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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전1:1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철저히 복종해야 하며, 예수께서 살아가신 삶의 방식을 현실 속에서 모방하며 뒤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름만 있고 알짬은 없는 교회가 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올바른 것을 안다고 해서 올바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올바른 가르침은 늘 필요합니다. 에베소 교회도 건강하지 못한 가르침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첫 번째로 비 성경적인 신화와 족보(3-4)가 있었고 두 번째로 잘못된 율법 관(5-8)이 문제였습니다.
The head of the church is Christ. The church must strictly obey the orders of Jesus Christ and follow the way Jesus lived his life in reality. The same can be understood as a Christian. How can we not become a church that has only a name but no meaning? Knowing the right things does not mean living properly, but correct teaching is always necessary. The Ephesus Church was also suffering from unhealthy teachings, first with non-biblical myths and genealogies (3-4) and second with the wrong law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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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의 대적 자들은 그릇된 율법 해석으로 복음의 진면목을 가렸던 것을 에베소서 묵상 때 확인하질 않았습니까? 예수의 명령대로 사도가 된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꾼을 보내 다른 복음의 위험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에베소교회는 신화와 족보에 정신이 팔린 거짓 교사들이 출몰해 공동체에 전혀 무익한 변론만 만들어냈습니다. 이에 바울은 디모데를 통해 그런 가르침을 중단시킴으로써 공동체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갖게 하였습니다.
Didn't the great adversaries of Demode confirm during the Eveso meditation that they covered the true face of the gospel by misinterpreting the law? Paul, who became an apostle at Jesus' command, is sending workers necessary to achieve the experience of God's salvation to announce the dangers of other gospel. False teachers who were preoccupied with myths and genealogy appeared in the Ephesus Church, creating only useless arguments for the community. Paul thus stopped such teaching through Demode, allowing the community to have a clean heart, a good conscience, and love from faith without l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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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거짓교사들 중에는 율법을 가르칠 만한 합당한 인격도, 실력도 없이 자기 가르침의 내용조차 제대로 못 깨닫는 자들이 많습니다. 총신의 김 지찬 교수는 필자가 존경하는 학자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 분의 글 중에 “한국 교회를 멍들게 한, 두 가지 이유에서 "필자가 중고교 시절에 가장 부러워하던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오른편에 매달린 강도였다면서 믿고 천당 가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인데 개털 모자를 쓰던 금 면류관을 쓰던 무슨 대수인가?“ 하고, '값싼 은혜'(cheap grace)를 비판하였습니다.
In fact, there are many false teachers who do not even realize the content of their teaching without the proper personality or skill to teach the law. Professor Kim Ji chan of Chongshin is one of the scholars I respect. Among his writings, he criticized, "I believe that the person who I envied the most in middle and high school was the robber who hung on the right side of Jesus' cross, but what is the big deal about using a gold crown with a dog-hair 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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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상급은 행함으로 받는다고 강조하면서 한국교회는 '값싼 은혜'와 '공로 사상"'이라는 양 극단의 틈바구니에서 지금 멍들어 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구원은 은혜로, 상은 행함으로란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 개념이 동시에 강조되는 혼재 현상이 가능한 것은 율법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율법은 생명을 줄 수 없다. 그것은 단지 범죄를 더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된 것에 불과하다'고 일부 인사들은 주장합니다.
Emphasizing that salvation is received by faith, but by higher level banking, the Korean church points out that it is now being bruised by the gap between the extremes of 'cheap grace' and 'thought of merit'. It seems to me that the possibility of a mixture of two conflicting concepts of salvation by grace and mercifulness by doing so at the same time is due to a misunderstanding of the law. Some people argue that 'the law cannot give life. It was only enacted for the purpose of adding cr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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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율법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면서도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아직도 십일조와 주일 성수를 매우 강조하지요. 최근에 예수교 장로회 합동 교단 헌법 개정안에 “십일조 안 하면, 교인 권리를 중지 시키겠다"고 하니 미친 것 아닙니까? 신약 시대에는 율법 가운데서 도덕 법은 남고 시민법과 제사법은 다 폐기되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들 스스로 도덕 법에 속한다고 인정하지 않는 십일조와 주일 성수와 성전 건축은 강조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은 대관절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While expressing such a negative view of the law, most Korean churches still emphasize the eleven days and the holy water of Sunday. Isn't it crazy to recently say, "If you don't do eleven days, I will stop the right of church members?" How should we interpret the contradiction between the eleven days of the New Testament, which claims that moral laws remain in the law and that civil laws and sacrificial laws are abolished, but do not admit themselves to belong to moral laws, and the construction of the holy water of Sunday and the temple shows a contrad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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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율법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고 주신 것이며, 저주만을 가져다주는 것인가? 결론은 율법을 그릇되게 가르치는 자들의 문제일 뿐 율법은 여전히 악을 제어하고 죄를 정죄하고 성도들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선한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거스르는 죄는 하나님의 영광스런 복음을 좇는 바른 교훈도 거스릅니다. 바른 교훈을 좇을 때 율법의 의로운 요구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의 문제는 율법 준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복음을 따르지 않는 데 있었습니다.
Did the law really only bring curses, as well as to add to the crime? The conclusion is that it is only a matter of those who incorrectly teach the law, but the law is still a good tool for controlling evil, condemning sins, teaching, and exhorting saints. As a result, the rightful lessons of God's glorious gospel are violated when sin against the law. You can fulfill the law's righteous demands when you follow the right lessons. The problem with false teachers was not to insist on complying with the law, but to not follow the gospel of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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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 구원의 은혜를 먼저 베풀고 난 후에, 율법을 지키겠다고 맹세할 수 있는지를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은 자발적으로 주의 뜻이 담긴 율법대로 살겠다고 피로 맹세 하였습니다 (출 24:7-8).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죽음의 저주를 받겠다는 피 맹세 말입니다. 피로 맹세하였기에 언약을 어기면 이스라엘의 생명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율법 자체에서 저주가 나와 재앙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겠다고 맹세를 하였기에,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이 맹세로 인해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The Lord asked Israel if he could pledge to obey the law after giving him the grace of salvation. Then the people of Israel voluntarily swore in their blood that they would live according to the law of the Lord's will (Exodus 24:7-8). If you do not obey the law, you will be cursed with death. If you break your covenant because you swore in blood, your life will be a problem. Because Israel did not obey the law, and it swore that it would not be a disaster because it was a curse from the law itself, but that it would be a curse if you did not obey the law, this oath would be a cur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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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에서 바울이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 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3:10 )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따라서 율법 자체를 저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답니다. 은혜와 요구, 복음과 율법, 선물과 과업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우리에게 율 법을 주시며 절대적 순종과 충성으로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It was for this reason that Paul in the New Testament said, "Those who belong to the law are under curses; those who do not always do all kinds of things as written in the book of law are those who are under curses." Therefore, the law itself should not be understood as a curse. Grace and demand, the gospel and the law, gifts and tasks go hand in hand. After God saved us by grace, he gave us the law and demanded that we obey it with absolute obedience and loyal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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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하나님의 백성은 은혜에 감사하여 율법을 지킬 것을 맹세하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상급은 행위로 받는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겉으로 보면 은혜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값싼 은혜‘ 와 ‘공로 사상’을 부추기는 심각한 폐해가 있기에 필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이미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아무런 보상을 염두에 두지 않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In response, the people of God swore to obey the law with gratitude for their grace and made a promise. The dichotomous idea that salvation is received by faith and superiority is received by action seems to emphasize grace on the surface, but in reality, there is a serious harm that encourages "cheap grace" and "the thought of merit," so I believe that the people of God should keep the law without any reward in mind with gratitude for the grace they have already recei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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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하나님께서 마땅히 우리가 할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상으로서가 아니라 또 은혜로 상을 주신답니다. 은혜를 덤으로 받았기에 감사해서 ‘언약의 주‘ 의 요구에 더욱 순종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저처럼 복음과 율법을 강하게
연결시키는 사람들은 겉으로 볼 때에는 행위를 강조하는 행위 론 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은혜에서 시작하여 은혜로 끝을 냅니다.
Then God rewards us with grace, not as rewards, even though we have done what we deserve. I am grateful that I received grace as a bonus, and I am more amenable to the demands of the Covenant. Therefore, on the surface, people who strongly connect the gospel and the law seem to be actors who emphasize behavior, but in reality, they start with grace and end with 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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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은혜 만으로!’ 를 외치면서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 시키다가, 신자들의 사욕을 채워주기 위해 상급과 보상을 이야기하는 자들이 '행위론 자'가 아닐까요? 바울의 바른 교훈, 거짓 교사와 율법, 죄인과 율법, 값싼 은혜와 천국의 상급 사이를 왔다 갔다 좌충우돌 하는 가운데 점차 깊어 만 가는 한국 교회의 상처는 언제 치료 될 것인가?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눈에 보이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Rather, isn't it the "act theorists" who turn grace into a cheap grace by shouting "Only grace!" and talk about superiority and reward to satisfy the personal interests of believers? When will the wounds of the Korean church, which are gradually deepening amid Paul's correct lessons, false teachers and laws, sinners and laws, cheap grace and heaven's superiority, be cured? How can the church and Christians become the visible king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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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안인사(1-2)
거짓 교훈에 대한 경고(3-7)
a.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둔 목적:3-4
b.바른 교훈의 목적:5
c.거짓 교사들의 모습:6-7
율법의 올바른 사용(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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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구주 하나님과(1a)
우리의 소망이신(1b)
그리스도 예수의(1c)
명령을 따라(1d)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1e)
바울은(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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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안에서(2a)
참 아들 된(2b)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2c)
하나님 아버지와(2d)
그리스도 예수(2e)
우리 주께로부터(2f)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2g)
네게 있을지어다(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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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3a)
너를 권하여(3b)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3c)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3d)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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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끝없는 족보에(4a)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4b)
이런 것은(4c)
믿음 안에 있는(4d)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4e)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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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훈의 목적은(5a)
청결한 마음과(5b)
선한 양심과(5c)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5d)
사랑이거늘(5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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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6a)
이에서 벗어나(6b)
헛된 말에 빠져(6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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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7a)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7b)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7c)
깨닫지 못하는도다(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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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율법은(8a)
사람이 그것을(8b)
적법하게만 쓰면(8c)
선한 것임을(8d)
우리는 아노라(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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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것은 이것이니(9a)
율법은(9b)
옳은 사람을 위하여(9c)
세운 것이 아니요(9d)
오직 불법한 자와(9e)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9f)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9g)
죄인과(9h)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9i)
망령된 자와(9j)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9k)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9l)
살인하는 자며(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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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행하는 자와(10a)
남색하는 자와(10b)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10c)
거짓말하는 자와(10d)
거짓맹세하는 자와(10e)
기타 바른 교훈을 (10f)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1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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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훈은(11a)
내게 맡기신 바(11b)
복되신 하나님의(11c)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1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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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과 믿음의 참 아들 디모데_Paul the Apostle and Demode the True Son of Faith_
다른 교훈이 아니라 참 교훈_It's not a lesson. It's a lesson_
살리는 율법과 죽이는 율법_The law of living and the law of killing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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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진리를 분변 할 줄 아는 분별력을 주셔서 구원을 이루어 갈 수 있게 하옵소서. 때론 내 귀를 현혹케 하는 가르침들을 경계하되 사랑의 원리가 여기에도 적용되게 하셔서 세월을 낭비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Lord, give me the discernment to speak the truth so that I can achieve salvation. Be wary of the teachings that sometimes mislead my ears, but let the principle of love apply here, so that I do not waste time and live for the gospel.
2024.11.1.fri.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