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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1. 12. 12.~13.(일,월) - 음력(11. 9.~10.), 일출 07:30~일몰 17:13
●산행지: 금오지맥 1구간(수도산서봉-부상고개)
●산행코스: 수도암-한산교-갈림길-청암사갈림길-청암사갈림길-헬기장-전망암-수도산동봉-단지봉갈림길-수도산-수도산서봉-금오지맥분기봉-조망바위-1,021m봉-암봉-926m봉-바위봉-갈림길-청암사갈림길-벙커봉-안부-510m봉-가랫재-추량산-751m봉-799m봉-864m봉-삼방산-부항현-700m봉-철조망-누루묵재-686m봉-헬기장-고석마을-무명봉-823m봉-804m봉-734m봉-코빼기재-583m봉-564m봉-560.2m봉-송전탑-똥재-510m봉-가제산갈림길-문화류씨영묘단-끌고개-491m봉-삼면봉-서북농원입구-854m봉-조망바위-염속산-헬기장-610m봉-살티재-염속봉산-헬기장-연봉산-무명봉-680m봉-무명봉-글씨산갈림길-송전탑-757m봉-빌무산-768m봉-580m봉-536.2m봉-고당산갈림길-별미령-514m봉-삼면봉-680m봉-전망바위-백마산-봉곡리갈림길-달밭마을갈림길이정표-571m봉-이동통신탑-활기재-무명봉-594.5m봉-산불감시초소-영암지맥분기봉-무명봉-390m봉-지적삼각점-중부내륙고속도로-부상고개
●먹거리: 생수1.5리터, 약밥2, 빵2, 캔맥, 콜라, 양갱, 단백질바, 자유시간, 사탕20
●준비물: 텐트, 침낭, 바람막이, 메트3, 스틱, 헤드랜턴, 비니, 버프, 장갑,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충전지2, 충전짹, 손수건, 면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동계용팔토시, 말방울, 경광점멸등, 비닐우의, 안대, 귀마개, 마스크2, 양말, 여분의류, 띠지25
●거리: 약 60.67Km
●소요시간: 31.49h
●누구랑: 나홀로
●경비: KTX35,100, ITX새마을24,500, 뒤풀 14,000
●날씨: -7~9, 첫날 약간 흐림
●산행경과:
* 12. 12.(일) :
- 08:10 : 수도암
- 08:55 : 수도산
- 09:02 : 수도산서봉(1,313m)/ 삼면봉(경남 거창 가북면, 경북 김천시 대덕면 → 김천시 증산면)
- 09:35 : 도터매기
- 10:45 : 가랫재/ 추령/ 추현(秋峴)/ 30번 국도 2차선 포장도로
- 10:55 : 추량산(秋良山, 589.4m)
- 12:10 : 삼방산(864.2m)/ 삼면봉(김천시 증산면 부항리, 대덕면 중산리 → 지례면 여배리)/ 고드름산
- 12:35 : 부항령/ 부항현/ 가목재/ 903번 2차선 포장도로
- 13:10 : 누루묵재/ 황항/ 성황당이 안부
- 13:35 : 황항리 고석마을/ 면계(증산면 - 지례면)/ 마을 팔각정(고석정)
- 14:08 : 천상봉(823.1m)/ 삼면봉(김천시 지례면, 증산면 → 성주군 금수면)
- 14:45 : 코빼기재/ 1차선포장도로
- 15:50 : 똥재(東峴, 392m)/ 동재/ 이동통신탑/ 정자(동현정)
- 16:05 : 가제산갈림길
- 16:32 : 끌고개/ 903번지방도
- 17:?0 : 615m봉/ 삼면봉(김천시 조마면, 지례면 → 성주군 금수면)/ 군계(김천시-성주군)
- 17:33 : 서북농원
- 18:08 : 염속산(厭俗山, 870.2m)/ 전망데크
- 18:59 : 살티재(箭峴, 389m)/ 주음시/ 59번국도
- 20:00 : 염속봉산(厭俗鳳山, 679m)/ 삼면봉(김천시 조마면, 성주군 금수면 → 벽진면)/ 칠봉지맥 분기점
- 20:24 : 연봉산(延鳳山, 704.9m)
- 21:15 : 글씨산(757m)
- 22:08 : 빌무산(783.6m)/ 별무산
- 22:16 : 비박 (전파송출탑 아래)
* 12. 13.(월) :
- 08:08 : 출발
- 09:00 : 칫솔산/ 치솔봉(536.4m)
- 10:08~20 : 고당산갈림길/ 삼면경계면(성주군 벽진면, 김천시 조마면 → 김천시 감천면)
- 10:14 : 고당산
- 10:49~57 : 별미령(別味嶺, 355m)/ 성산령(星山嶺)
- 11:52 : 670m봉/ 삼면봉(김천시 농소면, 성주군 벽진면 → 초전면)/ 달밭봉
- 12:22 : 백마산(白馬山, 715.5m)
- 13:00 : 활기재(384m)/ 활굿재
- 13:33 : 성주군계봉/ 삼면봉(김천시 농소면, 성주군 초전면 → 김천시 남면)
- 14:30 : 능밭재
- 14:42~45 : 산불감시초소
- 14:47 : 영암지맥분기점(550m)
- 15:52 : 경부고속도로
- 16:56 : 부상고개(扶桑峴, 180m)/ 매식가능/ 부상고개 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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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구간거리
수도암-2.4km-수도산-5km-가래재-4km-삼방산-1km-부항현-6.3km-코배기재-3.3km-똥재-2.1km-끌고재-3.7km-염속산-2.2km-살티재-1.1km-염속봉산-1.3km-글씨산(-1.2km)-3km-빌무산-5.2km-고당산-2.4km-별미령-2.2km-백마산-1.4km-활기재(913번도로)-3km-능밭재-3.2km-부상고개(4번국도)
* 구간거리
- 수도리~살티재 32.1km
- 수도리~똥재/ 동재 25.4km
-. 수도암~부항령 12.3Km (접속 2.4 포함)
-. 가롯재~부항령 5.8km
- 수도암~똥재 24.1km
- 똥재~살티재 8.2km
-. 똥재~끌고재 2km
-. 끌고재~부상고개 34.5km
- 부항령~별미령 30.6km
-. 부항령~똥재 8.4km
-. 똥재~별미령 22.2km
-. 부항령~살티재 16.6Km
- 살티재~부상고개 31.77km
-. 끌고재~살티재 6km
-. 살티재~별미령 14Km
-. 별미령~부상고개 18.57km
* 서울에서 수도리 가는 방법
- 서울역~김천구미역: 05:30, 06:05, 06:35, 07:30,~19, 19:37, 21, 31,600~35,100, 1.31h
- 서울역~김천역: 18:38, 19:27, 19:33, 20:25,~05:56, 06:16, 16,400~24,500, 2.31~3.11h
- 김천역에서 10분 거리 김천공용터미널 군내버스 김천버스(054-432-7601)
- 김천공용터미널~지례면: 22시 막차, 0.30h
- 지례면~수도암: 06:15, 14시, 0.40h
* 부상리에서 서울 올라오는 방법
- 부상리~KTX김천구미역 버스: 부상13-6(→사모실)
- 김천시 율곡동 김천구미역: 택시 054-430-1100
- 김천역: ITX새마을:
- 김천구미역~서울역KTX: 17:27, 17:33, 17:42, 18:25, 19:12, 19:52, 20, 20:36, 21:35, 35,100, 1.30h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가랫재: 수도암쪽 인가 가까움
- 부항령: 좀 지나 기와집
- 고석마을 물보충 가능: 고석정 옆 인가
- 가제산: 편도 1.5km
- 코빼기재: 아래 마당있는 빨간 컨테이너박스
- 똥재 인가 가까움
- 살티재: 과수원농가 물보충
- 고당산: 편도 0.4km
- 별미령: 초전면쪽 인가 가까움
- 성주군 초전면 택시: 054-932-1799
- 부상고개: 매식가능
- 부상리~김천구미역: 13-6버스
- 김천택시: 054-430-1100, 054-434-5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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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같은 2구간인데 3일째 힘들게 금오산을 올라 돌고개까지 가기보다는 부상고개에서 끊으면 김천구미ktx역도 가까워 교통도 편리합니다. 2구간은 돌고개에 모텔을 이용하면 짐도 가볍고 좋을듯 싶습니다. 그래서 금오지맥을 3:1로 하기보다는 2:2로 하기로 했습니다.
첫날 지례면에 미리 내려가 첫차로 수도리로 향할 계획이었는데 황송하옵게도 준희선생님과 비실이대선배님 나서서 수도암까지 챙겨주신다니 어쩔줄을 모르겠습니다.
남한테 신세지기 싫어하는 성격임에도 대선배님들 말씀에 제 고집만 내세우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ㅋ~
월욜 새벽 기온이 자꾸 곤두박질을 치더니 오늘 확인한 바로는 -7도까지 내려가네요. 그래서 동계텐트와 동계 침낭을 준비합니다. 예전에 철원 고대산에서 새해 일출을 기다린 적이 있는데, 바람이 어찌나 쎈지 잠깐 손을 내놓아도 감각을 잃을 정도로 추웠는데도 허겁지겁 텐트를 치고 동계침낭 속으로 들어가니 따뜻했습니다. 쌍팔년도 영등포에서 구입한 사레와 텐트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정품만 구할 수 있다면 다시 손에 넣고 싶답니다. 첫날 야간산행으로 염속산을 넘어 살티재까지 간다면 다음날 배낭이 다소 무거워 조금 지체되더라도 살티재에서 부항령까지 충분히 주파할 수 있을듯 합니다.
비실이대선배님이 김천구미역에서 수도암까지 픽업해 주시고 비박장비는 살티재로 옮겨주신다기에 첫날은 최소한의 짐으로 달려가기로 합니다. 끌고재보다는 야간산행을 하더라도 염속산을 넘어 살티재까지 가야 다음날 부상리 까지 부담이 없을듯 하고 살티재~부상고개도 28.3km인데 비박짐을 지고가니 속도는 좀 떨어질듯 싶습니다.
황송하옵게도 대구비실이부부대선배님이 이른 시각에 수도암까지 택배해주셔서 무사히 계획대로 부상고개에서 금오산 뒷면목을 보며 1구간 마칠 수 있었으며, 30분 기다려 미니버슬 타고 김천공용터미널로 나오고 김천역에서 18:14분 ITX새마을을 이용해 상경했습니다.
빌무산 지나 전파송출탑 직전에 텐틀치는데 아뿔싸 플라이를 빼먹고 이너텐트만 가져왔네요. 바닥 매트리스도 안 가져오고, 바람이 옅은 안부 아래 낙엽을 두텁게 깔고 다이소매트를 그라운드시트로, 다행히 동계침낭과 침낭커버가 있어 충분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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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지맥(金烏岐脈)이란?
금오지맥(金烏枝脈)은 백두대간 대덕산(大德山, 1,290.9m) 남쪽의 초점산(1,250m)에서 남쪽으로 300m정도 떨어진 1,180m봉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한 수도지맥의 수도산 서봉(신선봉, 1,313m)에서 다시 동북쪽으로 분기하여 가랫재, 추량산(589.4m), 삼방산(865.2m), 염속산(872.5m)을 거쳐, 염속봉산(679.3m)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칠봉지맥을 분기시킨 뒤 동북향하여, 빌무산(783.6m), 고당산(603.5m)을 거쳐, 별미령(514m)에서 고도를 낮추었다가, 백마산(716.2m)을 지나, 264m봉에서 다시 동남향으로 영암(鈴岩)지맥 줄기를 분기시키고 동북향하여, 금오산(976.5m), 효자봉(제석봉, 512.2m), 국사봉(480.2m), 송천령(254.9m), 꺼먼재산(400.7m), 백마산(188.2m)을 일구고, 감천(甘川)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김천시 고아읍 오로리에서 선산으로 넘어가는 선주교 다리 앞[어강 마을 앞]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81.4km인 산줄기이다. 정상 마루금에서 살짝 비켜서 있지만 분기봉인 수도산 서봉(1,313m)을 제외하면 높이로도 제일 높고 유명세로도 제일 잘 알려진 금오산(金烏山. 976.5m)의 이름을 빌려 금오지맥(金烏枝脈)이라 칭한다. 금오지맥의 산줄기 좌측(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감천(甘川)이 되고, 우측으로 흐르는 물은 회천(會川)이나 백천(白川)이 되어 모두 낙동강에 합류된다.
♤ 금오지맥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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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지맥이 통과하는 동네
* 거창군
거창군은 경남 북서부 내륙 산간지방에 있는 군으로 백두대간과 수도지맥 사이에 위치한 전형적인 산간분지지역으로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지와 약용작물의 재배지로 이름난 지역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이곳의 지명이 크고 밝은 벌판이란 의미를 담은 거열·거사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진한과 변한, 신라와 가야, 신라와 백제, 신라와 후백제 사이에 위치하여 지리상의 요충지였다. 거창읍 개봉동과 마리면 말흘리 고분군의 규모와 유물들로 보아 가야연맹 중의 한 나라가 위치하고 있었다고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거열군이었다. 757년에 거창군으로 이름을 바꾸어 강주(진주)에 예속되었다. 이때 영현으로 여선현(지금의 위천지방)과 함음현(지금의 가조면 지역)을 두었다. 마리면 지역은 당시 이안현으로 천령군(함양)에 속해 있었다. 940년에 함음현을 가조현으로 고치고, 여선현을 감음현으로 개칭했다. 1018년에 거창현으로 강등되면서 가조현·감음현·이안현과 함께 합주(합천)에 소속되었다. 1172년에 거창에 감무를 두어 독립했다. 1271년 왜구의 침입으로 거제현이 가조현에 옮겨와서 1432년까지 머물렀다. 1414년에는 거제현과 거창현을 합하여 제창현으로 만들었다가 다음해에 거창현으로 환원하여 현감을 두었다. 1495년(연산군 1)에는 왕비의 고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으나 중종반정으로 1506년 다시 현으로 강등되었다. 1729년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별호는 아림이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군이 되었으며, 1896년에 경북에 속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마리면·위천면·북상면을 안의군에서, 신원면을 삼가군에서 편입시켰다. 1937년 거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51년 신원면에서 거창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나 거창지역의 현대사에서 잊지 못할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남부지방의 유일한 고원지대인 진안고원에 이어져 있는 산간침식분지이며, 서쪽에 백두대간과 북쪽에 수도지맥을 경계로 경북·전북과 접하고 있다. 북쪽에는 남덕유산(1,507m)·삼봉산(1,254m)·수도산(1,317m)·단지봉(1,327m), 서쪽에는 기백산(1,331m)·금원산(1,353m)·월봉산(1,279m), 동쪽에는 두리봉(1,133m)·의상봉(1,046m)·비계산(1,126m)·오도산(1,134m)·숙성산(899m) 등이 둘러 있고, 남쪽은 비교적 낮은 보록산(796m)·월여산(863m)·갈전산(764m) 등으로 둘러싸인 산간분지를 이룬다. 대분지 속에도 호음산(930m)·건흥산(563m)·금귀산(710m)·보해산(912m) 등이 분포되어 웅양·고제·위천·마리 등의 작은 분지들이 발달했다. 군내의 산들은 낙동강 지류인 황강·남강·감천·금강 등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위천(渭川)이 분계·산수(山水)·소정(蘇井) 등 작은 지류들을 합류하면서 군의 서부를 흘러내려오다가, 황강천·계수천·남산천 등이 합류하여 이룬 황강과 거창읍에서 만나 남서류한다. 군의 동부를 흘러내린 가천도 지산천과 합류하여 남하면에서 황강으로 흘러든다. 거창군은 고대의 유물유적이 많을 뿐만 아니라 동쪽으로 가야산, 서쪽으로 지리산, 북쪽으로 덕유산 등 3대 국립공원과 남쪽에 1988년 완공된 합천 댐 등이 있어 천혜의 관광중심권에 위치해 있다. 위천면 대경리 일대의 위천계곡에 위치한 수승대는 국민관광단지로 정비된 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이황이 이름지었다고 한다. 형태가 거북 같아서 일명 거북바위라고도 한다. 주위의 노송과 누각이 어울려 절경을 이루며, 건계정·거열성도 함께 알려져 있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김천시
김천시는 경북 서부에 있는 시이다. 동쪽은 금오산, 서쪽은 황악산으로 백두대간의 일맥이 험준한 산악 지대이다.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가 지나며, 대전과 대구의 중간 지점에 있다. 율곡동 일원에는 한국도로공사 등이 이전하여 혁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다. 시청 소재지는 신음동이고, 행정구역은 1읍 14면 7동이다. 조선시대 김산군(金山郡)의 김천면·군내면·미곡면 일대가 시로 발전한 곳이다. 김산군은 신라 때 동잠현(桐岑縣)으로 이곳은 눌지왕대에 아도(阿道)가 직지사를 창건하는 등 신라 불교전래의 통로가 되었던 곳이다. 757년에 김산현(金山縣)으로 고쳐 개령군 영현이 되었다. 1018년에는 경산부(京山府:성주)의 속현이 되었으나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되었다. 조선에 들어 성주의 속현이었던 어모현(禦侮縣:지금의 김천시 어모면 일대)을 병합했다. 제2대 임금인 정종(定宗)의 태(胎)를 안치했다 하여 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별호는 금릉이었다. 김산군은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3등군이 되어 대구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13도제 실시로 경상북도에 속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김산군·지례군·개령군을 통합하여 김천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20개면으로 조정했다. 이때 김산군의 군내면과 미곡면이 금릉면으로 통합되고, 김천면은 그대로 존속했다. 예천과 안동을 연결하는 경북선이 부설되던 해인 1931년에 김천면과 금릉면을 합하여 김천읍으로 승격시켰고, 1949년 김천읍은 대구에 이어 경상북도에서 2번째로 시가 되었다. 이때 김천군의 나머지 지역이 금릉군으로 개칭되었다. 김천시는 고려시대부터 충청도에서 추풍령을 넘어 경상도로 통하는 김천역이 설치되어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며, 조선 후기에서 일제시대 초기에는 김천장이 대구 다음으로 큰 시장을 형성하여 활기를 띠었던 곳이다. 1905년 경부선, 1931년 경북선, 1918년 경부국도,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함으로써 더욱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그러나 김천시는 통과지역의 성격만을 지니게 되었고, 신흥도시인 구미의 그늘에 가려 도시 및 시장의 기능이 침체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대대적인 전국 행정구역개편으로 농촌지역이던 금릉군과 하나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어 김천시가 되었다. 시의 동북부는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에는 백두대간의 줄기를 따라 추풍령(秋風嶺, 1,111m)·삼도봉(三道峰, 1,177m)·대덕산(大德山, 1,290m)·눌의산(743m)·황악산(1,111m)·천덕산(986m)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으며, 삼도봉은 충북·전북·경북의 경계가 되고 있다. 남쪽에는 대덕산에서 갈라져 나온 수도지맥이 뻗어 있고, 수도산(修道山, 1,317m)·단지봉(丹芝峰, 1,327m)·국사봉(875m) 등이 주봉을 이루며 경남과의 경계가 되고 있다. 동쪽에는 도립공원인 금오산(金烏山, 977m)이 솟아 있어 구미시와의 경계를 이루며, 영암산(782m)은 김천시·칠곡군·성주군의 경계가 되고 있다. 동남쪽에는 백마산(716m)·압속산(870m) 등이 솟아 성주군과의 경계가 되고 있다. 또한 추풍령·면목령(面目嶺)·주치령(走峙嶺)·우두령(牛頭嶺) 등의 고개는 높은 산지를 가로지르며 인접지역으로 통하는 주요 육로가 되고 있다. 직지천과 감천은 이 지역의 주요 하천으로, 직지천은 황학산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흐르며 금릉평야의 관개용수원으로 이용된다. 모암동에서 직지천과 합류하는 감천은 남서부에서 북동부로 이 지역을 관통하며, 직지천·아천·율곡천·부항천 등과 합류하여 개령평야를 이루고 구미시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이들 하천에 의해 형성된 개령평야와 금릉평야는 넓고 비옥하여 예로부터 경북 남서부지역의 주요곡창지대가 되어 왔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성주군
성주군은 경북 서남부에 있는 군으로, 동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북 칠곡군, 서북쪽으로는 경북 김천시, 남쪽으로는 경남 거창군과 경북 고령군, 경남 합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군청 소재지는 성주읍이고, 행정 구역은 1읍 9면이다. 성주는 6가야 중 벽진가야(碧珍加耶)로 가야연맹의 중심국 중 하나였다. 세력권에 들게 되어 벽진군(碧珍郡) 또는 본피현(本彼縣)이 설치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인 757년(경덕왕 16)에 신안현(新安縣)으로 개칭, 성산군(星山郡:지금의 고령군 성산면 일대의 加利縣)의 영현이 되었다. 나말여초 이 지방 호족이 고려 태조 왕건을 도운 공으로 인해 경산부로 승격했으며, 1018년(현종 9)에는 고령군을 속군으로, 약목(若木)·인동(仁同)·지례(知禮)·가리(加利)·팔거(八莒)·김산·황간(黃澗)·관성(管城)·안읍(安邑)·양산(陽山)·이산(利山)·대구(大丘)·화원(花園)·하빈(河賓) 등 14개현을 속현으로 거느린 대읍이었다. 1295년(충렬왕 21)에 흥안도호부(興安都護府), 1308년(충렬왕 34)에 성주목으로 승격했으며, 1310년(충선왕 2)에는 경산부로 강등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태종대의 군현제 개편 때 성주목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1614~23년에 신안현으로, 1631~40년에 성산현으로, 1736~45년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지방제도 개편에 의해 1895년에 대구부 성주군, 1896년에 경상북도 성주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두입지였던 인곡면·운라면·흑수면·도장면·소야면·가현면·덕곡면·노다면·다산면이 고령군으로, 비입지(飛入地)였던 노장곡면이 현풍군으로, 두입지 증산면이 지례군으로 이관됨으로써 많은 지역을 상실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용산면·남산면·북산면·본아면이 성주면으로, 선남면·화곡면·산남면·오도면이 선남면으로, 대동면·두릉면이 용두면으로, 조곡면·초곡면이 성암면으로, 지사면·법산면이 지사면으로, 대리면·청파면이 청파면으로, 운곡면·명암면이 벽진면으로, 유곡면·초전면이 초전면으로, 유동면·당소면·망성면이 월항면으로 통합되고, 신곡면은 김천군에 넘겨주었다. 1934년에 용두면·성암면을 용암면으로, 지사면·청파면을 수륜면으로 통합·개칭하고, 1979년에는 성주면을 읍으로 승격했다. 지세는 남서부 군계에 위치한 가야산(伽倻山, 1,430m)을 중심으로, 높고 낮은 산들이 군 전체를 둘러싼 작은 분지형태를 이루고 있다. 서부와 북부에는 형제봉(兄弟峰, 1,022m)·염속산(厭俗山, 870m)·독용산(禿用山, 956m)·백마산(白馬山, 716m)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다. 동부와 남부에는 서진산(棲鎭山, 742m)·도고산(道高山, 349m)·영취산(靈鷲山, 332m)·작산(鵲山, 532m) 등 비교적 낮은 산들이 분포하고 있다. 서북부는 험한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동남부에는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그 중 서진산(棲鎭山, 일명 禪石山)은 월하면 인촌리와 칠곡군 약목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서남쪽 산기슭에는 고려 때 나옹대사(懶翁大師)가 창건한 선석사(禪石寺)가 있고, 그 앞의 태봉(胎峯)은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세종의 여러 왕자들과 단종의 태를 안장한 태실이 있다. 주변의 골짜기와 개울들이 절경을 이루어 봄·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하천을 보면 서북부의 산악지대에서 발원한 대가천(大伽川)은 군의 서부를 동남류하여 고령군을 지나 낙동강에 유입한다. 강유역에는 비옥한 평야가 발달하여 농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이천(伊川)은 벽진면·성주읍 및 선남면 사이를 흐르는 하천으로, 벽진면의 고당산과 염표봉산에서 발원하여 남동류하고, 벽진면과 성주읍 남쪽을 지나 월항면 대산리에 이른다. 초전면백마산에서 발원하여 북쪽에서 남류한 지류 백천(白川)과 합류하고 다시 남동류하여 선원리 부근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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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현왕후(仁顯王后)길
인현왕후(1667~1701)는 조선 제19대 임금인 숙종의 계비(繼妃)로 본관은 여흥민씨이다. 1701년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얻어, 37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굴곡진 삶을 살다간 왕비로 기록되고 있다. 인현왕후는 장희빈과 숙종 사이에서 사랑과 권력에 희생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현왕후는 자식을 낳지 못한 왕비였다. 유교적 이념이 팽배했던 조선시대에, 왕의 후계자를 낳지 못하는 것은 왕비로서 치명적인 결격사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현왕후는 왕과 조정에서부터 민초들까지 널리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계략으로 기사환국(1689년)에 서인으로 강등되었을 때, 3년간 머물며 복위를 기원한 곳이 바로 이곳 수도산 청암사다. 인현왕후는 폐위당한 후 어머니 은진 송씨의 외가와 인연이 있던 청암사에서 3년을 지냈다. 인현왕후는 상주 외가에서 보내 준 시녀 한 명을 데리고 살면서 기도를 드리거나 수도산 곳곳을 다니며 시문을 짓는 것으로 울분을 달랬다고 한다. 그때 인현왕후가 주로 다녔던 길이 청암사에서 수도암으로 연결되는 현재의 ‘인현왕후길’이다. 훗날 갑술옥사(1694년) 때 복위되어 궁으로 돌아간 인현왕후는 청암사에 서찰을 보내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하였는데 현재 그 서찰은 직지사 성보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 구한말에 궁녀들의 시주로 불사를 일으켰으며, 지금 가람의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인현왕후길은 김천시에서 3년을 보낸 인현왕후의 역사적 현장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길이다.
♤ 청암사(靑巖寺)
청암사는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불령산(수도산) 북동쪽 기슭에 있는 직지사의 말사다. 859년(신라 헌안왕 2) 도선이 창건하였고, 부속 암자로 수도암과 백련암이 있다. 청암사 수도암은 신라때 창건한 유서깊은 사찰로 약광전 석불좌상(보물 296호), 삼층석탑(보물 297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307호) 등 문화재가 있다.
♤ 수도암/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에 위치
수도암은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수도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의 부속 암자이며 통일신라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가 쌍계사, 청암사 수도암을 같이 창건했다고 전하며 도선은 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앞으로 무수한 수행인이 나올 것이라고 하여 산과 도량을 각각 수도산, 수도암이라 칭했다고 한다. 그 뒤 이 절은 수도승들의 참선 도량으로 그 이름을 떨쳤으며, 조선 제11대 증종 을사년(1545년)에 상선거사가 중창하였으며 인조 27년(1649년) 벽암선사께서 증흥하였고 고종 31년에 동학혁명으로 일부 암자가 소실되었으며 6년 후인 광무4년(1893년) 포응화상이 다시 복원하였으나 6.25전쟁 때 공비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전소된 뒤 1969년이후 법전화상이 또다시 중수한 사찰이다. 경허, 한암, 효봉, 구산선사 등이 주석하였다. 수도암은 대적광전, 약광전, 관음전, 선원 영역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삼층석탑(보물 제297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계곡에 용추라는 이름의 구혈이 있는데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 수도산(修道山, 1,317.4m)/ 1등삼각점(무풍 11)
수도산 정상에는 큰 돌탑과 김천시에서 세운 정상석, 또 다른 정상석과 삼각점이 세워져 있다. 수도산은 경남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와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및 대덕면 대리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서쪽의 대덕산, 동쪽의 단지봉 등과 산줄기가 이어지며, 산 남쪽에서 좌가천이 발원하고 북쪽에서 발원한 하천은 감천에 흘러든다. 수도산이란 이름은 신라 도선국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수도암에서 유래 되었는데 부처님의 신성스러운 산이란 뜻으로 불령산(佛靈山) 또는 선령산(仙靈山), 신선대, 수락산이라고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거창)에 "수도산(修道山)은 군 동북쪽 36리 지점에 있다."라고 하였으며 「여지도서」(거창)에도 "수도산은 관아의 동북쪽 30리에 있다. 곧 대덕산의 동쪽 줄기이다."라고 하였다. 「한국의 산지」에 의하면 이칭인 신선대와 수락산은 신선들이 노는 곳이라고 하여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산의 높이로만 따지면 우리나라 30위권 안에 들지만, 산림청 100대 명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할 정도로 지명도가 낮다.
♤ 수도산 서봉(1,313m)/ 삼면봉(경남 거창 가북면, 경북 김천시 대덕면 → 김천시 증산면)
금오지맥 갈림봉으로 조망이 좋은 바위 암릉봉이다. 신선봉으로도 불리우며, 시코봉에 이어 또 다른 삼면봉(김천시 대덕면 대리, 증산면 평촌리와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이다. 「부산 같이하는 산악회」에서 2008년 7월에 스테인레스 이정표를 세웠는데, 지금은 지맥과 기맥 이름이 지워져 있지만, 맥길이 강을 가르므로 강 이름에서 이름을 따와, 금오지맥을 감천지맥으로 수도지맥을 황강기맥으로 표기하였다고 한다. 능선 북쪽으로는 김천시 증산면과 대덕면의 면계가 되는 등로가 이어지고 북서쪽으로는 월매산 능선이다.
- 수도산 신선봉(서봉)이라는 안내판이 서있고, 좌측에 준희선생님 금오지맥분기점이란 산패가 매달려 있다.
한강기맥은 홍천을 빼놓을 수 없고, 비슬지맥은 청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금오지맥 하면 김천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천의 전성기는 조선시대 개령현이었습니다.
♤ 경상북도 김천 개령현(開寧縣)
삼한시대에 감문소국(甘文小國)이 있었던 곳으로 감문면·개령면 일대에 고분을 비롯한 유적이 남아 있다. 231년 신라가 감문국을 공격하여 점령한 후 감문군을 설치했다. 557년(진흥왕 18)에는 감문주를 두었다가 진평왕대에 폐지했으나, 661년 다시 감문군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6)에 개령군으로 고쳐 상주에 속하게 했다. 이때 어모현(지금의 경북 김천시 어모면 일대)·김산현(경북 김천시 봉산면·대항면·조마면·감천면 일대)·지례현(경북 김천시 지례면·구성면·부항면·대덕면·증산면 일대)·무주현(지금의 전북 무주군) 등의 영현을 거느렸다. 1018년에는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가 1172년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1413년 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1601년 김산군에 병합되었다가 1606년 선산도호부에 속하기도 했으나 1609년 복구되었다. 별호는 감주였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군이 되어 대구부 관할 아래 있다가 1896년 13도제 실시로 경상북도에 소속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하여 김산군의 비입지인 연명면이 편입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시에 개령군이 폐지되고, 개령군 영역이었던 서면·부곡면이 개령면으로, 농소면·연명면이 농소면으로, 아포면·동면이 아포면으로, 곡송면·북면이 곡송면으로, 남면이 남면으로 통폐합되어 지례군과 함께 김산군에 병합되어 김천군으로 개칭되었다.
♤ 김천시 대덕면(大德面)
대덕면은 신라시대에 지품천현에 속하였다가 757년(경덕왕 16) 지품천현이 지례현으로 개칭되면서 개령군 지례현에 속하였고, 1018년(고종 32) 상주목 경산부에 속하였다. 조선시대에 지례현 남면이 되었고,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편으로 지례군 상남, 하남, 외남의 3개 면으로 분리되었다. 1914년 3개 면을 재통합하여 김천군 대덕면으로 개편하여 32개 동을 화전, 문의, 대리, 연화 덕산, 내감, 외감, 가례, 조룡, 중산, 추량, 관기 등 12개 리로 통합하였다. 1949년 김천읍이 김천시로 승격함에 따라 금릉군 대덕면이 되었고, 1960년 12개 리를 21개 리로 분할하였다. 1995년 1월 1일 김천시와 금릉군이 김천시로 통합됨에 따라 김천시 대덕면이 되었다.
♤ 도터매기
1,161.9m봉을 지나, 가랫재까지 3.8km 안내 이정목이 서있는 안부이다.
♤ 가랫재/ 추령/ 추현(秋峴)/ 30번 국도 2차선 포장도로
가랫재는 좌측의 전북 무주군 무풍에서 경북 성주로 가는 30번국도가 지나는 고갯마루로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와 김천시 대덕면 추량리를 이어주는 고개이기도 하다. 평촌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지대가 높아 항상 선선한 소슬바람이 부는 마을이어서 가을재라 하던 것이 음이 변하여 굳어진 이름이고, 한자로 추령이라고 한다. 무엇을 가른다는 의미의 가롯재일까 아님 가례에서 비롯된 가랫재일까. 증산면 평촌리를 관류하는 수도계곡에는 한강 정구가 계곡의 절경을 노래한 무흘구곡에서 묘사한 제7곡 만월담과 제8곡 와룡암이 있다.
- 도로로 내려서 우측으로 고개마루를 넘으면 콘크리트 옹벽이 끝나는 지점에 삼방산 4.2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들머리이다.
♤ 추량산(秋良山, 589.4m)
가랫재 절개지 위에 있는 낮은 공터이다. 북삼읍 등산회원들이 세운 오석으로 된 앙증맞은 정상석이 있고 벤치쉼터와 삼방산까지 4km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서있다. 추량산 유래는 가랫재 아래에 있는 대덕면 추량리 가래실마을에서 유래되었는데 가래실은 마을 형상이 떡가래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이며 한자로 추량(秋良)으로 표기하였다. 고래의 예법을 중시하는 의미를 담아 가례(家禮) 또는 가례(嘉禮)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1400년대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낸 서산정씨 11세손 행촌 정처우가 충남 서산에서 옮겨와 정착한 이래로 대대로 서산정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 질재
준희선생님 산패가 걸린 751.2m봉에서 좌틀하여 다시 무명 암봉을 하나 넘으면 내려앉는 나즈막한 안부이다. 안부 좌우로 잡목이 꽉 들어차 옛길 흔적만 희미하다.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대덕면, 왼쪽은 증산면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 삼방산(864.2m)/ 삼면봉(김천시 증산면 부항리, 대덕면 중산리 → 지례면 여배리)/ 고드름산
삼방산은 경북 김천시 대덕면 추량리, 증산면 동안리와 부항리 및 지례면 여배리 사이 세개 면이 경계를 이루는 산이라 삼방산이라 한다. 수도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가랫재를 통과한 후 멈춘 곳이다. 삼방산은 주변 시군과의 경계가 아닌 김천시 내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고도가 높고 경사가 급해 산세가 험한 편이라서 토지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산지 경관과 산림 보존이 매우 양호한 편이다. 이 산줄기는 삼방산에서 다시 동쪽으로 염속산 등으로 이어지고 삼방산 동쪽에는 부항현이 있는데 상주와 증산면을 잇는 903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삼방산은 1872년 지방지도에 표시되어 삼방산이라 적혀있으며 문의봉과 연결된 것으로 묘사하였다. 조선지지자료(지례)에는 상현면 여배리에 있다고 되어 있으며 또한 모양이 고드름처럼 생겼다 하여 고드름산이라고도 부른다. 삼방산 서쪽 사면에는 감천 본류에 유입하는 작은 지류 하천들이 발원하며 동쪽 사면에는 성주군을 지나 고령군을 관통하는 대가천 최상류에 해당하는 작은 지류 하천들이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대가천에 유입한다.
- 억새밭 사이에 정상석이 있다. 전망데크와 무인산불감시카메라, 산불감시초소 및 2등삼각점(가야 21/ 1988 재설)이 있다.
백두대간에도 부항령이 있고, 수도지맥에도 부항령이 있고, 여기 금오지맥에도 부항령이 있습니다.^^
♤ 부항령(釜項峴)/ 부항현/ 가목재/ 903번 2차선 포장도로
김천시 지례면 여배리, 속수리에서 증산면 부항리를 잇는 부항령은 증산과 대덕 3번 도로와 연결되는 903번 도로가 지나는데 차는 많지 않다. 종종 백두대간의 부항령과 헷갈리기도 하는데 이곳은 무주와는 관계없는 김천시 증산면 부항리 소재 부항현이다.
- 도로따라 우측 고개를 넘으면 지례면 도로표지판 우측으로 염속산까지 16.46km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 앞으로 나있는 양회임도를 따른다. 원 마루금은 양회임도 좌측 능선이지만 잡목이 많고 잠시 후 양회임도로 도로 내려서기에 편의상 양회임도를 따르는 경우도 많다. 수도지맥 마루금을 조망하기에 좋은 지점이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보며 지나면 한참동안 철망 울타리 옆을 지나야 한다. 안쪽은 길이 참 좋은데...
♤ 증산면 부항리(釜項里)
조선시대 성주목 증산면에 속한 월도, 한적, 시동이라 불리던 마을로 1895년에 증산면이 양분되면서 성주군 내증산면에 귀속되었다. 1906년 지례군 내증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에 위 3개 마을과 신기를 합하여 부항리라 개칭하여 김천군 증산면 관내가 되었으며, 병자년(1936년) 대홍수 때 신기에 살던 수재민이 이주하여 이전 부락과 새마의 두 마을이 새로 형성되었고 주막뜸이 추가되었다. 증산면 북단 산간오지의 골짜기에 산재하는 일곱개의 마을로 면소재지에서 3~4km 거리이다. 지례면 속수에서 가목재를 넘어 면소재지로 연결되는 6번군도가 지난다. 동쪽은 황항리, 서쪽은 대덕면, 남쪽은 황정리와 동안리, 북쪽은 지례면과 접경한다. 증산면의 증(證)이 가마부(釜)의 부항과 걸림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항의 옛 이름이 대중(大甑)이니 여기서도 증과 부의 대응성이 찾아진다. 흔히 방언에 시루를 시루가마라고도 부름은 이를 뒷받침하기에 층분하다. 시루가마 형태의 마을로 접어드는 들머리가 가마목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두 산을 이어주는 좁은 협곡의 고개는 보통 노루목재 장항(獐項)입니다. 여긴 누루목이네요.
♤ 누루목재(黃項峙)/ 황항/ 성황당이 안부
증산면 황항리 윗쪽 능선에 있는 뚜렷한 안부의 고갯길이다. 누루목재는 김천시 증산면 황항리의 자연마을 중 한 곳으로 높은 지대에 위치하여 주위가 황토빛이므로 누루목이라 불렀고 한자로는 황항이라고 한다. 고개 아래에 누루목이라는 마을이 있다.
♤ 황항리 고석마을 갈림사거리/ 면계(증산면 - 지례면)/ 마을 팔각정
685.2m봉(누루묵봉)을 지나 만나는 헬기장과 타이어교통호 등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군사시설물을 지나면 우측으로 내려다보이는 황항리 고석마을로 들어선다. 좌측으로 지례면 관덕리와 우측으로 증산면 황항리의 면(面) 경계가 마을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따른다. 고석마을의 지명은 지례면 관덕리에서 따왔다고 한다. 해발 600m가 넘는 고지대라 고냉지채소와 사과밭이 보인다.
- 양회임도를 버리고 팔각정 뒤편으로 밭 경작지를 타고 올라 마루금 능선으로 오른다.
♤ 천상봉(823.1m)/ 삼면봉(김천시 지례면, 증산면 → 성주군 금수면)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와 증산면 황항리를 따르던 지맥의 우측이 성주군 금수면 영천리와 만나 804m봉까지 잠시 김천시와 성주군의 군계를 따르는 지점이다. 지례면 울곡리(蔚谷里)는 옛부터 마을 일대가 초목이 울창한 산에 둘러싸인 골짜기라서 울곡, 또는 울실이라 하였고, 조선말 성주군 외증산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안기터(內古, 와 바깥기터(外古)로 이루어진 기터는 천상봉 아래 자리잡고 있다. 김녕김씨 김수남과 동래정씨 정기장이 입향한 이래 대대로 터를 잡고 살겠다는 뜻을 담아 옛고(古)와 터기(基)자를 써서 고기 또는 고터라 하였는데 음이 변하여 기터가 되었다. 옛날 안기터에 살던 한 여인이 아들을 낳았는데 3일만에 아이가 천장에 기어 오르고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를 염려한 집안에서 호미를 불에 달구어 겨드랑이를 지졌다. 이후 목숨을 잃어 우물에 묻힌 아기가 일주일 뒤 갑옷을 입은 채 땅으로 솟아나와 새밭들을 지나 천상봉 굴골로 들어갔다고 하여 지금도 마을 뒤에 큰 굴이 있고 그 굴에서 큰 칼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 코배기재/ 1차선 포장도로
김천시 지례면 거물리 바람실마을과 신평리 삼실마을을 이어주는 양회 포장도로가 지나는 울곡리에서 관덕리로 넘어다니던 고갯마루이다.
- 내려서는 쪽에 이동통신탑이 서있다. 도로따라 3~400m 고개 아래 쯤에 인가가 보인다.
♤ 559.8m봉/ 등터봉
염속산 정상까지 7.69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 만나는 벤치 쉼터 두개와 이정표가 서있는 곳이다. 삼각점을 지나자마자 실질적인 559.8m봉에 준희선생님 산패가 걸려있다. 이 봉우리 아래에 지례면 신평리 등터마을이라는 자연부락이 있다. 등터마을은 당시 지례와 성주에 살던 사람들이 똥재를 거슬러 올라와 터를 잡았다하여 붙인 이름이며 등현 또는 등재라고도 한다. 등터와 똥재 정상 사이에 장고개로 불린 주막촌이 있어 지례장을 보러다니는 길손을 상대했는데 30여 년전 폐동되고 지금은 지명만 남아있다.
들머리 잡기가 애매합니다. 농막으로 쓰이는 가건물이 있고 그 앞 밭으로 질러 들어가 울타리를 넘으니 커다란 묘지가 나오네요. 아마도 묘지를 보살피는 능지기 건물인것 같습니다. 옆 방죽옆을 도는 임도를 따라도 만나기는 합니다.
♤ 똥재(東峴, 392m)/ 동재/ 이동통신탑
김천시 지례면 대율리와 신평리를 잇는 1번 군도,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개이다. 경북 김천시 지례면 상부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인 남산과 관련이 있는데 남산은 현청 소재지인 교리 동쪽에 있어 동산이라 하였다가 마을 남쪽 야산에 남산사가 있어 붙인 이름이다. 남산 뒤 방가산을 가로지르는 똥재는 성주로 연결되는 고개로 증산면 들목재와 바람재, 조마면의 살티재, 감천면의 별미재, 남면 능밭재와 함께 삼국시대 이전부터 성주지방의 성산가야와 소통하던 유서깊은 고개이다. 똥재는 원래 현청 소재지인 교리 동쪽에 있어 동재(동현)이라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음이 변해 똥재가 되었다. 일설에는 과거 지례현이 성주 경산부 관할일 때 성주목사의 호출을 받고 급히 성주로 달려갈 때마다 현감을 태운 가마꾼들이 길이 험해 똥을 쌀 정도로 힘들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똥재 주변에서 발견되 선사시대 유적은 1991년 발굴된 구성면의 송죽리유적보다 시대가 앞서 남산 일대가 삼한시대 이전부터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
- 묘지와 정자 동재 표시석 그리고 연필 조각품이 서있고 건너편에 창고가 보인다. 견여탄(肩與嘆) 다산 정약용의 시가 소개되어 있다. 도로를 건너 창고 뒤쪽으로 들어서서 마루금 능선으로 오른다.
♤ 김천시 지례면 상부리(上部里)
지례면 소재지인 상부리는 예부터 지례흑돼지로 불리는 토종 흑돼지 산지로 이름이 높은데 지례흑돼지는 외래종과 달리 순흑색에 온순하고 작은 체구가 특징이며 비계가 적고 불포화 지방산이 다량 함유되어 쫄깃하고 담백한 맛으로 정평이 나 조선 시대 궁중 진상품이었다. 1976년부터 지례신용협동조합에서 흑돼지 양돈장을 운영하다 2010년 현재 개인이 운영하고 있으며 개량종과 달리 성장 속도가 느려 수지타산이 맞지 않은 탓에 최근 사육 두수가 크게 줄었다. 상부리 뒷산인 봉화대산과 주악산에는 봉화대와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 지례가 군사와 교통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산에는 고려가 망하자 지례로 낙향해 은거하면서 후진을 양성한 반곡 장지도의 묘소가 있고 제자인 윤은보와 서즐이 봉화대산과 주악산 사이로 난 고개를 쉼 없이 드나들며 지극 정성으로 스승의 묘를 살피는 효심에 탄복한 호랑이가 노루를 물어다 주어 제사를 지냈다 하여 이름 붙은 정성고개가 있다.
♤ 김천시 조마면(助馬面)
기원전 졸마(卒麻) 또는 주조마국(走漕馬國)으로 기록에 남아 있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시대는 상주목 개령군에 속한 조마부곡으로 오랫동안 개령군 소속이었으며 1781년에 김산군 조마남면(助馬南面)으로 적힌 기록이 있다. 1914년 김산군 조마남면, 김산군 남천면 2개면을 합면하여 김천군 조마면으로 개칭하였다. 1948년 8월 13일에 김천읍의 김천시 승격으로 금릉군 조마면으로 개칭하였다가 1995년 김천시의 도농통합 당시 김천시 조마면이 되었다. 시의 남동부에 위치하며 동으로는 감천면과 성주군 벽진면, 서로는 구성면, 남으로는 지례면과 성주군 금수면, 북으로는 양금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또한 감천을 끼고 발달한 비옥한 토지와 넓은 들판에서 생산되는 전국에서도 명성이 높은 조마 장바우 감자의 주산지이며 그 외에도 품질 좋은 자두, 사과, 양파, 대파, 상추 등 우수하고 안전한 웰빙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가제산까지 다녀오는데 편도 1.5km입니다.
♤ 가제산 갈림길/ 면계(지례면 대율리 - 조마면 신곡리)
김천시 지례면을 지나오던 지맥이 조마면을 만나 지례면과 조마면의 면계를 따르는 지점으로 이후 고당산갈림길까지 지맥은 조마면의 경계를 길게 따른다. 지맥의 왼쪽으로 조마면이다.
- 지맥은 우틀한다.
♤ 가제산(682.7m)/ 산불감시초소
가제산은 경상북도 김천시의 조마면 신곡리와 구성면 금평리 사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조마면의 남쪽 경계에 위치한 염속산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산줄기에 위치하고 가제산의 북쪽으로는 비교적 낮은 산줄기가 이어지며 이 산줄기는 감천과 만난다. 가제산의 동쪽에는 염속산 부근에서 발원한 강곡천이 남류하여 감천으로 유입하고 강곡천을 따라 903번 지방도가 달리고 있으며, 서쪽에는 가제산의 남서사면에서 발원한 소하천이 북류하여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를 지나 역시 감천으로 유입된다. 가제산이 처음 기록된 사료는 조선지지자료로서 이 자료에는 한글로 가재산이라고 적혀 있으며 지례군 하현면 고념리에 있는 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조선지형도에는 한자로 가재산(可在山)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가재산은 해악산(蟹岳山)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해(蟹) 자가 가재 또는 게를 뜻하기 때문에 우리말로 풀어 가재산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 4등삼각점(가야 409/ 2003 재설)이 있다.
비너에 걸어 배낭 옆구리 조임끈에 달아맨 띠지가 비너와 함께 어디론가 떨어졌습니다. 비실이띠지와 홀대모 띠지가 열장 정도 남았는데... 에구 어디서 흘렸는지도 모르는데 찾으러 되돌아 갈 수도 없구...
♤ 끌고개/ 끌고재/ 903번 지방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와 지례면 이전리를 잇는 끌고개로 이곳에서 강곡천이 발원되어 감천을 향해 북류하고 그 냇물을 따라 2차선 901번 지방도로가 성주군 금수면과 김천시를 남북으로 지난다. 이 지역 사람들은 끌고개가 아닌 꿀재로 부른다.
- 도로를 가로질러 넓은 임도로 올라서며 임도를 따르다가 다시 우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 조마면 신곡리 나부실마을
신곡리에 있는 자연마을로는 나부리, 마와리, 미실, 철수동, 중리, 신석, 백화동 등이 있는데 나부실마을은 풍수지리상 벌통형에 해당되어 언제나 벌이 날아다니는 듯한 소리가 들려 붙인 이름이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그 때문에 마을에서 지례로 넘어가는 고개를 꿀재라 하였다고 한다. 벽진이씨 이나부가 정착한 이후 입향조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490.5m봉을 지나고 안부를 지나 오르는 무명의 봉우리입니다.
♤ 615m봉/ 삼면봉(김천시 조마면, 지례면 → 성주군 금수면)/ 시군계(김천시-성주군)
김천시 조마면과 지례면의 면계를 따라오던 지맥이 성주군 금수면과 만나는 삼면봉이다. 지맥은 여기부터 지례면과 헤어지고 김천시 조마면과 성주군 금수면의 시군면 경계를 따른다.
- 정상부에 굵은 소나무가 있는 무명봉이다. 지맥은 여기서 좌틀이다.
♤ 지례면 이전리
염속산 아래 지례면 이전리는 옛 진바실과 해평, 불당골이 합쳐진 지명이다. 이 세마을 중 해평마을에는 우물이 없다. 우물이 없는 이유는 풍수지리로 볼 때 넓은 바다에 배가 떠 있듯이 마을이 조성되었는데 우물을 뚫을 경우, 배에 구멍을 내는 셈이라 마을에 우환이 닥친다는 것. 이 마을 사람들은 불편해도 인접한 불당골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전한다.
관리가 되고있지 않는 비닐천막 안으로 집기와 농기계도 보이는것 같습니다. 농막을 우측 옆에두고 바짝 붙어 산으로 올라붙으니 희미한 임도가 나오더군요.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라가면 전파송출탑까지 아주 쉽게 갈 수 있습니다.
♤ 서북농원입구
원지맥길은 좌측 농장쪽인데 농장주가 막아두고 우측으로 금오지맥길을 인도한다. 쇠줄을 넘어 농장쪽으로 진행하여 농장안으로 접어들면 서북농원 허름한 비닐막사 폐가가 있다. 우틀하여 묵밭을 지나 봉같지 않은 822m봉에 올라 급우틀한다. 850.3m봉에서 서북농원과도 이별을 하고 암릉구간 조망바위를 지나 염속산에 도착한다. 속세가 싫다는 뜻이지만 속세에 그다지 떨어져 있지도 않다.
♤ 염속산(厭俗山, 870.2m)/ 전망데크/ 시군면계(김천시 조마면 - 성주군 금수면)
성주군 금수면 무학리, 후평리와 김천시 조마면 대방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남쪽으로 대가천을 사이에 두고 독용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염속봉산, 연봉산으로 이어진다. 염속산의 남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들은 대가천으로 합류하며, 북사면에서는 대방천이 발원한다. 산의 동쪽에는 살치재로 59번 국도가 통과하며, 남동쪽에는 성주댐이 있다. 염속산은 조선시대 사료에 기록이 없으며 조선지형도에는 산 높이가 870.2m라고 기재되어 있다. 염속산은 과거에 이 산에 염속사라는 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며 눈가링이라는 이칭(異稱)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설은 수백년 전 어느 노파가 며느리의 불효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세상을 등뒤로 하고 이 산으로 들어와 여생을 보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한다.
당초 여기에서 비박할 예정이었지만, 내일 갈 거리가 만만치 않고 아침 기온도 최저 -7도까지 떨어진다니 조금이라도 더 가주고 늦게 일어나는게 이익이 될것 같았습니다. 수도암에서 물 500cc 세병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넉넉했구요. 배낭에 캔맥, 콜라, 물 1리터를 넣어두었기에 막바로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 살티재(箭峴, 389m)/ 살치재/ 주음실/ 59번국도
김천시 조마면 대방리와 성주군 금수면 후평리를 잇는 고개로 살치(티)재는 성주와 김천의 경계를 이루는 염속산과 염속봉산 사이에 위치한 높은 고개이다. 예로부터 김천과 성주는 물론, 경남 합천까지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으며, 지금은 59번 국도가 통과하고 있는데 살치재는 조선지도와 대동여지도 등에 모두 전현(箭峴)/ 화살재로 기재되어 있다. 한편 조선지자료에는 사을(沙乙)이라 기재되어 있으며, 같은 한자 이름의 주막에 한글로 살티주막이라고 쓰여 있는데, 살티재는 사을이라 불린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살티재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도 성주 후평리와 김천 대방리에서 전해오는 설이 다르다. 후평리에서는 바람이 세어 산모래가 많이 날리고 멀리서도 모래 먼지가 보인다고 하여 살티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편 대방리에서는 옛날에 이 곳에 사청(射廳: 무과의 시험을 보던 대청)이 있어서 궁항(弓項), 성궁(일명 활목, 활미기)과 같은 활과 관련된 마을 이름이 있으며, 고개 이름도 화살을 줍는 고개라 하여 살티재라 또는 주음실이라 하였다고 한다. 살티재 북쪽사면에서 발원한 대방천이 조마면을 지나 감천면 도평리에서 감천으로 흘러들고, 살티재 남쪽에서 발원한 하천은 성주군과 고령군을 지나는 대가천으로 흘러든다.
- 과수원 농가가 있다. 살티재를 가로질러 노거수 뒤쪽으로 올라서면 노송이 반기고 뚜렷한 등로가 나온다. 살치재는 차량통행이 빈번하다. 살치재 건너로는 염속봉산 KT 중계소로 오르는 도로입구가 있고, 고개 왼편으로는 넓은 공터이다.
♤ 염속봉산(厭俗鳳山, 679m)/ 삼면봉(김천시 조마면, 성주군 금수면 → 벽진면)/ 칠봉지맥 분기점
김천시 조마면과 성주군 벽진면 봉학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바로 아랫쪽에는 성주와 김천으로 연결되는 59번국도가 지나는 살티재가 있고, 맞은편엔 지나온 염속산이 보인다. 염속봉산 정상에는 kt염속산 중계소가 자리잡고 있어서 정상엔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칠봉지맥 분기점이기도 하다.
- kt염속산중계소 정문 닫혀있는 철문에서 중계소를 오른쪽으로 끼고 임도를 따르면 임도 우곡각지점에서 왼쪽으로 지맥길을 따른다. 출입문 반대쪽으로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도로 우측으로 이끼 낀 콘크리트 계단이 나타나고, 계단을 올라 폐 건물들을 지나고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그 공터 좌측 옆으로 새마포산악회 산패와 준희선생님 칠봉지맥 분기점 산패가 있다.
♤ 칠봉지맥(七峰枝脈)이란
백두대간 대덕산(大德山 1,290.9m) 남쪽 삼도봉(초점산.1250m)에서 분기한 수도지맥(길이 103.4km)이 동쪽으로 18.4km를 내려가 수도산(1317.1m.)에서 동북쪽으로 금오지맥을 분기하고, 분기한 금오지맥(길이 81.4km)은 북동진하여 28.8km를 가서는 염속봉산(679m)에서 다시 남동쪽으로 한 가지를 치는데, 이 낙동강과 회천이 합류하는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 정터마을 앞에서 끝나는 길이 58.8km 되는 산줄기를 말하며 최고봉인 칠봉산(517m)의 이름을 빌려와 칠봉지맥이라 부르며 지맥의 서쪽으로 흐르는 물은 회천(길이 78km)이 되고,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백천(길이 32km) 내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칠봉지맥의 끝인 경북 고령군 우곡면 객기리는 서쪽과 남쪽은 경남 창녕군과 접하고 동쪽은 대구광역시와 접하는 세개의 시군 경계가 된다.
♤ 칠봉지맥 개념도
♤ 성주군 벽진면(碧珍面)
벽진면은 성주군 서북부에 위치하고 성주군의 뒷벽인 배지산(斐旨山, 一名 乞手山, 784m)과 그 북쪽 능선의 별뫼고개(성산현=별티)로 이어진 김천시와 접경하여 동쪽은 초전면, 남쪽은 성주읍과 대가면, 서남은 금수면과 인접한다. 북부는 산악지대이고 그 곳 비지산에서 발원한 이천이 중남부의 비옥한 충적평야를 이루며 동남으로 관류한다. 교통은 면소재지를 중심으로 동서로 국도가 남부를 관통하고, 남북의 중앙부위에는 지방도가 김천으로 이어져 있다. 산악의 준령과 계곡, 비옥한 농토 등의 천혜의 조건은 기원전 2∼3세기부터 성주 인류문화의 발원지로, 일찍이 별뫼 부족성읍국이 형성되어 차츰 벽진가야동맹국으로 발전했다. 서기 562년 대가야국이 신라에 병합될 때까지 가야동맹국의 일원으로 깊은 역사의 역할을 다한 곳이다. 벽진가야성읍국은 3,000년 이전부터매 매수리 수남마을을 근거로 해서 매적산(483)과 자산(360)에 산성을 두고 발전해서 고령 성산면의 이리, 수륜면의 뒷뫼, 가천면의 기불, 덕곡면의 가슬, 칠곡 기산면의 한솔 등의 성읍국과 동맹관계를 맺게하여 고령의 대가야와 대등한 동맹종주국으로서 번영을 누렸다. 서기 562년(신라 진흥?12)에 복속되어 벽진군이 되었다. 서기 923년(신라 경명왕 7 : 고려 태조 6년7월) 벽진장군 양문이 고려에 귀부키로 하고 그의 생질 주환을 왕건에게 보냈던 바 태조가 반겨서 주환에게 원윤의 관직을 주었다. 서기 940년(고려 태조 23년 3월) 벽진군과 성산군(고령군 성산면)이 통합되었다. 이때를 전후로 벽진땅에는 미곡(풀곡)·명간(밖간)·암회(마회)의 3방이 있었는데 미곡방은 가암, 운정, 자산, 용암리, 명간방은 해평, 봉계, 매수리이고 암회방은 외기, 암학리이다. 서기 1546년(명종 1) 목사 이윤경이 미합방을 운곡이라 했다. 서기 1555년(명종 10) 목사 노경린이 명간·암회방을 합방해서 명암방이라 했다. 서기 1895년(고종 32) 5월 방을 면으로 하여 운곡면·명암면이라 했다. 서기 1914년 3월 운곡·명암면을 통합하여 벽진면이라 했다. 서기 1914년 7월 성주면의 택정과 대가면의 가곡이 편입되었다. 서기 1988년 5월 동면을 리로 고쳤으며, 서기 1990년 4월 해평리를 수촌리로 개정했다.
연봉산 일대는 송이버섯 산지로 유명해 송이움막을 자주 만납니다.
♤ 연봉산(延鳳山, 704.9m)
김천시 조마면 대방리와 성주군 벽진면 자산리와 수촌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밋밋한 둔덕봉이 세개 연속으로 있는 작고 밋밋한 봉우리인데 어엿한 산이름이 붙어있다.
- 선답자 표지기가 많이 달려있다. 조망은 별로다. 연봉산에서 500여m 가면 글씨산이다. 지맥은 우측으로 내려선다.
♤ 글씨산(757m)
김천시 조마면 대방리와 성주군 벽진면 봉학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글씨산은 남부에 있는 수도산에서 동부의 금오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중간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으로 염속산, 북쪽으로 별무산과 고당산이 있는데 산의 북서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들은 대방천이 되어 감천에 유입하며, 남동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들은 이천이 되어 성주군을 통과해 낙동강으로 유입한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의 사료에서 글씨산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글씨산은 옛날 선비가 도를 닦기 위해 은신 수도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빌무산(783.6m)/ 별무산
김천시 조마면 신왕리와 성주군 벽진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3등삼각점만 있을뿐 밋밋한 봉우리일 뿐이다. 성주군의 서북부에 위치하고 성주군의 두시벽인 빌무사녀 일명 걸수산과 그 북쪽 능선의 별뫼고개(星山峴)로 이어진 김천시와 접경하여 동쪽은 초전면, 남쪽은 성주읍과 대가면, 서남쪽은 금수면과 인접해 있는데 북부는 산악지대이고 그 곳 비지산에서 발원한 이천(伊川)이 중남부의 비옥한 충적평야를 이루며 동남으로 귀류한다.
- 전파송출탑이 있는 빌무산 북봉 정상에서 급좌틀하여 내려서게 되고, 그러니 빌무산 북봉(767m) 직전에서 좌틀하기도 한다.
♤ 536.4m봉/ 치솔봉
성황당 안부를 넘어서면 칫솔봉/ 칫솔산이라는 이름의 봉우리이다. 약간 넓은 공터에 지맥길은 급좌틀로 휘어져 내려서는데 우측 뚜렷한 등로는 성주군 벽진면 용암리로 탈출하는 길이다.
- 선답자 띠지와 벽진면 용암리 방향 나무에 치솔봉이라는 산패가 달려있다. 용암리 탈출루트는 조금 더 진행하여 고개에서 내려서는 길이 또 나온다.
♤ 고당산(姑堂山)갈림길/ 삼면경계면(성주군 벽진면, 김천시 조마면 → 김천시 감천면)
536.2m봉을 지난 송이움막이 있는 삼거리이다. 고당산갈림길에서 지맥길의 좌측이 김천시 조마면에서 감천면으로 바뀌어 잠시동안 감천면과의 면계를 따르다 곧 농소면으로 바뀌게 된다. 이곳에서 좌틀하면 지맥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당산으로 가는 길이고, 지맥길은 우틀이다.
♤ 고당산(姑堂山, 603.5m)/ 할미당산
고당산은 경북 성주군의 벽진면 용암리와 김천시 조마면 신왕리·감천면 무안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고당산은 옛날에 이 산 밑에 할미당절이 있어 할미당산이라고 부르다 절이 없어지면서 고당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고당산은 백두대간 대덕산 전위봉에서 수도산(修道山)으로 이어진 수도지맥 중 일부가 북쪽으로 뻗은 금오지맥의 가래재, 부항현, 염속산을 지나 북쪽으로 이어진 산줄기에 위치한다. 남쪽으로는 빌무산, 염속산으로 연결되며, 동쪽으로는 별미령을 지나 백마산으로 이어진다. 고당산과 별미령 사이로, 9번 군도가 지나간다. 고당산의 남동쪽에서 발원한 계류들은 이천으로, 북서쪽에서 발원한 계류들은 감천으로 흘러간다.
산불감시원 아저씨가 김천쪽으로 내려가길래 물 구할 곳이 없느냐고 큰 소리로 물었더니 다시 돌아오시더니 단팥빵과 사과쥬스를 주고 가시네요. 감사합니다.^^ 물은 벽진면 쪽으로 조금 내려가야 구할 수 있답니다.
♤ 별미령(別味嶺, 355m)/ 성산령(星山嶺)
경북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와 성주군 벽진면 용암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정상에는 벽진(碧珍)이라는 표시석이 서있고 김천시 4번군도와 성주군 9번군도가 통과한다. 별미령의 별미는 성주에서의 별뫼(星山)가 별미로 변음이 된 뜻인데 대부분 별미령(別味嶺)으로 기록이 되어 과거 성주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 백마산 기슭의 갈대밭을 헤치면서 고개를 넘어갈 때, 휴식을 취하면서 먹는 막걸리의 맛이 일품이라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전해지고 있는데 억지스럽다. 벽진이씨의 시조 이총언은 신라 말 이곳 벽진군수를 지냈다고 한다. 벽진은 하늘의 보배인 '별'을 말한다. 별미령은 예부터 성주군 주민들이 김천시를 지나 서울 방향으로 가는데 많이 이용하였고, 현재는 김천시 군도 4호선과 성주군 군도 9호선이 지난다.
- 고개 정상 표시석 아래 벽진가야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소개되어 있다.
♤ 벽진가야/ 성산가야(星山伽倻)
삼국유사에 5가야의 하나로 전해지는데 경북 성주 지역에 있던 나라, 벽진가야(碧珍伽倻)라고도 한다. 성산이라는 지명은 원래 신라 경덕왕이 757년(경덕왕 16)에 일리군(一利郡: 고령군 성산면)을 개칭함으로써 생긴 것으로 이 지역의 지방호족이었던 이총언 세력이 신라 말에 반신라적인 명분의 하나로서 성산가야라는 국명을 조작해 냈다는 것이다. 본래 이 지역에는 벽진국(碧珍國)이라는 독립소국이 있었다가 4세기말 이후 신라 영향권에 편입되었고, 결국 6세기 초반 무렵에 완전히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하며 기존 성산가야는 금관가야가 중심이 된 전기 가야연맹이 하나였다가 후에 신라의 영향권에 편입된 나라라고 이해하는 것이 지배적이다.
♤ 고방사(高方寺)
별미령 북쪽 감천면 옹호리(현재 농소면 봉곡리)에는 아도화상이 직지사와 함께 418년(눌지왕 2)에 창건한 고방사가 있다. 고방사에는 『부모은중경』 등의 경판과 탱화 등의 문화유산이 보관되어 있다. 고방사는 과거에 규모가 큰 절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많은 전각이 불에 타고 법당만 남았고, 1719년 수천대사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노산 북동쪽에 있는 사실(寺室)은 부근에 고방사가 있어 붙인 이름이고, 사실 바로 옆에 있는 조곡(鳥谷)은 마을 부근에 학이 많이 서식하여 붙인 이름이다. 별미령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노산(盧山)은 옛날에 마을 근처에 갈대가 많아 붙인 이름이다.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어 지금 자리로 옮겼는데 보광전 지붕의 청기와 3장은 벼락을 막는 구실을 한다. 원래 절터는 약수가 유명했다. 지금 절에도 맑은 약수가 철철 흘러넘친다.
백마산 오름길을 따라 20여분 진행하면 513.8m봉에 이른다. 513.8m봉에서 우측으로 꺾어 내려서면 좌측 계곡건너로 백마산이 보이고 지맥은 우측으로 빙글 돌아서 진행한다. 670m 삼면경계봉에서 오름길이 끝나고 왼쪽으로 꺾어지는데 사드기지로 변한 옛 성주골프장과 금오산과 영암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670m봉/ 삼면봉(김천시 농소면, 성주군 벽진면 → 초전면)/ 달밭봉
김천시 농소면과 성주군 벽진면, 초전면의 경계지점에 있는 봉우리이다. 달밭이라 표기된 펑퍼짐한 능선을 지나 오른다. 명색이 삼면봉인데 이름없는 무명봉이다. 산 아래 월곡리(달밭)가 있긴 하지만 달밭봉은 검증되지 않은 봉우리 이름이다. 草田이란 명칭은 푸른 초목이 울창한 넓은 들판을 개척하여 십만리들이라 이름짓고 곡식을 가꾸는 평야를 만들었으므로 면 이름을 푸른들을 상징하여 만든 것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지맥길은 좌틀로 이어진다.
♤ 별뫼(星山)/ 백마산(白馬山, 715.5m)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 노곡리와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의 경계에 있는 금오지맥 중간에 우뚝 솟은 산으로 서남쪽으로는 별미령고개를 건너 고당산과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영암산과 연결된다. 서편으로 백두대간의 능선이 시원스레 조망되고, 지맥 뒤 동편으로 금오산과 영암지맥의 영암산, 신석산과 김천혁신도시와 가야할 능선에 사드배치로 진행이 곤란해진 구 성주 롯데 스카이힐스 C.C.(옛 성주 헤븐랜드)가 보인다. 백마산의 북쪽과 서쪽 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율곡천을 이루어 농소면과 남면을 지나 감천에 유입하며,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백천에 유입한다. 산의 북서쪽 기슭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고방사가 있으며, 동쪽으로는 김천과 성주를 연결하는 913번 지방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백마산은 『영남지도』에 처음 기록되어 있다. 한편 조선지지자료 (개령)에는 농소면 봉현동에 있는 산으로 기재되어 있고 조선지형도에는 백마산의 높이가 716m라고 쓰여 있으며, 산 남서쪽의 달밭 마을이 월전(月田)으로 표기되어 있다. 백마산은 산의 모양이 말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정상에는 국기게양대와 정상석, 벤치, 이정표 그리고 2등삼각점(김천 27/ 1981 재설)이 있다. 정상석 뒷면에는 백마산의 옛이름이 걸수산이라고 쓰여 있다. 백마산 정상 일대는 말의 등처럼 능선이 길다. 정상에 서서 보면 주면에 흰 바위도 많다. 마사토 재질이라 나무가 없는 민둥산은 하얗게 보일 수도 있겠다.
♤ 김천시 농소면 봉곡리(鳳谷里)
봉곡리는 예부터 마을 뒷산에 왜가리와 백로 떼가 살고 있어 새터, 봉현(鳳峴), 봉곡(鳳谷)이라 했으며 봉곡리의 문화유적으로는 이종화 처 김해김씨 정려각, 고방사 등이 있다. 이종화의 처 김해김씨는 남편이 병사하자 삼종지의의 도리를 지키겠다며 자결을 하여 1847년(현종 13) 나라에서 정려를 내렸고, 1853년(철종 4) 정려문을 세웠다. 고방사는 418년(눌지왕 2) 아도화상이 백마산에 창건한 사찰로 규모가 컸으나 임진왜란 때 많은 전각이 불에 타고 법당만 남았다.
- 봉곡리갈림길에는 이정표와 벤치가 두개 있고 여기서 지맥은 우틀하여 노곡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 활기재(384m)/ 활굿재
김천시 농소면 노곡리와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김천에서 성주를 잇는 913번 벽소로 2차선 도로가 지난다. 이 지역 주민들은 활긋재라고 부르는데 활(弓)과 관련이 있을법 하지만 지명유래를 찾기 어렵다.
- 도로를 지나 임도옆 절개지로 올라선다.
♤ 성주군 초전면 월곡리(月谷里)
백마산 끝자락에 자리한 마을로, 경지가 소규모로 분포하며 작은 하천이 흐른다. 명곡리, 소야리 일부를 병합하면서 월전과 명곡의 이름을 따 월곡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홈실, 개울마, 오리나무, 달밭, 배나무골, 뒤미마을 등이 있다.
사드기지를 우회할 경우,
억새 등로를 지나 전진하며 앞을 보니 잡목 사이로 진행해야 할 594.6 삼각점봉과 그 좌우측으로 이어지는 사드기지 위 마루금이 보이지만 그곳으로 오를 수 없어 좌측 옆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임도를 번갈아 타고 사드기지가 끝나는 지점으로 우회하며 진행하여야 한다. 활기재(913번 벽소로 2차선 포장도로, 사드기지로 등산로 폐쇄 안내판) 이정표(금오산정상 12.1 Km, 백마산정상 1.9 Km)-사드기지 우회임도로 진행-913번 벽소로 2차선 포장도로-양회임도(농소 입석에서 노곡까지)-갈림사거리-비포장임도와 양회임도로 교대로 진행-비포장임도-억새평원-능선진입-마루금 접속(주능선진입, 군 경고판과 원형 철조망)
윤형철조망을 살짝 우회하여 암봉에 오르고 여기까진 별 무리없이 올랐습니다. 이후론 계속하여 철조망옆으로 진행합니다. 군 초소가 보이는데 초소병은 없고 CCTV가 보입니다.
♤ 594.5m봉/ 삼각점봉
완만하던 오름은 가파르게 된비알의 오름으로 이어지며 594.5m봉 직전의 바위봉우리에 이르면 지나온 백마산과 별미산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져 보인다. 우측 아래가 성주 롯데 스카이힐스 골프장이던 사드기지이다. 사드기지 너머로 가야할 영암산과 신석산이 보인다. 서래야님은 활기봉이라고 명명했다.
한밤중도 아니고 벌건 대낮에 설마 군인이 사람 잡아가기야 하겠는가 부딪쳐보기로 합니다. 윤형철조망 울타리에 바짝 붙어 바깥쪽 사면으로 이동합니다. 경계병의 수하를 받을 것에 대비, 사진은 전혀 찍지 않았습니다. 아쉽게도 기존 등산로는 군부대 울타리 안쪽 순찰로로 바뀌어 있습니다.
♤ 성주군계봉/ 삼면봉(김천시 농소면, 성주군 초전면 → 김천시 남면)
지맥의 우측이 성주군 초전면에서 김천시 남면으로 바뀌어 지맥은 이제 성주군과 이별을 하고 온전하게 김천시로 진입하여 농소면과 남면의 경계를 따른다.
♤김천시 농소면 노곡리(老谷里)
경북 김천시 농소면 노곡리는 관직을 그만둔 연로한 노인들이 마을로 들어와 노년을 평온하게 보내었다 하여 노리실(老夷室) 또는 노곡(老谷)이라 하였다. 1759년(영조 35) 선비 박유춘(朴有春)이 마을을 개척할 당시에 노송이 많아 노곡이라 했다는 설과 험준한 백마산과 비백산 일대에 노루가 많아 노루실 또는 장곡(獐谷)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거은 다 내려와 군부대 윤형철조망 울타리 끝나는 지점에 초소를 연거푸 만나는데 경계병이 있네요. 먼저 큰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후 소대장이 뛰어와 혼자 왔느냐 일행이 있느냐 물어보고 여기 등산로가 있느냐 등등 철망 건너편에서 물어보네요. 원래 등산로였는데 사드기지가 들어오는 바람에 군부대 순찰로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자상하게 설명을 합니다. 이후 무전교신을 하더니 빨리 부대밖으로 벗어나시라고... ㅎㅎ
♤ 원불교정산종사 구도길
이곳에서 가까운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박실부락에 위치한 원불교 성지로 원불교 2대 종법사 정산 송규종사(1900~1962)께서 1913(13세)에서 1919년까지 7년 동안 살았던 곳으로 정산종사는 이곳에서 도를 구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스승을 만나기 위하여 가야산, 전라도 등지로 다니면서 구도하였다고 한다. 원불교란 우주의 근본원리인 일원상(一圓相) 즉 동그라미 형상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삼는 종교로 1916년에 박중빈이 전북 익산시에 총본산을 두고 개창한 불교 계통의 신종교로 믿음의 대상은 법신불일원상(法身佛一圓相)이며 정각정행, 지은보은, 불법활용, 무아불공을 강령으로 한다. 불교의 현대화, 생활화, 대중화를 주창하여 각자 직업에 종사하며 교화사업을 한다.
♤ 월명리 갈림길
우측으로는 남면 월명리로 내려서는 길이고, 좌측은 농소면 노곡리로 가는 길인데 좌측으론 넓고 뚜렷한 임도가 보이나 우측으론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 김천시 남면 월명리
월명리는 금오산과 영암산이 남북을 가로막아 좁은 골짜기가 동서로 나있다. 마을 북쪽 아래로는 못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개령현 남면에 속한 신전이었으며, 1914년에 이웃한 운봉리, 동릉을 합하여 월명동으로 개편하고 1971년 신전을 나누어 월명1동으로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섶밭, 운봉, 동릉, 하릉 등이 있다. 섶밭은 말고리 또는 신전(新田)이라고도 한다. 전에 숯을 굽던 밭이 있었다고 하여 섶밭이라 하였고, 옛날 어떤 고을 원님이 개령을 넘어가려 이곳을 지나다 날이 저물어 유숙하고 갔다 하여 말고리라 하였다. 운봉은 백운산과 금오산 중간에 있는 마을로 지대가 높아 구름이 쉬어서 넘어가며, 마을이 구름에 덮여 햇볕을 잘 볼 수 없다고 하여 운봉이라고 했다.
산불초소가 보이는 봉우리로 나무계단을 올라가기 직전에 있는 고개입니다.
♤ 능밭재
전면에 산불감시초소봉이 보이고 급경사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머루고개에서 영암지맥 분기점 올라갈 때 지나치는 곳이다. 농소면 노곡리와 남면 월명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좌우 등로가 보이지 않는 고개로 마을을 이어주던 역할을 잃은지 오래되었다.
능선에 올라설 즈음 등로 우측으로 통훈대부 비서원 승지 성산배공의 묘지가 있네요. 산불초소 감시원 아저씨를 불러 깨워 잠시 이야기를 나눕니다. 앞에 있는 산이 영암산 맞느냐고 물어보니 잘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오네요.^^
♤ 산불감시초소봉(553.5m)/ 효자봉
가파른 능선을 올라 김천시 농소면 노곡리와 남면 월명리, 부상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상당히 높은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우측으로 월명리로 내려서는 임도가 보인다. 북쪽으로는 절골산(330.6m) 운남산(382.6m)과 북동쪽 더 뒤로 제석봉(512.2m)이 보이고 영암산과 선석산은 물론 금오산도 제 모습을 드러낸다.
산불감시초소에서 3~4분 진행하니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에 띠지가 잔뜩합니다. 처음에는 금오지맥길인가 싶었지만 이내 주위를 둘러보고 쓰러져 있는 영암지맥분기점 산패도 발견합니다.
♤ 영암지맥분기점(550m)
영암지맥(鈴岩枝脈)은 백두대간 대덕산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수도지맥이 18.1km를 내려가 수도산(1317m)에서 동북으로 금오지맥을 분기하고 금오지맥은 다시 47.6km를 동진하여 금오산에 이르기전 능밭재 북쪽 400m 지점인 약 550m봉에서 남동방향으로 다시 한가지를 쳐 영암산(785m) 선석산(742m) 비룡산(579m) 각산(468m)을 지나 백천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성주군 선남면 선원리 선원교 아래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5.3km 되는 산줄기로 백천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 영암지맥 분기점을 지나자 왼쪽 아래로 삼성파워텍(주) 공장이 보인다.
♤ 영암지맥 개념도
♤ 부상리마을 갈림길
남면과 농소면의 면계는 직진이고, 지맥길은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우틀하여 부상리마을 3.4km 이정표 방향으로 내려선다. 여기서부터 맥길은 온전히 김천시 남면으로 진입한다.
♤ 김천시 남면 부상리
이곳 부상고개(사모실교차로)는 고속도로 건너 4번 2차선 포장도로가 있는 고갯마루로서 부상리는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있으며 낮은 산지지형으로 골짜기에 위치하며 앞산에는 백운암이 있다. 1450년 무렵 김모 씨가 마을을 개척하였다 하며 신라시대부터 부상이라 불리었다가 1914년에 인근의 모산골과 사모실 등의 작은 마을과 지경리를 합하여 부상동이라 하였고 1971년에 부상과 모산을 따로 분리하여 부상1동이 되었다가 1988년에 동을 리로 바꾸었다. 자연마을로는 역말, 모산골, 사모실, 지경 등이 있는데 역말은 조선시대 부상역이 있었으므로 역말이라고 하였고 뽕나무가 많아서 부상이라고도 하였다. 모산골은 지산곡이라고도 하며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골 안에 못이 있고 산이 있다 하여 모산골이라 하였고 사모실은 옆 마을인 모산골을 거꾸로 부른 데서 사모실이라 하였으며 지경은 김천시 남면과 칠곡군 북삼읍의 경계에 있는 곳이라 하여 지경이라고 불렀다.
♤ 사모실산(264.4m) 분기점
내려선 안부에서 올라서면 좌측으로 사모실산의 분기점이고, 우측사면에 잘 조성된 전주이공 몽성처사 무덤이 보인다. 북쪽 가까운 거리에 사모실산이 있다. 부드러운 능선은 311.4m봉을 지난다. 능선의 우측사면에는 큰 비석과 석물들의 무덤이 위치해 있다. 昌寧曺氏 가족묘역을 넘어서자 도로로 내려선다. 고속도로 부상2교 아래를 지나서 도로를 따르는데 마루금은 좌측의 고속도로인 얕은 지대이다. 모텔들이 몇 개 있고 부상1리 버스정류장을 통과한다.
♤ 중부내륙고속도로
390m봉을 내려서서 평택임씨 묘지 너머로 금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평택임씨 묘지를 내려서면 35개의 묘비가 서있는 함안조씨 묘지이다. 함안조씨 묘지를 지나 양회임도를 따라 내려서서 고속도로 수로 옆 절개지를 내려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하단으로 통과한다.
부상고개 여기 버스정류장에서 4번도로 아래를 통과해 금오산으로 오릅니다.
♤ 부상고개(扶桑峴, 180m)/ 매식가능/ 부상고개 휴게소
김천시 남면 부상리에 있는 고개로 바로 윗쪽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가고 맞은편 금오산 자락 아랫쪽으로는 새로 생긴 4번 신국도로 시원스레 차량들이 달리는데 이곳은 옛 영화를 잊어버리고 초라한 모습으로 명맥만 이어가는 형국이다. 지명의 유래는 예부터 마을에 뽕나무가 많아 잠업이 성하였는데, 가야금을 만든 우륵이 이 마을에서 생산된 명주실로만 가야금 줄을 매었다고 하여 '뽕나무상(桑)자를 써서 부상이라 하였다. 1970년 고령에서 발견된 『신천유집』에 우륵이 작곡했다는 12곡의 가야금부, 즉 가야금 노래에 부상의 명주실로 우륵의 가야금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 선비 강혼과 기생 은대선의 사랑 이야기
'부상역의 한바탕 즐거움이여(扶桑館裏一場歡)/ 나그네 이불도 없이 촛불은 재만 남았네(宿客無念燭燼殘)/ 열두 무산선녀 새벽꿈에 어른거린다(十二巫山迷曉夢)/ 역루의 봄밤은 추운 줄도 몰랐구나(驛樓春夜不知寒)'
중종 시절 대제학을 지낸 강혼(姜渾'1464~1519)이 경상감사로 지방을 순행하다 성주 관기(官妓) 은대선과 정이 들어 부상역에서 이불도 없이 하룻밤을 보내며 지은 '부상역의 봄밤'(扶桑驛春夜)이란 시조다. 선비 강혼은 경상감사로 지방을 순행하다 성주 관기(官妓) 은대선(銀坮仙)과 정이 들었다. 이별을 앞두고 금오산 아래 부상역까지 함께 왔지만 덮고 자야 할 이불은 벌써 개령역으로 보낸 뒤라 이들은 이불도 없이 하룻밤을 보낸다. 객사에서 마지막 회포를 푼 후 강혼은 이별의 아쉬운 마음을 담아 3수의 시를 남겼다. '부상역의 봄밤'은 그중 하나로 지금도 '묵계집' 등에 실려있다. 은대선은 부상역을 지나 상주까지 강혼을 따라갔으나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했다. 강혼은 조령을 넘어 도성을 향하다 성주 서생을 만나 함께 술잔을 나누던 중 은대선 생각에 즉석에서 사모하는 마음의 시와 편지를 써 서생을 통해 은대선에게 보냈다. 은대선은 이를 병풍으로 만들었다. 당시 성주를 지나는 선비들이 일부러 객관에 들러 병풍을 구경하고 지났다는 얘기도 전한다. 송계 권응인(權應仁)이 강혼이 세상을 떠난 뒤 훗날 은대선을 만났는데 이미 여든이 된 그녀는 "검은 머리카락이 흩날리다가 이제는 흰 머리카락이 흩날리네로 변했습니다"라고 강혼이 써준 시를 떠올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순애보가 전한다.
첫댓글 비실이 선배님의 도움으로 편안하게 수도암까지 이동을 해 산행을 시작하였네요
더욱이 비박장비를 살티재까지 이동시켜 줘 조금은 가볍게 살티재까지는 빠른 발걸음을 하신 듯 하고요
활기재에서는 우회 대신 사드기지 철조망에 붙어 진행되는 등로를 택해 큰 제지없이 무사히 넘어가신 듯 하고요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산줄기이기에 잠시 산행기를 읽으며 벌써 추억 저 멀리 간직된 금오지맥을 꺼내 회상해 봅니다.
추운 날씨에 장거리 산행을 무탈하게 진행하심을 축하 드리며 남아 있는 구간도 무탈하게 완주하시기 바람니다.
네 칠갑산선배님!
선배님 후기보며 우회루트를 공부해두었는데 직접 넘었습니다.
서북농원도 배창랑대선배님 후기보며 직접 넘었구요.
무엇보다 준희선생님과 비실이부부대선배님이 도움을 주셔서 수월하게 진행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에구 장비 무게도 만만치 않을텐데
기온까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고생많으셨죠.
부산에 계신 준희선생님이 올라오셨나요?
비실이부부님은 가까운 대구분이셔 지원을 가능했나본데 가깝다해도 그런 배려가 사실 생각만큼 쉬운건 아닌데
고마운 분들이십니다.
수고했습니다.
항상 응원드립니다.👏👏👏
이슬하선배님!
귀가가 늦어 답글이 조금 늦었습니다.
영하 7도였다는데
첫 추위라서 그렇지 영하 17도 이하는 내려가야, 체감온도 25도 이하는 되어야 추운거 아닐까요.^^
온도보다는 바람입니다. 바람이 체감온도에 끼치는 영향이 더 큽니다.
부산 준희선생님과 대구 비실이부부대선배님이 신경을 써주시는 바람에 훨씬 수월한 금오지맥이 되었습니다.
남들에게 폐끼치는 성격이 아닌데 운영진으로 눈에 띄게 활동을 하다보니 피해갈수 없는 사정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의 순수한 성의를 매정하게 몰각할 수도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혜택을 입은 만큼 어떻게든지 다른 분들에게 돌려드리는 방식을 생각하게 되네요.^^
정을 받지 못하고 자라서인지 정겹고 살가운 성격이 못되는 편인데,,
역시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라난 아이가 행복이 무언지 안다는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금오지맥 걷기에 편하고 고도차이도 별반 없고 1구간 진행한 바로는 어려움이 없었고,
부상고개에서 금오산에 올랐다가 내려서는 구간이 제일 고비가 아닌가 싶습니다.
2구간 부상고개에서 합수점까지는 한 두명 같이해도 무난할것 같구요.
시골 지게작대기 출신이라 잡식성에 전천후라 혼자해도 가는데 지장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틀동안 주야없이 걸어서 금오지맥 첫 구간을 잘 마무리하셨네요.
비실이부부님의 택배 효과로 목표하신 산행도 수월했던 듯 싶습니다.
갑작스레 내려간 영하의 기온에 우려감도 불식하면서 비박도 잘 하셨구요.
다음날 펼쳐지는 청정하늘 모습이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대단하신 발자취를 보면서~
수고많으셨습니다.
방장님!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김천공용터미널에서 수도리까지 버스편은 잘 모르겠고, 지례면에서는 하루 2회 운행한다고 합니다.
수도리 버스종점에서 수도암까지 7.6km를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보통 택시나 자차를 이용하여 수도암까지 올라가더군요.
수도암에서 수도산 서봉까지는 1시간 이내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길은 잡목도 덜하고, 가시도 없고, 가파른 봉우리도 없고 걷기에 부담이 없는 정도입니다.
걱정해 주신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목표했던 대로 완주한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자님 이틀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요즘 날씨는 추워서 능선길을 걷다보면 완죤 칼바람이죠~
운영자님의 힘드신 산행기에 금오지맥 종주하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내요~
감사합니다~
또 손 다치지마시고 항상 안.줄산을 응원드립니다~
네~ 법광선배님!
바람이 조금 불었습니다만 아직은 설익은 겨울바람이었습니다.
땀이 나다가도 금새 식었고, 몸에서 땀이 나지 않을 정도로 불어주었습니다.
겨울에 기온이 낮은 상태에서 부는 칼바람이 더 무섭다는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에 비닐을 둘러치고 바람만 막아도 엄청난 보온이 됩니다.
이번에 텐트를 미리 점검하지 않고 가져가는 바람에 만약 추운 겨울이었더라면 클날 뻔 했습니다.
다행히 이너텐트로도 칼바람은 충분히 순화되었고, 옷을 겹겹이 껴입고,
발에도 비닐봉투와 잡주머니, 파우치 다 껴신고 동계 침낭에 들어가니 따뜻했습니다.
법광선배님 띠지도 확인했습니다.^^ 사고 없도록 조심하며 다니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실이가 한 겨울에 갔을때 삼방산초소부근에 발목이 붙들려 있는 꿀꿀이가 있었는데,
지금은 산방산에 표지석이랑 전망대도 설치되어 있네요.
잠시 그때의 꿀꿀이를 소환해 불러봅니다.
아~ 그 말씀하시던 초소가 삼방산이었군요.^^
옛날 초소와 지금 초소 두개가 같이 있던 산행 사진도 보았습니다.
이른 아침에 멀리 나오시고 번거로움이 크셨을것 같습니다. 택배덕분에 아주 쉽게 1구간 끝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요넘의 크기가 큰 송아지 만했구요.
일행중 머슴아들이 둘러서 달아나고 없었고.
뒤 따르던 장모님이 깜딱 놀라 고함을치고 난리부르스였던...
발목을 잡고 있는 나무뿌리가 보시는바와 같이 곧 뽑아질것 같았었거덩요.
금오지맥 수도산 글씨산 치솔산 등 이름도 거시기합니다 비박하면서 산행 대단하십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세르파대장님!
금오지맥 기다란 띠지 확인하며 잘 걷고 있습니다.^^
말씀 주신대로 배낭에 캔맥하나 꼬불쳐 갔습니다.
전날 잠이 부족한 것도 있었지만 눈뜨니 새벽 5시더군요. 푹 잘 잤습니다.
갈증도 해소되고, 수분도 보충하고, 수면효과도 있고,
장거리 산행에서 비박하며 마시는 캔맥 한잔 캬~~~
요새 제가 자꾸 살이 찝니다. 요즘 80kg 턱걸이 하고 있어요. ㅠㅠ
사드기지가 들어서기 전에 종주를 마쳤기에 성주 골프장을 내려다 보며
여유있게 걸었는데 지금은 비켜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네요.
수고 많았습니다.
네, 금곡선배님!
군부대 울타리 밖을 따라 내려서는 곳에서 딱 한군데 예전 한화골프장 건물이 보이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건물 아래 군용차량들도 보였구요.
예전 나무계단 등산로는 윤형철조망을 놓고 울타리 안쪽인지라 입맛만 다셨습니다.
그래도 그렇게나마 멀리 우회하지 않고 지날 수 있어 다행이었고,
저말고도 이미 누군가 그렇게 맥꾼이 지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첫번째 만나는 후문초소에서 뉴마포산악회 바닥지가 보였어요.
아마도 임도를 따라 우회하다가 능선을 타고 울따리 쪽으로 붙으신 모양이더군요.
마지막 초소에서는 아래로 살짝 내려서서 윤형철조망 울타리를 벗어나야 했습니다.
곳곳에 CCTV와 써치가 설치되어 만일 야밤에 간다면 군인들이 수하를 하지않을 수 없겠더군요.
이날도 나중에 알았지만 이재명후보가 고딩에게 사드기지 철수 문제로 계란공격을 당한 날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한 번 산자락에 푹 빠졌다가 무탈하게 돌아오셨습니다.
산줄기마다 품고있는경이로운 세상들을 만나는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수도산에서 가야산을 바라보며 포착한 사진이 일품입니다.
하늘금과 구름과 하늘이 햇빛과 어울려 만들어내는 조화가 대단하네요.
人知坐輿樂 不識肩輿苦.
퐁라라님 덕분에, 똥재에 새겨진 다산 선생의 값진 말씀을 가슴에 새깁니다.
백마산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압권이 아닐까 싶구요.
거침없이 펼쳐지는 금오산, 영암산, 황악산, 가야산의 진경이 가슴을 녹입니다.
과감하게 부딪쳐서 사드기지 옆을 돌파하셨군요.
아직 금오지맥을 경험하지 못한 터라 모든 게 신기하고 값져 보입니다.
산으로 향한 뜨거운 열정이
퐁라라님 삶에 값진 보약이 되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범산선배님!
이 야심한 시간에 어인 방문이신지요.^^
저야 온 국민의 불침번이라지만,,,
동짓달 기나긴 밤에 바람까지 스산하게 부는데 홀로~ ㅋㅋ 수심이라도 깃드셨는지요.
조금 더 알고자 가는 산길입니다.
비실이부부대선배님은 지맥을 하며 인근 관광도 빼놓지 않고,
향토음식도 찾아다니며 시간, 기일 정하지 않고 유람하듯 다니셨다 하네요.
저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배우고, 찾아보고 풍족하게 가고 싶습니다.
오늘도 금오지맥 금오산 정상을 어떤 식으로 돌을 것인지,
합수점을 강변으로 가야할지, 지금은 다 깍여진 농공단지로 가야할지 고민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금오지맥에 드셨네요.
삼방산에서 가야산을 멋드러지게 조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똥재 지나서 좌측으로 다소 떨어져 있는 가제산을 다녀왔는데요.
가제산에서 조망이 삼봉산이나 염속산에서 보는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가제산을 다녀오게된 것은 그때 무한도전 정기산행팀에 따라 갔었는데요.
무한팀은 수도산에서 살티재까지 가기로 되어 있었고 우리는 부항령에서 살티재까지만 갈 것이라 시간이 남아서 시간때우느라 다녀올 수 있었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살티재에서 3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네, 부뜰이운영자님!
내일 금오지맥 졸업하러 내려갑니다.^^
가재산은 다녀오기엔 넘 먼 거리였습니다.
금오지맥 이 구간은 날씨가 좋으면,,
수도지맥의 가야산과 백두대간 황석산, 덕유산, 대덕산 라인이 눈에 들어오는 구간이네요.
첫날은 간신히 가야산이 보였구요. 둘쨋날은 시야가 빵빵 터졌습니다.
게다가 김천시와 칠곡, 대구의 야경을 덤으로 봤으니 조황이 괜찮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역시 풍라라님 대단하십니다
우리 고장 인근에 출타 하셨네요
전 가까워 아직 미답 구간이라 잘 포스팅 하고 갑니다
금오지맥 두번만에 졸업 하신다고 비박 하시면서 얼마전 영암지맥
종주시 멧돼지 세번 만난 기억이 아직 생생 합니다
금오지맥도 아름다운 산줄기 입니다
안전하게 마무리 하시고 좋은 추억 많이 남기시기를 바랍니다^0^
와룡산선배님!
이제사 댓글을 봤습니다.
금오지맥은 저의 제2의 고향 구미를 지나가기에 남다른 소회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북봉산을 다녀오는데 구미 오렌지산악회 회원이라는 여자분이 뛰어오시네요.
두건님 아냐고, 경호님 아냐고 물어보길래 자세(자유로운세상)님도 안다고 대답드렸답니다.
실은 구미에 뽀고(뽀얀고무신)님도 알고요. 해올푸드님도 알아요. ㅋ
구미가 제2의 고향인데 우회해서 지나갈려니 서운한 마음이다고 말씀드렸네요.
영암지맥 갈림길을 지났고, 영암산과 선석산을 계속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선석산 아래에 세종대왕 태실이 있다는 것도, 성주에 태실이 많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두번에 걸쳐 마무리 했는데 크게 힘든 구간 없이 무난한 지맥이었다고 생각되네요.
금오지맥 덕분에 김천과 성주를 구경 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