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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고양의 뿌리’ 원상회복 시급하다 |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떠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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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장씨 묘 불법이장 철저 규명해야…시청은 ‘관내 불상사’ 왜 외면하는가 도움말을 주신 분들 ▷한익수 한국씨족협의회 회장 ▷이은만 전 고양향토문회보존회 회장 ▷안재성 현 고양향토문화보존회 회장 ▷장웅기 덕수장씨 묘역훼손 진상규명 범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
작고한 이은길 전 도의원이 서삼릉을 시민공원으로 가꾸자는 내용으로 고양신문(2004년 07월 09일자)에 기고한 글에 나오는 대목이다. 원당 토박이였던 그가 유년시절을 회고하며 지역 지도자로서 간절히 소망했던 서삼릉 원상회복이 최근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제는 해묵은 이야기가 돼버린 서삼릉 원상회복론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된 것은 이곳의 세 왕릉이 서오릉 등과 함께 지난 달 27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고양시에 있는 서삼?서오릉을 포함한 조선왕조의 능ㆍ묘역이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떠오르게 됐다. 이제 고양시는 서오릉을 합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 40기’ 중에서 8기를 갖게 됐다. 지명도로 봐서는 서삼릉이 서오릉보다 뒤져 있지만 규모로 보나 역사성으로 볼 때 서삼릉은 서오릉에 뒤질 것이 없다. 서삼릉의 원래 면적 130만평은 서오릉의 150만평과 거의 맞먹었으며 이곳엔 세 왕릉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왕자와 공주, 그리고 후궁 묘 등 50여기가 더 있고 조선왕조의 태실이 한 곳에 모아져 있으니 가히 500년 왕조의 혼백이 담긴 곳이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서삼릉 하면 역사적 의미나 문화적 가치는 제쳐놓고 말이 뛰노는 목가적인 초원이나 고즈넉한 산책로 정도만 떠올린다. 최근엔 주변의 허브 농장과 보리밥집 등이 요란한 인터넷홍보를 하는 바람에 서오릉 일대는 마치 볼거리나 식도락의 명소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의 내력이나 역사적 자취를 더듬어 보면 그렇게 간단히 소풍이나 즐길 만 한 곳은 결코 아니다. 서삼릉 일대는 조선왕조의 능묘문화만 집합돼 있는 곳이 아니라 고양 시사(市史) 적인 입장에서 볼 때 고양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최초의 고양 현(縣) 자리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양시사 편찬위원회가 2006년 발굴한 조선왕조실록(태종ㆍ중종) 자료에 따르면 1413년 고양현이 생길 때 첫 치소(治所)를 둔 곳이 현재의 서삼릉 자리였다는 것이다. 그 후 1537년 중종의 비인 장경왕후 윤씨가 이곳에 묻히게 되자 1544년(중종39년) 고읍마을(현재 덕양구 대자동)로 이전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때까지 고양현 치소는 시초부터 고읍마을에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돼왔다. 현 대자동에 있던 고양 현청은 임진왜란 때 소실돼 고양동으로 옮겨졌는데 1914년 군청으로 바뀌면서 서울시 서대문로터리 근처에서 새살림을 차렸다. 그리고 22년 만에 다시 을지로 5가 (옛 동대문 운동장 건너편)로 옮겨 가는 곡절을 겪은 끝에 해방을 맞았다.
서삼릉 능역은 조선왕조 518년의 숨결과 애환이 서려 있는 역사의 터전이다. 이곳에는 알려진 대로 3개의 왕릉을 비롯하여 왕자, 공주, 후궁들이 곳곳에 묻혀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왕족의 탯줄을 모아둔 태실이 있다는 것. 태실은 전국에 흩어져 있던 것을 일제가 한곳에 몰아 놓는 것이긴 하지만 우리 고유의 태실 문화가 살아있는 현장으로서 왕릉 이상의 문화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 왕조는 왕실의 후덕을 널리 미치게 한다는 뜻에서 왕자의 태를 항아리에 담아 전국의 명당을 찾아 안치했었다. 서삼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앞서 1970년 5월 26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200호로 지정됐다. 능역에 묻힌 주인공(56명)의 핵심은 삼릉?삼원으로 통칭되는 8명(왕비 2명 포함)이다. 왕실의 법도에 따르면 역대 왕과 왕비, 추존 왕과 왕비가 묻힌 무덤을 능(陵)이라 하고 왕의 사친(私親), 왕세자와 그 비의 무덤은 원(園)이라 불렀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효릉(쌍릉) 예릉(쌍릉) 희릉(단릉)이 3릉이고, 소경원 의령원 효창원이 3원에 해당된다. 이렇듯 유서깊은 서삼릉 묘역은 1960년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여러 갈래로 조각나는 수난을 겪는다. 130만 평의 사적지는 농축산업 육성이라는 미명아래 한국마사회의 종마목장, 농협의 젖소개량사업소와 농협대학, 그리고 한양골프장 등으로 잘려 나가는 바람에 당초 면적의 10분의 1도 안되는 7만5000평으로 오그라들었다. 국가지정 문화재 구역인 서삼능은 이제 옛 모습을 찾아 볼 길이 없다. 30만평이 넘는 목초지(36만㎡)는 세 왕릉을 갈라놓아 관리 보존을 어렵게 하고 있다. 말만 서삼릉일 뿐, 3릉 3원 중에서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곳은 희릉 예릉 의령원 효창원 등 네 곳 뿐이다. 울창한 숲과 광활한 녹지를 자랑하던 묘역엔 목장과 골프장이 대신 들어서서 왕실의 혼백들은 골프족이나 마공(馬公)들에 쫓겨난 꼴이 됐다.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지는 문화재보호법상으로 어떤 훼손행위도 할 수 없게 돼 있으나 역대 정권은 이를 무시하거나 편법으로 서삼릉 주변에 각종 시설물을 허용했다. 2005년 건교부가 서삼릉의 코앞에 10만평 규모의 9홀 골프장 증설을 승인한 것이 그런 사례에 속한다. 문화재청은 이 골프장의 건설 시한을 2008년에서 2010년으로 연장해 주기도 했다. 또 최근엔 문화재청이 서삼릉내의 국가지정 문화재를 후손 개인이름으로 이장이 가능하도록 조치하여 말썽이 되고 있다. 요즘 고양시의 향토문화계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서삼릉 안에 있는 의친왕의 어머니 덕수장씨와 의친왕의 첫 번째 계비 수관당 정씨의 묘가 남의 이목을 피해 새벽에 이장된 것이다. 장씨 묘는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돼(2006년 7월) 개인이 이장할 수 없는 데도 문화재청이 관할하는 사적분과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라는 요식행위를 거쳐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이다. 고양향토문화보존회의 안재성 회장은 이에 대해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 지정문화재를 후손 개인이 옮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하고 문화재청에 심의 기록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으나 “작성 중”이라는 애매한 답변만 받았다고 밝혔다. 문제의 덕수장씨 묘가 있던 자리는 한양골프장이 증설하려는 9홀 대중골프장과 불과 100m 떨어진 곳이라서 온갖 억측을 자아내고 있다. 즉 장씨묘가 그대로 있으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골프장 증설이 어렵기 때문에 골프장의 이해관계자가 공사의 걸림돌이 되는 장씨 묘가 이장되도록 허가청에 로비를 했으리라는 추측이다. 안 회장은 “문화재청의 서삼릉 복원 계획을 보면 마사회(경마수련원) 땅 10만평과 젖소개량사업소 땅 20만평을 매입하여 서삼릉 묘역에 편입시키는 것으로 돼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양시민단체는 100% 원상회복을 요구하고 있어서 앞으로 적잖은 마찰이 예상된다.
현재 7만5000평으로 줄어든 서삼릉 묘역 중에서 실제로 일반시민이 접근할 수 있는 면적은 2만5000평에 불과하다. 이는 능역이 여러갈래로 나눠져 있기 때문인데(도표참조) 삼릉의 하나인 효릉은 개방조차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4일 남양주시 금곡동 홍릉ㆍ유릉으로 이장된 덕수장씨 묘도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서삼능 묘역에서 떨어져나간 다른 지역도 옛 종마목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개가 안돼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상태다. 500년 왕조의 혼이 담기고 고양 현의 시발지였던 역사의 터전은 이렇듯 만신창이가 된 것이다. 서삼릉 복원사업 중에서 당장 시급한 것은 흩어져 있는 묘역들을 한 덩어리로 연결하는 작업이다. 영상문화를 즐기는 젊은 세대들은 드라마나 CF에 단골로 등장하는 종마목장의 이국적인 풍광에 감탄하지만 세계문화유산 유적지의 체면을 살리기엔 너무 빈약하다. 울타리를 친 5만평의 구릉지나 세 왕릉을 가르는 10만평의 목초지도 사적지에 어울리지 않는다. 문화재해설사인 장웅기씨(49세)는 “지형을 고증하여 구릉 등 원래 모습을 찾아 주고 나무도 옛 수종대로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조선왕릉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앞서 금년 1월 서삼릉 현장을 돌아본 뒤 이곳의 사적 및 지형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지 정부 측 자료를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문화재청이 마련한 40만평 확장계획이 바로 그 해답인데, 이는 서삼릉을 본래의 모습대로 되돌리지 않으면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취소하겠다는 유네스코의 의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문화재청은 모처럼 올린 문화외교의 큰 성과를 지키기 위해서도 서삼릉 일대의 능역 복원을 눈가림으로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데 고양시는 서삼ㆍ서오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나 정부의 서삼릉 묘역 복원계획에 거의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 지역 내에서 일어난 덕수장씨 묘의 불법 이장에도 어떤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이은만 전 향토문화보존회장은 “관할권이 없는 문화유적지라 해도 관내의 일이고 시민의 관심사라면 시 당국은 어떤 형식이든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말하고 서삼ㆍ서오릉이 갖는 세계문화유산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행정력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임준수 고양신문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