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한양가는 길
의 어느 주막 마당
평상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윤 일행....
채옥은 결박당한 채 한쪽 구석
에 앉아있다...
마축지가 채옥에게 밥을 떠먹
여주려 하지만 채옥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축지 아따 한 술만 떠보시랑게요....참말로 복창 터져 죽겄
네잉....
윤과 마주 앉아 밥을 먹는 주
완 채옥이 신경쓰여 자꾸 쳐다본다...
축지 나으리...요 결박 좀 풀어주먼 안되가라우... 몸이 꽉
쪼인께로 밥인들 넘어가겄습니까...?.
윤 (채옥을 보지 않고) ...나도 배가 고파 먹는 것이 아니
다....
....나를 이기려거든 먹어라...
채옥 ....!
축지 (낮게 꿍얼거린다) 아따... 좀 풀어주란게로... 뭔 놈의
개 풀 뜯어 먹는 소릴한디야...
... (채옥에게) ...얼른 뜨시쇼....
채옥 (고개를 돌린다) ........
비호1 (말을 한 필 끌고 마당으로 들어오며 윤에게) ...나으
리, 역참에서 들었는데...
오늘 세자빈 간택령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윤 (아랑곳 없이 밥을 뜬다) ....
주완 그러면 어찌 되든지 간에 난희아가씨도 옴짝달싹 못하
고 궐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심란하시겠는
데...
축지 (심통스러운 표정으로 주완에게 다가와 밥사발을 신경
질적으로 탁 내려 놓으며)
...이놈 먼저 한양으로 가야 쓰겄구만이라우...
주완 왜 또...?
축지 우리 여편네도 홀몸이 아닌디... 너무 혼자만 놔뒀구만
이라우...
주완 우리 허는 꼬락서니가 맘에 안든다고 얼굴에 다 쓰여
있구만 뭘 둘러대.
(윤을 보며) 나으리...?
윤 (꾸역꾸역 밥을 넘기며) 애썼다...
축지, 불만인 듯 뭐라고 입을
삐죽거린다...
33. 성백 방
누워 잠들어 있는 성백....
곁에는 지네가 가득 담긴 소쿠
리와 대침, 중침, 소침의
크기가 다른 침구가 나란히 놓
인 소반이 보인다....
<인서트> 장닭 한 마리가 지네를 공격하고 있다...
결국 장닭에게 지네가 먹히고
만다...
<현실>성백의 얼굴 요혈에서 침을 빼
는 의원... 이마가 땀으로 흥건하다...
의원 달평을 보고, 안심해도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나간다...
성백... 독기운이 빠진 듯 평상
시의 얼굴빛을 찾았다....
총상을 입은 허벅지와 발목에
는 아직 광목이 감겨 있다...
머리맡은 덕수와 백검을 꼬옥
쥐고 있는 수명이 지키고 있다...
약이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오
는 달평과 양진호....
달평 (덕수에게) ...굿이 시작된 모양일세... 나가보게...
덕수 (일어난다, 진심으로) ....도방어른... 고맙습니다...
...마음이 조급해 버릇없이 군 것 용서하시우....
달평 ...됐네....마음 쓰지 말게...
덕수 (나간다)
달평 (수명에게)...너도 들어가 좀 쉬거라....
수명 괜찮습니다...
달평 ...눈 좀 붙이래도....
수명 ...늘 지켜보라 하지 않았습니까.... 지키겠습니다...
달평 (노려본다) .....
진호 ....(역시 아쉬운 듯) ...오년을 공들여 온 감영과 수십
장정의 목숨들...
과연 장두령과 맞바꿀 만한 일인가 의문이군....
수명 (툭)... 이 분은 조선의 민심입니다.... 그에 댈 바가 아
니지요...
(뱉고나니 달평 앞에 할 말이 아니다).....
달평 (쏘아보며) ...너에게 사람의 그릇을 재는 재주가 생겼
더냐...
수명 ....
달평 (못 박듯이)...시키는 일만 하거라...
이때, 가벼운 신음소리를 내
는 성백...
놀라 쳐다보는 달평과 양진
호....
수명, 얼른 성백의 상체를 안
아 일으켜 머리맡에 있던 물사발을 입에
대어준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한숨을 토하
면.....
다시 성백을 눕혀주는 수
명....
가늘게 눈을 뜨는 성백.... 그
시야에 사람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달평 ...꼬박 하루 낮밤을 누워있었네.....극독이었더군.. 조
금만 늦었어도 손을 쓸 수 없었네....
도대체 그 다모년이 그토록 극악한 독을 썼는데도 당
하고만 있었단 말인가...
신분을 알고도 왜 먼저 죽이지 않았는가...?
성백 (미간이 움찔한다)........
35. 각출 무덤 앞
흙도 마르지 않은 각출의 무
덤...
들꽃 한아름을 무덤 앞에 놓
는 고사리 같은 손...
양순이다... 무덤을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각출을 안 듯 양팔을 벌려 무
덤을 안는다...
슬픔도 느껴지 못하는 듯 무표
정하게 눈을 감는다....
<플래쉬백> 4부 씬69에서 양순, 각출의 넓은 품에 와
락 안기면...
양순을 번쩍 안아올리며 껴안는 각출...
너무 힘주어 안았는지... 양순이 미간을 찌
푸리는데도...
아랑곳없이 행여 떨어질까 꼬옥 껴안는 각
출...
양순 (미소를 지으며) ...아부지....
눈물이 차오르는 눈으로 양순
을 바라보는 성백..
양순, 인기척에 눈을 뜨면 성
백이 서 있다....
양순 ...아저씨...
성백, 무릎을 꿇어 몸을 낮추
고는 천천히 손을 뻗어
양순의 앞 머리칼을 쓸어준
다....
양순 ....아부지 언제 일어나요....?
성백, 양순을 꼬옥 안으며 흐
느낀다...
뒤에 선 덕수, 몸을 돌려 하늘
을 보고...
수명도 고개를 돌린다...
36. 회의실
상석에 성백... 달평, 덕수, 판
관 외 소두령 십여명이 앉아있다...
수명은 성백 뒤에 서 있다...
성백 (무거운 얼굴로) ....나의 무모함과 성급함이 수많은 형
제들을 죽였소....
......무슨 낯으로 하늘을 이고 산단 말이오...
(백검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그만... 떠나겠
소.......
모두들 놀라 성백을 본다....
덕수 형님!
판관 감영까지 포기하며 구한 장수가 겨우 이 정도 밖에 되
지 않는단 말이오...!
달평 ...병가지상사라 하지 않는가.... 장수라면 와신상담할
생각을 해야지
그만한 일로 물러나겠다니.... 죽은 넋들 앞에서 부끄
럽지도 않소...?
성백 ...부끄러워 그러는 것이오......난 장수의 자격이 없
소....
나 같은 자를 따랐다간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될 것이
오...
덕수 (흥분해) 양순이를 생각하십시오...원수를 갚아야지
요...원수를...!
성백 (글썽이는 눈이 자괴감으로 이글거린다) 다른 자가 이
런 실수를 했다면...
나는.... 그 자를 살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일어나 목발을 짚고 나간다)
40. 산길
삿갓을 등에 건 채 목발을 짚
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성백..
숲에서 나오며 성백 앞을 가로
막는 수명... 성백의 백검을 등에 매고
있다... 걸음을 멈추고 수명을 보는 성백......
성백 .....막지 마라.....
수명 (털썩 무릎을 꿇는다) ....
성백 .......
수명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세상 이치의 옳고 그름
을 모르고....
...왜 정혁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모릅니다....
...단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저를 키워주신
도방어른의 명이었기에...
나리 곁을 지키고 살폈던 것입니다....
성백 (가만히 본다) .....
수명 (어렵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알렸습니다....
성백 ...알고 있다...
수명 (O/L)...모르십니다.... 나으리를 살피러 왔던 제가....
어느 때부터인가...
저도 모르게 나으리를 따르게 되었다는 것을.... 제가
무작정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나으리가 제 길이신데.... 천지 간에 아는 것이라곤
나으리 뿐인데...
이리 가시면 저는 어찌 해야 합니까.... (백검을 내밀
며)
저를 데려가시던지... 아니면 죽이고 가십시오.... (눈
가가 젖는다)
성백 (물끄러미 보다가)....내 몸 하나도 감당 못하는 나다...
나로 인해 죽은 형제들 앞에 나설 수가 없다... 그만 돌
아가거라...
수명 ...지옥까지라도....제가 모실 것입니다...
성백 ...형제들의 극락왕생이나 서원하며... (한숨을 내뱉으
며) ...발길 닿는 대로 떠돌 것이다... ...돌아가거라...
수명 (벌떡 일어나며) 거짓입니다....! 지금 다모라는 여인
을 찾아가시는 게 아닙니까...?
성백 (흠칫) ....
수명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끊지 못하시는 겁니
까...!
성백 ......(그냥 발길을 떼려는데).....
다시 우르르 몰려나오는 사내
들...
성백 보면.... 덕수를 포함한
소두령 대여섯이다...
덕수 (쏘아보는 눈빛이 촉촉하다)....수릿재에서 과객이나
털어먹던 이 박덕수가...
다섯살이나 어린 형님을 따랐던 건.......형님이 내게
했던 말 때문이었소....
...이 개같은 놈의 목숨도 장한 일에 쓰면... 가문 날 거
북등처럼 갈라진 백성들 마음에 단비가 될 것이라고 말이오...
성백 .....
덕수 각출이...그리고 형제들.... 모두 개죽음 당했다고 생각
하는 놈은 하나도 없소...
...그놈들은 마른 땅에 단비가 된 것이고..... 이제 형
님은 소나기가 되고 장대비가 되어 서 이 쩍쩍 갈라진 세상을 적
셔주어야 하지 않겠소.......돌아갑시다....
성백 (고개를 떨구고).......미안하오........ 이미 동굴에서 죽
었다고 생각하시오........
...나는 이제 장성백이 아니라..... 필부 장재무일 뿐이
오.....(고개를 천천히 드는데)
덕수, 날카롭게 칼을 빼 목을
겨눈다....
놀라는 수명.... 역시 칼을 빼
덕수 목을 겨눈다....
...수명의 칼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덕수....
덕수의 칼이 떨린다.....
덕수 (비장하게) ....차라리..... 장..성..백이라는 이름 석자
를.... 우리의 마음에 담아두겠소....
성백 (덕수의 눈을 깊이 응시하다가) ...그래....그 편이... 편
하겠어..... (베라는 듯 눈을 감는다)
덕수, 차마 베지 못하고... 눈
꺼풀이 떨리는데...
칼을 힘없이 내린다....
덕수 ....다시는 ...형제들의 눈에 띠지 마시오.....
성백 (눈을 뜨면) ....
덕수 (몸을 돌려 소두령들에게) ....가자... 장두령은 각출이
와 함께 적들의 칼에 죽었다...
올라 가려는데, 다급하게 뛰어
올라오는 주민1(40대).
주민1 (헉헉대며) 크,큰일 났습니다....
덕수 ...무슨 일이오....칠성아범...?
주민1 ...어서 피하십시오....감영군사라는 놈들이 마을에 들
이닥쳐....
화적의 동패라며 살육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누군
가 입을 열면 곧 이곳으로 들이닥칠 것입니다...
성백, 목발을 팽개치더니 다리
를 절며 산길을 달려 내려간다...
뒤따르는 수명.... 덕수 두 사
람을 돌아본다....
42. 동 마을
성백, 마을로 천천히 발을 옮
기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시체
들....
충격으로 굳어지는 성백의 얼
굴....
불에 탄 초가 마당으로 시선
을 돌리면....
4부 69씬에 나온 촌부와 촌모
가 쓰러져 있다...
허겁지겁 달려가는 성백.....
마당 입구에 쓰러진 촌모를 보면 가슴에
피가 낭자한 채 죽어있다....
성백 ....아주머니.....
조금 떨어진 곳에 엎드려 쓰러
져 있는, 역시 피투성이의
촌부 곁으로 가는 성백....
성백 ...아저씨....
성백 촌부의 몸을 뒤집으면...
촌부가 꼬옥 끌어안고 있던 양순이의
모습이 드러난다... 평온히 잠든 듯한 양순의 등 아래
로 피가 흐르고 있다... 축축히 땅
을 적시는 피는 양순이 손에 쥐여져 있는 흰 들국화
한다발마저 붉게 물들이고 있다....
<사운드 오프> 성백.... 하늘이 무너진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덜덜 덜리는 손으로 천천
히 양순을 끌어안는다....
....마치 생시와 같이 양순의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주는 성백....
성백 (슬픈 미소를 머금으며) ....양순아.... 이렇게 일찍 아
버지 곁으로 가버리면....
이 아저씨는 어떡하니...... 함께 꽃 따러 가기로 했잖
아......
...아저씨가 우리 양순이..... 꽃반지 만들어줘야 하는
데........
양순의 얼굴 위로 성백의 눈물
이 후두둑 떨어진다....
양순을 끌어안고.... 볼에 얼굴
을 부빈다....
온몸을 들썩이며 황소같은 울
음이 꺼억꺼억 터져나온다....
양순을 안은 채 하늘을 향
해.... 짐승처럼 울부짖는 성백....
하늘을 쪼갤듯한 슬픈 포효가
온 산에 울려퍼진다....
그 모습 위로....
성백 (마음 속으로) ...이 아이마저.... 희생이 되어야...
세상이 바뀌는 거라 말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차라
리... 썩은 세상에 앞서...
개벽을 외치는 그 자를 먼저 베었을 것이다......
<13부>
43. 산 일각
죽은 주민들의 시신을 평장(平
葬)한 듯 흙빛깔이 붉다...
두어명의 수하가... 흙을 톡톡
다지고 물러선다...
성백, 무덤을 멍하니 바라보
고 있고...
그 뒤로 덕수와 소두령들 수
명...
살아남은 주민과 아이들 십여
명이 비통한 표정으로 서 있다...
천천히 몸을 돌리는 성백의 눈
이 이글거린다....
시선을 아래로 둔 채 수명에
게 손을 내미는 성백...
수명이 백검을 내민다....
으스러지도록 백검을 움켜쥐
는 성백...!
진호 (괴로운 표정으로) ...꼭 어린 아이까지 그럴 필요가 있
었소...?
달평 (역시 괴롭다) ....사람으로 할 짓이 아니라는 거... 나
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이런 극약처방이 아니면... 장두령의 마음
을 돌릴 수 없소....
진호 ...그래도 이건...너무 참담한 일이요... 어르신이 아시
면.... 심하게 질책할 것이오!
달평 (O/L)...날이 잡혔소... 지금 선봉장이 이탈하면 모든
게 끝장이오...!
진호 ....!
달평 (돌아서며) 죽은 저 아이가 장두령의 가슴에 다시 불
을 지필 것이오...(간다)
진호 (잔인함에 고개를 고개를 가로젓는다) ....
38. 난희 방
초췌한 몰골의 세욱과 난희 마
주 앉아있다....
세욱 ...당분간 혼담을 꺼낼 수 없게 되었구나... 이럴 줄 알
았다면 미리 조촐하게라도 혼사를 치룰 것을 그랬어....
난희 (담담하게) ...소녀가 간택될 리 있겠습니까... 학덕과
기품을 지닌 규수들은 넘치고...
세도가들의 온갖 줄이 동원될테니...
...설령 소녀의 단자가 들어간다 하더라도 누가 눈여
겨 보겠습니까... 심려 마십시오...
세욱 ...허나 단자를 올리라는 영이 온다면 국법을 따라야
지... 니가 학식과 기품이 모자라는 건 아니다... 비록 이 애비는
수모를 당하고 산다만 너까지 남루한 취급을 당할 순 없 다...
잠시 들러리가 되는 게 명약관화한 일이라도... 예와 기품을 곧곧
하게 하거라....
난희 ...새기겠습니다...
세욱 ... 난.... 이미 모든 걸 잃었다... 지아비로서....애비로
서.... 모든 걸 버리고 달려온 그 끝이
...니가 보고 있는 내 모습이다....
난희 아버님....
세욱 ...앞으로 니가 기대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황보
종사관이다....!
39. 동 밖
장부장...서있고.... 세욱이 나
온다...
장부장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세욱 (선다) ....내게 고언을 할 것이라면 그만 두게....
장부장 ...영감을 꼭 만나 뵙고 싶어하는 분이 계십니다....
세욱 ...! (슬그머니 돌아본다)
45. 산길
무장한 성백과 달평 군사들이
산길을 이동하고 있다...
48. 한양 인근 숲
길 (밤)
장부장, 어두운 길을 앞서 가
고 있다...
대갓을 쓴 조세욱이 뒤를 따르
고....
세욱 대체 어디까지 가는 것인가...?
장부장 거의 다 왔습니다.... (앞서 간다)
49. 난희 방 (밤)
자수를 놓고 있는 난희, 일순
바늘에 손을 찔린다....
자수천에 떨어지는 핏방울이
붉게 번진다...
광목으로 손가락을 감싸는데
번뜩 불안한 생각이 든다..
<플래쉬> 차를 마시고 있는 세욱... 그 앞에 다소곳
이 앉아있는 난희...
세욱 ...사람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모른다고 하지 않느냐...
기쁜 일이라고 들뜨지 말고.... (마음에 걸린다)...슬픈
일이라 해서...절망할 것도 없다...
난희 아직도... 심기가 불편하십니까....
세욱 (애써 웃으며) 그리 보이느냐....
난희 ...하루 빨리 아버님을 모시고 한양을 떠났으면 좋겠습
니다....
세욱 ...그래... 그래... 그러자구나... 네 올케와 대선이도 함
께 가자...
난희 (반가워) 아버님....!
세욱 (혼잣말처럼).....그래야 네가 적적하지 않을 것이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난희...
50. 세욱 방 (밤)
촛불만이 일렁이고 있다...
난희E 주무십니까 아버님.... 아버님....
대답이 없자, 문을 열고 들어
오는 난희...
의아해하는 난희 방 안을 두리
번거리는데....
탁자 위에 놓인 서찰 하나...
겉봉투에 ‘皇甫允 前’이라 쓰여 있다.
난희... 불길한 느낌이 스치
고.... 서찰을 꺼내 펼쳐 본다....
세욱E 황보 종사관 보게.... (비장비감) 역당의 배후를 캐기
위해 하늘과 땅을 속이고...
난희마저 속이며... 오늘을 기다려 왔네....
그들을 만나기 위해 하늘같은 주상전하를... 일부러 능
멸하면서까지....
오늘밤을... 기다려왔네... 내 이제 마음 속의 칼을 세
워... 그들을 만나러 가네....
다시 돌아와 이 서찰을 치우게 되리라 믿네...
다만......... 내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홀로 남을 난
희가 마음에 걸리네...
내 누구에게 난희의 후일을 부탁하겠는가....
만일... 이 글을 읽게 되거든... 부디 내 짐을 거들어주
길 바라네....
난희 (사색이 되어 손을 떤다...) ...아버님....
51. 숲 공터 (밤)
공터에 이르자 장부장이 걸음
을 멈춘다....
세욱 여긴가....?
장부장 (돌아서 털썩 무릎을 꿇는다) 영감....
세욱 왜 이러는가...?
장부장 ...영감께서 평생을 걸쳐 모시는 하늘이.... 주상전하입
니까...? 백성입니까....?
세욱 (긴장된 목소리) ...그것이 무슨 소린가...? 만백성이
모두 주상전하의 백성이 아닌가...!
장부장 주상이라고.... 모든 백성이 받드는 주상은 아니지
요...!
세욱 그래서...... 내게... 하늘을 거스르기라도 하자는 말이
냐...!
장부장 하늘을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따르는 일이
지요...! 백성을 섬기는 일입니다....
세욱 (버럭)....이놈....! 네가 한 지붕 아래 역적놈과 함께 살
고 있었구나...
장부장 여기까지 오신 이상 돌아가시는 길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주상을 모시겠습니까.... 아니면 백성을
섬기겠습니까....
세욱 ....네 놈이 모시는 자가 누구냐......?
장부장 마음을 감추지 마시고 먼저 대답하시지요....
세욱 (한참 동안 말을 못한다) ..................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지나간
다....
세욱 ....니가 내 마음의 일부를 엿보았다고는 하지만.... 네
놈이 섬기는 자를 나는 모른다...
(일부러 마음이 흔들리는 듯) 그리고 아무리 대의명분
이 있다 할지라도....역천이란 하늘 의 뜻만으로는 부족하지....
필준E 하늘의 뜻만으로는 부족하지...
그대가 뜻을 함께 해준다면.... 세상을 바꾸는 일이 어
렵진 않소...
세욱 (놀라 두리번거린다) 누구냐...?
수풀 속에서 갑자기 횃불 수십
개가 밝더니...
필준이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
러 사내들과 나오기 시작한다...
천천히 걸어나오는 필준....
조세욱 눈을 부릅 뜨고 보는
데....
세욱 .....대감....!!!!!
필준 잘 오시었소 영감....
52. 좌포청 앞 (밤)
수십여명의 부장과 포졸들이
횃불과 무기를 들고 쏟아져 나온다...
난희도 장옷을 걸치고 나온
다...
부장1 (수직군사에게) 북쪽으로 가신 게 확실하냐..!
포졸 예...!
부장1 가자...!
앞서 달려가면 뒤를 따르는 무
리들...!
53. 숲 공터 (밤)
필준 팔도 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소... 이미 수백년 동안 고
여서 썩어버린 물로는
그들을 치유할 수 없소... 새 물이 필요하오...
왕씨의 역사를 이씨가 새로이 하고...이제 이씨의 역사
를 정씨가 새로이 할 때요...
세욱 정감록... 대감께서 정도령이라도 된다 그 말입니
까....?
필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오...
...모든 것이 준비되었소.... 작금의 썩은 왕조는 한줌
바람에도 허수아비처럼 쓰러질 것 이오... 나와 함께... 백성을 치
유할 새 물줄기가 되어주겠소...?
세욱 ...동이 틀 때까지 생각할 말미를 주십시오.... 대감댁
으로 조반을 들러 가겠습니다...
필준 (뚫어질 듯 보다가) 그러시지요....
(주시하라는 뜻으로) 장부장! 동이 틀 때까지... 소홀함
이 없이 모시게...!
장부장 예....!
세욱, 필준에게 예를 갖추
고... 돌아서는데...
도포 뒷자락 사이로 슬쩍 두꺼
운 갑옷이 보인다...
장부장 (이를 놓치지 않고 비수처럼) 영감, 어찌 갑옷을 입으
셨습니까...?
굳은 듯 멈추는 세욱...진땀이
난다...
필준도 돌아서려다 다시 몸을
돌린다...
<인터컷> 횃불을 들고 세욱을 찾는 포도군사 수십이 보인다...
세욱 ...무릇 장수는 매사 대비를 해야 하는 법...
장부장 (쏘아보며) ...정녕... 그러한 뜻이었습니까...
필준의 무사1, 몸을 날리며 착
지한다... 부복하며...
무사1 대감, 군사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세욱 (대경실색하는) ...난 군사를 부르지 않았소...! 내 군사
가 아니오...!
필준 (대번에 얼굴이 일그러지며) ....대단하군 좌포장... 목
숨까지 걸고 나를 끌어내다니...
....하지만 여기까질세...!
조세욱... 도포 속에 숨겨둔 장
검을, 필준의 머리를 향해 날린다
필준... 간발의 차로 피하는
데...갓이 베인다...
무사들이 조세욱을 순식간에
포위해 목에 칼을 들이댄다...
세욱 (무섭게 쏘아보며) ...정필준 ...오늘은 나의 입을 막겠
지만......
....내 죽어서도.... 역적의 발목을 비틀 것이다...!
순간... 장부장의 칼이 세욱의
등을 파고든다......
몸이 멈칫하더니...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 세욱....
장부장 (필준에게) 소,송구합니다...대감....
필준.... 순식간에 옆에 있던
무사의 장검을 빼...
장부장의 목을 베어버린다...
놀라운 속검이다....
필준 (바닥에 쓰러진 조세욱을 보며)......좌포장이 너무 깊
숙히 들어 왔다....
놈의 일당을... 즉시 척살하거라...! (돌아서 간다)
55. 숲 속 (밤)
성백의 군사들이 삼삼오오 모
여 자거나... 경계를 서고 있다...
일각 모닥불 앞에 상념에 잠겨
있는 성백의 모습도 보인다...
56. 동 숲 속 일각
(밤)
상의를 벗은 채 칼날을 매만지
는 가토...
마주 앉아있는 달평... 서찰을
읽더니 내려놓는다...
달평 (일본말로) ..황보윤, 두 부장놈들... 산채에 잠입했던
다모년과 마축지라는 잡놈....
...모두 척살하게...!
가토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
달평 서두르게...
가토 (일어나는데) ...
달평 가만....! ...한 년이 더 있었지.... ...마축지 놈의 계
집....
가토 (돌아보면)
달평 (생각하는 듯 하다가) ...그 년은 생포해오게...!
가토 (의아하게 본다) ....
달평 (묘한 미소를 띠며) ...쓸 데가 있어....
57. 길 (밤)
말을 타고 긴박하게 달려가는
낭인들 여섯...
보기에도 살기가 넘치는 닌자
의 차림이다.....
달리다가 네 명의 낭인은 옆으
로 빠져 달려간다...
58. 타박녀 주막
전경 (밤)
59. 동 방 (밤)
함께 누워있는 축지와 타박
녀....
타박녀 가볍게 코를 곤다...
축지 어이... 자는가....?
타박녀 (대답 없다) ....
축지 (슬쩍 흔들며) ...자냐고...?
타박녀 (팔을 툭 치며) 아 코고는 소리 안들려요...?
축지 (히죽 웃으며) ...아따 자는 사람이 묻는 소리는 또 어
떻게 듣는디야...
타박녀 (벌떡 일어나며) ...그래... 이왕 깬 김에 좀 물읍시다...
축지 물기는...개가 사람을 물어야 무는 것이고... 서방님한
테는 여쭤봐야제...
타박녀 흰소리 말고... 오랜만에 돌아왔으면 잠이나 잘 일이
지, 왜 실없이 사람을 깨우고 그래 새벽부터 밤까지 무거운 몸으
로 국밥 나르다보면... 내 몸이 천근만근이야...
그렇게 잠이 안오면...나가서 물이나 길어오든가....
축지 아따 거시기 그것이 아니고 말이여.... 우리가 참말로
거시기 한 지가 오래 되부렀잖어... (머리를 긁적인다)...
타박녀 (어깨를 때리며) 어이구 이 짐승...! 지금 그걸 말이라
고 해...
애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떡할려고...! (버럭) 참
아...! (이불을 홀라당 뒤집어 쓴다.)
축지 아니 나가 야그를 들어본께... 거시기가 꼭 애한테 나
쁜 것만은 아니라 그라드라고...
아조 총명한 놈이 나올 수도 있디야...! ...님도 보고 뽕
도 따고...애 좋고 우리 좋고....
그랑께 오늘부텀은 우리 셋이서 한몸을 만들어보세...
(안으려고 한다)
타박녀, 발로 퍽 밀어버리면
벌러덩 뒤로 넘어지는 축지...
타박녀 한몸이 그렇게 좋으면 당신이 애를 배든가....!
60. 동 마당 (밤)
물지게를 지고 나가는 축지....
축지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매... 자식놈 아홉이나 둔 박가
는 그 긴 세월을 어찌케
견디고 살았으까잉... 송곳 끼고 사는 마음을 인자는
알겄네.... (나간다)
하는데, 낭인1이 사내의 입을
틀어막고는
목을 긋는다.... 옆으로 툭 쓰
러지는 사내1...
타박녀 (문을 열며) ...물 찾으시우...?
순간, 타박녀의 목을 겨누는
칼....
기겁하는 타박녀...
63. 들 (밤)
간단한 노숙용 천막 두 개가
세워져 있고...
천막들 앞에는 장작불이 있
다...
64. 몽타쥬 (밤)
-천막 1안에서 자고 있는 주
완... 비호대..
윤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
인다...
-천막 2에서 손발이 묶인 채
모로 누워 있는 채옥...
66. 천막 2안 (밤)
윤 들어오면... 모로 누워있던
채옥, 일부러 눈을 뜨지 않는다.....
윤, 채옥의 등쪽으로 가 팔과
다리에 묶인 줄을 풀어준다...
그제서야 눈을 슬며시 뜨는 채
옥....
윤 앉거라....
채옥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는다,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고
개를 떨군다)...
윤 ...장성백을 잡았었다......역모를 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을 알 것이다.....
(쏘아보며) ...왜 스스로 인질이 되어 그를 살렸느냐...
채옥 (알았는가...놀란 얼굴로 본다) ....
윤 (북받치는 화를 누르며) ...왜 그랬느냐 물었다....
채옥 (시선을 내린다) ....
윤 (제발 아니기를... 가슴 아프게) ...그 자를....... 사랑하
느냐...
채옥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린다) .....
윤 (불길한 눈으로 채옥을 응시한다) ......
채옥 (고개를.... 힘겹게... 힘겹게.... 끄덕인다) .....
멍해지는 윤..... 가슴이 무너
져 내린다...
시간이 정지된 듯 아무 소리
도 들리지 않는다... 세상이 빙빙 돈다...
눈을 감고 굳은 듯 아무 말이
없다.....
윤 (눈을 치켜 뜨는데 실핏줄이 터질 듯 하다... 쏟아붓는
다)...나는 내일부터 종사관이 아니 다.... 포청에 당도하면 영감
께 말씀드리고 물러날 것이다... 너는 나와 함께 내 어머님이
계시는 곳으로 갈 것이다...
채옥 저는 도련님의 아내가 될 수 없습니다....
윤 (O/L) 그건! 내가 판단한다.... 들어라... 너는... 나와
함께 간다...
채옥 (고개를 떨군 채) ...전 아이도 낳을 수 없습니다...
윤 (놀라는데)....
채옥 (울먹이며) 스님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윤 (가슴이 저민다) 내겐... 너만 있으면 된다...
채옥 나으리께선 이미 정혼을 약조하셨습니다.......
윤 (O/L) 나를 속였던 일이다...!
채옥 (O/L)...나으리와는 섞일 수 없는 비천한 몸입니다...
윤 (O/L, 버럭) ...내가 비천해지면 된다...! (감정을 추스
르지 못하고 부르르 떤다)
채옥 (고개를 들어 본다,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나으리...
...저도 이런 제 자신을 모르겠습니다...
....그 자에게 칼을 들이밀어야 할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혀를 깨물고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져
드는 저를....
...저도 모르...겠습니다.... (눈물이 떨어진다)
윤 (입술을 깨물며, 간곡하게) ...가자....장성백을 잊을
수 있는...... 먼 곳으로 가자...
...어디든 가자......더이상 나를 속이며 살지 않을 것이
다...
....서자로 돌아가도 좋다..! ..백정으로 살아도 좋
다...!
(사이)... 너는... (눈물이 떨어진다) ...나로 인해 숨을
쉰다고 하지 않았더냐...
...나도 그렇다.......너 없이는... 내가 살지 못한다....
채옥 ...........이년 육신은... 나무 그늘 아래 숨긴다 한들...
...이미 떠난 마음... 무엇으로 가리겠습니까..... (눈물
이 툭툭 떨어진다)
윤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한참을 보다가 힘없이 일
어나) ...나오너라...
67. 동 밖 (밤)
윤... 채옥에게 등을 돌린 채
밤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다....
물기가 촉촉한 눈가에 서글픈
미소가 피어오른다....
윤 ....너와.... 하나인 줄 알았다.......이런 날이....이런 날
이 올 줄 몰랐구나...
윤... 칼을 뺀다.... 돌아선다...
칼끝을 잡고 채옥에게 내민
다....
윤 (편안하게) ....베거라.... ...나를 베서.... 너의 의지를
보이거라.......
그래야... 너와 장성백의 인연을 믿겠다....
채옥 (멍하니 윤을 본다) ....
윤 ...어차피... 한 사람은... 베야 한다.....
채옥... 고개를 떨군다...
더는 눈물도 나지 않는다... 체
념이 밀려온다...
윤 어서....
떨리는 손으로 천천히 칼의 손
잡이를 잡는 채옥...
채옥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 칼을 천천히 세우며) ...도련
님....
윤 (서글픈 목소리로) ..오....냐....
채옥 ...단 한 수로 끝낼 것입니다....
윤 (고개를 끄덕인다... 눈을 감는다) ....
채옥 ....(다시 눈물이 찬다) ....용서하십시오....
윤 ....
채옥 천천히 윤을 겨눈다.....
볼을 타고 눈물이 떨어진다...
윤.... 편안한 미소가 걸린다...
(Slow) 번개 같이 ...칼을 돌려 쥐
고.... 자신의 가슴을 향해 찌르는 채옥....
눈을 번쩍 뜬 윤의 몸이 화살
처럼 튕겨나간다....
칼은 채옥의 복부에 닿을 듯
말 듯 멈춰 있고...
윤의 손이 채옥의 칼날을 움켜
쥐고 있다....
붉은 피가.... 칼날을 타고 흘
러내린다....
얼굴이 닿을 듯 젖은 눈으로
서로를 바로보는 윤과 채옥.....
...풀 숲 어둠 속에서 꽝- 소리
와 함께... 총포가 불을 뿜는다...
윤의 어깨를 스치는 총탄...
반사적으로 윤을 안고 구르는
채옥...
수풀 속에서 불을 뿜는 네 개
의 총구....
채옥, 윤을 안고 계속 구르
면... 지척에 흙이 튕겨오른다...
주완과 비호대 놀라 뛰쳐 나오
는데....
총성이 터지자... 모두 납짝 엎
드린다...
비호대 적을 찾느라 두리번거
리고...
주완 (조금 떨어진 윤을 보며) 나리 괜찮습니까.....!
윤 (어깨를 감싸며 다급하게) 불을 꺼라...!
또다시 총포가 터지고...!
비호대 잽싸게 몸을 굴리며...
흙을 모아 거세게 날린다....
흙바람에 튀면서.... 사방으로
흩어지는 장작불....
사위가 어두워진다...
주완 (비호대에게) ....대체 어디서 쏘는 거야...?
엎드린 채 떨어져 있는 윤과
채옥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채옥 (걱정되어) 나리...! (포복으로 기어간다)
윤 움직이지 마...!
총성이 울리고 채옥 주위로 흙
이 튄다....
채옥, 다시 몸을 굴리는데...
주완 동쪽이다...!
비호대원들 일어서 수풀 쪽으
로 달려간다...
멀리 도망가는 낭인들이 보인
다...
비호대가 쫓아가는 모습도 보
인다....
윤 (몸을 쥐어짜듯 어금니를 문 신음이 새어나온다) ...으
으으으으....
(털썩 주저 앉더니... 온몸이 폭발하듯 고개를 젖히고
흐느낀다. E)
...거짓말처럼 내 눈물을 거두어 갔던 아이.....
.....일곱 살... 계집 아이... 지금 그 아이가 내 곁을 떠
난다...
....그 아이를 위해...무엇 하나 해 준 게 없는데.......
....가거라.... .....가거라.... 훨훨 날아가거라......
...아무도....아무것도.... 너를 속박하지 않는 곳으
로.....
2. 먼 숲 (밤)
멀리 보이는 막사를 뒤로 하
고.... 걷고 있는 채옥의 얼굴....
뛰기 시작하는 채옥....
3. 숲 길 (밤)
낭인들 말을 달리면...
멀찌감치 나무에서 나무로 몸
을 숨기며 쫓아가는 채옥...
4. 숲 (밤)
음산한 숲 속에... 밤안개가 자
욱하다....
가토와 낭인 대여섯... 옆에는
꿈틀거리는 커다란 자루 하나가 있다....
두명의 낭인이 부복하고 있
다......
가토 (이하 일본말) 마축지란 놈을.... 베지 못했단 말이냐...
낭인1 (떨며) 이미 자리를 뜨고 없었...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가토의 검
이 움직이나 싶더니...
다시 칼집에 들어간다....
낭인1, 피가 뚝뚝 흐르는 손목
을 부여잡고 있다....
부복한 채 벌벌 떠는 낭인2....
가토 (낭인2를 보며) 지금부터 조장은 너다...!
윤을 습격했던 낭인 네 명이
급히 달려온다....
낭인3 (부복하며) 죄송합니다...... 뒷일을 위해 물러섰습니
다...
가토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더니.... 미친 사람처럼 피식 웃
는다) .....건진 거라곤...
겨우..... 저 여자 하나 뿐이군....
낭인3 ... 한번 더 기회를 주신다면....
가토 (O/L, 폭발한다) 닥쳐라....! (삭이며) ...놈은 강하다...
두 번 칼을 뺄 때는... 이미 늦다.......군영으로 돌아간
다....!
낭인3 (애써 진정하는 얼굴이... 부르르 떨려온다) ..오늘의 수치
를.... 잊지 않겠습니다....
멀리 나무 뒤에서 이를 엿보
는 채옥의 미간이 일그러진다....
5. 산, 군영 일각
숲 (밤)
단도를 쥔 가토..... 단지를 한
듯 손가락에서 피가 툭툭 떨어지고
있다... 꿈쩍않고 그런 가토를
냉정하게 노려보고 있는 달평....
(이하 일본말)
달평 실망이군...! 손가락 하나로 무마될 일이 아니야...!
가토 죄송합니다..... 대사를 마친 후에.... 도주님께 오늘의
실수를 여쭐 것입니다....
달평 (무섭게 노려보며) ......잡아온 년을 데려 오시오.....
6. 산 속 군영 마
당 (밤)
나무 기둥에 사람이 매달려 꿈
틀거리다....
머리에는 두건을 씌웠고.... 다
리는 치마째 묶여 기둥에 매달려 있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어 신음
소리만을 낼 뿐이다....
주위에는 화톳불이 켜져 있
고....
대부분의 산채 군사들이 모두
모여 있다....
달평, 가토, 덕수, 수명 외에
수십의 군사들...
7. 마당과 떨어진
수풀 속 (밤)
채옥이 몸을 숨기고 이를 지켜
보고 있다....
8. 군영 마당 (밤)
성백이 목발을 짚고 나타나
면...
사람들이 길을 비켜준다....
성백 (매달린 타박녀를 보고) ......누구요....?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달평 .....다모일세.....
성백 (충격을 받은 듯 갑자기 멍한 표정이 된다) .....
9. 수풀 속 (밤)
채옥도 그 소리를 듣고 놀란
다...
10. 군영 마당 (밤)
성백 (믿기지 않은 듯 멍하니 앞을 본다) ....
달평 ...자네와 인연이 깊은 계집이지..... 알고보니.... 대풍
라 마을을 초토화시킨 것도...
산채 아랫마을 식구들을 몰살한 것도..... 저 년이 안내
했던 거더군....
성백 ......
달평 (칼을 건네며)......베게.......!
성백 (흠칫하는데....)
11. 수풀 속 (밤)
채옥, 침을 삼킨다....
12. 군영 마당 (밤)
성백 (미간이 찌푸리더니.... 이내 돌아서며) ....최도방이 베
시오.......
달평 (냉소) ...자네 형제들이 지켜보고 있네...... 저년 때문
에 흔들리는 자네 모습을....
가슴아파 하더군......
성백 ......이미 잊었소......
달평 그러니 더더욱 확신을 줘야 하지 않겠는가.....
성백 (부르르 떨더니.... 이를 깨물고 돌아선다.... 터질 듯
한 감정을 누르며...)
...이미... 잊었다 하지 않소...
달평 ...장두령만 잊었다고 될 일인가... 형제들의 기억도 지
워주게.....
성백 (주먹을 움켜쥐는데.... 부르르 떨린다)
소두령1 (낫을 들고 나서며) ...두령님! 어서 베십시오! 죽어간
형제들의 넋을 위로해 주십시오...
덕수 ...형님.... 각출이와 양순이를 생각하십시오....
도륙당한 가마골 사람들과 산채 식구들의 곡소리가 들
리지 않습니까....
성백 (칼 잡은 손이 여전히 떨린다)....두건을..... 벗겨.....
주시오....
달평 ....두건을 풀면.... 벨 수 있겠는가....? ...눈을 보면 힘
들텐데....
성백 (망설이는데)......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던 성
백.....
달평 ...무얼 망설이는가....?
성백 (어찌해야 하나 눈을 지그시 감는데)
<플래쉬 백> 채옥 어깨의 총알을 빼주던 성백....
성백 (눈을 뜨며) ....몸을... 돌려주시오....
덕수가 다가가 타박녀의 몸을
반대로 돌린다....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바둥거
리는 타박녀....
성백이 약간 절룩이며 다가간
다....
13. 수풀 속 (밤)
긴장한 채옥의 눈망울이 젖어
온다....
14. 군영 마당 (밤)
성백....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본다...
별이 쏟아질 듯 하다... 아니기
를... 제발 아니기를 간절히 서원하듯...
고개를 내리는가 싶더니.... 위
에서 아래로 내려긋는 성백의 칼....
15. 수풀 속(밤)
눈을 질끈 감는 채옥....
16. 군영 마당 (밤)
타박녀의 왼어깨 옷이 쓰윽 잘
려나간다....
성백의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어깨....
총에 맞었던 상처가 없다... 채
옥이 아니다....!
다시 한번 가차없이 내리치는
칼...!
17. 수풀 속 (밤)
질끈 감은 채옥의 눈에서 굵
은 눈물이 흐른다...
성백의 목소리가 귀에 웅웅거
린다....
<플래쉬백>
- 성백 ...산채에서 정을 나누며... 오래도록...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 /
/....이 곳에서.... ....죽는다 해도.....너를 잊지 못할 것
이다.../
/널... 혼자 두고 가서 미안하다......사랑한다.... 사랑
한다......사랑한다.....사랑한다..........
털썩 쓰러지며...... 스르르 무
너지는 채옥....
19. 군영 일각 (밤)
모닥불 앞에 털썩 주저앉는 성
백...
수명 따라 들어온다....
수명 (서서) ...칼은.... 한번으로도 족했습니다...
성백 (긴장해서.... 가만 본다) ......
수명 .......왜.... 두 번을 휘두르셨습니까?
성백 ....정을 베고.......목을 벤 것이다....
수명 (여전히 미심쩍게 본다) ....
성백 이동할 것이다... 눈을 붙이거라...
수명 .....(나간다)
힘겨운 듯 고개를 떨구는 성
백...
20. 인근 수풀 (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채옥... 실성한 사람의 눈빛이다....
채옥... 입술을 문다...
고개를 가로 젖는데.... 스산
한 바람이 분다....
채옥의 머리를 묶은 푸른 옷고
름이 풀려... 바람에 쓸려간다.....
그저 멍하니 눈물을 흘리는 채
옥......
털썩-하고 인근에 무언가 떨어
지는 소리가 들린다...
21. 인근 비탈 (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오
는 채옥.....
얼굴이 가려진 타박녀의 시체
가 널브러져 있다...
다가와 천천히 두건을 벗기는
채옥...
타박녀다....!
턱이 덜덜 떨린다... 눈에 핏발
이 선다....
고개를 떨구며 입을 틀어막고
오열하는 채옥...
<시간 경과>
한 군사가 앞서가고...
백검을 찬 성백... 목발 없이
뒤따라가는데.....
수풀에 걸려 스치는 푸른 옷고
름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친다...
앞서 가던 군사.... 급히 돌아
서며...
군사 ...시신이...시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백 (흠칫) ...!
군사 ...부,분명 죽었는데.......군사들을 깨워 찾아보겠습니
다...(다급하게 가려는데)
성백 소란 떨지 마라...! (안타깝다)...누군가 명복을 바라
며... 묻어 줬겠지...
군사 .....
성백 돌아가자...
군사 예....
군사 왔던 길로 되돌아 앞서
가고....
성백.... 씁쓸한 표정으로 천천
히 뒤따르는데...
옷고름이 시야에 스친다...
멈칫...자리에 서는 성백...
떨리는 손으로 수풀에 걸린 옷
고름을 손에 쥔다....
재희의 푸른 저고리 고름.....
그녀가...그녀가 다녀간 것인
가....
저고리 고름을 쥔 손이 부르
르 떨린다...
...뼈아픈 눈으로 옷고름을....
내려다보는 성백.....
성백 (마음의 소리) ...왜 다시 왔느냐..... 나는 이미.... 너
를 베었다.....
....내 너를 다시 볼 날이 있다면.......만약... 그런 꿈같
은 날이 온다면......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나를 베거라....반드시...
나를....베거라....
22. 좌포청 전경
(아침)
23. 조세욱 방 안
방문을 열고 서서 충격을 받
은 표정으로 서 있는 윤...
그의 손에는 세욱이 남긴 유서
가 구겨진 채 쥐어져 있다....
주완 (침통하게 주저앉는다) 영감...!
조세욱, 상체에 광목 천을 칭
칭 감은 채 누워있다...
난희는 세욱의 머리맡을 지키
고 있다....
울상이 아니다... 눈에 눈물이
그득하지만
바위처럼 의연히 슬픔을 누르
며 자세를 단정히 하고 있다....
난희 (세욱의 얼굴을 바라보며)...울지 마십시오... 아버님
은 살아계십니다...!
주완 (오열하는) ...영감...!
윤 (무릎을 꿇는다) ....
난희 돌아오시기를 몹시 기다리셨습니다...
윤 (눈에 불이 일어난다) .......
난희 주상전하께서 어의를 보내셨습니다... 이미 사람의 손
은 떠났답니다...
....그러니 일어나시겠지요...
(기어이 눈물이 떨어진다) ...아버님은.. 하늘이 무심하
게 손을 놓을 분이 아니잖습니까...
24. 동 방 앞
포도 군사 두 명이 수직을 서
고 있다...
한켠에 주저앉아 훌쩍이고 있
는 마축지...
허탈한 모습으로 마당을 나오
는 윤과 주완...
축지 (잽싸게 달려와 윤을 붙잡고 운다) 나리... 우리 여편
네...
우리 여편네 좀 얼릉 찾아주시랑께요...
윤 (멍하다) ...
축지 (눈물 범벅이다) 애기가 있어라우... 뱃 속에 애기도 있
당께요....
주완 (눈물을 닦으며) ...이 개자식들.....
축지 (소매를 잡고 흔든다) 뭐라고 말 좀 해보쇼.... 어서 군
사를 풀어 찾아주겄다고 말 좀 해 보란 말이시....
윤 (축지가 흔드는대로 흔들릴 뿐 침통할 뿐이다)...
축지 (악에 받쳐) 옘병할......목숨을 걸고 일한 댓가가 요것
이여....!
얌잔하게 들짐치기, 들병이하는 것들 꼬셔가지고 죽을
똥살똥 일 시켜묵고 ...
돌려주는 것이 겨우 요것이란 말이여...! (멱살을 잡으
며) 얼른 데려오쇼.....
포졸들 모다 풀어서 내 눈앞에 데려오란 말이 시...!
수직하던 군사들이 달려와 마
축지를 떼어놓으며 데려간다...
축지 (문 밖으로 끌려나가며) 우리 여편네 안데려오면 모다
죽여버릴 것이여...!
모다 죽여버린당께----
주완 (애써 의연하게) 나리....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제가
잘 달래보겠..... (하더니.... 바보같 이 엉엉 울어버린다)
윤 ..... (나간다) ....
26. 정필준 밀실
(밤)
태극문양을 향해 결가부좌를
하고 있던 필준이 무서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린다...
필준 (버럭) 겨우 쓸데 없는 계집년 하나를 없앴단 말이
냐...!
사내 송구하옵니다... 허나...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조세욱의 숨이 아직까지 붙어 있다고는 하나... 시체
나 다름 없습니다...
필준 황보윤이라는 놈은...?
사내 현장을 살피고 갔습니다만... 심려 마십시오.... 장부장
의 시신까지 완전히 처리하였으니
단서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필준 ...해주 감영의 양판관을 한 눈에 알아본 자다... 마음
을 놓지 말고... 만일에 대비하거라..
사내 예......
필준 경강 왜관은 어찌 됐느냐?
사내 초간택 날에 맞추어 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대마도주
와 사행단이 왜관에
도착할 것이고... 군사들은 먼 바다에 정박해... 진군
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다...
필준 최도방에게... 서둘르라 이르라... (흥분이 넘친다) ....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27. 임금 침소 (밤)
주안상을 앞에 두고 얼이 빠
져 이마를 짚고 있는 임금....
발 옆으로 흥복의 그림자가 보
인다....
흥복 ...역모 세력이 아니고서야 그런 대범한 짓을 할 자들
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이 생각건대... 좌포장이 전하의 눈 밖에 나려한
것도.....
그들에게 접근하기 위함이 었던 듯 싶습니
다...
임금 (눈물을 흩뿌리며) ....그대들은... 피와 살을 바쳐.....
이 어리석은 주군을 지키며 죽어가는데.... 나는.....
나는..... 아무 것도 해준 게 없구나... ....아무것도....
28. 산 전경 (밤)
29. 움막 안 (밤)
커다란 크기의 도성 지도가 펼
쳐져 있다....
지도 주위에 둘러앉은 성백,
달평, 진호, 덕수....
수명은 벽에 기대고 있다
덕수 화약 백관이라니요?
성백 ......
덕수 화약 백관이면... 대궐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습니
다만...
그 많은 양을 어떻게 궐 안으로 들입니까...
성백 대궐에서 화약이 터지고... 불이 나면.... 도성과 외곽
의 모든 군사가 들이닥칠 것이다...
...그러면 너는...이미 죽은 목숨이다...
덕수 (머리를 긁적인다) .....
성백 백관의 화약을 도성 곳곳에 터트려..... 군사들이 정신
을 차릴 수 없게 해야한다...
달평 (성백의 기지에 놀란다.... 좋아 죽겠다...) 허면 장두
령...! ..화약을 어디에 묻을 것인가..?
성백 (한 지점을 한 지점을 누르며) ...나라 살림을 관장하
는 곳부터 박살내야지... 선혜청...!
그리고 죄수들이 쏟아져 나와 활개를 칠 전옥서...!....
도성의 심장인 한성부...!
<인서트> 위의 대사가 진행되는 동안 성백의 수하들이 언급된 기
관들 주위로 폭약을 매설하는 장면이 보인다...
성백E (덕수에게) 궐에서 신호가 오는 순간 일제히 폭약을 터
트려야 한다...
그 순간 궐안에 잠입한 어르신의 군사들이 봉기할 것
이다...
덕수 걱정마시우 형님...!
성백 (달평에게) .....우리가 폭약을 터뜨리고..... 궐을 장악
하는 동안...
도성을 장악할 정예군은.... 반드시 두 시각 안에 짓쳐
들어와야 하오.....
달평 ...걱정말게... 어르신께서 은밀히 예비하신 일이니 작
은 실수 하나도 없을 것이오...
...그날이 되면.... 동지들과 대궐마당에서 저녁을 함
께 먹을 수 있을 것이야...
성백 그 군대의 숙영지는 어디오...?
달평 (태연히) ....그건 나 또한 들은 바가 없네...
성백 군사규모는.....?
달평 확실치는 않네만... 이만 정도라고만 들었네...
성백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군사 규모도 확실치 않고...
숙영지도 모른다...?
도대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뭐요....?
달평 (달랜다) 언제 우리가 알고 움직인 적이 있던가?
어르신께서 지극히 주도면밀하신 터라 그런 걸세...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믿게...
정예군도 우리의 자세한 움직임은 모르고 있다 들었
네.....
떨어지는 먼지 하나에도 조심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덕수 도방어른의 말이 맞습니다...믿읍시다 형님....
성백 (입술을 지그시 문다) ....
31. 윤의 방
다기에 차를 부어 윤에게 내미
는 난희...
윤... 찻잔만 들어 만지작거릴
뿐.... 차를 마실 기분이 아니다...
난희 허나.... (시선을 돌린 채 어렵게 입을 뗀다) ....나리께
서..... 허락하신다면.....
초간택에 응하고 싶습니다...
윤 (가만히 보는데.... 마음이 아린다) .....
난희 비록 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배려를 받기는 했습니다
만...
...아버님께서 당부하신 것처럼 예와 기품을 곧곧히 하
여...
할아버님들의 명망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윤을 보는 눈가가 촉촉이 젖는다....)
윤 (따뜻하게 웃으며) ...영감께서 자랑스러워 하실 겁니
다....
난희 ...국법이니 잠시 따르는 일이지만.... 나리께 면목이
없습니다...
단단한 기품이 서려보이는 난
희...
그런 난희를 보는 윤의 눈이
여느 때와 달리 깊다...
윤의 시선을 의식한 난희가 살
풋 시선을 떨군다...
윤 (주저하다 말을 꺼낸다) ...전.... 아가씨를 연모하지 않
습니다.....
난희 (덜컥 가슴이 내려 앉는다... 눈을 들지 못한다) ....!
윤 ...아가씨를..... 여인으로 느낀 적도 없습니다.....
난희 (눈꺼풀이 떨린다).....
윤 ....아가씨와 정혼을 약속한 것도... 제 자신을 속인 일
이었습니다....
난희 (안다... 뼈아프다) ........ (눈물이 툭 떨어진다)
윤 (역시 눈가가 젖어오는데... ) 하지만 이제는 아닙니
다....
난희 (그제사 고개를 들고 동그란 눈으로 본다) ....
윤 (미소를 띠며) ...이제는 아가씨께... 제 마음 한자리를
내어드릴 수 있을 듯 싶습니다....
난희 ....나... 나리...
윤 ...노력하겠습니다.... ...애써.... 보겠습니다....
난희 (눈물이 그렁한 눈이 환하다) ....
윤 (손수건을 내밀며 그냥.... 그렇게..... 웃어준다.....) ...
천천히 손수건을 받아드는 난
희...
울컥 북받쳐... 입을 막는다...
그 모습을 애잔하게 보는
윤....
32. 동 회의실
세욱의 칼을 절반쯤 빼어 살피
다 탁자에 내려놓는다....
착찹하게 눈을 감는 윤...
주완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장성백도, 그 배후도...
어느 것 하나 명확히 손에 잡힌 게 없습니다... 이러단
정말...
윤 ...이부장은 아무 소식도 없소...?
주완 ...털끝 하나 남기지 않는 놈들인데... 원해 놈인들 단
서 한자락이라도 잡았겠습니까...
윤 마축지는 어찌 지내고 있소...?
주완 말도 마십쇼.... 술 쳐먹고 울다 잠들고... 또 깨어나면
술 찾고...그러고 있습니다...
...큰 일을 친다는 사내 새끼들이 치사하게 애 밴 아녀
자까지 납치를해서 어디다
쓰겠다고...! ......(와락 세욱의 칼을 잡아 빼며) 이 우
라질 놈의 새끼들...
언제고 마딱뜨리기만 해봐라... 아주 어육을 만들어 줄
테니까....!
순간, 세욱의 칼끝이 반짝 하
고 빛나는 것을 본다...
윤 (시선을 고정한 채) 백부장....!
주완 (질책인 줄 알고) ...송구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해
서...
윤 (주완이 들고 있던 칼을 빼앗아 칼끝을 살핀다) ...
주완 (머리를 디밀어 자기도 살펴보지만... 모르겠다... 조심
스럽게) ...왜 그러십니까...?
윤, 흰 화선지 조각을 들어 칼
끝을 신중히 닦아내고는 들여다본다...
화선지 위에 미세한 조각의 금
이 빛을 발한다...
주완 나으리.... 이게 뭡니까...? ...금...금 조각 같은데
요....?
윤 (생각을 굴리는 눈빛) ...사내가 금장식을 달 수 있는
부분이 어디오...?
주완 (답답하다는 듯) 아.... 사내가 금장식을 달긴 어따 답
니까....
윤 (....쿵) .....관자다....(貫子 - 망건에 달아, 망건당줄
을 꿰는 고리)
<인서트> 망건 당줄에 달린 관자 그림...
33. 몽타쥬
- 몇몇 용의자를 찾아 문안 인
사를 하는 윤...
방담을 나누는 동안 망건에
달린 금관자를 살핀다...
주완E (..! 눈을 빛내며) 맞...어... 금관자!
그, 금관자를 달 수 있는 고관대작은 손에 꼽습니다...
그렇다면 구경(九卿 - 정2품인 9명) 중의 한 명입니
다...!
육조의 판서들과.... 한성부 판윤.... 의정부 좌우 참
찬.... 이들 중 하납니다...
윤E (화선지를 움켜 쥔다) ......!
34. 정필준 집 사
랑방
큰절을 올리고 자리에 앉는
윤...
필준 (침통하게) ...그래.... 좌포장은 좀 어떤가....?
윤 (착잡하게) ...별 차도는 없습니다.... (한숨과 함께) ...
하늘에 맡겨야지요...
...대감께서도 매사에 조심하셔야 합니다...
(고개를 들고 있어 필준의 관자가 자세히 보이지 않는
다)
필준 ...내 걱정은 말게... 그나저나 좌포장이 꼭 일어나야
사건의 전말을 풀 수 있을텐데...
필준, 긴 곰방대에 담배를 짓
이겨넣으며 고개를 슬핏 숙이는데
윤의 눈에 필준의 왼쪽 금관자
가 확연히 들어선다...
귀퉁이가 살짝 잘려나간 소형
금관자다...!
윤, 눈에 불이 나고... 주먹 쥔
손이 벌벌 떨린다...
필준, 윤의 눈빛을 느끼고 고
개를 들어 본다....
필준 왜 그러는가...?
윤 아,아닙니다... (애써 안정을 찾는데)
필준 (미세하게 떨리는 윤의 눈빛을 느낀다) ....불 좀 붙여
주겠는가...?
윤, 부싯돌을 들어 불꽃을 일
으키려는데 미세하게 떨리는 손 때문에
자꾸 부싯돌이 엇나간다... 그
모습을 날카롭게 보는 필준...
35. 동 대문 앞
문을 나서자마자....온몸에 전
율이 이는 듯 살이 떨리는 윤....
눈에 살기가 돈다... 으스러질
듯 움켜쥔 주먹이 떨린다...