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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강을 앞두고 스튜디오가 분주합니다. “민들레영토”에서 본 생명나무인데 요새는
롤링페이퍼를 요따위로 앙증맞게 하나 봅니다. 종강이라고 저마다 감격의 순간을
떠올렸는데 호란 이는 도올 샘과 뚜엣 한일, 보라는 프린스턴 정교수랑 막 춤 춘
일이라네요, 저는 오늘 고구려의 패러다임을 듣고 도올 샘이 시를 낭독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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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같은 뭉클한 환희와 감격이 내 온 몸의 피를 지펴주었고
해모스와 하백의 핏줄 그 천손의 포효를 이야기할 때는 기어이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습니다. 2002년 월드컵이후 죽기 전에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것 같은
그 벅찬 감격의 절정을 말입니다. 한복입고 나온 도올 샘이랑 셀 카 한번 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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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시작합니다.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오늘 게스트는 이 원우(학생), 김 지훈(배우)
두 명입니다. 고구려 패러다임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도올 셈은 고구려사람들이
대장부(大丈夫)랍니다. 대장부의 일본어 뜻은 괜찮다는 말인데 내가 생각하는 대장부란
맹자의 등용문편에 나오는 말로 나는 젊은 날 이 대장부를 읽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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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천하의 넓은 집(仁)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禮)에 서며,
천하의 대도(義)를 행하여, 뜻을 얻으면 백성과 함께 도를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며, 부귀가 마음을 방탕하게 하지 못하며, 빈천이 절개를 옮겨놓지
못하며, 위무가 지조를 굽히게 할 수 없는 것, 이를 대장부라 이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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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대장부, 젊은이들이여! 이시대의 대장부가 되라! 짝. 짝. 짝. 멋진 말입니다.
저도 꼭 대장부가 되겠습니다. 고대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막막한 일, 통사가 없으니
한국은 고대사가 없답니다. 또한 역사를 역사가의 손에 맡긴다는 것처럼 비극이 없는데
대부분의 현존하는 한국역사는 일본 어용단체에 의해 써졌다고 하니 한심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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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은연중에 중원이 중국의 중심으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동북사람들은 자기들이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절대 변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동북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도 모두 우리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일본 국왕은 모두 백제 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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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만 읽을 것이 아니라 동시에 “중국역사서“ “일본서기(660-720)“ 로 우리 역사를
읽어야합니다. 도올 샘은 현재 고대사를 놓은 초기 단초로 김부식과 일연을 지목합니다.
먼저 삼국사기의 김부식은 신라의 경우 통사로 접근 집필하나, 훨씬 더 강력했던 고구려의
경우 거란이나 요와같은 제후들의 역사로 치부하여 집필 했습니다. 다시말하면 고구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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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을 요와 똑같은 외세로 보았다는 말입니다. 일연의 삼국유사의 경우 고구려에 대한 엄격한
현실적인 역사가 아닌 신화로 인식하게 되어 우리 스스로를 비하시겼다는 문제를 지적합니다.
현대 663년 “백촌 강 전투” 때 대함대가 백제와 연합군 형성을 한 기록이 일본서기에 있습니다,
일본서기는 삼국사기보다 더 빠릅니다. 역사의 기록은 후대에 기록하기 때문에 왜곡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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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데 동북공정과 관련한 역사 왜곡에는 왜놈들의 의도적인 전략이 있다는 말입니다.
중국에서 만든 중국지도를 보면 대륙이 아무리 커도 척박한 땅입니다.
자세히 보면 문명의 발상지는 중원과 동북지역인데 중국의 중심지는 필연적으로 하나의
영역이었던 한반도 고조선입니다. 동북공정이 무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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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東北工程)은 중국 동북부 지역의 동북 3성(헤이룽 장성, 지린성, 랴오닝성)에서
일어난 과거 역사와 그로 인해 파생되어 나온 현대사와 미래사의 현황에 관련하여
2002년 초부터 5년 계획으로 랴오닝 성을 중심으로 2007년 초까지 한국과 중화인민
공화국의 격론을 겪으며 강력한 반발 속에서 추진되었고 그 뒤 2007년 이후 몇 년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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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강사지중심에서 단행된 한국사 왜곡 정책을 뜻하지만 도올 샘은 단순히 영토문제가
아니라는 말 같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이 고구려 패러다임이라는 것은 단지 우리가
동북동 베이라고 하는 영토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시국에서 거대하게 놀 줄 아는 그
인식구조. 그리고 자기를 희생할 줄 알고 여민동락할 줄 아는 이러한 어떤 가치관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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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가 왜곡되어 왔는데 이런 것을 역사교과서를 조작한다고 하는 이런 발상까지
지금 조잡하게 흘러가고 있고. 그러니 이것은 내 생각으로는 우선 우리나라의 학문이
새롭게 깨어나야 할 것입니다. 비전이 없으면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글로벌 비전을 가진 사람이 우리나라 정치를 해야 되는데 정치적 리더십이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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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저열합니다. 고구려 패러다임은 크게 양방향인데요. 하나는 대륙의 중심이었다고
하는 자부심, 자긍심과 글로벌 비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는 김 부식이라는 분이 삼국사기를 쓰면서 토대로 했던 그 원
자료들이 남아있다면 분명히 어디엔가 저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남아있다면 참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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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겠지만 그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고대사 전반에 걸쳐서 김 부식의 삼국사기에
누구든지 일단은 의존을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을 일연선사께서 보충하셨다고 해서
빠진 일들을 적어놨다는 ‘삼국유사’라는 책이 있고. 그 이외로 우리가 많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한 부차 자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 부식이란 사람은 우선 삼국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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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 그 자기가 쓰고 있는 역사의 현장을 발로 밟아봤느냐.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은 기본적으로 삼국사기라는 문헌은 기존하고 있던 중국 역사 자료들을
가지고 구성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쓰는 방식을 보면 우리가 예를 들면 고구려
건국설화입니다. 그러면 하백의 딸이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알을 배게 돼서 잉태를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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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설화가 나오게 되고. 그래서 알에서 깨어난 그 아기가 아주 영민하고 활을 잘 쏴서
주몽이 됐고 그러다가 그 전 부인의 소생들이 거기에 있는 원래 왕후 소생들의 왕자들에게
이제 미움을 받아서 어떻게, 어떻게 피난을 가게 됩니다. 그런데 강에서 어떻게 건너려고
하는데 그 거북이가 떴습니다. 예를 들면 그러한 거북이가 떠서 건넜다 하는 것도 우리는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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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겨우 말을 타고 가는데 그 거북이가 건너서 한 것하고 이런 것도 imagination
합니다. 예를 들면 모세가 홍해를 건넜다고 할 때는 굉장히 장쾌한 그림을 그리는데
쫙 갈라지는 것 하고, 거북이가 이렇게 뜨면서 몇 명이서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빠질 듯이
하면서 건너가는 사건은 스케일의 차이가 있습니다. 서너 명이 건너가서 흘승골성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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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에 와서 도읍을 했는데 우리가 그런 것을 이야기할 때 옛날 신화에서 알에서 깨어난 사람이
어디 가서 북부여에서 내려와서 무슨 건국을 했다고 한들 조그만 초가집 몇 채 지어놓고
건국이라고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신화의 현장을
내가 가봤을 때 충격이라고 하는 것은 최초의 흘승골성의 성터의 규모가 우리가 맨 날 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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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북한산성이 규모란 말이에요. 그러면 그 북한산성을 지으려면 그걸 몇 명이
가서 내려와서 지을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럼 이걸 내가 어떻게 해석해야 되느냐. 실제로
가보니까 왕 궁터가 다 있고 그 주변에 자그마치 이집트의 초기 피라미드와도 비견할 수
있는 무덤들이 무덤 대가 자그마치 2만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 장쾌한 신을 봤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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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우리가 몇 사람이 알에서 깨어나서 어떻게 뒤뚱뒤뚱 걸어서 초가집 몇 집
지어놓은 걸로 고대사를 일본 사람들이 왜곡해놓았습니다, 이런 문제를 떠나서
너무도 어마어마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단지 신화적 표현에 의해서 망각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전혀, 칼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그야말로 그 신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역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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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하부구조. 그게 몇 수십만 명이 동원된 성터며, 그리고 그걸 짓기에 얼마나 비옥한
땅이 필요하며 그 생산량이 어땠는가 하는 것을 현지에서 내가 보면서 와. 이건 내가
역사를 너무 나이브하게 잘못 알았다. 결국 기존에 우리가 의존했던 삼국사기, 삼국유사
이런 것들은 결국 현장을 보지 않고 중국 역사서에만 의존해서 쓰다 보니까 그렇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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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니다. 그러니까 제1의 문제는 신화적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어떤 당대로서는 별
부담 없는 표현양식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걸 그 신화적 양식을 비신화화해서
우리가 해석을 해야 되는데. 그 신화의 우리가 신화로써 받아들이고 속는다고.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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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런 막연한 편견이 사실 없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 지역에 살면서 보니까 자그마치
그 고구려의 옛 성터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 그 지역에 한 200여 군데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규모가 아니에요. 그래서 그런 데를 틈틈이 나는 대로
가보면서 고대사로부터 역사를 생각하다 보니까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될 뿐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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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도 다시 바라보게 됐고 나아가서는 인류의 역사, 총체적인 새로운 비전을 나는
획득했습니다. 결국 현지를 가보지 않은 사가들의 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우선 부정확
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단재 신 채호 선생도 저보다 꼭 100년 전에 가셨는데.
100후 제가 가서 본 자리를. 그런데 그 양반도 거기에 딱 서서 하는 말이 삼국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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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광개토 대왕까지의 대수하고 광개토 대왕 비에 있는 대수가 다릅니다.
그럼 이런 것 제대로 규명하려면 건국은 무슨 한 200년 올려야 됩니다. 그 현장에 와서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나거든요. 그러니까 그러한 일들이 고구려의 건국이 그러한
식의 건국. 그러니까 흘승골성만 아니라 한 40년 있다가 국내성으로 옮기게 되고 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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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성을 만들어지고 그 주변에 뭐 평양이란 것도 있고 다 그런데. 그런 모든 것이 역사,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규모가 아니라고 할 적에는 그 지역이 이미 고구려가 생으로 와서
건국한 것이 아니라 그런 건국을 가능하게 하는 고구려 이전의 토양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막연하게 우리가 고조선이라는 말로 깔아놓고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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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것은 고대사의 문제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말하는 하부구조의 문제라는 얘기죠.
심지어 우리는 신화를 신화로서만 치부해서 이것은 역사 이전의 것. 이것은 역사가 아닌
것. 이렇게 한 경향도 있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신화는 그 당시 신화적으로 표현됐을 뿐,
분명한 역사였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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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그건 엄연한 방대한 민족이동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북부여에서 내려왔다는 말을
자기들이 비문에도 얘기를 하니까. 그러면 지금 광개토 대왕 비라고 하는 건 지금부터
정확하게 1601년 전의 것인데. 제가 갔을 때 1600주년 기념이거든요. 여기서 1600년에
바로 그 자리에 장수 왕이 세운 그 자리에 여태까지 있습니다. 그건 참 기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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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들이 그걸 왜곡을 하기 위해서 시라토리라는 동경대학 교수가 그걸 옮기려고
함대까지 대놓고 그런 짓을 했었는데 결국 못 옮겼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 자리에 있는데
그러면 최소한 광개토대왕비만 해도 우리가 그걸 전체를 읽어야지, 거기서 일본이
‘도해파백잔’이니 이런 몇 개 줄을 놓고 아무리 싸워봐야 소용없다는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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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광개토대왕의 비라고 하는 것은 중국 역사상 그렇게 방대한 비가 없고 자수가
그렇게 많은 고대 석비는 없는데. 그 전체를 우리가 하나도 모르잖아요. 몇 구절에 대해서
무슨 논란이 있다. 이런 문제가 아니란 말이죠. 이 전체를 우리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말이죠.
결국 신화로 존재했던 고조선도 실체이고 그것으로부터 시작된 고구려의 역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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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보자는 말 같습니다. 저도 강력히 지지합니다.
고조선이란 말도 우리가 잘못 쓰는 건데 조선왕조에 대해서 ‘고’자를 쓰는 것이지,
옛날에는 그걸 그냥 조선이라고만 나옵니다. 그러니까 사마천의 사기에도 조선조가 있고
그러니까 뭐냐면 조선이란 이름은 중국 역사서에 항상 저쪽으로 동북방 아니면 이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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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반도에 걸쳐서 동북방에 있던 거대한 문명세계라고 하는 전제가 항상 있는 겁니다,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중국 중심의 역사관 내지 역사서에 의존해서인지 게다가 또
이중으로 일본의 어떤 식민사관으로 덧칠이 돼서인지 그걸 애써 부정하거나 찾으려고
하지 않거나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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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뭐냐면 일본 사람들이 쓰는, 그래서 일본 사람들의 대부분이 경성제국대학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은 서울 대 학파들 그리고 그래서 위에서 흘러나온 오늘의
대체적인 역사학파들은 일단 소위 말해서 조선왕조가 압록강, 두만강 이남으로 정착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모든 역사를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반도로 우리가 꼭 쳐놔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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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말이 안 되는 것이지. 당태종이 고구려하고 싸울 때만 해도 조선 지금 우리가
말하는 조선 반도가 아니고 방대한 요동지역이란 말이에요. 전쟁터 자체가 백암 성이고
안시성이고 요동성이고 모조리. 그러면 지금 그리고 중국에서 여기 한반도까지는 너무
멀어요. 그러니까 누구를 책봉하든 사신을 보내든 대개 사람이 넘어오면 바로 있는 나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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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으로 했겠지, 여기까지 올 리가 없습니다. 이런 상식적인 얘기를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지 못 했다 하는 것은 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뭐냐면 한국
사람들은 진취성이 없고. 이 조그만 데 붙어서 큰 것을 섬기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사대’라는 말이 나온 거죠. 그리고 그저 당파싸움해서 그 속에서 오글오글 서로 싸움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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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분열하고. 지금도 사실 야당, 여당이서 싸움박질 하는 것만 부각시킬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힘을 합쳐서 더 건강한 미래를 만들도록 우리가 모든 이 사태를 볼 수도 있는 건데.
일본 사람들은 왜 당파싸움도 그저 너희끼리 싸움박질 한다. 그런 것을 고구려, 백제, 신라
간에도 그저 서로 대립관계로만 봤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건 우리가 민족적인 거대한 동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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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찾아가는 하나의 거시적인 흐름에서 일어나는 전체적인 그림을 안 봤을 뿐 아니라
지역적으로 뭐냐면 대체적으로 고구려는 북부여에서 갈라져 나오는데 북부여라고 하는 것은
대흥안령을 기준으로 해야 되는 거고. 그래서 함 석헌 선생이 ‘뚜벅뚜벅 젊은 층들이 돌도끼를
손에 들고 우뚝우뚝 불끈 쥔 팔뚝을 저 하늘을 박차고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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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그러고 대흥안령 꼭대기에서 만주벌판을 내려다보면서 아마도 우리의 역사의
시작은 이러했을 것이다’ 나는 그 어렸을 때 함 석헌 선생이 이 구절을 내가,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읽었을 때 얼마나 감동을 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런 거대한 대흥안령 이래로 조선반도에까지 뻗치는 전체 영역을 우리 역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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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으로 하고 있었다. 이 명백한 사실은 왜곡하지 말자. 이것이 고구려 패러다임입니다.
그 고구려 패러다임의 중요성은 뭐냐 하면 예를 들면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진, 광개토대왕이란
분의 일생은 연도가 정확하고 주변의 모든 것은 실존인물이란 말이에요. 도올 김용옥 같이
그냥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광개토대왕의 치적을 써놓은 것이 광개토대왕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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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를 숭상하기 위해서 왜를 치적해서 세워놓은 것이 아니잖아요.
당연히 주어가 광개토대왕이 되고. 이런 거 해석할 때 너무 명백한 전제들이 있는데 그
당시 중원의 끊임없는 모용 씨라든가 선비족이니 이런 사람들과 끊임없는 교섭이 있었는데,
전투도 있었고. 그런데 광개토대왕비에는 하나도 그 언급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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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비 전체에 언급이 되는 것은 전부가 백제, 신라 그리고 동부여가 나오고 하여튼
그런 가야 비슷한 것도 나오고 하여튼 이쪽으로만 그 방대한 업적이 나온단 말이에요.
그리고 그다음에 장수 왕 때에 세워진 뒤로 우리가 충주 비라는 것이 그 동시대비들이거든요.
그래서 중원비도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본다면 이들은 바로 저 바이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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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부터 대흥안령을 거쳐서 백두산을 거쳐서 이 한라산까지 뻗치는 이 어떠한 지세로
말한다면 이 전체 지역이 하나의 세력권입니다. 세력권일 뿐만 아니라 이것이 중원이었고
이들에게서 이것이 중추였고 지금 우리가 말하는 하, 은, 주의 이쪽, 중국의 중원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 변방이었다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이런 지도를 놓고 볼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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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거꾸로 여기가 중심이고 하북 성, 하남 성 지역 이쪽으로가 중심이고 여기에는
어디 작고 후미진 데.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보면 중국 지도를 이 지형으로 놓고 보면
사실은 이 동북지역이라는 것의 이 광활한 땅이 중원 땅보다 오히려 더 넓거든요, 실제는.
저도 그 지도를 지금 보고 있습니다만 만주벌판을 중심에 놓고 거기서 한반도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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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거꾸로 그려놔서 거기가 중원이요, 중심이다. 지금 중국이 자기들이 중심이라고
말하는 그쪽은 오히려 만주벌판 중심으로부터 오른편의 변방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한반도 북부인 만주 벌판이 아주 평평한 초록색입니다. 그리고 중국 대부분의
지역은 아주 높은 고원이나 산맥지대, 사막지대고. 지금 상해나 이쪽, 중국의 동남부지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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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평야지대인데 지금 도올 선생님께서는 중국의 동남부 평야지대보다 만주벌판 저쪽의
평야지대가 더 넓고 수확량도 크고 인구도 많았다. 저게 중심이었다는 말입니다.
갑자기 막 가슴이 통쾌해지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으면
모르겠습니다마는 신라가 통일한 것으로 되어 있고 그리고 또 그 후에 고려 그 후에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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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서 우리의 역사는 자꾸 한반도 쪽으로 내려왔단 말이에요.
이것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 아니겠습니까? 그건 어떻게 합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역사에서 이제 함 석헌 선생님이 하버드 대학에 노벨상 후보로 추천이
돼서 오셨을 때 우리 집에 머무셨는데 원래 함 석헌 선생님하고 저하고는 씨알농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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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에서 하셨기 때문에 우리 집이 천안에서 큰 병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뵀던 분이라서. 그런데 그때도 함 석헌 선생님 모셔놓고 거기 하버드대학의 유학생들끼리
모여서 우리 집에서 대 토론회를 했었거든요. 그때 토론회의 주제가 뭐였냐면 함 석헌
선생은 고구려를 잃었다는 것이 우리 민족의 최대 비극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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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생들이 그래도 만약에 고구려가 통일을 했으면, 조선 반도가 이게 그냥 산동성과
같은 고려성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을 중원으로, 더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여태까지
그 민족들은 살아남은 민족이었습니다. 이 중원이라는 용광로 속에서 전부 녹아서 자기
아이덴티티를 상실합니다. 그러니까 고구려가 통일했으면. 오히려 조선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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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통일이라는 것이 귀한 것 아닙니까? 함 석헌 선생님한테 그런 질문을 던진 거죠.
그래서 우리 민족의 아이덴티티를 그래도 신라가 지킨 겁니다. 어떻게 됐든 다른 나라를
끌어들였든 뭐했든 다시 당을 몰아냈고 그렇게 해서 그 명맥이 그래도 조선왕조까지 와서
오늘 우리가 있는 것 아닙니까? 예를 들면 로마 정신을 지금 루마니아가 다 갖고 있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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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면 로마의 그 정신이란 건 예를 들면 로마법이라는 것이 사실 로마
문명의 최고인데 그러면 서구문명에 내려왔기 때문에 예를 들면 미국의 유명한 사가가
로마 사를 쓸 적에 그거를 자기 역사로 쓰지, 무슨 이상한 남의 나라 역사를 쓰지는 않는
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과거사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가져갈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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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이 고구려의 역사를 계승한 사람들이 우리라는 것이죠. 신라가 통일했든
뭐가 됐든지 간에 그 정신의 기승은 우리지, 중국에서는 아무도 고구려를 말하는 사람이
없고. 동북공정을 말하는 사람조차 ‘우리 조상님들인데’ 이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동북공정은 아무리 해봐야 할수록 좋은 거예요. 왜냐하면 하면 할수록 우리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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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료들이 많이 나오니까 우리한테 이득이에요.
문제는 제가 이제 거기 가서 깨달은 것은 뭐냐면 거기 가면 미천 왕의 능이 있어요.
그게 고국원 왕이라는 사람이 상당히 모용 씨들한테 당해서 아버지 무덤을 파헤침을
당하는 비극을 당하는데. 그게 파헤쳐진 대로 지금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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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원에 대한 악랄한 복수를 하지 않고 이분이 축을 평양으로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광개토대왕이 이쪽으로 개척을 하고, 장수 왕이 이러면서 뭐냐 하면
평양으로 이 지도를 놓고 보면 이 조선 이쪽으로 후퇴를 한 것이 아니라 진출을 한 거예요.
평양 쪽으로 더 진출을 하고 자기 영역을 넓힌 거죠. 망할 때까지 요동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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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그러니까 어떤 의미로든지 예를 들면 이 평양 천도라는 사실이 우리 민족의
가슴에게 고구려 정신을 남기는 위대한 사건이었다는 거죠. 그럼으로써 집 안에서 있다가
집 안에서 끝났다고 한다면 중국인들이 우리 변방의 역사일 뿐이라고 얘기를 해도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구려는 이 백제, 신라와 이미 접합을 하면서 거기다가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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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티 핵을 삼았기 때문에 이것이 아마 고조선의 영향인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면서 한국인의 가슴 속에 고구려를 심어주고 사라진 거예요. 그럼 그 사라지는 과정도
이 당나라로 볼 적에 왜 당태종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친정을 감행하며 30만 대군을 이끌고,
그러면 100만, 200만의 치중대까지 다 동원하는 친정인데. 친정이라고 하는 것은 당태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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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위 중국에서 가장 추앙받는 성군인데. 친정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으로 하면
의정부 자체를 옮기는 겁니다. 자기 아들한테 다 왕위를 다 물려주고 가야 되고. 그러니까
친정이라는 것은 규모가 다릅니다. 그런데 왜 구태여 그렇게 친정을 감행해서 안시성까지
와서 양 만춘한테 화살을 맞고 가느냐. 그 중요한 이유는 뭐냐 하면 당태종이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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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제도 마찬가지고 수문제도 그렇고 중원을 자기들이 통일했다면 그때 자기들 통일한
중원은 빈약한 중원이에요. 그것을 통일했다는 걸 가지고 중국을 통일했다는 말을 못 하는
겁니다. 고구려를 쳐서 더 큰 걸 먹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구려는 그러한 중국의
어마어마한. 고구려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중국은 통일되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에,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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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망하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 신라가 편승했을 뿐이지, 신라의 힘으로 통일한 건
아니라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이러한 우리나라가 그 당시 그러한 이 국제적인 역학 속에서
신라가 현명하게 기운을 잡은 것은 사실이나, 무슨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고구려가 멸망한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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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고구려라는 것은 성 중심의 연합체계였기 때문에 그렇게 망할 수가 없습니다.
평양에 있는 왕들은 잡혀갔지만 그대로 그것이 발해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통일신라라는 말을 쓸 수가 없는 거고, 어떤 면에서는 남쪽과 북쪽 발해에 남북극 시대로
우리가 재정립을 해야 됩니다. 그러고 나서 그 발해가 멸망하면 고려라는 나라가 우리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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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데 이 고려부터는 이제 어떤 우리가 말하는 아이덴티티가 보다 구체화되는데.
고려만 해도 그 고려 역사라는 게 고려사란 말이에요. 그런데 고려사라는 것은 정인지
이런 사람들이 전부 뭐냐 하면 조선왕조 초기에 만든 책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들은
완전히 고려를 조선 이조 화해서 조선왕조화 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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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이 씨 조선 화 시켰다니깐. 그러니까 완벽하게 뭐냐 하면 이 고려라는 것도 그
당시로는 거란, 요나라, 여러 여진, 말갈 이런 수없는 북송 남송과의 관계에서 대등한
관계였기 때문에 고려는 천자 국이었거든요. 그런데 이걸 그냥 제국처럼 쓴단 말이에요.
자기가 조선왕조가 명조에 대해서 주원 장에 대해서 인식했던 것처럼 우리 역사의 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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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위화도 회군이다. 최 영 장군이 최소한 요동을 치자고 했을 때 요동까지 슬쩍 돌아
나오시기라도 했더라면, 조선왕조도 세우시고, 요동도 끌어안고 이렇게 해서 될 것을 왜
위화도까지 갔다가 압록강 변까지 올라갔다가 그냥 한 발짝 뛰면 될 것을 왜 거기에서
돌아 오냐. 그건 무슨 얘기냐면 우리는 과거의 고구려에 있겠다는 얘기에요. 그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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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이제 조선왕조의 이남에서 우리 안착해서 살 테니까 우리 보호해 달라.
그러니까 이런 문제가 우리 역사에 끊임없이 있어왔고 이러한 멘탈리티가 조선왕조를
유지한 가장 주축 세력이 나중에 당파에서 노론으로 쭉 연결이 되면서 그 노론세력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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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까지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학자라든가, 문학이라든가,
상업계 모든 데에 사실은 알고 보면 이 노론계열이 우리나라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멸망은 이 지구상에 가장 위대한 문명이 사라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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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끝자락 반도가 아닌 중원을 떨게 했던 문명의 발상지 고구려, 고조선 패러다임
아, 내가 엉엉 울고 싶은 심정으로 시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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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고구려 돌무덤 피라미트 위로 새싹이 피어나고 있지 아니한가!
반 만 년 절망으로 다져진 희망 우리 어찌 외세를 두려워하랴.
황룡타고 하늘을 제압하는 고구려 기백 해모스와 하백의 핏줄 그 천손의 포효는
여기 피끓는 젊은 그대들의 맥박이라 역사의 바퀴를 굴려라 오직 그대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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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혈관에 산피가 흐르는데 어찌 분단이 있을까보냐
곤륜에서 두륜까지 백두에서 한라까지 바이칼에서 천지까지 그 모두가 평양
억만년 사람의 그림자를 본 일이 없는데 태백 신시의 마루턱
울툭불툭 힘줄 솟은 단군들의 발걸음 뚜벅뚜벅 잠든 대지를 뒤흔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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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샌 화살을 당겨라 지금이다 여기다!
솔개 나르고 물고기 튀는 영원한 생명의 약동
남북은 하나로 꿰뚫어 대륙의 하늘을 가른다.
아사달의 자손들이여 기억하라 새로운 조선의 여명이 이미 시작됐다. “
2016.5.23.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