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벙커를 피하지 않았어요. 정면 돌파로 페어웨이 온! 이제 홀인을 준비합니다”
골프 코스를 돌 때, 발에 밟히는 잔디의 기분이 좋다. 따뜻하게 내려쬐는 햇살이며 기분 좋게 머리를 날리는 바람, 그리고 시원하게 하늘을 가르는 하얀 공. 그녀에게 있어 골프는 환상이다. 그 파라다이스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했던 난관. 골프 코스의 벙커만을 골라 돌아 끝내 홀인시킨 LPGA 티칭 프로 최혜영의 ‘삼삼한’ 터닝 포인트 성공기를 들어본다.
아름다운 이름, 도전
터닝 포인트로 골프를 만나다
방황의 끝은 찬란했다. 지나온 길을 방황이라 폄하하기에는 그녀의 현재가 너무도 화려한 장밋빛이다. 결국 그녀의 방황은 실험이었고, 그 실험은 보기 좋게 성공한 셈이다. 미국여성프로골프협회(LPGA) 티칭 프로인 최혜영(43)이 바로 그녀다.
선수 경력이 전무하다. 대학에서의 전공이 아동학이다. 그림 공부를 하고 싶어 6년 정도 유럽에서 방랑 화가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이제 최고의 골프 지도자로 우뚝 섰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골프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제 인생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섰지요.”
1992년 우연하게 잡은 골프채가 그녀의 터닝 포인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느낌 팍! 골프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1993년 봄 샌디에이고로 날아갔다. 미국에서 최초로 설립되었다는 샌디에이고 골프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실기는 물론 골프장 경영에서부터 골프채 수리까지 골프의 모든 것을 가르치는 비즈니스 전문대 과정이 있는 학교다. 특히 그곳에는 외국인 학생을 위한 AGT 프로그램(비정규과정)이 있었다. 이곳에서 골프 코스와 클럽 디자인을 공부하려 했다. 디자인이 되는 그림을 골프에 접목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지금도 어렵지만 당시 나이가 33세로 미혼 여자였으니 모두들 비자 받기가 어려운 것이라며 잔뜩 겁을 주었다. 하지만 비전을 본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대사관 비자 심사에서 “미국에서 골프 제대로 배워 한국 골프계에 이바지하고 싶다”고 자신감 넘치게 한마디 했더니 선뜻 비자를 내주었다.
샌디에이고는 로스엔젤레스에서 남쪽으로 2시간여 자동차로 달리면 나오는 곳으로 인구 110만 명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다. 주거환경이 쾌적하기로도 유명하다. 특히 미 해군본부가 있고 각종 해양 연구소가 들어서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양공원 씨월드(Sea World)가 있는 곳이다.
게다가 캘러웨이(Callaway), 테일러메이드(Taylor Made), 타이틀리스트(Titleist), 코브라 (Cobra) 등의 대형 골프채 생산업체와 1백여 개에 이르는 아름다운 골프장이 있어 명실상부한 미국 골프의 중심 도시다.
그 아름다운 곳에 도착해서부터 문제는 시작되었다. 의욕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었다. 영어 실력과 골프 실력이 기본은 되어야 제대로 된 비즈니스 프로그램에 들어 갈 수 있었다. 5백점 이상의 토플 성적과 핸디 12 이하의 실기 실력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영어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실기는 막막했다. 그녀의 실력은 기준에 턱도 없이 모자라는 핸디 25(한 홀당 평균 4번의 타로 홀인시켜야 한다고 봤을 때, 18홀 총타수는 71~72가 기본. 그 타수를 줄이면 언더 파가 되고, 타수가 넘치면 오버 파다. 그런데 오버파가 25개나 된다는 것. 한마디로 잘 치지 못한다는 뜻). 고행이 시작되었다. 새벽부터 밤까지 골프장에서 살았다.
스스로를 단련하는 ‘가학적인’ 골프 연마가 이어진 것이다. 각고의 노력이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이가 많은 것도 핸디캡이었고 적지 않은 한국 학생 중에 ‘나 홀로’ 여학생이란 것도 부담이었다. 키는 160cm로 어느 하나 골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돼 보였다. 게다가 실력은 바닥이었으니… 오죽했으면 가르쳐주던 사람도 지쳐 나가떨어져서 혼자서 연습했을까.
성공의 묘약, 핸디캡
죽을 힘을 다해 6개월만에 완성하다
주로 랜초 샌디에고 골프장에서 연습했는데, 손에 물집이 잡히고 살갗은 햇볕에 타다 못해 벗겨졌다.
“제가 골프를 시작할 때만 해도 미국에서도 동양 여자가 골프하는 모습이 무척 이색적이었나봐요. 더구나 하루 종일 일도 안 하고 골프장만 왔다갔다 하니까 ‘너네 나라 왕족이냐고’ 물어서 생긴 별명이 ‘프린세스 초이’예요.” 하루 종일 얼마나 홀을 돌았던지 발가락에 티눈이 박일 정도였다. 신발도 신을 수 없는 고통이 엄습하고 나서야 수술 계획을 잡았다. 우스운 것은 얼굴이 얼마나 까맣게 탔던지 발가락 수술을 하러 한국에 돌아오는 길에 대한항공 승무원이 외국인으로 오해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미친 듯이 하다 보니 그해 가을 2년제 정규과정에 입학할 정도의 실력을 쌓았다. 반년만에 이룬 성과다. 주말 골퍼라면 5년은 족히 걸려야 이룰 수 있는 성과였다. 그리고 95년 8월 이 학교 졸업식에서 영예의 골프 코스 디자인 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다. 강의실과 도서관, 그리고 골프 코스만 바라보고 산 결과였다.
그러나 ‘제대로 골프를 알아야 디자인이 되겠다’ 싶어 시작한 골프에 푹 빠지게 되었다. 다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티칭 프로가 그것이다. 이미 재학중에 월리 암스트롱 티칭 시스템, USGTF 등에서 티칭 프로 자격증을 따냈으며, 졸업과 동시에 LPGA 멤버십을 따내기 위한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LPGA의 티칭 앤드 클럽 프로페셔널 디비전은 1959년 설립된 티칭 디비전이 1992년 개칭된 기구로, 미국, 캐나다, 일본에 걸쳐 약 1천1백 명의 멤버가 가입돼 있다. 이중 아시아인은 1% 미만으로 한국계는 미국 시민권자인 수잔 김, 크리스티 박 등에 불과했다.
“티칭 프로는 무엇보다 스스로 연습하고 연구하며 늘 노력해야 해요. 또 스윙 테크닉을 가르치는 것 못지않게 학생들의 장단점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대화술이 필요하고요. 이를 위해서는 골프 관련 지식은 물론 스포츠, 문화 등 각 분야에 걸친 시사 상식이 풍부해야 합니다.”
LPGA 티칭 프로는 단계별로 크게 어플렌티스(Apprentice), 클래스 B, 클래스 A, 마스터 프로페셔널로 나뉘어 지는데 단계 단계를 거쳐 지난 2000년 말에 한국 국적을 가진 최초의 클래스 A 멤버가 되었다.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당시 성적도 역대 최고의 성적이었다. 클래스 A 자격을 취득했기 때문에 정규적으로 학점만 이수하면 지금은 티칭 프로로는 최고의 지위인 ‘마스터 프로페셔널’을 자동으로 얻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련했어요. 골프라는 게 무턱대고 열심히 친다고 해서 빨리 늘지 않는데… 올바른 스윙 연습으로 골프에 필요한 근육을 개발해야 하거든요. 온몸이 아파 어찌나 ‘쿨’ 파스를 많이 발랐던지 시퍼렇게 물든 팔 때문에 흰옷도 못 입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책을 냈어요.”
그녀는 얼마 전 좥최혜영의 반대로 하는 골프좦(시공사 간)를 펴냈다. 가이드북으로 골프 교육의 제대로 된 지침서를 만들기 위함이다.
성공의 나침반, 터닝 포인트
최고가 되려면 끊임없이 변화하라
앞서 얘기했듯 최혜영은 오늘의 자리에 서기까지 너무 많은 길을 돌아왔다. 곳곳이 벙커였지만 포기하지 않은 삶이었다. 2남2녀 중 귀여움을 독차지한 막내딸로 유복한 환경 속에서 오로지 공부밖에 아는 것이 없었고 공부가 인생의 모든 것이라 믿었다.
어릴 적 꿈 역시 판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전교 1, 2등을 다투는 공부벌레들이 꾸는 천편일률적인 꿈을 꾼 것이다. 그러나 넘치던 자신감과 판사로의 일편단심 꿈은 재수를 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공부가 전부가 아님’을 실감하고 아동심리로 전공을 바꾸어 그 다음해 연세대 가정대 아동학과에 수석 합격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은 여전해 사법시험을 준비하려고 행정학을 부전공으로 택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꾸 그림에 끌리는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어려서부터 틈틈이 그려보던 그림 솜씨가 주위의 시선을 모았고 대학 그림 모임에서 그 재능을 인정받아 혼자서 취미로 그리던 것이 남을 위한 그림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유럽행이었다. 졸업을 하는 막내딸에게 결혼을 하라는 부모의 말씀은 들리지 않았다. 겁도 없이 “유명한 화가가 되어 돌아오겠다”며 길을 떠난 것이다. 이미 다른 꿈을 꾸기 시작한 그녀를 잡아두기엔 주위의 만류도 역부족이었다.
그런 그녀의 성격을 모르는 바 아니었기에 부모님은 끝내 막내딸의 결정에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생길 때, 그때 시작하라”는 것이 어머니의 말이었다. 마흔 여섯의 나이에 얻은 막내라 뭐든지 딸의 뜻을 따라주는 무조건적 사랑이 든든한 ‘빽’이 되었다. 아버지는 유언으로 “무엇을 해도 좋다.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는 말만 그녀에게 남겼다고. 그렇게 유럽으로 떠난 것이 86년이었다.
유럽에서의 6년은 세상을 보는 눈높이를 키운 시기였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의 시골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던 중 우연히 본 골프장의 아름다운 녹원을 화폭에 담아 보기는 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골프가 직업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인상주의 화풍이 인기가 있었던지 그림을 그려 팔아 생활하는 데도 돈 걱정은 하지 않았다.
“너무 좋았죠. 평화롭고 자유스러웠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한편으론 더 늦기 전에 무언가 이루고 싶다는 성취욕이 날 조급하게 했어요. 그림도 잘되는 것 같아 욕심도 생겼고 자신감도 붙어 일단 한국으로 돌아가 평가를 받고 싶었죠.”
하지만 한국에서 의욕적인 출발을 알린 전시회에 대한 평가는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화풍이 아니란 것이다. 그림을 그리려 해도 ‘국내 배경이 없으면 곤란하다’는 질책에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음을 정리할 겸 골프장을 찾았고 우연히 잡은 골프채에서 희망을 봤다.
삶을 채근하는 채찍, 기록
성공을 위해 잃는 것과 얻는 것
그러나 그 희망은 절망의 극복이란 과제를 풀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한밤중 골프장에서 골프카를 몰다 개천에 빠져 혼자 꺼내려다 지쳐 엉엉 울던 때 절망했고 발가락 티눈 제거 수술을 받고도 골프를 쳐야 하기에 남자 신발 한짝을 신고 필드로 나가던 때 희망을 봤다. 새로운 골프코스가 생기면 언제나 지도 한 장 들고 찾아 나섰던 일이며 파김치가 된 몸으로 돌아와 다음날 과제를 마치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새며 책과 씨름하던 날들. 바로 희망의 꿈을 올곧게 세우게 한 시간들이었다.
언제나처럼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주니어 골퍼들을 위한 골프 아카데미 설립도 그중 하나이고 박세리, 김미현 등을 꿈꾸는 유망주들을 LPGA로 진출시키고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 KLPGA와 US LPGA의 교량 역할도 그녀의 몫이다. 언제나 그녀의 미래 설계는 골프를 위주로 짜여 있다. 그렇다면 결혼이라는 생활인으로서의 미래 설계는 어떠할까.
“결혼이요? 기회가 몇 번 있었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제가 하던 일에 너무 몰두 하다 보니 선뜻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어요. 공부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골프가 어느덧 인생이 되어 버렸네요. 이제 제 인생이 된 골프를 벗 삼다가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결혼하고 싶어요. 저를 잘 이해해주고, 저를 잘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이라도 할 겁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혼기는 놓쳤지만, 그동안 이뤄온 많은 기록들이 오히려 삶을 채근하는 채찍이 되었다며, 활짝 웃는다. 그린 위의 프린세스, 늦깎이로 시작한 골프로 이제는 최고가 된 그녀의 성공 비결은 낯선 ‘벙커’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이었다.
최고의 티칭 프로 최혜영이 말하는 파격적인 스윙 이론
▶어드레스 - ‘무릎을 굽혀라’ ‘기마자세를 취하라’는 것은 잘못된 가르침이다.
올바른 어드레스는 바로 선 상태에서 엉덩이를 빼고 허벅지를 앞으로 살짝 내미는 것이다. 무릎을 많이 굽혀 내밀고 힘을 주는 것은 금물이다. 무릎에 가볍게 탄력을 주면서 발 안쪽 상단부의 튀어나온 부분에 무게를 실어주어야 한다.
▶그립 - 클럽은 물건을 잡는 것과 똑같이 잡아야 한다.
물건을 집을 때는 손등이 하늘을 향해 있다. 클럽에 처음 왼손을 댈 때 손등이 하늘을 향하게 잡는 것이 편안하고 좋은 그립이 된다. 그러나 많은 골퍼들은 손바닥을 하늘로 해 클럽을 잡은 뒤 손을 틀어 감싸쥔다. 이러한 ‘팜’그립은 바람직하지 않다. ‘핑거’그립이 좋다. 잡을 땐 치약을 짜듯 소프트하게 해야 한다.
▶백스윙과 다운스윙 - ‘백스윙은 천천히 느리게 하라’는 것은 스윙의 스피드, 리듬, 타이밍을 파괴시키는 원인이 된다.
백스윙은 가볍고 빠르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확 올려 빠르게 하는 것은 아니다. 클럽을 들어올리면서 천천히 하면 본능적으로 다운스윙의 시작이 빨라진다. 그러면 파워손실이 크고 토핑이나 뒤땅치기가 나온다. 어떤 교습가들은 톱에서 잠깐 멈추라고 한다. 이는 백스윙을 느리게 시작한 잘못을 다운스윙시 교정하려다 나온 ‘억지이론’이다.
▶임팩트 - 임팩트 때 힘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강요다.
임팩트는 힘을 가장 많이 뺀 채 편한 상태로 이뤄져야 한다. 마치 회초리를 휘두를 때를 연상하면 된다. 또 지렛대 원리를 생각해보자. 몸이나 팔에 힘이 들어가면 클럽의 헤드 무게는 가벼워져 공보다 위로 향하게 돼 토핑의 원인이 된다.
▶피니시 - 오른손잡이의 경우 몸의 왼쪽 부분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왼팔로 볼을 치는 것처럼 알고 있다.
물론 왼쪽 부분이 약하면 좋은 스윙이 안된다. 그러나 오른팔과 왼팔을 동시에 사용해 볼을 쳐야 한다. 몸의 왼쪽 부분이 몸을 리드해 오른쪽 부분이 실제 공을 치는 역할을 해야 올바른 피니시 자세가 나온다. 테니스의 포핸드 스트로크를 연상하면 몸의 오른쪽 부분에 대한 중요성이 이해될 것이다.
글 / 강석봉 기자 사진 / 강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