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One has to know the characteristic of calm which is wholesome, free from akusala. Then there can be conditions for more calm. Calm in samatha can reach such a high degree that one becomes totally absorbed in the meditation subject. There are different stages of this calm absorption or "jhāna". During jhāna one does not receive impressions through the five senses and thus one is at those moments not enslaved to them. One enjoys a higher happiness. In higher stages of jhāna one attains a greater tranquillity of mind until one no longer feels rapture or joy; one transcends happy feeling and there is equanimity instead. When, however, the citta is not jhānacitta, there are sense-impressions again.
해로움이 없는 유익한 선정의 특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더 나은 선정의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사마타의 고요함은 명상주제에 온전히 몰입할 때 얻을 수 있고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러한 선정의 몰입 즉, 자나에는 여러 단계가 있다. 선정 상태에 있는 동안 우리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한 감각인상을 받지 않는다. 그 순간에는 감각에서 해방되어 더 높은 행복을 누린다. 깊은 선정에 들어가면 커다란 평온을 느낄 수 있고 이것은 어떤 열정에 사로잡히기 전까지 계속된다. 행복감을 넘어 평정의 상태에 도달한다. 그러나 마음이 선정에서 벗어나면 감각인상은 다시 나타난다.
Samatha is a means for the cultivation of wholesomeness. People who apply themselves to samatha may become very peaceful and amiable. They can be of great comfort to people who are restless.
사마타는 선심을 계발하기 위한 수단이다. 사마타 수행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평화롭고 우호적이다. 그들은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다.
However, in samatha defilements are not eradicated. Although one is not enslaved to sense-impressions during the time of jhāna, one still clings to them when the citta is no longer jhānacitta. The jhānas do not last; they are impermanent. Moreoever, there is a more subtle form of clinging, a clinging to the happiness of the jhānas.
하지만 사마타에서는 번뇌가 뿌리 뽑히지 않는다. 비록 선정에 있는 동안에는 감각인상에 속박되지 않을지라도 선정에서 나왔을 때는 여전히 집착한다. 자나는 지속되지 않고 무상하다. 더구나 선정의 행복에 집착하는 미세한 형태의 탐욕이 있다.
One might think that one is without clinging when one does not indulge in sense-pleasures. However, one might still cling to the joy of jhāna feeling or equanimity which can accompany jhānacitta.
감각적 욕망에 탐닉하지 않을 때는 집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선정심에 수반하는 평온이나 선정의 행복에 여전히 집착할 수 있다.
For the development of samatha paññā is necessary, but this kind of paññā cannot eradicate defilements. There is a higher paññā which can eradicate all defilements, even the most subtle forms of clinging. This paññā
is developed in "insight meditation" or "vipassanā. In vipassanā paññā gradually eliminates ignorance, the root of all defilements. One learns more about the realities which present themselves through eyes, ears, nose, tongue, body-sense and mind at any moment. We know so little about the most common things of daily life.
사마타 지혜를 계발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이런 지혜로는 번뇌를 뿌리 뽑지 못한다. 아무리 미세한 집착일지라도 모든 번뇌를 뿌리 뽑을 수 있는 더 높은 지혜가 있다. 이것은 통찰명상 즉, 위빠사나에서 계발된다. 위빠사나에서 무지 즉, 모든 번뇌의 뿌리는 서서히 제거된다. 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통해 어느 때라도 우리 앞에 현시되어 있는 실재에 대해서 위빠사나 수행자들은 서서히 배워 나간다.
How often are we aware of bodily movements during the day? How often are we aware of bodily phenomena such as hardness or softness while we are stretching or bending our arms, or when we are moving our lips while talking? We do not really know what sound is, what hearing is or what it is we take for "self" while hearing. We do not know the phenomena which appear at the present moment.
우리는 하루 중에 얼마나 자주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가? 몸을 뻗거나 팔을 구부릴 때 또는 말을 하면서 입술을 움직일 때 얼마나 자주 몸의 단단함과 부드러움을 알아차리고 있는가?
2._Right_understanding_in_Daily_Life.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