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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전산에서 시산제를 지내고
오늘은 시산제를 겸한 산행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매년 1월 산행일이면 우리는 광양 억불봉 언저리에서 시산제를 올렸다.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그 길을 한 겨울 내린 눈밭 위를 떡시루며 각종 제물을 짊어지고 남자들은 군소리 없이 한참을 그것들과 씨름하며 올라야했다. 그래서일까. 태풍이 왔다가도 산행일이면 호수처럼 잠잠해졌고, 억수같이 내리던 빗줄기도 얌전한 규수처럼 뒤로 물러나 앉았다. 오늘처럼 며칠간 계속되던 폭설과 한파도 바람 한 점 없는 부드러운 햇살로 바뀌어 시산제를 도왔다. 더구나 오늘 시산제는 도로 옆이라 운반하기조차 쉬웠다.
시루떡, 돼지머리, 밤, 곶감, 사과, 배, 어물, 청주, 촛불…. 대략 제물을 차려놓고 절차에 따라 엄숙하게 진행했다. 그런데 축문의 내용이 오늘따라 재미가 있다는 걸 알았다. 평소 집안에서 지내는 기제 때 흘려들었던 축문(祝文)과는 내용이 판이하게 달라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들의 희망사항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더욱 그랬던 것 같다. 난 순간 쉽고 익살스러운 내용으로 넉살좋게 고한다면 산신령님께서 아마도 애교로 더 잘 들어주지는 않을까하는 유치한 생각도 해봤다.
대충 의식이 끝나가고 첨작 차례가 되었다. 사장팀, 국장팀, 동호인팀, 여자들팀……. 누군가가 열심히 팀별로 불러 진행시켰다. 어떤 곳에서나 아이디어맨은 있나보다. 순간에 재치 있는 이름을 지어내는 걸 보면. 그때마다 만 원짜리 지폐가 돼지머리 입에 팡팡 꽂혔다. 어쩔 땐 입이 부족해 콧구멍, 귓구멍에까지 쑤셔 박을 때도 있다.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기껏 죽여 놓고 돈은 줄게 뭐람! 얼마나 억울할까 싶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남자들은 술과 안주 앞에, 여자들은 떡시루 앞에 모였다. 나는 예전에 다친 인대 때문에 꿇어앉을 수가 없어 포기했다. 고시레라도 할 걸. 이 글을 쓰면서야 생각난다. 우선 내 입부터 챙기기 바빠 그것마저 하지 못했다.
그동안 금전산을 여러 번 올랐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불재에서 시작하는 코스는 처음이다. 조금 오르다보니 중턱에 ‘구능수’라는 바위동굴이 있었다. 그 안에 샘물이 있었으나 아직껏 한 번도 가득 차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는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가 조그만 원형의 샘구멍에 바가지를 든 팔을 끝까지 집어넣어 휘저어봤는데 물소리는커녕 축축한 기운마저 감지할 수가 없었다. 바가지가 있는 걸 보면 분명 물이 있을 법도 한데. 전설에 의하면 그 동굴 안에는 물이 흘렀고 밖의 암벽에서는 조그만 구멍으로 쌀이 나왔다고 한다. 그곳에서 처사가 공부를 했는데 세 끼니 밥을 챙겨오는 부인의 정성에 감동한 산신이 바위에 구멍을 뚫어 쌀을 내주었다고 한다. 어느 날 처사가 찾아온 손님을 접대하려고 1인분을 더 꺼내려고 작대기질을 했는데 그만 쌀이 끊기고 말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을 꾸짖는 전설 같았다.
구능수동을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엔 암벽들이 제법 많았다. 양지쪽이라 그런지 눈은 많이 녹아 오르기엔 별 불편함이 없었다. 그래도 중간 중간 눈이 쌓여있어 이번에 구입한 체인아이젠을 한껏 활용했다. 예전에 구입한 6발 아이젠보다 발의 전체를 감쌀 수 있는 체인아이젠이 훨씬 착용하기도 편리하고 착지감도 좋았다. 옷만 든든히 갖추어 입고 아이젠이나 스패치 등 몇 가지 등산장비로 무장한다면 우리나라에 있는 산 높이정도는 전문 산악인이 아니더라도 설산의 비경을 맘껏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전산(金錢山) 정상에는 젊은 총각이 복권을 팔고 있었다. 그곳에서 산 복권은 金錢이란 이름의 기를 받아 당첨확률이 높다나. 도대체 이 추운 겨울날 얼마나 팔리기에 눈밭을 걸어올라 그곳까지 왔는지, 우리 일행은 아무도 사는 이가 없었다. 아이디어는 좋았을지 몰라도 한 여름 산 정상에서의 아이스크림의 상술보다는 못하단 생각이 들었다. 몸이 따뜻해야 마음도 따뜻한 법. 마음에 고드름이 열렸으니 평소에도 사본 적이 없는 나로선 호기심과 안쓰러움마저 발동하지 않았다. 남해 금산에 얽힌 그런 사연이 21세기에도 재현되고 있을 줄이야.
정상에서 신임 회장은 팀별로 줄을 세워 부지런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꼭 한 맺힌 사람처럼. 그와는 반대로 얼굴에 주름수가 늘어나는 만큼 나는 사진 찍기를 거부한다. 내 인생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내 얼굴의 주름. 그 주름 속에 나의 별의별 인생살이가 숨어있을 텐데, 나는 그 주름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은 아닌가보다.
정상에서 오공재로 하산하는 길은 부드러운 흙길로 완전히 눈으로 덮여 있었다. 스키를 타고 내려가기에 안성맞춤인 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길을 너무도 당당히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그건 순전히 아이젠의 힘이었다. 순간 나는 한라산의 두터운 눈밭 위를 오르고 있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아이젠 하나가 나에게 주는 힘은 대단했다. 동기유발이 이렇게 아주 소소한 것에서 비롯될 줄.
누군가는 친구네 집 서가에 꽂혀있는 책 한 페이지가 자신의 인생을 다른 길로 이끌었다고 하지 않는가! 난 아이젠을 신고 눈밭 위를 걸으면서 그 어떤 겨울산도 오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동안 조금은 두려워하기도 했었으니까. 나는 산을 통해 무한한 에너지를 제공받기도 한다. 이것이 산이 내게 준 매력이다.
오늘은 시산제도 지내고 산도 타고 점심은 산장에서 닭백숙을 먹기로 했다. 우린 산장 이름을 오공으로 알고 있었고, 일행들이 식당 이름을 물을 때마다 육공이 아니라 오공이라고 알려줬다. 오공재로 넘어온 우리로선 그건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오공’이 아니라 ‘오금’이었다. 이왕이면 오공이라고 지었으면 좋았을 걸 생각했다. 난 참으로 복잡한 인간인가보다. 별걸 다 신경 쓰는 것 보면. 그러니 내 머리통이 온통 하얀 숲으로 덮일 수밖에.
구운 닭 껍질 몇 조각과 생똥집, 생가슴살이 술과 함께 먼저 나왔다. 솔직히 똥집은 생으로 도저히 먹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고, 언젠가 옥룡골에서 맛보았던 생가슴살의 쫄깃거림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 걸신들린 것처럼 먹었다. 난 작년 어떤 모임에서 닭의 생살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처음으로 알았다. 생고기를 줘서 기른 개는 자칫 사람까지 헤친다고 하더니 그 생살의 맛이란 기막혔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안 남는다.’는 우리의 속담이 있다. 바로 내가 그런 꼴이 되었다.
소주와 생살. 예전 같았으면 벌컥벌컥 물마시듯 소주를 들이켰을 텐데, 이젠 내 몸도 늙었나보다. 주름 속에 인생이 담겨있듯 내 몸속에 어떤 이상 물체가 늘어나는 걸까. 거부하는 것들이 서서히 많아지고 있다는 걸 난 요즘 부쩍 느낀다. 몸만 그러는가, 내 감정은. 카멜레온처럼 수시로 변하는 나의 감정, 나도 감당하기 힘들다.
아무튼 술은 기분을 좋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그런데 글쎄, 회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데 까페지기님이 내 앞으로 오더니 대뜸 "미안해요.” 했다. 술을 많이 마셔 미안하다는 것이다. 나로선 난생처음 들어본 말이다.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건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산을 타면서 어떤 모습으로 비쳤을까. 일행과 떨어져 혼자 타는 산행. 아마 고고한 척 보였을까. 아니면 꽉 막힌 답답한 모범생처럼 보였을까. 학교에서였다면 결코 그런 말은 내게 던지지 않았을 것이다. 틀림없이.
나를 홍보하는 차원에서 에피소드 한 마디! 언젠가 비담임들과 교감 교장과의 회식이 있었다. 2차로 노래방을 갔는데 내가 세상에서 가장 못하는 게 노래다. 노래는 못하지만 나는 그날 망가지기로 했다. 그리곤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댔다. 그랬더니 동창인 교감이 합세해 분위기를 띄웠다. 술김에 난 마이크도 잡았다. 노래는 교감이 거의 혼자서 마무리했다. 그렇게 난 철저히 망가졌다. 다음날이었다. 무슨 일로 교장 결제를 받으러 갔다. 평소 까다롭기로 유명한 교장이 그날은 칭찬까지 해주며 두말 않고 도장을 찍어주었다. 한 가지 잘하는 사람은 다른 것도 잘합디다,는 기분 좋은 말을 덧붙이면서. 그렇담 잘 한다는 건 별게 아닌가. 그냥 망가지면 되는 것이니. 아니, 망가지도록 하면 되는 것인가? 어쩌다보니 자랑처럼 흘러가버렸지만 충분히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오늘도 버스에서 미스터 장이 내 옆에 슬그머니 앉더니 내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정말 내 노래를 듣고 싶어요?” “정말요.” 까짓것 며칠만 악을 쓰고 연습하다보면 되지 않을까? 자진해서 부를 때까지 기다리시라.
그런데 술은 몇 번 망가지고 나니 이젠 겁이 난다. 결코 아름다운 망가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자제하려 노력한다. 그래도 몇 순배 대작은 할 수 있다.
오늘 내 맘에 드는 게 또하나 있었다. 조정래 문학관에 들른 것. 거길 들른다고 했을 때 총무님이 멋져 보였다. 총무님의 생각 아니었나. 문학관을 들어가려는데 박선생님께서 씩 웃으시더니, ‘태백산맥’ 하면 꼬막밖에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 난 그 말에 ‘쫄깃쫄깃’이라고 짧은 화답을 보냈다. 박선생님이 되게 좋아했다. 한참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박선생님이 일행들과 웃고 떠들다가 나를 보더니 의미심장한 웃음을 또한번 날렸다. ‘쫄깃쫄깃’ 얘기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대화에서 긴 이야기보다 짧은 한 마디가 때론 상큼한 매력을 주기도 한다는 걸 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상대가 거기에 딱 어울리는 단어 하나를 끄집어내어 던질 때 난 그 상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곤 했었다.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의 매력도 있겠지만 침묵으로 일관하다가도 양념 같은 단어 한 마디로 추임새를 넣어주는 매력 또한 크다.
문학관을 둘러보면 그 작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조정래 문학관은 조정래의 숨결을, 혼불 문학관은 최명희의 숨결을. 이곳은 혼불 문학관에 비해 아기자기함은 덜했다. 물론 조정래가 남성이니까 비교할 순 없지만. 만약 조정래의 작품을 읽고 싶다면 시대별로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시대의 아픔과 함께 역사의 현장이 머릿속에 각인될 것이다. 조정래는 무시무시한 군사정권하에서 목숨을 내놓고 대하소설 3부작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인식의 틀을 전환시켜 주었다. 조정래 하면 생각나는 게 또 있다. 아들에게 자신의 책을 베끼도록 한 것. 책을 베끼는 작업은 문예창작과 1년을 다니는 것과 맞먹는다고 작가는 말했다. 글쓰기만 그러하겠는가. 모든 예술은 모방으로부터 비롯된다. 아무리 뛰어난 추상화가도 처음엔 정밀묘사부터 시작한다. 바로 그것이 주춧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 성급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 한권 읽히지 않으면서 논술 쓰기 과외에 거금을 투자한다. 재료가 없는데 반찬을 만들어내라니! 무슨 수로 훌륭한 반찬을 만들어내겠는가. 조정래가 아들에게 권한 방법을 한 번쯤 시도해 봐도 좋을 듯하다. 물론 독서의 양은 풍부하게 하면서 글쓰기 지도를 겸하고 싶다면. 말이 나왔으니 하나 덧붙이자. <잡초는 없다>란 책을 쓴 윤구병에게 누군가가 물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고. 그는 말하길 평소 우리가 하는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 바로 글이라고 했다. 그 책속에 작가가 그런 식으로 써놓은 글도 있다. 한 번 읽어보시길! 의외로 그런 글이 재미가 있다는 걸 알 것이다.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말이라서 친근감도 있다.
오늘은 짧은 산행에 다양한 레퍼토리가 있는 날이었다. 극적인 변화의 전개! 지루하지 않고 흥미로운 일정.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아주 즐겁게 정말 행복하게 노래의 늪에 달콤하게 빠져들고 있었다. 기분 좋은 하루다! 오늘은 모처럼 우리 가족도 다 모였다. 정규가 이틀간 국시를 보고 잠깐 집에 내려왔다.
2010. 1. 9
첫댓글 산행소감 기행문 정말 감동깊었 습니다. 모든 회원님의 대표적 듯으로 새겨둣겠습니다. 산행도 하고, 문화탐방도 하고, 병영하여 일석이조를 찿도록 회장과 총무는 혼신을 다하여 노력 하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까페지기님과의 교류를 위해서 이 글을 썼습니다. 글을 통해서라도 저란 인간을 조금 알아주셨으면 하구요. 앞으론 술을 아무리 많이 드셔도 괜찮겠지요? 다신 저에게 미안하단 말 하지 마십시요. 저도 주군이랍니다. 요즘 아주 절제를 하고 있지만요. 그래도 기분이 좋거나 분위기가 좋으면 진탕 마신답니다. 술이란 세상을 참 멋지게 볼 수 있는 마음을 주더군요. 그것뿐입니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도 하구요. 앞으로 저에게 술 한 잔 권해주시면 감사하게 받아 마시겠습니다.
장문에 글을 올려 주셔서 우선 감사 합니다.
금전산 출발해서 산행 끝날때까지의 추억이 되살아 납니다 .
봄바다님 건강하시고 2월 산행시 그때 술 한 잔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