 발신자 주소가 낯설다. 그냥 닫아버리려다 호기심에 메일을 조심스레 열었다. 편지 상단에는 보낸 이의 사진을 배치했다. 잘 알려진 인물 좋은 육군 장성이었다. ‘열어 보기를 잘했구나. 나에게도 귀인이 찾아오는 행운이 있구나!’ 내심 반가웠다.
"외동딸과 해외에서 고생하다 딸은 현재 중국에 있고, 자신은 중동지역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라는 내용이다. 애틋한 사연에 동정심이 우러났다. 처음 접촉한 사람이지만, 위로와 용기를 담은 답장을 보내야할 것만 같았다.
“고생 많습니다. 빠른 쾌유를 빈다."는 답장을 보냈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와의 편지는 오가기 시작했다. 그가 보낸 이신二信이다.
“지난밤 순찰을 보낸 부하 두 명이 비명에 갔습니다. 나도 언제 죽을지….” 가슴이 메 글줄을 잇지 못하는 듯한 그의 편지는 모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편지가 오감에 따라 그와 나는 친구처럼 발전해감에 따라 말투도 가볍게 변해 갔다.
“결혼은 했니. 무슨 일 하니. 집은 있니?"
"잘 살지는 못하지만 거처할 집 한 채와 꾸러 가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은 되요." 하도 하수상한 세상인지라, 전화번호를 요청했다.
"나는 K군사령부 수석 지휘관이다. 개인 신상은 기밀 사항이라 함부로 밝힐 수 없다. 신상 문제는 더는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묵직한 그의 말에 신뢰감이 들었다. 편지에는 그 나라의 풍속을 설명하고 때로는 보랏빛 내용도 담겨 있었다. 은근히 그의 편지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중요한 택배를 보내야 하는데 고국에는 마땅히 받을 사람이 없어. 그냥 받아 주기만 하면 돼. 간곡한 나의 부탁이야." 뜬금없는 부탁을 받고 보니 마음이 헷갈렸다. 요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마치 위기에 몰린 사람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계시인 것처럼.
"잘 보관하겠습니다." 의혹 반, 기대 반의 의혹이 들었지만, 육군 장성이기에 의심은 거품처럼 사라졌다.
"내일 유엔에서 우리 작전 지역을 직접 방문한다. 그 때 상당액의 현금을 수령할 것이다. 돈이 박스를 택배로 보낼 테니 잘 보관하기 바란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 돈으로 영화관이 딸린 빌딩을 구입할 계획이다."
”부동산보다 교육 사업은 어때요?" 나의 제안에
"교육 사업은 쫀쫀하여 돈이 안 돼. 영화 사업이 전망이 좋아. 사업을 펼치기 위해서는 당신 같은 파트너가 꼭 필요해. 사업의 동반자로 멋진 설계를 하고 싶어. 택배비는 현불로 처리 할 테니 받기만 하면 돼." 돈뭉치가 든 상자 사진을 편지 내용에 담았다. ‘복덩이가 굴러들어오는구나.’ 희열이 가슴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변변찮은 남편의 수입에 쪼들리는 형편이 아닌가. 쾌재를 불렀다.
'돈 상자가 곧 도착하겠지.' 꿈속을 헤매는 나날이었다. 온 신경이 전화통에 쏠렸다. '딩동', 메일이 도착했다.
"은행 업무가 시작되면 ‘웨스트유니온’ 택배 회사에서 요구하는 수수료가 있어. 그것만 입금해줘. 24시간 안에 박스가 한국에 도착할 거야."
“택배비 수수료는 그쪽에서 지불했다고 했잖아요?”
“어쩌다 그렇게 됐어. 택배 회사 횡포야, 미안해, 나도 그 회사가 정말 짜증나.” 지금까지 오간 편지 내용에는 돈 냄새는 풍기지 않았는데, 갑작스런 돈 얘기에 뭔가 찝찝했다. 아무리 명망 높은 고급 장성이지만, 확인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영상 통화 한 번 해봐요."
"그건 안돼. 보안상 감시가 심해서."
"그러면 다친 당신 모습을 보내세요. 그렇지 않으면 없던 걸로 하겠다." 는 나의 편지에 전신을 붕대로 감은 사진이 득달같이 날아왔다. 붕대를 두르고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본 순간, 험지에 파견 되어 피 흘린 사람을 의심한 내가 부끄럽고 미웠다. 측은한 마음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의 자존심은 오죽 상했을까. 빨리 송금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허둥댔다.
“터키에 송금하러 왔는데요."
“터키에 누가 있어요. 수취인은 누구예요. 꼬치꼬치 캐묻는다. 고객의 안전을 위한 은행원의 질문에 불쾌한 마음까지 들었으니.
송금하고서는 그쪽 일이 빨리 해결되기를 기다렸다. 24시간 내에 도착한다는 택배는 오지 않고, 조급함 마음만 허공을 돌고 있던 차, 그의 메일이 도착했다.
"박스가 인도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인도 세관을 통과하려면 수수료가 들어가니 마지막 지불이 남았다." 그가 요구하는 금액 규모는 점점 높았다. 자기의 목숨과 장래가 달렸다는 말을 뿌리치지 못하고 요구하는 돈을 보냈다. 그러나 기다리던 택배는 오리무중이었다. 불길한 조짐에 가슴이 답답했다.
긴가민가 하는 초조한 어느 날이었다.
"축하 합니다. 인도를 통과한 패키지는 제주도에 도착 한국 로고를 붙여 내일 이면 택배가 귀하에게 배달될 것입니다. 배달하기 전 스탬프 값을 입금 요구. 빠른 답변 바람." 이란 메일이 날아왔다. 돈을 요구하는 것이 벌써 여러 차례 아닌가?
"소포가 오면 그 돈을 보내주겠다." 단호한 편지를 보냈다. 하루에 몇 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나의 소리는 헛메아리 되어 허공에 맴돌았다. '아차! 올 것이 왔구나.' 둔기로 머리를 되게 맞는 기분이었다. 온다는 소포는 영영 오지 않았다.
나는 소위 첨단정보통을 자랑하는 회사에 녹을 먹고 있는 신분이 아닌가.
“횡횡하는 사기극에 말려들지 말라,”며 고객들에게 홍보하고 다녔다. 그러한 내가 그들이 펼치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마음 한구석에 허허로운 바람이 일렁인다. 후회하면 무엇하리.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될 수 있다는 허욕의 산물일 터. 일장춘몽一場春夢, 오지게 헛꿈을 꾸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솔로몬의 지혜를 생각하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